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서로 다른 길에 오른 너와 나: Chapter 121 - Chapter 130

290 Chapters

제121화 그 시절의 누나를 위해

[하씨 가문 재벌 2세, 와이프와 캠핑하러 가서 일출 감상, 사랑 과시하는 스킬이 미쳐, 너무 달콤해!][저건 내가 원하는 남편인데, 하지호 와이프님, 그 사람 돌려주세요.][하지호 와이프님, 전생에 은하계를 구하신 건가요?]...시아는 하호와의 캠핑이 누군가에 의해 몰래 촬영돼 인터넷에 올라갔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게다가 각종 부러움의 댓글뿐 아니라, 두 사람을 천생연분이라 치켜세우는 말들까지 쏟아졌다.그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지금 이렇게 화제가 될수록, 훗날 두 사람이 헤어졌을 때 받을 여론의 역풍은 더 클 것이다.그건 이미 수많은 연예인들의 결혼이 증명해 준 사실이었다.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생각하던 찰나, 조강국이 곧바로 축하 인사를 보내왔다.[누나, 이번에 터진 미친 화제 좀 써먹어 볼래요? 제가 잘 굴려줄게요.]“아니, 이런 건 당장 사라지게 해줘.”이 일은 강국에게 맡기는 게 가장 확실했다.‘강국은 여론을 뒤집기도, 잠재우기도 하는 사람이니까.’하지만 강국은 웃으며 말했다.[그건 불가능해요. 오히려 계속 더 커질걸요.]강국은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유명한 사람으로서 그렇게 단언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터였다.시아도 예전에 구승준과 함께 이런 일을 많이 겪어봤기에 눈치를 챘다.“혹시 하지호가 일부러 그런 거야?”[난 아무 말 안 했어요. 근데 나쁜 건 아니잖아요? 부부 금슬 좋다는 이미지를 굳히고, 사회적으로 당신 남편에 대한 호감도까지 높였으니까요. 지금 얼마나 인기 있는지, 누나는 모를걸요?]정말 인기가 뜨겁긴 했다.시아가 어느 영상 플랫폼을 열든, 지호의 얼굴이 보였다.지호의 인터뷰와 그가 한 일, 심지어 거리에서 청소 아주머니가 떨어뜨린 빈 음료병을 주워주는 사진까지 기사화됐다.사람이 이렇게 뜨면, 방귀를 뀌든 기침하든 다 뉴스가 되었다.그중에는 시아가 결혼 전에는 보지 못했던 영상도 많았다.잠시 스크롤을 넘기는 사이, 시아는 하지호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됐다.결혼 전, 자신이 아는 지호는 잘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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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화 낙하산으로 들어가려고

[이거 도대체 얼마를 쓴 거예요? 온 세상이 당신 얘기로 도배됐네요?]유진오가 들어서자마자,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는 지호를 보고는 슬쩍 놀리듯 한마디 했다.지호는 손가락으로 화면을 꺼버리더니, 눈꺼풀을 살짝 들어 진오를 바라봤다.“네가 돈 좀 써서 내 검색어 좀 내려줘라.”“허세 작렬이네. 잘난 척은.”진오가 지호를 가리키며 말했다.“이렇게 뻔뻔한 놈은 처음 보네.”지호는 휴대폰을 돌리며 중얼거렸다.“나 진심이야.”진오는 눈을 가늘게 뜨고 지호가 장난을 치는 건지 진심인지 살폈다.그때 지호가 말을 덧붙였다.“와이프 명령이야.”그 말도 안 되는 말에 진오는 말문이 막혔다.“네 아버지 요즘은 어떠셔? 혹시 나 얘기하신 적 있나?”이때, 지호가 갑자기 화제를 바꿨다.그러자 진오는 순간 몸이 굳으며, 소파에 걸터앉은 자리에서 살짝 몸을 옮겼다.지호를 바라보는 눈빛에 경계심이 묻어났는데, 꼭 도둑을 경계하는 듯했다.“왜 그렇게 봐? 내가 아버님을 해치기라도 할까 봐?”지호가 두 다리를 꼬아 올렸는데, 그 순간 진오는 왠지 그가 자기 아버지와 닮은 위압감을 풍긴다는 느낌을 받았다.“그런데 왜 아버지 얘기를 하는 건데?”진오의 단춧구멍 같은 눈매가 호기심으로 가득 찼다.“그냥 문득 생각나서, 말이 나온 거야.”지호의 입술은 예쁘지만, 나오는 말은 하나같이 듣기 거북했다.그걸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없었기에, 진오는 피식 웃었다.“아버지 얘기 궁금하면, 그냥 무슨 일인지 솔직히 말해. 나랑 머리 싸움하지 말고.”“낙하산으로 들어가려고.”지호의 입에서 낙하산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어감이 영 곱지 않았는데, 그 말투는 당연하다는 듯했다.그 말에 진오가 비웃었다.“네가 우리 아버지를 몰라서 그래? 아니면 잘 알아도 무시하는 거야? 산을 사더니 허파가 들어 머리가 어떻게 된 거냐?”지호가 눈을 들어 바라보자, 진오는 헛기침했다.“이건 네가 나한테 부탁할 일이 아니야. 나는 못 도와.”진오의 아버지는 평생 청렴결백한 정치인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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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화 그렇게 갖고 싶어?

“시아야, 요즘 완전 핫하더라? 그런데 이렇게 나와서 쇼핑하다가 또 따라붙는 기자들이나 팬한테 찍히면 어쩌려고?”진은채가 품에 안은 작은 개를 토닥이며 시아를 향해 비꼬듯 말했다.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시아와 진심으로 친해질 리 없었다.겉으론 점잖은 척하지만 속으로는 견디지 못하는 이중적인 태도, 그건 거의 병적이었다.시아는 은채를 쳐다보지도 않고, 필요한 물건을 고르는 데만 집중했으나, 은채는 전혀 개의치 않고 뒤를 따라왔다.“목걸이는 받았어?”“너는 받았어?”시아가 담담히 되물었다.“구승준이 꽤 신경 썼는데, 다른 사람이 먼저 가로챘다더라.”은채가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했다.“역시 늦게 깨닫는 사랑은 별 볼 것도 없다는 말, 네 덕분에 내가 실감을 아주 잘했어.”시아의 손이 잠깐 멈췄다. ‘목걸이를 다른 사람이 샀다고?’‘만약 지호가 그걸 가져갔다면 분명 나한테 줬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면 그건 누구 손에 들어간 걸까?’시아는 아직도 지호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괜히 믿은 셈이었다. “그렇다면 너도 못 본 거네.”은채는 시아의 표정을 놓치지 않고 지켜보다가,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었다.“그 목걸이, 그렇게 갖고 싶어?”원하든 말든 은채가 알 바 아니었고, 시아는 남이 자신의 속을 들여다보는 게 제일 싫었다.“괜찮아. 그냥 목걸이 하나일 뿐이니까.”은채의 매끈한 눈매가 가늘어졌다.“그런데도 그때 나랑 경쟁했어?”그제야 시아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고, 그 차가운 눈빛에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네 시선을 뺏고 싶었거든.”시아의 미묘한 날 선 기운을 느낀 걸까?은채 품의 작은 개가 갑자기 시아를 향해 날카롭게 짖어댔다.주변에서 시선이 쏠리자 은채가 개를 꼭 끌어안고 달랬다.“도니, 조용히 해.”“강시아, 이런 말 들어봤어? 높이 올라간 사람일수록 떨어질 때 더 처참하다는 거. 네가 지금처럼 잘나가고 요란하게 보일수록, 나중에 무너질 때는 더 비참해질 거야.”질투가 묻어나는 말투였다.“비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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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화 그래서 부러워요?

은채가 시아를 날카롭게 노려본 뒤,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돌아섰다.시아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다시 마음에 드는 선물을 골라봤지만 마땅한 게 없었다.그래서 직원에게 다른 진열 구역으로 안내해 달라고 했다.“아쉽게도 다른 사람이 먼저 가져갔더라.”아까 은채가 했던 말이 다시 귓가에 맴돌았다.이에 시아는 휴대폰을 꺼내 조강국에게 메시지를 보냈고, 이 일은 그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없었다.강국은 곧바로 답을 보냈다.[못 받았어?]시아는 서 있던 다리가 조금 피곤해져 휴게 구역 의자에 앉아, 짧게 한 글자를 보냈다.[응.][하지호 능력으로 네 목걸이 하나쯤 못 챙기겠어?]이게 강국의 답이었다.시아는 그 말을 보며 입가에 비웃음을 지었다.처음에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기에 지호에게 부탁했던 거였지만 결과는 없다는 것이었다.가끔은, 어떤 일에 대해서는 과대평가를 해서는 안 되었고, 이번이 딱 그 경우였다.괜히 믿었다가, 어리석은 선택을 한 셈이었다.강국은 시아의 답장이 오지 않자 무언가를 눈치챈 듯 다시 보냈다.[내가 처리할게.]이에 시아는 감사 스티커를 하나 보냈다.채팅창을 닫으려던 찰나, 다른 메시지가 들어왔고, 이는 강국이 아니라 지호였다.[어디야?]세 글자, 간단명료했다.그러나 시아는 그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고, 굳이 답하고 싶지도 않았다.지호가 도와주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안 하겠다면 거절하면 될 일이었다.그런데 해주겠다고 해놓고는 안 했다.처음부터 거절했다면 진작 다른 방법을 찾았을 것이고, 이렇게 목걸이를 빼앗기고 뒤늦게 곤란해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었다.시아가 잠시 멍하니 있는 사이, 지호의 두 번째 메시지가 도착했다.[???]시아는 그대로 화면을 꺼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선물을 골랐다.시아는 서현아를 위해 실크 스카프를 하나 골랐다.지난번 만났을 때도 목에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고, 예전부터 목 디스크로 추위를 많이 타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스카프에 어울리는 옷과 구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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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화 대체 무슨 일이에요?

서현아가 문을 열자, 시아는 바로 고소한 음식 냄새를 맡았다.그 소박하면서도 정겨운 향이 두 사람 사이에 있던 거리감을 단번에 줄였다.사실 시아는 서현아를 만나러 오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압박을 느끼고 있었다.시아의 앞에 서 있는 건 단순한 옛 지인만이 아니라, 마주하고 싶지 않은 과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사람 사는 냄새와 온기만큼 마음을 풀어주는 건 없다.시아는 예전, 서현아 곁에서 얻어먹던 행복한 순간들이 스쳐 지나가며 마음속 긴장이 조금 풀렸다.서현아 역시 그녀를 배려하고 있었다.시아가 부담을 느낄 걸 알았고, 또 어떻게 풀어줘야 할 줄도 알고 있었다.시아는 그 마음 씀씀이에 살짝 울컥하며, 준비해 온 선물을 건네며 웃었다.“향이 정말 좋아요. 냄새만 맡아도 군침이 돌아요.”“그럼 어서 들어와서 손 씻고 먹자.”서현아는 자연스럽게 선물을 받아 들며 스스럼없는 태도를 보였다.마치 시간이 7년 전으로 되돌아간 듯했다.시아는 들어서자마자 손을 씻고 곧장 식탁에 앉아, 집 안을 둘러보니 크진 않았지만 깔끔하고 단정했다.서현아 본인처럼 화려한 치장은 없지만, 사람을 편하게 하는 분위기였다.“자, 우리 한잔하자.”서현아는 술까지 준비해두고 있었다.와인도 아닌, 소주와 맥주이자, 시아는 조금 놀랐다.자신의 기억 속 서현아는 술을 전혀 하지 않았고, 운동하는 사람은 절대 술을 입에 대지 말아야 한다고 하던 사람이었다.“양주는 없고 이 둘 중 골라. 안 마시면 물 마시면 되고.”그러나 서현아는 이미 자기 잔에 소주를 따르고 있었다.그 투명한 액체를 보며 시아는 잠시 멍해졌다.시간은 분명, 서로의 인생에 흔적을 새겨놓고 있었다.“이 몇 년 사이에 마시게 됐어.”서현아는 시아가 놀란 걸 알아차리고 웃으며 말했다.한 여자가 갑자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면, 그 사이에 무슨 사연이 있었을 것이었다.시아의 목이 순간적으로 바짝 말랐고, 여자는 비어 있던 잔을 가져다 소주를 따라냈다.문득 자신도 떠올랐다.예전엔 술 냄새만 맡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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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화 잘 살아야 해

서현아는 이번에 너무 많이 울어 눈이 벌겋게 부어 있었다.그러다 시아를 바라보더니 손을 들어 여자의 얼굴을 어루만졌다.“시아야, 다 지난 일이야. 이 일은 더는 묻지 마.”“코치님.”“난 절대 말하지 않을 거야. 이 일은 7년 전에도 말하지 않았는데, 지금이라고 말할 수 있겠어?”술을 제법 마셨던 서현아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완전히 정신이 맑아진 듯했다.시아는 다시 묻고 싶었으나, 서현아 눈빛 속의 단호함을 마주치자 끝내 말을 삼켰다.서현아가 말하기 싫다면, 억지로 들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서현아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시아야, 이미아가 지금 어디 있는지도 모르잖아. 과거는 놓아두고, 지금 네 삶을 잘 살아야 해.”“미아 돌아왔어요.”시아가 말을 끊었다.“아직 살아 있어요. 다만, 계속 잠들어 있을 뿐이에요.”그러자 서현아는 놀란 듯 시아를 바라보았다.“미아가 깨어날 가능성이 있어요. 요즘 자주 가서 말도 걸어주는데, 몇 번이나 강하게 반응했어요. 그러니까 더 강한 기억으로 신경을 자극하면, 어쩌면 깨어날 수도 있어요.”시아는 조급한 마음으로 설명했고, 서현아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굳어 있었다.시아가 서현아의 손을 잡았는데, 여자의 손은 차갑기만 했다.“코치님도 이미아가 깨어나길 바라시죠?”서현아는 가볍게 눈꺼풀을 내리며 고개를 숙였다.“그 아이가 스스로 깨어나길 원할까?”이 말은 예전에 노수한도 시아에게 했던 말이었다.식물인간이 깨어난 사례 중 외부 자극만으로 완전히 깨어난 경우는 없었고, 그들 모두에게는 스스로 깨어나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있었다.‘미아에게 그런 의지가 있을까?’그걸 시아는 알 수 없었다.그리고 서현아가 말하지 않는 그 일이 이미아에게 자극이 될지, 아니면 완전히 포기하게 만들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깨어나고 싶어 하는지 안 하는지를 알 수 있고,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죠.”시아는 여전히 설득하고 싶었으나, 서현아는 고개를 저었다.“시아야, 나 좀 피곤하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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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화 또 사랑꾼이 나왔네

7년 전, 지호는 카메라를 들고 경기장을 오가며 둘의 경기를 따라다녔다.그 시선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분명했다.미아를 향한 지호의 마음은, 지금 눈앞에 있는 사진 속에서 확실한 증거가 되었다.이 사실을 알아챈 시아는 이후 사진들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지호의 모습이 여러 장 더 있다는 걸 발견했다.그걸 보는 순간, 자연스럽게 떠오른 문구가 있었다.‘뜨거운 청춘.’사진을 다 보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쯤, 서현아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시아는 물 한 잔을 따라 침대 머리맡에 두고 조용히 방을 나왔다.시아가 오늘 이곳에 온 건 미아와 관련된 단서를 찾기 위해서였다.서현아는 미아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끝내 말하지 않았지만, 시아에게는 나름의 수확이 있었다.미아에게는 감춰진 비밀이 있다는 것.‘하지만 그게 과연 뭘까?’서현아가 말했던 술이 오르는 기분이 이제서야 느껴졌다.걸음이 약간 붕 뜨는 듯했고, 애초 술을 마셨으니 이런 상태로 운전은 절대 할 수 없었다.시아는 휴대폰을 꺼내 대리운전을 불렀다.그리고 그제야 지호에게서 온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있다는 걸 발견했다.거기에다 메시지도 몇 개 도착해 있었다.[너 실종됐어?][답장 좀 해!][???]‘이렇게 급하게 나를 찾는 걸 보니, 무슨 일이 있는 걸까?’그렇게 생각하며 시아는 전화를 걸자, 그쪽은 거의 바로 받았고, 목소리는 차가웠다.[왜 계속 전화를 안 받고 메시지도 안 봐?]시아는 차에 기대어 서서, 서늘한 밤거리를 둘러보며 느릿하게 말했다.“못 들었어요. 무슨 일이에요?”지호는 잠시 침묵하다가 낮게 물었다.[술 마셨지?]“네.”시아는 대답하며 일부러 입김을 내뿜자, 진한 소주 냄새가 자기 코에도 느껴졌다.[어디야. 위치 보내.]지호의 말투엔 은근한 명령조가 섞여 있었다.시아는 주변을 둘러보니, 낯선 곳, 게다가 꽤 외진 오래된 동네였다.“몰라요.”[그럼 위치 보내.]이윽고 지호가 말을 멈추더니, 됐다고 짧게 덧붙였다.“대리 불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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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화 편애쟁이

강바람이 시아의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렸다.시아는 차창에 몸을 기댄 채, 까만 눈동자로 지호를 바라보고 있었다.지호는 수납함에서 붉은색 책자를 꺼내 들더니, 시아를 향해 들어 보였다.“내 호적에 있어.”시아의 시선이 서류에 꽂혔다.순간, 결혼식 날 하씨 가문이 공증인을 예식장으로 불러와 현장에서 서류를 줬던 장면이 스쳐 갔다.이에 시아는 비웃듯 미소 지었다.“호적에 있는 사람이 곧 마음속 사람인가요?”“직접 들여다봐야 알겠지.”지호의 차가 속도를 늦추자, 대리운전 기사는 눈치 있게 차를 멈췄다.지호가 차 문을 열고 긴 다리를 내밀었고, 남자가 문을 열려 하자 시아는 손을 뻗어 막았다.그럼에도 지호는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았다.반쯤 걷어 올린 소매 아래 팔이 차 지붕에 기대었고, 지호의 코끝에선 시아의 숨결 속 진한 소주 냄새가 스쳤다.“누가 너 기분 상하게 했어?”전화 속 목소리에서도, 그리고 지금 모습에서도, 오늘 시아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시아는 지호의 얼굴을 보다가, 사진 속 7년 전 모습이 겹쳤다.손을 들어 지호의 눈썹과 눈가를 살짝 만졌다.“사진 잘 찍었죠?”그토록 많은 사진 속에서, 지호는 늘 커다란 카메라를 메고 있었다.그 시절, 분명 수많은 순간을 담아냈을 것이고, 좋은 사진을 위해 고생도 마다하지 않았을 터였다.지호는 미묘하게 눈썹을 찌푸리며 넌지시 물었다.“누굴 만나고 왔어?”창틀에 눌린 시아의 턱선이 두 겹으로 보였다.그 표정엔 조금 멍한 귀여움이 묻어났다.“만났죠. 7년 전의 하지호. 아주 잘생기고, 햇빛처럼 환했어요. 지금보다 더요.”전화에서 잠깐 언급했을 때는 술김에 한 말인 줄 알았다.하지만 보아하니, 오늘 시아가 사라진 시간엔 분명 사연이 있었다.“어디서 봤는데?”지호의 물음에 시아의 손길이 남자의 턱선을 따라 내려와 창틀을 붙잡았다.“지호 씨, 설령 당신이 정말 날 괴롭히고, 어떤 일을 한다 해도, 난 당신을 미워하지 않을 거예요.”강변의 바람은 거세게 불어 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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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화 이제는 아부 안 해

“눈은 멀고, 마음도 멀었네.”지호가 이를 악물고 그 말을 내뱉으며, 시아를 번쩍 안아 차 안에 태우고는 대리운전 기사에게 손짓을 했다.“차는 원프리미엄으로 보내고, 아, 그리고...”지호가 셔츠 깃을 당기며 물었다.“이 사람 어디서 태운 거죠?”대리운전 기사는 곧바로 접수 내역을 내밀었다.지호는 한 번 훑어보더니 모든 상황을 이해한 듯 더 묻지 않았다.값싼 소주의 뒷맛은 오래가고, 사람을 순하게 만들었다.시아는 전처럼 와인 마신 뒤처럼 시끄럽게 굴지 않았다.그저 곯아떨어졌고, 눈을 떴을 땐 이미 다음 날 아침 9시였다.머리는 지끈거렸고, 속도 불편했다.예전에도 소주에 취해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까지는 아니었다.역시 서현아의 말이 맞았다.값싼 소주는 머리를 더 무겁게만 했다.눈을 뜬 시아는 자신이 원프리미엄에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누가 데려왔는지도 뻔히 짐작이 갔지만 지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시아는 잠옷 차림이었고, 언제, 어떻게 갈아입혔는지 굳이 캐묻지 않았다.이제는 그런 걸 신경 쓸 나이도 아니었으니까.정원에는 꽃과 풀들이 한창이었다.시아는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다 휴대폰을 꺼내 서현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코치님, 괜찮으세요?]그러나 답은 없었다.그녀는 무심코 메시지 앱을 훑다, 진은채가 올린 글을 보았다.[이제는 아부 안 해.]사진 속엔 은채가 키우던 개가 힘없이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어제까지만 해도 짖어대던 녀석이, 오늘은 이미 숨이 끊어진 모습이었다.짧은 글과 사진을 보고 시아의 숨이 순간 멎는 듯했고, 여자는 화면을 닫았다.목욕하고 나니 머리 통증이 조금 누그러졌지만, 여전히 개운치 않았다.그때 서현아에게서 짤막한 답장이 왔다.[괜찮아.]어제 서현아가 했던 말이 떠오르자, 시아는 조강국에게 전화를 걸었다.“시간 돼요? 같이 밥 먹을래?”[그럼요. 어디로 갈까요?]강국이 바로 웃으며 대답했다.“장소는 네가 정해서 알려줘.”시아는 여전히 강국의 입장을 배려했다.연예인은 아니지만, 강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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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화 강시아한테 완전히 넘어갔네

뒷좌석에서 내내 눈을 감고 있던 사람이 느릿하게 눈을 떴다.창밖에 있는 익숙한 차를 힐끔 바라본 뒤, 손가락 사이에서 반지를 천천히 돌렸다운전석의 유진오는 무쌍 눈매에 장난기 어린 웃음을 띠며 지호를 훑어봤다.“참 잘생겼네. 보면 볼수록 더 잘생겼고...”이 말이 차를 두고 하는 건지, 아니면 지호의 얼굴을 두고 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지호는 손가락에서 반지를 세 바퀴째 돌리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여기서 밥은 먹을 수 있냐?”“여긴 요즘 제일 핫한 인기 맛집이에요. 여기 오려면 다...”진오는 말하다 스스로 멈췄다.곧 고개를 돌려, 느긋하게 앉아 있는 지호를 똑바로 바라봤다.“너, 설마?”“어.”지호는 단 한 글자만 내뱉었다.진오는 자리를 옮기듯 엉덩이를 비비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자고? 안 보고?”“뭘 봐?”지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평소에도 무심한 편이었지만, 지금은 유난히 기류가 달랐다.“당연히 컬리넌 2호 주인이랑 누가 만나는지 봐야지. 그것도 이렇게 복숭아꽃 만발한 낭만적인 장소에서.”진오의 말투엔 호기심과 장난기가 가득했다.이에 지호는 눈길을 들어 차창 밖 가득한 봄빛을 스쳐봤다.하지만 지호의 눈동자 속엔 조금의 온기도 없었다.“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나랑은 상관없지. 근데 너랑은 있잖아.”진오의 입꼬리엔 장난스러운 기색이 더 짙어졌다.“만발한 꽃밭 속에 유난히 돋보이는 한 송이. 난 그냥, 혹시...”지호가 불현듯 시선을 들어, 잔잔하던 눈빛에 서늘한 빛이 번졌다.“혹시 뭐?”진오는 히죽 웃었다.“혹시 중요한 아는 사람을 마주칠까 봐 그러지.”“그럴까 봐 겁난다면, 여기서 쓸데없는 소리 말고 꺼져.”지호의 차가운 시선이 운전대 위에 내려앉았다.진오는 핸들을 몇 번 쓰다듬더니, 지호의 표정을 한참 훑어봤다.장난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자, 곧바로 핸들을 꺾고 액셀을 밟았다.타이어가 반원을 그리며 회전했고, 바람을 일으키며 컬리넌 옆을 스쳐 사라졌다.뒤따라오던 차들도 이유를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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