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다시 태어난 구공주, 그녀의 당찬 인생: Chapter 91 - Chapter 100

100 Chapters

제91화

오늘 밤, 이경은 화려한 옷차림이 아닌 평상복 차림으로 연회장에 들어섰다.장수들과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잠시 놀란 듯했지만 수수한 옷차림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누구보다 단아하고 청초했다.얼굴에는 진한 화장도 없었지만 또렷한 눈썹과 붉은 입술, 하얀 치아 그리고 맑고 깊은 두 눈은 마치 구름 사이에 박힌 보석처럼 빛나 보였다.사람들은 그런 그녀가 오늘따라 더 아름답다며 속으로 감탄했다. 화려한 장식도, 사치스러운 장신구도 없었지만 그 우아함과 기품은 도리어 더 눈길을 끌었다.하지만 초아는 속으로 조금 아쉬워했다. 분명히 이경이 예쁜 건 알지만 마음먹고 단장한다면 훨씬 더 눈부실 텐데 오늘은 괜히 수수해서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연회장 한가운데 윤세현과 이경은 나란히 자리했다.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윤세현이 황실 공주인 이경 못지않게 백성은 물론, 장수와 관리들 사이에서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 높은 지위를 갖고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이경은 이미 윤세현의 그런 위치에 익숙해 있었기에 자리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고 늘 입던 수수한 차림으로 자리에 앉았다.그런데도 윤세현은 타고난 기품이 배어 나와 아무리 평범하게 입어도 주변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 사람이었다.하지만 오늘따라 그는 어딘가 기분이 좋지 않은 듯 연회가 시작된 뒤로 줄곧 말없이 술만 마셨고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고 표정이 굳어있었다.그 때문에 연회장 분위기 역시 어딘가 어색하고 답답했다.그러던 중, 갑자기 연주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잔치 분위기가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무희들이 가벼운 걸음으로 연회장 중앙에 들어섰고 초아가 눈을 반짝이며 소리쳤다.“무지개 춤! 여기서 이 춤을 볼 줄이야!”이경은 호기심 어린 눈길로 초아를 바라보았다.“무지개 춤? 그게 그렇게 특별한 춤이야?”“네! 아무나 출 수 있는 춤이 아닙니다. 몸이 정말 유연해야 하고 춤 실력도 아주 뛰어나야 합니다.”초아는 이경에게 술을 한 잔 따라주며 귓속말하듯 조용히 말했다.“그 말은 정말 대단한 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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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화

그녀는 바로 이서영이었다.이서영의 얼굴이 드러난 순간, 초아의 표정이 완전히 무너졌다.‘현주님이 이렇게까지 아름다울 수가 있나?’아니 얼굴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춤사위가 너무도 고왔고 입은 옷 또한 말로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 화려했다.원래부터 예쁜 사람이 온갖 장식과 무대까지 갖추니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선녀처럼 보였다. 초아는 괜히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이러다 우리 공주마마가 완전히 눌려버리는 거 아니야?’이경도 잠시 놀랐다.‘역시 사람은 옷이 날개라더니 춤까지 곁들이니 훨씬 더 예뻐 보이네.’하지만 그 놀라움도 잠시 이경은 곧 다시 술잔을 들고 천천히 한 모금 마셨다.화려한 춤이 끝나고 이서영은 느릿하게 윤세현 앞으로 걸어갔고 얼굴에는 여유로운 승자의 미소가 가득했다.장수들과 남자들의 시선이 온통 자신에게 쏠린 걸 느끼며 오늘만큼은 완벽하게 이겼다고 스스로 확신했다.비록 윤세현은 계속 술만 마시며 아무것도 못 본 척하고 있었지만 남자가 어찌 한 번쯤 시선을 주지 않았겠냐는 자신감이 있었다.이서영이 막 윤세현 앞에 다가가 술잔을 올리려던 그때, 갑자기 맑은 목소리가 연회장에 울려 퍼졌다.“이 무희, 도대체 어디서 온 거지? 정말 아름답구나!”이경이 이서영을 두고 던진 말이었다. 그러자 잔치 자리는 순간 싸늘하게 얼어붙었다.이경과 이서영이 윤세현을 두고 미묘한 신경전이 흐르고 있다는 걸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그런데 무희라니? 정말 못 알아본 걸까, 아니면 일부러 모른 척하는 걸까?초아도 잠시 멍해졌다가 이경이 정말 못 알아본 거라 생각해 얼른 말하려고 했다.그 순간, 이경이 천연덕스럽게 뒤돌아 연지를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이 무희, 정말 아름답지 않아? 난 특별히 마음에 들어 연지, 네게 하사할까 싶은데 어때? 앞으로 네가 이 무희를 부인으로 삼고 나를 함께 모시면 참 좋을 것 같아.”이 말은 크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연회장 중앙에 있던 이들은 다 들을 수 있을 만큼 또렷했다.이경이 이서영을 못 알아보고 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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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화

초아는 놀란 나머지 그대로 바닥에 엎드려 울먹이며 소리쳤다.“죄, 죄송합니다, 공주마마! 모두 제 잘못입니다. 저분이 현주님일 리 없습니다. 제가 사람을 잘못 봤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연회장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해졌다. 장수들은 하나같이 굳은 채, 손에 든 술잔을 내려놓자니 눈치가 보이고 술을 마시자니 감히 입도 댈 수 없었다.분명 이경이 말했듯이 이서영은 황제께서 하사하신 현주일 뿐, 진짜 왕실의 혈통은 아니었다. 그렇다 해도 그동안 황제와 대비 모두 그녀를 공주처럼 대우해 온 것은 사실이다.그런데 지금 현주라는 이가 이렇게까지 드러내놓고 남자들을 즐겁게 하려 하다니...다시 이경을 바라보았다. 화려한 치장은 없지만 진중하고 고고한 기품이 흐르는 그 모습이야말로 진짜 왕실의 혈통이 갖춰야 할 위엄이었다.‘역시 가짜는 가짜일 뿐.’무슨 작위를 받았든, 진짜 황족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사람들 마음에 스쳤다.‘현주라는 신분도 저하와 대비마마의 환심을 사서 얻은 거 아니야?’그런 의심마저 퍼졌다.확연히 대비되는 두 사람, 이경은 한없이 고귀해 보였고 이서영은 아무리 아름다워도, 이 자리에서는 그저 한낱 무희처럼 느껴졌다.사방에서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졌고 이서영의 얼굴은 금세 하얗게 질렸다.이 순간만큼은 아무리 자신이 이길 거라 믿었어도 이경의 한마디, 한마디에 벼랑 끝까지 내몰린 기분이었다.‘이경, 정말 독하네...’“세현 오라버니...”그러나 가까이 있는 윤세현은 여전히 술잔만 들고 묵묵히 술을 마셨다.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외면하고 있었다.이서영은 이를 악물고 조용히 그 곁으로 다가가 조심스레 술을 따라 올렸다.그 아래쪽에서는 몇몇 관원의 부인들과 여인들이 목소리를 낮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저게 무슨 짓이래요, 현주라는 사람이...”“맞아요, 저렇게 대놓고 세자 저하를 유혹하다니.”“그러니까요, 저런 옷차림에 춤에 술까지 권하다니. 공주마마께서 계신 자리에서 저런 추태라니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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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화

이서영은 분명히 이경에게 대놓고 도전하러 온 것이었다. 방금 전, 윤세현이 그녀의 술을 받아 마셨으니 말이다.초아는 분노에 치를 떨며 손에 쥔 술병을 거의 부러뜨릴 뻔했다.‘정말 뻔뻔하기 짝이 없는 이서영 현주, 어찌 이럴 수가 있어. 우리 공주마마를 두고 세자 저자와 한패가 되어 같이 괴롭히다니!’잔치에 모인 부인들 역시 하나같이 화가 치밀었다. 이서영이 뻔뻔하게 구는 것도 한 번으로는 모자라 점점 더 도를 넘는 것도 그리고 윤세현이 끝내 저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것까지도 모두 화를 자아냈다.그런데 윤세현은 처음부터 끝까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앉아 있었다. 사실, 그는 자신이 방금 누구의 술을 받아 마셨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했다.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이경이 청지에게 곁에 머물러 달라는 그 한마디만이 계속 맴돌고 있었다.참으로 얄미운 여자였다. 그 앞에서 감히 청지까지 유혹하다니!정작 이서영이 무용을 시작했을 때부터 윤세현은 그녀를 단 한 번도 제대로 쳐다본 적이 없었다.그러나 지금 이서영은 술잔 두 개가 올려진 쟁반을 들고 있는 상궁을 데리고 우아하게 이경 앞에 다가왔다.이번에는 이경에게 술을 따르려는 게 아니라 ‘이 집의 정실인 공주 앞에서 정식으로 인사드리겠다’는 의미였다.윤세현에게 술을 올리고 이 집의 주인인 이경에게도 술을 올리겠다는 것. 마치 세상 모든 사람 앞에서 ‘이 집안에 들어올 자격이 있다’고 선언하는 듯한 모습이었다.이경은 상궁이 내민 쟁반 위의 두 잔을 잠시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하얗게 질려 있던 이서영의 얼굴에는 윤세현이 술을 받아준 덕분인지 오히려 전보다 더 생기와 자신감이 감돌았다.지금의 그녀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듯 의기양양해 보였다.“공주마마, 저희도 한 잔 함께 하시죠.”이서영이 쟁반에서 한 잔을 들어 이경 앞에 내밀었다.“공주마마, 밖에선 저희가 사이가 안 좋다고들 하지만 사실은 우린 자매처럼 가깝지 않습니까?”이경은 가볍게 미소를 머금고 잔을 받아 드는가 싶더니 곧바로 그 잔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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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화

이경의 뒤에 서 있던 초아가 몰래 이경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저 여자가 공주마마께 술을 올리다니 저 속에 무슨 속셈이 있는지 모르겠네.’초아 눈에는 이서영이 절대로 좋은 마음으로 다가온 게 아니었다. 술잔에 혹시라도 무슨 꿍꿍이가 담긴 건 아닐까 불안해졌다.이서영은 그런 초아를 흘겨보며 비웃듯 말했다.“궁녀 주제에 어디서 손을 대고 있어? 썩 꺼져라!”하지만 초아는 물러서지 않았고 공주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그런데 이경은 이미 이서영이 건넨 잔을 조용히 들어 올리고 있었다. 초아는 속이 타들어 가듯 안절부절못했다.‘공주마마, 만약 이 술에 독이라도 들어 있다면 어쩌려고...!’초아가 다시 한번 이경의 소매를 꼭 잡자 이경이 돌아보며 싱긋 웃었다.“왜 그래?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어? 필요하면 나가서 다녀와도 돼.”이경이 손짓을 하며 말했다.초아는 순간 어이가 없어 두 눈을 깜빡였고 얼굴이 빨개질 만큼 민망했다.하지만 지금은 그저 이서영이 무슨 수를 쓸지 걱정될 뿐이었다.“공주마마...”“공주마마께서 나가라 하시잖아! 아직도 안 나가?”이서영 곁에 있던 상아가 초아를 노려봤다. 초아도 지지 않고 그녀를 똑바로 노려봤지만 그때 이경이 손을 들어 술잔을 들었다.“공주마마, 이 술은...”초아가 다시 조심스레 입을 열려 하자 이서영이 날카롭게 소리쳤다.“네가 뭔데 끼어드느냐! 우리 자매의 잔을 방해하다니 이건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 누구 없느냐, 이 아이를 끌어내라!”그러자 이경이 태연하게 말했다.“제가 아무 말도 안 했는데 현주님께서 무슨 권리로 제 시녀를 쫓아내려는 거죠?”그렇게 말하며 이경은 잔을 가볍게 들어 술을 마셨다. 잔을 내려놓은 이경이 이서영을 바라보며 물었다.“이제 현주님 차례 아닙니까?”“공주마마께서 이렇게 호의적으로 응해주셨는데 저도 안 마실 수가 없죠.”이서영은 기분이 몹시 좋아진 얼굴로, 자신의 잔을 들어 한 번에 모두 마셨다. 그 표정에는 이긴 자의 뿌듯함이 가득했다.이때, 곁에 있던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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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화

‘백조 춤’, 만약 제대로 춰낸다면 ‘무지개 춤’ 보다도 훨씬 더 화려하고 압도적인 무용이었다.그런데 아무나 춰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보통 사람은 아예 시도조차 할 자격이 없고 그만한 실력도 없는 춤이었다.사람들은 정말 특별한 무대를 기대하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하지만 정작 이경이 내린 ‘백조 춤’의 무대 위에는 놀랍게도, 윗옷을 거의 걸치지 않은 남자 무희들이 들어선 것이다.아니 아예 옷을 안 입은 건 아니었다. 적어도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가려져 있었지만 그 외에는 얇은 천만 걸쳐 몸매가 거의 다 드러나 보였다.남자 무희들은 춤용 바지와 얇은 옷만 입었고 상반신과 팔, 심지어 복근까지 그대로 드러났다.“세상에...!”“이게, 이게 대체 뭐야?”“이런 건 너무 민망하잖아요!”여인들은 당황해서 고개를 돌렸고 얼굴은 금세 붉게 물들었다. 정작 관원들이 데려온 사내들도 얼굴이 붉어져 어찌할 바를 몰랐다.‘집안 여인들에게 이런 낯 뜨거운 장면을 보게 하다니!’반면 아직 혼인하지 않은 젊은 장수들은 처음에는 당황하다가도, 곧 재미있다는 듯 눈을 빛냈다. 가족들이 함께 온 게 아니니 그들은 오히려 신이 났다.이서영 역시 얼굴이 붉어진 채, 얼른 고개를 돌려 무대를 바라보지 않으려 애썼지만 슬쩍 이경의 표정을 살폈다.‘아마 창피해서 어쩔 줄 모를 거야.’그런데 이경은 오히려 술잔을 들고 반쯤 미소를 지으며 반라의 남자 무희들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저게... 정상적인 여자의 반응이야? 구공주가 정말 소문처럼 남자 구경을 즐기는 그런 사람이야?’장수들 역시 곧 그 사실을 눈치챘다.‘역시 우리 공주마마, 전장에선 남자 못지않은 기개를 보였어도 정작 이런 취향은... 거침이 없으시네.’문정수는 본능적으로 윤세현을 바라봤다. 그 표정은 단순히 불쾌한 걸 넘어 폭풍우가 몰아칠 듯 잔뜩 흐려져 있었다.문정수는 마음이 쿵 내려앉으며 걱정이 앞섰다.‘이번에는 정말 큰일 나겠네.’“공주마마... 공주마마, 제발 그만 보세요.”초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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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화

“공주마마, 괜찮으십니까?”초아가 재빨리 이경을 부축했다. 이경은 미간을 문지르며 비틀거리더니 누가 봐도 술이 많이 오른 듯 보였다. 윤세현은 붉게 상기된 이경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연회장 안 모든 시선이 이경에게 쏠렸다. 방금 전 남자 무희들을 뒷마당으로 들이라고 해놓고 이제 곧장 방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니 누가 봐도 여러 가지 의미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초아는 복잡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경이 힘들어 보이자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경을 부축해 회장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조심스럽게 물었다.“세자 저하, 공주마마께서 몸이 안 좋으신데 잠깐 같이...”그 순간, 이서영이 눈치를 챘다는 듯 빠르게 끼어들었다.“세현 오라버니, 혹시 공주마마를 따라가시려는 건 아니죠? 방금 공주마마께서 남자 무희 몇 명이나 데려갔잖아요?”이서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윤세현의 차가운 칼날 같은 시선이 그녀를 덮쳤다.그 순간 이서영의 몸이 움찔 굳었고 더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또 그 표정이네. 왜 항상 저년 편만 드는 거지?’“초아야, 나 정말 몸이 안 좋아. 얼른 방으로 데려가 줘.”이경이 애써 목소리를 냈다.초아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이경을 부축해 회장을 빠져나갔다.윤세현 역시 그 모습을 따라 나가려다 뒤에서 들려오는 떨리는 목소리에 걸음을 멈췄다.“세현 오라버니, 공주마마께서 선택한 건 세현 오라버니가 아닙니다.”윤세현은 대꾸도 없이 소매를 털고 회장을 빠져나갔다.연회장에 남은 이들은 모두 윤세현이 무척 화가 나 있다는 걸 눈치챘다.‘공주마마도 너무 심하신 거 아냐? 세자 저하가 보는데도 저렇게 남자 무희들을 고르다니... 겉으로는 그냥 공연 보는 척하지만 누가 봐도 방으로 데려가서...’‘소문처럼 정말 남자를 끊임없이 데려다 곁에 두는 건가... 정말 안타깝네...’이서영 역시 윤세현을 붙잡고 싶었지만 한 걸음 내딛기도 전에 몸이 휘청거렸다.상아가 급히 달려와 그녀를 붙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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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화

지금 윤세현은 자신의 방에 머물고 있었다.책상에 앉아 글씨를 쓰고 있었으나 마음이 너무도 복잡해서였을까 붓끝이 힘없이 내려앉자 종이는 그대로 찢겨 두 동강이 났다.곁에 있던 문정수는 식은땀을 흘리며 잔뜩 긴장했다.“세자 저하, 그... 그럼 제가 나가서 공주마마... 공주마마의 상태를 한 번...”‘공주마마께서 뭘 하고 계신 지, 제가 가서 확인이라도...’문정수는 차마 끝맺지 못한 말을 속으로 삼켰다.이경이 방금 남자 무희 몇 명을 골라 데려가더니 곧바로 몸이 불편하다며 방으로 돌아간 이 상황이다. 이 며칠을 지켜보며 문정수도 점점 느끼고 있었다. 이경은 분명 소문과는 달랐다고 믿고 있었는데 오늘 밤만큼은...‘대체 공주마마, 뭘 하시는 건지...’문정수 역시 답답함과 두려움에 초조해졌다.‘세자 저하께선 그래도 자존심이라도 세우실 수 있지만 나는 안 돼. 절대 공주마마가 세자 저하께 부끄러운 일을 하도록 내버려둘 수 없어!’“뭘 보려고?”윤세현의 손에서 붓이 쩍 부러지는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문정수는 또 한 번 식은땀이 흘렀다.“저, 공주마마께서... 혹시 어디 아프신 건지 의원이라도 불러... 드릴까 해서...”윤세현이 이렇게 신경이 곤두서 있는 걸 뻔히 보이면서도 이경이 저렇게 행동한 뒤 윤세현이 곧장 찾아가는 것도 체면이 서지 않을 것 같았다.평소의 윤세현이라면 지금처럼 차갑게 등을 돌리고 있는 이경을 더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진짜 이대로 두고 있으면...’“제가 다녀오겠습니다.”문정수가 조심스레 물러서려 할 때, 윤세현이 벌떡 일어나 창가로 걸어가 밖을 물끄러미 내다봤다.“가지 마.”‘저 여자... 감히 남자 무희들을 골라서 데려가? 대체 뭘 하겠다는 거야. 이건 세상 사람들 앞에서 내가 무능하다는 걸 선포하는 거잖아! 내가 내 사람 하나 못 지킨다는 걸! 어떻게 감히, 나한테 이런 수치를 안길 수 있지? 그런데 미친 듯이 신경이 쓰이네. 정말, 지금 저 여자와 남자 무희들이 진짜로 뭔가를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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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화

“세자 저하, 진정하십시오!”문정수는 거의 날듯이 윤세현의 뒤를 쫓았다. 혹시라도 윤세현이 격분해서 그만 이경을 다치게라도 한다면 그 뒤는 정말 수습할 길이 없었다.‘뭐라고 변명할 수 있단 말인가!’그런데 문정수가 방 안으로 뛰어들었을 때 상상도 못 한 광경이 펼쳐졌다.이경과 초아가 방 한가운데서 호두를 까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것이다.이경은 커다란 눈을 깜박이며 문을 박차고 들어온 두 사람을 천진난만하게 바라봤고 전혀 아무 잘못도 없는 표정이었다.“왜 그러세요? 누가 보면 사람 잡으러 온 줄 알겠네. 혹시 배고픈가요?”이경은 손끝에 들고 있던 호두 알맹이를 슬며시 내밀었다.윤세현은 자신이 지금 무슨 감정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올 것 같은데 그걸 애써 참고 있었다. 순간 모든 긴장이 한 번에 풀어지며 그저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가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방금 전만 해도 그렇게까지 초조하고 가슴이 미어질 만큼 다급하게 달려왔는데 이 상황을 보니 허탈하기도 하고 묘하게 기분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공주마마, 아프시다더니 왜 쉬지 않고 이렇게...”문정수가 머쓱하게 물었다.이경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호두를 입에 넣으며 대답했다.“내가 정말 아픈 줄 알았어? 그저 핑계 삼아 연회장을 빠져나오려 한 것일 뿐이다.저런 잔치, 재미도 없고 계속 나만 곤란하게 만드는데 내가 거기 더 있을 이유가 없잖아.”“곤란하게 만들다니요...?”이경은 호두를 오독오독 씹으며 피식 웃었다.“그 남자 무희들 말이다. 내가 정말 좋아해서 부른 줄 알아? 설령 내가 그런 걸 좋아한다 해도 내가 직접 나서서 그런 짓을 했겠어? 내가 그렇게 어리석어 보이더냐?”앞부분을 들은 윤세현은 한순간 불쾌한 기색이 스쳤지만 이경의 뒷말을 듣고는 묘하게 생각이 바뀌었다. 초아도 든든하게 거들었다.“우리 공주마마, 정말 누가 봐도 억울한 오해만 잔뜩 받으셨지 실제로는 그런 분 아닙니다. 요즘 들어서 보면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변하셨거든요. 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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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화

뜰 안에서는 끔찍한 비명이 퍼져 나왔다. 한 생명이, 짧은 시간에 허무하게 사라지고 말았다.초아는 이경 곁에 앉아 있으면서도 온몸에 식은땀이 맺혀 손끝까지 덜덜 떨렸다.하지만 이경은 여전히 태연하게 호두를 까먹고 있었다. 얼굴은 더욱 담담해 보였고 마음의 동요는 조금도 드러나지 않았다.윤세현은 이경 가까이에 앉아 조용히 차를 마셨다. 뜰에서 들려오던 여자의 절규가 완전히 잦아든 뒤에서야 윤세현이 고요한 시선으로 이경을 바라봤다.마치 이경의 얼굴에서 어떤 감정이라도 읽어내려는 듯했지만 정작 아무런 변화도 찾을 수 없었다.“할 말 없어?”윤세현이 낮고 단호하게 물었다.초아는 그 자리에 더욱 몸을 움츠린 채 벌벌 떨었다.예전에도 이경 곁에서 궁인들이 벌을 받는 걸 본 적은 있었지만 그때는 그냥 잔인하다고 생각했을 뿐 오늘처럼 이렇게까지 두려워 본 적은 없었다.지금 윤세현의 태도는 무심한 듯 보였지만 오히려 그런 평온함이 가슴 한가운데를 서늘하게 파고들었다. 무엇보다도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읽히지 않았고 지금 이 순간 평화로워 보여도 언제든 목숨을 빼앗길 수 있다는 생각에 초아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다.이경은 고개를 들어 윤세현의 냉정한 눈빛을 똑바로 받아냈다.“세자 저하의 사람이 판을 짜고 또 제 술잔에 약까지 탔는데... 제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약을 탔다고?”윤세현의 눈매가 차갑게 가라앉았다.“저한테 술을 권한 그 잔을 제가 내려놓으면서 현주님의 술잔과 바꿔 두었습니다.”이경의 두 눈에는 한 겹 웃음기가 스쳤지만 그 안에 숨겨진 차가운 빛은 누구라도 쉽게 느낄 수 있을 만큼 서려 있었다.“게다가 저에게 준비해 주신 남자 무희들도 모두 현주님 방으로 돌려보냈으니 세자 저하께서 지금 바로 가서 챙기셔야 할 사람은 오히려 그쪽이 아닐까요?”이 말을 듣고 윤세현의 표정이 굳어졌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그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을 나섰다.문이 닫히는 순간, 초아는 결국 참지 못하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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