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내 목표는 전하를 유혹해 후궁의 주인이 되는 것: Chapter 21 - Chapter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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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화

“예…”홍 마마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고작 열여섯밖에 되지 않은 아가씨인데 어째서 눈빛은 세월을 반쯤 삼킨 사람처럼 묵직하고 매서운 것인지.목단원으로 돌아온 온소운은 문턱을 넘자마자 이마가 살짝 욱신거렸다. 처음에는 온하연 때문에 그런 거라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귀인마마, 신경 쓰지 마세요. 몸까지 상하면 안 되잖아요.”소운은 눈을 내리깔며 조용히 말했다.“이틀 동안은 온하연의 동선을 빠짐없이 살피거라.”귀비를 믿을 수 없게 된 이상 분명 중전 쪽으로 기어들어갈 것이다. 그녀가 총애를 구걸하든 말든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다만 뒤틀린 수를 쓴다면 말이 달라질 것이다. 그때 운비가 차를 들고 들어왔다.“귀인마마께서 꼭 먹고 싶다고 하여 챙겨왔습니다. 하지만 밖에는 곧 눈이 올 것 같아 염려됩니다. 찬 것을 드시다 몸이 상하는 건 아닌지요.”소운은 가볍게 웃으며 찻잔을 입에 가져다 대었다. 혀끝에 닿는 청량한 감촉이 가슴속 더운 기운을 쓸어내려주었다. “전하께 드릴 배숙은 태화전에 잘 전달되었느냐?”운비는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보내긴 보냈습니다. 다만 제가 그곳에 갔을 때는 하필 귀비마마 측에서도 탕약을 올리는 중이었던 지라...”“그래서?”소운의 얼굴에는 은은한 미소가 감돌았다. 운비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대답했다.“분명 목단원에서 보낸 배숙이라 했는데도 궁인들은 그냥 옆에 두기만 했습니다. 반면 귀비마마 측에서 가져온 탕약은 곧장 전하 앞에 올려졌다 합니다. 제가 여쭤보니 전하의 뜻이었다 하더군요.”운비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젯밤만 해도 전하는 온소운을 아낌없이 총애했는데 오늘은 왜 이렇게 매정한 건지. 온소운은 담담히 웃으며 찻잔을 내려두었다.“나는 아직 아무것도 아니다. 귀비마마와 견줄 수는 없어. 우리가 더 조심해야 한다. 내가 전하의 총애를 받고 있다고 해도 자만해서는 안 돼.”운비는 자책하듯 앞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운양은 그런 모습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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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깊은 밤, 어둠 속에서 강규빈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촛불이 희미하게 깜박이는 가운데 한 사람의 그림자가 침전으로 바삐 들어섰고 이내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강규빈은 검은 비단 옷만 걸쳤던 터라 헐거운 옷깃 너머로 선명한 근육선이 드러나 있었다. 짙은 어둠 속 그의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다.“다 조사했느냐?”“예, 전하. 그날 당직이던 자는 장악궁의 문을 지키던 금군으로 누군가가 그에게 은전 한 줌을 찔러 넣으며 말했다고 합니다. 새로 총애 받는 운 귀인을 보고 싶다 하며 차라도 한잔할 수 있게 해달라 청했다더군요. 그 자는 금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문을 열어줬다고 합니다.”그 말에 강규빈은 눈을 가늘게 떴다.“게다가 그날 사용된 약은…”하인이 잠시 머뭇거리자 전하는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말하거라.”“연희궁에서 온 것입니다. 조제법은 간단하오나 사용된 약재들이 태의원에서 보관하던 것과 유사하였고 그중 일부는 연희궁에서 은밀히 받아 간 것으로 밝혀졌습니다.”강규빈의 시선이 어둠 속에서 날카롭게 번뜩였다.“역시...”강규빈의 눈빛이 서늘해졌다.“그리고… 사건이 일어나기 전 연 답응이 연희궁을 찾았다는 사실도 확인되었습니다.”“연 답응?”강규빈은 생소한 이름에 미간을 좁혔다.“온 대감 댁의 서녀이옵니다. 운 귀인의 이복 여동생이지요.”그제야 강규빈은 기억을 더듬으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래. 온 대감은 한꺼번에 두 딸을 들여보냈지.”그는 이마를 짚으며 입을 열었다.“이 일은 묻어 두거라. 절대 바깥에 새어나가서는 안 된다.”“명 받들겠습니다.”동이 트기 전, 강규빈은 다시 사람을 불렀다.“노 내관.”잠시 후 문이 열리더니 노 내관이 황급히 뛰어들어왔다.“부르셨습니까?”“지금 몇 시인가?”강규빈은 손으로 관자놀이를 누르며 물었다. “곧 정시가 되오니 조회까지는 아직 두 시진이 남았습니다.”강규빈은 피곤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노 내관.”“예, 전하!”“예전에 내가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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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온소운은 손수건을 꽉 쥐며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는 노 내관을 응시했다. 전생에 노 내관은 강규빈에 대한 충심이 지극한 자였다. 어떤 빈이나 귀인에게도 쉽게 치우치지 않았던 그가 오늘 밤 이토록 바삐 직접 찾아와 그녀에게 속내를 흘리듯 이야기를 전했다는 건 분명 강규빈의 명을 받아 움직였다는 뜻이다.궁중에서 총애 받는 주인을 좇아 아첨하는 것은 어느 궁인에게나 흔한 일이었다. 하물며 전하가 직접 하사한 용문 옥패까지 받았으니 이제 막 궁에 들어온 어린 소녀가 정신을 놓고 마음을 빼앗겨도 이상할 게 없었다.만약 그녀가 정말로 열여섯의 철부지였다면 지금쯤 눈을 반짝이며 모든 것을 털어놓았을 것이다. 속에 꾹 담아왔던 야망까지 모조리 얘기했을 테지.온 대감 댁은 아들이 없으나 병권을 손에 쥐고 있었기에 쉽게 무너질만한 가문은 아니었다. 그녀가 기억하기로 전생의 이 무렵, 야심으로 가득 찬 서 귀비의 부친과 오라비가 은밀히 그녀의 아버지에게 접촉한 바 있었다. 안목이 날카로운 강규빈이 이런 움직임을 모를 리 없었다.한쪽은 나라를 뒤흔드는 권신과 장수의 혈통이고 그 딸은 독점적으로 전하의 총애를 받고 있는 사람이었다. 다른 한쪽은 외척의 세는 약하나 수도 방위를 맡은 군권을 가진 대군이었기에 전하는 둘이 손잡는 것이 달갑지만은 않았다.그녀는 알고 있었다. 지금 자신은 단지 왕의 총애를 받는 여인이 아니라 온 대감 댁의 대표이자 나아가 온씨 집안 전체의 뜻을 대변하는 사람으로서 시험대 위에 서 있다는 것을. 강규빈은 그녀를 통해 온 대감의 의도를 떠보려는 심산인 게 분명했다.서 귀비가 그녀를 모함한 것은 어찌 보면 사사로운 일에 불과했지만 만약 온소운이 그녀가 저지른 일을 파헤치겠다고 나선다면 왕의 의심을 살게 뻔했다. 그는 아마 온소운이 권력을 노리고 있을 거라 판단할 것이다.그 생각을 마치자 온소운의 등은 식은땀으로 젖어버렸다. 어떻게 해야 이 음험한 시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녀가 답을 찾지 못한 채 침묵하고 있자 노 내관이 다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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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온소운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강규빈은 참으로 알 수 없는 사내였다. 자신을 부른 이유도 말해주지 않으니 그의 속뜻을 짐작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혹시 아직도 어제의 일을 의심하고 있는 건가…?’이것은 단순히 후궁 사이의 싸움이 아니었다. 궁 밖 가문들의 동향, 그리고 전하의 의심. 그 모든 것을 고려해야 하는 숨 막히는 줄다리기였다.‘이 일은 반드시 아버지를 다잡아야 해. 더 이상 귀비마마의 외가와 가까이해서는 안 돼.’그날 아침, 온소운은 중전께 평안을 드리기 위해 이른 시각부터 몸단장을 마쳤다. 생각보다 많은 후궁들이 먼저 도착해 있었고 그녀가 모습을 드러내자 시선들이 일제히 온소운에게로 쏠렸다. 그녀를 보자마자 단아하게 앉아 있던 서 귀비가 입꼬리를 비꼬듯 들어 올렸다.“귀인마마의 위세가 대단하군. 우리 모두를 이렇게 기다리게 하다니.”온소운은 미간을 살짝 좁히며 조심스레 나아가 중전 앞에 엎드렸다.“중전마마, 신첩은 결코 일부러 지각한 것이 아니오나 결과적으로 예를 어긴 것은 사실이옵니다. 바라건대 마마께서 너그러이 용서해 주십시오.”중전은 손에 들린 비단 손수건으로 조용히 기침하며 입을 열려 했으나 서 귀비가 먼저 말을 끊었다.“궁중에서 가장 꺼려야 할 일이 바로 총애에 도취해 오만해지는 것이지요. 설마 귀인마마는 이런 사과 한 마디면 끝날 일이라 생각하신 건 아니겠지요?”그 자리에 있던 다른 후궁들은 감히 나서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위 귀인을 비롯한 몇몇은 얼굴빛이 더욱 어두워졌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들은 입궁 이후 단 한차례만 부름을 받았을 뿐 그 이후에는 전하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 그런데 온소운은 입궁하자마자 단 하룻밤 동안 무려 여섯 번이나 전하와의 잠자리를 가졌으니 누가 그녀를 곱게 보겠는가?그때, 한쪽에 앉아 있던 현비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들으니 그제는 전하께서 귀비마마를 조양궁으로 부르셨다지요. 허나 별일 없이 되돌아오셨다던데. 급한 국정이라도 있는 줄 알았건만 사실은 귀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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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중전은 다리 위에 놓인 여의옥을 어루만지며 서 귀비를 흘겨보았다.“서 귀비는 지금 전하의 마음까지 좌지우지하고 싶다는 뜻인가? 본궁의 기억이 맞다면 귀비는 이런 계책에 누구보다 능한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처음 전하를 유혹했을 때도 모두 계산된 일이었나?”서 귀비는 눈을 가늘게 뜨며 음습한 눈빛으로 중전을 노려보았다. 중전은 아무렇지 않게 시선을 온소운에게로 옮겼다.“자, 이 바닥은 차니 그만 일어나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서서 하거라.”“감사하옵니다, 마마.”온소운은 정중히 허리 숙여 인사한 뒤 조심스레 일어섰다. 그녀의 얼굴에는 맑고 투명한 미소가 떠올랐고 그 눈빛에는 티끌 하나 없이 해맑은 순수함이 비쳤다. 중전은 그 모습에 순간적으로 넋을 놓고 말았다.이 후궁이라는 늪에 몸담은 지 오래되었지만 이토록 속내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밝은 웃음은 오랜만에 마주한 것이었다.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온소운을 바라보았다.봉의궁에서 물러나기 전, 온소운은 운양에게 명하여 춘의 나인을 찾아가라고 했다.“춘의 나인, 평안하신지요? 저희 귀인마마께서 중전마마를 위해 정성껏 만든 매실정과를 보내오셨습니다. 부디 받아주시길 바랍니다.”춘의는 중전의 상태를 제일 잘 아는 인물이었다. 매실정과를 드시고 난 이후 중전의 기운이 한결 나아진 것을 알고 있었기에 살짝 미소 지으며 그것을 받아들었다.“귀인마마께 감사 인사를 전해야겠군요.”정과가 중전의 침전으로 전달되자 그녀는 잠시 멈칫했다.“정성이 깊구나. 강남에서 공수한 매실정과라니... 귀인의 정성은 본궁이 꼭 기억하마.”곁에서 시중들던 춘의가 입을 열었다.“소첩 생각으로는 귀인마마에 대한 전하의 총애가 깊어지며 몸을 사리려는 듯합니다. 위 귀인도 밀려났으니 적이 많아진 셈이지요. 그러니 마마께 의지하고자 하신 걸지도 모릅니다.”중전은 가느다란 숨을 내쉬며 침상에 몸을 기대었다.“아니야. 그 아이는 그런 잔재주를 부릴 아가씨가 아니다. 만약 진짜로 영리했다면 병약한 본궁에게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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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운비의 외침에 온소운은 손에 들고 있던 붓을 내려놓았다. “무슨 일이냐?”때마침 운비가 방 안으로 들어오며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방금 작은방 쪽에서 발소리가 들리기에 누가 몰래 숨어 있는 줄 알았는데 가까이 가보니 고양이더라고요.”운비는 장난기 어린 눈으로 웃으며 온소운이 즐겨 먹는 달콤한 차를 조심스레 내려놓았다.“귀인마마, 먼저 이걸 드셔보세요. 곧 봉란춘은차가 도착할 겁니다. 이걸 먹고 나면 속이 시원해져서 무슨 일이든 차분하게 대처하실 수 있을 거예요.”온소운은 그녀의 천진난만한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그러고는 방금 붓으로 쓴 글들을 화로에 넣고 태운 뒤 자리에 앉아 차를 한 모금 머금었다. 차갑고 달콤한 향이 입안에 감돌자 정신이 맑아지는 듯했다.그때 눈발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운양이 눈을 맞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온소운이 차를 마시고 있는 것을 보자 운비 머리를 콕 찌르며 말했다.“운비야, 또 귀인마마께 차가운 걸 드린 것이냐? 이렇게 추운 날에 속 버리면 어쩌려고 그런 거야?”운비가 억울한 듯 입을 삐죽 내밀자 온소운이 그녀를 감싸주었다.“내가 먹고 싶어서 그런 것이다. 운비는 아무 잘못 없어.”운양은 마지못해 웃었다.“이제 갈 시간이 됐습니다. 밖에서 봉란춘은차를 기다리셔야죠.”온소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몸속으로 차가운 기운이 스며드는 듯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운양이 외투를 가지러 간 사이 그녀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차가운 눈발 속 얼음 알갱이들이 얼굴에 부딪치자 오히려 정신이 맑아지는 듯한 기분이었다.그 모습을 본 운양은 황급히 외투를 들고 다가와 그녀의 어깨에 덮어주었다.“바람이 찹니다. 고뿔에라도 걸리면 어쩌시려고요.”마침내 봉란춘은차가 목단원 앞에 당도했고 온소운은 조용히 그 마차에 올라탔다. 마부가 고삐를 당기자 고운 종소리가 궁궐 회랑을 따라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그 소리는 바로 옆 전각에 머물던 온하연의 귓가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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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그럼 네 말대로 하자구나. 어서 아버지께 서신을 쓰거라.”조양궁에 도착한 온소운은 예법대로 목욕을 마치고 얇은 침의로 갈아입은 뒤 조용히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조양궁은 그녀의 목단원보다도 훨씬 더 따뜻했다. 온소운은 맨발로 침상 끝에 앉아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전생, 그녀가 황 귀비 자리에 올랐을 때 전하의 명으로 혈적자(血滴子)에게 암살을 당할 뻔한 일이 있었다. 간신히 꾀를 써 살아남은 뒤에야 겨우 알게 된 사실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그녀의 아버지가 병권을 모두 진국공에게 넘기고 반정을 꾀했다는 것이었다.그때 이미 반역의 수레바퀴는 굴러가고 있었고 그 모든 걸 속수무책으로 감추고 있던 이들 사이에서 그녀는 혈적자의 칼에 숨이 끊어질 뻔했다.그 시절 서 귀비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온소운은 왕자의 생모가 되었으며 온 대감 댁 역시 고분고분했다. 진국공은 그녀의 아들을 왕위에 앉히고 자신의 손녀를 중전으로 삼아 온 천하를 장악하는 계략을 세웠었는데 거사를 앞두고 강규빈은 온 대감 댁과 진국공 일가를 모조리 멸문시켜 버렸다. 애당초 강규빈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고 기회를 엿보기 위해 조용히 판을 깔고 있었던 것이다.아버지의 반역죄가 드러나며 자신의 목숨은 끝이라고 생각한 순간 왕이 갑자기 붕어하게 되었고 그 덕분에 겨우 살아남아 자신의 아들을 옥좌에 올릴 수 있었다.하지만 이번 생은 전혀 달랐다. 자식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온하연이었고 그녀는 단지 미색으로 전하를 홀릴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다시 황 귀비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하에게 온씨 집안과 선을 긋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어야 했다.그때, 이쪽으로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점점 커지자 그녀는 가차 없이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폭풍처럼 밀려오는 통증과 함께 순식간에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잠시 뒤, 전각 문이 열리더니 강규빈이 모습을 드러냈다. 온소운은 자신의 명품 연기를 펼치기 위해 창가에 서 있었다. 얇은 옷자락은 그녀에 의해 가늘게 떨렸고 어깨를 축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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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온소운은 조용히 고개를 떨구었다.“저는 참 복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전하의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저의 어머니께서는 이런 복을 한 번도 누리지 못하셨지요.”그 말에 강규빈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온소운은 조용히 그의 품에 머리를 묻으며 말을 이었다.“아버지께서는 어머니를 마음에 두신 적이 없습니다. 집안에서도 저희 모녀는 늘 소외된 존재였지요. 저는 입궁한 뒤에도 같은 삶을 반복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전하를 만나게 되었고 또 저를 이리 아껴주시니 이번 생에 더는 바랄 것이 없습니다.”“오늘 그렇게 상심했던 것이 그 일 때문이란 말이냐?”강규빈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의 표정을 읽을 수는 없었다. 물론, 그 일 때문에 마음이 무거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앞에서 말 한마디 잘못 내뱉었다가는 강규빈의 의심을 키울 것 같아 함부로 진심을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오늘… 고향에서 서신이 왔습니다.”그녀의 목소리는 작게 떨렸다.“아버지께서 술에 취해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했다더군요. 아마 어머니께서 아들을 유산했다는 사실을 떠올리신 것 같습니다. 대감댁의 대를 잇지 못했다는 것에 분노하신 아버지는 어머니의 처소로 가 마구 화풀이를 하셨다는군요.”그건 거짓이 아니었다. 전생에 실제로 있었던 일이기에 그가 사람을 보내 알아본다 해도 허점은 없을 것이다.평소에는 점잖고 문무를 모두 겸비한 장수처럼 보였던 온태안이 그리도 몰인정한 사람이었다니... 강규빈은 예상 밖이라고 생각했다.온소운의 눈동자에는 잔물결 같은 슬픔이 어렸다.“아버지는 한 번도 저를 자식이라 여긴 적이 없습니다. 어머니와는 수 년째 말도 섞지 않으시고 얼굴 한 번 보지 않으셨지요.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어머니를 괴롭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강규빈은 조용히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눈가에는 아직도 물기가 남아 있었고 그는 고요하게 고개를 숙여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입술로 닦아주었다.“궁에 들어온 이상, 넌 내 사람이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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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온소운은 부끄러움에 몸을 한껏 웅크리며 그의 품에 파고들었다.“전하, 정말… 못되셨어요…”방금 전 강규빈의 의심을 한 겹 벗어냈다는 안도감에 잠시 숨을 돌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이 평온한 건 아니었다.그는 본디 의심이 많은 왕이었다. 필요할 때는 스스럼없이 칼까지 들이미는 사내라 함께 있으면 위험하다는 걸 알지만 그가 침상 위에서 보여주는 압도적인 능력은 그녀를 헤어 나올 수 없게 만들었다.전생의 그녀도 다른 후궁들처럼 진심으로 강규빈을 사랑하고 갈망했다. 그와 함께라면 그 어떤 고난도 모두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강규빈의 칼날 아래에서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사랑할 때는 세상을 다 내줄 듯 다정하게 굴다가도 마음이 식으면 가차 없이 내던졌다.그는 의심이 많은 것만큼 남자로서의 허영도 컸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강규빈의 목을 끌어안고 부드럽게 속삭였다.“전하… 저는 아직도 원하고 있어요…”그 말을 듣자 강규빈의 눈빛이 짙어졌다. 온소운이 유연하고 탐스러운 몸을 그의 품에 밀착한 채 간드러진 말을 토해내자 이성으로 다스리던 왕의 인내가 완전히 무너져내렸다.“좋다.”새벽이 환히 밝았을 무렵, 비로소 노 내관이 하인들을 데리고 전각 안으로 들어왔다.“무려 일곱 번이나 하시다니... 이런 밤은 또 처음이구나…”강규빈이 몸을 일으킬 때 즈음 온소운은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검고 부드러운 머리칼이 베개 위에 흘러내렸고 그녀의 피부는 부드럽게 빛나고 있었다. 강규빈은 옷깃을 여미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는 조심스레 그녀의 볼을 쓰다듬더니 천천히 몸을 숙여 그녀의 입술에 조용히 입을 맞췄다. “지금 귀인을 깨우지 말거라. 귀인이 일어나면 목단원으로 돌려보내면 된다.”“예.”노 내관은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다른 후궁과 밤을 함께 지낸 것만도 이례적인데 조양궁에서 잠을 자게 하는 것은 처음 보는 일이었다. 온소운이 후궁의 판을 뒤집을 존재가 될 거라는 것을 그는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해가 중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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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온소운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무슨 일이냐? 왜 그리 허둥대는 거야?”명 영감은 거칠게 숨을 삼켰다.“방금 태화전에서 급보가 왔습니다. 전하께서 몸이 불편했는지 실신하셨답니다!”온소운은 멍하니 그 자리에 굳은 듯 서 있었다. 분명 전생에는 발생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전하가 쓰러졌다는 것은...“지금 전하께서는 어디에 계시느냐?”“조양궁으로 옮겨졌답니다. 태의들이 전원 회진 중이며 중전마마와 귀비마마도 함께 계십니다.”온소운은 더는 묻지 않고 곧바로 운비와 운양을 데리고 조양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 도착하자 이미 여러 후궁들이 밖에 줄지어 서 있었다.본래라면 중전이 맨 앞자리에 있어야 했지만 그 자리는 이미 서 귀비가 차지하고 있었다. 중전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으나 이 자리에서 괜한 갈등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묵묵히 참고만 있었다. 그녀는 연한 비단 손수건을 꼭 쥔 채 걱정 어린 시선으로 물었다.“장 태의, 전하의 병세는 어떠하냐?”태의는 중전를 향해 예를 갖추려 했으나 서 귀비가 먼저 말을 끊었다.“그냥 이 자리에서 말하거라. 굳이 번거롭게 굴지 말고.”“귀비마마, 전하께서는 기혈이 막혀 있었고 오늘 조정에서 노기를 억누르지 못해 실신하신 듯합니다. 다행히 맥상만 보면 큰 위중은 아닙니다. 허나…”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태의는 서둘러 덧붙였다.“며칠 동안 요양하신다면 곧 회복될 겁니다. 저희 태의원에서 교대로 전하를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서 귀비는 애달픈 눈으로 강규빈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중전이 나서서 입을 열었다.“그렇다면 전하께서는 우선 몸부터 잘 추슬러야 하겠군요. 당분간은 후궁들이 교대로 병시(侍疾)하는 게 좋겠습니다.”그 말에 후궁들은 일제히 허리를 숙이며 응했다.“중전마마께서도 몸이 성치 않으시니 이런 때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대신 이 몸이 직접 전하를 정성껏 돌보겠습니다.”서 귀비는 원래부터 강단 있는 인물이라 굳이 불미스러운 싸움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그렇게 하시죠.”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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