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경표는 잠시 침묵한 뒤 입을 열었다.“태호야, 자네는 의사야.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죽어 가는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해 왔지. 나도 자네가 살인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네.”“자네가 옥경이를 죽이려 한다면, 그건 옥경이에게 반드시 죽어야만 할 이유가 있다는 뜻이겠지. 나는 자네를 원망하지 않겠네.”“그 말씀을 들으니 마음이 놓이네요.”윤태호는 성큼성큼 백씨 가문 저택을 떠났다.그가 사라지자 경호원 두 명이 다시 백경표의 곁으로 돌아왔다.백경표가 물었다.“너희는 백옥경이 무슨 대악무도한 일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느냐?”두 경호원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모릅니다.”“후우.”백경표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평생 전장을 누비며 살아왔거늘, 어쩌다 저런 몹쓸 손자를 두었단 말이냐. 집안의 불행이야, 집안의 불행이라고.”...윤태호는 백씨 가문을 떠난 뒤 다시 윤씨 가문으로 돌아왔다.해 질 무렵.맑았던 하늘이 어느새 잿빛으로 변했고, 짙은 먹구름이 뒤덮였다.검은 구름은 지붕을 짓누르듯 낮게 내려앉았다.해정 전체가 숨 막힐 듯한 분위기에 잠겼다.마치 폭풍우가 몰아치기 직전처럼 긴장감이 감돌았다.저녁 6시 반.날은 이미 어두워졌다.윤씨 가문 일행이 출발 준비를 마쳤다.윤영보와 그의 어머니가 대문까지 나와 배웅했다.“영보야, 우리가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복수할 생각은 하지 마라. 남은 인생을 잘 살아야 한다.”윤정욱이 말했다.윤무위도 당부했다.“영보야, 네 어머니 잘 모셔라.”윤태호는 윤영보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넌 오늘 밤 내가 죽기를 기도하는 게 좋을 거야. 내가 살아 돌아오면 마귀 훈련소에서 몇 년은 더 굴러야 할 테니까.”뜻밖에도 윤영보는 웃었다.“형, 난 형이 살아 돌아올 거라고 믿어요.”윤태호가 말했다.“정말 살아 돌아오면 네 장가부터 보내 줄게. 셋째 숙모 같은 여자한테. 그때는 네가 아주 제대로 고생하겠지.”윤영보의 입꼬리가 씰룩였다.“가시죠.”윤정욱이 두꺼운 코트를 걸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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