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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1화

“물론 있지. 네 선물이 빠질 리가 있나.”송지유가 가방에서 봉지를 하나 꺼내 흔들었다.“내가 직접 물들이고 꿰맨 원피스야. 출산 시기쯤이면 여름일 테니까 이거 입고 교수님을 홀딱 반하게 만들어. 삼시세끼 붙어 있으니 3년 안에 애 둘은 문제없겠어.”입만 열면 민망한 소리를 전혀 서슴지 않고 하는 송지유였다.사람들이 오가는 자리에서 그런 말을 꺼내니 신예린은 얼굴이 화끈거려 도망치고만 싶었다.“그만해. 제발.”신예린이 간절히 애원하자 송지유는 장난스레 웃으며 불룩 나온 배를 쓰다듬었다.“오랜만이야. 우리 아가. 근데 좋은 소식 알려줄게. 네가 나오면 또 곧 동생이 생길지도 몰라.”“...”신예린은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왔다.두 사람은 티격태격하며 교실로 들어섰다.이미 소문이 돌았는지 모든 시선이 신예린에게 집중됐다.늘 함께 지내던 반 친구들조차 임신 사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터였다.더 놀라운 건 아이 아버지가 주시우 교수라는 사실이었다.한 남학생은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졌다.‘지난번 수업 때 교수님이 질문했을 때 대답도 못 하고 속으로 욕했던 적 있는데...’뒤늦은 후회가 몰려왔지만 다행히도 시간이 조금 지나자 처음만큼의 충격은 가라앉았다.그저 개강 첫날부터 톡 쏘는 화제가 생겼을 뿐, 호기심 어린 눈길들이 오가는 건 피할 수 없었다.신예린은 애써 태연한 척 자리로 걸어가 앉았다.송지유가 옆에 앉자마자 귀띔하듯 말했다.“내과 교수님이 새로 오셨대. 태성 병원 호흡기내과 부 과장급 전문의인데 이번에 부교수로 임용됐대. 원래 시골 출신인데 공부만 하다 이렇게 올라왔다더라. 의사에서 교수까지... 진짜 대단하지 않니?”“개강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런 걸 어떻게 다 알아?”신예린이 놀라 묻자 송지유는 어깨를 으쓱하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내가 누군데. 학교 정보통이잖아.”그 말에 신예린은 그만 피식 웃음이 터졌다.한편, 식당.동료가 주시우를 소개했다.“주 교수님, 이분이 새로 오신 부교수님이에요. 태성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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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2화

말이 끝나자마자 주시우의 휴대폰이 진동했다.화면에는 신예린이 보낸 메시지가 떠 있었다.열어 보니 개강 첫날 신예린이 먹는 점심 사진이었다. 딱 봐도 음식은 평범했고 입맛에 맞는 반찬은 하나도 없을 것 같았다.식당 아주머니의 손맛 덕분에 신예린이 먹는 음식은 한눈 봐도 별로였다. 하지만 임신 개월 수가 늘어날수록 신예린의 식사량도 점점 늘고 있었다.주시우와 다른 교수님들은 이미 식사를 마쳤고 함께 있던 동료 두 명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주 교수님, 가시죠?”도준호가 물었으나 주시우는 휴대폰을 본 채 움직이지 않았다.“먼저 가세요. 전 밥 좀 더 받아야겠습니다.”주시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는 다시 배식하는 곳으로 걸어갔다.도준호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옆 동료에게 물었다.“주 교수님은 원래 이렇게 대식가셨나요?”그 동료는 주시우가 도시락통을 챙기는 걸 보고 눈치를 챘다.“아마 부인 드리려는 걸 거예요. 아내가 임신 중인데 학생 식당 밥이 영 맛이 없다고 하더군요.”그 말을 들은 도준호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주시우의 뒷모습을 바라봤다.한편, 신예린은 점심 사진을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주시우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밥 먹지 말고 내 연구실로 와.”마치 수업 시간에 선생님에게 불려 가는 기분이 들어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오늘은 수업도 성실히 들었는데.’맞은편에서 밥을 먹던 송지유가 그녀의 표정을 보고 물었다.“왜 그래?”“교수님이 밥 먹지 말고 연구실로 오래.”“어머머, 역시 신혼이지 뭐야. 반나절 못 보고도 벌써 아내 보고 싶으신가 보네.”송지유가 놀리자 신예린은 얼굴이 화끈거려 손바닥으로 그녀의 팔을 툭 쳤다.“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어서 가 봐. 분명 너 따로 챙겨주시려는 거야.”신예린은 그제야 접시에 담긴 밥을 보며 고민했다. 버리기엔 아깝고 들고 가자니 좀 우스웠다. 그러자 송지유가 재빨리 접시를 낚아챘다.“이건 내가 해결해 줄게. 기숙사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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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3화

“어린 나이에 제법 재주가 좋구나. 감히 교수님을 넘보다니.”신예린의 심장이 순간 철렁 내려앉았고 이제 긴 잔소리가 이어질 거라 생각했다.그런데 유민수 교수는 갑자기 몸을 앞으로 숙이며 좌우를 두리번거린 뒤 목소리를 낮췄다.“솔직히 말해 봐라. 넌 어떻게 해서 주 교수님을 잡은 거냐? 나도 좀 배워야겠어.”“네?”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자 신예린은 멍해졌다.“교수님, 설마 좋아하는 분이 생기셨어요?”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민수의 손이 툭 하고 예린의 머리 위를 가볍게 쳤다.“뭐라는 거야. 나한테는 아내도 있고 자식도 있어. 누굴 좋아하고 말고 할 나이가 아니야.”자신도 방금 생각이 엉뚱했다는 걸 깨달은 신예린은 머쓱하게 귀를 긁적였다.“사실은 말이지. 내 딸이 벌써 서른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 남자 친구가 한 번도 없어. 나랑 아내가 속이 타들어 가고 있단 말이야. 그런데 네가 그 까다로운 주 교수님을 붙잡았다니 분명 뭔가 노하우가 있을 것 같아서 묻는 거야.”그야말로 애타는 아버지의 마음이었고 신예린은 얼굴이 화끈거렸다.“저는... 사실 따로 노하우 같은 건 없어요.”유민수는 눈을 크게 떴다.“그럼 주 교수님이 먼저 널 쫓아다닌 거야?”신예린은 손을 내저었다.“그렇다고 하기도 그렇고 아니라고 하기도 애매한데요.”“아니, 네가 먼저도 아니고 주 교수가 먼저도 아니면... 도대체 뭐야? 둘이 서로 동시에 좋다고 고백한 거야?”유민수의 눈빛은 호기심으로 반짝였고 금세 수다 떠는 얼굴로 변했다.신예린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이건 조언을 구하는 게 아니라 그냥 우리 이야기를 캐내려는 거잖아...’유민수의 질문 공세에 신예린은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괜히 도망쳤다간 수업 시간마다 괘씸죄로 지목당할 것 같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분명히 주시우 연구실은 코앞인데 지금은 마치 천 리 길처럼 멀게만 느껴졌다.‘교수님... 제발 빨리 나와 주세요.’속으로 간절히 빌던 그 순간, 마치 하늘이 기도를 들은 듯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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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4화

주시우의 말에 유민수는 손사래를 쳤다.‘나야 이제 반쯤은 저 세상에 가 있는 몸인데 무슨 여자를 쫓아다니겠어. 주 교수는 농담도 잘하시네.’“됐어요. 저는 필요 없어요.”“그럼 우리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예린이가 아직 밥을 못 먹었거든요.”“그래요. 얼른 가서 많이 드세요.”유민수는 손을 내저으며 길을 터주었다.주시우는 유민수의 눈앞에서 신예린의 손을 단단히 잡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그녀를 이끌고 연구실로 향했다.두 사람이 사라지자마자 유민수는 못 참겠다는 듯 휴대폰을 꺼내 사무실 단체 채팅방을 열었다.[방금 내가 확인했어. 주 교수님이 먼저 신예린을 쫓아다녔다고 했어요.]곧바로 메시지가 퍼져 나갔고 방 안의 몇몇 교수들이 들썩였다.“봤지? 유 교수님 말로는 주 교수님이 아내 될 학생을 먼저 쫓았다잖아.”“근데 의외 아니에요? 주 교수님은 좀 점잖은 분 같았는데요.”“결혼 자체를 꼭꼭 숨겼잖아요. 부인이 벌써 임신 6개월이라는데요.”“그러게요. 그전에 학교 사람들은 아무도 몰랐을걸요?”그때 그 사무실 안에 있던 신예린의 학생처 담당자인 한영빈이 조용히 끼어들었다.“저는 알고 있었어요.”순간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한영빈에게 쏠렸다.“맞아요. 한 선생님은 신예린 학생의 담당자였잖아요.”한영빈의 심장은 쿵쿵 뛰었고 속에서는 피가 끓어올랐다.‘드디어... 드디어 이 순간이 왔구나. 내가 제일 먼저 알았다는 걸 드러낼 수 있는 때가 말이야.’하지만 한영빈은 겉으로는 일부러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사실 신예린 학생이 외박 신청을 할 때 보호자 서명이 필요했는데 그걸 주 교수님이 직접 해 주셨어요.”“외박 신청이라면 꽤 오래전 얘기 아니에요?”“그럼 진짜 한 선생님이 제일 먼저 안 거네요?”속으로는 입꼬리가 당장이라도 올라갈 듯했지만 한영빈은 애써 심각한 표정을 유지했다.“글쎄, 아마 그럴걸요. 사실 혼자 비밀을 지켜야 해서 꽤 괴로웠어요.”하지만 한영빈의 얼굴은 어떻게 봐도 괴로워 보이진 않았다.한편, 주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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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5화

“그럼 뭐라고 말해? 우리가 실수로 같이 자는 바람에 네가 임신해서 결혼하게 됐다고 할까?”신예린은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이게 훨씬 더 폭탄 발언 아니야?’“꼭 교수님이 저한테 첫눈에 반한 건 아닐 수도 있잖아요.”그러자 주시우가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차라리 네가 날 보고 첫눈에 반했다고 하는 게 더 설득력 있지.”곧이어 주시우의 눈빛에 웃음기가 번졌다.“그러고는 네가 나를 끈질기게 따라다니다가 내가 결국 네 매력에 못 이겨 결혼하고 아이까지 갖게 됐다? 이렇게 말할까?”주시우가 장난스럽게 말을 이어갈수록 신예린의 얼굴은 점점 더 붉어졌다.‘말도 안 돼. 내가 어떻게 주시우 교수를 따라다니겠어. 그런 용기라도 있었다면 몰라도...’“그럼 이 문제를 다시 정리해 보자.”주시우의 말에 신예린은 젓가락을 쥔 채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결혼 얘기를 먼저 꺼낸 게 누구였지?”신예린은 고개를 끄덕였다.“내가 먼저 너보고 집으로 들어와 살자고 했지?”신예린은 또 고개를 끄덕였다.“같은 방을 쓰자고 한 것도 내가 먼저였고?”신예린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결국 내가 먼저였던 거네.”“아니에요.”신예린이 갑자기 작은 목소리로 반박했다.주시우는 고개를 숙여 신예린이 무슨 말을 이어갈지 기다렸다.“제가... 제가 먼저 마음이 움직였어요.”순간 주시우의 마음이 기쁘게 흔들렸고 신예린은 얼굴을 붉힌 채 말을 이었다.“제가 먼저 교수님한테 키스했잖아요. 그리고 처음 만났을 때도... 같이 자자고 먼저 말한 건 저였어요.”예상치 못한 고백에 주시우는 멍해졌고 신예린이 목까지 붉게 달아오른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낮은 웃음이 흘러나왔다.“그럼 그날 밤은 나만 계속 움직였다는 얘기네?”“으... 제발 그만해요.”신예린의 얼굴은 금세 활활 달아올라 불타는 듯했고 주시우의 시선을 피하며 애교 섞인 투정으로 말하고는 부끄러움을 감추려는 듯 밥을 서둘러 입에 넣었다.신예린의 수줍은 모습은 주시우 눈에 더욱 사랑스럽게 비쳤다.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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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6화

신예린의 애교 섞인 말투와 표정은 보면 볼수록 사랑스러웠다.주시우의 목젖이 한 번 크게 움직였고 낮게 깔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나도 너한테 세뱃돈을 줬는데 왜 나한테는 답례가 없어?”그날 설날 밤, 주시우는 신예린한테 정말 큼직한 세뱃돈을 건넸었다.은혜를 입은 신예린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주시우의 다른 뺨에 조심스레 입을 맞췄다.말랑한 입술이 스치자 주시우의 가슴이 두근거렸다.신예린이 몸을 떼려 하자 주시우는 허리를 감싸며 그대로 붙잡았다.이마와 이마가 맞닿은 채, 주시우의 목소리는 묘하게 번져 있었다.“내가 준 세뱃돈은 네 친구 것보다 열 배는 많은데 고작 이걸로 끝낼 거야?”주시우의 낮은 목소리가 귀 끝을 간질이자 신예린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그럼... 교수님은 뭘 원하시는데요?”신예린의 말투에는 은근한 투정이 섞였다.“네가 생각해 봐.”주시우의 시선은 장난기 없이 신예린의 입술에 곧장 꽂혀 있었다.신예린응ㄴ 무슨 뜻인지 모를 리 없었다.주시우의 뜨거운 눈빛이 말보다 더 노골적이었으니까.하지만 신예린은 일부러 모른 척했다. 평소에는 기회조차 없는 장난을 칠 수 있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네?”신예린은 일부러 눈을 크게 뜨고 순진한 척 고개를 갸웃거리자 주시우는 웃음을 터뜨렸다.“날 놀리는 거야?”신예린은 억지로 장난스러운 톤을 흉내 냈다.“고객님,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는데요?”주시우의 눈동자가 짙어졌다.“그럼 내가 직접 받아낼 수밖에 없겠네.”말이 끝나자마자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덮었다.“앗, 교수님... 윽...”신예린이 대꾸할 틈도 없이 다시 막혀 버렸다.전해지는 전율에 신예린은 숨이 막히듯 정신이 아득해졌다.발끝까지 전해지는 저릿저릿한 감각 속에 신예린은 주시우의 옷자락을 꼭 움켜쥘 수밖에 없었다.몇 번이나 입을 맞췄으면서도 주시우가 다가올 때마다 신예린의 심장은 늘 미친 듯이 뛰었다.달콤하면서도 무섭도록 점점 빠져드는 느낌이었고 주시우도 마찬가지였다.신예린을 아무리 안아도, 아무리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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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7화

의도적으로 낮춘 목소리는 은근한 매력을 띠고 있었고 주시우의 눈가에 어린 웃음은 신예린을 사로잡는 그물처럼 점점 좁혀왔다.신예린의 심장은 두근두근 요동쳤고 달콤하면서도 부끄러운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와 그녀를 삼켜버릴 듯했다.“주 교수님, 계세요?”문 두드리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순간 정신이 번쩍 든 신예린은 반사적으로 주시우를 올려다봤다.주시우는 침착한 시선으로 신예린을 안심시키며 말했다.“뭘 그리 겁내. 우린 아무 짓도 안 했잖아.”‘아무 짓도 아니라고? 키스가 아무 짓도 아니야?’신예린은 속으로만 반박했지만 주시우는 그녀의 생각을 꿰뚫은 듯 다시 낮은 목소리를 더했다.“밖에 있는 사람들은 모를 테니까 괜찮아.”하지만 신예린의 눈에는 그의 입술이 바로 보였고 방금 물려서 생긴 상처가 선명했다.‘저걸 보면 모른다고 할 수 있나...’신예린이 반응하기도 전에 주시우는 이미 문을 열고 있었다.복도에는 다른 과목을 맡은 장선우 선생이 서 있었다. 그는 몇 번 두드려도 반응이 없어 돌아서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문이 열리자 뜻밖에도 주시우가 나타났다.“아, 주 교수님, 안 계신 줄 알았는데...”말을 멈춘 장선우의 시선이 주시우의 어깨 너머로 향했다. 연구실 안에 서 있는 여학생이 보였고 동글하게 불러온 배, 그리고 수줍게 인사하는 모습이 한눈에 안겨 왔다.순간 장선우는 짐작이 갔다.‘바로 소문 속 주 교수님의 어린 아내일 거야.’“장 선생님, 무슨 일이세요?”주시우의 목소리에 장선우는 정신을 차렸다.“아, 네. 우리를 회의에 부르시더군요. 군부에서 연락이 왔는데 주 교수님이 답이 없어서 제가 직접 모셔 오기로 했어요.”주시우는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죄송합니다. 조금 전에 바빠서 휴대폰을 못 봤습니다.”‘그게 무슨 바쁜 일이라고...’신예린의 얼굴이 순간 붉어졌고 이제 그녀가 이곳에 더 머무르는 것도 민망해졌다.“그럼 저는 먼저 가볼게요.”신예린은 주시우와 스치듯 지나 복도를 나섰고 장선우 옆을 지나며 조심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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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8화

오인화의 말이 끝나자 회의실 안은 금세 술렁였다.“정말 성사됐네요.”“대단한 일이네요. 존 헤일리 의대라니... 학생들이 바깥세상 경험할 좋은 기회일 겁니다.”“그동안 소식이 없어서 올해도 무산되는 줄 알았는데...”주시우 옆에 앉은 장선우가 팔꿈치로 그를 툭 건드리며 웃었다.“주 교수님, 거기가 모교라면서요? 학생들한테 직접 유학 경험을 들려주면 좋겠네요.”주시우는 가볍게 웃어 보였지만 눈빛에는 묘한 생각이 스쳤다.“잠깐만 조용히 해 주세요. 아직 말이 안 끝났습니다.”오인화의 목소리에 회의실은 다시 잠잠해졌다.“존 헤일리 의대가 어떤 곳인지는 다들 잘 아실 겁니다. 학생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죠. 배움에는 끝이 없으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학생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배우도록 길을 터 주는 겁니다. 학생들이 언젠가 사회에 보답할 수 있도록 말이죠.”“다만 입학 시기는 8월이지만 학생들은 두 달 전쯤 먼저 가서 환경에 적응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기회는 명액이 적습니다. 전교에서 단 여덟 명만 뽑습니다.”곧바로 한 교사가 탄식을 터뜨렸다.“여덟 명이라니... 두 반에서 한 명을 뽑는 거잖아요.”“어떻게 뽑죠? 다들 가겠다고 난리일 텐데요?”“선발 기준은 뭔가요?”여기저기서 질문이 쏟아졌고 오인화는 손을 들어 분위기를 눌렀다.“알겠습니다. 다들 궁금하시겠지만 일단 차분히 들어 주세요. 교환학생 지원 요건과 추천 양식은 곧 단체방에 공유하겠습니다. 각 반에서 우수한 학생 한 명씩만 추려 주시고 최종 선발은 학교 측에서 종합 평가 후 결정합니다. 마지막까지 선발되는 학생은 철저히 검증된 인재여야 하고 절대 우리 학교와 나라의 체면을 구기면 안 됩니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으니 서둘러 추천해 주시길 바랍니다.”회의가 끝나자 스무 명 남짓한 교사들이 삼삼오오 흩어져 나가면서도 교환학생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교환학생?”책을 보던 신예린이 고개를 들어 송지유를 바라봤다.“응, 오늘 우리 학생처 담당자들이 전부 회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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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9화

“내년이면 네 아이가 태어나 있을 텐데... 네가 어떻게 가겠니?”“...”신예린은 할 말을 잃었다. 내년 일은 너무 멀었고 변수도 많아 지금 당장은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됐어. 괜히 생각해 봐야 소용없어. 어차피 나랑 상관도 없고...”그 말에 신예린은 더는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런데 오후, 하교 시간이 가까워졌을 무렵 학생처 담당자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수업 끝나고 시간 있어? 내 사무실로 와.]신예린의 가슴이 순간 두근거렸고 무슨 일인지 짐작이 갔다.수업이 끝난 후, 신예린은 주시우에게 조금 늦는다고 메시지를 보낸 뒤 학생처 담당자의 사무실로 향했다.이번에 마주한 담당자의 표정은 평소와 달리 굳어 있었고 그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교환학생 이야기 들었지?”신예린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들었어요.”“너는 어떻게 생각해?”뜻밖의 질문에 신예린은 순간 어리둥절해졌다.“학교에서 각 반에서 한 명씩 추천하라고 했는데 우리 반에서 조건에 제일 잘 맞는 건 너야.”신예린은 고개를 저었다.“선생님, 저는 안 돼요. 출산 예정일이 그때라서요. 저 때문에 소중한 자리를 낭비하면 안 되죠.”그 말에 담당자는 내심 안도하며 숨을 돌렸다. 당연히 신예린이 갈 수 없는 사정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첫 번째 후보가 그녀라는 건 사실이었다. 다만 못 가게 된다는 말이 신예린의 입에서 직접 나와야 주시우에게도 설명이 될 터였다.“알았어. 그럼 다른 학생을 추천하마.”“네.”한편, 주시우는 차 안에서 연구팀에서 보내 온 자료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차 문 쪽에서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똑똑.”주시우가 얼굴을 들자 차 밖에 서 있는 신예린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주시우가 차 문을 열자 신예린이 올라탔다.“좀 더 늦게 올 줄 알았는데.”“얘기 금방 끝났어요. 교수님 오래 기다릴까 봐 서둘러 왔죠.”신예린은 안전벨트를 채우려다 잘 안 되자 주시우가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대신 채워 주었다.“난 괜찮아. 너라면 얼마나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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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0화

“아니에요.”신예린은 망설임도 없이 주시우의 말을 끊었다.그리고 주시우의 옆모습을 똑바로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교수님을 만난 건 제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에요.”주시우가 아니었다면 신예린도 자신이 이렇게 사랑받을 수 있다는 걸 알지 못했을 것이다.부당한 일을 당해도 늘 한 걸음 물러서기만 했던 자신에게 주시우는 무엇이 옳은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었고 세상에는 또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한 사람의 인식이 곧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신예린은 과거 내내 가족들의 시선과 인정만을 좇았고 그러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괴로움 속에 허우적거렸다.하지만 이제는 달랐다.가족의 관심 따위는 더 이상 중요한 게 아니었다.달라진 건 현실이 아니라 자신이었고 변한 건 바로 생각과 마음이었다.그리고 이 모든 변화를 이끈 건 다름 아닌 주시우였다.지금 이 순간, 신예린에게 주시우를 만난 것보다 더 큰 축복은 없었다.주시우의 입가에 미묘한 미소가 번졌다.“그럼 그 말은... 내게 고백하는 거라고 들어도 돼?”신예린은 숨김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전 그냥 사실을 말했을 뿐이에요.”그러나 신예린이 말한 이 사실이야말로 주시우를 즐겁게 했다.주시우는 운전대를 잡은 채 목소리를 낮췄다.“운전 중이 아니었다면 지금 바로 널 안고 입 맞췄을 거야.”그 말에 신예린의 얼굴은 금세 달아올랐고 심장이 터질 듯 뛰었고 그녀는 얼떨결에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집에 가서 하면... 되잖아요.”“뭐라고?”마침 옆에서 경적이 울렸기에 주시우는 신예린의 말을 놓쳤고 그녀는 황급히 손을 저었다.“아, 아무것도 아니에요.”주시우는 곁눈질로 신예린을 흘깃 보고는 더 묻지 않았다.집에 도착하자 신예린은 주시우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문이 닫히는 순간, 주시우의 뜨거운 시선이 그대로 신예린에게 꽂혔다.“왜... 왜 그렇게 보세요?”주시우의 눈빛을 마주한 신예린은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주시우는 한 발씩 다가왔고 신예린은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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