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hat ng Kabanata ng 다시 태어난 구공주, 그녀의 당찬 인생: Kabanata 81 - Kabanata 90

100 Kabanata

제81화

문정수가 급히 방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이서영은 이미 흰 비단에 몸을 맨 채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상아는 눈물이 범벅이 되어 다급히 방 안으로 뛰어들며 외쳤다.“아씨! 아씨, 어찌하여 이렇게 어리석은 짓을 하시옵니까!”문정수 역시 놀라 급히 허리춤의 장검을 뽑아 들었고 단숨에 칼날을 휘둘러 비단 끈을 잘라냈다.순간, 허공에 매달려 있던 이서영의 몸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문정수는 잠시 망설였다. 곧 윤세현이 올 테니 자신이 나서서 이서영의 몸을 붙잡을 자격은 없다고 여긴 것이다.이서영이 윤세현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걸 누구나 아는 터라, 혹시라도 자신이 이서영의 몸을 감싸안게 되는 건 도리가 아니라 생각했던 것이다.상아 역시 감히 나설 수 없었다. 윤세현 앞에서 감히 이서영과 몸이 닿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그래서 방 안에 모인 이들은 모두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결국,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이서영은 바닥에 떨어져 비명을 지르며 정신이 아찔해졌다.상아는 멍하니 서 있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달려가 이서영을 부축했다.“아씨, 땅바닥이 차가우니 어서 일어나시옵소서!”하지만 이서영은 그녀의 손길을 밀쳐내며 분노와 울음이 뒤섞인 얼굴로 문가에 서 있는 윤세현을 노려보았다.믿고 싶지 않은 현실에, 그녀는 이 모든 게 거짓이길 바랐다.저 사람이, 자신이 죽을 위기에 처한 걸 뻔히 보면서도, 그저 지켜만 보고 있었다니!상아는 이서영을 힘겹게 부축해 침대에 앉혔고 슬며시 뒷걸음질 치며 밖으로 나갔다. 그때 그녀는 문정수의 소매를 잡아당겨 함께 밖으로 나가자는 눈짓을 보냈고 문정수 역시 조용히 뒤따라 방을 나섰다.이제 방에는 오직 두 사람만 남았다.그런데도 윤세현은 문가에 서서 방 안으로 한 발짝도 들어오지 않았다.그 모습을 바라보는 상아는 속이 타들어 갈 듯했다.‘저하께서 어찌 이리도 무심하실 수 있는지...’“세현 오라버니...”이서영은 당황스럽고 어찌할 바를 몰라 작은 목소리로 부르려 했으나, 거리가 멀어 혹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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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화

윤세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눈빛만이, 점점 더 깊고 차가운 기운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이서영은 그의 속내를 전혀 가늠할 수 없었지만 단 한 가지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 그는 분명히 불쾌해하고 있다는 것.“세현 오라버니... 제 마음이 얼마나 지극한지, 아시지 않습니까? 부디 남의 말에 흔들리지 마시옵소서.”이서영은 당장이라도 그에게 달려가 품에 안기고 싶었으나 윤세현은 너무도 멀리 떨어져 서 있었고 그 거리만큼이나 마음도 멀어져 있는 듯했다.‘왜 오늘따라 이리도 차가우신지...’그녀는 조심스레 다시 입을 열었다.“혹시... 그 창고에서 있었던 일 때문이옵니까? 그 단검, 정말로 제가 보냈다고 믿으시는 겁니까?”끝내 참지 못한 울음이 그녀의 목을 타고 흘러나왔다.“오라버니, 저희가 얼마나 오래 알고 지냈습니까. 제가 어떤 사람인지, 정말 모르시겠습니까?”잠시의 침묵이 흘렀고 그제야 윤세현은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어쩌면 내가 너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르지.”그 한마디에 이서영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눈앞이 아득해졌고 눈물은 참을 새도 없이 뺨 위로 흘러내렸다.“오라버니... 정말 너무하십니다. 혹시... 혹시 이 모든 게... 이경 때문이옵니까?”윤세현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고 이서영은 간절한 마음으로 애타게 물었다.“그 단검... 제가 보냈습니다. 그 아이를 모함하려 한 것도 사실이옵니다. 모두 제 잘못입니다.”고개를 떨구며 모든 걸 인정했지만 윤세현의 얼굴은 단 한 치도 변하지 않았다. 차라리 꾸짖어주었으면 했건만 그 침묵은 오히려 더 큰 절망이 되었다.‘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건지...’이서영은 손끝을 꼭 움켜쥔 채, 한참을 망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제가 그리한 것은 그저 오라버니를 너무도 사모했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이 앞섰기에 이토록 어리석은 짓까지 하게 된 것이온데...”그 순간, 윤세현이 아주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나는 이미 혼례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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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윤세현이 화조차 내지 않자 이서영은 거의 절망에 빠질 지경이었다.예전에는 그가 이경을 얼마나 싫어했는지 혼인 첫날밤도 얼마나 혐오했는지, 그 모든 감정이 또렷이 기억났다.그런데 이제 더는 그 밤을 미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곧 이경에 대한 감정마저 바뀐 게 아닌가 싶어, 가슴이 바짝 타들어 갔다.이서영은 너무나 억울하고 분해서 속으로는 당장이라도 그 여자를 해치우고 싶었지만 정작 윤세현 앞에서는 감히 티 한 점 내지 못했다.그저 달려가 그의 옷자락을 붙들고 싶었으나, 윤세현은 몸을 살짝 비켜 그 손길마저 허락하지 않았다.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한없이 차분하고 냉담했다.“네가 이경을 모함한 일, 네 어머니를 생각해서 내가 더는 묻지 않겠다.”그 말에 이서영은 자신이 그런 어머니를 두었기에 이 자리에서 그나마 목숨을 보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만약 다른 집안이었다면 진작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잠시 윤세현의 눈빛에 스치듯 드리운 살기가, 이서영의 온몸을 오싹하게 만들었다.늘 자신을 감싸주던 윤세현이 오늘만큼은 무섭도록 낯설게 느껴졌다.‘설마, 오라버니가 정말로 이경을 사모하게 된 것인가...’이세영은 한껏 움츠러든 채,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오라버니... 그 여인에 대한 일을 전부 제가 지어낸 거란 말씀이십니까...”두려움에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끝내 진실을 확인하려 애를 썼다.“세상에, 저만 구공주가 방탕하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옵니다. 온갖 소문이 자자한데 오라버니께서도 혹시...”그러자 윤세현이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혼례 그날 밤, 그녀가 내게 몸을 맡겼을 때, 분명히 처음이었다.”이 한마디만큼은 더없이 단호했다. 그제야 이서영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그들이 그날 밤 진짜로 부부가 되었음을 이제야 뼈아프게 깨달은 것이다. 그저 약을 먹이고 가까이 다가가려 했을 뿐, 윤세현이 마음을 허락하지 않았으리라 믿었는데 진실은 전혀 달랐다.그의 차가운 등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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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그날 밤, 성대한 연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돌았다.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난 이경은 하품을 길게 한 번 내쉬었다.이번에는 정말로 몸에 기운이 돌았고 정신도 또렷해진 듯했다.하지만 그 연회라는 게 딱히 마음에 와닿진 않았다.‘연회라... 그러면 맛있는 게 많이 나오겠구나?’이경의 눈빛이 슬그머니 반짝였다.“초아야, 혹시 연회에 가면 이곳 모성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도 나오는 게냐?”사실 이 모성에 온 지도 며칠이 흘렀건만 정신없는 나날이 계속돼 골목의 군것질거리 한번 제대로 맛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내일이면 다시 돌아가야 하니 이렇게 바삐 흘러가는 와중에 모성의 음식을 맛보지도 못한다면 그야말로 억울할 노릇이었다.초아는 공주가 너무 답답해서 속이 탔다.데“공주마마, 지금 음식 생각하실 때가 아니옵니다! 오늘 밤 연회에서 어떻게 하면 세자 저하의 눈길을 사로잡으실지, 그걸 생각하셔야지요!”이경은 고개를 갸웃했다.“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침상에서 내려와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이경의 움직임이, 아침에 비해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초아는 답답한 마음에 그녀 앞을 가로막다시피 하며 말을 이었다.“공주마마, 세자 저하께서는 이미 공주마마의 지아비 아니시옵니까? 반드시 저하의 마음을 붙드셔야 하옵니다. 오늘 밤만큼은 이서영 현주님보다 공주마마께서 더욱 빛나셔야 하옵니다!”이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초아를 손짓해 불렀다.“알겠다. 그러니 빨리 이 옷 좀 손봐라. 혼자 입으려니 죽을 맛이구나.”‘공주마마께서 드디어 내 말을 들으신 건가?’ 초아는 살짝 기대에 찬 표정으로 옷을 다듬었다.하지만 이경은 옷매무새를 바로잡자마자 다시 특유의 천진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초아야, 정말 걱정하지 마라. 오늘 밤 내가 세자 저하 넋을 홀릴 테니 기대해도 좋다!”이렇게 환하게 웃는 공주를 보니 초아는 또 한 번 답답함에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정말 말을 들으시려는 걸까, 아니면 그냥 넘기려는 걸까...’초아는 혼잣말처럼, 하지만 정말 진지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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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화

희고 고운 도포 자락이 바람에 흩날리고 검은 머릿결이 곱게 어깨를 감쌌다.그의 얼굴은 마치 신이 빚은 조각처럼 완벽했다. 눈, 코, 입 모두 섬세하게 조화를 이루었고 단아하면서도 부드러운 분위기가 흘렀다.윤세현의 우직하고 강인한 기운과는 또 다른, 나른하고 청아한 느낌이었고 진한 매력을 풍기지만 어딘가 차분하고 다정한 분위기였다.하지만 이경을 바라보는 문백훈의 눈빛에는 어느 정도 거리감과 경계가 섞여 있었다.연지가 조심스럽게 손을 흔든다.“공주마마, 괜찮으십니까?”이경이 정신을 차리며 머리를 흔든다.“아, 나 너무 멍하니 있었지? 갑자기 저렇게 잘생긴 남자를 보니 눈길이 갈 수밖에 없어서 말이야. 괜히 놀랐다면 미안해.”문백훈은 별다른 대꾸 없이 조용히 서 있었다. 그의 표정에는 익숙하지 않은 이들과의 거리가 느껴졌다.이경은 연지를 바라보며 물었다.“이 사람은 누구냐?”이경은 잠시 문백훈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사실, 잘생긴 사람 앞에선 자신도 모르게 눈길이 더 가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얼굴만 예쁘다고 정신을 쏙 빼앗기는 성격은 아니었다. 정말 얼굴만 보고 반하는 사람이었다면 윤세현을 처음 마주쳤을 때 이미 정신을 놓고 쓰러졌을 것이다.“며칠 전 공주마마께서 장인을 데려오라 하셔서 직접 모셔 왔사옵니다. 이분이 바로 그 장인입니다.”이경이 놀란 눈으로 문백훈의 손을 바라보았다. 흰 손가락은 곧고 섬세해, 도저히 대장장이의 손 같지 않았다.문백훈이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문백훈이라 하옵니다. 원래 대장간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니 오나, 그날 연지님께서 가져오신 설계도가 흥미로워 잠시 손을 보았을 뿐이옵니다.”이경이 웃으며 말했다.“그럼 넌 부업으로 장인을 하는 것이냐?”문백훈은 ‘부업’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대답하지 않았다.그러자 연지가 대신 말했다.“아무튼, 공주마마의 도구는 이분께서 직접 만들어 주셨사옵니다.”이경이 반갑게 손뼉을 쳤다.“잘됐다! 내가 새로 만든 도안이 또 있는데 이것도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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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윤세현의 얼굴에는 그 어떤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문정수가 전한 말을 듣고서도 그는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 평온한 표정이었다. 그저 조용히 서류를 훑을 뿐, 방금 들은 소문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어 보였다.문정수는 속내를 짐작하기 어려운 주인을 바라보며 마음이 착잡해졌다.‘구공주가 절세 미남과 방에서 한두 시간이나 단둘이 있었다는 소문, 과연 저하가 정말로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걸까?’혹시 속으론 불편한 심정이 있는 건 아닌지, 그는 혼자 내심 조마조마했다.잠시 침묵이 흐르다, 문정수는 더는 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기로 했다. 구공주의 화려한 소문은 워낙 유명하니 이제 윤세현도 무덤덤해진 듯했다.“저하, 삼군의 정비가 모두 끝났으니 내일 새벽 출정이 가능합니다.”그 말을 끝내자 윤세현이 갑자기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아까 네가 말한 그 절세 미남,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자냐?”그 얼굴과 목소리는 여전히 태연했으나, 손에 들린 붓끝만큼은 묘하게 힘이 실려 있었다. 문정수는 갑자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혹시 자신이 방금 괜한 말을 한 건 아닌지 순간 걱정이 앞섰다.“아, 연지가 데리고 온 자라 합니다. 아직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곧 알아보겠습니다.”그러자 윤세현은 시선을 책상에 둔 채,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말했다.“그걸 알아서 무얼 하겠느냐.”문정수는 잠시 말을 잃었다. 도대체 윤세현의 의중이 어디에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그럼... 이 일은 그냥 넘기시겠습니까?”그 순간, 윤세현의 차가운 시선이 천천히 문정수를 향했고 그는 자신도 모르게 어깨가 움찔했다. “그 여자가 무엇을 하든, 나랑 상관없다.”그렇게 말한 윤세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툭 걸쳤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방을 나섰다. 뒤돌아선 그의 뒷모습에는 묘한 쓸쓸함이 깃들어 있었다.문정수는 한동안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급히 저하를 따라나섰다.“저하,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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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청... 청지 장군님?”초아는 깜짝 놀라 얼른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청지까지 이곳에 왔다니 윤세현 쪽으로 이미 소문이 전해진 것이 분명했다.청지는 윤세현 곁에 있는 장수 중에서도 가장 신임받는 인물이기에 그의 오른팔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런 그가 직접 왔다면 이번 일은 결코 가볍게 넘어갈 수 없는 문제라는 사실을 초아는 직감 했다.청지는 굳은 얼굴로 꽉 닫힌 연지의 방문만을 바라보고 있었다.초아는 어떻게든 해명이라도 해보려 했으나, 그가 조용히 문 앞으로 걸어가자 바로 입을 다물었다.“장군님, 저희 공주마마께서는 그저 연지에게 약을 발라주시는 것뿐입니다. 평소에도 저희 하인들까지도 세심히 챙기시는 분이오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공주마마는 정말로... 좋은 분이십니다.”하지만 청지는 아무 말 없이 문 앞에 멈춰 서 있었다.“장군님....”초아가 조심스럽게 다시 불렀지만 청지는 손짓만으로 입을 다물게 했다.초아가 아무리 공주 곁에서 총애받는 시녀라 해도 공가, 특히 윤세현의 사람들은 누구도 쉽게 거스를 수 없는 권위였다.청지는 문 앞에 조용히 서 있었고 방 안의 연지 역시 밖의 기류를 눈치챘다. 하지만 이경만큼은 초아의 초조한 목소리를 듣고도 아무렇지 않게 연지의 치료에 집중하고 있었다.‘난 이 시대 사람이 아니라 의사야. 그깟 남녀 구분이 무슨 소용이람...’이경은 아무 거리낌 없이 손을 뻗었다.“아직도 옷 안 벗을래? 네가 언제부터 이렇게 수줍음이 많았어?”연지는 얼굴이 이미 벌겋게 달아올라, 이제는 거의 자줏빛이 될 지경이었고 선뜻 옷을 벗기 망설여졌다. 그러자 이경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너 그 몸, 산에서 다쳤을 때 내가 속속들이 다 살폈잖아. 심지어 네 복근도 다 봤는데 이제 와서 뭘 부끄러워하는 거야?”“공주마마…”연지는 차라리 땅이 꺼진다면 그 속으로 들어가 숨어버리고 싶었다.그때는 정말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도저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공주마마, 그냥 의원을 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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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이경과 청지는 뜰 한가운데서 마주 서 있었다.비록 둘뿐인 자리였지만 저 멀리 복도에는 초아가 지키고 있었고 연지도 근처에 있었다.이경이 피식 웃으며 속으로 생각했다.‘이렇게까지 해야 말 한마디 할 수 있다니, 이 시대 남자들 참 복잡하네.’“이러면 누가 뭐라 하진 않겠지?”이경은 내심 한숨을 쉬었고 청지는 잠시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말했다.“공주마마, 연지는 비록 공주마마의 호위라 하나, 결국 사내이옵니다. 앞으로는 연지 방에 혼자 오래 머무르시지 마시옵소서. 괜한 오해를 살까 염려됩니다.”이경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쳤다.“나한테 소문이 한두 개인 줄 알아? 이제 와서 더 나빠질 것도 없어.”이경은 손에 든 도구들을 챙기느라 신경 쓸 겨를도 없어 보였고 속으로는 빨리 방에 들어가서 술로 소독 좀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그런 이경의 태도에 청지는 답답함을 감추지 못했다.‘이분은 정말 아무렇지 않은 건가, 아니면 이런 소문에 그냥 무덤덤한 건가.’청지는 한숨을 내쉬듯,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공주마마, 이제 세자 저하와 혼례까지 치르신 몸이시니, 더 신중하셔야 하옵니다.”이경은 어깨를 으쓱했다.“세자 저하도 가만히 있는데, 네가 왜 이렇게 오지랖이야?”“공주마마...”청지는 속으로 이경을 당장이라도 한 대 쥐어박고 싶을 만큼 분을 억누르며 이를 악물었다.‘정말이지 염치도 없구나!’이미 여러 번 넌지시 경고도 했건만 이경은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하게 굴었다. 이경은 그런 청지의 답답함도 모른 채, 점점 귀찮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그래서, 나한테 볼일이 뭐야? 나 지금 바쁘거든. 초아가 계속 화장하러 오라는데 언제까지 여기서 붙잡고 있을 거야?”그러자 청지는 꾹 참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더 얘기하다가는 내 속만 터지겠어.’그러다 이경이 진짜로 자리를 뜨려는 듯 몸을 돌리자, 청지는 갑자기 표정을 바꾸며 단호하게 무릎을 꿇었다.이에 이경이 놀란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봤다.“뭐야, 갑자기?”이경은 잠깐 당황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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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청지는 잠깐 멈칫하며 뭔가 찜찜한 예감에 말을 고르다 겨우 한마디 꺼냈다.“공주마마, 그른 일이 아니라면... 뭐든 따르겠습니다.”이경이 갑자기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웃었다.“그래? 그럼 너 나 좀 가져라. 내 곁에 들면 어떻겠어?”“공주마마!”청지는 얼굴빛이 확 굳으면서 속으로 울컥했다.‘아니, 정말 어디까지 뻔뻔할 셈이야...’이경은 어깨를 으쓱하며 손바닥을 펼쳤다.“싫으면 할 수 없지. 결국 네가 내 은혜 갚기 싫은 거잖아. 난 원하는 걸 솔직히 말했으니 거절한 건 네 쪽이야. 그럼, 이만.”어디선가 섬뜩한 한기가 밀려드는 것 같았지만 도무지 그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이경이 재빨리 고개를 돌려보니 아치문 쪽에 멍하니 서 있는 문정수와 시선이 마주쳤다. 하지만 그 서늘한 기운이 문정수에게서 온 건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청지 역시 그 기운을 느끼고 순간적으로 몸이 굳어졌다. 그런데도 주위를 둘러봐도 이경과 마찬가지로 그 자리에는 문정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거기서 뭐 하고 있어?”이경이 미간을 찌푸리며 문정수를 향해 물었다.성큼 다가가 아치문 뒤를 확인해 봤지만 정말 문정수밖에 없었다.문정수는 갑자기 말문이 막혀 어색하게 버벅댔다.“공... 공주마마, 저... 그게...”그는 한 번도 이렇게 말이 안 나오는 적이 없었다.이경을 한번, 그리고 그 뒤에 서 있는 청지를 한번 바라보며 왠지 등골이 오싹해졌다.‘아, 이거 큰일 났다. 지금 당장이라도 죽일 것 같은 기분인데 왜 내가...? 분명 나랑은 상관없는 일인데!’“공주마마, 청지 장군님... 전, 세자 저하 뵈러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문정수는 완전히 기가 죽은 얼굴로, 허둥지둥 자리를 떴다.‘이제 진짜 죽었다. 아까 세자 저하 표정, 완전 살벌했단 말이지... 나만 괜히 엮인 거잖아!’하지만 청지에게 무슨 말을 하려던 것도 잠시, 문정수는 마지막으로 서글픈 눈길을 보내고 그대로 사라졌다.‘아니, 저 사람은 또 왜 온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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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공주마마, 정말로 청지 장군님을 마음에 두신 겁니까?”초아는 이경의 화장을 도와주며 몇 번이나 같은 질문을 되풀이했다.그런데 정작 자신은 집중하지 못하고 손끝이 자꾸 어긋났다.“공주마마, 세자 저하께서는 이 나라 최고의 미남이시잖아요. 저하만큼 잘생긴 분이 또 어디 있겠어요? 혹시 공주마마, 세자 저하가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이경은 거울에 비친 초아를 흘겨보았다.“하나도 마음에 안 들어. 진짜로. 됐지?”“공주마마!”초아는 금방이라도 울 듯한 얼굴이었다.이경이 윤세현을 좋아하지 않다니,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싶었다.“공주마마, 그거 아십니까? 이 나라, 아니 온 천하에 세자 저하에게 시집가고 싶어 하는 아씨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저 저하께서 한 번만 쳐다봐 주시길 바라며, 저하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다던데요.”이경은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었다.“목숨까지? 웃기네. 나는 오래오래 살 거야. 그런 거로 자기 목숨 내놓는 사람들은 그냥 다 알아서 하라 그래.”생명을 그렇게 가볍게 여길 수 있냐는 듯, 이경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공주마마, 정말 몰라서 그러십니까? 세자 저하 때문에 세상에 얼마나 많은 여인들이 울고 웃는지...”“글쎄, 나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는데?”이경은 귀찮다는 듯 초아의 손에서 눈썹 칼을 빼앗아 스스로 그리기 시작했다.세자 저하를 향한 여인들의 열정적인 사랑과 추종에 관해서라면 초아는 할 말이 끝이 없었다.“1년 전에는 이웃 나라 공주가 저하께 반해 남장까지 하고 전장에 나갔다가 붙잡힌 일도 있어요! 그 공주가 황제의 총애를 얼마나 받았는지 그 나라 왕이 직접 큰 성 세 개를 포기하고 겨우 데려갔대요. 또, 반년 전에도 한 아씨가 저하를 보겠다며 직접 전장으로 뛰어들었다가...”이경은 초아의 말에 중간중간 한숨을 쉬었다.“근데 그 세자라는 사람은 계속 전쟁터에만 있었던 거야? 도대체 평소에는 뭐 하고 살아? 삶이 그게 다야?”초아는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공주마마, 제가 말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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