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약속했으니 지키지 않을 리 없지.”주시우의 낮고 온화한 목소리에 신예린의 마음은 따스함으로 채워졌다.‘늘 나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일 줄이야.’“근데 교수님, 성적 발표 전에 미리 준비해 두신 거잖아요. 제가 해부학 성적 기준에 통과한 걸 어떻게 미리 아셨어요?”신예린의 물음에 주시우는 마치 왜 그런 걸 묻느냐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네가 잊었구나. 내가 무슨 과목을 가르치는 교수인지.”그제야 신예린은 이마를 탁 치며 민망하게 웃었고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질문을 했는지 깨달았다. 주시우가 바로 해부학 교수였고 성적 발표가 나자마자 가장 먼저 아는 사람 역시 그였다.“열어봐도 돼요?”“물론이지.”주시우의 시선이 머무는 가운데 신예린은 조심스레 리본을 풀고 상자를 열었다. 순간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이건...”상자 안에 놓여 있던 건 의외의 선물, 반짝이는 청진기였다.주시우가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의사가 된다면 반드시 자기만의 청진기를 가져야 해. 네가 훗날 이 선물을 받을 때의 의미를 잊지 않았으면 해서 준비했어.”주시우의 길고 검은 속눈썹 아래 깊은 눈동자가 무겁게 빛났다.“To cure sometimes, to relieve often, to comfort always.”‘가끔은 치료하고, 자주 도와주며, 언제나 위로하라.’백 년 전 한 미국 의사의 묘비에 새겨진 이 말은 지금도 의사들이 지켜야 할 기본이자 양심이었다.신예린의 심장은 마치 강하게 두드려진 듯 요동쳤다.주시우는 단순히 전공 지식을 가르치는 교수가 아니라 살아가는 태도와 가치관을 세우게 해 주는 사람이었고 어떻게 좋은 의사가 되어야 하는지를 삶으로 보여 주는 사람이었다.신예린은 눈썹을 떨며 결국 주시우를 힘껏 끌어안았다.“꼭 그렇게 할게요.”주시우는 품에 안긴 채 울림처럼 전해지는 신예린의 단호한 목소리를 들었다.개강 첫날, 신예린은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을 챙겨 먹고 준비를 마쳤다. 책가방을 메고 거실을 나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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