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서로 다른 길에 오른 너와 나: Chapter 111 - Chapter 120

290 Chapters

제111화 나를 도구로 쓰지 마요

‘내가 겁먹었다고?”시아는 거울 속 자기 얼굴을 바라보다, 얇은 입술을 가볍게 당겼다.시아는 겁먹은 게 아니라, 제정신이었다.하지만 앞으로는 술을 함부로 마시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특히 지호 앞에서는 더더욱.‘어떻게 내가 그 사람에게 그런 엉뚱한 마음을 품을 수 있었을까?’‘혹시 외로움이 오래 쌓여서였을까?’시선이 자신의 매끄럽고 단아한 몸매 위를 스쳤다.그러고는 시야는 살짝 고개를 저으며 샤워기 밑으로 가서 물을 틀었다.따뜻한 물줄기가 머리 위로 쏟아졌다.의식이 맑아지고, 온몸에 밴 술 냄새가 씻겨나가자, 몸과 마음이 훨씬 개운해졌다.그런데, 욕실 문을 열자 지호가 아직도 있었다.지호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책도, 휴대폰도 없이, 마치 시아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이에 시아는 지호를 흘끗 보고 드레스룸 쪽으로 걸었다.그러자 지호 목소리가 뒤에서 날아왔다.“잠깐 얘기할까?”‘또 얘기?’“그랬다간 오후 될걸요.”시아는, 혹시라도 아래층 사람들이 자신과 지호가 아침부터 밤까지 침대에서 붙어있는 사이라고 오해할까 싶었다.어차피 언젠가는 헤어질 관계라고는 하지만 지호는 그런 사람이었다.자신이 꺼내는 화제는 그 누구도 쉽게 거절할 수 없었고, 시아의 발걸음을 붙잡은 건 그다음 말이었다.“넌 어떻게 내가 미아를 사랑한다고 확신하는 거지? 내가 그 여자랑 잔 걸 본 것도 아니잖아. 아니면, 그 여자가 멀쩡할 때 네게 뭐라고 말한 적이라도 있나? 아니면...”지호는 말을 잠시 멈췄다.“그냥 네가 나랑 헤어지려고 꾸며낸 상상은 아니고?”지호가 굳이 이 이야기를 꺼내자, 시아는 드레스룸에서 돌아와 컵을 집었다가 잠시 멈칫했다.컵 안에는 이미 물이 담겨 있었고, 게다가 온기도 있었다.여기는 둘만의 침실이었고, 누군가 몰래 들어올 리 없으니, 분명 지호가 준비해 둔 것이었다.시아의 손끝이 컵을 감싸며 조금 힘이 들어갔고, 시선이 그의 얼굴로 향했다.날카롭고 선명한 이목구비, 그 모습은 마치 섹시한 드라큘라라는 말이 찰떡처럼
Read more

제112화 언제 이혼해요?

지호에게서는 싸늘한 기운이 잔뜩 맴돌았고, 그렇게 남자는 아래층으로 내려왔다.거실에 앉아 있던 사람들 모두 그 분위기를 느꼈다.“아침부터 무슨 일이야?”안영이 흘끗 보며 바로 물었다.“뭐긴 뭐겠어요. 분명 욕구불만이죠.”옆에 있던 민아가 말을 받았는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았다.“네 나이에 뭘 안다고 입을 함부로 놀려. 어린애가 말을 걸러 한다는 게 없어.”안영이 타박과 함께 손찌검까지 하자, 민아는 벌떡 일어나 성난 얼굴로 말했다.“두 달만 있으면 나도 성인이에요.”“성인이 아니라 성질만 늘었네. 그렇다고 함부로 말하면 안 돼.”안영의 어조는 엄격했다.둘은 잠시 눈싸움을 하더니, 민아가 홱 돌아서 지호의 옆을 지나가며 일부러 세게 부딪치고는 한 마디 내뱉었다.“꼴 좋네.”그 말에 지호의 얼굴에서 서린 냉기가 조금 풀렸고, 소파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훑어봤다.“다들 한가하나 보네요?”“맞아, 그러니까 언제 우리한테 애기 안겨줄 거야?”지호의 할머니 여진숙 여사가 바로 물었다.“그걸 안을 체력이 되세요?”지호는 과일 접시에서 포도를 하나 골라 입에 넣었다.“안아 보면 알겠지.”나이가 많아도 귀와 눈은 여전히 또렷한 여진숙은 말도 거침없었다.안영도 옆에서 거들었다.“어머님 말씀이 맞아요.”이런 식의 재촉은 지호도 익숙했다.평소라면 그냥 넘겼겠지만, 방금 받은 전화를 떠올리자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다.“한 사람한테만 매달리지 마요. 게다가 나는 둘째잖아요. 순서로 따지면 아직 제 차례도 아니죠.”그 말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하자유의 결혼 상태가 어떤지는 여기 있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부부가 마주쳐도 서로 알아볼까 말까 하는 상황인데, 무슨 애를 바라겠는가?말을 돌린 것은 지호의 바람대로 성공이었다.지호는 입안의 포도 껍질을 뱉으며 말했다.“각자 할 일 하러 가세요. 이따가 제 와이프 불편하게 만들지 말고.”“그게 뭐가 불편해, 우린 또…”여진숙도 해명하려 했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
Read more

제113화 누구도 대신할 수 없고요

결혼식 날, 그 꼬마 아가씨는 이미 시아를 반기지 않는 태도를 보였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시아는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었지만, 세상에 이유 없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일은 없는 법이라 문득 궁금해졌다.‘모두가 나를 좋아하는데, 어째서 얘만은 나를 싫어하는 걸까?’마침 할 일도 없으니, 잠시 얘기나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어쩌면 뜻밖의 정보를 얻을 수도 있었다.“우리 오빠는 언니를 안 좋아하니까요.”민아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계단 난간에 서 있는 민아를 올려다봐야 해서, 시아는 시선 각도가 불편했다.이에 시아는 두 걸음 앞으로 나아가 난간에 느슨하게 기대며 말했다.“그런 말, 아가씨 오빠는 한 적 없는데요?”민아의 앳된 얼굴에 조롱기가 떠올랐다.“굳이 말해야 알아요? 언니 스스로 못 느껴요?”나이는 어리지만 입은 날카로웠고, 그야말로 젊은 패기가 넘치는 전형이었다.시아는 입술을 살짝 다물었다가, 말을 이었다.“난 전혀 못 느꼈어요. 사실 아가씨 오빠는 나한테...”시아의 눈앞에 아침의 그 따뜻한 물 한 컵이 떠올랐다.“꽤 잘해주거든요.”“오빠가 어떤 여자한테 잘 안 해줬다고 생각해요?”민아는 단숨에 지호를 바람둥이로 몰았다.“그럼 그동안 잘해준 여자들이 누구인지, 아가씨가 말해줄래요?”시아는 오늘따라 심심해서인지, 굳이 말을 이어갔다.민아는 입술이 몇 번 열렸다 닫히더니, 결국 말하지 않았다.대신 냉랭하게 시아를 바라보며 말했다.“오빠한텐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리고 그 사람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고요.”“이미아예요?”시아가 자연스럽게 묻자 민아의 대답은 꽤나 단호했고,“아니거든요.”시아의 눈빛에 호기심이 조금 더 짙어졌다.“그러면 누구예요?”민아는 난간을 잡은 손가락에 힘을 주며, 손톱으로 난간 가장자리를 긁었다.“어쨌든 언니는 아니에요.”민아가 명확하게 말하지 않은 건, 무언가를 의식해서이거나 그냥 말하기 싫어서였다.그래서 굳이 더 묻지 않고, 시아는 가볍게 알겠다고 하고는 몸을 세워 밖으
Read more

제114화 그 말이면 됐다

“시아야, 정말 너야?”머리카락이 조금 희끗희끗해진 사람이 시아의 앞에 서서, 놀람과 반가움이 뒤섞인 얼굴로 여자를 바라봤다.시아의 굳었던 몸이 서서히 풀리며, 목이 바짝 말랐다.“코치님.”“그래, 나야. 너 이제 날 못 알아볼 줄 알았는데?”서현아는 예전 코치 시절 그대로의 단호한 기운을 풍기며 손을 내밀었다.시아는 무덤덤하게 손을 내밀었다.“그럴 리가요.”서현아는 시아의 다이빙 코치이자, 과거 미아와 함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이었다.시아는 한때 서현아를 어머니처럼 여겼지만, 그 일 이후로 연락을 끊었다.설마 이렇게, 그것도 이곳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코치님은 어떻게 여기 오셨어요?”시아가 화제를 돌리듯 묻자, 서현아의 표정에 잠깐 어색함이 스쳤다.“남편이 여기에 들어왔어.”부모님이 요양원에 오는 건 흔한 일이지만, 서현아가 그렇게 말하니 시아는 의외였다.시아는 서현아의 남편을 알고 있었다. 체격이 크고 건장하며, 역시 체육 쪽 일을 하던 사람이였다.“말하자면 얘기가 길어져.”서현아가 한숨을 쉬었고, 그 말속엔 깊은 체념이 배어 있었다.집집마다 사연이 있는 법이다. 시아도 굳이 묻지 않고 그저 한마디만 했다. “외할머니가 여기 계신 지 몇 년 됐는데, 꽤 좋아요.”그 말에 서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여러 군데 알아보다가 여기로 정했는데, 네 얼굴을 보게 될 줄은 몰랐네. 예전보다 훨씬 예뻐졌어. 거의 못 알아볼 뻔했어.”“그때는 애였죠.”시아가 서현아 밑에서 다이빙을 배울 땐 아직 앳된 소녀였다.“그래, 많이 컸네.”그러나 서현아의 말엔 다른 뉘앙스가 스며 있었다.이에 시아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잠시 침묵이 흘렀다지만 곧 서현아가 말을 꺼냈다.“전화나 연락처 있니? 우리 번호 교환하자.”다른 사람이라면 거절했겠지만, 서현아의 제안은 거절할 수 없었다.시아는 휴대폰을 꺼내 연락처를 교환했다.서현아는 저장하며 말했다.“조만간 둘이서 한번 보자. 너랑 얘기하고 싶은 게 많아.
Read more

제115화 다음 생에도

시아가 그 말을 꺼낸 건 사실 쓸데없는 확인이었다.노하숙이 그날 목걸이를 건네며 모든 사연을 이야기해 줬을 때, 이미 마음속 원망을 내려놓았다.또한 아버지를 찾아도 된다고 허락한 것이나 다름없었다.하지만 시아는 그래도 다시 한번 확실히 하고 싶었다.어머니의 죽음은 노하숙 인생에서 가장 깊은 상처였고 그 상처의 화살은 한때 온전히 그 남자를 향해 있었다.이에 시아는 종종 노하숙도 자신을 원망했을 거라고 생각했다.자신이 세상에 오지만 않았다면, 어머니는 목숨을 잃지 않았을 것이고, 노하숙도 딸을 잃지 않았을 것이었다.하지만 노하숙은 딸을 너무 사랑했다.그래서 손녀에 대한 원망을 전부 사랑으로 바꿔, 그 사랑을 아낌없이 주었다.“바보 같은 애구나.”노하숙은 다정하게 웃었다.“내가 마음에 두면 애초에 목걸이를 주지도, 모든 걸 얘기해주지도 않았을 거야.”“외할머니.”“네 생각대로 해. 너무 많은 생각은 말고.”노하숙이 시아를 다독이자, 그녀는 자신의 외할머니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저 전생에 정말 착한 일 많이 해서야, 이렇게 외할머니 손녀가 됐나 봐요.”노하숙은 시아의 머리 위를 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그러면 다음 생에도 우리는 할머니와 손녀 하자. 외할머니는 삼도천 건너기 전에 기억 잃게 하는 물은 안 마실 거야.”그 말에 시아의 눈가가 순간 뜨거워졌다.“외할머니.”그날이 오길 원치 않지만, 그날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아까 침대를 정리하다가, 노하숙 베개 밑에 말라붙은 핏자국을 보았다. 아마 또 몰래 피를 토한 듯했다.“그 사람을 찾고 싶으면 찾아. 찾으면 나도 한번 보고 싶어. 묻고 싶은 말이 좀 있거든.”외할머니는 슬며시 화제를 돌렸지만, 그건 마음속 진심이기도 했다.어머니가 세상을 떠날 때 곁에 있던 건 노하숙뿐이었다.아마 노하숙이 묻고 싶었던 건, 어쩌면 시아의 엄마 대신 묻는 말일 것이다.시아는 그 말을 듣자 그 사람을 찾아야겠다는 마음이 확고해졌다.해 질 무렵, 요양원은 다시 북적이기 시작했다.시아가
Read more

제116화 우리 약속 잊은 거 아니지?

“무슨 일 있어요?”노하숙 시야에서 벗어나자, 시아의 표정은 다시 차갑게 굳었다.조금 전까지 노하숙 앞에서 보이던 부드러움은 흔적도 없었다.지호의 손은 여전히 시아의 허리에 얹혀 있었다.시아의 허리는 성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놀랄 만큼 가늘고, 또 믿을 수 없을 만큼 부드러웠다.그러자 지호는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니.”요양원 길은 시아가 눈 감고도 걸을 만큼 익숙했다.정자와 복도를 돌아 노하숙 눈에 닿지 않는 곳에 이르자, 시아는 지호의 손을 치며 물었다.“그러면 왜 찾아왔어요?”“왜, 아무 일 없으면 와이프 보러 오면 안 돼? 작은 사모님?”마지막 세 글자는 유난히 힘을 주어 발음했고, 그건 분명 시아의 신분을 상기시키는 말이었다.‘그래, 하루 벌어 하루 살 듯, 오늘만은 이 사람 와이프로 있지.’“가능하죠.”짧게 대답하는 시아의 말투에 하지호가 웃음을 흘렸다.“시아야, 우리 약속 잊은 거 아니지?”“뭐요?”시아는 꼭 말을 돈 주고 하는 사람처럼 짧게 받았다.둘 사이의 약속은 꽤 많았고, 관련된 건 미아 얘기, 결혼 얘기, 뭔가 더 있었던 것 같지만, 시아는 대부분 대충 흘려들었다.지호가 한 걸음 더 다가왔다.큰 키를 숙이며 그녀와 거의 코끝이 맞닿을 듯 가까이, 낮게 말했다.“넌 나한테 석 달 동안 진심을 다하겠다고 했잖아.”‘그랬던가? 분명 말은 했는데, 진짜 약속했었나?’“근데 넌 날 보자마자 얼굴이 싸늘해져. 꼭 내가 너한테 몇천억이라도 빚진 사람처럼. 그런 나는 어떤 기분일지 상상은 해봤어?”지호는 입가에 힘 없는 좌절감을 띠었지만, 눈빛은 묵직하게 내리누르고 있었다.둘 사이는 너무 가까워서, 시아는 지호의 눈동자 속에 비친 자신을 볼 수 있었다.거울처럼 맑지만 온기도 없는 시선, 미소 한 줄기 없는 얼굴이 너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생각해 보면, 이 결혼은 비록 지호의 계산에서 시작됐지만, 자신이 저지른 실수로 발을 들인 것이기도 했다.지호가 복수심으로 시작했다면, 자신은 노하숙을 안심시키
Read more

제117화 나는 정정당당히 얻을 거야

시아가 잠에서 깼을 때, 차는 이미 멈춰 있었고, 하늘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지호는 차 안에 없었는데, 자기 몸에 남자의 외투가 덮여 있었고, 그 외투에서는 참 기분 좋은 은은하고 깔끔한 소나무 향이 났다.시아는 차창 밖을 바라보자, 지금 있는 곳이 시내가 아님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바깥은 너무 어두웠고, 드문드문 보이는 불빛도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낯선 환경에 대한 경계심이 스며들어, 시아는 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좁혔다.그리고 몸에 덮인 외투를 벗어내고 문을 열었다.밤바람 속 냉기가 스며들어와, 시아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이에 괜한 허세를 부리지 않고, 다시 지호의 외투를 집어 어깨에 걸쳤고, 그제야 이곳이 산 정상임을 확인했다.지호는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시아가 있는 자리에서 바라보면, 마치 절벽 끝에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시아가 다가가자, 바람이 지호의 셔츠를 부풀게 하며 펄럭거리는 소리가 났는데, 그 소리만으로도 한층 서늘해졌다.“안 추워요?”“괜찮아.”지호의 시선은 멀리 고정돼 있었다.이 자리에서는 제국의 모든 불빛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반짝이는 도시, 그 속의 번화가가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졌다.시아는 이곳이 어디인지 깨달았다.바로 파마산이었다.아침에 나눈 대화를 떠올리자, 지호가 왜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왔는지 대략 짐작이 갔다.그러나 굳이 말로 꺼내지 않고, 그저 조용히 말했다.“외투, 돌려줄게요.”“그러면 네가 춥잖아.”지호가 고개를 돌려 시아를 바라봤다.밤이 너무 어두워서인지, 혹은 지호가 오랫동안 어둠 속에 서 있었기 때문인지, 남자의 눈빛은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깊은 시선이었고, 외투를 벗으려던 시아는 동작을 멈췄다.곧 시아는 지호의 말 속에 다른 뜻이 숨어 있음을 느꼈다.외투는 단 한 벌이었고, 시아가 지호에게 돌려준다면, 여자는 그 추위를 견뎌야 한다.이 파마산 또한, 모두가 원하지만 차지할 수 있는 건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지호가 자신을 이곳
Read more

제118화 이별 선물로 준다면

“그건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승준이 했던 말이었다.굉장히 차갑고, 딱 정형화된 어투였다.그날은 비가 왔고, 시아의 마음은 빗방울보다도 더 차갑게 식어 있었다.지난 7년 동안, 승준이 자신을 사랑했던 흔적은 분명 있었지만 사랑하지 않았던 흔적도 많았다.다만 시아가 스스로 외면하고 외로움을 덮어두었을 뿐이었다.“응?”지호가 시아의 목덜미에 가볍게 입술을 눌렀다.차가운 밤공기에 섞인 그 촉감이 간지럽고, 은근한 통증이 스며들자 그제야 시아는 정신을 다잡았다.지호가 옆에서 몸으로 막아 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득, 바람이 한층 더 차갑게 느껴졌다.“왜 묻는 건데요?”시아의 목소리는 서늘하게 가라앉았다.“넌 내 와이프잖아. 내가 산을 샀으면, 그 산을 어떻게 쓸지 주인인 네 의견을 물어보는 게 당연하지.”지호는 시아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느꼈는지, 더 세게 끌어안았다.마치 그녀를 자기 몸속에 묻어버리려는 듯한 기세였다.숨이 약간 가빠지자, 시아는 살짝 몸을 비틀었다.“당신, 너무 몰입한 거 아닌가요? 우린 곧 헤어질 사이잖아요.”“아직 헤어진 건 아니잖아?”지호는 언제나 자기 논리를 꺼내왔다.시아는 산 아래 끝없이 펼쳐진 불빛을 응시했다.지호가 마음대로 할 수 있더라도, 자신은 이성적으로 선을 지켜야 했다.같은 굴욕과 실수를 두 번 반복할 수는 없었다.“만약 내가 이 산을 이별 선물로 준다면, 그때는 대답해 줄 거야?”지호의 말은 한 마디 한 마디가 시아 마음 깊숙이 파고들었다.자신이 애써 쟁취한 땅을, 승준은 쓸 용도조차 자신에게 묻지 않았다.그런데 지호는 그걸 이별 선물로 주겠다고 했다.그저 장난일 거라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미묘하게 흔들렸다.지호가 말했던 석 달 동안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을 떠올리며, 시아도 장단을 맞췄다.“이건 너무 큰 선물이라 받을 수 없어요.”“내가 꼭 주겠다 하면? 안 받으면 못 가게 할 거야.”지호는 또 얄궂게 버텼다.그 모습에 시아는 오늘 지호가 심심해서 장
Read more

제119화 다른 방식으로 날 괴롭혀

밤은 깊었고, 산바람은 서늘하게 불었다.그런데 시아의 몸속에는 이유 모를 열기가 차오르고 있었다. 뜨겁고, 자꾸만 온몸을 타고 퍼져나가는 느낌이었다.언제부터였을까?시아의 손이 지호의 셔츠 자락을 단단히 움켜쥐고 있었다. 또한 심장 박동과 호흡이 서서히 엇박자를 타고 있었다.시아는 스스로를 잘 다스리는 사람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대 무너지지 않는 건 아니었다.지호가 몸을 기울여 다가왔을 때, 시아는 그대로 굳어 서 있었다.지호의 입술이 살짝 내려와 닿았는데, 가볍게, 아주 얕게, 마치 떠보듯이, 또 달래듯이 닿았다.무슨 상황인지 알면서도 시아는 피하지 않았다. 지호의 입술이 자기 입술 위에서 천천히 머무는 걸 그대로 받아들였다.그리고 지호가 살짝 입술을 벌리려는 순간, 시아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지호의 손목을 잡은 시아의 손이 순간적으로 움찔하며 힘이 들어갔다. 얼굴을 옆으로 돌리고 눈을 지그시 감았는데, 목덜미 위로 고동치는 맥박이 불규칙하게 뛰었다.“당신, 다른 방식으로 날 괴롭혀.”목소리는 떨렸지만 단호했다.이 방식은 시아가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이윽고, 지호의 큰 손이 시아의 목덜미에 닿자, 엄지손가락이 정확히 뛰는 맥 위에 눌렸다.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귀 끝을 스쳤다.“난 이게 좋은데, 그럼 어떻게 하지?”시아의 속눈썹이 나비 날개처럼 파르르 떨렸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발이 바닥에 박힌 듯 움직이지 않았다.이윽고 지호가 시아를 품에 끌어당겼다.“시아야, 난 너를 반드시 사랑하게 할 거야.”그 순간, 시아는 숨이 통하지 않는 그물이란 게 무엇인지 새삼 알게 되었다.온몸이 그물에 갇혀 몸부림치지만 빠져나갈 수 없는, 그 답답한 감각이 밀려왔다.도망치고 싶었지만,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기에 오늘 밤만큼은 발버둥을 놓아버리기로 했다.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상황이 이끄는 대로, 그리고 그 사람의 손길이 닿는 대로 움직였다.지호는 시아의 손을 잡아 산길을 벗어났으나 내려가지 않고 반대편으로
Read more

제120화 내 유일한 와이프니까

시아의 손바닥이 뜨겁게 달아올랐는데, 이는 지호가 남긴 짧은 입맞춤 때문이었다.시아는 전기가 스친 듯 움찔하며 몸을 빼고, 재빨리 거리를 두었다.“이제 집에 가도 돼.”지호가 부를 때쯤, 텐트는 이미 단단히 고정돼 있었다.심장은 평정을 되찾으려 해도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뛰는 속도는 평소보다 훨씬 빨랐다.결혼식 이후, 지호와 한 침대에서 잔 적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침대는 넓었고, 이 작은 텐트에서 둘이 함께 눕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공기마저 묘하게 달라진 듯했고, 게다가 지호는 시아의 마음을 흔들고, 또 불시에 입맞춤까지 했다.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시아는 텐트 안이 답답하게 느껴졌다.“이 텐트, 품질이 좀 안 좋은 것 같은데.”시아는 솔직한 말을 핑계 삼아 어색함을 풀고자 했다.“맞아. 숨이 좀 막히네. 내일 고성민 월급 깎아야겠어.”순간 시아는 할 말을 잃었고, 멀찍이 있던 성민은 그 순간 재채기를 연달아 했다.“이건 밀폐가 너무 잘 돼서 그런 거지, 비서님 탓은 아니잖아요.”시아는 무고한 사람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지호는 반쯤 누운 채 두 다리를 길게 뻗었다.다리가 거의 텐트 벽에 닿을 만큼 길어, 괜히 다리가 불편해 보였다.“그냥 돌아가는 게 어때요?”시아는 턱으로 지호의 다리를 가리켰다. “이러면 불편하잖아요.”“날 걱정해 주는 거야?”자기애 가득한 말투는 여전했다.“다리가 불쌍해서 그러죠.”그렇게 말하다가, 시아는 문득 들은 소문이 떠올랐다.“혹시, 당신 다리 진짜로 보험 들어놨어요?”그 소문에 따르면, 지호는 돈이 남아돌아 온몸에 보험을 들었다 했다.몸의 하드웨어 즉 주요 부위뿐 아니라, 소프트웨어인 정자까지도 억대 보험을 들었다는 말이 있었다.순수한 질문에 지호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나한테 무관심한 건 아니네? 이런 얘기까지 알고 있었어?”‘진짜였나? 그렇다면, 그 소프트웨어 보험도 사실인 건가?’시아는 무심코 지호의 허리 아래로 시선을 옮겼고, 그 짧은 눈길조차 지
Read more
PREV
1
...
1011121314
...
29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