Tous les chapitres de : Chapitre 11 - Chapitre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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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방금 그녀는 연기를 하느라 진이 다 빠져 실제로 잠이 들어 버렸다.온소운이 눈을 뜨자 곁에 있던 운양이 황급히 다가왔다.“귀인마마! 정신이 드셨습니까? 얼른 주방에 해장국을 끓이라 명하겠습니다!”“괜찮다.”온소운한테서 취한 기색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나 안 취했어.”운비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안 취하셨다고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의식이 없으셨는데…”온소운은 아무런 해명 없이 그저 미소만 지었다.아까 강규빈이 보인 반응을 떠올리자 그녀는 저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계속 그렇게 손에 넣지 못해야만 애가 탈 것이다. 그 미묘한 간극이야말로 전하의 기억 속에 오래 남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한편, 연희궁.쾅!찻잔이 산산조각 나며 바닥에 부딪쳤다.서 귀비의 안색은 짙게 어두워졌고 그녀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던 내관은 두려움에 온몸을 떨고 있었다.“전하가 본궁을 두고 목단원으로 갔다고?”내관은 고개를 푹 숙이며 말을 더듬었다.“예… 다만 전하께서는 그곳에 머무르지 않으셨습니다.”서 귀비의 눈가에 핏기가 맴돌았다.“전하께서는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대하는 것이냐?”옆에 앉은 순빈과 옥 귀인은 숨을 죽이며 그녀를 살폈다. 순빈은 곧장 내관을 물리더니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마마, 신첩 생각에는 온씨네 두 자매 모두 요망한 여인들입니다. 운 귀인이 입궁하기 전까지 전하께서 언제 마마를 마다하신 적이 있었나요? 이러다 마마의 총애도 절반은 빼앗기겠어요.”그러자 서 귀비는 손바닥이 패일 정도로 손을 꽉 쥐었다.“그 입 다물 거라. 괜히 본궁의 속을 뒤집지 말고.”그때, 옥 귀인이 순빈에게 눈짓을 주고는 서 귀비를 달래기 위해 조심스레 말을 보탰다.“마마, 그 운 귀인이란 자는 몰락한 온 대감 댁의 여식일 뿐입니다. 그런 자 때문에 몸을 상하게 하실 필요가 있습니까? 아직 채 피지도 못한 꽃이니 꺾어버리는 것이 가장 쉬울 듯합니다.”그녀의 말에 서 귀비는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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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온소운은 손수 달인 탕약을 식지 않게 식함에 담아 중전의 침소로 향했다. 그녀가 도착했다는 소식에 중전의 곁을 지키는 춘의 나인이 먼저 나와 예를 갖췄다.“귀인마마, 중전마마께서는 몸이 좋지 않으셔서 오늘은 알현이 어려울 듯합니다. 부디 발길을 돌려주시지요.”하지만 이 시간이 지나면 중전의 병이 도질 것이기에 그녀는 물러날 수 없었다.“이제 곧 늦가을입니다. 중전마마의 한증은 이 계절에 더욱 심해질 겁니다. 신첩의 고향에 그 병세를 완화할 방도가 있습니다. 부디 마마께 이 한 마디만 전해주세요.”그녀는 기억하고 있었다. 전하가 아직 세자였던 시절, 고열로 쓰러진 그를 위해 중전은 얼음 호수에 몸을 담근 뒤 꽁꽁 언 몸으로 어린 세자를 품에 안아 열을 식혔다. 그날 얻은 냉기가 그녀의 병근이 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이다. 춘의 나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그녀가 자리를 뜨자 곁에 있던 운양이 물었다.“귀인마마, 예전에는 궁 안에서 누구와도 얽히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어째서 중전마마께는 이렇게까지 정성을 들이시는 겁니까?”온소운은 따뜻한 눈길로 창밖을 바라보며 대답했다.“중전마마는 유일한 예외니까.”얼마 지나지 않아 춘의가 돌아와 말을 전했다.“귀인마마, 안으로 드시지요.”침전 안은 짙은 약항으로 가득했고 약탕기에서 물 끓는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중전은 가벼운 잠의 하나 걸친 채 창백한 얼굴로 침상에 기대어 있었다. 온소운은 조용히 그녀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신첩, 중전마마께 문안드립니다.”그녀는 억지로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끄덕였다.“바깥 하늘을 보니 곧 비가 올 듯한데 운 귀인이 이렇게 고생하며 본궁에게 약을 가져다주다니 참 고맙소.”중전이 춘의 나인을 부르자 온소운은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식함을 건넸다. 궁궐 안의 사람들 눈에는 그녀가 중전에게 아첨하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온소운은 다시 하얀 손수건을 펴서 그 안에 들어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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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월백색의 유군을 입은 온소운은 단정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운양은 그녀 곁에서 조심스레 시중을 들고 있다가 쿵쿵거리며 뛰어든 운비를 보고는 낮은 목소리로 나무랐다.“귀인마마께서 글을 쓰고 계시는데 왜 그렇게 부산스럽게 뛰어다니는 거야?”운비는 뾰로통해진 얼굴로 앞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슬며시 다가왔다.“방금 밖에서 들었어요. 오늘 밤 위 귀인께서 시침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벌써 봉란춘은차를 타고 조양궁으로 향했대요.”온소운의 붓끝이 살짝 멈칫했지만 이내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담담히 말했다.“누가 시침을 하든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자, 내가 쓴 글은 불태우도록 해.”온소운이 붓을 내려놓고 손을 씻으려 옆으로 움직이자 운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마마께서는 글씨를 잘 쓰시는데 왜 모아두지 않으세요? 그리고 원래는 왼손잡이셨잖아요. 요 며칠 왜 오른손으로만 글을 쓰시는 건가요?”온소운은 운양이 건넨 수건을 받아 손을 닦으며 물었다.“그래서 묻는 건데 내 글씨라는 것을 알아보겠느냐?”운비는 고개를 저으며 솔직히 대답했다.“잘… 모르겠어요. 왼손 글씨랑 느낌이 달라서요.”온소운은 잔잔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됐어. 왼손으로 쓴 글만 남기고 오른손으로 쓴 것은 전부 태워버리거라.”운비는 아직도 궁금한 게 많은 눈치였지만 운양이 잽싸게 그녀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잊지 마. 귀인마마의 습관, 성향, 특징 이런 것들은 다 묻어버려야 하는 거야.”운비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잊지 않았어. 난 늘 기억하고 있다고. 마마의 일은 나한테도 중요한 일이야.”온소운은 그 말에 빙긋 웃으며 다시 자리에 앉아 찻잔을 들었다. 목단원은 넓지 않지만 햇살이 잘 들고 아늑한 공간이었다. 이런 곳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니 마음마저 한결 부드러워지는 것 같았다.하지만 이번 생에 아이를 낳지 않고 전생처럼 권세의 정점에 오르겠다는 것은 아마 무모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조정의 흐름과 권세의 실마리는 모두 그녀가 쥐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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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조용하던 목단원 앞마당이 갑자기 북적이기 시작했다. 한밤중, 수십 명의 궁녀와 내시들이 횃불을 들고 몰려드는 바람에 찰나의 정적은 짧은 불꽃처럼 사라졌다.그 무리의 선두에 선 이는 금실과 비단으로 짜인 화려한 옷을 입은 순빈이었다. 달빛과 불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자 화려하고 요염한 미모가 더욱 짙게 떠올랐다. 그녀가 목단원으로 들어서자 궁녀와 내시들이 전각을 빙 둘러싸며 포위했다.밖에서 이상한 기척을 감지한 운양과 운비가 허겁지겁 뛰쳐나왔다가 그 광경에 넋을 잃고 무릎을 꿇었다.“순빈마마를 뵙습니다.”두 사람의 순박한 태도에 순빈은 붉은 입꼬리를 비틀며 조용히 웃었다.“방금 어떤 자가 본궁께 고한 바가 있다. 운 귀인께서 병사 하나와 정을 나누었다 하여 내 친히 확인하러 온 것이다.”운양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마마, 누가 감히 그런 망언을…! 저희 마마께서는 조금 전 몸이 좋지 않아 일찍이 잠자리에 드셨습니다. 사사로운 정이라니요. 그런 대역죄를 저지르실 분이 아닙니다.”곁에서 순빈을 부축하던 해당이 그녀를 비웃으며 말했다.“그렇게 당당하다면 전각을 수색해 봐야겠구나. 그래야 귀인마마의 결백을 입증할 수 있지 않겠느냐?”운양은 서둘러 나서며 고개를 숙였다.“안 됩니다. 한밤중에 저희 마마의 침소를 수색하신다면 이 소문이 궁에 쫙 퍼질 것이고 그때가 되면 아무리 결백이 밝혀져도 뒷말은 피할 수 없을 겁니다.”짝!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순빈의 손바닥이 허공을 가르며 운양의 빰을 세차게 내리쳤다. 운양은 몸을 휘청이더니 이내 땅에 쓰러졌고 흐트러진 머리칼 사이로 붉게 달아오른 뺨이 드러났다. 운비는 눈물을 글썽이며 그녀를 부축했다.“운양아, 괜찮아?”운양은 이를 악물고 다시 무릎을 꿇었다.“제발 저희 마마의 결백을 믿어주십시오.”순빈의 눈빛은 차가웠다. 그녀는 굳게 닫힌 방문을 보며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문을 열거라.”내시들이 나서려는 순간, 운양은 다급하게 몸을 던져 문 앞을 막아섰다.“안 됩니다, 마마!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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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본궁은 본디 궁문을 나서지 않고 궁중 일에도 섣불리 개입하지 않는 성정입니다. 하지만 운 귀인은 본궁 처소에서 지내는 인물이지요. 순빈마마께서 이처럼 많은 인원을 이끌고 와 소란을 일으킨다면 본궁 또한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용비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으나 그 안에 담긴 뜻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녀는 궁중에서의 다툼을 피하며 살아왔지만 감히 누구도 그녀를 가벼이 보지 못했다. 그녀는 전하가 총애하는 수 정승의 딸이었기 때문이다.순빈도 그 점을 몰랐을 리 없었다. 그녀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시선을 돌려 곁에 선 해당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해당은 이내 나서서 그간의 사정을 간략히 설명했다. 용비는 그 말을 조용히 들은 뒤 의미심장한 웃음을 머금었다.“순빈마마께서는 오랜 세월 귀비마마를 보좌해 오셨지요. 그분의 기세를 따라 배운 바가 많으신 듯합니다.”그 말은 칭찬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는 한 후궁의 명예가 걸린 문제입니다. 하인들을 데려와 문을 부수고 진입하는 것은 무고한 이를 짓밟는 일일지도 모르지요. 마마께서 수색을 원하신다면 그에 걸맞은 근거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순빈은 콧방귀를 뀌듯 웃었다.“이 수색은 귀비마마의 명으로 진행되는 것입니다. 전하께도 이미 고한 상태니 곧 도착하실 겁니다. 그전에 그 패륜한 여인을 잡아들이는 건 당연한 도리이지요.”용비는 손에 쥔 손수건을 입가로 가져가 잠시 숨을 고르더니 눈을 날카롭게 치켜세웠다.“허나 전하께서는 정사로 바쁘시기에 후궁 일은 늘 중전마마를 통해 처리되어 왔습니다. 어째서 중전마마가 아닌 귀비께 명을 청하신 겁니까? 이는 후궁의 예법을 거스르는 일이 아닙니까?”“귀비마마께서는 중전마마를 대신해 육궁을 총괄하고 계십니다. 중전께 보고하지 않아도 하등 문제 될 일은 아니지요.”순빈은 단호하게 눈짓을 보냈고 이에 해당이 즉시 내시들에게 명령을 내렸다.“문을 부숴라.”쿵!무거운 문짝이 벽에 부딪히며 벌컥 열리더니 위태롭게 흔들렸다. 용비는 그 광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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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궁녀들은 모두 규율을 어기지 않기 위해 몸을 사렸다. 궁중의 법도를 어긴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알기에 누구 하나 섣불리 움직이는 이가 없었다. 그러자 순빈이 망설임 없이 앞으로 다가가더니 휘장을 열어젖혔다.“꺄악!”놀란 듯한 짧은 비명이 터졌고 온소운은 반사적으로 한 사람의 가슴에 파고들었다. 침상 위의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순빈을 바라봤다. 차디찬 시선이 마주 닿는 순간 순빈의 얼굴은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뒷걸음치다 그 자리에 엎드렸다.“전… 전하셨습니까…? 신첩은... 전하께서 이곳에 계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세요...”말을 잇는 그녀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몸도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은 그녀조차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밖에서 상황을 엿보던 명이는 깜짝 놀라 급히 온하연의 처소로 뛰어갔다.침상 위, 강규빈은 조용히 이불을 들어 온소운의 어깨에 덮어주었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운 뒤 낮은 목소리로 명했다.“물러가라.”그 한 마디에 순빈은 정신을 잃을 뻔했다. 그녀는 말문이 막힌 채 얼굴도 들지 못하고 허겁지겁 궁녀들을 이끌고 전각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그림자처럼 물러나는 그녀의 뒷모습에는 오만한 기세도, 의기양양한 자태도 남아있지 않았다.온소운은 뺨을 붉히며 조심스럽게 강규빈의 품에 기댔다. “이렇게 몸소 도와주시다니... 너무 감사합니다.”강규빈은 조용히 그녀를 내려다보더니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눈빛에는 분노 대신 연민이 깃들어 있었다. 온소운도 급히 몸을 일으키며 벗어둔 옷을 다시 입었다. 문밖에서 서둘러 달려온 운양과 운비는 그녀의 눈빛을 읽은 듯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물러섰다.강규빈은 처마 아래로 나섰고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도 그 존재감은 굳건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으나 거스를 수 없는 힘이 깃들어 있었다.“이게… 어찌 된 일인지 말해보거라.”그 한 마디에 순빈은 다시 땅에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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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가는 귀비가 연루될 것이고 전하는 분명 분노할 것이다. 그러니 어떤 말은 굳이 입 밖에 낼 필요가 없었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알 수 있으니까.강규빈의 눈빛은 깊은 어둠 속에 가라앉았다. 그는 온소운의 뺨을 손끝으로 조용히 쓸어내렸다. 이토록 세상 물정 모르는 투명한 여인이라니...강규빈은 문득 이토록 맑은 아이가 음습한 궁중의 더러움에 얼룩지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전각 안의 사람들은 모두 물러났고 노 내관은 옆방에서 의식 없이 쓰러져 있는 병사 하나를 조용히 처리했다.그 시각, 강규빈은 품에 안긴 여인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말했다.“걱정 말거라. 목단원의 경계를 더욱 삼엄히 지키게 할 것이다. 오늘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말이다.”온소운은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눈꼬리가 살짝 접히자 봄 햇살 같은 빛이 얼굴에 번졌다. 그녀는 손을 들어 강규빈의 미간을 부드럽게 쓸었다.“전하께서는 오늘 술을 드신 겁니까? 어찌하여 신첩 눈에는 전하가 그리도 쓸쓸해 보이는 걸까요?”강규빈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짐은 천하를 다스리는 군주다. 그런 짐에게 슬픔과 외로움 따위가 있을 것 같으냐?그리고 군주의 속을 엿보는 것은 반역에 준하는 죄다.”그녀는 입꼬리를 부드럽게 올리며 장난스러운 말투로 속삭였다.“그렇다면 전하께서는 신첩을 죽이겠단 말씀입니까?”그 말에 강규빈은 미간을 누그러뜨렸다. 그는 오랫동안 궐 안에서 이런 따뜻한 미소를 본 적이 없었다. 그의 마음에 드리운 먹구름이 조금씩 가시기 시작했다.그가 무언가 말하려는 찰나, 온소운이 발끝을 들어 조심스레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러나 그녀 자신도 그 행동에 놀란 듯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물러서려 했다. 그 순간, 강규빈이 긴 팔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껴안았다. 그의 품에 안긴 온소운의 얼굴은 장밋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강규빈은 흥미로운 듯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지난번 온천에서 술에 취했을 땐 지금처럼 수줍어하지 않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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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운양은 온소운의 기척을 살피며 정성스레 그녀의 시중을 들었다. 어젯밤의 일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그녀는 끝내 참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귀인마마, 어젯밤 일은 어떻게 미리 짐작하신 겁니까? 그리고 전하께서는 왜 그 자리에 계신 겁니까?”온소운은 구리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예전에 전하께서는 한 민가의 여인을 진심으로 사랑하셨어. 그 여인은 전하를 구하려다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고 어제가 바로 그 여인의 기일이었다.”그는 세상 누구보다 경계심이 깊어 함부로 술에 취하거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만 그 여인의 기일만은 예외였다. 귀비가 지금 강규빈의 가장 애틋한 존재일지 몰라도 그의 마음속 가장 깊고 아린 상처는 바로 그 민가 여인이었다.온소운은 전생에 오랜 세월 그의 곁에 머물며 비로소 이런 것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자신이 그 여인과 닮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더욱 확신이 들었다. 그가 반드시 자신을 찾아올 거라는 확신.그리고 지난밤의 계략은 온전히 성공했다. 온하연은 이제 더 이상 귀비에게 충심을 입증할 수 없게 되었다. 만약 그녀가 귀비와 지나치게 가깝게 지낸다 하더라도 결과는 같았을 것이다. 결국 도구로 쓰이다 버려졌겠지.온소운은 한낱 여인들의 다툼에 휘말려서는 안되었다. 그녀가 오르고자 하는 위치는 높았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가문의 뒷받침과 조정의 지지를 등에 업어야 했다. 그런데 그 첫걸음을 온하연이라는 졸속한 수가 망가뜨리게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한편, 연희궁에서 밤새 갇혀 있었던 온하연은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조용히 자신의 거처인 기상궁 장미원으로 돌아왔다. 이 소식을 들은 현비는 조용히 찻잔을 내려놓으며 낮게 웃었다.“같은 온씨 일가라도 저렇게 다를 수 있구나. 하나는 머리가 비상하고 다른 하나는 눈앞의 이익조차 분간할 줄 모르니. 하긴... 그 운 귀인은 본궁이 탐날 정도로 영리하긴 하지.”곁에서 시중들던 궁녀가 조용히 말했다.“전하께서 귀인마마를 총애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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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명이는 조심스레 온하연의 손끝을 감싸며 상처에 약을 발랐다. 하지만 온하연의 감정은 이미 격해져 있었기에 작은 자극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악!”온하연은 그 순간 참지 못하고 손을 번쩍 들어 명이의 뺨을 내리쳤다.“이 멍청한 계집, 조심하지 못해?”뜻밖의 손찌검에도 명이는 항의 한 번 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가 붉은 뺨을 감싸 쥔 채 멍하니 서 있자 홍 마마는 조용히 그녀를 내보냈다. 방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드리웠고 온하연은 분노로 가슴을 들썩이며 말했다.“도대체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냐? 나는 일개 답응이라 전하 얼굴도 뵙기 힘든데 귀비마마까지 등을 돌리셨어. 이제 정말 끝이라고.”홍 마마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한참 망설이더니 입을 열었다.“차라리 운 귀인께 도움을 구하심이…”“뭐라고?”온하연은 마치 귀신 이야기라도 들은 듯 황당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지금 나더러 온소운한테 구걸하라는 뜻이냐? 웃기지 말거라! 걔가 무슨 힘이 있다고.”홍 마마는 입을 다물었다.목단원에 내려진 전하의 하사품을 직접 봤다면 저런 소리를 못한 텐데...“오늘 사람 하나를 시켜 목단원 쪽의 소문을 좀 들었습니다. 어젯밤 전하께서 그곳에서 밤을 묵으셨답니다.”“그게 무슨 말이냐?”“밤새 신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더군요.”“뭐라고?”온하연은 놀란 나머지 벌떡 일어섰고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얘졌다.“말도 안 돼… 전하께서 진심으로 온소운을 총애하셨단 말이냐?”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전생의 귀비는 자신에게 정신병자라며 약을 먹였고 전하는 단 한 번도 그녀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이번 생은 다르게 흘러가는 것인가?전하는 누구보다 귀비를 아꼈기에 후궁의 침전에 머무르지 않았다. 여인을 맞아도 해가 뜨는 아침에 조양궁으로 오게 했고 일이 끝나면 다시 돌려보내는 게 원칙이었다.‘그런데 왜 이번 생은 달라진 걸까?’온하연은 눈앞이 빙빙 도는 듯했다.“귀비마마를 뵈러 갈 것이다. 지금 귀비마마는 분명 온소운을 증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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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온하연은 콧방귀를 뀌며 비웃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반성은커녕 오만과 조소가 가득했다.“내가 범인이라고 누가 그럽니까? 언니가 병사와 부정한 관계를 가졌다는 게 사실이라면 그건 언니 탓이지 저랑은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온소운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그녀를 응시했다. 그 눈빛은 사무치듯 차가워 말을 내뱉는 온하연조차도 순간 움찔하게 할 만큼의 힘이 담겨 있었다. 당황한 하연은 억지로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맞습니다. 내가 꾸민 일이라면 어쩔 겁니까? 이 궁이라는 곳은 원래 약한 자가 도태되는 법입니다. 어차피 언니도 오래 못 가 곧 무너질 운명이잖아요.”홍 마마가 다급히 그녀의 소매를 잡아당겼다.“그만하십시오. 어찌 되었든 귀인마마는 언니십니다. 어찌도 이리 각박하신 겁니까?.”홍 마마는 겉으로 온하연을 충고하는 척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맹씨 부인은 온소운의 모친인 대부인을 한 평생 경쟁 상대로 삼아왔다. 그러나 지금 온소운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면 하연의 앞길은 더 막막해질 것이 뻔했다.겨울이 다가오고 있지만 장미원에는 아직 연료 한 짐조차 도착하지 않았다. 이 궁궐은 냉정하고 현실적인 곳이었다. 나약한 자에게는 따뜻한 불조차 허락되지 않는다.온소운은 조용히 일어나 하연에게 다가섰다. 그녀는 차가운 손으로 하연의 턱을 들어 올렸다.“온하연, 네 어미가 너에게 가문의 흥망과 혈육의 연대를 가르친 적이 없는 모양이구나. 그렇다면 내가 대신 가르쳐 주지.”온하연은 매서운 눈으로 소운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언니 따위한테 배울 게 뭐가 있다고... 저는 곧 전하의 아이를 가질 거고 언니를 짓밟을 겁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고고한 척할 수 있는지 두고 보자고요.”찰싹!온소운의 손이 다시 한번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온소운!”하연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자 운양이 그녀를 제지했다. 홍 마마는 굳이 그들의 싸움을 말리지 않았다. 그동안 하연이 불러온 문제들을 생각해 보면 응징 당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기에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찰싹!또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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