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쟁보다 위험한 사랑: Chapter 61 - Chapter 70

280 Chapters

제61화

화가 난 상태로 국공부를 떠났던 유봉진은 마차에 오르자마자 문발을 걷어 올리더니 점점 멀어지는 국공부의 대문을 바라보았다.그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이 답답했던 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잠시 멈추거라.”진무가 즉시 마차를 멈추고 뒤돌아보며 말하려고 할 때 유봉진이 문발을 확 걷으며 마차에서 내려오는 것이 보고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어디 가시려고요?”유봉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긴 다리를 성큼성큼 내디디며 근처 나무 아래로 걸어가서는 멀리 떨어져 있던 국공부의 대문을 응시했다.‘겉보기엔 여전히 당당해 보이나 추소하의 사건이 있었으니 이제 얼마 못 버티겠지. 추월녀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거고.’“대군 나리.”진무가 다가와 낮게 속삭였다.“추 장군 남매가 무왕부에서 있었던 일을 알아보라고 할까요?”“무왕부는 경비가 삼엄하다. 만에 하나 내가 보낸 사람이 넷째 형님에게 잡혀 아바마마께 끌려가기라도 한다면 내가 권력에 눈이 멀어 형님을 해하려 했다는 죄를 뒤집어쓸 수도 있어.”무왕과 원수지간이라는 사실을 황제도 알고 있었으나 평화를 깨뜨리는 것을 황제가 원치 않아서 억지로 평화를 유지해야 했다.“소인의 생각이 짧았습니다.”하지만 유봉진의 안색이 안 좋은 것을 보고 진무는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대군 나리... 혹 월녀 아씨가 정말로 무왕 대군에게 의지할까 봐 걱정하시는 겁니까?”“넷째 형님이 한때 내 여인이었던 그녀를 받아들일 것 같으냐?”유봉진이 코웃음을 쳤다.“그야... 모르는 일이지요.”진무는 자신의 말이 귀에 거슬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나 사내대장부로서 상전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월녀 아씨께서는 워낙 천하절색인지라...”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봉진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가 진무의 얼굴을 강타하자, 진무는 겁을 먹고 서둘러 해명했다.“오해하지 마십시오, 대군 나리. 소인이 월녀 아씨를 마음에 품었다는 뜻이 아닙니다.”유봉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진무가 계속해서 말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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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화

3일 후, 동주의 황자가 도착했으나 아직 성내로 들어오진 않고 성 밖 행관에 머무르며 동릉 황실의 영접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런데 황후가 뜻밖에도 추월녀에게 동주 황자와 동행한 선우유미를 영접하라는 명을 내렸다.“또 선우 씨라고?”자운선은 선우라는 말만 들어도 치가 떨렸으나 추월녀는 웃으며 말했다.“선우원영이 자랐던 대진이 동주와 가까워서 동주 사람일지도 모르지. 같은 성씨가 뭐가 어때서?”그때, 추월녀가 타고 있던 마차가 행관 앞에 멈췄다.추월녀가 내리려고 할 때 가까운 곳에 세워진 다른 마차 앞 호리호리한 사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무왕 대군?”무왕을 알아챈 자운선이 본능적으로 피하려고 했다.추월녀도 살짝 당황했으나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무왕에게 다가갔다.“대군 나리께서 어찌...”휙!갑자기 행관 안에서 비수가 추월녀를 향해 날아왔다.그녀가 눈살을 찌푸리려 할 때 검은 소매가 스쳐 지나며 ‘팍’ 소리가 나더니 비수가 그대로 멀리 있던 나무줄기에 박혔다.추월녀는 유상무에게 살짝 끌려갔으나 치마가 그만 발에 걸린 바람에 어쩌다 보니 그의 품에 안기게 되었다.때마침 도착하여 이 장면을 목격한 유봉진과 진무는 어안이 벙벙하여 잠시 말문을 잇지 못했다.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간 유봉진이 씩씩거리며 목청 높여 소리쳤다.“이 뭐 하는 짓입니까?”이미 중심을 잡고 유상무의 품에서 벗어나려던 추월녀가 유봉진의 말소리를 듣더니 다시 유상무의 품을 파고들었다.그러자 유상무의 눈동자에는 알 수 없는 희열이 스쳤다.‘절세미인이 스스로 내 품에 안긴다고? 이런 기회가 낸데 차려질 수가.’그는 추월녀를 더 단단히 끌어안았다.“월녀야,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아는 것이냐?”유봉진이 추월녀의 팔을 잡아당기며 유상무의 품에서 끌어냈다.“이거 놓으십시오. 아프단 말입니다.”추월녀가 유봉진을 쏘아보며 말했다.“제가 무슨 짓을 하든 진왕 대군 나리께서는 알 바 아니지요. 좀 만지지 마세요!”“너!”“너는 이제 월녀와 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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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화

유상무를 알게 된 후 처음으로 화난 그의 모습이었다.비록 유상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으나 그가 화가 났다는 것을 추월녀는 알아챘다.특히 마지막에 던진 말에 어린아이 같은 말투가 담겨있어서 그리 생각할 수밖에.‘무슨 상관이냐니. 이것은 고귀하고 오만한 무왕 대군이 할 법한 말이 아니야.’행관 밖의 소란 때문에, 안에 있던 사람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무왕이 안으로 들어서자 동주에서 온 셋째 황자와 일곱째 공주가 직접 객실에서 나와 맞이했다.그러자 행관 안은 순식간에 활기가 넘쳤다.행관 밖, 유봉진이 추월녀를 바라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월녀야, 여기는 무슨 일로 온 것이냐?”‘조금 전 넷째 형님이 화냈으니, 월녀의 쟁취 전에서 내가 우위를 점한 셈이군.’이렇게 생각한 유봉진은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황후 마마의 명으로 일곱째 공주를 영접하러 왔습니다.”말을 마친 추월녀가 유봉진 뒤의 행렬을 흘끗 쳐다보았다.“대군 나리께서는 셋째 황자를 맞이하러 오신 거군요.”‘유봉진을 보냈으면서 무왕은 왜 여기에 있는 것이지?’추월녀가 행관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는데 알고 보니 무왕과 셋째 황자인 선우혁이 오랜 벗이었던 것이었다.‘벗이 필요 없어 보이는 무왕에게 오랜 벗이 있다니. 알고도 모를 일이야.’그리고 추월녀는 드디어 동주에서 온 셋째 황자 선우혁을 보게 되었다.후리후리한 키에 준수하기까지 해서 우아한 품격이 느껴졌고, 무왕처럼 차갑지도, 진왕처럼 말이 많아 보이지도 않았다.조용해 보이는 것이 마치 인간 세상에 내려온 듯한 신선이 같았고, 표정 또한 그렇게 보였다.“이런 사내가 네 취향이냐?”넋을 잃고 선우혁을 바라보던 추월녀를 쏘아보며 유상무가 콧방귀를 뀌었다.“역시 빼어난 외모를 좋아하나 보군.”유상무의 말을 들은 추월녀는 어이가 없었다.‘무왕이 지금 질투하는 건가? 대마왕의 질투는 피하는 게 상책이야.’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름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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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화

그러자 바닥에 금이 가면서 먼지가 일었다.‘내공이 보통이 아니네.’그 모습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자운선은 추월녀가 다칠까 봐 황급히 보호하려 했다.관자놀이가 약간 찌릿한 느낌이 들었으나 추월녀는 재빨리 자운선을 제 뒤로 끌어당겼다.‘역시 사내들은 골치가 아파. 여인의 치마폭에 빠지는 것이 본능인데 나더러 어쩌라고?’선우유미의 채찍을 바라보던 그녀는 갑자기 초롱초롱한 눈을 깜빡이더니 입꼬리를 치켜올렸다.“오해입니다, 일곱째 공주님. 조금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저도 잘 몰라요. 무왕 대군과 진왕 대군 사이에 어떤 말다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저는 진왕 대군과 아는 사이고 또 여러모로 복잡한 사정이 있어서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건 그렇고 일곱째 공주님의 채찍은 어떤 재질로 만든 것인지 참으로 아름답네요. 이렇게 독특한 채찍은 처음 봅니다.”확실히 검은빛으로 물든 선우유미의 채찍은 붉은 기운이 느껴져서 희귀한 보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신기하게도 추월녀의 칭찬에 분노가 조금 사그라든 유미공주가 채찍을 쓰다듬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사자의 가죽으로 만든 것이다. 그놈이 어찌나 사나운지 우리 동주 용사들이 사흘 밤낮을 싸워가며 겨우 잡은 것이야.”“이리 귀한 것을 하사받은 것으로 보아 공주님은 동주에서도 각별한 사랑을 받으시나 봅니다. 다른 공주들에게는 이런 것이 없겠네요?”그 말에 추월녀의 입이 귀에 걸렸다.“그 무슨 당연한 말을. 아바마마께서는 나를 가장 아끼신단다.”반짝이는 선우유미의 눈을 바라보며 추월녀가 말을 이었다.“참으로 부럽습니다. 주변에 무왕 대군 같은 벗, 공주님을 예뻐해 주시는 셋째 황자님,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주님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폐하가 계시니.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저와는 다르네요.”눈을 내리깔며 슬픔에 잠겨 있던 추월녀를 바라보며 선우유미는 저도 모르게 가슴 한쪽이 아려왔다.“너... 너무 슬퍼하지 마라. 널 아껴주는 사람도 분명 나타날 거다. 그, 내가...”선우유미는 위로할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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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화

드디어 동주의 셋째 황자와 일곱째 공주와 같은 귀빈을 접대하는 동경궁에 무사히 도착했다.추월녀는 반나절 동안 선우유미와 놀아주느라 기진맥진한 상태였다.‘이 여인은 지치지도 않네.’‘아씨, 일곱째 공주는 단순해 보여서 재미있는 사람 같아 보여요.’애초에 살짝 걱정하긴 했으나 선우유미가 제 상전과 벗이 된 것을 보고 자운선은 덩달아 기뻤다.그러자 추월녀가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놀기 좋아하고 성질이 급할 뿐 본성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나 황족 출신이니...”“하면 아씨께서는 공주와 벗이 될 마음이 없으신 겁니까?”자운선이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아씨는 지난 몇 년간 오직 유봉진을 위해 살아와서 진정한 벗이라 할 만한 사람은 없었지. 해서 이번에야말로 벗이 생겼다고 생각했건만.’“나와 공주 사이에 무왕이라는 깊이 박힌 가시가 있는 한 공주와 진정한 벗이 되는 일은 없을 거야.”추월녀는 눈을 질끈 감고 마차 벽에 기대어 잠시 휴식을 취했다.“무왕 대군이 나를 포기하거나 아니면 공주가 무왕을 연모하지 않으면 모를까.”“포기한다고요?”자운선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으나 추월녀는 여전히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네가 보기에는 무왕 대군이 진심으로 나를 좋아하는 것 같으냐?”무왕의 생각을 알 수 없어서 자운선은 답하지 못했다.“내게 일부러 접근하는 것으로 보아 날 이용하려는 것이 틀림없어.”추월녀는 무왕에 대해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들을 수도 있으니.“오라버니가 오늘 밤 궁중 연회에 참석하니까 피해를 보지 않도록 네가 옆에서 많이 도와주라.”오라버니는 고지식한 데다 최근에 불행한 일까지 겪어서 연회에 홀로 보내는 것이 추월녀는 매우 걱정되었다.‘세심한 성격의 자운선이 오라버니의 눈과 귀가 되어준다면 안심이 되지.’자운선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염려 놓으십시오, 아씨.”그날 밤, 혼자 남게 된 추월녀는 해가 진 후에 할아버지를 찾아갔다.“국공 나리의 건강은 나날이 악화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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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화

달빛 아래, 물처럼 고요하나 위풍당당한 기개가 하늘을 찌르고 있던 한 사내가 나무 위에 앉아 가지에 걸친 다부진 다리를 흔들거리고 있었다.길고 탄탄한 다리를 보며 추월녀의 감탄했으나 한 걸음만 내디디면 자기 앞에 다다를 것 같아서 순간 마음이 무거웠다.달빛에 비친 가면은 차가운 빛을 반사했다.‘못 본 척할까?’하지만 정말로 모르는 체한다면 그가 문을 박차고 쳐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사내와 여인 단둘만이 있는 밤이니 집안보다는 그래도 밖이 더 안전하긴 했다.창문을 닫고 얇은 겉옷을 걸친 뒤에 밖으로 나온 추월녀는 그가 앉아 있던 나무 아래로 걸어갔다.“이리 늦은 시각에 국공부에는 어인 일이십니까, 무왕 대군 나리.”그가 높은 나무에 앉아 있던 탓에 추월녀는 목을 뒤로 젖히며 말하느라 너무 힘들었다.유상무가 눈을 반쯤 감은 채 그녀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너는 내 여인인데 담소도 나누지 못한단 말이냐?”“아직 출가하지도 않은 여인에게 너무 무례하신 것 아닙니까? 말을 가려서 하십시오.”말이 떨어지자마자 찬 기운이 몰려오는 게 느껴졌다.눈 깜짝할 사이에 사내는 추월녀의 앞을 가로막으며 그녀에게 비추던 달빛을 차단했다.사내의 그림자에 휩싸여 추월녀는 마치 옥에 갇힌 듯한 느낌이 들었다.‘제 마음대로 행동하고 타인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으니, 무왕이 아니라 마왕이야. 대마왕.’“여인이 혼자 있는 밤에 이리 찾아오시면 어떡합니까. 혹 다른 이의 눈에 띄기라도 한다면 국공부의 명성에 금이 갈 수도 있습니다.”“또 그놈의 국공부인 것이냐!”이런 말을 하도 많이 들었던지라 유상무는 진절머리가 났다.“잘 아시면서 어찌하여...”“기분이 안 좋아서.”평소에도 유상무는 기분이 안 좋을 때면 스스로 즐거운 일을 찾아 나서곤 했었다.유상무의 말을 들은 추월녀는 머리가 아팠다.“기분이 안 좋다고 해서 마음대로 행동하시면 어찌합니까?”“내가 마음대로 행동했다면 너와 난 이 순간 어딘가에서 뒹굴고 있었겠지.”“무왕 대군 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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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화

그 말에 추월녀의 마음이 싸늘해졌다.무왕이 혈기 왕성한 나이였던 17, 18살에 있은 일이었다.비록 추월녀도 그때는 어렸으나 백마를 타고 다니던 무왕이 도성 제일의 미남이라는 사실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무왕의 얼굴을 못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이 없다는 말이 유봉진의 입에서 나올 정도였으니 그의 용모가 얼마나 빼어난지 가히 상상이 안 갔다.무왕의 얼굴이 망가진 이유는 바로 추월녀가 기주 전장에 있던 그를 북강으로 유인했기 때문이었다.그렇게 무왕은 북강에 갇혀버리게 되었던 것.“무왕 대군 나리를 해치려는 뜻은 없었습니다. 그저 대군 나리께서 기주 전장을 진왕 대군에게 넘겨주시길 바랐을 뿐이에요.”책임을 회피하려고 이리 말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는 혼란스러운 북강을 평정해야 한다고 추월녀는 생각했었다.다만 무왕보다도 진왕이 비교적 안전한 기주에 머무르길 원했던 것은 사실이었다.결국 진왕이 기주에서 대승을 거두어 전쟁의 신으로 불리게 되었으나 무왕은 무려 5년 동안이나 북강에 갇혀 있었다.“유봉진이 그리도 좋으냐?”유상무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물은 뒤, 추월녀가 답하기 전에 덧붙였다.“나는 네 진심을 듣고 싶어.”“예전에는 그랬습니다.”말 그대로 예전의 그녀라면 유봉진을 위해 다른 사람들과 척질 각오까지 했었다.유상무는 눈살을 찌푸리며 달빛에 비친 티 없이 하얗고 부드러운 그녀의 얼굴을 응시했다.“지금은?”이 질문에 추월녀가 답하지 않자, 유상무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오늘에 날 이용해 먹으니까 좋더냐?”“송구합니다...”“네가 날 이용하든 말든 난 개의치 않는다. 하나 내 여인이 딴 사내를 그리워하는 건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저는 대군 나리의 여인이 아닌 것은 물론 그리워하는 사내도 없습니다.”추월녀가 즉시 정정하자, 유상무는 눈썹을 치켜올렸다.“그리워하지 않는다면서 왜 나를 이용하여 그를 자극한 것이냐?”추월녀는 입술을 깨물더니 잠시 망설이다가 답했다.“불만이 있어서요.”유상무는 그녀의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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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화

“이러지 마십시오, 대군 나리.”추월녀는 조급해졌다.“침소든 여기든 다 제 안방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아직 출가하지 않았으니 어찌 대군 나리를 제 안방에 머물게 할 수 있겠습니까?”“네 침소에서 취침하고 싶구나.”유상무의 코맹맹이 소리가 하도 낮아서 곧 잠들 것처럼 들리자, 추월녀는 화가 나고 조급해졌다.‘이렇게 무례한 사내는 살면서 처음이야.’“대군 나리께서 저를 취하지도 않으면서 이리 제 명성을 더럽혀놓으면 저잣거리의 무뢰배들과 뭐가 다릅니까?”유상무가 화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길 바랐다.그리하면 미련을 버리고 다시는 제게 집착하지 않을 수도 있을 테니까.하지만 유상무는 화난 기색이 전혀 없이 오히려 조롱하듯이 말했다.“허례허식을 왜 그리도 신경 쓰는 것이냐? 내가 좀 전에 말했다시피 도성에서 살기 불편하다면 나와 함께 북강으로 가면 된대도.”“대군 나리께서는 북강에 돌아갈 생각입니까?”유상무가 저를 북강으로 데려가겠다고 두 번이나 말했던지라 추월녀는 잠시 멈칫했다.‘황위 계승자 중 가장 유력한 후보인 무왕이 북강으로 돌아갈 까닭이 없지 않은가? 북강에 있으면 대군 지위밖에 안 되는데.’이런 말들은 함부로 입 밖으로 내면 안 되었다.무왕이 아군인지 적인지 아직 알 수 없기에.다시 유상무를 바라보니, 그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가벼운 코골이 소리까지 내는 것으로 보아 정말로 잠이 든 것 같았다.그것도 다리를 제대로 펼 수도 없는 돌의자 위에서.추월녀는 한 사람을 상대로 이렇게 무력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비웃어도, 협박해도, 회유해도, 설득해도 통하지 않는 철면피인지라 도무지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결국 그녀는 정자에서 뛰쳐나와 멀리 있는 큰 나무를 쏘아보며 불쾌하게 말했다.“무왕 대군을 좀 어떻게 해 봐!”가진명이 나무 위에서 가볍게 뛰어내려 추월녀의 앞에 착지하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답했다.“저도 어찌할 방도가 없습니다, 월녀 아씨.”“대군께서 출가하지 않은 여인의 뜰에서 취침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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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화

가진명이 한마디 당부하고 다시 나무 위로 올라갔다 .“대군께서 오늘 밤 독주를 많이 드셨습니다. 밤바람이 차니 대군께서 고뿔에 걸리지 않도록 아씨께서 잘 보살펴 주십시오.”추월녀는 잠시 자신을 진정시킨 후, 믿을 만한 호위무사 4명을 불러 뜰 문을 지키게 하면서 자운선과 추일을 제외한 그 누구도 뜰 안에 들여보내지 말라고 명했고, 자운선과 추일이 추소하를 모시고 돌아오자, 이들에게도 4명의 호위무사와 함께 뜰 문을 지키라고 했다.다행히 추일과 4명의 호위무사는 이런 명을 내리는 이유에 관해 묻지 않았다.모든 지시를 내린 후에야 추월녀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방으로 돌아가 담요를 가져온 후에 다시 정자로 돌아가 보니 유상무는 확실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피로가 쌓였는지, 가끔 가벼운 코 고는 소리까지 내면서.그의 곁으로 다가가 담요를 덮어주려는 순간, 추월녀는 갑자기 동작을 멈췄다.자신이 갔다 온 사이 유상무가 이미 몸을 뒤척여 옆으로 누워 있었던 것.반쪽짜리 가면은 아래쪽에 눌려 있어서 드러난 반쪽 얼굴을 그녀는 제대로 볼 수 있었다.달빛에 비친 강인하면서도 부드러운 유상무의 얼굴 윤곽이 언뜻 봐서는 산 같았으나 막상 다시 보니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짙고 검은 눈썹은 활처럼 휘어져 있었고, 코는 하늘로 오뚝하게 솟아있었으며 눈꺼풀을 덮고 있는 기다란 속눈썹 부채꼴 그림자는 은은한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다.마치 새로 피어난 장미처럼 선홍빛이 감도는 입술은 달빛에 의해 유혹적인 광택을 띠고 있어서 비록 술 냄새가 풀풀 풍기고 있다고는 하나 그것이 달콤하게 느껴졌다.이때 바람이 스치자, 그의 귀밑머리가 흐트러지며 준수한 미모에 매혹함을 더했다.추월녀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흐트러진 유상무의 머리를 정리해 주려다가 멈칫했다.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를 깨달았을 때는 손가락이 그의 얼굴에서부터 한 뼘도 채 떨어지지 않은 거리까지 온 뒤였다.다행히 이성을 되찾은 추월녀는 황급히 손을 거둔 뒤에 조심스럽게 그에게 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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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화

“대마왕!”가쁜 숨을 몰아쉬며 눈을 번쩍 뜬 추월녀는 방 안에서 물건을 정리하고 있던 자운선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그것도 잠시, 가슴이 저도 모르게 쿵쿵 뛰기 시작했다.“운선아, 어젯밤에는 언제 들어온 것이냐?”“조금 전 들어왔습니다. 아씨가 너무 깊이 주무셔서 문 두드리는 소리도 듣지 못하시길래 문을 따고 들어왔습니다.”자운선은 그녀를 깨우고 싶지 않았지만, 워낙 중요한 일이라 어쩔 수 없었다.“어젯밤에 들어오지 않았다고?”추월녀의 이마에는 여전히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자고 있을 때 분명히 누군가가 나를 쏘아보는 느낌이 들었어. 독수리처럼 날카롭고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은 참으로 무서웠는데.’자운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어젯밤 아씨가 추일에게 대문을 지키라 명하셨으니,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을 겁니다.”추월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갑자기 무언가 떠올랐는지 갑자기 이불을 젖히고 밖으로 뛰쳐나갔다.뜰은 조용한 것이 아무도 없었고 정자에서 자던 유상무와 담요도 사라지고 없었다.“아씨, 내일 열리는 무술대회에서 길우강과 결전을 치르기 위해 도련님께서는 아침 일찍 기침하여 무예를 연마하고 있습니다. 황후 마마께서는 대회에 필요한 음식과 차를 준비하라고 아씨께 명하셨고요.”자운선이 따라 나오며 말했다.“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습니다, 아씨. 어서 씻고 궁에 가서 황후 마마를 알현하시죠.”추월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또 한 번 정자 난간 옆 돌의자를 바라보았다.“운선아, 하면 아침에 들어올 때 뭔가 이상한 점이 없더냐?”자운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평소와 다름없었습니다.”말은 이리 해도 사실 자운선은 알고 있었다.어젯밤 망월각에 특별한 손님이 찾아왔다는 것을.다만 추월녀가 캐묻지 않아서 자세히 말할 필요가 없다고 자운선은 생각했다.“지난번 연회 이후로 황후 마마께서는 아씨를 매우 총애하십니다. 어서 입궁할 채비를 하시지요. 늦게 갔다가 황후 마마의 노여움을 사실 까 걱정입니다.”추월녀는 그제야 시선을 돌리며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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