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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나를 버린 그들에게: Chapter 81 - Chapter 90

100 Chapters

제81화

조용한 식사 자리에서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새언니, 왜 그래요?” 성지민이 걱정스럽게 묻자 강아연은 즉시 입과 코를 가리며 김연화에게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아마도 체했나 봐요...”하지만 말을 마치기 전에 위에서 또다시 소용돌이치는 느낌이 몰려왔다.강아연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즉시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갔다.모두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저마다 묘한 표정을 짓는 가운데 김연화가 제일 기쁜 표정으로 성지민의 손을 잡고 짐작했다.“조금 전에 증손녀 안아보고 싶다고 했는데 정말 이루어진 건 아닐까?”성지민도 호기심 가득한 표정이었다.만약 강아연이 또 임신했다면 눈치 없이 끼어드는 천박한 것도 사라지진 않을까.성희택은 평온한 표정으로 서영란만 바라보았고 서영란은 미간을 찌푸린 채 표정이 좋지 않았다.서지원도 표정이 좋지 않긴 마찬가지였다.강아연이 임신했다면 성규연은 이혼할 수가 없다.화장실 안에서는 강아연의 끊임없는 구토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우욱...”강아연은 방금 먹은 것을 모두 토해냈다.딱히 먹은 게 없어 헛구역질만 계속해 대니 목구멍이 간헐적으로 경련을 일으키며 눈가에 어느새 눈물이 맺혔다.갈색 담즙까지 모두 토해내자 그제야 격렬한 구토감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강아연은 양손으로 세면대 가장자리에 짚고 숨을 헐떡이다가 거울 속의 초라한 자기 모습을 바라보며 표정이 어두워졌다.이 느낌은 그녀가 성준서를 임신했을 때와 비슷했다.하지만 성준서를 임신했을 때의 증상은 지금보다 훨씬 심했다. 먹는 것마다 토해내서 체중이 늘어야 할 때 오히려 5kg 가까이 살이 빠졌고 볼살은 움푹 들어갔으며 마치 기운이 모두 빠져나간 것처럼 보였다.성준서를 낳은 후 김연화가 계속해서 다양한 보양식을 보내주었고 제비집도 임신 초기부터 매일 먹었지만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는 못했다. 강아연이 조산으로 다친 건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있었으니까.시간이 지나며 마음의 상처가 조금씩 희미해지고 3, 4년이 지나서야 겨우 살이 조금씩 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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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화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당시 그는 강아연이 성규연과 아는 사이가 되어도 그의 눈에 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구경거리 삼아 도와줬던 것 같았다.성규연과 낯선 사람에서 아는 사람으로 되기까지 그의 도움이 있었기에 강아연은 무척 고마워했었다.그러다 5년 전 강아연이 성규연과 결혼한 순간부터 서지원의 태도는 완전히 변했고 그녀에게 적대감을 품은 채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성규연은 그의 행동을 뻔히 알면서도 아무 말도 안 하고 오히려 묵인하는 태도를 보였다. 서지원이 그녀를 겨냥하는 것을 묵인한 것이다.과거에는 성규연을 사랑했기 때문에 서지원이 그녀를 괴롭혀도 웃어넘기고 신경 쓰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하지만 불행히도 서지원은 그녀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고 경멸과 냉담함으로 대했다. 그녀도 자존심이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힘만 들고 결과가 없는 일에 공을 들이지 않았다.또한 최근 심소연이 귀국하자 서지원은 그녀를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자주 심소연과 함께 있었다.서지원과 심소연의 관계가 매우 친밀하다는 건 강아연도 알고 있는 바였다. 그러니 그가 그녀에게 그렇게 큰 적대감을 품은 것은 아마도 심소연의 것인 아내 자리를 빼앗았기 때문일 거라고 추측했다.하지만 이제 곧 그 자리를 돌려줄 수 있다. 이젠 더 이상 원하지 않으니까.더 이상 아무런 실체도, 소용도 없고 공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모님 자리는 지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자연스레 성규연과 관련된 어떤 사람에게도 잘 보이려 하지 않았다.그래서 강아연은 단호하게 그의 옆을 지나쳐 걸어갔다.그 결과 서지원이 옆으로 몸을 돌려 그녀의 앞을 막았다.“강아연 씨, 난 너무 궁금해요. 대체 어떤 수작을 부리면 규연이 옆에 5년이나 뻔뻔하게 붙어있을 수 있죠?”강아연을 바라보는 서지원의 눈에는 노골적인 경멸이 담겨 있었다.“얼굴 반반한 것 말고는 특별한 것도 없는데.”비록 몸매가 좋긴 해도 그녀보다 몸매 좋은 모델은 널리고 널렸다.“규연이가 왜 당신 같은 여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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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서지원은 강아연이 그런 표정을 지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가 아는 그녀라면 분명 단호하게 이렇게 답해야 했다.“서지원 씨, 난 성규연이라는 사람을 사랑해요. 그런 식으로 나를 모욕하지 마세요!”그리고 말하는 그녀의 눈에는 성규연에 대한 감정이 가득 차 있어야 했다. 별처럼 빛나는 눈동자로 세상 모든 남자가 성규연보다 못하다는 듯이.이것이 바로 그가 강아연을 가장 경멸하는 점이었다. 성규연에게 푹 빠져서 스스로 생각할 줄도 모르는 게 정말로 비천하기 그지없었다.그러나 지금 강아연의 표정은 파문 한 점 없는 호수처럼 평온했고 말투도 덤덤했다.“서지원 씨, 얼마나 줄 수 있어요?”말하는 그녀의 눈에는 어떠한 감정도 없이 오히려 차분했다. 마치 이 프로젝트에서 상대방이 얼마나 줄 수 있는지 논의하는 것처럼 전혀 그녀와 성규연의 결혼에 관해 얘기하는 것 같지 않았다.이처럼 큰 변화는 서지원을 당황하게 했고 그녀를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혹시 집요하게 매달리는 방식이 통하지 않아서 다른 전략으로 바꾼 건가요?”강아연은 말하지 않았다.어차피 그녀가 아니라고 말해도 서지원은 믿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그녀가 숨기는 게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서지원은 그녀가 침묵하는 것을 보고 자기 말에 확신을 더하며 차갑게 웃더니 조롱이 가득한 어투로 말했다.“강아연 씨, 그래도 경성 재벌가 아가씨였는데 몇 년간 가세가 기울었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품위를 잃을 필요는 없잖아요. 꼭 껌딱지처럼 규연이에게 붙어있어야 해요?”강아연은 차갑고 냉소적인 서지원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경멸적인 시선을 똑바로 마주하며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제가 전에 마셨던 술 두 잔이 4억, 제가 거기에 16억을 더 원하니까 합쳐서 20억인데 줄 수 있어요?”서지원은 잠시 놀라며 이상한 표정으로 강아연을 바라보았다.그녀의 요구가 지나친 게 아니라 이토록 쉽게 망설임 없이 조건을 내세웠기 때문이다.성규연과의 결혼을 끝까지 지키려는 게 아니라 이대로 포기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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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그가 강아연을 좋아할 리가 있겠나. 절대 그럴 일은 없다.“아니면 왜 그렇게 둘의 이혼을 다그치는 거야?”봉연우가 놀리듯 말했다.“난 또 네가 그 자리를 원하는 줄 알았지.”“말도 안 돼!”서지원은 즉시 반박했다,“난 그냥 규연이가 저 여자랑 다시 얽히지 않기를 바랄 뿐이야. 게다가 너도 규연이가 저 여자랑 결혼했다는 걸 알고 있잖아. 화가 안 나? 저 여자 아빠 강명우가 널 이렇게 만들었는데 내가 어떻게 쉽게 넘어갈 수...”“그만해, 서지원.” 봉연우가 그의 말을 끊으며 진지하게 말했다,“너도 말했다시피 잘못은 강명우가 했는데 왜 다른 사람한테 화풀이야? 너랑 규연이가 괜한 생각에 사로잡힌 거지.”살아남은 자들이 제일 고통스러운 법이니 이해할 수는 있었다.“그래도 연약한 여자 하나 괴롭히는 건 남자가 할 행동이 아니야.“나, 난...”서지원은 한숨을 내쉬며 강하게 반박했다. “그게 아니야!”분명 강아연에게 20억을 주었고 억지로 강요한 적도 없는데 뭐가 괴롭혔다는 건지.봉연우는 웃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강아연이 발 마사지실에 들어섰을 때 김연화와 성지민은 이미 마사지를 거의 마칠 무렵이었다.“새언니, 빨리 와서 해봐요. 이거 정말 편안해요!” 성지민은 계속 그녀에게 추천했지만 강아연은 웃으며 거절했다. 오늘 이미 충분히 온천에 오래 몸을 담갔기 때문에 다시 담그고 싶지 않았고 대신 어깨와 목 마사지를 선택했다.마사지사의 기술이 아주 훌륭해 그녀는 몸의 피로가 많이 풀렸다.한편 김연화는 그녀의 옆에 앉아 웃으며 물었다.“아연아, 시간 되면 규연이랑 함께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는 게 어때? 확실히 해두는 게 좋잖아.”강아연은 멈칫했다. 김연화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았고 그녀가 식사 자리에서 보인 행동은 그런 쪽으로 생각하기 충분했다.하지만 만약 정말로 임신했다면...강아연은 시선을 내린 채 손으로 자신의 평평한 배를 조용히 쓰다듬으며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원하지 않았다.이 감옥 같은 곳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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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화

강아연이 움직이지 않자 진 비서가 다시 한번 불렀다. “사모님, 밖이 추우니 빨리 차에 타세요.”강아연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뒷좌석으로 돌아가 차 문을 열었다.그녀는 평소 늘 본인 차를 운전했고 성규연의 차를 타는 일은 거의 없었다.그래서 마지막으로 그의 차를 탄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저 어렴풋이 기억하기로는 성규연의 차 뒷좌석은 그와 닮은 클래식한 검은색 밤하늘 별무늬 천장이었다.하지만 지금 차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내부가 바뀌어 검은색이 아니었고 별빛 천장도 파란 장미 무늬로 바뀌어 있었다.강아연은 잠시 멈칫했다.파란 장미는 서영란의 생일 파티에서 심소연이 입었던 옷과 매우 닮았다.심소연이 좋아하는 것도 파란색이었다.강아연의 시선이 무심코 좌석 위에 놓인 연한 파란색 가방으로 향했다. 그 안에는 몇 가지 명품 화장품이 들어 있었는데 강아연은 최근 몇 년간 화장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물건들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말할 필요도 없었다.보아하니 이 차는 이미 심소연의 전용차가 된 것 같았다.차 안의 모든 장식이 마치 차에 타는 모든 여자에게 성규연이 이미 임자가 있는 몸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성규연의 아내인 강아연을 포함해서 말이다.강아연은 입꼬리를 살짝 비틀며 가벼운 조롱의 미소를 지었다.가방을 들어 올리자 무심코 안에 화장품 외에도 두 상자의 콘돔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이미 개봉된 것을 발견했다.강아연은 손가락을 말아쥐며 시선을 거두고 덤덤한 표정으로 못 본 척 가방을 옆에 내려놓았다.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답답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그녀는 감정을 억누르려고 노력하며 창밖을 바라보았다.진 비서가 차에 시동을 걸어 그녀를 시중심에 있는 병원으로 데려갔다.“사모님, 가시죠.”강아연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익숙한 발걸음으로 병원으로 들어갔다.하지만 그녀는 산부인과가 아닌 입원 병동으로 가서 주정애를 만났다.마침 주정애는 저녁을 먹은 후 창가에 서서 밖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약물을 주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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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하지만 이 성공적인 사례 하나로 그들의 자신감은 단숨에 급상승했다.“잘 됐어, 정말 다행이야...”강아연은 주정애의 손을 꼭 잡았고 어느새 눈가에 기쁨의 눈물이 맺혔다.“엄마, 들으셨어요?”이미 눈앞에 성공한 사례가 있으니 주정애의 수술도 분명 잘될 거라는 믿음이 강아연의 마음속에서 피어올랐다.그 믿음이 떠오르는 순간, 강아연은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얘야, 왜 울어?”주정애는 강아연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며 본인도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동안 참 고생 많았지? 다 엄마가 짐이 돼서 그런 거야, 네 발목만 잡았어...”혹시라도 본인이 아프지 않았다면 강아연의 지난 세월이 조금은 덜 힘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엄마,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강아연은 주정애를 꼭 껴안았다.“엄마는 절대 제 짐이 아니에요.”엄마는 짐이 아니라 오히려 강아연에게 위안이 되는 안식처였다.이제 이렇게 성공적인 사례도 나왔으니 엄마가 회복될 거라는 희망이 현실처럼 느껴져 강아연은 심장이 쿵쾅거리며 뛸 정도로 기뻤다.이렇게 행복한 기분은 강아연에게 정말 오랜만이었다.“딴 건 다 중요하지 않아요. 저는 그냥 엄마가 건강했으면 좋겠어요.”“바보 같긴...”주정애는 강아연의 어깨를 다정하게 토닥이며 몇 번이고 쓰다듬었다....강아연이 병원을 나섰을 때는 이미 늦은 밤이었다.완전히 어두워진 하늘에 쌀쌀한 바람이 불어와 강아연은 몸을 한껏 움츠렸고 코끝이 차가운 바람에 빨갛게 물들었다.바람 속에서 강아연의 마른 몸이 한쪽으로 살짝 기울었고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위태로웠다.그때 먼저 다가온 건 진 비서였다.“사모님, 괜찮으세요?”“괜찮아요, 고마워요.”강아연은 반사적으로 손을 빼냈다.더 이상 어떤 오해도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성규연의 분노는 강아연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하지만 이 시각의 성규연은 아마 심소연이랑 있을 테니 이 광경을 볼 일은 없을 거였다.강아연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뒷좌석으로 걸어가자 진 비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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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나 임신 안 했어요.”강아연은 담담하게 대답했다.“네가 의사야? 네가 뭔데 그렇게 확신해?”성규연은 강아연의 말을 믿을 수 없었고 오로지 흑백으로 인쇄된 검사 결과만 믿으려고 했다.정확히 말해 강아연이 하는 말은 단 한 글자도 믿지 않았다.강아연은 대답 대신 고개를 들고 되물었다.“내가 진짜 임신한 거라면 당신은 어쩔 생각이었는데요?”성규연은 그 질문에 침묵을 지켰다.그 아이는 성규연의 인생 계획에 포함된 적이 없었고 성씨 가문에는 이미 확실한 후계자가 하나 있다.물론 성규연의 생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성규연의 시선이 강아연의 마른 몸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강아연의 몸은 한 줌 바람에도 휘청일 것 같은 버들가지처럼 말랐고 손바닥만 한 작은 얼굴에는 병색이 가시지 않았다.게다가 그 예쁘던 입술도 피기가 거의 사라졌고 너무나 창백해 보였다.성규연은 얇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강아연은 성규연의 침묵이 가리키는 의미를 읽고 속으로 비웃었다.이제 곧 이혼할 사이인데 당연히 성규연이 바라는 건 강아연이 자기 아이를 갖지 않는 거였다.아이를 이유로 다시 강아연과 엮이는 건 성규연이 가장 싫어하는 일이었다.게다가 지금 성규연은 심소연과 사랑에 빠져 있었기에 애를 또 낳는다고 해도 그건 심소연과 함께여야 할 것이다.그리고 강아연 역시 이 남자와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걱정 마세요. 진짜 임신하지 않았으니까요.”강아연은 숨을 내쉬며 안도감이 섞인 듯한 말투로 이어갔다.“오늘 오후에 생리가 시작됐거든요.”오늘 오후, 성 노인 일행과 얘기를 나누던 중, 강아연은 갑자기 아래쪽에서 따뜻한 감각이 느껴져 화장실에 급히 다녀오니 3일이나 늦어졌던 생리가 시작된 걸 확인했다.그 순간, 강아연은 말 그대로 한시름 놓았다.임신하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었다.임신이라도 했으면 강아연은 진짜 막막했을 것이다.엄마 수술도 걱정해야 하는데 자기 몸까지 수술 예약을 해야 했다면 진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랐을 터였다.성규연은 강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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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하늘 저편에서 둔탁한 천둥소리가 몇 번 울리고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롤스로이스가 부드럽게 별장 차고 안으로 들어왔다.집사는 곧장 나와 인사했다.“대표님.”성규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긴 다리를 뻗어 차에서 내리려고 했다.“대표님...”진 비서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은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정말 사모님을 그대로 두실 겁니까? 곧 비 올 것 같은 데다가 오늘 밤은 기온도 좀 낮잖아요...”성규연은 강아연이 입고 있던 얇디얇은 옷차림을 떠올렸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무덤덤한 표정을 유지했다.“아연도 어른이야. 택시쯤은 자기가 부르겠지.”성규연이 다 큰 어른인 강아연이 그 정도도 못 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그래서 더 이상 말없이 겉옷을 벗어 집사에게 던지고는 위층으로 올라갔다.“아빠!”성준서는 성규연을 발견하자마자 달려오며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왜 심 이모 방이 비었어요?”성준서는 심 이모 다리만 나으면 매일 같이 놀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었다.“심 이모는 새집을 찾으셨어.”성규연은 덤덤하게 대답했다.“그렇구나...”성준서는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심 이모 집에 가면 엄마가 못 먹게 하던 과자를 맘껏 먹어도 엄마가 발견할 수 없다는 생각에 기분이 좀 나아졌다.그러고 나서야 문득 떠올렸다.“아, 맞다. 엄마는요? 엄마는 왜 아직 안 돌아왔어요?”성규연은 아무 말도 없이 곧장 3층으로 올라가 셔츠를 벗고 욕실로 들어갔다.밖에서는 천둥소리가 더 거세졌고 강풍이 휘몰아쳤다.샤워를 마친 성규연이 나왔을 때는 몸에 밴 술 냄새도 거의 가셨다.성규연은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면서 무심코 창밖을 내다보았지만 문 앞에는 어떤 차량도 보이지 않았다.택시가 아무리 느려도 이쯤이면 도착해야 했다.성규연은 머리를 갸웃하며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마침 그때, 집사가 문을 두드렸다.“대표님, 차에 물건을 두고 내리셨습니다.”성규연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집사의 손에는 휴대폰 한 대가 들려 있었다.그 휴대폰은 강아연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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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강아연은 온몸이 비에 젖어 뼛속까지 시렸고 발걸음도 점점 무거워졌다.비는 점점 더 거세게 퍼부었고 강아연의 시야가 점점 흐려졌다.다음 순간, 급제동 소리와 함께 은빛 블랙톤의 마이바흐 한 대가 강아연의 눈앞에 멈춰 섰다.차창이 반쯤 내려가자 그 안에서 성규연의 차가우면서도 도도한 얼굴이 드러났다.딱 벌어진 어깨에 잘 맞는 슈트는 이미 벗었고 지금은 가벼운 캐주얼 홈웨어 차림이었지만 성규연 특유의 타고난 고급스러움은 오히려 더 여유롭고 압도적으로 느껴졌다.성규연과 선명한 대비를 이루는 강아연은 젖은 머리카락에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어 훨씬 더 초라해 보였지만 그녀의 등은 여전히 곧게 펴져 있었다.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체면과 품위를 지키는 강씨 가문의 교육이 몸에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강아연의 비에 얼어붙은 입술은 창백하게 떨리고 있었다.“타.”성규연은 강아연을 무심코 바라보며 차갑고 무뚝뚝하게 명령했다.성규연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는 건 곧 강아연의 체면을 세워줄 기회를 준 셈이었다.하지만 강아연을 차에서 내쫓은 것도 자신이라는 걸 성규연은 까먹은 듯했다.강아연은 비를 맞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빗물이 강아연의 속눈썹을 적시고 눈가를 타고 흘러내리며 눈물처럼 보였지만 그건 절대 강아연의 눈물이 아니었다.강아연은 무심하게 성규연을 흘깃 보고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계속 앞으로 걸었다.강아연의 힐이 고르지 못한 웅덩이에 닿을 때마다 물이 튀었고 그 물방울이 억 단위가 넘는 고급 차에 튀어 선명한 자국을 남겼다.엄청난 비와 뽀얀 안개 속, 강아연의 젖은 셔츠는 등에 달라붙어 있었고 드러난 어깨뼈는 나비의 날개처럼 얇고 연약해 보였다.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지만 강아연의 걸음은 의외로 씩씩했다.하이힐은 또각또각 바닥을 찍으며 성규연의 심장까지 두드리고 있었다.그 소리는 크지 않았고 빗소리에 금세 묻혔지만 성규연의 귀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성규연은 운전대를 꽉 움켜쥔 채, 눈을 가늘게 뜨고 강아연의 뒷모습을 뚫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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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성규연은 강아연에게 마음이 약해졌다.이건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조금 전, 자신도 거의 휘말릴 뻔했다는 걸 깨달은 순간, 서지원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핸들을 세게 내리쳤고 이내 시동을 걸고 액셀을 끝까지 밟았다.그러자 차 주위로 커다란 물보라가 튀었다....성씨 가문 저택.성규연은 차를 멈추고 시큰둥하게 말했다.“도착했어. 내려.”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기분이 살짝 언짢아진 성규연이 고개를 돌리자 강아연이 조수석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는 걸 발견했다.“강아연.”성규연이 다시 불렀지만 역시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게다가 강아연의 숨결은 미약했고 아까부터 창백한 얼굴에는 이상한 붉은 기운까지 감돌고 있었다.표정이 순간 굳어진 성규연이 강아연의 이마에 손을 대보니 이글거릴 정도로 뜨거웠다.“강아연!”성규연은 재빨리 강아연의 안전벨트를 풀고 조수석 쪽으로 돌아가 그녀를 안아 들어 성큼성큼 거침없이 거실로 들어섰다.“무슨 일이시죠?”집사와 장미진이 다급히 다가왔다.“아내가 열이 있어. 지금 바로 주치의 불러.”성규연은 명령을 내리고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강아연을 안은 채 2층으로 올라갔다.집사와 장미진은 성규연이 신발도 갈아신지 않은 채 대리석 바닥 위로 물 자국을 찍으며 올라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그리고 둘의 시선이 마주치자 서로 눈만 깜빡였다....30분 뒤, 성씨 가문 주치의가 약상자를 들고 급히 도착했다.그 사이, 장미진과 또 다른 하녀가 강아연을 욕실에서 따뜻한 물로 씻기고 젖은 옷을 벗긴 뒤 포근한 면 잠옷으로 갈아입혀 침대에 눕혀놨다.성규연은 말없이 침대 옆에 앉아 강아연을 바라보았고 표정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읽히지 않았다.의사는 강아연의 상태를 바로 확인하고 말했다.“이건 비에 젖은 뒤 감기로 인한 고열입니다. 열이 좀 높아서 수액을 맞아야 합니다. 또한 저혈당 증세가 있으니 당분 보충도 필요하고요. 무엇보다 휴식이 가장 중요합니다. 스트레스와 감정 기복은 피해야 합니다...”의사는 몇 가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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