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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1화

운동장 안에서 게임을 즐기던 학생들의 휴대폰이 일제히 울리자 분위기는 순식간에 달라졌다. 게임에 집중하던 시선들이 하나둘 옆으로 쏠리며 모두가 누군가를 찾아 헤매기 시작한 것이다.정작 신예린은 아무것도 모른 채 조용히 게임을 마치고 있었다. 작은 인형 열쇠고리를 건네주는 진행자의 시선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을 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위 사람들의 눈빛도 차갑고 낯설게 변해 갔고 마치 들짐승들 속에 홀로 던져진 듯한 기분이 몰려왔다.“저 여자 맞지?”“그래. 사진이랑 똑같잖아.”“창피하지도 않나 봐. 집에 숨어 있지 왜 여기까지 나왔대.”의아한 시선과 비아냥이 동시에 쏟아지자 신예린은 가슴이 서늘해졌고 불안에 휩싸여 무심코 물었다.“무슨... 무슨 얘기예요?”그러자 누군가가 휴대폰을 눈앞에 들이밀었다.“이 여자가... 너 맞지?”화면에는 신예린과 앤드루 교수와 함께 있는 사진이 떠 있었고 각도 탓인지 꼭 입을 맞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신예린의 동공이 순간 움찔 흔들렸다.“저건... 그런 게 아니야. 사실은...”하지만 변명은 곧장 잘려 나갔다.“똑같이 생겼으면서 무슨 거짓말이야.”“앤드루 교수님은 유부남이라며. 네가 어떻게 남의 가정을 깨뜨릴 수가 있어.”이 목소리 어딘가 익숙했다.‘여도준?’신예린은 무심코 사람들 사이를 훑었지만 사방이 인파라 여도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주위 학생들은 그 말만 믿고 신예린한테 손가락질을 퍼부었다.“맞아. 양심이 있다면 이러면 안 되지.”“부모님은 얘한테 뭘 가르쳤길래 이런 짓을 하는 거야.”“도덕도 없고 창피하게 학교 이름만 더럽히네.”험한 말들이 잇달아 신예린의 귓가를 때렸고 단지 한 장의 사진만으로 죄인이 된 듯한 꼴이었다. 사방이 막힌 듯한 인파 속에서 억지로 빠져나가려 했다가는 혹시 배를 다칠지도 몰랐다.예전 같으면 신예린은 이미 눈물부터 터뜨렸을지도 몰랐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신예린은 차분히 숨을 고르며 생각에 잠겼다.‘만약 주 교수님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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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2화

사실 신예린의 외투는 크게 벌어지지도 않았지만 여도준의 소리 한마디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신예린의 배로 쏠렸다.외투 아래 드러난 건 분명 볼록하게 올라온 배였다.“세상에... 진짜 임신했어.”“그러니까 아까 거짓말한 거잖아. 앤드루 교수님의 아이인 게 뻔하네.”“방금은 그럴듯하게 말하더니... 와... 완전히 속을 뻔했네.”“정말 뻔뻔하다.”운동장은 곧장 아수라장이 되었고 학생들은 서로 밀치며 신예린을 향해 손가락질을 쏟아냈다.“아니, 잠깐만요! 제 말 좀 들어 보세요...”신예린은 몸을 잔뜩 움츠린 채 두 손으로 배를 감싸안으며 겨우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몰아치는 인파에 신예린의 목소리는 바로 묻혔다.그 순간, 누군가가 미친 듯한 기세로 인파를 뚫고 달려왔다.“너희 지금 뭐 하는 거야. 임신한 사람한테 이게 무슨 짓이야!”신예린은 놀라 눈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지유야...”앞으로 몸을 내민 건 다름 아닌 송지유였다.송지유는 두 팔을 벌려 신예린을 감싸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배 속 아이가 누구 아이든 그게 너희랑 무슨 상관이야!”그러나 몰려든 학생들은 전혀 멈추지 않았다.“우리 학교에 이런 뻔뻔한 여자는 있을 자격 없어. 당장 나가!”“맞아. 꺼져라!”“나가!”사람들은 마치 정의의 사자라도 된 듯 목청을 높이며 점점 가까이 몰려왔다.송지유는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감을 직감하고 급히 외쳤다.“여러분, 이건 오해야! 배 속 아이는 앤드루 교수님의 아이가 아니라...”하지만 송지유는 말을 끝내 이어가지 못했다.“흥, 네가 그렇게 감싸는 걸 보니까... 너도 똑같은 거 아냐? 똑같이 늙은 남자한테 붙어 다니는 거겠지.”“끼리끼리 어울린다더니... 결국 똑같이 추잡하네.”온갖 더러운 말들이 쏟아졌고 송지유의 얼굴은 분노로 벌겋게 달아올랐다.‘이 사람들은 우리에 대해 아는 것도 없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쉽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거지...’사태가 점점 위험해지자 신예린은 급히 휴대폰을 꺼냈다.‘주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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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3화

주시우의 손에 잡혔던 남학생의 팔뚝은 온통 붉게 물들어 있었다.주시우는 눈을 가늘게 뜨며 남학생의 손을 힘껏 뿌리쳤다. 억눌린 분노가 섞인 그 행동에 남학생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고 뻘겋게 잡힌 팔뚝은 은근히 욱신거렸다.겉으로만 봤을 때는 점잖고 차분한 교수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힘이 셀 줄은 아무도 몰랐다.주위에 서 있던 사람들도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그래. 신예린은 주시우 교수의 친척이지. 모두 임신했다는 사실에 눈이 멀어 그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다.그러나 뜻밖에도 주시우는 수많은 시선이 지켜보는 앞에서 신예린의 손을 이끌어 올리더니 손가락 끝으로 붉어진 피부를 쓰다듬으며 여태껏 본 적 없는 부드러운 눈빛을 띠었다.“아프지?”늘 온화하고 점잖던 주시우였지만 학생들에게 이런 따스한 표정을 보여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그건 분명 친척을 대하는 눈빛이 아니라 오히려 연인을 바라보는 시선에 가까웠다.사람들이 충격에 휩싸인 가운데 신예린은 눈가가 붉어진 채 코끝을 훌쩍이며 작게 대답했다.“조금요...”순간 주시우의 입가가 굳게 내려앉았다.그건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의 전조였다.멀찍이 숨어 지켜보던 여도준은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애초에 계획이 틀어진 듯해 얼른 빠져나갈 궁리를 했다.그러던 찰나, 방금 주시우에게 뿌리쳐진 남학생이 분을 이기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주 교수님, 이 여자는 남의 가정을 깨뜨린 불륜녀예요. 게다가 그 쓰레기 같은 남자의 아이까지 가졌다면서요. 이런 사람은 학교 망신입니다. 당장 퇴학시켜야 마땅합니다!”남학생은 주시우가 사정을 모를 거라 생각하고 진실을 고하듯 외쳤다. 하지만 말이 끝나자마자 주시우의 눈빛에는 싸늘한 빛이 스쳤다.“쓰레기 남자라고?”주시우의 말투는 무심했고 강의실에서 보던 단정한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주시우는 입꼬리를 비틀며 차갑게 웃었다.“네가 말한 그 쓰레기가 바로 나다. 그리고 예린이가 가진 아이는 내 아이야.”그 한마디에 공기가 얼어붙은 듯 고요해졌다가 이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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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4화

이 장면은 충격이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신예린의 심장도 금방이라도 목구멍까지 치솟을 듯 쿵쾅거렸다.옆에서 지켜보던 송지유는 오히려 피가 끓어오르는 듯 설레었다.‘왔어. 드디어 왔어! 내가 오래도록 기다리던 순간이야. 이건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해도 돼.’운동장은 숨죽인 정적에 잠겼다. 반지가 손에 끼워지는 순간 모두가 눈치챘지만 끝내 믿지 못한 채 마지막 판결을 기다리듯 버티고 있었다.수많은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신예린은 고개를 들어 주시우의 부드러운 눈빛과 마주했다. 주시우의 그런 시선은 그녀에게 커다란 용기를 주었다.신예린은 이 순간이 언젠가 반드시 다가올 거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수백 명 앞에서 숨 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맞이하게 될 줄은 몰랐다.그런데 이제는 주시우가 곁에 있으니 상관없었다.신예린은 크게 숨을 들이쉬고 주시우의 손을 반대로 움켜쥐며 높이 들어 올렸다.따스한 오후 햇살이 두 사람을 비추었고 같은 모양의 반지가 마침내 떳떳하게 두 사람의 무명지에 끼워져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났다.신예린의 목소리는 맑고 또렷했다.“맞아요. 우리 부부예요. 그리고 이미 아이도 있어요.”순간,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끈이 툭 끊어지듯 모두의 심장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운동장 가득 천둥 같은 충격이 울려 퍼졌다.여도준의 몸은 휘청이며 뒤로 몇 걸음이나 물러났고 다리가 풀려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었다.그야말로 끝장이었다.여도준이 발로 찬 것이 결국 쇠벽돌 같은 철판이었던 셈이었다.주시우가 당당하게 신예린의 손을 잡고 자리를 떠날 때까지 사람들은 멍하니 그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차에 올라서도 신예린은 여전히 얼떨떨했다.오늘 하루는 마치 꿈처럼 흘러갔다. 무참히 모욕당하다가 결국 공개적으로 주시우와의 관계를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아직도 신예린의 머릿속에는 운동장을 떠날 때 마주친 사람들의 경악한 눈빛이 선명했다.“이제 정신 좀 들어?”주시우의 목소리가 신예린을 현실로 끌어냈고 고개를 돌리니 주시우가 미소를 띠고 자신을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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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5화

집으로 돌아온 신예린은 서재에 틀어박혀 마지막 벼락치기 공부에 몰두했다.서재 문틈 사이로 보이는 건 오로지 책에 집중한 신예린의 뒷모습이었다.오후에 그렇게 큰일이 있었음에도 금세 마음을 다잡고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모습에 주시우는 잠시 눈을 가늘게 떴다.주시우는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휴대폰을 들고 발걸음을 베란다로 옮겼다.번호 하나를 찾아 전화를 걸자 곧 상대가 받았다.“나도 막 전화하려던 참이었어.”들려온 목소리는 소지훈이었다.“네가 보내준 포럼 글을 내 사촌한테 넘겼는데 상대방은 제법 약아 빠르더라. 글은 금방 삭제했어. 그래도 다행히 내 친구가 미리 준비해 둬서 거슬러 올라가 IP 주소까지 추적했고 결국 상대방의 신원까지 확인했어.”어둠이 내려앉은 밤, 주시우의 눈빛은 차갑고도 깊었고 선명한 이목구비에는 으스스한 기운이 스쳤다.“그놈 이름은 여도준, 너희 학교 학생이고 22학번 임상 3반이야.”‘여도준?’낯선 이름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찾지 못할 리가 없으니까.“고마워.”주시우가 짧게 답했다.“제수씨는 괜찮아?”소지훈이 걱정스레 물었다.“지금은 잘 버티고 있어. 공부 중이야.”“이런 일이 있었는데도 공부라니... 제수씨도 너랑 똑같네. 멘탈이 보통이 아니야. 역시 부부는 닮는다니까.”“예린이 본인이 직접 말했어. 장학금은 따는 길에서 누구도 자신을 막을 수 없다고.”돈 욕심 많은 성격이 드러난 순간 소지훈은 피식 웃었다.“좋네. 아주 좋아.”“난 이제 처리할 일이 있어서... 이만 끊자.”그 말에 소지훈은 속으로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설마 사람을 처리하려는 건 아니겠지?’“뭘 하려는 건데? 너무 심한 짓은 하지 마.”소지훈이 조심스레 당부하자 주시우는 담담히 받아쳤다.“걱정하지 마. 아무리 그래도 난 교수야.”그런데도 소지훈은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겉만 교수일 뿐, 실상은 사람을 잡아먹는 호랑이 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전화를 끊은 주시우는 바로 22학번 임상 3반 담당자인 이명한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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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6화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들려온 목소리에 여도준의 마지막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나 주시우야.”휴대폰 너머로 전해진 싸늘한 목소리는 전류를 타고 여도준의 귀에 박혔다.그 순간 여도준은 하늘이 무너져 내린 듯 숨이 막혔고 한참을 더듬이다가 겨우 입을 뗐다.“주, 주 교수님...”“내가 왜 너를 찾았는지 알고 있을 거야.”주시우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여도준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손에 쥔 휴대폰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지금 당장 학교 포럼에 사과문을 올려. 무슨 이유로, 누구에게, 어떤 마음에서 그런 짓을 했는지 똑똑히 적어야 해.”그 글이 올라가면 여도준은 자신의 체면은 끝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여도준은 목소리가 쉬어 갈라지면서도 간절히 매달렸다.“주 교수님, 저... 제가 직접 신예린의 앞에 가서 무릎 꿇고 사과하겠습니다. 전 아직 학생이에요. 제발 한 번만 살려주세요.”“학생?”주시우가 되묻는 순간,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았다.“사진을 포럼에 올릴 때는 네가 학생이라고 생각했어? 예린이도 학생이야. 하필이면 학과 행사로 스트레스를 풀어야 할 때를 노려서 올린 건 우연이 아니겠지. 시간은 참 잘 골랐어.”주시우의 차가운 기운이 전화기 너머로까지 번졌다.“여도준, 네가 운이 좋은 줄 알아. 우리 아이가 무사했으니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사과문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을 거야.”여도준의 등에는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만약 오늘 오후 그 난리통에 신예린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여도준은 이 학교에 다시는 발도 못 붙였을 것이다.“듣는 소문에 의하면 네가 대학원 진학을 준비한다고 했어.”주시우의 낮은 목소리가 이어졌다.“총장님께서 내게 대학원 선발을 맡길 생각이라고 하시더군. 만약 네가 지원한다면 결국 내 심사를 거쳐야 한다는 얘기야.”여도준의 입술이 하얗게 질렸다.“주 교수님, 선생님은 교수님이잖아요. 공정하게 하셔야죠. 사적인 감정으로 보복하시면 안 됩니다.”순간, 주시우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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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7화

신예린은 간단히 답장을 보냈다.[나 지금 공부 중이야.]그러자 곧바로 송지유의 메시지가 도착했다.[이렇게 흥분된 상황에서 네가 어떻게 책이 머리에 들어가?][이거 혹시 네 전략 아니야? 시험 직전에 일부러 주 교수님과의 관계를 공개해서 사람들의 멘탈 흔들려는 전술?]신예린은 피식 웃으며 손가락을 움직였다.[너도 상상력이 참 풍부하구나.]잠시 후, 송지유가 링크 하나를 보냈다.[지금 애들이 너랑 주 교수님 얘기로 주제를 따로 만들어 놨어.]신예린은 눌러 들어갔고 그 안에는 이미 수만 개의 댓글이 쌓여 있었다.[나 지금 운동장에 있던 사람들 후기 기다리는 중.][왔어.][아아아아.... 정말 못 믿겠어. 내 사랑 주 교수님이 이렇게 젊은 나이에 결혼할 리 없어!][얘야, 이제 안 젊어. 주 교수님도 서른이야. 예전에 반지 낀 거 보고도 결혼했다는 소문 돌았잖아. 그냥 다들 믿기 싫어서 무시했을 뿐이지.][충격은 결혼보다 아이가 있다는 거야. 난 주 교수님 보면 진짜 학문 연구밖에 모르는 분인 줄 알았어.][네가 못 상상한다지만 난 상상해. 아아, 나만 변태인가 봐.][아니, 그 여자가 뭔데? 얼굴 평범하고 공부 좀 잘한다는 것뿐이잖아. 어떻게 주 교수님이랑 결혼할 수 있어.][그러니까. 신예린이 된다면 나도 될 수 있지 않을까?][뭔 수를 썼는지 모르지만 주 교수님이 속은 게 틀림없어.][삭제된 그 사진은 절대 근거 없는 게 아닐 거야. 딱 봐도 수상해.][맞아. 주 교수님은 체면 때문에 덮으신 거겠지. 누가 그런 치욕을 당하고도 쿨하게 인정하겠어.][난 절대 인정 못 해. 저런 여자랑 결혼했다니... 내 교수님 돌려줘!][둘 사이 격차가 너무 커. 내가 생각에는 절대 오래 못 갈 거야.][이거 명백히 사제지간이잖아. 교수님의 커리어에 타격이 안 갈까?][이 여자는 너무 이기적이야. 주 교수님의 생각은 전혀 안 하잖아.][아아아아, 왜 하필 기말 직전에 밝히는 거야? 공부 집중이 하나도 안 돼. 나 이번에 F 학점 받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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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8화

[완전히 동의해. 오늘은 정말 인터넷의 무서움을 똑똑히 봤어. 운동장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한 여학생을 둘러싸는 걸 봤는데... 게다가 여학생은 임신한 상태였잖아. 놀라서 아이를 잃지 않은 것만도 천운이지.]드물게 신예린을 지지하는 댓글이 올라왔고 차츰 올바른 목소리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신예린은 댓글을 대충 훑어보다가 결국 시선을 붙잡은 건 여도준의 사과문이었다.아무도 모를 일을 굳이 스스로 나서서 욕을 먹을 이유는 없었고 반드시 누군가가 여도준을 움직이게 했을 것이다.신예린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주시우였다.사실 주시우가 아니면 다른 답은 없었다.신예린은 잠시 생각에 잠기다 하던 공부를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거실에는 인기척이 없었지만 부엌 쪽에서 작은 소리가 흘러나왔다.고개를 내밀자 주시우가 조리대 앞에 서서 냄비에 우유를 데우고 있었다.옆모습은 불빛에 비쳐 더욱 또렷하게 드러났고 차가운 인상 속에도 묘한 따스함이 배어 있었다.주시우는 언제나 무슨 일이든 온 마음을 다하는 듯했다. 단순히 우유를 데우는 이런 사소한 일조차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건성으로 넘기지 않았다.발소리를 들은 듯 주시우가 고개를 돌렸다. 문가에 서 있는 신예린을 보자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졌다.“피곤해?”주시우는 신예린이 공부에 지쳐 나온 줄 알았다.신예린은 조용히 다가와 바로 물었다.“포럼에 올라온 여도준의 사과문은... 당신이 한 거죠?”주시우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역시 눈치 빠르네.”주시우는 신예린이 한 말조차 칭찬으로 삼았다.신예린은 고개를 젖히며 물었다.“어떻게 설득했어요?”너무나 순진하게도 설득이라는 단어를 쓴 신예린을 보며 주시우는 가스불을 조금 줄였다.“대학원 진학을 미끼로 삼았어. 사과하지 않으면 절대 합격할 수 없다고 말했어.”주시우의 대답에 신예린의 눈이 크게 동그랗게 뜨였다.그 눈빛은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선생님답게 정정당당하게 산다더니 이게 뭐예요?’끓어오르는 냄비에서 뜨거운 물방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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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9화

“마셔. 이제 안 뜨거울 거야.”주시우가 컵을 내밀자 신예린은 얌전히 받아 고개를 숙여 한 모금 들이켰다.주시우의 시선은 줄곧 신예린에게 머물러 있었다.처음 만났을 때와 크게 달라진 건 없었지만 매일 바라보던 주시우의 눈에는 미묘한 차이가 느껴졌다.볼살이 조금 더 올랐고 가까이서만 보이는 작은 주근깨가 몇 개 늘었다.유학 시절에 여학생들이 괜히 얼굴에 주근깨를 그려 넣는 걸 보고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 보니 은근히 사랑스러웠다. 오히려 신예린만의 매력이 더해지는 듯했다.신예린도 당연히 주시우의 시선을 느끼고 있었기에 볼이 저절로 달아오르고 몇 모금만 마시다가 결국 고개를 들어버렸다.조명을 받은 주시우의 눈빛은 부드러우면서도 뜨겁게 타올랐다.‘저 눈빛은... 설마 우유가 마시고 싶은 건 아니겠지?’신예린은 침을 삼키며 컵을 내밀었다.“마실래요?”주시우는 낮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안 마셔.”‘안 마신다면서 왜 그렇게 뚫어져라 보는 건데...’신예린은 괜히 얼굴이 더 화끈거려서 얼른 속도를 내어 우유를 털어 넣었다.순식간에 컵을 비우고 올려다보니 이번에는 주시우의 눈빛이 더 어두워져 있었다.‘아니, 자기가 마시기 싫다며...’순간, 주시우가 손을 뻗어왔다.차가운 손끝이 신예린의 입술을 스치며 멈췄다.그리고 주시우의 손끝에는 하얀 우유가 묻어 있었다.얼굴이 달아오르려는 찰나, 신예린은 눈앞에서 벌어진 장면에 숨이 멎었다.주시우가 그 손가락을 가볍게 들어올리더니 입술에 가져가 혀끝으로 핧았다.그 광경에 신예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주시우는 태연히 손가락을 훑으며 마치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지만 신예린에게 그 모습은 첫 키스 못지않은 충격으로 다가왔다.신예린은 몸 안이 갑자기 뜨겁게 달아오르고 얼굴은 익은 사과처럼 붉게 물들었다.그런데 정작 주시우는 태연히 눈을 맞추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난 이런 걸 마실 거야.”귀에 맴도는 이 한마디가 너무도 진하게 파고들어 신예린은 더는 눈을 마주치지 못했고 얼굴을 주시우의 품에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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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0화

“한 학기 동안 처장님과 여러 교수님께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주시우의 목소리는 늘 그렇듯 부드러웠다.오인화는 원래 돌려 말하려 했지만 성격이 워낙 직설적인 터라 잠시 망설이다 결국 바로 본론을 꺼냈다.“주 교수님, 결혼하신 일을 왜 학교에 알리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임용 당시 서류에는 미혼이라고 적혀 있었는데요.”“임용 이후에 결혼했습니다.”“그런데 듣자 하니 배우자가 우리 학교 학생이라면서요.”오인화의 목소리는 한결 무거워졌다.“네.”그러자 오인화의 미간이 찌푸려졌다.“우리는 교육자입니다. 학생이 선생을 우러러보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스승으로서 학생들에게 올바른 본보기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제자와 결혼까지 하실 수 있나요.”하지만 주시우의 표정은 흔들림 없었다.“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예상치 못한 직설적인 대답에 오인화의 얼굴이 굳어졌다.“문제가 없더라도 교육 윤리와 도덕적 잣대에는 어긋납니다.”“오 처장님, 진정으로 윤리에 어긋나는 건 성인 간의 관계가 아니라 미성년자와의 관계입니다. 제 아내와 저는 모두 성인이며 각자의 선택에 책임질 수 있습니다. 저희의 결혼이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하지만 교수님은 학교에서 영향력이 크니까요...”오인화의 말을 주시우가 단호히 잘랐다.“그게 부당하다고 판단되신다면 저는 언제든 사직할 수 있습니다.”그 한마디에 오인화의 얼굴빛이 변했다.그저 경고 정도만 하려던 것이었는데 주시우가 이렇게 바로 사직을 입에 올릴 줄은 몰랐다.‘말도 안 돼. 선배님이 공들여 모셔 온 사람인데 어떻게 쉽게 내보낼 수 있겠어.’오인화는 곧바로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을 바꿨다.“주 교수님, 그럴 필요까지야 있나요. 저는 단지 주의를 부탁드리고 싶었던 겁니다. 교수라는 위치가 있다 보니 세간의 시선이 곱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주시우의 눈빛이 잔잔하게 가라앉았다.“처장님의 뜻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입니다. 제 아내는 임신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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