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맨스 / 나를 버린 그들에게 / Chapter 201 - Chapter 210

All Chapters of 나를 버린 그들에게: Chapter 201 - Chapter 210

260 Chapters

제201화

오늘 입은 실크 원피스는 천이 얇아서 손이 닿자 간지러웠다.강아연이 옆으로 슬쩍 몸을 피하자 성규연이 허벅지를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그렇게 멀리 피할 건 뭐야? 약만 발라 달라는 건데. 아니면 성씨 가문 사모님은 내가 다른 거라도 해 주길 바라는 건가?”성규연이 눈썹을 치켜들며 짓궂게 물었다.“그런 거 아니거든요!”강아연이 반박했다.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성규연은 당황한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올리더니 팔을 강아연의 다리 위에 가로질러 얹었다.“그럼 치료 시작해.”그사이 진 비서가 시동을 걸고 경성으로 출발했다.차창 밖 풍경이 빠르게 뒤로 흘러갔다. 넓게 펼쳐진 자작나무 숲을 지날 때는 햇빛이 가려져 차 안이 어두워졌다. 성규연의 얼굴 절반이 그림자에 잠겼다.뚜렷한 이목구비는 깊고 잘생겼다.정장 재킷은 옆에 아무렇게나 벗어 두었고 검은 셔츠의 단추 두 개가 풀려 있었다. 단정한 분위기에 여유로움까지 더해져, 보는 사람을 심연으로 끌어당길 듯한 묘한 매력이 흘렀다.‘잘생긴 사람은 위험하다니까.’강아연은 입술을 꾹 다물고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구급상자를 열어 솜에 소독약을 묻힌 뒤 말라붙은 피를 닦다가 실수로 상처를 건드렸다.“윽...”옆에 앉은 남자가 숨을 들이켰다.강아연은 얼른 손길을 부드럽게 바꾸고 차근차근 약을 바른 뒤 붕대를 감았다. 마지막에는 리본까지 묶었다.성규연은 자기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리본을 보고 피식 웃었다.“유치하긴.”“유치하면 직접 하시든가요.”강아연이 작게 중얼거렸다.“뭐라고?”성규연이 흘끗 보았다.강아연은 대꾸하지 않고 남은 물건을 구급상자에 넣으려 했다. 그때 성규연이 손을 뻗어 뚜껑을 닫더니, 강아연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손목을 붙잡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마침 차가 급커브를 도는 바람에 강아연은 그대로 성규연의 품에 쓰러졌다.“윽!”이마가 단단한 가슴에 부딪혔다. 하지만 그럴 틈도 없이 배가 부딪치지 않도록 손으로 아랫배부터 감쌌다.손바닥에 닿은 건 성규연의 손등
Read more

제202화

강아연은 대답하지 않았다.애초에 입맞춤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다. 지난 세월 성규연의 입맞춤은 언제나 일방적이었다. 강아연의 기분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욕망과 화풀이를 쏟아 내는 수단일 뿐이었다.그래서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낭만적이고 애틋한 입맞춤이 어떤 것인지 거의 알지 못했다.강아연의 기억 속 성규연과의 입맞춤에는 사나운 기세와 거부할 수 없는 강압, 입술이 터지고 혀가 얽힐 때 느껴지던 피비린내뿐이었다.모두 좋지 않은 기억이고, 불쾌한 감각이었다...그러니 지금 그런 질문을 하는 성규연이 우습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강아연은 고개를 돌려 손가락을 피했다. 숨은 아직 고르지 못했지만 목소리는 평온했다.“오늘 여기까지 왔으니 먼저 중요한 얘기부터 하죠.”“역시 성씨 가문 사모님이네. 이런 순간에도 진지할 수 있다니.”원하는 대로 강아연의 부드러운 반응을 얻은 성규연은 기분 좋게 등받이에 기대었다.“말해 봐. 조건이 뭔데?”두 사람 사이의 일을 이야기하려는 줄은 알고 있었다.성규연이 알아들었으니 강아연도 더는 머뭇거리지 않았다.“아버지가 최상의 의료 환경에서 치료받아 병을 고칠 수 있게만 해 주신다면, 저도 프리스 씨 앞에서 성씨 가문 사모님 역할을 제대로 할게요...”“프리스 앞에서만이 아니야.”성규연이 덧붙였다.“네가 내 아내라고 공식 발표한 이상 앞으로 사업 행사에도 같이 참석해야 해.”함께 나서는 모든 공식 석상에서 아내인 척해 달라는 뜻이었다.강아연은 미간을 찌푸렸다. 원래 그런 자리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지금 몸 상태로는 불편한 점도 많았다. 혹시 현장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면...“걱정하지 마. 임신한 사람을 자꾸 밖으로 끌고 다닐 정도는 아니니까.”성규연의 시선이 배로 향했다. 이제 겨우 임신 11주라 티도 나지 않았지만, 그 안에 작은 생명이 있다는 사실이 어렴풋이 실감 났다.묘한 기분에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한 달에 큰 행사 하나만 같이 가면 돼.”성규연이 이미 양보했으니 더 거절하
Read more

제203화

예전의 2천만 원보다 100배나 많은 돈이었다. 성규연이 갑자기 씀씀이가 커진 게 놀라웠지만, 강아연은 별다른 표정을 짓지 않았다.성씨 가문 사모님이니까 받을 수 있는 대우였다. 예전에는 성규연의 눈에 떳떳하게 내세울 수 없는 여자에 불과했기에 2천만 원으로 적당히 달랬다.사랑할 때는 2천만 원짜리였는데, 사랑하지 않게 되자 20억짜리가 되었다.강아연은 자조적으로 웃었다. 역시 사랑만큼 값싼 건 없었다. 특히 성규연을 향한 사랑은 더더욱 그랬다.“이제 만족해?”성규연은 강아연을 보다가 시선을 배로 내리며 드물게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할머니도 네 임신 소식을 알면 좋아하실 거야.”할머니는 줄곧 두 사람이 아이를 하나 더 낳길 바라셨다.곧 태어날 작은 생명이 성준서와 함께 자신을 아빠라고 부를 생각에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아버지가 된다는 기쁨을 자신이 느끼고 있었다.성규연은 조금 놀랐지만 싫지 않았다. 오히려 그 기분을 즐기고 있었다.그러나 강아연이 고개를 들었다.“마지막 조건이 있어요. 당분간 다른 사람들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아요. 비밀로 해 주세요.”성규연의 미소가 사라졌다. 눈에 어리던 다정함도 서서히 식어 갔다.당장 봉연우 일행에게 소식을 전하고 싶었다.예전에는 이런 걸 굳이 남에게 알리고 싶다는 생각조차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째서인지 자신이 또 아버지가 된다는 소식을 꼭 봉연우 일행에게 전하고 싶었다.하지만 강아연은 비밀을 원했다. 생각이 정반대였다.“왜?”성규연이 물었다. 목소리에 은근한 불쾌감이 섞였다.강아연은 애초에 임신 사실도 알리지 않은 채 조용히 떠났었다. 이제 돌아와서도 소식을 공개하려 하지 않으니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강아연, 혹시 내가 강명우를 치료해 주면 그대로 떠날 생각인 거야?”성규연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강아연은 흠칫하며 무릎 위에 얹은 손가락을 오므렸다.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렸다.성규연이 단번에 속마음을
Read more

제204화

성규연은 열 살 전에도 모정을 느껴 본 적이 없었고, 그 뒤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엄마에게 자식을 잃는 일이 얼마나 큰 상처인지 몰랐다.하지만 그때 강아연의 얼굴에 떠오른 절망만큼은 보았다. 그 처연한 표정이 가슴을 찔렀고,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그래서 김연화를 찾아갔다.성준서가 강아연 곁으로 돌아온 날, 창백한 얼굴에 오랜만에 미소가 피어났다. 되찾았다는 기쁨과 또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뒤섞인 복잡한 미소였다.성규연은 멀찍이 서서 오랫동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지금 다시 강아연의 얼굴에 같은 표정이 떠올랐다.다만 성규연의 마음은 그때와 달라져 있었다.차갑게 지켜보기만 하던 자리에서 한 걸음 앞으로 나선 것이다.“비밀로 해 줄게.”성규연이 진지하게 말했다.“아이가 태어나도 절대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게 할게.”강아연은 놀랐다. 성규연이 약속을 해 준 건 처음이었다.“하지만 다시 멋대로 떠날 생각은 하지 마.”성규연의 목소리에 경고가 실렸다.“내가 강명우를 살릴 수 있다면, 감옥에서 병으로 죽게 만들 수도 있다는 걸 잊지 마.”강아연은 손끝에 힘을 주었다. 성규연이라면 정말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성규연은 순순히 받아들이는 강아연이 마음에 들어, 손을 뻗어 어제 자신이 깨물어 남긴 자국이 있는 쇄골을 손끝으로 만졌다.어제는 너무 세게 깨물어 살이 터지고 피까지 났다. 지금은 옅은 딱지가 앉아 있었다.“아직 아파?”성규연이 물었다.강아연은 고개를 저었지만 무의식중에 뒤로 물러났다. 아직도 그의 손길이 익숙하지 않았다.성규연은 눈을 가늘게 뜨고 손을 거둔 뒤 등받이에 기댔다.“네 조건 세 가지는 다 들어줬으니 나도 조건이 있어.”“뭔데요?”“아직 생각 못 했어.”성규연이 느긋하게 흘끗 보았다.“생각나면 말해 줄게.”강아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경계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성규연을 바라봤다.“걱정하지 마. 더 요구하지는 않을 테니까. 너 세 가지, 나 세 가지. 공평하잖
Read more

제205화

강아연은 심소연에게 답장을 보내는 성규연의 진지한 옆모습을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역시 성규연이 이렇게 진지하고 참을성 있게 대하는 사람은 심소연뿐이었다.지난번 오씨 집안 연회에서 있었던 일도 두 사람의 관계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은 모양이었다.강아연은 심소연의 관대함이 조금 놀라웠다. 좋아하는 남자가 사람들 앞에서 다른 여자를 아내라고 대대적으로 발표한 걸 참아 내다니.한편으로는 의문도 들었다.‘성규연과 심소연은 서로 잘 알고 오랫동안 함께 일해 왔는데, 왜 심소연을 아내로 선택하지 않았을까?’사이도 좋고 서영란도 일찌감치 심소연을 며느릿감으로 점찍었다. 서로 사랑하는 데다 집안 어른들의 뜻까지 맞으니 더할 나위 없지 않은가.반면 자신은 남편의 사랑도, 시댁의 인정도 받지 못했다. 성규연을 향한 맹목적인 사랑 하나만 믿고 무작정 결혼했다.이제 와 돌아보니 그때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우스울 지경이었다.강아연은 숨을 내쉬며 눈시울에 번지는 쓰라림을 꾹 참고 시선을 돌렸다.경성으로 가는 내내 성규연은 심소연과 메시지를 주고받느라 바빴고 강아연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강아연도 눈치껏 말을 걸지 않았다. 그런데 임신 호르몬 탓인지 감정이 쉽게 흔들려 가슴 한구석이 답답했다....회사에 도착하자 성규연은 먼저 내렸다. 진 비서는 지시대로 강아연을 보석상에 데려다주었다.강아연은 화려한 반지가 진열된 유리 진열장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지만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마음에 드시는 게 없으세요?”직원이 물었다.강아연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다른 디자인도 많으니까 더 둘러보세요.”직원이 친절하게 설명했다.“마침 최근에 특별한 반지가 하나 들어왔거든요.”직원은 강아연을 유리 쇼윈도 앞으로 안내했다.확실히 다른 반지보다 훨씬 아름다웠다.정교하게 커팅된 화이트 다이아몬드 주위로 작은 다이아몬드가 촘촘히 박혀 있었다. 조명을 받을 때마다 눈 부신 빛이 쏟아졌다.“이거 포장해 주세요.”강아연의 시선이 반지에 머물렀다. 하지만 입을 열
Read more

제206화

성규연은 40억을 선뜻 내줬다. 아내인 강아연이 요구해 겨우 받아 낸 건 20억인데.역시 성규연이 돈을 얼마나 쓰느냐는 아내라는 지위가 아니라, 상대를 얼마나 아끼느냐에 달려 있었다.그제야 강아연은 성규연이 왜 자신을 아내 자리에 앉혔는지 알 것 같았다.말을 잘 듣고 필요할 때 아내 연기를 해 줄 사람도 필요하고, 마음이 통하고 자신을 잘 이해해 주는 연인도 필요한 것이다.공식적인 아내에게는 그 나름의 쓸모가 있고, 비밀 연애에는 그 나름의 짜릿함이 있으니까.참 여러모로 알뜰하게도 챙겼다.최근 성규연의 행동을 보며 혹시 자신을 조금씩 신경 쓰기 시작한 건 아닐까 기대했던 게 바보 같았다.우습기 짝이 없었다.강아연은 입을 다물고 차분한 표정을 유지한 채 자리를 떠나려 했다.하지만 심소연이 먼저 앞을 막았다. 목소리에는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강아연 씨, 규연이 공식적으로 아연 씨를 아내라고 발표했다고 해서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착각하지 말아요. 그쪽 세계에는 남들 보기만 좋은 부부가 널렸어요. 특히 규연이처럼 돈도 권력도 있는 남자 곁에 여자가 하나뿐일 리 없잖아요.”틀린 말은 아니었다. 강아연도 그런 모습을 여러 번 봤다. 재벌가 사모님들은 남편이 결혼 생활에 싫증을 내고 밖에서 다른 여자를 만나더라도 대개 모른 척했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비밀이었다.결혼으로 이미 이해관계가 한데 묶여 있었으니 한쪽이 잘되면 같이 잘되고, 망하면 같이 망했다. 그래서 남편의 스캔들을 직접 수습하거나, 심지어 남편에게 어울릴 만한 내연녀를 찾아 주는 아내도 있었다.우습게도 강아연은 성규연이 자신을 찾아온 것이 특별한 감정 때문이라고 순진하게 믿었다. 하지만 아내라고 발표한 순간부터, 앞으로 자신이 겪을 일도 다른 재벌가 사모님들과 다르지 않을 터였다.성규연은 자신을 아끼지 않으니 그런 일을 처리할 아내 자리에 앉혔다. 반면 아끼는 심소연은 곁에서 사랑받으며 누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성규연의 속셈을 알아버린 강아연의 눈에 싸늘한 비웃음이 어렸
Read more

제207화

직원은 멈칫하더니 두 여자를 번갈아 보며 어쩔 줄 몰랐다.“꿈도 꾸지 마! 규연이가 나한테 준 거야!”심소연이 달려들어 빼앗으려 했지만 강아연이 한발 먼저 카드를 낚아채고 뒤로 물러났다.허탕을 친 심소연은 비틀거리다 팔꿈치를 유리 진열장 모서리에 부딪혔다. 아파서 숨을 들이켜자 금세 화가 치밀었다.“강아연!”심소연이 날카롭게 소리쳤다.“성씨 가문 사모님.”강아연이 무표정하게 바로잡았다.흥분한 심소연과 달리 강아연은 얼음처럼 차가웠다.거만한 표정과 태도에 심소연은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그때 마침 진 비서가 들어왔다.심소연은 곧장 다가갔다.“진 비서님, 누가 옳은지 말 좀 해 봐요!”진 비서는 성규연의 최측근으로 늘 그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그래서 대부분 진 비서의 태도는 성규연의 뜻과 다름없었다.강아연도 진 비서를 바라보며 블랙카드를 쥔 손에 힘이 조금 풀렸다.순간 방금 충동적으로 행동한 것이 후회스러웠다.성규연이 심소연을 그렇게 아끼는 걸 생각하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아내라는 지위를 내세워 심소연에게 맞선 일로 오히려 성규연의 화를 살지도 몰랐다.그렇다면 아버지의 치료는...강아연은 긴장한 채 숨을 죽이고 진 비서를 바라봤다.지난 세월 여러 번 마주쳤지만 특별히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그래서 어떻게 대처할지 알 수 없었다.다만 강아연이 아는 진 비서는 성규연에게 철저히 충성하는 사람이었다.자신의 편을 들어 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강아연은 서서히 고개를 떨구고 눈에 실망이 스쳤다.그런데 다음 순간, 진 비서는 강아연에게 가볍게 허리를 숙여 공손하게 인사했다.“사모님.”강아연은 깜짝 놀랐다.심소연도 놀라 눈을 크게 떴다.진 비서는 직원을 향해 지시했다.“이분은 성씨 가문 사모님이에요. 앞으로 어떤 반지를 고르시든 성 대표님 앞으로 결제하시면 돼요.”“아, 성씨 가문 사모님이셨군요!”직원의 얼굴이 환해지더니 아까보다 훨씬 더 친절해졌다.“제가 몰라뵀습니다! VIP룸으로 모실게요. 새로 들어온 반
Read more

제208화

방금 자신의 편을 들어 준 게 고마웠다. 물론 성규연이 시켜서 그런 건 아닐 것이다.성규연은 심소연에게 블랙카드까지 줬으니 누구를 더 아끼는지는 분명했다.“별말씀을요.”진 비서가 웃었다.“5년 전 형이 공사장에서 다쳤을 때 치료비가 많이 필요했거든요. 그때 사모님이 설 보너스인 척 돈을 주셨잖아요.”‘아, 그랬었지.’강아연은 그제야 떠올랐다. 당시에는 사소한 도움이라 생각해 까맣게 잊고 있었다.“형님분은 지금 괜찮으세요?”“네. 지금은 국숫집을 운영하면서 잘 지냅니다.”진 비서가 대답했다.당시 강아연이 돈을 주지 않았다면 형은 치료 시기를 놓쳐 평생 휠체어를 타야 했을지도 몰랐다.설 보너스라는 명목으로 건넨 덕분에 집안의 어려움도 해결하고 진 비서의 자존심도 지켜 주었다.그래서 진 비서는 늘 강아연에게 고마운 마음을 품고 있었다. 사모님과 성 대표님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다.‘이렇게 좋은 분을 대표님은 알아보지 못하시다니.’진 비서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지만 곧 마음을 다잡았다. 재벌가 일에 자신이 끼어들 수는 없었다. 그저 맡은 일을 잘하면 될 뿐이었다.“사모님, 차에 타시죠.”강아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차에 타기 전 망설이며 블랙카드를 꺼내 건넸다.“이거 성 대표님한테 돌려주시겠어요?”성규연의 카드를 자신이 가진 건 맞지 않았다.하지만 진 비서는 받지 않고 공손하게 말했다.“대표님 카드는 사모님께서 직접 돌려드리는 게 맞습니다.”강아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진 비서도 난처하리라는 걸 알아서 조용히 카드를 집어넣었다.차는 도심 도로를 따라 부드럽게 달렸다.강아연은 등받이에 기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오늘 일로 성규연이 자신을 몰아세우고, 심지어 진 비서까지 불이익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안했다. 창밖 풍경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강아연은 불안한 마음을 안고 성규연의 저택에 도착했다.차에서 내리자 장미진이 가장 먼저 달려 나왔다.“사모님! 드디어 돌아오셨네요!”장미진은 기
Read more

제209화

아무리 마음을 독하게 먹으려 해도 집사의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강아연은 서둘러 성준서의 방으로 향했다.침대에 누워 기운 없이 축 늘어진 성준서를 보자마자 걱정이 밀려왔다. 강아연은 가까이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열에 들떠 의식이 흐릿한 성준서도 엄마가 다가오는 걸 느꼈는지 힘겹게 눈을 떴다.강아연을 본 순간 눈물이 가득 고였다. 맑고 앳되던 목소리는 잔뜩 쉬어 있었다.“엄마...”그 한마디에 강아연의 마음이 흔들리며 눈에 복잡한 감정이 스쳤다.“이, 이걸 어쩌면 좋아요? 도련님 상태가 심각해 보여요.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죠?”집사의 다급한 목소리에 강아연은 정신을 차렸다.강아연은 대답 대신 체온계를 보았다. 39도까지 올랐고 팔에는 작은 붉은 발진이 돋아 있었다. 상황을 알아차렸다.“준서가 급성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거예요.”오랫동안 성준서를 돌봐 온 강아연은 아이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녀는 허둥지둥하는 집사에게 바로 지시했다.“주치의한테 전화해서 준서가 평소 쓰는 알레르기약을 가져오라고 하세요. 수액도 맞아야 하니 준비해서 오시라고 하고요.”“아, 알겠습니다.”집사는 서둘러 대답했다. 불안이 조금 가라앉았다.다른 고용인들도 강아연의 지시에 따라 각자 맡은 일을 차근차근 해나갔다.장미진은 수건을 건네주며 성준서의 몸을 닦아 주는 강아연의 진지한 옆모습을 바라봤다.‘역시 이 집에는 사모님이 계셔야 해.’사모님이 돌아오시니 모두가 뭘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지 않게 됐다.강아연이 떠난 뒤 생기를 잃었던 저택에도 조금씩 활기가 돌아왔다.의사가 도착해 성준서를 치료했다.강아연은 주방에서 성준서가 먹을 죽을 끓였고 장미진이 곁에서 도왔다.“사모님, 돌아오셔서 정말 좋아요.”장미진이 감탄했다.“그동안 도련님이 아프실 때마다 저희는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우왕좌왕했거든요. 뭘 하는지도 모를 만큼요. 역시 사모님은 침착하고 차근차근 잘하셔요.”강아연은 희미하게 웃었다.“이번에는 다시 안 떠나시는 거죠?”
Read more

제210화

성준서는 침대에서 내려와 품에 뛰어들려 했다. 하지만 손등에 꽂힌 수액 바늘을 보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버림받은 강아지처럼 애처로운 눈으로 강아연을 바라볼 뿐이었다.강아연은 마음이 쓰였지만 반응하지 않았다.그날 성준서는 분명 강아연이 엄마인 게 싫다며 심소연을 엄마로 삼고 싶다고 했다.이제 와 가엾은 표정을 지으니, 심소연에게서 원하는 사랑을 받지 못하자 자신에게 돌아온 것 같기만 했다.아들에게 강아연은 차선책에 불과했다.그 생각은 마음에 박힌 가시처럼 숨 쉴 때마다 아팠다.그래서 강아연은 대답하지 않고 죽을 탁자에 내려놓은 뒤 돌아서려 했다.“엄마, 가지 말아요!”성준서는 코맹맹이 소리로 외치더니 감정이 격해져 심하게 기침했다.“콜록, 콜록...”강아연은 미간을 찌푸렸다. 기침 때문에 숨도 제대로 못 쉬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눈물이 뚝뚝 떨어지며 몸까지 떨렸다. 그런 모습을 보며 결국 모른 척할 수 없었다.강아연은 한숨을 내쉬고 다가가 등을 두드려 숨을 고르게 해 주었다.성준서는 곧장 강아연에게 기대고 작은 손으로 옷자락을 꼭 붙잡았다. 조금만 놓으면 엄마가 떠날까 두려운 듯했다.“엄마, 저 엄마 너무 보고 싶었어요...”성준서는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울먹이며 연신 사과했다.“엄마, 제가 잘못했어요. 엄마한테 상처 주는 말 하면 안 됐는데. 엄마, 미안해요. 미안해요...”어리고 쉰 목소리로 사과를 거듭했다.학교 친구들이 가르쳐 준 방법이었다. 잘못해서 엄마를 속상하게 했다면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하지만 할머니 쪽 선생님들은 옳고 그름보다 자기한테 이익이 되는 결과를 얻었는지가 중요하다고 가르쳤다.이제 와 생각하니 그 선생님들이 잘못 가르친 것 같았다.‘내가 잘못한 게 없다면 엄마는 왜 떠났을까? 왜 나를 버렸을까?’성준서는 후회했다. 엄마에게 그토록 모진 말을 퍼부은 게 후회스러웠다.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무언가에 이끌리기라도 한 듯 자신을 제어할 수 없었다. 엄마가 영영 돌아오지 않을까 무서웠다.생각
Read more
PREV
1
...
1920212223
...
26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