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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나를 버린 그들에게: Chapter 241 - Chapter 250

260 Chapters

제241화

차가운 공기에 어깨가 드러나자 강아연의 몸이 떨렸다. 추위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다음 순간 성규연이 그 답을 알려 주었다.“아...”날카로운 이가 연약한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강아연이 고통에 신음하며 밀쳐 내려 했지만 성규연은 손목을 붙잡아 소파에 눌렀다.“강아연, 서지원이랑 춤추니까 어땠어?”성규연이 턱을 잡고 음산한 눈빛으로 노려봤다.강아연은 고개를 돌렸다. 얼굴도 보기 싫었고, 말 한마디 섞고 싶지 않았다.그 태도가 성규연을 더욱 자극했다. 성규연은 분노한 나머지 오히려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하, 아주 좋았나 보네? 그렇게 신나게 웃은 걸 보면!”“밖에서 다른 남자들이랑 수상하게 구는 것도 모자라, 이젠 내 친구한테까지 눈독을 들여? 강아연, 그렇게 사랑이 고파?”성규연이 고함쳤다.“그렇게 사랑받고 싶으면 눈앞에 내가 있잖아! 내가 부족해? 감히 다른 남자를 좋아해?”“강명우가 아직 내 손에 있다는 걸 잊지 마. 넌 명목상으로만 내 아내인 게 아니야. 네 몸도, 네 마음도, 좋아하는 사람까지도 전부 나여야 해!”성규연은 자신이 언젠가 강아연에게 이렇게 이성을 잃고 사랑을 요구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한때는 하찮게 여기던 것이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감정 따위에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믿었다. 그런데 지금은 미친 사람처럼 그 감정을 갈구하고 있었다.프리스의 방법이 통할 줄 알았다. 하지만 프리스가 자신만만할 수 있었던 것은 올리비아가 여전히 그에게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이 아니더라도 프리스에게 바라는 것이 있었다.강아연은 달랐다.이제 강아연은 성규연에게 관심도, 바라는 것도 없었다.두 사람을 이어 주는 유일한 끈은 성규연이 강명우를 빌미로 강아연을 협박하고 있다는 사실뿐이었다.협박을 듣고도 강아연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강아연의 무덤덤한 눈빛 앞에서는 성규연의 분노만 우스꽝스러운 억지처럼 보였다.“규연 씨는 심소연이랑 춤춰도 되고 저는 다른 사람이랑 춤추면 안 돼요? 너무 간섭하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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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2화

하지만 성규연은 강아연의 자존심을 짓밟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마음속에 마지막으로 남은 감정마저 빼앗으려 했다. 강아연이 끝까지 거부하자 힘으로 굴복시키려 들었다....통유리창 밖에서는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렸다. 하늘이 갈라진 듯 폭우가 쏟아졌고, 빗줄기가 도로를 세차게 때리며 물보라를 일으켰다. 나무가 바람에 휘청였고, 잎이 바닥에 흩어졌으며 가지마저 꺾일 듯 흔들렸다.강아연도 폭풍우에 꺾인 꽃과 같았다.무도회장에서 춤추며 새하얀 장미처럼 활짝 피어났던 드레스는 성규연의 손에 찢겨 나갔다. 단정하게 틀어 올린 머리카락도 풀려 소파 위에 흐트러져, 구겨진 비단처럼 엉망이었다.“내가 사람을 좋아할 줄 모른다고? 그때 그 남자랑 서지원은 그럴 줄 알아?”성규연은 강아연의 턱을 세게 움켜쥐었다. 얼음송곳처럼 차가운 말이 가슴을 찔렀다. 성규연은 치맛자락을 붙든 채 말 한마디에 거친 행동을 하나씩 더하며 끈질기게 괴롭혔다.“강명우를 치료하게 해 주고, 네가 밖에서 일하는 것도 허락했어. 임신 사실도 숨겨 주고, 매달 20억씩 줬지. 그걸 다 공짜로 해 준 줄 알아? 성씨 집안 안주인이라는 자리도, 그에 따르는 대우와 이익도 누리고 있으면서 내 사랑까지 바라? 그렇게 욕심을 부려도 되는 거야?”“네가 끝없이 더 바라겠다면 나도 더는 좋게 대해 줄 필요 없어!”...강아연은 온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떨었다. 얼굴은 창백했고 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창밖에서는 폭우가 유리창을 사정없이 두드렸다. 강아연 역시 성규연에게 거칠게 눌려 소파 위에서 고통을 겪고 있었다.텅 빈 눈에 차오른 눈물이 눈꼬리를 타고 흘렀다. 성규연은 그 눈물마저 입술로 훔쳤다.강아연은 역겨워 고개를 돌렸지만, 성규연은 턱을 붙잡고 억지로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밖의 거센 비가 차츰 잦아들었다.성규연은 그제야 강아연을 놓아주었다. 핏기 하나 없는 얼굴을 바라보며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오늘 자신이 강아연에게 너무 심하게 굴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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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3화

서지원은 대답하지 않고 강아연을 바라봤다.얼굴은 창백했다. 겉옷을 단단히 여몄어도 목에 남은 자국은 가려지지 않았다. 드레스도 찢어져 있었다. 무도회장에서 자유롭게 피어났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막 피어난 꽃을 성규연이 무자비하게 꺾어 버린 셈이었다.그 일에는 서지원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었다.“미안해요.”서지원이 고개를 숙였다. 목소리에 죄책감이 가득했다.서지원도 자신의 마음이 모순적이라는 걸 알았다. 강아연은 성규연의 아내였고, 자신은 성규연의 친구였다. 당연히 거리를 둬야 했다.그런데 강아연이 성규연을 떠났다는 말을 들었을 때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다. 몰래 연성까지 찾아간 적도 있었다.아무리 찾아도 강아연의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 어렵게 다시 만났을 때는 성규연이 강아연을 그대로 안고 가 버렸다.그 순간 서지원은 이상하게 두 사람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억지로 참았다. 강아연은 친구의 여자였다. 아무리 여자가 궁해도 친구의 아내에게 손을 뻗을 수는 없었다.그 뒤로 서지원은 집에 틀어박혀 강아연이 만들어 준 꽃꽂이 작품만 바라봤다. 생화는 금세 시들기 때문에 꽃꽂이 값의 세 배가 넘는 돈까지 들여 보존 기간을 늘렸다. 아름다운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붙잡고 싶었다.처음에는 그 꽃을 보며 답답한 마음을 달랬다. 하지만 오래 바라볼수록 욕심이 생겼다. 자꾸 강아연에게 다가가고 싶어졌다. 그래서 심소연의 생일 꽃을 주문할 때도 수많은 업체 중 굳이 강아연의 작업실을 선택했다.강아연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고 싶었다.다시 나타난 강아연은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하늘에 뜬 맑은 달처럼 은은한 빛을 품은 모습에 서지원은 단숨에 시선을 빼앗겼다.수많은 여자가 서지원의 주위를 맴돌았다. 함께 온 여자조차 바짝 몸을 붙이고 부드러운 피부를 팔에 문지르며 관심을 끌었고, 춤을 청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강아연이 나타난 순간부터 서지원의 눈은 줄곧 강아연에게 향했다.특히 성규연이 강아연을 함부로 대하는 모습을 보니 감정을 억누르기 어려웠다.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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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4화

서지원은 그 자리에 서서 멀어지는 뒷모습을 지켜봤다. 한동안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성규연은 화가 난 채 연회장을 나온 뒤 운전 기사에게 취월도로 가라고 했다.경성의 취월도는 고급 유흥가로 유명한 곳이었다.고급 유흥가라는 이름처럼 술도 최고급이었고, 접객하는 여자들도 빼어난 미모를 자랑했다. 그곳에 발을 들이면 누구든 쾌락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곳이었다.그러나 성규연은 술만 주문해 긴 테이블 앞에 앉아 연거푸 잔을 비웠다.그의 훤칠한 외모에 끌린 미녀들이 이미 곁에 모여 있었다. 누가 먼저 성규연을 유혹할 수 있을지 내기까지 벌였다.마침내 한 여자가 자신만만하게 다가왔다.“잘생긴 분, 혼자 오셨어요?”여자가 상체를 테이블에 기댔다. 정교한 화장과 살짝 치켜 올라간 눈꼬리, 미소 하나하나에 매혹적인 분위기가 흘렀다.“저랑 한잔하실래요?”여자는 머리카락을 넘기며 깊게 파인 옷깃을 드러냈다. 풍만한 가슴골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보통 남자라면 거절하기 힘들 만했다.하지만 성규연은 쳐다보지도 않고 싸늘하게 내뱉었다.“꺼져.”여자는 음산하고 위압적인 기세에 움찔하더니 머쓱하게 물러났다.잠시 후 또 다른 손이 성규연의 무릎 위에 올라왔다. 슬쩍 쥐기까지 했다.성규연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차가운 눈빛이 그쪽으로 향했다. 무릎 위에 함부로 손을 올린 사람의 손목을 당장 잘라 버릴 기세였다.“왜? 화났다고 만지지도 못하게 해?”맑고 부드러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옆에 나타난 사람을 확인한 성규연은 그제야 표정이 조금 풀렸다.“넌 왜 왔어? 다리도 불편한 놈이 이런 데서 술을 마셔?”“다리가 불편하면 못 올 이유라도 있어?”봉연우가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여긴 내 가게인데. 네가 마시는 술도 내가 라피트 성에서 직접 가져온 거야.”경성 취월도는 봉씨 집안 소유였고 봉연우가 운영하는 곳이었다.봉연우는 바텐더에게 자기 잔도 채우게 하고 술잔을 가볍게 흔들었다.“이 와인, 올해 라피트 성에서 단 두 병만 나왔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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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5화

정말 질투가 났다.예전에는 성준서가 불쌍한 척, 착한 척만 해도 강아연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게 질투 났다. 이제는 서지원이 몇 마디 말로 강아연을 활짝 웃게 만드는 게 질투 났다.정작 강아연은 성규연에게만 차갑기 짝이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진심으로 웃어 준 적조차 거의 없었다.예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것을 이제는 미친 듯이 원했다. 그런데 강아연은 그것을 성규연의 아들이나 별 상관도 없는 남자에게는 주면서 성규연에게만 주지 않았다.그러니 어떻게 질투가 나지 않겠는가. 정말 미칠 것 같았다.게다가 강아연은 성규연이 누군가를 좋아할 줄 모른다고 했다. 성규연의 결점을 정확하게 꿰뚫은 말이었다.그래서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고 강아연을 해쳤다.하지만 이제 화가 가라앉자 남은 것은 끝없는 후회뿐이었다.성규연은 도망치듯 취월도로 와 술에 취하려 했지만, 자신의 잘못을 마주 하고 싶지 않았다.봉연우는 그 모든 걸 알아차렸다.봉연우가 충혈된 눈으로 초췌하게 앉아 있는 성규연을 바라봤다. 평소 재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래 그룹의 총수 같은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그저 자기 아내에게 질투하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사랑을 구하지 못하는 고집불통 남자일 뿐이었다.봉연우는 고개를 저으며 성규연의 빈 잔에 술을 조금만 따랐다.성규연이 미간을 찌푸렸다.“이걸로는 부족해.”“됐어. 더 마시면 네 아내가 널 버릴걸?”봉연우가 농담했다.“버리든 말든 내 알 바 아니야!”성규연이 불쾌하게 말했다.술 몇 잔에 벌써 허세를 부리는 친구를 보며 봉연우는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어 성규연의 어깨를 두드리며 진지하게 말했다.“규연아, 누굴 좋아한다고 해서 꼭 강제로 독차지하려고 들 필요는 없어.”성규연이 멈칫했다.“내가 언제 좋아한다고...”‘내가 언제 강아연을 좋아한다고 했단 말이야...’봉연우는 끝까지 부인하려는 친구에게 눈을 흘겼다.“좋아하지도 않는데 이혼 합의서까지 만들어 놓고 막판에 마음을 바꿨어? 좋아하지도 않는데 구금됐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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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6화

한참 뒤 성규연이 한숨을 내쉬며 봉연우를 바라봤다. 자신도 모르게 불안하고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나왔다.“내가 정말... 그 여자를 좋아해도 되는 걸까?”‘나도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는 걸까... 치료나 약의 도움 없이도 남에게 이런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까...’봉연우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하지. 강아연은 네 아내잖아. 좋아하면 안 될 이유가 어디 있어?”“하지만 강아연은 강명우의 딸이야.”성규연이 시선을 내렸다.강명우는 성규연의 절친한 친구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람, 자기 손으로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하는 원수였다.“그럼 내가 하나 묻자. 그 사람들을 죽인 게 강아연이야?”성규연은 고개를 저었다.“그렇잖아. 잘못한 건 강명우인데 강아연이 무슨 상관이야?”봉연우가 되물었다.성규연의 눈에 동요가 일었다. 그러나 곧 미간을 찌푸렸다.“그래도 처음에 그 여자가 비열한 수로 나를 함정에 빠뜨렸잖아...”“함정을 판 건 맞아. 하지만 결혼하겠다고 직접 승낙한 건 너잖아.”봉연우가 핵심을 짚었다.“미래 그룹 대표가 정말 원치 않았다면 누가 억지로 혼인신고를 시킬 수 있었겠어?”그 말에 성규연의 손가락이 바짝 굳었다.한참 동안 술잔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던 성규연의 가슴이 크게 오르내렸다.맞았다. 자신이 진정 결혼을 원하지 않았다면 강명우가 아무리 강요해도 소용없었을 것이다.‘그런데 왜 승낙했을까...’그날 밤 성규연은 술을 마셨지만 정신은 또렷했다. 강아연을 본 순간 스스로 욕망에 몸을 맡겼던 것인지도 몰랐다.먼저 강아연을 원했던 것도, 눈앞에 누운 강아연의 순결을 빼앗은 것도 자신이었다. 그러고는 비열하게 강아연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서영란의 혹독한 교육을 받고 자란 성규연은 자신이 잘못했다는 사실을 조금도 용납할 수 없었다.그래서 자신의 잘못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계속 강아연의 잘못이라고 주장하며 죄책감을 덜어내다 보니, 결국 자기 기억까지 뒤틀어 놓고 말았다.얼마나 우스운가. 얼마나 비열한가.성규연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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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7화

성규연이 문을 급히 열자 긴 의자에 쓰러져 누운 강아연이 보였다.강아연은 아직 성규연이 찢어 놓은 옷을 입고 있었다. 머리도 다시 정리한 모양이었지만 여전히 흐트러져 있었다.원래 하얗던 얼굴은 비정상적으로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성규연은 성큼 다가가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었다.너무 뜨거웠다.순간 숨이 턱 막혔다. 성규연은 즉시 의사에게 전화해 최대한 빨리 오라고 했다.이어서 잠옷을 꺼내 강아연의 옷을 갈아입히려 했다.의식이 흐릿한 강아연은 누군가 옷을 벗기려 하자 남은 힘을 짜내 옷깃을 움켜쥐었다. 가까스로 눈을 떴다가 성규연을 알아보고 경계심을 드러냈다.“또 뭘 하려고요?”목소리가 잠겨 있었다.“뭘 하겠어?”성규연은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말투는 여전히 딱딱했지만 목소리를 낮춰 달랬다.“아프잖아. 의사도 불렀어. 우선 옷부터 갈아입자. 응?”강아연은 싫다고 하고 싶었다. 성규연과는 조금도 닿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손을 들어 밀쳐 낼 힘조차 없었다. 들어 올렸던 팔이 맥없이 떨어졌다.강아연은 다시 눈을 감았다. 보고 싶지 않았다.성규연은 차가운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겉옷을 벗겼다. 어깨와 쇄골, 가슴에 자신이 거칠게 남긴 자국이 여기저기 보이자 죄책감이 밀려왔다.“미안해, 연아.”성규연이 고개를 숙였다.“그렇게 부르지 말아요.”강아연의 목소리는 약했지만 차가웠다.“전 심소연 대역이 아니에요. 역겨워요.”성규연이 멈칫했다.“넌 대역이 아니야.”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다. 강아연과 심소연은 조금도 닮지 않았는데.하지만 강아연은 헛소리를 믿지 않았다. 차갑게 웃었다.“심소연도 ‘연이’라고 부르고 저도 ‘연이’라고 부르잖아요. 성규연 씨, 이게 재미있어요?”“아니야.”성규연은 옷을 다 입힌 다음 뒤에서 허리를 감싸 안았다.“그렇게 부른 건 너뿐이야.”“거짓말 그만 해요. 휴대전화에 심소연 이름을 ‘연이’라고 저장해 뒀잖아요.”강아연은 팔을 떨쳐 내려 했지만 성규연은 단단히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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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8화

“사모님은 임신 몇 주 차세요?”의사가 물었다.성규연이 멈칫했다. 강아연과 산전 검진에 동행한 적이 없어서 정확히 몰라 짐작으로 대답했다.“아마 12주쯤.”“알겠습니다.”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임신 중에는 해열 수액이 태아에게 영향을 줄 수 있으니 우선 물리적으로 체온을 낮추는 게 좋겠어요. 임산부가 복용할 수 있는 약도 처방하겠습니다. 당분간 충분히 쉬고 영양을 보충하셔야 해요. 보아하니 영양 상태도 좋지 않은 것 같아요...”성규연은 의사의 말을 진지하게 들으며 기록했다. 잠시 뒤 장미진이 찬물이 담긴 대야를 가져와 수건을 적셨다. 강아연의 이마에 올려 주려는 참이었다.“내가 할게.”성규연이 수건을 받아 들었다.장미진은 깜짝 놀랐다. 성규연은 젖은 수건을 강아연의 이마에 조심스럽게 올린 뒤 다른 수건으로 손을 꼼꼼하게 닦았다. 열을 내리려고 같은 동작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성규연이 강아연을 바라보는 눈빛은 귀한 보물을 대하듯 조심스럽고 부드러웠다. 장미진은 대표님이 사모님을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모습을 처음 봤다.“가죠. 여기 서 있지 말고.”의사가 낮게 말했다.장미진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방에서 나왔다.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마음이었다.두 사람이 나가자 방에는 성규연과 강아연만 남았다.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오늘따라 달빛이 밝았다. 강아연의 길고 가느다란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까지 보였다.강아연은 잠들지 않았다. 그저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성규연의 얼굴이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성규연을 보면 그가 저지른 일이 떠올랐다. 억지로 몸을 차지하고, 괴롭히고, 모욕하던 모습이 생생했다. 지금 손에 칼이 있다면 망설임 없이 찔러 버리고 싶었다.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남아 있는 이성이 막아섰다. 그녀에게는 지켜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자신까지 구금된다면 모든 것이 끝장이었다.분노와 슬픔 사이에서 괴로워할수록 속눈썹도 더욱 떨렸다.성규연 역시 강아연의 증오를 느꼈다. 하지만 강아연은 눈을 뜨지도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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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9화

허공에 남은 손이 잠깐 굳었다가 조용히 내려왔다.“배 안 고파? 아줌마한테 먹을 것 좀 준비해 달라고 할게.”강아연이 무표정하게 말했다.“규연 씨 얼굴 보기 싫어요.”“뭐 먹고 싶어?”성규연은 부드럽게 물었다.강아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나가라고요.”“제비집죽은 어때? 의사 말로는 영양을 많이 보충해야 한다던데.”강아연은 결국 화를 터뜨렸다.“규연 씨 얼굴 보기 싫다고요! 당장 나가요!”“알았어. 죽 가져올게.”성규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성규연 씨.”성규연이 문 앞에 다다랐을 때 강아연이 불렀다.성규연이 걸음을 멈추고 기대 어린 눈으로 돌아봤다.“할 말 있어?”“이런 식으로 구는 거, 정말 의미 없어요.”강아연의 말투는 냉담했다.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성규연은 강아연의 약점을 쥐고 있었다. 차갑게 버려두든 혼자 죽어 가게 내버려 두든 강아연은 소란을 피우지 못했다. 이미 마음이 죽은 사람에게는 싸울 기력도 없었다.그런데 성규연은 굳이 앞에 나타나 안부를 묻고 다정하게 굴었다. 강아연에게는 우스울 뿐이었다. 상처를 입힌 건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보상해도 흉터는 지워지지 않는다.성규연이 눈앞에 있기만 해도 마음속 상처가 떠올라 견디기 힘들었다.그래서 정말 보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성규연은 여전히 부드럽게 대답했다.“딸기 좋아했지? 씻어서 가져올게.”몇 번이고 엉뚱한 대답만 하는 성규연에게 강아연은 할 말을 잃었다. 그래서 고개를 돌려 더는 쳐다보지 않았다.성규연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눈에 잠깐 스쳤던 쓸쓸함을 감추고 방을 나섰다.계단을 내려가던 성규연은 계단 입구에 서 있는 성준서와 마주쳤다.“아빠, 엄마 이제 다 나았어요?”성준서가 걱정스레 물었다.“응.”성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다행이다! 그럼 엄마 보러 갈래요!”성준서가 올라가려 하자 성규연이 막았다.“이제 막 나았으니까 푹 쉬어야 해. 방해하지 마.”성준서는 의젓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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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0화

강아연은 입술을 다문 채 죽그릇을 바라봤다.“독이라도 탔을까 봐?”성규연은 경계하는 눈빛을 알아차렸다.강아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눈빛이 이미 답을 대신했다.성규연은 이제 강아연에게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성규연은 숟가락에 담긴 죽을 직접 먹어 보였다.“독 없어. 먹어. 의사가 영양이 부족하다고 했어. 우리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좀 먹어.”“제 아이예요. 규연 씨와는 상관없어요.”강아연이 아랫배를 감싸며 차갑게 말했다.“의사한테 임신 사실을 말했어요?”“걱정하지 마. 무슨 말을 해야 하고 안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야.”성규연은 죽을 저으면서 손가락을 살짝 떨었다.강아연은 아기가 자신과는 상관없다고 했다. 이 아이마저 성규연과 나눌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어떻게든 관계를 깨끗이 끊으려는 것이었다.‘그럴 수는 없어.’쓴맛이 가슴속으로 번졌다. 하지만 성규연은 곧 마음을 추스르고 조금 강경하게 말했다.“그 의사가 실수로라도 비밀을 말하지 않게 하고 싶으면 이 죽부터 먹어.”“지금 협박하는 거예요?”강아연이 눈살을 찌푸렸다.“그게 통한다면 협박이라고 해도 되겠지.”성규연은 원망 어린 눈길을 애써 외면하고 죽을 떠서 식힌 뒤 다시 입술 가까이 가져갔다.“먹어. 연아, 네가 이러니 마음이 아파.”“위선 떨지 말아요!”강아연이 욕을 하려고 입을 벌리자 성규연이 틈을 놓치지 않고 죽을 밀어 넣었다.정말 교활했다.강아연은 그를 노려보며 죽을 삼켰다. 다시 욕하려는 순간 성규연은 또 기막히게 때를 맞춰 한 숟가락을 먹였다.강아연은 뻔뻔한 행동에 화낼 힘마저 잃었다. 아예 포기하고 침대에 기대앉아 혼자서는 식사도 못 하는 사람처럼 가만히 시중을 받았다.어릴 때부터 남을 챙겨 본 적 없는 부잣집 도련님이 얼마나 오래 버티는지 두고 볼 생각이었다.그런데 뜻밖에도 성규연은 끝까지 참을성 있게 굴었다. 죽 한 그릇을 다 먹인 뒤 딸기까지 몇 알 먹여 주었다.그다음에는 빗을 가져와 강아연의 머리를 빗겨 주었다.성규연은 비단처럼 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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