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현은 더 이상 유하의 유일한 사람이 될 수 없었다.준서 역시 더는 유하의 유일한 아이로만 남지 못했다.소성란을 제외하면, 유하의 곁에, 유하의 삶 안에 다시 하나의 중요한 존재가 들어온 셈이었다. 그것도 유하가 스스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허락하고, 늘 닫아 두기만 하던 세계의 문을 직접 열어 맞이한 사람이었다.그 의미는 전혀 같지 않았다.승현은 몸을 약간 숙였다. 마디가 뚜렷하고 보기 좋게 큰 손이 조리대 위를 짚었다. 짙은 검은색 몸에 붙는 니트 소매는 걷혀 있었고, 드러난 아래팔에는 단단히 긴장한 근육이 도드라졌다. 핏줄도 옅게 불거져 있었다. 가슴은 천천히, 그러나 무겁게 들썩였고 호흡은 점점 가빠졌다.‘계속 참아야 하나?’이미 양보할 만큼 양보했고, 맞출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유하에게 맞추고 있었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까지 밀어붙이는 걸까?지금 당장 참고 있던 걸 놓아 버리면, 유하를 집 안에 가둬 두고 재윤과 떼어 놓는 일쯤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해 버리면, 그다음은?그 뒤에 따라올 결과를 승현이 감당할 수 있을까?유하가 승현을 더 미워하게 만들고, 더 역겨워하게 할 생각인가?승현이 바라는 게 정말 그런 것이었나?승현은 눈앞에서 뿌옇게 김이 오르는 뚝배기를 바라봤다. 공기에는 고기 냄새와 약재 향이 짙고 풍부하게 섞여 퍼져 있었지만, 승현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전혀 다른 장면이었다.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눈을 감고 수술실에 누워 있던 유하.배는 처참하게 짓이겨져 있었고, 피가 멈추지 않고 흐르던 모습.묘비 앞에서 아무 표정도 없이 서 있다가,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던 유하.숨결마저 죽어 버린 사람처럼 가라앉아 있던 유하.그 뒤로 이어졌던 분노, 무너짐, 따져 묻는 목소리, 두려움, 공포, 겁, 통제하지 못할 만큼 흔들리던 감정까지.수많은 장면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 마침내 한 얼굴 위에서 멈췄다.열아홉 살의 유하였다.새하얀 옷을 입고 눈발 속에 서 있었다. 머리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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