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쟁보다 위험한 사랑: Chapter 71 - Chapter 80

280 Chapters

제71화

황후는 동주의 셋째 황자에 대한 얘기를 더 하지 않고 한숨을 내쉬며 화제를 돌렸다.“네 어미는 생전에 보기 드문 여장부였는데... 내가 비록 궁에서만 지냈다고는 하나 네 어미가 네 아비인 충용후와 함께 전장에서 활약했던 얘기를 종종 듣곤 했었지. 내가 비록 네 어미를 오래전부터 존경해 왔으나 안타깝게도 만날 기회가 없었어.”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듣고만 있는 추월녀를 바라보며 그녀가 생각이 깊은 소녀라고 황후는 생각했다.“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란 데도. 월녀야, 난 정말로 네가 좋다. 지난번 연회 때에 네가 한 말이 내 마음에 와닿았어.”“과찬입니다, 황후 마마.”추월녀는 낮은 소리로 답했다.그러자 황후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답답함을 토로했다.“네가 했던 그 말이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다. 궁궐 안의 답답함을 사내가 어찌 알꼬.”지엄하신 황후가 불평하는 대상이 황제이니 맞장구를 쳐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추월녀는 또다시 침묵했다.한마디 잘못 말했다가는 화를 부를 수도 있기에.황후는 그윽한 눈빛으로 추월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네가 큰 시련을 겪은 직후라 매사에 조심스러워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느니라. 해서 내게도 마음을 열지 않는 것이고.”황후는 추월녀의 손을 잡으며 더욱 부드럽게 말했다.“아무 걱정하지 말거라, 월녀야. 이제부터 내가 네 어미 대신 너를 잘 돌봐주겠으니, 시간이 지나다 보면 언젠가는 내 마음을 알게 될 거다.”추월녀는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망극하옵나이다, 황후 마마.”궁을 떠나 돌아오는 길에 자운선의 보고가 끊이질 않았다.“황후 마마께서 저희에게 많은 상을 내리셨는데 금은보화가 아니라 약재들이었습니다. 제가 살펴보니 몸에 좋은 비싼 약재 외에도... 사내의 기력을 돕는 희귀한 약재도 있었습니다.”추월녀를 오랫동안 모셔 왔던지라 자운선은 그녀가 약재 연구를 포함한 다양한 학문에 관심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더 정확히 말하자면 진왕에게 깊은 애정을 품고 있었던 예전의 추월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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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마차에 오를 때 추소하의 표정이 어두운 것을 보고 추월녀가 미소 지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오라버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진명 대인이 가르쳐 주신 기술이 분명 효과가 있을 겁니다.”그러나 추소하는 자기 오른손을 바라보며 탄식했다.“물론 기술이 훌륭해서 길우강을 제압할 수 있을 거다. 전날 밤에 길우강을 본 적이 있는데 체구가 크고 힘이 장사여서 한 방에 내 장창을 날려버릴지도 몰라.”“하나 진명 대인이 가르쳐준 기술을 사용한다면 오라버니의 창과 길우강의 창이 정면으로 부딪치지 않을 겁니다. 이는 오라버니의 창이 날아갈 일이 없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무술에 대해 어찌 이리 잘 아는 것이냐?”깜짝 놀란 표정의 추소하를 바라보며 추월녀는 방긋 웃었다.“각 문파의 기술을 연구한 것은 물론 무술 서적들을 줄줄이 외우다 보니 기술은 딱 보면 알죠.”추소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역시 월녀는 천재라서 아는 것이 많군. 무예를 익혔다면 분명 고수가 되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것 같은 여린 체질이라 무예를 배우기는 적합하지 않으니. 이 모두가 내 탓이야. 오라버니인 내가 몸까지 다치는 바람에 월녀를 지켜줄 힘조차 없게 되었어.’“안심하거라, 월녀야. 이 오라버니가 목숨을 걸고라도 너를 지켜줄게.”“그런 말 하지 마세요, 오라버니. 제가 스스로 지킬 수 있으니, 저를 위해 목숨을 걸 필요가 없어요.”하지만 추소하는 여전히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였다.“그날 제가 오라버니가 대마왕의 은창을 휘두르는 걸 봤는데...”“대마왕?”추소하가 어리둥절해하자, 추월녀는 황급히 말을 바꾸었다.“무왕 대군 말입니다. 오라버니가 그날 무왕 대군의 은창을 휘두르는 걸 봤는데 기술이 보통이 아니더군요. 은창이 손에 찰싹 달라붙어서 전혀 떨어질 것 같지 않아 보였습니다. 혹 무왕부의 은창이 저희 국공부의 것보다 가벼운 겁니까? 만약 그렇다면, 은창을 얇게 깎아 무게를 줄이는 것은 어떨는지요?”“무게가 문제가 아니라 무왕 대군의 그 은창은...”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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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화

‘어찌 이리도 무정할 수 있지? 쓸모 있을 때는 높은 벼슬과 후한 녹봉을 주며 귀하게 대하다가 쓸모없어지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빼앗으려 하다니. 토사구팽이 따로 없구나.’추월녀는 갑자기 빠르게 걸어가 추소하의 소매를 잡아당겼다.길우강과의 대결에 대해 생각 중이던 추소하는 갑자기 당겨진 소매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추월녀의 얼굴이 약간 창백해진 것을 보고 추소하는 서둘러 그녀를 안심시키려 했다.“오라버니가 이길 수 있다는데도 뭘 그리 걱정하는 것이냐. 만에... 만에 하나 오라버니가 이기지 못한다 해도 최선을 다한다면 폐하께서도 우리 국공부를 탓하지 않으실 거다.”그 말에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서 추월녀는 그저 묵묵히 추소하를 바라보았다.‘불쌍한 오라버니를 어떡하면 좋아. 무장이라는 이유로 사람의 마음도 읽지 않은 채 그저 나라를 위해, 백성을 위해, 그리고 폐하를 위해 제 목숨을 기꺼이 바치고자 하니. 하나 오라버니는 모르겠지. 태화광장이 바로 폐하가 오라버니를 완전히 무너뜨리기 위해 특별히 마련한 무대라는 것을.’그러나 추월녀는 제 생각을 말할 수 없었다.아버지와 어머니처럼 정직하고 순수했던 오라버니가 항상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기에 그녀는 오라버니의 그 순수한 마음이 무너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걱정 안 합니다. 저는 그저 오라버니에게 말해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기든 지든, 최선만 다하면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고.”“그래. 부끄러울 것이 뭐가 있겠느냐.”누이동생과 함께 자리에 앉은 추소하는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으나 그렇다고 걱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장창이 손에서 떨어질 것 같아서 자신감이 없었다.자신감이 없다면 심리적 압박이 커서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법.눈살을 찌푸리고 있던 추월녀는 손을 무의식적으로 추소하의 옆에 놓인 장창에 가져갔다.이를 보던 자운선이 즉시 말렸다.“아씨.”자운선이 추월녀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아씨, 국공 나리에게 약조하신 것을 잊으셨습니까?’그러자 추월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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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유봉진은 국공부 쪽을 향하고 있던 시선을 거두고 진왕부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하지만 선우원영이 자리에 앉을 생각이 없어 하자, 이를 보던 유봉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왜 앉지 않고? 아직도 몸이 불편한 것이냐?”곤장을 맞은 그녀는 침대에 누워 며칠을 쉬고 나서야 겨우 걸을 수 있게 되었다.유봉진이 좀 더 쉬라고 했으나 선우원영이 기어코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선우원영은 고개를 숙이더니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유봉진을 쏘아보았다.“내가 평소와 달라 보이지 않나?”유봉진이 선우원영을 위아래로 쭉 훑어보니 화려하게 꾸민 모습 외에는 딱히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었다.화장을 정교하게 한 데다 화려한 자주색 궁중 복장을 하고 있어서 사실 출발할 때도 유봉진은 아름답다며 칭찬했었다.하지만 이런 선우원영보다도 불과 몇 걸음 거리의 국공부 사람들 중심에 있는 추월녀에게 자꾸 시선이 갔다.그 작고 정교한 얼굴은 빛이 날 정도로 하얘서 무시하기가 어려웠다.두 여인이 자연스럽게 비교되기에 유봉진의 눈에 꽤 예쁘게 생겼던 선우원영은 추월녀의 존재로 인해 까맣고 촌스러워 보였다.“내가 너를 좋아하는 건 네 외모 때문이 아니니 어서 자리에 앉거라.”그는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려고 노력했다.‘워낙 피부가 누르스름해서 그런지 화려한 치마를 입고 있으니 훨씬 어둡게 보이네. 이럴 줄 알았다면 평소처럼 딱 붙는 옷을 입혀야 했는데. 물론 그렇게 입는다고 해서 월녀의 요염함에는 비교조차도 못 하겠지만.’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사이, 시야에 추소하와 말하고 있던 추월녀가 들어와서 유봉진은 또다시 고개를 추월녀 쪽으로 돌렸다.그러나 그 순간, 갑자기 누군가의 손이 그의 시야를 가로막았다.“이제는 질릴 때도 되지 않았냐?”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선우원영의 말에 유봉진은 불쾌함을 감추지 못했다.“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야?”“내가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잖아. 반반한 얼굴을 내세워 사내들을 현혹하는 계집년의 치마폭에 네가 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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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유봉진, 내 말이 안 들려?”유봉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선우원영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침묵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조금 전까지 추월녀를 훔쳐봤다는 걸 인정하는 셈이지.’“그렇게 저 여인을 좋아하면서 애초에 왜 나를 유혹했던 것이야? 차라리 저 여인에게 갈 것이지.”“말 다 했나?”유봉진의 목소리에서는 차가움이 느껴졌다.비록 얼굴은 비교적 평온해 보였으나 선우원영이 공개적으로 사과하지 않는 한 유봉진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자기가 잘못해 놓고 이 뭐 하는 짓이야.’“유봉진!!!”‘짝’하는 소리와 함께 주위는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해졌다.순식간에 붉게 부어오른 한쪽 얼굴을 감싼 채 선우원영은 유봉진을 바라보며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또 때리다니.’지난번 연회에서 유봉진이 때렸을 때는 고의가 아니라는 걸 선우원영은 알고 있었다.때리자마자 후회로 가득 찬 눈빛을 하고 있었으니.하지만 이번엔 달랐다.저를 때린 후에도 유봉진의 눈빛은 차갑고 무정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집어삼킬 것처럼 느껴졌다.“너...”그의 얼굴에서 후회하는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자, 선우원영의 분노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고 그 자리를 절망이 대체했다.“네가 말하지 않았느냐. 평생 나만 사랑할 거라고.”선우원영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조금 전 유봉진의 차가운 눈빛에서 그가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는 알아챘다.“여봐라!”유봉진이 옷자락을 휘날리며 의자에 앉더니 차갑게 말했다.“이 여인을 당장 진왕부로 끌고 가서 가두거라.”“예!”진무는 즉시 선우원영을 제압했으나 선우원영이 저항하려는 것을 보고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선우 아씨, 체면을 구기기 싫으시다면 조용히 따라오시는 게 좋을 겁니다.”선우원영은 분하고 억울했으나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조용히 따라나섰다.그녀가 떠나고 나서 광장이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으나 진왕부 사람들만큼은 여전히 긴장감에 휩싸였다.어두운 표정을 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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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추소하를 어찌 달래면 좋을지 추월녀와 자운선이 고민하던 그때, 무왕부 쪽의 우금이 찾아왔다.“추 장군, 월녀 아씨.”추월녀와 추소하에게 다가온 우금이 몸을 약간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우금 대인.”그러자 두 사람도 예를 갖추었다.우금은 추월녀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고 나서 추소하에게 긴 나무 상자를 두 손으로 내밀었다.‘이렇게 긴 상자라면...’“이것은...”추소하의 눈에서 빛이 났다.‘그럴 가능성이 없어. 아닐 거야. 물론 무왕의 성격을 놓고 볼 때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 맞을지도.’우금이 상자를 열자, 과연 추소하의 기대에 부응하듯 그 유명한 오금창이 모습을 드러냈다.그런 다음 우금이 그것을 두 손으로 들어 추소하의 앞에 가져가자, 추소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무... 무왕 대군께서 이 창을 제게 빌려주시는 겁니까?”하지만 우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당연히 아니지요.”추소하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하면 대체 왜 내 앞에 가져온 걸까? 갖고는 싶은데...’절망 가득한 추소하의 눈빛을 바라보며 우금은 입꼬리를 더욱 치켜올렸다.“추 장군, 이 오금창은 무왕 대군께서 장군께 드리는 겁니다.”추소하는 너무 놀라 펄쩍 뛸 뻔했으나 다시 생각해 보니 무언가 이상했다.그가 재빨리 고개를 돌려 진왕부의 사람들 쪽을 돌아보니 유봉진과 그의 둘째 형님인 유정철이 담소를 나누는 중이어서 이쪽 상황을 전혀 모르는 듯했다.‘세운 공이 없는데 이 오금창을 받아도 되는 걸까?’“우금 대인, 이 창은...”“작은 부탁 하나만 들어주신다면 무왕 대군께서 이 창을 장군께 드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우금이 말에 추소하는 서둘러 물었다.“무왕 대군께서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보는 눈이 많은데 이렇게 노골적으로 우리 국공부를 끌어들인다? 그리하면 부담이 적지 않을 텐데. 하나 국공부는 진왕부와 사이가 틀어졌고 내 몸도 성치 않아서 월녀를 보호하기가 쉽지 않으니, 월녀와 할아버지를 위해서라도 의지할 곳을 찾을 필요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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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차를 한 잔 마시고 나서 추소하는 오금창을 받기로 결심했다.그러니 당연히 무왕을 위해서도 뭔가 해야 했다.유상무가 또다시 유정철과 담소를 나누며 자신을 신경 쓰지 않는 것을 보고 추소하는 고개를 돌려 추월녀에게 말했다.“월녀야, 이제부터 무왕 대군을 못생겼다고 하지 마라. 무왕 대군께서는 예전에 도성 제일 미남이셨다. 어찌나 잘 생기셨으면 이 오라버니조차도 그분만 보면 정신을 못 차렸지.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도 훨씬 준수하게 생겼단다.”“오라버니, 저는...”추월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추소하가 덧붙였다.“무왕 대군께서 비록 얼굴을 다치셨다고는 하나 그것은 북강 백성들과 종묘사직을 위해 다친 것이다. 네가 잘생긴 사내라면 정신을 못 차린다는 걸 이 오라버니가 어찌 모르겠느냐. 그래도 무왕 대군을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봐서는 아니 된다. 진왕 대군이 자신감 떨어질 수도 있어.”추월녀는 제 귀를 의심했다.‘대마왕마저 자신감이 떨어진다면 세상천지에 자신감 있는 사내는 존재하지 않을 거야. 대마왕은 기세가 하늘을 찔러서 반쪽 얼굴, 아니 얼굴 전체가 망가졌다고 해도 자신감이 떨어질 일은 절대 없어.’생각은 이렇게 해도 오라버니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어차피 설명해 봤자 이해하지 못할 게 뻔하니.추월녀는 깨달은 척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명심하겠습니다, 오라버니. 이제부터 무왕 대군을 보면 미소를 지을게요.”때마침 유상무의 그윽한 눈빛이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추월녀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유상무를 쏘아본 뒤, 입꼬리를 살짝 치켜올리며 요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참으로 요사스러운 미소였다.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구석에 있던 유봉진이 이 모습을 보더니 들고 있던 잔을 탁 내려놓았다.‘이년이 미쳤나! 기생년처럼 웃으며 감히 무왕에게 시선을 던져? 내게 의지할 수가 없으니 국공부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런 추잡한 수단을 쓰는 건가? 그래도 여기저기 굽신거리면 아니 되는데.’유봉진은 화가 치밀어올랐으나 한편으로는 답답하기도 했다.‘난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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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잠시 멈칫한 뒤, 추월녀가 마음을 가다듬고 선우혁을 향해 미소를 짓자, 선우혁도 미소로 화답했다.다만 그 미소가 의미심장하여 의중을 파악하기 어려웠던지라 추월녀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바로 시선을 거두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황제와 황후가 도착했고, 이들 뒤에는 셋째 황자 유상호의 어머니인 영비, 그리고 둘째 황자 유정철의 생모인 장비, 그리고 서비가 있었다.황제가 즉위하기 전 왕부에 있을 때의 첩들이었던 이들이 사내아이를 생산하여 입지가 탄탄해진 덕에 후궁에서의 지위도 비교적 안정적이었다.하긴 사내아이의 생산은 황실의 번창에 있어서 매우 중요했으니.반면 무왕의 모친인 옥비는 다른 후궁들과 달랐다.조용하고 떠들썩한 것을 좋아하지 않은 것은 물론 후궁의 권력 다툼에도 큰 관심이 없었다.옥비는 인생의 반을 장락궁에서 황제와 아들을 위해 기도하며 보냈고 나머지 반은 무공산에서 부처님께 참배하고 매일 경전을 읽으면서 보냈던지라 궁중 연회에는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그러나 무공산에 있던 옥비는 아들이 도성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하산할 생각이었다.황제의 후궁들이 옥비를 건드리지도, 가까이하지도 않은 탓에 옥비의 존재감은 매우 낮았다.물론 옥비를 제외한 다른 후궁들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몇 년 전만 해도 후궁을 장악하고 있던 황후는 다소 조용해 보였고, 다른 후궁들에 비해 옷도 화려하게 입지 않았다.사실 황후도 오만하게 굴며 다른 후궁들을 배척한 적이 있었으나 그 기세가 꺾인 것은 첫째 황자가 병으로 쓰러진 후였다.왕에 봉해지기도 전에 희한한 병에 걸렸던 황후의 맏아들인 첫째 황자는 병상에서만 누워 지내다가 1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황후의 막내아들인 열네 번째 황자는 이제 고작 여섯 살에 불과했다.황제는 총 여섯 명의 황자를 왕으로 봉했었는데 전장에서 공을 세워 이름을 떨친 무왕과 진왕을 제외하고도 다른 왕들도 나름의 전공을 세웠었다.그래서 후궁들은 모두 의지할 자식들이 있었으나 황후에게는 너무 어려 아직 공을 세우지 못한 열네 번째 황자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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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화

계필이 한 쌍의 큰 철퇴를 들고 무대에 올랐다.그와 맞붙을 상대는 철왕 휘하의 용사인 양수였다.9척의 장신으로 키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했던 양수는 큰 칼을 휘두르며 위엄을 떨쳤다.비록 다소 둔해 보이긴 했으나 걸음걸이를 보면 고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아씨가 보기에는 철왕 대군의 용사와 계필 용사 둘 중 누가 이길 것 같습니까?”자운선이 궁금해하자, 옆에 있던 추소하가 해맑게 웃으며 답했다.“계필은 외가 무공을, 양수는 내공심법을 수련했으니, 누가 이길지는 지켜봐야 알 것 같구나.”추월녀는 추소하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기분이 좋아 보이네요, 오라버니.”“좋기는 무슨. 그저 한마디 했을 뿐이야.”말은 이리 해도 눈웃음을 숨길 수는 없는 법.자운선조차도 추소하의 웃음에 감염되어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도련님께서 무왕이 선물한 오금창을 얻어 기분이 좋은가 보네. 자신감에 찬 모습이 참으로 보기가 좋아.’“도련님, 차 따라드릴게요.”자운선이 말하면서 그에게 차를 따랐다.반면 추일은 여전히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도련님, 곧 저희 국공부의 차례이니 차, 차를 조금만 드시는 것이...”“왜 그리 더듬는 것이냐?”자운선이 추일을 흘끗 쳐다보며 비웃었다.“아씨가 이렇게 태연한 걸 보면 모르겠느냐? 아씨께서 걱정 안 한다는 것은 도련님의 승리를 확신한다는 뜻이다.”그 말에 추일이 추월녀를 바라보았다.‘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것을 보아 확실히 도련님의 승리를 확신하는 것 같네. 대체 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 도련님의 현재 몸 상태가 말이 아닌데.’여전히 불안해하는 추일을 바라보며 추월녀가 웃으며 말했다.“긴장할 것 없다. 오라버니는 반드시 이길 것이야.”“지금 대결을 펼치고 있는 두 사람은 어찌 될 것 같습니까?”자운선이 물음에 추월녀는 무대 위의 두 사람을 진지하게 관찰했다.무대 위의 두 사람은 인사말이 끝난 후에 바로 싸움을 시작했다.‘땅땅’하는 소리와 함께 큰 칼과 철퇴가 부딪치며 불꽃이 튀자,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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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양수가 10합 안에 패배할 것으로 예측한 추월녀의 말대로 정확히 10합째에 무너지자, 추일과 추소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하지만 자운선은 이미 익숙한 듯이 중얼거렸다.“뭘 그리 놀라십니까. 아씨가 12살 때부터 무술의 승패를 예측할 줄 알았다는 것을 두 분은 여태 모르고 계셨던 겁니까?”그 말에 추소하와 추일은 더욱 넋을 잃고 말았다.‘12살? 12살이면 애송이가 아닌가? 대체 어떻게 예측할 수 있었단 말이지?’“오라버니의 차례가 왔으니 어서 준비하십시오.”추월녀가 귀띔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추소하가 고개를 들어보니 안세권이 두 번째 시합을 선언하고 있었다.“두 번째 시합은 국공부 대공자인 추소하와 동주 용사인 길우강의 대결입니다.”자리에서 일어나 오금창을 손에 든 추소하는 무대 위로 올라가기 전에 추월녀를 향해 안심시키는 눈빛을 보냈다.이 모습을 보던 자운선이 감탄하며 말했다.“도련님은 참으로 좋으신 분입니다. 아씨의 걱정을 덜어주려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네요.”무대 바로 앞에서 지켜보기 위해 추일은 추소하를 따라 무대 앞까지 갔다.추소하가 무대에 오르자마자 무대 아래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비록 소리는 낮았으나 수군거리는 사람이 많다 보니 추소하는 그들의 말이 잘 들렸다.대체로 몸이 망가져서 부실하다는 말들이었으나 이것들을 한쪽 귀로 다 흘려보내고 마음을 비워야만 전투에 집중할 수 있다는 추월녀의 말을 떠올렸다.오라버니라고는 하나 오래전부터 추월녀의 말을 따르는 버릇이 있다 보니.추소하가 무대에 올라왔을 때, 길우강은 이미 맞은 편에 서 있었다.비록 추월녀는 추일처럼 무대 앞까지 따라가진 않았으나 자리에서 일어나 잔뜩 긴장한 표정을 한 채 지켜보고 있었다.평소에 침착한 추월녀가 긴장한 모습을 보여서 사람들의 추측이 확신으로 바뀌는 것처럼 보였다.‘국공부의 대공자가 몸이 부실한 것이 맞나 보군.’“대군 나리, 저희가 오금창을 추 장군께 드렸는데도 월녀 아씨는 여전히 걱정하고 있습니다. 설마 진명이 가르친 기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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