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길에 오른 너와 나의 모든 챕터: 챕터 101 - 챕터 110

290 챕터

제101화 이미 봐준 거야

두 여자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변했고, 그중 한 명은 심지어 몸을 돌려 도망치려 했다.“멈춰요.”시아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한겨울 찬바람처럼 서늘했다. 그러자 그중 여자가 멈춰 서서 서둘러 변명했다.“사모님, 우리도 그냥 다른 사람한테 들은 얘기라서요...”“맞아요, 저희는 안 믿었어요. 이렇게 예쁘고 유능한 분이 그런 일을 할 리가...”다른 여자도 겁먹은 듯 얼른 말을 바꿨다.시아는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바로 손을 들어 따귀를 왼쪽과 오른쪽 할 것 없이 각각 한 대씩 날렸다.‘믿지 않는다고? 그런데 들어놓고는 함부로 떠들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렇게 쓸데없는 입 때문에 억울하게 당했는지 아는 건가?’예전 이미아 사건도, 누군가의 터무니없는 헛소문이 시작이었다. 그 때문에 미아는 죄인 취급을 받으며 살아야 했다.“안 믿는다면서 왜 말은 하죠, 네?”시아의 목소리는 높지도 낮지도 않았지만, 기세가 만만치 않다. 두 여자는 스스로 잘못을 안다는 듯 얼굴을 감싸 쥐고는 연달아 사과했다.“죄송해요, 사모님. 저희가 잘못했어요.”‘잘못했다고?’그러나 시아는 그런 말로 넘어가는 타입이 아니었다. 이런 말뿐인 사과는 그저 책임을 피하려는 수단일 뿐이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통할지 몰라도 적어도 시아에게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시아가 한 걸음 다가가자, 두 여자는 놀라 뒷걸음질 쳤다. 그 순간 시아는 시선은 두 여자의 뒤편에 있는 수영장으로 옮겨졌다.“오늘 아침 양치도 안 하고 나왔나 보네요. 그러면 저기 가서 가글이나 하고 오시죠.”시아의 말이 차갑게 울린 그 순간 두 여자가 동시에 수영장을 돌아봤다. 그리고 그것만은 싫다는 듯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둘은 수영을 못 하는 데다, 설령 할 줄 안다 해도 지금은 초봄이라 날씨가 차가웠다. 얇은 드레스를 입은 몸으로 들어갔다간 익사하지 않더라도 얼어 죽을 지경이 될 터였다.“스스로 들어갈래요? 아니면 내가 도와줄까요?”시아가 다시 손을 들자 한 여자가 옆 사람을 붙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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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 10억

“얼굴이 안 좋아 보이네. 어디 아파?”자선 경매가 막 시작될 무렵, 시아는 안영의 곁으로 돌아왔다. 시아의 미묘한 변화를 눈치챈 건 세심한 안영이었다.시아가 굳이 뒷말을 전할 리는 없었다. 안영이 누군가 자기 험담을 했다는 걸 알게 되면, 설령 본인은 개의치 않는다 해도 기분이 상할 게 뻔했다.“아니에요. 아무래도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가 봐요.”시아는 장난스럽게 거짓말을 지었다. 안영이 항상 살뜰히 챙겨주는 만큼, 시아도 철없는 모습을 보일 순 없었다. 먹다가 조금 배불렀다는 핑계 정도면 걱정할 일도 아니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었다.역시나, 시아의 말에 안영은 웃으며 말했다.“넌 참, 먹고 싶은 건 다 집에도 있는데.”“제가 좀 식탐이 많은 거죠.”안영 앞에선, 시아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해져 이런 말도 쉽게 나왔다.안영은 살짝 웃으며 귀에 대고 말했다.“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입찰해. 비록 물건들이 다 좋은 건 아니어도, 쓸 만한 건 있을 거야.”자선 경매란 게 결국은 돈을 내고 기부하는 자리였다. 물건이 좋든 나쁘든 일단 사기는 사 했다. 하지만 돈을 쓰는 만큼, 조금이라도 쓸 만한 걸 고르는 게 당연했다.경매사가 분위기를 띄우자, 경매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안영은 침착하고 우아하게 자리에 앉아, 물건이 나올 때마다 가볍게 시선을 주었다. 말이 없으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고, 가끔은 옆에 앉은 사모님들과 작은 농담을 나누기도 했다.시아는 더욱 조용했다. 안영이 마음에 드는 건 그냥 입찰하라고 했지만, 괜한 걸 사서 품격을 떨어뜨릴 순 없었다. 만약 시시한 물건을 입찰했다가는, 오히려 안영의 체면을 깎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다음 물건은 사모님들과 아가씨들이 좋아하실 만한 보물이에요.”경매사의 한마디가 조금 시들해진 부인들과 아가씨들의 시선을 다시 무대로 끌어왔고, 시아 역시 시선을 돌렸다.스포트라이트가 켜지자, 파란빛이 도는 사파이어 목걸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광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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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화 못 이길 게 뭐 있어?

원한다면, 인심 쓰듯 흥정할 필요는 없었다.시아의 입찰가는 은채의 금액을 단번에 두 배 넘게 올려버렸다.애초에 두 사람은 모두의 시선을 끄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목걸이 하나를 두고 맞붙었으니, 다소 잠잠했던 자선 경매장이 금세 달아올랐다. 사람들은 그들을 주목하며 속삭이기 시작했다.은채는 시아가 자신과 경쟁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이건 대놓고 체면을 깎이는 짓이잖아?’겉으로는 친구인 척하더니, 결국에는 통수를 치는 셈이라고 생각했다. 꼬인 사람일수록 남의 행동을 곱게 보는 게 어렵기 마련이다. 그리고 은채는 딱 그 부류였다. 시아가 자신을 곤란하게 하려고 일부러 이러는 거라고 믿었다.평소 같으면 양보할 수도 있었지만 지금 물러서면 겁먹었다는 소리를 듣고, 그야말로 사교계 사모님들과 아가씨들 입방아에 오를 게 뻔했다.“12억!”은채가 억지로 기세를 올렸다. 그 목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안영이 시아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크게 불러. 못 이길 게 뭐 있어?”체면 싸움에서 안영은 누구에게도 주눅 들지 않았다. 시아는 단지 개인이 아니라 하씨 가문의 얼굴이었다.시아 또한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필요하다면 자기 돈을 쓰면 그만이었다. 안영의 든든한 지지까지 받으니, 바로 손을 들었다.“20억.”은채의 입술이 하얘졌다.“24억.”“30억.”“36억.”“40억.”은채의 손이 떨렸다. 더 올리지 않자니 체면이 서지 않고, 올리자니 목걸이 값어치가 턱없이 모자랐다.“40...”“60억!”단호한 목소리가 경매장을 울려, 은채가 돌아보니, 구승준이 연회장 안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연한 회색 수트 차림의 남자는 은채 쪽으로 눈길조차 주지 않았지만, 그 확고한 한마디가 곧 그녀의 버팀목이었다.“승준아.”승준이 그녀 옆자리에 앉았다. 말수가 적고 냉정한 그의 분위기에 경매장은 순간 조용해졌다.승준은 시아의 전 직장 상사였다. 결혼식 날 벌어진 일 때문에, 승준과 시아 사이를 의심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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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 그렇게 갖고 싶어?

경매사의 한마디로, 불꽃 튀던 쟁탈전은 한순간에 우스운 해프닝이 되어버렸다.경매는 계속됐지만, 시아는 물론 하씨 가문 쪽도, 그리고 승준 측도 더 이상 입찰에 나서지 않았다.시아는 적당한 핑계를 대고 연회장을 빠져나와 곧장 백스테이지로 향했다. 그리고 시아는 실수라는 말을 믿지 않았다. 틀림없이 경매 주최 측이 마음을 바꾼 것이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돈 문제는 아닐 터였다. 100억이면 비슷한 목걸이를 몇 줄이나 살 수 있었다. 아마도 목걸이 주인이 하씨 가문과 구씨 가문의 경쟁에 휘말려, 누구에게 넘기기 곤란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시아는 이유를 깊이 따지고 싶지도 않았지만, 그 목걸이만은 꼭 손에 넣고 싶었다. 지호가 시아를 찾았을 때, 여자는 이미 스태프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그 목걸이, 제가 살게요. 얼마든 상관없어요.”“죄송해요, 사모님. 그건 정말 경매 물품이 아니라 금액의 문제가 아니에요.”스태프는 같은 말을 되풀이했지만, 시아는 물러서지 않았다.“그러면 목걸이 주인 좀 만나게 해주세요.”“그것도 안 될 것 같네요. 죄송해요.”스태프는 허리를 숙이며 연신 사과했다.그 태도를 보니, 이 자리에서 목걸이를 얻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시아도 알았다. 하지만 시아는 쉽게 포기하는 성격이 아니었다.“그러면 부탁 하나만 들어주실래요?”지금 시아는 새로 온 사모님이었다. 조금 전 파티장에서 안영이 직접 그녀를 데리고 전원에게 인사를 돌았으니, 그 의미를 모를 리 없었다.스태프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사모님, 말씀만 하세요.”“목걸이 주인께 전해주세요. 혹시라도 다시 내놓을 생각이 들면, 제가 먼저 살 수 있게 기회를 달라고. 돌아가신 어머니께 드리고 싶어서요.”그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그리고 그 말은 거짓은 아니었다. 이 목걸이가 어머니의 과거와 관련된 단서를 줄 수도 있었고, 그건 곧 어머니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알겠어요, 반드시 전할게요.”스태프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인 뒤, 땀을 닦으며 자리를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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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화 좋은 결말은 없을 거야

자선 경매는 끝났지만,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승준은 차 안에서 내내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옆자리에 앉은 은채가 힐끗 보니, 남자가 보내는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승준은 그 목걸이에 대해 수소문하고 있었는데, 그것도 반드시 손에 넣겠다는 기세였다.은채는 잘 알고 있었다. 승준이 그 목걸이를 원한다고 해서, 그게 자신을 위한 선물일 리는 없다는걸.오늘 경매장에서 시아와 함께 공개적으로 가격을 올린 것도, 실은 사람들에게 두 사람 사이에 아무 부끄러운 관계가 없다는 걸 보여주려는 연극이었을 것이다.승준이 시아를 위해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모습을 보니, 이상하게도 오늘은 질투심조차 일지 않았다. 그 대신 담담하게 물었다.“강시아가 왜 그 목걸이를 원했을까?”경매장에서 시아가 자신과 맞붙었을 땐, 단지 체면을 구기게 하려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럴 이유는 없었다.오늘의 시아는 굳이 무슨 행동을 하지 않아도 이미 자신보다 유리한 자리에 있었다. 되레 자신이 가격 경쟁을 벌인 게, 속 좁은 사람처럼 보였을 뿐이었다.시아는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도 맞불을 놓은 건, 분명 다른 이유가 있었다.승준이 휴대폰을 닫고, 이번엔 차갑고 날 선 눈빛으로 은채에게 말했다.“그 일에 끼어들지 마. 그리고 넌 걔한테서 멀리 떨어져.”시아를 감싸는 태도가 조금도 가려지지 않자, 은채가 비웃듯 말했다.“내가 그 사람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 그래?”“네가 감히?”승준의 말은 경고였다.“승준아, 토끼도 몰리면 물어. 내가 그 여자를 건드리지 않길 바란다면, 나한테 잘해. 우리 사이의 앙금은 다 너 때문이야. 네가 나한테 잘하면, 나도 굳이 문제 만들지 않아.”은채는 그렇게 말하며 승준의 얼굴에 손을 올리려 했으나, 남자는 고개를 홱 돌려 피했다.“은채야, 내가 널 어쩌지 못할 줄 알아? 협박을 몇 번이고 하는 걸 참는다고?”허공에 머물던 은채의 손은 승준의 어깨로 내려앉았다.“그럼 왜 나한테 손 못 대는데? 차마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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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화 욕심이 과하면

시아는 잘못 보지 않았다. 바로 그들이었다.두 남자는 마치 산책하듯 여유롭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 걸음은 느렸지만, 풍기는 기세만큼은 서로 한 치도 뒤지지 않았다.“주시우 대표님, 오늘은 좀 내어주시죠.”지호가 서두 없이 먼저 입을 열었다.유진오가 조사한 결과, 그 목걸이의 주인은 바로 시우였다.“그냥 평범한 목걸이였고, 원래 경매에 내놓을 생각이었어요. 내어주고 말고 할 건 아니지요. 하 대표님이 원하면 주면 되고요.”시우는 단호하고 간결하게 말하자 지호의 입가에 장난기 섞인 미소가 스쳤다.“저랑 대표님은 아직 그 정도 사이는 아니잖아요. 그러니 가격은 제가 경매에서 부른 걸로 치시죠. 게다가...”지호는 잠시 말을 멈췄다.“이건 제 와이프 주려고 하는 거라서요. 그냥 주면, 이게 제가 준 건지 주 대표님이 준 건지 애매해지잖아요.”말은 길지 않았지만, 속뜻은 뚜렷했다.시우가 시선을 돌렸고, 두 사람의 눈빛이 공중에서 마주쳤다. 한쪽은 깊고 알 수 없는 어둠, 한쪽은 웃고 있지만 웃음이 눈까지 닿지 않았다.“하 대표님이 사모님을 위한 거라면, 제가 거절할 이유가 없죠.”시우가 동의하자, 지호는 대수롭지 않게 흘리듯 말했다.“고마워요.”이 도시에서 이렇게까지 오만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고, 시우 앞에서도 여전히 이런 말투를 쓸 수 있는 건 지호뿐이었다.만약 이 둘을 판타지 소설 속 인물에 비유한다면, 하나는 주인공이고 하나는 마왕일 것이다.“정말 고맙다고 생각하면, 하 대표님 사람들이 좀 살살했으면 좋겠네요.”시우의 말은 가볍게 들렸지만, 누굴 가리키는지는 명확했다.주영식이 안에서 버티고 있었지만, 그곳에서의 생활은 결코 편하지 않았다. 또한, 누가 그런 상황을 만들었는지 따질 필요도 없었다.이에 지호가 비웃듯 피식 웃음을 흘렸다.“그런 말이라면, 대표님과 저 사이에는 서로 빚질 일은 없는 셈이 되겠네요.”“필요 없어요.”시우 역시 직설적이었다.“목걸이는 내일 사람 시켜 보내줄게요.”“내일은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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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화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시아가 창밖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을 때, 손등 위로 은근한 온기가 스쳤다.고개를 돌리자, 옆자리에 앉은 안영이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었다.“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차에 오른 뒤, 시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시선은 줄곧 창밖에 머물러 있었다.시아는 입술을 살짝 다물며 대답을 삼키자, 안영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다른 사람들 뒷말은 마음에 담아두지 마. 누구나 남 얘기하고, 또 누구나 남에게 얘깃거리가 되니까. 너는 너답게 하면 돼.”안영은 통찰력 있고, 이해심도 깊었다. 시아는 문득 지호에게 이런 어머니가 있다는 게 부러웠다.지호의 자존심, 때론 오만해 보이는 태도, 그 뿌리가 어디서 나왔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이렇게 든든하게 감싸주는 엄마가 있는데, 누가 고개를 숙일 수 있을까?’“알아요.”시아의 시선이 안영의 얼굴에 머물렀다. 세월의 흔적이 있지만, 여전히 또렷하고 기품 있는 미인이었다.안영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더 이상 억지로 말하지 않았다.안영은 늘 이랬다. 사람을 편하게 해주면서도, 필요한 말만 딱 건네고 물러날 줄 아는 사람이었다.“어머님.”시아가 낮게 불렀다. 이번에 어머님이라고 부른 것은 억지로 한 것도, 예의로 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마음속에서 우러러나온 부름이었다.안영이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응?”시아는 무슨 말을 하려다, 대신 웃음을 지었다.“어머님이 계셔서 좋아요.”안영은 시아의 사정을 알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외할머니 손에 자란, 사실상 부모 없는 아이였다.그리고 안영은 그 한마디 속에 담긴 쓸쓸함을 충분히 이해했기에, 굳이 감상적인 말을 보태지 않았다. 대신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그럼 그렇지. 나 같은 엄마는 없어. 이 도시에서 최고라니까.”엄지를 척 세우는 모습이 어쩐지 유쾌했다. 그 낙천적이고 당당한 기운이, 시아에게 전염되듯 번졌다.“맞아요. 제가 지금까지 본 어머님 중의 최고예요.”“그렇지? 내가 남들하고 다른 게 뭔지 알아? 아이를 키울 때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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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화 나는 누구야?

시아는 취했고, 그대로 잠들어 있었다.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까만 긴 머리카락이 흐트러져 하얗고 가는 얼굴 위로 흩어져 있었다. 마치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느낌이 강하게 풍겼다.지호는 이렇게까지 무방비한 시아의 모습을 꽤 오랜만에 보고 있었다.지호는 손을 들어 시아의 얼굴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살짝 젖혀 귀 뒤로 넘겼고, 그제야 눈가가 젖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가슴 속은 이미 답답했는데, 그 순간 더 꽉 막히는 듯 숨이 편치 않았다.‘시아가 울었어. 이 눈물은 누구를 위해 흘린 걸까? 혹시 손에 넣지 못한 그 목걸이 때문일까?’지호의 손끝이 시아의 눈가에 닿아 가볍게 쓸었다.그 거친 촉감이 닿아 아파서였는지, 아니면 자신을 건드린다는 게 귀찮았는지, 시아는 손을 들어 퍽 하고 지호의 팔뚝을 쳤다.맑고 경쾌한 소리가 지호의 말아 올린 셔츠 소매 위로 퍼졌다. 시아는 지호를 밀어내며, 누가 자기 몸에 닿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처럼 몸을 돌렸다.그리고는 머리를 다시 창가 쪽으로 기울이고, 입술을 조금 움직였다. 희미하게 뭔가를 중얼거렸는데, 마치 욕설 같았다.“허.”그 한마디가 제법 기가 막혔는 지 지호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니, 바닥에 굴러 있는 빈 술병이었다. 아마 귀하기로 유명한 로마네콩티가 이런 대접을 받은 건 처음일 것이었다.지호는 시아를 한참, 십여 분은 그대로 바라보다가, 그녀가 몸을 웅크리며 불편해하는 순간 허리를 숙여 번쩍 안아 올렸다.갑작스러운 공중 부양에 시아가 움찔하며 눈을 떴다. 흐릿한 시야 속에, 지호의 하얗고 잘생긴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지호는 정말 잘생겼다. 남자는 시각적 동물이라지만, 여자라고 해서 아닐 이유도 없었다.시아는 시선을 떼지 않고 지호를 바라보다, 침대 위에 내려놓자마자 몸을 살짝 떨었다.지호는 고개를 숙였고, 그제야 시아가 깬 것을 알아차렸다. 시아는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남자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지호는 시아를 내려놓은 채 그대로 멈춰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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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화 가졌다면 그걸로 됐어

‘남편이라고?’그 두 글자가, 하필이면 이런 상황에서 시아의 입에서 나왔다. 술에 취하긴 했지만, 의식이 완전히 흐린 건 아니었다.“키스해 줄 거예요, 말 거예요?”시아가 고집을 부렸다. 평소의 시아는 차갑고, 얼음 껍질에 싸여 있는 사람 같았다.그런데 지금은 껍질이 벗겨진 듯 부드럽고 연약했고, 그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까지 누그러뜨렸다.“정말 하고 싶어?”지호가 그렇게 묻자, 시아의 눈속에 있던 부드러움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짙은 불만이 드리워졌다.“안 할래요.”말이 끝나기 바쁘게, 시아는 지호를 한번 밀치고 몸을 옆으로 돌려버렸다. 태도가 바뀌는 속도가 너무 빨라, 당황스러울 정도였다.그건 분명, 지호가 애를 태우는 방식이 거슬렸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시아의 본연의 성질도 한몫했다.지호는 예전에 시아가 조용히 참으며, 어떤 사람에게 한마디 전하기 위해 몇 시간을 기다리던 모습을 본 적이 있다.그때의 시아는 아무리 눌러도 꺾이지 않는 대나무 같았다. 하지만, 그건 진짜 모습이 아니었다.이렇게 성질도 있고, 고집도 있는 모습이 진짜였지만, 그 사람을 위해 참고 숨겼던 것뿐이었다.스쳐 지나간 생각이 머릿속을 훑고 지나가자, 지호의 눈빛이 조금 더 짙어졌다. 지호는 잠시 시아를 바라보다, 손을 들어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해 줬다.“하고 싶으면 네 제정신일 때 해. 그래야 나중에 내가 너 취한 틈을 탄 거라고 못하잖아.”그러나 시아는 고개를 옆으로 홱 돌려 여전히 화가 난 기색을 보였다. 그 모습은 마치 제멋대로 굴 수 있는 철없는 소녀 같았다.지호는 주머니에서 목걸이를 꺼내 잠시 바라봤다.“네가 원하는 건 이 목걸이야, 아니면 목걸이 주인이야?”지호가 낮게 물었으나, 시아는 이미 잠들어 대답이 없었다.지호는 목걸이를 그녀의 베개 옆에 내려놓았다가, 다시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그 시각, 시우는 전화를 받았다.“구 대표님.”[주 대표님, 이렇게 늦게 연락드려 죄송해요.”승준의 말투는 하지호에 비해 훨씬 공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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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화 아직도 사랑을 믿는 거야?

시아는 깊이 잠들었는데, 이게 바로 술의 장점이었다.시아가 눈을 떴을 때, 지호는 집 안 차림으로 소파에 앉아 아침 신문을 읽고 있었다.코끝에는 안경이 걸려 있었고, 방금 깬 듯한 느슨한 기운이 있었다.그 순간, 시아는 문득 지호에게서 하자유의 그림자를 보았다. 하지만 그건 단 한 순간이었고, 곧 정신을 차린 여자는 몸을 일으켰다.“깼어?”지호가 신문 페이지를 넘기자, 딱딱한 종이의 질감이 공기 속에서 묵직하게 울렸다.시아는 가볍게 응하며 휴대폰을 집어 시간을 확인했는데, 이미 오전 9시였다.이에 시아는 미간을 좁혔다. 하씨 가문에 들어와 맞는 두 번째 아침인데, 또 늦게 일어난 셈이었다.지난번, 일찍 일어나려다 지호에게 잔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마 그래서 본인이 먼저 깼는데도 이 방에 그대로 남아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그저 시아에게 게으르다는 꼬리표를 붙이지 않으려는 것이었다.“목걸이 일은 어떻게 됐어요?”시아가 입을 연 첫 마디였다.이에 지호는 손에 든 신문을 덮고, 안경 너머로 자기는 이실직고를 한다는 듯 눈빛을 보냈다.“찾고 있는 중이야.”‘그 정도 능력이라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일 아닌가?’시아는 어딘가 실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시아의 미묘한 표정을 읽어낸 지호는 침대 머리맡의 협탁을 힐끔 보았다.“그런 목걸이가 좋으면 몇 개 보내줄게. 마음껏 골라.”“그런 거 아니에요. 그거 하나만 있으면 되거든요.”시아는 그렇게 말하며 침대에서 내려와 욕실 쪽으로 걸었다.“그게 뭐길래 그렇게 특별해?”지호의 질문에, 욕실 문 앞에서 시아는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며칠 지내보니, 지호는 꽤 의심이 많은 사람이란 걸 알게 됐다. 이럴 땐 추측하게 두기보다 직접 말하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하지만 이건 자신의 출생과 얽힌 일이었기에, 깊이 털어놓고 싶지 않았다.“의미가 좋아서요.”어제 안영에게 했던 대답을 그대로 말했다. 시아의 대답을 들은 지호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입꼬리를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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