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나를 버릴 때, 나는 세상을 가졌다의 모든 챕터: 챕터 111 - 챕터 120

212 챕터

제111화

강이솔의 말발에 밀려 유하는 어쩔 수 없이 침대에 누웠다.이솔은 문어발처럼 그녀한테 달라붙어 자료라도 찾기 위해 몰래 일어날 구실조차 주지 않았다.다음날 이솔은 유하를 데리고 쇼핑하러 나갔다.“이제 이틀 후면 설이야. 마침 우리 둘 다 한가하니까 쉬는 셈 치고 이렇게 밖에도 나와봐야지. 집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오히려 몸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이솔이 꽤 설득력있게 말했다.카페에 들어간 유하는 의자에 기대앉은 채, 이솔이 특별 주문해 준 따뜻한 우유를 마시며 투덜거렸다.“머리가 이 모양인데 집에 안 있고 나와서 뭐 하겠어?”“사람은 적당히 움직여야 회복도 빨라진다니까. 나온 김에 분위기 전환도 하고 얼마나 좋아?”이솔은 말하다가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이 놈의 날씨만 아니면 산으로 캠핑 가도 좋았을 텐데. 지금 산에 눈이 가득 쌓여 캠핑하기엔 딱이거든.”유하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좋은 생각인데?”바로 전날 소성란이 말해준 7월 멜라노 패션위크 테마 중 하나가 ‘산수’ 였기 때문이다.눈 덮인 산은 분명 영감의 원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은 결코 틀에 박힌 것이 아니며, 고립된 공간에 정주하는 것도 아니다. 예술은 사방을 두루 살피고 사방을 누비며, 가장 원초적인 자연과 영혼의 직접적인 충돌을 통해 폭발적으로 탄생하는 찬란한 순간이다.과거 유하는 가정에 갇혀 자유로운 이동이 제한되었지만, 이제는 달랐다. 이런 생각에 그녀의 마음은 더욱 설레기 시작했다. 이솔이 그 생각을 눈치채고는 바로 눈을 흘겼다. “그만 생각해. 머리에 상처 난 몸으로 산에 올라가다가 미끄러져 구급차 타는 꼴 보고 싶어? 난 명절 무탈하게 잘 보내고 싶어.” 유하는 속상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숙였다.두 사람이 마뜻한 음료를 마시며 쇼핑몰을 거닐 때, 박영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녀는 이솔에게 상황을 설명한 뒤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전화를 받자마자 박영심의 들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유하야, 설이 코앞인데 언제 돌아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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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화

이솔은 화제를 돌리며 유하의 팔을 잡아끌고 쇼핑을 계속했다....오씨 가문 본가.박영심은 전화를 끊은 채 소파에 넋 나간 듯 앉아 있었다. 그녀는 병적으로 창백해진 얼굴에, 눈빛에는 생기가 사라져버렸다.잠시 멍하니 있다가 눈썹이 떨리더니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소리 없이 흐느끼는 모습이 정말 애처로웠다.오광진이 잠시 전화를 하러 자리를 비운 사이, 박영심이 울고 있는 모습을 보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오광진은 서둘러 달려가 박영심을 안고 살며시 등을 토닥여 주었다.“여보, 왜 그래? 누가 나 없는 사이에 괴롭히기라도 한 거야?”박영심은 고개를 저으며 눈물이 맺힌 눈을 깜빡였다. 숲 속의 세상 물정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새끼 사슴 같이 눈이 흐릿했다. 그녀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유하가 왜 갑자기 이러는 걸까? 내가 또 뭘 잘못하기라도 했나?”박영심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입을 열자 도저히 감정을 추스르지 못할 것만 같았다.그녀는 자신이 울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저 눈물에 젖은 뺨이 차갑다는 것만 느낄 수 있었다.“아니야, 당신은 항상 모든 걸 잘해왔어.”오광진은 속이 타들어 갔지만 우선 아내를 달랠 수밖에 없었다.박영심의 눈에 눈물이 고였지만 아무 표정도 짓지 않고 있었다. 목소리에는 실망이 잔뜩 담겨있었다.“그럼 왜 날 피하는 걸까?”‘잠깐 전화를 받으러 갔을 뿐인데, 그새 유하한테 전화를 했을 줄이야.’오광진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그럴 리가 있겠어? 분명 바쁜 거겠지. 내가 다시 물어볼 테니 걱정 마...”그의 달콤한 위로에 박영심은 조금씩 진정되었다. 그녀의 감정은 폭풍처럼 밀려왔다가도 금세 가라앉았다.박영심은 곧 피로에 지쳐 흐느껴 울다 잠이 들었다.오광진은 그녀를 침실에 눕히고, 불안한 모습으로 이불속에 웅크린 모습을 보며 이마를 찌푸렸다.‘다 그 불효자식 탓이야!’오광진은 살며시 문을 닫고 복도로 나와 핸드폰을 꺼냈다.승현에게 건 전화는 한참 뒤에야 연결되었다.오광진은 참을성 없이 욕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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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화

쇼핑몰을 한 바퀴 돌고 뭔가 몽땅 사 들고 앉은 두 사람은 잔뜩 지쳐 있었다.서점에 앉아 따뜻한 음료를 마시며 휴식 중이었는데, 유하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오승현의 문자메시지였다.[나와.][어머니께서 당신 때문에 아프셔.]유하가 눈썹을 찌푸렸다. 방금 전 전화에서는 그저 기운이 약간 없는 것을 제외하고는 별 이상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승현은 단 한 번도 박영심의 일에 관해 거짓말을 한 적이 없었다.“잠시 통화 좀 하고 올게.”이솔에게 말하고 서점 밖으로 나간 유하는 즉시 전화를 걸었다.[지금 쇼핑몰 앞에 있으니까 당장 나와서 나랑 같이 본가로 가.]유하는 대답하지 않고 물었다.“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야?”[그걸 지금 나한테 묻는 거야?]승현은 차가운 말투로 되물었다.[방금 엄마한테 무슨 말을 했는지 본인이 더 잘 알겠지.]“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승현이 비아냥 거리는 것 빼고는 아무 이야기도 해주지 않자, 유하도 차가운 말투로 되물었다.[최근 감정 기복이 심해지시고 잠만 주무셨는데, 당신이랑 통화한 뒤로 한참을 우셨어. 당신도 우리 어머니 상태를 모를 리 없잖아. 우리 사이가 어쨌든 어머니는 당신한테 한결같이 잘해주셨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어?]유하는 잠시 멈칫했다.“아니, 난 그냥 설에 못 간다고 말했을 뿐인데...”유하도 이 한 마디가 박영심의 병을 재발시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왠지 가슴이 먹먹해졌고 이마의 상처가 욱신거렸다.[우리 어머니가 당신을 이렇게 의지하게 된 건... 당신에게도 책임이 있어!]승현은 차갑게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유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왠지 손끝이 차갑게 식어가는 느낌이 들었다.‘우울증... 심해지면 목숨이 위험해지기도 하는 병이야.’‘만약 정말로 내 때문에 아프신 거라면...’유하는 서점으로 돌아가 이솔에게 간단히 설명한 뒤, 먼저 차 타고 가보라고 말하고는 서점을 나섰다.이솔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유하는 감쪽같이 사라졌다.“뭐가 어떻게 된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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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화

침실 문을 닫자마자 유하는 오광진에게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 일 없었잖아요.”‘어떻게 한두 마디 말 때문에 갑자기 재발하게 된 거지?’오광진은 뒤따라오는 승현을 노려보며, 유하를 데리고 서재로 향했다.서재에는 오직 유하와 오광진 두 사람만이 있었다.“너희가 이혼을 하겠다는 건, 내가 말릴 수 없는 일이지. 결국 너희 두 사람의 일이니까.”“하지만 유하야, 우리가 전에 이미 약속했듯이 너희들 일은 너희들끼리 해결하고, 일단은 네 시어머니께만은 숨기기로 했잖아.”“네 시어머니가 서서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정리를 하자고 했는데, 왜 약속대로 하지 않은 거야?”오광진의 얼굴색이 좋지 않았고, 말투도 차가웠다.“네가 요즘 너무 자주 거절을 한 게 문제야. 네 시어머니는 안 그래도 감정이 예민한 사람이잖아.”“아무리 마음이 넓고 둔한 사람이라도 네가 이렇게 행동하면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을 거야.”“원래 우리가 약속한 것은, 너희 이혼 문제는 너희끼리 문 닫고 해결하되, 네 시어머니에게는 서서히 정서적으로 이별을 준비시키기 위해 천천히 진행하자고 했어.”“그런데 넌? 넌 일방적으로 갑자기 싹 연락을 끊어버렸잖아! 이건 너무 무정한 거 아니니?”“네 시어머니가 너를 어떻게 대해왔는지, 지난 7년 동안 너를 얼마나 의지하고 좋아했는지를 잘 알면서!”“어떻게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가버릴 생각을 한 거야? 그동안 네게 쏟은 진심을 마치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잖아!”“너와 승현이가 이제 부부가 아니면, 시어머니와 원수라도 된 거냐?!”유하의 말문이 막혔다.이 부분에 있어서는 자신은 확실히 조급했고, 박영심에게도 지나치게 무정하게 굴었다.하지만 승현과의 소통이 너무나 힘들지 않았다면, 그렇게까지 조바심내고 극단적으로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유하가 침묵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자 오광진이 제안했다.“이렇게 하지. 예전처럼 매주 한 번씩 오라는 건 아니야. 보름에 한 번,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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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화

박영심의 침실 문 앞.유하가 벽에 기대어 서서 한 손으로 살며시 눈을 가렸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내쉰 뒤 방 안으로 들어섰다.방 문이 조용히 닫혔다.침대 옆으로 다가간 유하는 이불속에 웅크린 채, 이마를 찌푸리고 잠든 모습이 불안해 보이는 박영심을 바라보았다.잠시 머뭇거리다 유하는 무릎을 꿇고 침대 가장자리에 엎드렸다. 한 손을 이불속으로 넣어 박영심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포근한 이불 안에 있음에도 얼음같이 차가운 손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유하는 꽉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다른 손으로 박영심의 찌푸린 미간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그 순간, 침대 위의 박영심이 무언가를 느꼈는지 유하의 손을 함께 꼭 잡았다. 몸도 유하 쪽으로 기울여 오며 주름진 이마가 곧게 펴졌다.무의식적인 스킨십에 유하는 코가 시큰해지며 눈시울이 달아올랐다. 말로 다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고요한 방 안에 오랜 침묵이 깔린 뒤, 한탄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대체... 왜 저를 좋아하시는 거예요?”이것이 유하가 항상 품어온 의문이었다.오씨 가문의 어느 누구와 달리, 그녀의 시어머니 박영심은 유하가 시집온 첫날부터 줄곧 그녀에게 각별히 잘해주었다.그건 유하가 경험해 온 친절과는 사뭇 달랐다.그녀의 고모할머니, 소성란의 친절은 자상하되 엄격했고, 간혹 무거운 기대가 얹혀 있었다.반면 박영심은 달랐다.박영심의 친절은 물처럼 부드러웠고, 모든 것을 포용했으며,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았다. 마치 유하를 사랑하는 것이 세상 가장 당연한 일인 것처럼.그건 어린 시절 이유 없이 밤새 매를 맞으며, 흐릿한 의식 속에서 그리던 구원자 같은 어머니의 모습과 꼭 닮아 있었다.다정함 속에 애정이 담겨 있었다.“왜 저를 좋아하시는 거예요?”유하는 한숨을 내쉬고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다시 중얼거렸다.자신을 낳은 친부모조차 그녀를 극도로 싫어했고, 피 한 방울 뼈 한 조각까지 닳도록 착취하려 들었다.그런데 시집오기 전 단 한 번밖에 만난 적이 없는 시어머니가, 어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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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화

유하는 숨이 탁 막히는 충격에 얼어붙었다.‘첫 만남?’그것은 7년 전, 폭우가 쏟아지던 깊은 밤. 유하가 임신한 몸으로 오씨 가문 본가 문 앞에 무릎 꿇고 이마로 대문을 두드리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당시 유하는 소씨 가문과 승현에게 쫓겨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렸고, 결국 필사적으로 벼랑 끝에 선 무모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비참하고 초라한 모습이 박영심에게는 감탄할 만한 용기로 보였단 말인가?‘정말 첫눈에 날 좋아하시게 된 걸까?’그렇다면...‘만약 그때 임신하지도 않았고, 더 이상 오씨 가문의 며느리가 아니라면 그래도 나를 좋아해 주셨을까?’이 물음은 결국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대신 눈에 고인 눈물이 툭툭 떨어져 이불을 짙은 물감처럼 물들였다.‘그런 거였구나.’...박영심의 그 한마디가 모든 의문을 푸는 열쇠였다.‘이걸로 충분해.’유하는 원래 작은 일에도 만족하며 감사하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희미한 미소를 띠며 눈물을 닦아내는 순간, 품 안의 박영심이 이마에 깊은 주름을 새기며 불안에 떠는 모습을 발견했다. 마치 무시무시한 악몽에 사로잡힌 듯했다.“내가 만약... 너처럼... 용기 있었더라면...”“그랬더라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박영심은 낮은 소리로 중얼거리더니 숨소리가 가빠지며 유하가 꼭 잡은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위험해.’ 유하가 속으로 외치며 재빨리 침대에 올라갔다. 그녀는 이불속으로 파고들어 박영심의 작은 몸을 꼭 안았다. 그리고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듯 부드럽게 토닥였다.“무서워하지 마세요. 제가 여기 있어요. 어머님, 괜찮아요...”한참을 이렇게 달래자 박영심의 웅크린 몸이 서서히 풀렸다. 호흡은 고르게 되었고 긴장된 표정도 사라졌다. 그리고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유하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만 박영심의 잠귀가 예민하다는 걸 알기에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결국 그녀도 옆에 누워 잠시 잠들었다.저녁에 박영심이 눈을 떴을 때, 유하가 곁에 있는 모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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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화

어느새 설날이 다가왔다.유하는 소성란을 자기 집으로 초대해 설을 함께 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친 머리의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 않았고, 박영심을 돌보느라 무리했는지 최근 피로도 쌓여 설 준비에 쏟을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다.결국 유하는 설 전에 소성란의 집에 가서 묵기로 했다. 그저 할머니가 주는 밥 맛있고 배불리 먹는 손녀 역할로.다행히 이번 설에는 소성란과 유하 두 사람뿐이었기에 간소하지만 포근한 분위기였다.설 전날 아침, 두 사람은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났다.한창 분주하게 설 준비를 하고 떡국을 먹은 뒤,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켜놓고 미리 준비한 간식과 과일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저녁에는 호텔 셰프를 초대해 푸짐하게 상을 차렸다.소성란도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보내는 설이라 기분이 좋아서, 특별히 요리 두 가지를 직접 만들었고 만두도 직접 빚었다. 집 안에는 TV에서 흘러나오는 설 특집 프로그램의 소리가 가득했고, 창밖으로는 화려한 폭죽이 터지며 불꽃이 하늘에 수를 놓고 있었다.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TV 앞에서 간식을 먹으며 새해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유하는 자꾸만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방금 승환에게 문자를 보내 식사했는지 물었다.박영심의 상태를 보아서는, 승환은 올해도 오씨 가문 본가에 갈 수 없을 테니 또 혼자 설을 보낼 것 같아 안타까웠다. 설 전에 소성란에게 승환의 이야기를 꺼냈지만, 소성란은 끝까지 입을 꼭 다물고 대답하지 않았기에 유하도 감히 다시 묻지 못했다.소성란은 오씨 가문을 뼈에 사무치도록 증오했다.곧 핸드폰이 진동하더니 승환한테서 답장이 왔다.[누나, 전 이미 밥 먹었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밥을 먹었다고는 했지만 평소처럼 인증샷을 보내오지 않았다. 게다가 승환이 최근에 식사를 거르다 병원에 실려 간 적이 있어 유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무슨 일이라도 있는 게냐?”소성란이 유하의 안절부절못한 모습을 눈치채고 물었다.“아, 아뇨! 그냥 친구랑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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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화

설날 아침 일찍.세배를 마치고 아침 식사를 한 후, 소성란은 유하와 승환을 데리고 보각사에 가서 향불을 피우고 소원을 빌었다.길에서 유하는 가끔 핸드폰을 꺼내 메시지를 확인했다.핸드폰에는 여러 친구가 보낸 축하 메시지 외에는 다른 소식이 없었다.그녀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소성란에게 세배드린 것은 물론, 박영심에게도 영상 통화로 새해 인사를 하고 안부를 전했다.그러나 아들 준서에게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어쩌면 12시까지 기다리느라 늦게 잔 탓에 아직 일어나지 못한 걸지도 모른다.‘됐어.’애초에 크게 기대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유하는 핸드폰 화면을 끄고 더 이상 보지 않았다....차가 서구에 있는 수암산 자락으로 들어섰다.세 사람은 차에서 내려, 안개가 자욱한 암녹색 산림을 지나고, 화려하게 장식된 대문을 통과하여 절 안으로 들어섰다.길을 따라 노란 매화꽃이 만발해 있었는데, 과연 W시의 매화꽃이 최고임을 증명했다.다만 이 절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소성란은 평소에도 자주 이 절에 자주 왔었고, 쓴 비용도 적지 않았다.그래서인지 그들이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절의 스님이 마중 나와 그들을 내전으로 안내해 차를 마시며 잠시 쉬게 했다.정오가 지나자, 잠시 문을 닫고, 세 사람은 전당에 들어가 참배했다.대전 안에는 거대한 와불이 전각 위에 누워 있었고, 반쯤 감은 눈과 자비로운 눈매는 위엄 있고 장엄한 모습을 보였다.소성란이 먼저 나아가 향을 피웠다. 그녀는 부처님 앞에 무릎 꿇고 엎드려, 마음속으로 조용히 소원을 빌었다.‘제발 우리 유하가 무사히 이혼하게 해 주소서. 만약 유하가 다시 결혼하고 싶어 한다면, 반드시 부드럽고 선하며 능력 있고 유하를 잘 이해하는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 주소서.’‘부처님께서 보우하사 이루어진다면, 반드시 와서 감사 인사를 드리겠습니다.’마음속으로 소원을 다 빌고 난 후, 그녀는 경건하게 절을 올렸다.승환은 과거에 집안 어른들과 함께 이런 곳에 온 적이 없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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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화

유하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몸을 굽혀 바닥에 떨어진 것을 주웠다.붉은색 주머니를 들어 정면으로 돌리니, 금실로 삐뚤삐뚤 몇 글자가 수 놓여 있었다.[유하가 평생 행복하고 즐겁게 해주세요.]순간, 바람이 일며 방울들이 요란하게 울려 퍼지며 그 소리가 소유하의 가슴속 깊이 파고들었다.주변의 인기척과 온갖 소음은 모두 무의미하게 사라진 듯했다....그때, 다른 한편.박영심과 류정인이 오랜 친구 사이인 덕분에, 오씨 가문과 하씨 가문은 여느 때처럼 함께 절에 향을 피우러 왔다.예전에는 연우가 해외에 있어 참여하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마침 국내에 있었기 때문에 따라나설 수 있었다.그들은 정문을 통해 올라왔다.오광진, 하지철과 함께 걸어가던 승현은 문득 요란한 방울 소리를 듣고, 가슴이 이상하게 꽉 조여드는 느낌이 들어 본능적으로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봤다.그러나 눈에 들어온 것은 오직 붉은 비단 조각들이 휘날리는 노란 매화나무와, 북적이는 사람들뿐이었다.별다른 것은 없었다.“승현아, 뭐 보고 있어?”곁에서 박영심과 이야기 나누던 연우가 고개를 돌리자, 승현이 매화나무를 쳐다보며 멍하니 있는 모습을 보고 물었다.승현은 고개를 저었다. “별거 아냐.”마침 스님 한 분이 와서 그들을 내전 쪽으로 안내했다. 어찌 됐든 오씨 가문은 이 절의 주요 시주 가족 중 하나였다.승현은 방향을 돌려 가족을 따라갔고, 그래서인지 유하가 막 매화나무 아래에 도착한 모습을 보지 못했다....‘그 사람이 돌아왔어!’유하는 천 년 묵은 매화나무 앞에 서서, 손에 쥔 주머니를 꽉 움켜쥐었다. 감정이 복잡하고 격해지자 얼굴은 창백해지고, 가늘게 뜬 눈앞이 흐려졌다.‘태준혁이 거짓말을 한 게 아니었어, 그 사람이 정말 돌아왔어.’‘그럼 지금 이 절에 있는 건가?’‘이미 찾아왔으면서, 왜 날 피하는 거지?’유하는 사방을 두리번거렸지만, 찾고자 하는 그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예상치 못한 한 무리를 발견했다.오씨 집안사람들과 하씨 집안사람들이 함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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