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서로 다른 길에 오른 너와 나: Chapter 131 - Chapter 140

290 Chapters

제131화 내가 돈 주고 고용하는 거야

“에취!”시아가 재채기를 하자, 강국이 고개를 돌렸다.“추워요? 아니면 꽃가루 알레르기?”“누가 나 욕했나 보지.”시아는 파라솔 아래에서 탄산수를 홀짝이며 앉아 있었다.머릿속에는 계속 은채의 강아지 사진이 떠올랐다.“사람 죽이면 범죄잖아. 그럼 동물을 잔인하게 죽이는 건?”강국은 철판 위에서 기름이 자글자글 오르는 고기를 보며 말했다.“고기 먹는 게 불법이라는 소리는 못 들어봤는데.”강국은 시아가 무슨 뜻으로 말하는지 모르자, 여자도 더는 설명하지 않고, 그냥 중얼거렸다.“어떻게 그럴 수 있지?”“새우는 새우의 운명이 있고 물고기는 물고기의 운명이 있는 거죠. 그 운명은 맛있게 먹히는 거고.”강국은 시아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시아는 깊게 숨을 내쉬고, 머릿속에서 불필요한 장면을 억지로 지웠고 본론으로 들어갔다.“목걸이 건은 어떻게 됐어?”“주씨네 물건이에요. 정확히는 주시우 거.”강국은 고기를 뒤집으며 그녀를 힐끔 봤다.“그날 꽤 재밌게 놀던데? 사진까지 찍었다가 바로 급히 삭제하더라고.”시아는 강국의 눈속의 호기심을 무시하고 물었다.“지금은 어디 있는데?”“그날 밤에 이미 주시우 손을 떠났다 하더라고. 근데 어디로 갔는지는 나도 모르지. 알 수 있는 건 주시우 본인뿐이겠지.”“그래?”“근데 내 생각엔 직접 그 사람한테 묻는 게 나을 것 같아. 혹시 목걸이가 아직도 그 사람 손에 있을지도 모르고. 누군가 사 갔다고 한 건 그냥 눈속임일 수도 있고.”시아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그날 밤 시우는 현장에 있었고, 자신과 은채가 실랑이 벌이는 걸 다 봤다.이후에도 일이 이어질 거라는 걸 아는데, 쉽게 넘길 리가 없었다.“응, 알겠어.”시아는 고기 냄새에 침이 고였다.“이제 먹을 수 있어?”강국이 꼬치 하나를 건넸다.“뜨거우니까 조심해요.”철판 위에는 고기뿐 아니라 생선, 새우, 고구마, 감자까지 올려져 있었다.강국은 굽고 먹는 걸 동시에 했고, 시아는 먹기만 했다.게으른 게 아니라, 아직 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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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화 2천원에 무료배송까지

“요즘 그 대형 인플루언서 참 한가하네. 커피 마시지 않으면 바비큐 먹거나.”진오는 정말 입이 근질거리는 타입이었다. 지호가 아무 말도 안 했는데도, 이미 사람 시켜 사진을 받아와서는, 보고 또 보며 태연하게 감탄했다.도화옥펜션엔 가지 못했고, 그 대신 그들은 배꽃나루에 와 있었다.봄이면 절대 부족하지 않은 게 바로 이런 좋은 경치였다.지호는 긴 다리를 반쯤 뻗고, 코끝에 검은색 선글라스를 걸친 채 누워 있었다.그게 잠든 건지, 아니면 어딘가를 보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와, 이 고기 구운 거 봐. 화면 너머로도 냄새가 나는 것 같아.”진오는 지호가 반응이 없자, 직접 사진을 내밀었다.이에 지호는 고개를 살짝 기울여 몇 장 훑어봤다.사진 속 강국은 바비큐를 굽고 있었고, 시아는 꼬치를 들고 한가롭게 앉아 있었다.또 다른 사진 두 장에는 둘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시아의 눈매가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진오는 눈치를 보며 떠봤다.“저 사람 일 좀 만들어줄까? 너무 한가하면 쓸데없는 생각 하거든.”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맞는 말이네.”이 두 마디에 진오는 금세 신이 났다.“그럼 내가 곧...”“너네 집 어른 말로, 부씨네 막내딸이 널 마음에 들어 한다던데?”지호의 말에 진오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는데 무쌍 눈이 더 커지고 진지해져 물었다.“너, 우리 집 어른 만났어?”지호는 뻗었던 다리를 거둬 반듯하게 포개며,“응.”진오는 벌떡 일어섰다.“아니, 왜 나한텐 말 안 했어?”“말 안 했나?”지호의 담담한 말투에, 진오는 입만 뻐끔거리다 말문이 막혔다.잠시 지호를 뚫어지게 보다가, 피식 웃었다.“분명 문전박대 당했겠네.”지호는 손가락으로 선글라스를 코끝까지 내리며, 날렵한 눈꼬리에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띠었다.“네 생각은 그래?”진오는 도무지 가늠이 안 갔다.하지만 자기가 아는 집안 어른 성격을 생각하면, 확신하듯 말했다.“그건 그냥 스스로 고생 사서 한 거네.”“그렇구나.”지호는 선글라스를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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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화 마지막 미련

“진오 오빠.”진서가 하얀색 운동복 차림으로 달려왔다.스무 살, 한창 생기 넘치는 나이였다.“진서는 점점 예뻐지네.”아까까지만 해도 그녀를 피하려 하던 진오였지만, 막상 진서가 다가오자 얼굴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지호가 유진오에게 붙여준 별명이 ‘양면 호랑이’인 이유가 바로 이거였다.지호 앞에서는 하찮게 굴면서, 밖에서는 도련님으로 불릴 만큼 대접받는 인물.진서의 두 뺨은 소녀 특유의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눈에는 하트 모양의 반짝임이 가득했다.그 노골적인 시선을 받자 진오도 어색해져 헛기침했다.“너, 지호 안 봤어?”“지호 오빠.”진서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불렀다.누구 앞에서든 달콤하게 오빠라고 부르는 건 진서가 사랑받으며 자란 티였다.지호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인사 대신했다.그때 진영이 여유로운 걸음으로 다가왔다.헐렁한 체크 셔츠에 청바지를 걸친, 편안한 차림이었다.“여기서 이렇게 앉아만 있지 말고, 저쪽 가서 어울리지 그래?”진영이 말한 곳은 멀지 않은 자리, 원래 진오와 지호가 함께 오기로 했던 일행이 있는 곳이었다.지호가 가지 않으니, 진오도 남아 있었다.“아니, 우리 조상님 모시느라.”진오는 전혀 부끄러움 없이 지호를 ‘조상님’이라 불렀다.왜 그렇게 부르는지는, 본인과 지호만 알고 있었다.진영은 선글라스 너머로 하지호와 눈을 마주쳤고, 두 사람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인사를 대신했다.“진오 오빠, 나 사진 좀 찍어줘요. 오빠가 찍은 건 너무 못생겼단 말이에요.”진서가 자기 오빠를 외면하고 유진오를 끌어당겼다.진오는 도망치려다 진영의 시선을 느끼고 발을 멈췄고, 결국 끌려가며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진서가 자리를 뜨자, 진영은 지호의 옆에 앉았다.“아까 유진오, 도망치려던 거지?”지호는 코끝의 선글라스를 밀어 올렸다.“네가 있는데, 감히 그럴까?”진영의 웃음이 순간 굳었다.“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어?”“돈은 갚기 쉽지만, 목숨은 갚기 어렵지.”지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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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4화 시아를 사랑하는 가장 올바른 방식

마지막 그 한마디는 진영이 전하지 않았지만, 나머지는 모두 전달했다.“걔가 그 산을 차지하려는 게 정말 강시아 때문이야?”승준이 낮게 중얼거리자, 진영은 남자의 책상 위에 놓인 모래시계를 바라봤다.촘촘히 흐르는 모래가 느리게 떨어지는 듯해도, 결국은 서서히 바닥나듯, 승준은 그렇게 조금씩 시아를 잃어가고 있었다.진영은 제삼자인 자신조차도 이해한 일을, 승준은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시아가 마음을 접은 이유를, 그 결혼식 때문이라고만 생각하면서, 그게 시아가 자신을 사랑하던 마음을 무너뜨린 마지막 지푸라기였다는 건 알지 못했다.“모르겠어. 하지만 말투로 보아 그런 것 같더라.”진영은 고개를 들어 온몸에서 의욕이 빠져나간 듯한 승준을 바라봤다.“시아를 위해서 빼앗으려는 거라면, 너는 그 사람을 위해 놓아줄 수는 없는 거야?”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진영을 바라보던 승준이, 잠시 후 고개를 끄덕였다.“그게 시아를 위한 거라면, 나도...”“승준아, 시아가 널 떠난 건 사실이지만, 그 사람도 지금처럼 무너진 널 바라진 않을 거야.”이 7년 동안, 진영은 시아와 나름 친하게 지냈다.겉으로는 차가워 보였지만, 속은 한없이 부드럽고 착한 사람이었다.그래서 7년이나 승준의 곁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승준은 7년 동안 자신의 사업을 다시 일으켜 세웠지만, 그 과정에서 잃은 것도 많았다.그중 가장 큰 희생은 시아였다.시아를 칼처럼 쓰고, 가장 믿을 만한 부하처럼 대했지만, 정작 한 여자로서 사랑하고 아끼는 걸 잊고 있었다.명절이나 기념일에 선물을 빠뜨린 적은 없었고, 물질적인 면에서도 아낌이 없었지만, 정작 시아에게 가장 줘야 할 사랑만은 놓치고 있었다.예전에 진영이 한번 경고했을 때, 승준은 이렇게 답했다.“난 걔와 24시간을 함께해. 내 모든 걸 시아가 다 아는데, 그걸로 충분하지 않아?”결국 문제는, 승준이 사랑하는 법을 모른다는 것이었다.오늘 승준이 진영과 지호의 대화를 들은 이후에는, 아마도 자신이 지호를 이길 수 없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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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5화 책임 묻지만 않으시면 돼요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노는 게 가장 편안하다고들 하지만, 시아의 몸은 오히려 더 피곤했다.시아와 강국은 도화옥 펜션에서 돌아오자마자 그대로 잠들었고, 무려 네 시간이나 잤다.결국 시아를 깨운 건 전화벨 소리였고, 전화를 건 사람은 강국이었다.“여보세요.”너무 오래 자서인지, 시아의 목소리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누나, 자고 있었어?]강국은 단번에 눈치챘다.“응, 다녀와서 계속 잤어. 왜?”시아는 몸을 뒤척이다가, 온몸에 기운이 빠져 있고 스스로도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아무 일은 아닌데, 방금 소식 하나 들어서.][오늘 우리 갔던 데, 누나 남편도 왔었대. 근데 바로 갔다더라. 원래 별일 아닌데, 괜히 오해 생길까 봐 미리 알려주는 거야.]강국은 혹시 모를 문제를 대비해 미리 말해두는 거였다.이에 시아는 짧게 알겠다고 대답하더니 물었다.“너한테는 문제없어?”[없어. 난 그냥 누나가 걱정돼서.]강국은 솔직하게 말했다.“네가 없으면 나한테도 문제없지.”시아는 이마를 짚었는데, 조금 뜨거운 것 같았다.[그러면 다행이고. 그런데 진짜 상태가 좀 이상한데? 어디 아픈 거 아냐? 내가 데리고 병원 갈까?]강국이 걱정스럽게 물었다.시아는 창밖을 흘끗 보니, 하늘은 이미 어둑해져 있었다.“아냐, 그냥 너무 오래 자서 그래.”전화를 끊고 시아는 다시 눈을 감았다.강국을 속일 수는 있어도, 자신을 속일 수는 없었다.시아는 자신이 정말로 병이 났다는 걸 알았고, 움직이기 싫었지만,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그 순간, 아랫배에서 갑작스레 뜨거운 기운이 번졌다.하필 이런 때에 생리까지 겹치다니, 정말 진이 빠졌다.시아는 화장실에서 대충 정리한 뒤,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스스로를 아끼지 않는 사람은 아니라,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한다는 게 시아의 원칙이었다.이미 진료 시간은 끝났기에, 시아는 응급실로 가야 했다.체온은 38.8도라, 시아는 바로 수액실로 안내됐다.간호사가 자리를 잡아주자, 시아는 맞은편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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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6화 이제 제 손에 없어요

[연결이 되지 않아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기계적인 여자 안내음이 들려오자, 지호는 휴대폰을 접었다.그 순간 강국은 이마 한쪽이 서늘해지는 기분을 느꼈다.“그...”“시아가 아무 일 없기를 빌죠.”지호는 짧게 그 말을 남기고 발걸음을 옮겼고, 그 모습에 강국은 입을 삐죽였다.“자기가 괜찮다는데...”그리고 천장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전등 누님, 누나 아무 일 없는 거죠?”시아는 연달아 재채기를 했다.오늘 하루, 십 리 복숭아꽃길에서 맞은 봄바람에 결국 감기에 걸린 것이다.발열뿐 아니라 재채기와 콧물까지 쉴 틈이 없었다.“따뜻한 물 마시면 좀 나을 거예요.”시우는 손을 들어 간호사를 불렀다.“뜨거운 물 한 잔 부탁드릴게요. 감사해요.”그 역시 환자였지만, 오히려 환자인 시아를 챙기고 있었다.코를 훌쩍이며 웃음을 참는 시아가 말했다.“이거 완전 절름발이가 목발 잡아주는 꼴이네요?”밝은 조명 아래, 시아의 콧등은 붉게 물들었고, 눈가마저 촉촉히 젖어 있었다.그 덕에 평소의 차가운 거리감은 희미해지고, 투명하게 빛나는 눈동자는 더욱 선명했다.시아는 어릴 때부터 감기에 걸리면 콧물만 아니라 눈물도 함께 났다.노하숙은 그게 바로, 시아의 무책임한 아버지를 닮아서 그렇다고 몇 번이고 말했었지만, 시아는 아버지 얼굴조차 본 적이 없었다.문득 그런 생각이 스치자, 시아는 시우를 바라보았다.“주 대표님, 지난번 자선 경매회에 나온 그 목걸이, 아직 대표님이 갖고 계신가요?”시우 역시 열이 있었지만, 시아보다는 훨씬 나아 보였다.다만 자세히 보면, 눈꺼풀의 무거움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시아의 질문에 시우는 눈을 살짝 들어 올렸고, 그 안에는 빠르게 스치는 무언가가 있었다.시우는 신중한 사람이었고, 말하기 전에 반드시 생각을 정리하는 타입이었다.그랬기에 시아도 서두르지 않고, 그저 시우의 대답을 기다렸다.“그 목걸이는 3년 전, 해외의 한 자선 모임에서 내가 낙찰받은 거예요. 그때도 유찰품이었죠.”시우의 목소리는 원래도 낮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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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7화 내가 오면 안 돼?

밤의 수액실은 고요했다.심지어 약물이 혈관 속으로 스며드는 소리까지 들릴 것 같았다.시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눈빛으로, 대답을 기다리는 시아를 조용히 바라보다가 손에 든 컵을 천천히 돌렸다.이에 시아는 느낄 수 있었다.그 목걸이의 새 주인을 말하는 게 시우에게는 쉽지 않다는걸.사람이 가진 가장 큰 배려는, 억지로 캐묻지 않는 것이다.그걸 깨달은 시아는 말하기 곤란하면 굳이 안 해도 된다고 하려던 순간 정적을 깨고, 안정적이면서도 힘 있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그리고 그 발걸음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누군가가 도착하기 전, 시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죄송해요, 저는 그저...”하지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시우의 시선이 문 쪽으로 향했고, 그 순간 남자의 눈빛이 잠시 멈칫했다.시아는 문 옆에 앉아 있었기에,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보았다는데, 순간적으로 굳어졌다.문가에 서 있는 사람은 바로 지호였다.풀어진 듯한 셔츠 깃, 높이 걷어 올린 소매, 차갑고 단단한 얼굴은 반쯤 어둠 속, 반쯤 빛 속에 가려져 있었다.하지만 그 눈동자 속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미묘한 흐름이 번지고 있었다.수액실엔 시아와 시우, 단 두 사람뿐이었다.그냥 모르는 사람끼리라면 아무 문제 없었겠지만, 지호는 시아에 대해 오해를 품고 있는 상태였다.시아의 관자놀이가 미세하게 뛰는 것 같았고, 먼저 선수를 쳐서 입을 열었다.“왜 왔어요?”지호의 시선이 흔들리더니, 부드럽게 대꾸했다.“내가 오면 안 돼?”말투에 어딘가 질투가 묻어 있었다.시아는 이유를 알면서도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믿는 사람 앞에선 설명이 필요 없고, 믿지 않는 사람에겐 설명이 소용없다.게다가 자신은 떳떳했으니까.지호는 긴 다리를 내디뎌 두 걸음 만에 시아 앞에 섰다.지호의 그림자가 시아를 덮었고, 따뜻한 손바닥이 여자의 이마에 닿았다.아직 내려가지 않은 열기에, 지호의 미간이 좁혀졌다.“무슨 주사 맞는 거야? 왜 아직 열이 내려가지 않아?”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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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8화 이유가 너무 황당하잖아

시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속으로만 한숨을 삼켰다.지호가 또 입으로 복을 깎아 먹는 말을 할 기세였다.‘비록 사실일지라도, 굳이 이렇게 대놓고 말할 필요가 있을까?’시아가 급히 두어 번 헛기침하자, 지호는 손을 들어 여자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주 대표님 소문 들어본 적 없어? 이렇게 흥분할 일인가? 그냥 나보다 세 살 많을 뿐, 남자로서 누릴 건 다 누릴 사람이야.”‘그걸 굳이 본인 입으로 말해야 하나?’시아는 그 입을 틀어막고 싶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지호가 이런 말을 꺼낸 건, 시우와 시아가 함께 있는 게 못마땅했기 때문이다.지호는 복수심이 강한 데다 속도 좁았고, 시우는 내내 묵묵부답이었다.지호는 시아의 기침을 진정시킨 뒤, 다시 태연하게 덧붙였다.“봐, 주 대표님도 아무 말 없으시잖아.”“남녀 간의 성욕이야 당연한 거고, 내가 무슨 승려 수행을 한 것도 아니고.”이때, 시우가 담담하게 받으며 옆의 호출벨을 누르자, 곧 간호사가 와서 남자의 주사를 빼주었다.“여기를 조금 더 눌러주세요.”지호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질문했다.“제 아내 주사는 몇 병 남았어요?”간호사는 시아의 수액 카드를 확인하고 대답했다.“아직 두 병 남았어요.”“이렇게 앉아 있으면 피곤하잖아요. 침대 있는 방으로 옮겨주세요.”지호의 말에 시아는 곧장 인상을 찌푸렸다.시아가 거절하려는 순간, 간호사가 이미 고개를 끄덕였다.“원래 방에서 맞으시라고 했는데, 환자분이 직접 이쪽으로 오신 거예요.”그 말에 시아와 시우의 시선이 맞부딪쳤고, 그 순간,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기분이 스쳤다.“그래요?”지호가 나른하게 받아치자, 시우가 자리에서 일어섰다.“하 대표님, 시아 씨, 저는 먼저 가보도록 하죠.”“잠깐만요, 주 대표님.”지호가 시우를 불러 세웠다.“제 와이프 수액병 좀 들어주시죠.”이에 간호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그건 내가 할 일인데, 갑자기 무능한 사람 취급을 받는 기분이네.’시아 역시 뜻밖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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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화 내 말 맞지?

시아는 눈을 감고 있었지, 잠이 든 건 아니었다.단지 눈을 뜨고 지호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열 때문에 몸이 무겁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조금 전 지호가 시우를 향해 노골적으로 풍기는 질투 섞인 말들을 꺼냈다는 사실이 아직도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지호는 침대 곁에 앉아 말없이 시아를 바라봤다.그 시선에는 나른 듯한 한가로움이 묻어 있었지만, 사실 이미 알고 있었다.시아가 일부러 자는 척하며 자신을 피하고 있다는 걸.시아가 시우에게 직접 목걸이 이야기를 물었다니, 그렇다면 지호가 산 그 목걸이는 결국 아무 의미도 없는 짓이 되어버린 셈이다.물론 시아 탓할 수는 없었다.자신이 괜한 마음을 품고, 그걸 주면 시아가 물건을 보며 사람을 떠올릴 것이라 기대했던 것, 그게 오히려 화근이었다.결국 시아는 곧장 원래 주인을 찾으러 갔으니. 지호는 처음으로 스스로 지능이 뚝 떨어진 기분을 맛봤다.게다가 그 목걸이에, 시아가 유독 집착하는 듯했다.그날 시아가 내놓은 설명을 떠올리자. 입꼬리가 비딱하게 올라갔다.확실한 거짓말이었고, 시아는 자신을 경계하고 있었다.시간이 흐르며 시아의 열은 수액과 함께 서서히 내려갔고, 결국 깊은 잠에 빠졌다.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시아는 이미 잠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지호 집에는 상주 도우미가 없었기에, 이 옷을 갈아입힌 사람은 당연히 지호였다.더군다나, 이번에는 생리 중이라, 그 사실이 더 난감하게 다가왔다.‘다음에는 주의를 좀 줘야겠어.’그렇게 시아는 속으로 생각했다.몸을 일으킨 시아는 침대 머리맡에서 휴대폰을 찾으려 손을 뻗었는데, 대신 부드러운 벨벳 상자가 손에 닿았다.잠시 멈칫한 시아는 상자를 들어 열어봤다.어젯밤 시우에게 물었던 그 목걸이가, 고요하게 그 안에 놓여 있었다.새 주인은 하지호였다.순간, 며칠 전 자선 경매 후, 안영과 함께 나올 때, 지호가 시우와 함께 나타났던 장면이 스쳤다.‘그날 밤 이미 목걸이를 손에 넣었으면서, 왜 지금까지 주지 않았을까?’‘그걸 잊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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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화 다 끝나면 우리 하자

“열이 뇌까지 갔나, 나 누군지 모르겠어?”지호는 회색 실크 소재의 캐주얼 홈웨어를 입고, 느긋한 걸음으로 다가왔다.지호는 언제나 한가롭고 여유로워서, 남자의 곁에선 시간이 저절로 느려지는 것 같았다.그리고 이 잘생긴 입에서는 정상적인 말이 좀처럼 나오지 않는 것에 시아도 이제는 익숙했다.“내 옷, 당신이 갈아입힌 거예요?”시아는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아니면 누구 시킬 건데?”지호는 침대 머리맡의 벨벳 상자를 힐끔 보고, 시아가 이미 확인했다는 걸 알았다.지호는 들고 온 보양죽을 내려놓고 침대 곁에 앉았다.지호의 몸에서 은은한 솔향이 번져와 시아의 숨결을 파고들자, 그제야 그녀는 자신의 코막힘이 많이 가신 걸 느꼈다.“당신도 제정신 아닐 때 누가 훤히 보는 거 싫잖아요. 이건 사생활 침해죠.”시아가 일깨우듯 말했지만, 지호는 미묘하게 눈썹을 올렸다.“난 상관없어. 아니면 한번 해볼래?”지호의 태도는 여전히 장난스러웠지만, 시아는 진지했다.“난 진지하게 말하는 거예요.”“네 진지함이라는 게 남편을 철통같이 경계하는 거야? 아내로서의 의무는 제쳐두고, 아예 손도 못 대게 하는 거?”지호는 언제나 자기만의 궤변을 늘어놓았다.시아도 생리 중이라 신경이 날카로워서인지, 말이 거칠게 튀어나왔다.“기회 준 건 나였는데 당신이 계속 빼는 거 아니었나요?”지호가 낮게 웃으며 시아의 눈을 똑바로 봤다.“좋아, 다 끝나면 우리 하자.”이번에는 시아가 말을 잇지 못했다.지호는 침대 머리맡의 보양죽을 들어 시아 앞에 내밀었다.“기력 회복에 좋고, 열감기에도 효과 있어.”‘무슨 어마무시한 보양탕이라도 되는 건가?’그러나 시아는 괜히 사양하지 않았다.어제 강국과 함께 바비큐를 먹은 뒤로 아무것도 먹지 않아, 배 속이 텅 비어 가슴이 울렁거릴 정도였다.죽을 몇 숟가락 먹자 목과 위장의 불편함이 한결 가셨고, 그제야 시아도 입을 열었다.“목걸이는 왜 지금까지 안 줬어요?”“계속 네 침대 머리맡 서랍에 있었는데?”지호의 말은 사실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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