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그들이 나를 버릴 때, 나는 세상을 가졌다: Chapter 851 - Chapter 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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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1화

유민이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한참 뒤였다.멀겋고 허옇게 부쳐진 그 달걀전 안에는 유하가 이 집에 품고 있던 모든 원망과 증오가 담겨 있었다는 걸.그리고 그것은 결국 터져 나왔다.유민은 아직도 그날을 기억했다.유하에게는 방이 없어서 늘 동생의 방 한쪽에 작은 간이침대를 놓고 잤다. 그날 밤도 유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벌을 받고, 한밤중이 되어서야 방문을 밀고 들어왔다.유민은 잠이 깊이 들지 않아 바로 눈을 떴다.침대 옆에 누나가 앉아 있었다. 어둠 속에서 아무 움직임도 없이.유민은 몸을 일으켜 무슨 일이냐고 물으려 했다.그런데 누나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예전에 유민이 쓰다 버린 책가방을 집어 들고 안에 무언가를 넣기 시작했다.얼마 안 되는 옷이며, 책가지...몽롱하던 유민의 머리가 단번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침대에서 내려오려던 찰나, 누나가 그쪽으로 다가오는 바람에 유민은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유하의 손이 베개 옆, 가방 안을 더듬는 순간에야 깨달았다.유하는 떠나려는 거였다.이상하리만큼 유민도 놀라지는 않았다.크면서 유민 역시 이 집에서 누나를 대하는 방식이 어딘가 잘못됐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누나는 이 집이 편하지 않았다.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그때의 유민은 아무것도 바꿀 힘이 없었다.언젠가는 이런 날이 오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왜 하필 지금인지, 수능 시험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끝나면 얼마든지 멀리 갈 수 있었을 텐데...하지만 그는 묻지 않았다.유민은 눈을 감은 채 어둠 속에서 누나가 더듬거리는 소리를 들었다.그는 누나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집 안의 문들은 전부 잠겨 있었다.열쇠는 유민과 부모님만 가지고 있었고 누나에게는 없었다.유민의 책가방에도 열쇠는 없었다.더듬는 소리가 멀어졌다가 서랍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유민은 눈을 반쯤 뜨고, 어둠 속에서 조급해진 누나의 움직임을 조용히 바라봤다.한 손을 베개 밑으로 넣어, 들키지 않게 몇 번 더듬었다.그리고 다시 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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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2화

다시는 없을 것이다.그리고 유민은 알고 있었다.그해 여름밤에 벌어진 모든 일들, 유하가 알지 못하는 모든 세세한 조각들, 자신이 일부러 베개 밑에 내려놓았던 돈과 열쇠까지.그 모든 것은 영원히, 정말 영원히 유민 혼자만의 기억으로 남을 거라는 걸.두 사람의 이별은 그 밤부터 시작되었다.하지만 유민은 후회하지 않았다.유민이 유일하게 후회하는 건, 언제부터인가 기억 속의 누나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이었다.자신을 사랑해 주던 누나.하지만 그 뒤로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다.유민의 미래에는 더 이상 그런 사람은 없었다.그렇게 곁을 지켜주던 존재도 없다.유민의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목이 쉬도록 울고, 머리가 어지러워질 때가 되어서야 유민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쪼그려 앉아 저릿해진 다리를 잠시 풀고 돌아섰다.눈에는 끝도 없이 눈물이 맺힌 채 작은 언덕을 향해 달려갔다.잠겨 있는 나무문 앞에 멈춰 서서 있는 힘껏 문을 두드렸다.“누나, 미안해! 미안해! 지금까지 계속, 계속 미안했어. 아빠 엄마한테도... 다 미안하고... 그리고, 고마워.”‘고마워. 내가 어렸던 그 시간을 지켜줘서...’‘미안해. 누나를 잃어버려서...’유민은 알고 있었다.유하는 잠들지 않았지만, 이 문은 이제 다시는 자신을 향해 열리지 않을 거라는 것도.그래도 멈추지 않고 두드렸다.마지막으로 정말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을.누나에게.자신의 누나에게.“누나, 꼭 행복해야 해! 꼭, 꼭 웃으면서 살아!”...문을 두드리던 소리가 멎었다.그 뒤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유하는 마당 한가운데 놓인 대나무 평상에 앉아 있었다.눈은 텅 비어 있었다.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어떻게 웃을 수 있을까?유하에게는 이 세상에 더 이상 가족이 없었다.자기 자신밖에 남지 않았다.정말로 자기 혼자였다.유하는 조심스럽게 평상 위에 몸을 눕혔다.마른 대나무가 삐걱거리며 소리를 냈다.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았지만, 유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채 그대로 누워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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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3화

“언제부터 따라온 거야?”안채의 나무 소파 위에 유하는 누운 채로 천장의 나무 들보를 바라보며 무덤덤하게 물었다.그 옆에 앉은 사람은 승현이었다. 승현은 손으로 유하의 배를 천천히 문지르고 있었다. 정확히는 계속 뒤틀리듯 아픈 위장을 조심스럽게 풀어주듯 어루만지고 있었다. 질문을 듣고서야 승현은 숨기지 않고 말했다.“네가 떠난 그날부터.”‘그래서였구나...’‘밤마다 어김없이 몸 위로 덮여 있던 외투가...’‘이 사람은 애초에 숨길 생각도 없지.’유하는 더 묻지 않았다. 왜 그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지도, 왜 지금 다시 나타났는지도 알고 싶지 않았다.다만 예상하지 못했을 뿐이다.위장이 아파서 정말로 정신을 잃을 정도가 될 줄은...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상할 것도 없었다.이틀 동안 시골에 내려와서 제대로 먹은 게 없었다.기분도 엉망이었고 이런 상태에서 위장이 버틸 리 없었다.그때, 근처 마을 사람 집에서 소박한 밥을 사 온 태건이 안으로 들어왔다.아무 말 없이 상 위에 음식을 내려놓고는 그대로 나갔다.유하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대신 승현이 그녀를 반쯤 안아 올리듯 끌어당기며 죽 그릇을 들어 입가로 가져왔다.낮은 목소리로 달래듯 말했다.“따뜻한 거라도 조금 먹어. 그래야 다른 것도 할 힘이 생겨.”유하는 고개를 돌렸다.“이렇게 먹기 싫으면, 내가 먹여줄게.”승현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늘 그렇듯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이번엔 유하가 움직였다. 하지만 굶어서 힘이 빠진 상태라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결국 승현의 품에 기대다시피 한 채 그가 안정적으로 그릇을 받쳐 주는 동안 위장약을 섞은 죽 한 그릇을 겨우 삼켰다.딱 그 한 그릇뿐이었다.더는 들어가지 않았다.죽을 먹고 나니 위장은 한결 나아졌고 기운도 아주 조금 돌아왔다.유하는 승현에게서 몸을 떼고 조금 떨어진 나무 의자에 기대어 앉아 숨을 골랐다.승현은 말리지 않았다.그녀가 물러나게 두고, 자신은 근처에서 사 온 남은 아침밥을 먹었다.김치, 찐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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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4화

유하는 잠시 말을 멈췄다.“할머니, 고모할머니도 가셨어요... 이미 알고 있죠?”말을 끝내고 나서도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기도 했고, 목이 막힌 것처럼 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꽤 시간이 흐른 뒤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할머니랑 고모할머니는 이제 같이 있으니까... 안 외롭겠죠?”그 뒤에 이어질 말은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하지만 그 말은 분명히 마음속에 있었다.‘나는 너무 외로워... 너무 보고 싶어.’유하는 미소를 지은 채 들꽃을 든 손을 조금 더 앞으로 내밀어 묘비에 살짝 닿게 했다.그리고 웃으며 말했다.“고모할머니가 마지막에 한 말이 이거였어요. 저한테... 할머니께 꽃 한 송이 전해 달라고.”눈물이 눈가에 차올라 살짝 올라간 입꼬리를 타고 흘러내렸다.그녀는 아직 하고 싶은 말은 있었다.하지만 이제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무슨 말을 해도 부족하고, 무슨 말을 해도 넘칠 것 같았다.유하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조용히 절을 했다.땅을 짚고 일어나는 순간, 정면에서 바람이 불어왔다.밀밭이 크게 일렁였고, 묘비 앞의 들꽃도 가볍게 흔들렸다.코끝으로 밀 향이 밀려들었다.어릴 적 마당에서 말리던 곡식 냄새와 같은 향이었다.잘 마른 햇볕의 냄새였다.유하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그대로 몸을 돌려 밀밭 사이를 지나 앞으로 걸어갔다.뒤돌아보지 않았다.그래서 보지 못했다.여자의 뒤를 계속 따라오며,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승현이 묘비 앞에 멈춰 서서 잘 여문 황금빛 밀 이삭 하나를 내려놓는 모습을.들꽃 옆에 가지런히 놓고, 무릎을 꿇어 몇 번 깊이 절을 한 뒤에 일어섰다.그리고 아주 낮게 말했다.“걱정 마세요.”...묘지에서 내려온 뒤, 유하는 산으로 향했다.고향 마을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유하는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돌산을 올랐다.돌산이라는 이름 그대로 풀이나 나무는 거의 없고 온통 돌뿐인 산이었다.예전에는 광산으로 쓰이던 곳이라,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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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5화

승현은 주변을 한 번 둘러봤다.손은 놓지 않았지만, 유하를 절벽에서 끌어내지도 않았다.대신 손을 잡은 채로, 절벽 가장자리에 함께 앉았다.그리고 웃으며 말했다.“딱 좋네. 여기서 해 지는 거 보자.”“이 손 놔.”유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승현은 멀어지는 하늘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타오르던 빛을 잃고 천천히 가라앉는 해를 향한 시선이었다.유하를 옆에 둔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밀어도 돼.”‘밀어?’유하는 바로 옆에 있는 절벽을 흘끗 보았다.지금 이 상태에서 조금만 몸을 비틀어도, 손을 뿌리치는 정도의 움직임만 있어도 이 거리라면 승현은 그대로 아래로 떨어질 수 있었다.이 높이면 무사할 수 없었다.‘무슨 소리야?’그 생각이 그대로 말이 되었다.“무슨 뜻이야?”승현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유하를 보았다.산 위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절벽은 바로 뒤에 있었지만, 얼굴에는 아무렇지 않은 웃음이 걸려 있었다.목소리도 마찬가지였다.담담해서 오히려 말이 더 날카롭게 꽂혔다.“뜻은 그거야.”“지금 나 마음에 안 들면, 그냥 밀어. 그러면 손 놓을게.”“태건이도 여기 있잖아. 증인 서 줄 거야. 내가 발 헛디딘 거고, 넌 잘못 없어.”“미쳤어...”유하는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그렇게 둘은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하늘이 서서히 주황빛으로 물들고 완전히 해 질 무렵이 되자 공기도 가라앉았다.이곳에서 내려다보니, 박씨 가문의 집마다 하나둘 불이 켜지고 있었다.유하는 멍해졌다.꽉 잡힌 손바닥에 땀이 배어 나와 끈적거렸다.불쾌해서 손을 살짝 움직였지만, 오히려 더 세게 잡혔다.“이거 놓으라고.”오래 앉아 있던 탓에 짜증이 섞였다.“놓으면 그다음엔 뭐 할 건데?”승현은 해에서 시선을 떼고 유하를 똑바로 바라봤다.표정은 여전히 차분했다.“너랑 무슨 상관이야!”“하...”승현이 짧게 웃었다.가늘게 휘어진 눈매가, 석양빛을 받아 한층 부드러워 보였다.목소리는 낮고 느렸다.한숨처럼 흘러나왔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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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6화

승현은 오래전부터 알았다.자신은 누군가를 제대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다정하고 완벽한 연인이 될 수 있는 사람도 아니라는 걸.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승현은 유하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지금이 딱 그랬다.유하가 느끼는 고통, 가족을 잃고 세상과 분리된 듯한 감각, 정신을 붙잡은 채 조용히 무너져 내리는 상태를 승현은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하지만 그는 그 곁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서 있기만 했다.어디서부터 위로해야 하는지도, 어디서부터 말려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아주 잠깐, 청산이라는 이름이 떠올랐다.그라면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고.하지만 생각은 거기까지였다.승현은 인정할 수 없었다.유하를 청산에게 넘겨주는 것도, 유하를 놓아주는 것도.유하가 지금 이만큼 무너져서 살고자 하는 마음조차 희미해졌다는 걸 알면서도, 승현은 유하의 손을 놓을 수 없었다.그래서 결국 생각을 바꿨다.그리고 답을 찾았다.설득할 수 없다면, 위로할 수 없다면, 막을 수 없다면...그럼 함께 가면 된다고.살아도 함께, 죽어도 함께.곰곰이 생각해 보면, 승현은 지금까지 가족을 위해, 가문을 위해 너무 많은 것을 해왔다.자기 인생의 선택권까지 내놓으면서.그 대가에는 승현의 결혼도, 승현의 사랑도 포함되어 있었다.그리고 지금 그의 연인, 그의 아내, 그의 유하가 가장 사랑하던 사람을 잃고 완전히 절망해 있는데, 그가 내밀 수 있는 것은 너무도 적었다.목숨 하나뿐이었다.그마저도 유하가 언제든 버릴 수 있는 목숨.하지만 승현은 그런 사람이었다.그에게 사랑은 이것뿐이었다.이 사랑은 아프고 숨 막혔지만, 그가 줄 수 있는 가장 강렬한 것이었다.목숨과 심장과 영혼을 한꺼번에 내놓는 방식.뼈를 뽑고 골수를 파내는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내미는 것.그래도 그것은 사랑이었다.모든 걸 태워버릴 수 있을 만큼 뒤틀린 사랑.유하는 거절할 수 없었다.승현은 그녀가 거절하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정 거절하고 싶다면, 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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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7화

너무 아팠다.유하의 눈가에 붉은 기운이 번졌다. 손은 여전히 승현의 가슴 위에 얹혀 있었지만, 끝내 밀어내지는 못했다.유하는 이를 악물었다.“난 너랑 같이 죽기 싫어. 남들이 알면 무슨 사랑해서 같이 죽은 줄 알 거 아냐? 그런 관계로 엮이기 싫어. 죽고 싶으면 너 혼자 죽어. 나까지 끌고 가지 마.”“그래.”승현은 웃었다.말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그럼 집에 가자. 집에 밥도 다 돼 있어.”“집에 가서 밥 먹자.”...유하는 절벽 바닥에서 위로 겨우 끌어올려졌다.가까스로 절벽 가장자리에 제대로 섰다.이미 어두워진 뒤였다.아래를 내려다보니 새까맣게 가라앉아,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덩이 같았다.다리에 힘이 빠졌고, 몸도 따라 흔들렸다.‘내가 미쳤었나?’이렇게 위험한 곳에서 이렇게 오래.유하는 뒤로 물러나려다 몸이 휘청했다.같은 자세로 오래 앉아 있던 탓에 하체가 다 저려 있었다.조금만 움직여도 감각이 몰려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옆으로 쏠렸다.하지만 바닥에 쓰러지지는 않았다.몸을 붙잡아 세워준 뒤,승현은 그녀 앞에 반쯤 쪼그려 앉아 어깨를 두드렸다.“타.”유하는 가만히 있었다.승현이 웃었다.“왜, 우리 여보도 자기 남편 힘들까 봐 배려해 주는 건가? 난 뭐 괜...”말이 끝나기도 전에 승현은 낮게 숨을 내뱉었다.유하가 남자의 등에 세게 몸을 던지듯 엎드리며 머리를 한 번 내리쳤다.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승현은 낮게 웃었다.유하의 다리를 뒤에서 끌어 올려 허리에 고정하고, 그대로 그녀를 업었다.한 걸음 한 걸음, 흔들림 없이 산길을 내려왔다.논길을 지나, 작은 언덕 위의 집까지 그대로 업고 갔다.멀리서부터.유하는 멍해졌다.수십 년 동안 쓰이지 않던, 유하와 고모할머니, 그리고 할머니의 집에서 어느새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집 안에는 불도 켜져 있었다.나무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마당 한가운데, 대나무 평상 옆에 상이 놓여 있었다.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들이 가득 차 있었다.“산 올라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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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8화

유하의 귓가에 낮은 웃음이 스쳤다.“걱정 마. 안 무너져.”“내려가.”이번엔 유하도 사정없었다.“안 내려가. 그렇게 내가 굴러떨어지길 바랐으면, 아까 산에서 왜 안 밀었어.”승현은 일부러 사람 약을 올리듯 말했다.“너...!”유하는 치밀어 올랐다.손에 피 묻히기 싫어서 안 밀었다는 게... 그게 그렇게 비아냥거릴 일인가?‘진짜 후회된다.’분노가 치밀자 유하는 몸을 홱 돌려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주먹을 쥐고 휘두르려 했다.요즘 유하의 감정 상태는 정말 엉망이었다. 아주 조금만 건드려도 터질 지경이었는데, 하필 이 남자는 늘 정확하게 그 선을 밟았다.휘두른 주먹은 허공을 가르지 못했다.승현이 손목을 잡았다.차가운 손을 자신의 손바닥 안에 감싸 쥐며 웃었다.“손 차갑네. 밥 제대로 안 먹어서 힘도 없잖아. 나 때릴 힘도 없고.”유하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아, 그냥 다 부숴버릴까?’머리로 들이받을까 생각하던 찰나, 옆에서 갑자기 승현의 목소리가 내려앉았다.“너 날 좋아하잖아. 그렇지, 유하야. 여보, 너는 날 좋아해.”‘미쳤나?’“무슨 잠꼬대를 하는 거야?!”유하가 날 선 목소리로 쏘아붙였다.“꺼져. 죽어!”“너 날 좋아해.”마당의 불은 이미 꺼져 있었다.달빛만이 내려앉아 있었다.은빛 달 아래에서 승현의 얼굴은 지나치게 또렷했다.잘 다듬어진 이목구비, 눈부실 정도의 미소.승현은 다시 말했다.이번에는 거의 즐기는 듯이.“너 날 좋아해.”“아니야!”유하의 관자놀이가 뛰었다.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그 익숙한 숨 막힘이 다시 올라왔다.유하는 힘껏 손을 빼냈다. 조금 데워졌던 손이 빠져나오자마자 그대로 그 얼굴을 후려쳤다.“이런 짓 몇 번 한다고, 뭐가 바뀔 줄 알아?”“난 네가 싫어.”“죽었으면 좋겠어.”“알아들어!”승현은 맞았는데도 웃고 있었다.그리고 갑자기 다가와 유하의 손목을 붙잡고 몸을 눌렀다.귓가에 입술을 붙인 채 낮게 웃으며 말했다.“너는 날 좋아해.”말이 끝나기도 전에 승현은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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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9화

“콜록, 콜록...”다음 날 아침, 유하는 기침을 하며 잠에서 깼다.마당 쪽에서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전부 부엌에서 흘러나오는 연기였다.대나무 침상을 보았다.승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제 누군가가 밥을 하겠다고 했던 말이 떠오르자 유하는 순간 몸이 굳었다. 코를 막은 채 부엌으로 달려갔지만, 안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밖으로 나오던 승현에게 그대로 안겨 끌려 나왔다.“일단 들어가지 마.”말을 남긴 뒤 승현은 다시 부엌 안으로 들어갔고, 한참이 지나서야 연기가 가라앉았다.부엌에서 나온 승현은 얼굴이며 옷이며 검은 그을음투성이였다. 그 모습을 본 유하는 표정이 굳은 채로 승현을 노려봤다.“우리 집 태우려던 참이야?”“실수야, 실수.”승현은 난처한 기색이었다.그는 그 화덕이 그렇게 다루기 어려울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불이 약해도 안 되고, 세도 안 되고, 도무지 조절되지 않았다. 주방에 막 들어선 초보자에게는 너무 가혹한 구조였다...승현은 연기에 뒤덮인, 값비싼 외투를 아무렇지 않게 벗어 던졌다.샤워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다.유하가 세수를 마치고 나오자, 식탁 위에는 재료조차 알아볼 수 없는 새까만 음식 몇 접시가 놓여 있었다. 유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화내지 말자, 화내지 말자.’집이 타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관자 쪽이 지끈거렸다.“그게, 나 평소에 요리 이렇게 안 해. 진짜로...”승현은 식탁 옆에 앉은 채 유하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애써 설명했다.“저 화덕이 너무 어려워. 전기로 하는 거면 이렇게 안 되는데...”설명이 너무 궁색하다고 느꼈는지,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유하는 입꼬리를 살짝 당기며 웃었다.“평소에 요리도 해?”그동안의 세월 동안 유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승현이 요리를 하는 모습이라니?말이 안 됐다.이건 완벽하게 손에 물 묻히지 않고 살아온 사람이었다.그가 먹어온 모든 끼니는 집의 가정부들이 차려준 것이거나, 아니면 유하가 만든 것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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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0화

마음 한켠이 가득 차오른 채로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여기는 다 정리됐어. 다시 오고 싶어지면 언제든지 올 수 있어. 내가 같이 있을게.”유하의 뒤를 따라오던 승현이 말했다.유하는 고개를 저었다.유하는 마당 한가운데에 서서 사방을 둘러봤다. 일부러 기억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었다. 눈을 감아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집 전체의 모습이었다.유하는 짙은 적색의 대문 앞에 섰다.마지막으로 한 번 더 바라봤다.두 손으로 문고리 두 개를 잡아당겨, 아주 천천히 문을 닫았다. 자물쇠를 걸고 고리를 채우는 바로 그때, 착각인지도 모를 소리가 들려왔다.문 안쪽에서 흘러나온 목소리였다.“유하야.”익숙한, 노인의 목소리였다. 유하는 눈시울이 단번에 붉어졌다.이마를 문에 기댄 채 낮고 억눌린 울음소리를 냈다.승현은 작은 흙 둔덕 위에 멀찍이 서 있었다. 바람에 실려 오는 울음소리를 듣고 무의식중에 다가가려 했지만, 짙은 적색 대문에 몸을 기대고 어깨를 떨고 있는 유하를 보는 순간, 끝내 발걸음을 멈췄다.어떤 일은, 어떤 이별은... 다른 사람이 끼어들 수 없는 것이었다.승현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문에 기대 몸을 접은 채 소리를 눌러 울고 있는 유하를 가만히 바라봤다. 가늘고 작은 몸이 떨릴 때마다 그 장면을 마음 깊숙이 새겼다.승현은 다시는 유하의 울음을 듣고 싶지 않았다.울음이 조금 잦아들었다.이마를 문에 댄 채 여전히 목이 멘 상태로 유하는 웃는 얼굴로 조용히 말했다.“고모할머니, 할머니, 잘 가요.”“고마워요.”‘나를 사랑해줘서.’...유하는 가능한 한 빨리 고모할머니가 계시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다.소성란이 남긴 것들을 보기 위해서.남겨진 말을 듣기 위해서.그래서 유하는 승현이 마련한 이동 수단을 거절하지 않았다. 최대한 빠르게 W시 국제공항으로 향했고 쉬지 않고 이동했다.옆에서 함께 따라온, 아무리 해도 떼어낼 수 없는 승현은 신경 쓰지 않았다.유하는 로즈 가든으로 돌아왔다.하지만 물건을 건네기 전에 집사는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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