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현과 준서 사이에서 벌어진 일은, 그 시각 깊이 잠든 유하에겐 아무것도 전해지지 않았다.하지만 유하의 잠은 절대 평온하지 않았다. 온몸이 무거운 듯, 정신은 흐릿하게 가라앉아 있었다.그 몽롱함 속에서 유하는 다시 몇 년 전, 대학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햇살이 교정의 계단을 비추고, 젊고 풋풋했던 시절의 승현이, 산뜻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계단 위에 서 있었다. 따사로운 빛 아래, 승현의 존재는 유난히 눈부셨다.그땐 유하도 몰랐다.승현은 원래부터... 저런 식으로 세상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이란 걸.그는 갓 머리를 감은 듯 물방울이 맺힌 짧은 흑발, 맑고도 서늘한 여우 같은 눈매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계단 밑에서 얼어붙은 듯 서 있는 여대생 유하를 향해서.“나 좋아해? 얼마나?”청춘의 승현 목소리는 지금보다 훨씬 가벼웠고, 어딘가 미성숙한 냉기와 설렘이 섞여 있었다.그 말 한마디에, 어린 유하의 가슴은 뜨겁게 달아올랐다.그 순간, 유하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됐다.“좋아해요. 많이 좋아해요.”꿈속에서, 유하는 과거의 자신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그리고 그 순간, 꿈은 형체를 바꾸기 시작했다....신혼집.승현은 붉은 리본이 달린 장난감 로봇을 유하에게 내던졌다.눈엔 분노가 가득했고, 그대로 문을 꽝 닫고 나가버렸다.방 안에 떨어진 로봇이, 기계적인 목소리를 내뱉었다.그 속엔 승현 특유의 저음이 겹쳐, 칼처럼 유하의 가슴에 꽂혔다.“소유하, 나는 널 절대 사랑하지 않아.”꿈은 끝이 없을 만큼 흔들렸고, 그 말이 메아리치던 순간, 유하는 숨을 헐떡이며 눈을 떴다.유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머리가 지끈거렸고, 시야는 여전히 흐릿했다.그 흐릿한 시야 너머로, 익숙한 실루엣 하나가 어른거렸다.몽롱한 정신 속에서,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유하는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그림자를 가만히 바라보며, 무의식처럼 입을 열었다.“오승현... 나, 이제 너 안 좋아해.”누군가에게 답하듯, 혹은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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