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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1화

하루 종일 일하다가 눈이 빠질 지경이었는데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소지훈은 해외에 있는 줄 알았던 신예린을 본 것 같았다.소지훈은 전력 질주하듯 엘리베이터 쪽으로 뛰어갔지만 문은 이미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그는 다시 사무실로 뛰어갔고 그 모습을 본 호성진이 능글맞게 물었다.“어때요, 이정현 선생님보다 예뻐요?”소지훈은 대답도 안 하고 손부터 내밀었다.“아까 그 회진 기록지 줘 봐.”“왜요?”답답한 마음에 책상 위를 뒤적거리던 소지훈은 결국 그 종이를 찾아냈고 회진 의사란에 적힌 서명을 보는 순간 온몸이 굳어버렸다.‘진짜네.’정말 그녀였다.그렇다면 신예린은 이미 귀국한 지 꽤 됐고 심지어 벌써 이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중요한 사실을 주시우가 단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는 걸 보아 아마 주시우도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소지훈은 순간 친형제 같은 친구 주시우가 안쓰러워 울컥했다.소설에서 항상 이렇게 나오지 않나. 복수를 다짐한 여 주인공이 귀국하자마자 옛사랑부터 죽이는 시나리오 말이다.주시우는 아내를 해외로 보내더니 그녀의 첫 표적이 되었다.소지훈은 주시우에게 외국에 잘생긴 남자들이 많으니까 긴장 좀 하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끝까지 안 믿더니 결국 이 사달이 났다.소지훈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이런 잔인한 소식을 어떻게 전해야 하나...’그는 자리로 돌아와 한참 고민한 끝에 주시우에게 메시지를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마침 몇 분 전에 주시우가 답장을 보내왔다.[방금 차 몰고 있었어. 오늘은 시간이 안 돼. 다음에 보자.]소지훈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또 학교에서 야근하겠지, 뭐. 곧 아내가 사라질 판인데 무슨 야근이야, 야근은.’그는 마음을 다잡고 메시지를 보냈다.[오늘 점심에 뭐 먹었어?]주시우는 뜬금없는 그 질문에 답했다.[갈비, 단호박, 시금치.][시금치는 무슨 색이었어?][빨간색.]큰일났다. 아내에게 버림받은 것도 모자라 빨간색과 초록색을 구분하는 것도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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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2화

신예린은 참지 못하고 주시우에게 달려가 그를 와락 안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이 꽃은 나 주려고 산 거예요?”주시우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눈웃음을 지었다.“알면서 왜 물어?”“왜 갑자기 꽃을 사다 줘요?”신예린이 애교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네가 좋아하는 일을 찾은 거 축하해 주려고. 네가 이 해바라기처럼 네 삶을 사랑하고 그 속에서 스스로 즐거움과 가치를 찾았으면 해서.”신예린은 꽃을 받은 것보다도 그가 해준 말이 더 좋았다.신예린은 잠시 꽃을 바라보다가 그제야 두 손으로 그것을 받아 들고 주시우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고마워요.”“마음에 들면 됐어.”주시우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타. 너 한동안 닭 한 마리 못 먹었지? 오늘은 외식하자.”먹는 얘기가 나오자 신예린의 눈이 반짝였다.“좋아요, 좋아요!”그녀가 외국에서 제일 힘들었던 건 역시 먹는 거였다. 결혼하고 나서 입맛이 완전히 국내 음식에 길들어 버렸는데 외국 식당은 비싸기만 하고 맛도 별로였다.주시우는 그런 그녀의 표정을 보며 코를 살짝 집었다.“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이래.”신예린은 장난스럽게 혀를 쏙 내밀었다.둘은 오랜 시간 떨어져 있던 게 무색할 만큼 자연스러웠고 신예린의 이런 애교 섞인 모습은 주시우의 마음을 한없이 부드럽게 만들었다.그는 조수석 문을 열어 그녀를 태웠고 신예린은 앉자마자 품에 안은 꽃을 자세히 살펴보다가 그 안에 엽서가 꽂혀 있는 걸 발견했다.주시우가 아직 차에 타기 전이라 그녀는 재빨리 꺼내서 읽어 보았다.[인생을 마음껏 즐기고 마음껏 웃기를.]딱 봐도 주시우의 글씨였다. 꽃가게에 이미 프린트된 카드도 있었겠지만 이건 분명히 그가 직접 쓴 글씨였다.5년이 흘렀는데도 주시우는 여전히 그녀를 자기 소유물로 대하지 않고 한 명의 독립적인 여성으로서 자기만의 빛을 발하길 바랐다.결혼 후 아내를 가둬 놓고 시들게 만드는 남자가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주시우는 그런 남자들과 달랐고 진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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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3화

차 앞에 서 있는 소지훈은 두 손을 허리에 올리고 눈을 부릅떴다. 꼭 따지러 온 사람 같았다.신예린과 주시우는 눈을 마주쳤다.‘큰일 났네. 방금 우리가 키스한 거, 분명히 다 봤을 거야.’신예린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지만 주시우는 의외로 침착했다.“내려서 얘기 좀 하고 올게.”신예린은 얼른 마음을 가다듬고 주시우가 차에서 내리는 걸 보자 급히 따라 내렸다.소지훈은 주시우를 보자마자 씩씩대며 달려왔고 말 꺼낼 틈도 주지 않고 바로 따졌다.“우리 친구 맞아? 나 아윤이의 삼촌이 맞냐고? 언제는 우리가 같은 배를 탔다고 하더니, 애 엄마 돌아온 건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왜!”그 기세는 마치 원수 남편에게 따지는 아내 같았다. 차에서 막 내리던 신예린은 순간 ‘내가 돌아오면 안 되는 거였나’ 하는 착각까지 들었다. 자기가 복귀한 것보다 이 사람들의 평화로운 일상이 더 소중한가 싶어서.소지훈은 그렇게 성을 내며 따지다가 신예린이 차에서 내리자 순식간에 얼굴에 환한 미소를 걸었다.“오, 우리 제수씨 아니십니까? 오랜만이네요!”‘이 익숙한 호칭...’신예린은 그가 무슨 장면을 봤는지 알 수 없지만 굳이 말하지 않으니 그냥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그녀는 억지로 웃으며 대답했다.“지훈 씨, 진짜 오랜만이에요. 시우 씨 탓하지 마세요. 제가 며칠 전에 몰래 돌아와서 시우 씨도 제가 돌아온 거 전혀 몰랐어요.”“아, 그러면 서프라이즈였군요?”소지훈은 웃으며 대답했지만 곁눈질로 주시우를 흘겨봤다. 아직도 화가 안 풀린 모양이었다.신예린은 재빨리 분위기를 바꾸려 했다.“소지훈 씨, 우리 지금 닭 한 마리 먹으러 가는 길인데, 같이 갈래요?”소지훈이 화가 난 상태라 거절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는 단 1초도 망설이지 않았다.“닭 한 마리요? 좋죠.”그러고는 뒷좌석 문을 당겨 열고 냉큼 타 버렸다.“...”“...”신예린과 주시우는 다시 눈을 마주쳤고 똑같은 생각을 했다.‘그냥 밥 얻어먹으러 온 거 아냐?’차에 타자마자 소지훈은 신예린이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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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4화

신예린은 진지하게 말했다.“저는 심장외과 쪽에 더 관심 있어요.”그 말을 들은 소지훈은 마치 백 포인트짜리 데미지를 맞은 사람처럼 가슴을 부여잡았다.“심장외과에 대체 누가 있길래 거기에 관심 있는 거예요?”소지훈이 이런 성격이라는 걸 알면서도 신예린은 당황스러웠다.그때 주시우가 닭 다리 하나를 집어 그녀의 그릇에 놓아주며 말했다.“내가 뭐랬어, 쟤 원래 저래.”소지훈이 서늘한 눈빛으로 그를 흘겼다.“나 다 들려. 내가 진중하지 않으면 네가 아윤이를 나한테 맡겼겠냐? 넌 그냥 질투하는 거야. 아윤이가 너보다 내가 더 잘생겼다고 말해서.”“...”주시우는 속으로 중얼거렸다.‘아윤이는 아직 나이가 어려서 제대로 된 미적 기준이 형성되지 않았을 뿐이야.’소지훈은 다시 신예린에게 말했다.“제수씨, 아윤이가 그러더라고요. 나중에 남편 고를 때 제 외모를 기준으로 고르겠다고. 저처럼 잘생기고 유머 있고 재능 있고 속 깊은 사람이 좋대요.”신예린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의 그릇에 있던 닭 다리가 사라졌다.“...”주시우가 그것을 다시 자기 그릇으로 가져간 거였다.‘두 아빠의 유치한 승부욕이라니...’신예린은 급히 덧붙였다.“그렇지만 제 남편도 꽤 괜찮죠.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까요. 전 제 남편 같은 스타일이 좋아요.”그러자 사라졌던 닭 다리가 다시 그녀의 그릇으로 돌아왔다.맞은편에 앉은 소지훈은 또다시 이유 없이 이 커플에 상처를 받은 기분이었다.‘이 사람아, 얼른 거울 좀 봐. 입꼬리가 구름 위까지 올라가겠어.’신예린은 옆에 있던 찻잔을 들고 소지훈을 바라보면서 말했다.“지훈 씨, 그때 아윤이 목숨 살려주신 거 정말 감사해요. 그리고 그동안 아윤이를 챙겨주신 것도요. 술 대신 차로 감사 인사 드릴게요.”소지훈은 그녀가 이렇게 정중하게 말할 줄은 몰랐던지 황급히 찻잔을 들었다.“에이, 그런 말은 왜 해요. 전 정말 아윤이를 제 친딸처럼 생각했어요. 제가 챙겨줬다기보다 저도 많이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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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5화

조금 전에 차 안에서 신예린은 더 이상 그 문제를 물고 늘어지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사실 아까는 소지훈이 있어서 참은 거였고 속으로는 그것을 계속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소지훈이 가자 그녀는 다시 그 이야기를 꺼냈다.주시우는 신예린이 옆으로 고개를 돌리고 입술을 삐죽거리는 걸 보고도 일부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침묵하자 신예린은 조급해져서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빨리 말해 봐요.”순간 주시우가 허를 찌르듯 그녀의 입술에 살짝 입을 맞췄다. 기습 공격을 당한 신예린은 눈을 크게 뜨더니 일부러 화난 척하며 말했다.“이렇게 기습하기 있어요? 안 본 사이에 시우 씨 많이 나빠졌네요.”주시우는 미소를 지었다가 표정이 조금 진지해졌다.“난 다른 여자를 꼬신 적도 없고 나한테 마음이 있는 여자도 없어. 지훈이가 말한 사람은 우리 학교의 어느 여자 교수인데 전에 아윤이를 데리고 지훈이랑 같이 밥 먹으러 갔을 때 그분을 만났었거든. 그런데 지훈이가 괜히 그 교수가 나를 좋아한다고 우기는 거야.”신예린은 고개를 갸웃했다.“그 교수님은 진짜로 시우 씨를 좋아해요?”주시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아마도.”그러자 신예린이 바로 코웃음을 쳤고 주시우는 그녀의 귓불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다른 사람이 날 좋아하는 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그러고는 조금 더 몸을 기울여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너도 알잖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너라는 거.”그 말에 신예린은 꿀을 먹은 듯 마음이 달콤해졌고 억지로 지었던 새침한 표정이 무너질 것 같았다.“여자 교수라니, 능력자네요.”신예린은 일부러 시큰둥하게 말했다.“응, 능력자이긴 하지.”주시우는 그녀의 귀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속삭였다.“그런데 내 아내도 엄청 능력 있거든.”그 여자 교수를 깎아내려서 신예린을 달래는 대신, 자기 아내를 칭찬하는 게 주시우다웠다. 그는 늘 이런 식으로 품위가 있었다.귀에 그의 숨결이 닿자 간질간질해 신예린은 움찔하더니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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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6화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신예린이 주시우를 꼭 안아버렸다. 그녀는 턱을 그의 가슴팍에 대고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그를 똑바로 올려다봤다.그 눈빛에 주시우는 거의 항복 직전까지 갔다.“나랑 루카스는 그냥 평범한 동창이자 친구 사이예요. 아참, 그런데 걔가 예전에 나한테 고백하긴 했어요.”그 순간 주시우의 몸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난 바로 남편 있다고 말했어요. 세상에서 제일 멋진 남자라고, 내 눈에는 그 누구도 비교 안 된다고. 내가 제일 사랑하는 건 우리 남편이라고요.”그녀는 달콤한 사탕을 입안에 물고 천천히 녹여 먹듯 부드럽게 속삭였다. 말끝마다 꿀이 뚝뚝 떨어져 주시우의 심장을 간질거렸다.사실 주시우는 앤드루에게서 루카스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앤드루는 루카스가 신예린과 나이도 비슷하고 잘생긴 유학생이라고 했다. 심지어 루카스는 다른 학생들 앞에서 신예린은 자신의 뮤즈이고 그녀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언어를 배우겠다고 했다고 한다.그 얘길 들었을 때 주시우는 아무렇지 않은 척 넘어갔지만 그의 마음속에서 알 수 없는 불안이 꿈틀거렸다.그 불안은 신예린이 돌아온 후에야 서서히 사라졌고 지금 그녀가 이렇게 그의 품에 안긴 채 애교 섞인 목소리로 사랑을 확인시켜 주자 남아 있던 불안까지 말끔히 씻겨 내려갔다.주시우는 미소를 지으며 신예린의 허리를 더 꽉 안았고 그녀의 귀에 바싹 대고 속삭였다.“거짓말이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신예린은 피식 웃었다....“신 선생님, 13호 병실의 환자분이 찾으시네요. 한 번 가주실래요?”간호사 오혜진이 신예린에게 말했다.신예린은 다른 병실에서 나오던 길이었는데 고개를 끄덕이고 13호 병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오혜진은 그녀의 반듯한 뒷모습을 보며 옆에 있던 황이슬에게 말했다.“새로 온 신 선생님 괜찮지 않아? 환자한테도 엄청 친절하고. 13호 병실의 환자는 우리 과에 꽤 오래 입원했는데 까다롭기로 유명하잖아. 툭 하면 의사를 찾아서 다른 선생님들은 다 피하거든. 그런데 신 선생님만 매번 친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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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7화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흰 가운을 입고 청진기를 목에 걸친 신예린이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게 보였다. 그녀의 눈동자가 매섭게 빛났다.“여자가 잘하는 걸 인정하는 게 그렇게 어렵습니까?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의 성공을 함부로 의심한다면, 저도 똑같이 생각해도 되겠네요. 이석훈 선생님이 이 병원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도 뒤에서 무슨 더러운 짓을 한 게 아니냐고요.”간호사 스테이션에 있는 두 간호사는 동시에 숨을 들이켰다.‘와... 저건 목숨 걸고 하는 소리 아니야?’신참 의사가 감히 이석훈에게 이런 말을 하다니, 이정현도 그를 못 말리는데 말이다. 이제 진짜 큰일 났다.아니나 다를까, 이석훈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이석훈 선생님 같은 사람들 때문에 여자들이 직장에서 더 힘든 겁니다. 여자를 깎아내려야만 자신의 존재감이 느껴지나요? 여자가 성공한다고 남자가 추락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남자들의 어깨를 밟고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세상은 이렇게 넓은데 다 같이 잘되면 안 되나요?”신예린이 내뱉는 단어 하나하나가 두 간호사의 귀를 울렸고 그 말이 가슴속까지 파고들어 그들의 마음을 뜨겁게 달궜다. 마치 누군가가 대신 그들의 속마음을 시원하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세상에는 이석훈 같은 사람들, 아니 그보다 더 심한 사람들이 많았다. 이석훈처럼 늘 자신이 여자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여자들이 성공하기가 더 힘든 것이다.이석훈의 표정은 더 이상 볼만한 꼴이 아니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게 깔렸고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가 멀찍이 서 있는 신예린을 노려보는데 꼭 그녀를 잡아먹을 것 같았다.“뭘 안다고 떠들어요? 신예린 씨가 무슨 자격으로 훌륭한 여자들을 대변하냐고요. 학교 갓 졸업한 풋내기 주제에, 감히 나한테 훈계할 자격이 있어요?”그 말은 오히려 신예린의 싸움 본능을 자극했다.그렇다. 결국 높은 자리에 올라야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다.“이석훈 선생님.”갑자기 사무실에서 한 의사가 나와서 그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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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8화

그런데 밥을 먹다 보니 뭔가 이상했다. 맞은편 여자가 계속 웃으면서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이다. 처음 보는 사람이 이렇게 빤히 웃고 있으면 괜히 등골이 오싹해진다.신예린은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저기... 혹시 저한테 볼일 있으세요?”‘설마 내 그릇에 있는 닭 다리를 노리는 건 아니겠지...’맞은편 여자의 웃음이 더 깊어졌다.“고마워요.”“네?”신예린은 속으로 의아해했다. 닭 다리를 준다고 한 적도 없는데 벌써 감사 인사라니.“오늘 이석훈 선생님한테 한 방 먹인 거 들었어요. 저 대신 속 시원히 말해줘서 고마워요.”신예린은 그제야 이 여자가 누군지 알았다.“아, 이정현 선생님이셨군요! 출장 가신 줄 알았는데요?”왠지 낯이 익더라니, 그녀는 과 내 의사 사진 게시판에서 본 적이 있었다. 다만 그 사진은 몇 년 전 거라 긴 머리 시절의 이정현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방금 막 돌아왔어요. 점심시간 딱 맞춰서.”이정현이 손을 내밀었다.“정식으로 소개할게요. 저는 이정현입니다. 조금 늦었지만 같은 심장외과 식구로서 환영해요.”신예린은 웃으며 그 손을 잡았다.“안녕하세요. 저는 신예린이에요.”이정현이 요구르트 하나를 꺼내 그녀 앞으로 밀었다.“이거 마셔요. 오늘 저를 대변해 준 게 고마워서 주는 선물이에요.”신예린은 쑥스러워하면서 웃었다.“사실 대변이라기보단... 그냥 여성 전체를 대신해서 말한 거죠.”“이석훈 그 사람 원래 그래요. 제가 몇 년 동안 같이 일했는데 예전엔 그래도 몇 마디 받아쳤지만 요즘은 말 섞기도 싫어서 그냥 무시해요. 아마 그래서 아직 혼자 사는 걸 거예요. 누가 그런 사람이랑 결혼하겠어요. 미래에 아내 될 사람이 불쌍하네요.”그 말에 신예린은 웃음을 터뜨렸다.이정현은 그녀를 보며 말을 이었다.“사실 아까 그 자리에서 신예린 씨가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을 거예요. 신예린 씨는 이제 막 왔잖아요. 어쨌든 이석훈 선생님은 선배고 신예린 씨는 이석훈 선생님한테서 배워야 하니까요. 그런데 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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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9화

“이석훈 선생님, 방금 황 선생님한테서 전화 오셨어요. 오던 길에 교통사고가 나서 지금 응급실에 계신다고, 오늘 못 나오신대요.”간호사가 간호사 스테이션에서 전화를 받자마자 급히 사무실로 뛰어 들어와 말했다.“잠시 뒤에 수술 있죠? 황 선생님이 오늘 보조로 들어가기로 했는데, 이러면 수술은 어떻게 하죠?”다른 의사가 서류를 넘기며 걱정스럽게 물었다.이석훈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다른 의사들을 둘러봤다.“혹시 이따가 시간 되는 사람 있어요? 황 선생님 대신 들어갈 수 있는 사람 없어요?”“저도 오늘 수술 있어요.”“저는 오늘 유 선생님의 수술을 도와야 해요.”“이 시간에 누가 비겠어요. 안 되면 부당직을 부르는 수밖에 없죠.”“부당직은 이미 불려 갔어요. 과장님이 심장이식 수술 들어가셨는데 인력이 모자라서 다 데려가셨잖아요.”사무실 안에서 말들이 오갔고 다들 자기 차트를 정리하면서 한마디씩 거들었다.그때, 조용히 앉아 있던 신예린이 벌떡 일어섰다.“제가 들어갈게요.”바로 한 의사가 반색했다.“그래요, 신 선생님이 있잖아요. 마침 잘됐네요.”하지만 이석훈은 신예린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한 바퀴 훑어보다가 시선을 다른 곳에 멈췄다.“도지윤 선생님.”“네?”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여자 의사는 이름이 불리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오늘 수술에 같이 들어가요.”“저... 저 차트가 아직...”도지윤은 싫은 티를 팍팍 냈다.자기가 맡은 것도 아닌 수술에 들어가면 차트는 누가 써 준단 말인가. 이러면 수술 끝나고 야근할 게 뻔하다.이석훈은 짜증이 묻어나는 말투로 그녀의 말을 잘랐다.“차트가 더 중요해요, 수술이 더 중요해요? 빨리 준비해요. 시간 없어요.”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무실을 나가버렸다. 신예린은 완전히 무시당했다.결국 도지윤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뒤따라 나갔고 사무실의 분위기가 미묘해졌다.신예린과 이석훈 사이가 어떤지 다들 알고 있었고 이석훈이 대놓고 그녀를 외면한 것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이석훈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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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0화

“제가 이석훈 선생님을 뛰어넘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해보면 알겠죠. 다만 전제 조건이 있어요. 저한테 배울 기회를 주셔야죠.”이석훈은 마치 모든 게 이해됐다는 듯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왜 쓸데없는 말이 이렇게 많나 했더니, 결국 원하는 게 그거였어요?”신예린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한 번 걸어보실래요? 그렇게 본인 실력에 자신 있다면서요. 제자한테 기술 가르쳐 준다고 해서 스승이 굶어 죽기라도 합니까?”이석훈의 시선이 그녀에게 꽂혔다. 지금 이 여자가 던진 말에 그가 말려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그는 예전에도 후배들을 가르쳐 본 적이 있었고 본인의 성격이 좋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석훈의 말 한마디에 울어버린 여자 의사도 있었고 울면서 과장에게 달려가 하소연한 사람도 있었다.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그와 눈을 마주치며 조건을 내거는 사람은 처음이었다.이석훈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오늘 수술에 보조로 들어와요.”신예린은 기다렸다는 듯 환하게 웃었다.“네. 알겠습니다.”이석훈은 결국 굳은 표정으로 수술실에 들어갔다.신예린은 손을 씻으며 콧노래까지 불렀고 기분이 좋은 게 티가 났다. 이석훈이 받아줄 거라는 건 그녀의 계산 안에 있었다. 그는 자존심이 강하고 누군가가 도발하는 걸 못 참는 사람이니까.신예린은 지금은 무조건 배우는 게 최우선이라는 걸 알았다. 이석훈이 아무리 꼴 보기 싫어도 결국 그의 곁에 붙어 있어야 기술을 배울 수 있다.‘성격 더러운 거야 참으면 되지. 나랑 결혼할 사람도 아닌데.’수술실 문이 열리자 환자는 이미 수술대에 누워 있었고 간호사들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신예린이 들어가자 이석훈은 고개도 들지 않았다. 그러나 도지윤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고 마스크 뒤로 입술을 삐죽거렸다.‘아니, 내가 있는데 왜 또 부른 거야? 이따가 수술 끝나고 차트 혼자 써야 되는데... 진짜 야근하기 싫단 말이야.’마취, 소독, 절개, 개흉, 흡인...수술 난도는 그리 높지 않았지만 문제는 이석훈이 워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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