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하는 싱크대 앞에 서서 채소를 씻으며 슬쩍 고개를 돌려 주방으로 따라 들어온 승환에게 말했다.“의사 선생님이 그러시더라. 네가 식사도 제때 안 하고, 굶을 때도 많다고. 앞으로는 그렇게 살지 마. 이번엔 맹장이었지만, 다음엔 그냥 넘어가는 일이 아닐 수도 있어.”이미 잘라낸 맹장 얘기를 꺼내며 눈을 흘기자, 승환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습니다, 누나.”그러면서 슬쩍 유하 옆으로 다가와 채소 손질을 도왔다.잔소리를 들으면서도 입가엔 묘하게 부드러운 미소가 맴돌았고, 늘 승환을 감싸던 어둡고 무거운 기운도 한결 가벼워진 듯했다.잠시 후, 승환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누나, 저 진심이에요. 나중에 이혼하게 되면 재산 분할할 때, 그냥 저도 같이 데려가주세요. 자식으로 치든, 동생으로 치든, 같이 살면 되잖아요.”“지금 누나보다 한참 어리고 미성년자니까, 노후엔 제가 누나 부양할 수 있어요.”유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얘는 대체 언제쯤 이 드립을 그만둘까?’허탈하게 웃으면서도, 유하는 결국 몇 마디 조심스럽게 덧붙였다.“나중에 너도 좋아하는 사람 생기고, 가정 꾸리게 되면, 그땐 또 생각이 달라질 거야.”하지만 승환은 고개를 들고 눈을 또렷하게 맞추며 말했다.“전 결혼 안 해요.”짧고 단단한 대답이었다.“어릴 때부터 전 그냥 여기에 버려졌잖아요. 가족이라는 사람들, 제가 어디 사는지, 어떻게 사는지 알아도 한 번도 와보거나 연락한 적 없어요. 그게 제 ‘혈육’이라는 사람들이에요.”“가족이라는 개념, 제겐 그냥 가장 비논리적이고 불합리한 단어예요. 누나는, 그중 유일한 예외예요.”그 말에 유하는 잠깐 말문이 막혔다.‘이걸... 고맙다고 해야 하나, 슬프다고 해야 하나...’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고개를 숙이고 다시 채소를 씻었다....식사는 금방 준비됐다.맑은 국 하나에, 유하가 뚝딱 만들어낸 반찬 몇 가지.그리고 진하게 끓인 단호박과 조밥죽.늘 비어있던 집안에 따뜻한 국물과
Baca selengkapny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