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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1화

이석훈은 신예린을 흘끗 쳐다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예린은 그걸 허락으로 받아들이고 도지윤이 있던 자리에 섰다.도지윤은 코를 훌쩍이며 옆으로 물러났다.신예린이 한 부위씩 침착하게 흡인하자 그녀가 경험이 적지 않은 게 확 느껴졌다. 첫 협업이었지만 둘 다 해야 할 일을 정확히 알았기에 출혈 부위는 곧 찾아냈고 지혈도 빠르게 끝났다.수술은 차질 없이 계속 진행됐고 그 후로도 자리 교대는 없었다.마침내 수술이 끝났고 신예린은 이석훈과 함께 환자를 푸시 침대에 싣고 엘리베이터까지 보냈다.둘 다 말 한마디 없었다. 사실 이 둘이 서로 웃으며 잡담이라도 했다면 그게 더 기적이었을 것이다.엘리베이터 안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중간에 간호사 한 명이 더 탔다. 그 간호사는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가 신예린에게 시선을 멈추더니, 다시 확인하듯 몇 번이나 쳐다봤다.신예린은 이상함을 눈치채고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간호사가 반가운 듯 말했다.“혹시 그때 그 의사 선생님 아니세요?”신예린은 잠시 의아해하다가 곧 이어지는 말에 무슨 상황인지 알았다.“열흘쯤 전에 대형 교통사고가 있었잖아요. 긴장성 기흉에다가 장기 손상까지 있던 그 환자를 저희가 같이 처리했던 거 기억하세요?”그제야 신예린도 떠올랐다. 그때는 워낙 상황이 급박해서 간호사의 얼굴까지 챙겨볼 틈이 없었는데, 상대는 여전히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신예린은 미소를 지었다.“이런 우연도 있네요.”“역시 우리 병원 의사셨군요! 어느 과세요?”“심장외과요.”“아, 어쩐지... 아니, 그런데 이상하네요. 사고 후에 제가 심장외과랑 일반외과까지 다 찾아봤는데 아무도 모르던데요?”“제가 이제 막 들어왔거든요.”“아, 그렇군요. 그날 정말 감사했어요. 선생님의 도움이 없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죠.”간호사는 계속 그날 이야기를 꺼냈고 엘리베이터 안은 금세 그녀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옆에 있던 이석훈은 그제야 신예린을 슬쩍 보았다. 그도 그 사고를 기억하고 있었다. 환자는 그 후 일반외과에 입원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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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2화

신예린은 웃으며 주시우를 바라봤고 입가에 아직 방금 먹은 파인애플번 부스러기가 붙어 있었다.“나만의 도라에몽이 되어 줘요. 내가 뭐 갖고 싶다고 하면 주머니에서 척 하고 꺼내주는 거 있잖아요.”“...”가슴을 쓸어내린 주시우가 그녀를 흘끗 보더니 결국 어이없다는 듯 웃고 말았다.신예린은 포기하지 않고 그의 팔을 흔들며 애교를 부렸다.“나만의 도라에몽이 되어 줄 거예요, 말 거예요?”“해, 해. 한다니까. 도라에몽도 하고 남편도 할게.”그녀를 바라보는 주시우의 눈빛에 애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만족스러운 답을 얻은 신예린은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다가 문득 말했다.“나 운전면허 따야겠어요.”“갑자기 웬 운전면허?”“전부터 따고 싶었는데 계속 해외에 있어서 미뤘던 거예요. 면허 따면 시우 씨가 매일 나를 데리러 안 와도 되잖아요.”“내가 데리러 오는 게 싫어?”“싫다뇨! 그런 거 아니고 당신이 힘들까 봐 그렇죠. 그리고 면허 있으면 편하잖아요. 나중에 아윤이랑 셋이 놀러 가면 운전도 번갈아 할 수 있고.”그 말에 주시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면허가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나으니까.“좋아. 네가 면허 따면 도라에몽 남편이 차 한 대 사 줄게.”“우와!”신예린의 두 눈이 번쩍 빛났다. 지금 주시우가 운전하고 있지 않았으면 그녀는 벌써 그에게 달려가 껴안았을 거다.“내 남편 최고! 내 남편이 제일 멋져요! 차 사주는 남편이 세상에서 제일 멋지죠!”그녀가 일부러 그러는 걸 알면서도 주시우는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그만, 그만. 네가 더 칭찬하면 내가 진짜 별이라도 따다 줄 것 같잖아.”신예린은 피식 웃었다.그녀는 뭐든 바로 실행하는 스타일답게 저녁을 먹고 나서 소파에 털썩 앉아 바로 휴대폰으로 근처의 학원들을 찾아보고 비교하기 시작했다.그때 서재에서 나온 주시우는 그녀가 미간을 찌푸린 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뭘 그렇게 보고 있어?”“어느 학원이 좋은지 보고 있는데 다 거기서 거기라 못 고르겠어요.”주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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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3화

“읍...”무슨 말을 하려던 신예린은 입이 막혀버렸다.이번 키스는 그 어떤 때보다도 거칠고 급했다. 심지어 이전엔 느껴본 적이 없는 소유욕까지 느껴졌다.하지만 신예린은 주시우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란 것을 잘 알았다. 그는 단 한 번도 그녀를 자기 소유물처럼 대하지 않았다.그러니 결론은 하나, 지금 그는 질투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휴대폰에서 여전히 소리가 흘러나왔다. 루카스가 비교적 조용한 곳으로 옮겨간 모양이었다.“예린.”그 순간 신예린을 입술을 짓누르는 힘이 조금 더 세졌다.“너 언제 다시 우리를 만나러 올 거야? 나... 우리가 같이 공부하던 때가 너무 그리워.”“앗...”이때 신예린이 갑자기 소리를 냈다. 그녀의 입술이 살짝 물렸는데 아프진 않았지만 경고의 뜻은 충분했다.주시우의 눈빛은 깊고도 어두웠고 그와 눈이 마주치자 신예린의 심장이 갑자기 요동쳤다.아니나 다를까, 루카스 쪽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예린, 괜찮아? 무슨 일 있어?”신예린의 얼굴은 뜨겁게 달아올랐고 결국 그녀는 주시우를 밀어내려 손을 뻗었다.하지만 주시우는 또다시 같은 수법으로 그녀의 입을 막았다. 이번에는 아예 입술을 벌리고 혀끝까지 들이밀었다.‘헉. 세상에.’신예린은 온몸에 힘이 풀려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다.게다가 예전에 그녀에게 고백까지 했던 루카스와 아직 통화 중인데... 그녀는 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려 귀까지 울렸다.“예린?”루카스는 여전히 휴대폰을 붙잡고 있었다.신예린은 힘없는 손으로 주시우를 툭툭 쳐 그만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이미 질투가 폭발한 그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주시우는 그녀를 단단히 품에 가둔 채 놓아주지 않았다.그 사이 몸이 부딪히면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고 신예린은 그 소리를 줄이려 애쓰며 숨을 삼켰다.수화기 너머의 루카스는 뭔가 이상한 기척을 눈치챈 듯했다.“너 지금...”그러나 그 물음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전화가 뚝 끊겼기 때문이다.“시... 읍... 시우 씨!”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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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4화

“그리고 내가 틀린 말 한 것도 아니잖아. 네가 지금 한가하진 않으니까.”주시우가 다시 가까이 다가왔고 두 사람의 입술이 닿는 순간, 뜨거운 불꽃이 튀는 듯했다.이제 더는 방해할 사람도 없으니 이 순간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의 입술과 이가 부딪히고 혀끝이 제멋대로 얽혔다.억눌렀던 감정과 욕망이 한꺼번에 터져 나와 두 사람의 체온이 점점 더 뜨거워졌다. 텅 빈 듯한 허기가 몸 안에서 차올라 마치 서로를 삼켜야만 할 것 같았다.“끝났어?”걸걸한 주시우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고 뜨거운 숨결까지 전부 느껴졌다.신예린은 그가 뭘 말하는지 당연히 알았다. 주시우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녀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고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다음 순간, 신예린의 몸이 번쩍 들렸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주시우의 목을 감싸안았다.주시우는 주저 없이 긴 다리를 움직이면서 방으로 향했고 곧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는 신예린은 몸이 뜨겁게 달아올라 머리를 그의 가슴에 묻었다.그녀의 숨결이 피부에 스치자 주시우의 몸도 굳어졌다.방에 들어서자마자 침대가 움푹 꺼졌고 두 사람은 다시 뜨겁게 키스했다. 실내 온도는 빠르게 올라갔고 신예린의 머리카락이 주시우의 가슴을 스치며 알 수 없는 전율이 온몸으로 번졌다. 그리고 그의 눈빛에 더는 감출 수 없는 열기가 번졌다.조명 아래서 매끄러운 피부가 은은하게 빛나고 숨 쉴 때마다 서로의 욕망이 얽혔다. 주시우는 신예린의 피부를 한 치도 남김없이 입맞췄고 신예린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신음했다.이 순간의 감정이 거미줄처럼 서로를 감아, 풀어낼 수도 끊어낼 수도 없었다. 조명 아래 겹친 두 사람의 그림자가 점점 더 뜨겁게 일렁거렸다....모든 게 끝났을 때, 둘 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신예린은 몸이 노곤해 움직이기도 싫었다. 주시우는 그녀를 품에 안고 있었고 이불 아래 두 사람은 한 올도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신예린의 피부는 뜨겁게 달아올랐고 연분홍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주시우의 깊은 눈빛이 그녀의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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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5화

다음 날 아침, 신예린이 눈을 떴을 때 옆에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아직 뻐근한 다리를 움직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진짜 무서운 남자네. 어젯밤에 그렇게 격렬하게 해놓고도 이렇게 일찍 일어나다니.’신예린이 그런 생각을 하며 몸을 일으키던 찰나, 문이 열리고 주시우가 들어왔다.그도 신예린이 벌써 깬 줄은 몰랐는지, 두 사람의 시선이 딱 마주쳤고 어젯밤 불타오르던 장면들이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정장까지 깔끔히 차려입고 멀쩡한 교수님 모드로 서 있는 지금의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둘 다 아무 말도 안 했다. 신예린은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라 눈을 피하다가 아예 다시 이불 덮고 자는 척이라도 하고 싶었다.결국 먼저 입을 연 건 주시우였고 그는 가볍게 헛기침하고 말했다.“출근 시간 다 됐어. 너 깨우러 왔어.”“아, 네...”신예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웅얼거리면서 대답했다.“그... 내가 아침 좀 차려놓을까?”“네, 네!”신예린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주시우는 아직 빨간 그녀의 얼굴을 힐끔 보더니 뭔가 생각난 듯 표정이 굳었다가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그가 나간 후에야 신예린은 한숨을 내쉬었다.‘아, 뭐야. 분위기 너무 이상한데? 분명 어젯밤엔 그렇게 가까웠으면서 지금은 왜 이렇게 어색하지? 뭐가 잘못된 거지?’하지만 시계를 보니 생각할 시간도 없었다.신예린은 급히 침대에서 내려왔다가 다리가 덜덜 떨리는 게 느껴졌다.“아, 진짜...”신예린은 이를 악물고 허벅지를 툭 쳤다.‘금방 시작했는데 벌써 이러면 어쩌자는 거야.’얼른 씻고 식탁으로 가니 주시우가 준비한 푸짐한 아침상이 차려져 있었다.두 사람은 눈이 마주쳤다가 동시에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식사하는 내내 둘은 대화하지 않았다.하지만 어젯밤엔 아주 딱 붙어 있었는데 말이다.신예린은 밥을 먹으며 쓸데없는 상상을 하다가 얼굴이 다시 붉어졌다. 그녀가 옆을 슬쩍 보자 주시우 역시 생각이 많아 보였다.숨 막히게 조용한 식사가 끝나갈 무렵, 주시우가 입을 열었다.“너도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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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6화

“맞아. 지난번에는 내가 직접 봤는데 주 교수님이 휴대폰 보면서 웃고 계시더라니까. 보통 사람이면 별일 아니지만 주 교수님이 그러니까 진짜 섬뜩하더라.”“그게 다야? 난 저번에 주 교수님 쇄골 쪽에 딱 하트 모양의 자국이 있는 걸 봤어. 교수님이 고개 숙여서 물건을 주우시지 않았으면 나도 평생 몰랐겠지.”학생들은 일제히 숨을 들이켰다.주시우라면 금욕, 성실함, 엄숙함 그 자체의 상징인데 그런 자국이 있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마치 삼장이 요괴에게 홀려간다는 전설을 눈앞에서 본 듯한 충격이었다.“사모님은 진짜 대단하시네.”학생들 입가에 장난기 어린 웃음이 번졌다.“근데 그래서 진짜 사모님이 돌아오신 게 맞는 거야? 아닌 거야?”“지난번에 손 교수님한테 물어봤는데 정작 대답은 안 하고 그냥 돈 던져주고 가버리시더라. 우리가 이긴 건지 진 건지 영문을 모르겠잖아.”“그러니까. 결국 마시는 건 밀크티였는데 사실 우리가 원하는 건 답이었지. 그날 주 교수님이랑 붙어 있던 여자가 정말 사모님인지 아닌지 말이야.”옆에서 한 학생이 비웃듯 끼어들었다.“에이, 말은 그렇게 해도 네가 가장 신나게 마셨잖아. 그것도 토핑 가장 많이 들어간 걸로.”“그러니까 진짜 궁금한 거야. 그 여자가 사모님 맞아? 아니면 대체 누구야? 혹시 주 교수님이 바람이라도 피우는 건가? 아니면 이미 사모님과 이혼하셨고 그분이 새 연인인가?”젊은 학생들의 상상은 끝없이 뻗어나갔다. 며칠째 답을 알 수 없으니 마음속이 들끓었고 마치 작은 개미들이 쉴 새 없이 그들의 마음을 갉아먹는 것처럼 불편했다.“그냥 직접 물어보면 되잖아.”“네가 물어볼래? 괜히 그런 얘기 꺼냈다가 논문 하나 내놓으라고 하시면 어쩌려고.”그 말에 모두 소스라치듯 몸을 떨며 고개를 저었다.마침 그때 손호명이 실험실로 들어서자 학생들은 일제히 흩어져 각자 일에 몰두하는 척했다.손호명은 그들 하나하나를 훑어본 뒤 시선을 거두었지만 방금 나눈 대화를 모를 리 없었다.사실 손호명이 굳이 입을 닫은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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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7화

“엄마, 난 겁쟁이가 아니었어.”손호명의 말이 떨어지자 방 안은 순간 숨 막히는 듯한 정적에 휩싸였다.눈을 질끈 감은 손호명은 주시우가 당장이라도 번개처럼 화를 내며 자신을 내쫓을 거라 생각했다. 혹시 정말 쫓겨난다면 밖에 대기 중인 학생들 앞에서 망신당하지 않으려면 어떤 자세로 나가야 덜 우스꽝스러울까까지 고민했다.하나, 둘, 셋...시간이 흘러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의아해진 손호명은 서서히 눈을 떴다.그 순간, 늘 침착하고 지적인 주시우가 드물게도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제가 바람을 피웠다고요?”‘아직도 모른 척하는 거예요?’손호명은 화가 치밀었다.“그날 1층에서 본 여자가 사모님이 아니라는 건 본인 입으로 말씀하셨잖습니까. 부인도 아닌데 그렇게 끌어안고, 나란히 붙어 다니고, 마치 세상에 알리고 싶다는 듯 행동하시고... 주 교수님, 우리 같은 사람은 학생들 앞에서 본이 되어야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추잡한 짓을 하실 수 있습니까!”‘추잡하다’, ‘더럽다’는 말이 그대로 주시우의 머리 위에 억지로 씌워졌다.흥분한 손호명은 잠시 코끝을 훌쩍이며 억울하다는 듯 덧붙였다.“주 교수님이 어떤 분인지, 학생들이 주 교수님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십니까? 저도 그래서 일부러 아무 말 안 하고, 오히려 입을 막으려고 제 돈을 들여가며 애들한테 밀크티 사줬습니다. 괜히 교수님 이미지 망가질까 봐요. 제 진심이 이 정도인데 교수님도 제발 이제라도 그만두시고 돌아오셔야 합니다.”간절하게 말하며 손호명은 주시우를 똑바로 바라봤다.“아직 아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지금이라도 멈추면 됩니다. 주 교수님, 이제라도 모든 걸 바로잡으세요.”“...”하지만 주시우는 화를 내지 않았고 오히려 잠시 곰곰이 생각하듯 눈빛을 가라앉혔다.‘도대체 내가 언제 오해를 살 만한 짓을 했다는 거지? 여자? 끌어안고? 나란히 걸었다고?’손호명이 흘린 말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던 주시우는 문득 예전에도 그가 비슷한 질문을 건넸던 기억을 떠올렸다. 모든 상황을 정리하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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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8화

손호명의 얼굴에 금이 가듯 일그러진 표정이 떠올랐다.‘끝났어... 내가 방금 주 교수님을 욕했잖아. 존경할 수 없다고까지 했지. 더럽고 추잡하다고도 했고... 심지어는 제발 그만두고 돌아오라고 설교까지 했잖아. 칼이 지금 내 목덜미에 매달려 있는 기분이야.’다리에 힘이 풀려 벌벌 떨며 손호명은 겁에 질린 눈으로 주시우를 바라봤다.“주, 주 교수님... 죄송합니다. 제가 오해했어요. 아까는 절대 그런 말씀 드릴 게 아니었는데...”손호명은 스스로 따귀를 때리고 싶을 만큼 후회가 몰려왔지만 주시우의 목소리는 의외로 온화했다.“괜찮습니다. 다만 손 교수님의 말 중 하나는 맞아요. 선생이라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을 단속하며 본이 되어야 한다는 점 말이죠.”그 순간 손호명의 마음속에서 주시우를 향한 존경은 또다시 몇 단계나 높아졌다.손호명이 울먹이며 감사한 표정을 짓자 주시우는 손가락으로 앞에 놓인 실험 도구들을 가리켰다.“더 할 말 있습니까? 없으면 저는 다시 일해야 해서요.”손호명은 연거푸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없습니다. 없습니다. 주 교수님은 어서 일 보세요.”급히 문 쪽으로 향하던 손호명은 손잡이를 잡자마자 뭔가 떠오른 듯 문을 벌컥 열고 바깥으로 뛰쳐나갔다.잠시 후, 문을 사이에 두고도 손호명의 고함이 또렷이 들려왔다.“지난번에 여자가 사모님이 아니라고 우기던 사람 누구야! 어서 내 밀크티값 내놔!”“뭐라고요, 손 교수님? 그럼 진짜 사모님 맞다는 말씀이에요?”“정말 돌아오신 거예요?”“어서 내 돈부터 갚아라!”주시우는 무력하게 고개를 저었고 방금 손호명이 한 말을 떠올린 그는 천천히 벽 쪽으로 걸어가 거울 앞에 섰다.‘목에 자국 하나 달고 학생들 앞에 서는 건... 확실히 교사로서 체면이 깎이는 일이지.’거울 속 자신의 목덜미를 세심히 살펴보던 주시우는 붉은 흔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며칠 전, 이석훈과 함께 처음으로 수술에 참여한 뒤로부터 신예린은 마치 본격적으로 수술대에 오를 자격을 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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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9화

신예린은 수술 환자의 뒤처리를 끝내고 내려와 사무실에 들어왔을 때 배가 고파 사과 하나를 꺼내 껍질을 벗기려 했다. 그러나 뜻밖에 과도에 손가락이 베이고 말았다.흐르는 물에 한참을 씻은 뒤 서랍을 뒤적이며 밴드를 찾았다.“예린 씨, 뭐 찾으세요?”같은 사무실의 동료가 물었다.“손을 살짝 베였어요. 밴드 좀 찾으려고요.”그때 컴퓨터로 차트를 정리하던 이석훈의 손이 멈췄다.“찾았어요? 없으면 간호사실에 있을 겁니다. 급하면 거즈라도 감으세요. 병원은 세균이 많으니 감염 조심하시고요.”“네. 조금만 더 찾아볼게요.”신예린은 머리까지 서랍 속을 파묻다시피 했지만 결국 밴드를 찾지 못했다. 포기하고 간호사에게 부탁하려는 순간, 고개를 들자 이석훈이 어느새 곁에 서 있었고 그의 손에는 밴드 몇 장이 들려 있었다.신예린은 얼떨결에 멈춰 섰다.“이거라도 쓰세요.”이석훈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아... 네. 감사합니다. 석훈 씨.”이석훈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돌아서서 자리에 앉았다. 신예린은 손에 들린 밴드를 내려다보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이석훈 씨가 수술 뒷정리를 맡길 때도 놀랐는데 이제는 밴드까지 챙겨주네. 혹시 나에 대한 편견이 조금은 옅어진 걸까? 그렇다면 앞으로 수술에 설 기회도 더 많아질지도 몰라.’신예린은 상처를 단단히 붙이고 사과를 베어 먹으며 여러 생각에 잠겼지만 정작 옆자리 동료들이 주고받는 은근한 시선과 수군거림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퇴근 후, 신예린은 주시우의 차에 올라타 안전벨트를 맸다. 주시우의 시선이 곧장 그녀의 손끝으로 향했다.“손가락은 왜 그래?”주시우는 눈빛을 좁히며 손을 잡아당겼다.신예린의 손가락에는 밴드가 붙어 있었고 안쪽으로는 붉게 배어 나온 피가 살짝 비쳤다. 주시우는 순간 차가운 기운이 스쳤다. 혹여 수술 중 환자의 체액이 묻은 기구에 베인 건 아닌지 걱정이 엄습했다.“오후에 사과 깎다가 실수로 그랬어요.”신예린이 서둘러 설명했고 그제야 주시우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신예린은 평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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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0화

저녁을 마친 뒤 주시우는 약상자를 꺼내 와서 신예린을 소파에 앉히고는 무릎을 꿇고 앉아 상처를 소독해 주었다.밴드를 뜯어내자 벌겋게 부어오른 상처와 함께 마른 혈흔이 드러났다.주시우는 면봉에 소독약을 묻혀 살살 문지르며 물었다.“아파?”신예린은 일부러 서럽게 목소리를 깔았다.“아파요.”주시우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자 원래 웃고 있던 신예린은 그의 시선과 마주치자 순식간에 울상으로 표정을 바꿨다.진짜 아픈 게 아니라는 걸 알아차린 주시우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전부터 궁금했어. 우리 딸이 그렇게 장난꾸러기인 게 도대체 누구를 닮은 건지. 5년 전에 네 성격은 전혀 안 그랬잖아. 이제 보니 그땐 네가 아직 자신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았던 거네.”신예린은 주저하지 않고 대꾸했다.“당신이 저를 그렇게 만든 거죠.”주시우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그렇다면 그건 내 행운이네.”그때 신예린은 주시우가 꺼내 든 밴드가 핑크색 헬로키티 무늬라는 걸 보고 물었다.“이건 아윤이가 고른 거죠?”“맞아. 아윤이도 분홍색을 좋아하거든.”“하나만 줘요.”신예린이 손바닥을 내밀었다.“왜?”그렇게 물으면서도 주시우는 몇 장을 집어 그녀 손에 올려주었다.“당신이 저한테 선물했던 청진기에 붙일 거예요.”그 말에 주시우가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신예린은 주시우의 목을 팔로 감싸 안으며 눈웃음을 지었다.“주시우 교수님, 당신이 준 청진기는 지금까지 잘 쓰고 있어요.”“난 벌써 고장 났을 줄 알았는데...”“말도 안 돼요. 늘 조심히 아끼면서 써왔어요.”주시우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청진기가 나 대신 네 곁을 지켜줬구나. 그것도 괜찮네.”“당신이 내게 해준 말은... 늘 마음에 새겨두고 있었어요. 가끔 치료하고, 자주 도와주고, 언제나 위로하라...”두 사람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숨결이 섞일 만큼 닿아 있었다.신예린은 진지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저는 당신 말대로, 좋은 의사가 되려고 노력했어요.”그 말에 주시우의 눈빛이 깊게 흔들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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