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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1화

신예린은 다시 주시우의 품에 안겼다. 신예린의 다리가 주시우의 허리를 감싸안은 채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단단하게 움직이는 근육의 힘이 고스란히 전해졌다.밀착된 몸은 이미 달아올라 있었고 서로의 체온은 불길처럼 치솟아 올랐다.그들은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키스를 이어갔다. 참지 못하고 탐하듯 이어지는 입맞춤 속에서 신예린의 머리는 어지러워졌다. 허리를 감싸고 있던 다리가 순간 풀릴 뻔했지만 주시우의 넓은 손바닥이 단단히 신예린의 허리를 받쳐 주었다.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도 그 뜨거운 온기가 전해져왔고 마치 예민한 곳을 스친 듯 온몸이 불타올라 신예린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곧이어 주시우의 낮게 울리는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날 꽉 잡아.”그 순간, 신예린의 머릿속은 단번에 달아올라 엉뚱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온몸이 붉게 물들며 숨결마저 달아올랐다.침대 위에 내려졌을 때, 주시우의 눈에 비친 신예린은 잘 익은 복숭아처럼 붉고 탐스러웠다. 주시우의 목울대가 크게 오르내린 뒤, 허스키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예린아... 넌 정말 예쁘다.”주시우의 그 한마디가 가슴을 깊이 울렸다. 신예린은 두 팔로 주시우의 목을 감싸안고 먼저 입술을 포개었다.입술과 입술이 부딪히며 이어진 키스는 숨을 삼키듯 격렬했고 서로의 심장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릴 만큼 치열한 추격전 같았다.신예린은 자신도 놀랄 만큼 대담해졌다. 침대 위의 주시우는 신예린이 알고 있던 사람과는 달랐다. 처음을 함께했던 오래전 기억 속의 인상은 전혀 다정하지 않다는 것이었는데 세월이 흐른 지금 신예린 앞의 주시우는 오히려 더 뜨겁고 거칠었다.‘교수님은 온화하다니... 전혀 아니잖아.’주시우는 마치 오랫동안 굶주려 있던 남자처럼 숨 가쁘게 달려들었다.“아...”갑작스러운 어깨의 통증에 신예린은 흐릿한 눈길로 주시우를 바라봤다.“이렇게 중요한 순간에도 딴생각하는 버릇은 여전하네.”차갑게 흘러나온 말투와 달리 주시우의 입김은 뜨겁게 신예린의 귀를 스쳤다.그 말에 신예린은 문득 신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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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2화

끝내 힘이 빠져버린 신예린은 더는 버틸 수 없었지만 주시우는 아직 멈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주... 주 교수님...”신예린의 숨결이 떨리는 목소리에 흐트러진 머리칼은 주시우의 팔에 흘러내렸고 얼굴은 복숭아꽃처럼 붉게 물들었다. 눈가에는 촉촉한 물기가 맺혀 있었고 그 속에는 갈망과 애원이 뒤섞여 있었고 목소리마저 흩어져 버려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주시우는 호흡이 거칠게 가라앉았고 눈빛에는 깊고 어두운 불길이 번졌다.“조금만 더... 조금만 더.”서로의 몸이 밀착된 채 주시우는 입술을 포개며 더욱 깊이 신예린을 탐했다. 순간 눈앞에서 번쩍 빛이 스친 듯, 신예린은 온몸을 바르르 떨며 주시우의 목덜미를 물어버렸다.날카로운 자극과 미묘한 통증이 섞여 흘러드는 순간, 주시우는 문득 손호명이 했던 말이 떠올랐지만 이미 늦어 있었다. 목 언저리에 남은 자국과 함께 타오르는 열기가 온몸을 뒤덮었다. 굵게 솟은 손등의 핏줄처럼 주시우의 피는 뜨겁게 끓어올랐다.식당 유리창에 비친 자기 모습 앞에 서서 주시우는 무심코 손으로 셔츠 깃을 여몄다. 아침에 거울을 보며 확인했을 때 분명 목에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 때문에 일부러 목을 가릴 수 있는 셔츠를 골라 입었지만 혹여나 티가 날지 괜히 마음이 조급해졌다.“주 교수님, 여기 앉으세요.”막 식판을 들고 자리를 찾으려던 순간, 누군가가 주시우를 불렀다. 고개를 돌리자 약리학을 가르치는 유민수의 손짓이 눈에 들어왔다.유민수는 지난 몇 년 사이 눈에 띄게 머리숱이 줄어들어 이제는 빗으로도 감출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결국 유민수는 빗을 들고 다니던 습관마저 포기한 듯 보였다.그 맞은편에는 낯익은 얼굴인 임혜린이 앉아 있었다.유민수는 여전히 반갑게 손짓하며 자리를 권했고 주시우는 식판을 들고 다가갔다. 임혜린은 미리 옆자리를 비워두고는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교수님.”“고맙습니다.”주시우는 유민수의 옆에 이미 책이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자연스럽게 임혜린의 옆자리에 앉았다.“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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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3화

“임 교수님, 출장 다녀오신 건 어떠셨어요?”유민수의 목소리에 임혜린은 비로소 생각을 거두고 대답했다.“늘 그렇듯 다른 학교 교수님들이랑 수업 방식이랑 방학 일정 같은 걸 조금 나눴어요. 학교 분위기도 꽤 괜찮더라고요.”“아, 그 학교는 저도 가봤습니다. 환경은 확실히 좋더군요.”유민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시선을 주시우에게로 옮기며 말끝에 묘한 뉘앙스를 얹었다.“주 교수님, 좋은 소식 들었습니다.”“좋은 소식?”임혜린은 잠시 고개를 갸웃했고 주시우 역시 젓가락을 멈춘 채 의아해했다.“무슨 소식 말씀하시는 건가요?”“아니... 아내분이 돌아오셨다면서요?”그 말에 임혜린의 얼굴빛이 단번에 변하며 무심코 주시우 쪽을 바라봤다. 임혜린은 출장에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주시우의 아내가 돌아왔다는 소문이 이미 학교 안에서 크게 퍼져 있어도 그런 상황을 미처 몰랐다.주시우는 잠시 고개를 끄덕이며 입가에 거의 드러나지 않는 미소를 지었다.“네.”임혜린의 입에서 반쯤 튀어나온 말이 있었다.“그럼... 이혼은...”하지만 임혜린은 자신이 무례하다는 걸 깨닫고는 억지로 말을 삼켰다. 그러나 뜻은 이미 충분히 전해졌다.유민수가 웃으며 거들었다.“이 사람이야 어디 감히 이혼을 하겠습니까. 예쁜 아내 유학 보내려고 애초에 교환학생만 보내면 될 걸 그쪽에서 대학원까지 마칠 수 있도록 얼마나 공 들였는지 아십니까. 또 아이를 위해서 1년 동안 휴직까지 했어요. 이 정도면 정말 지극정성이죠.”유민수는 신예린도 알고 있었고 두 사람의 이야기를 어렴풋이 알고 있던 터였다.주시우는 부인하지 않고 오히려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저는 기회만 만들어 준 겁니다. 그걸 끝까지 붙잡은 건 예린이에요.”“지금은 어느 병원에 계십니까?”“태성 병원 심장외과에 있어요.”“역시 대단하네. 태성 병원 심장외과라니... 거긴 우리 쪽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과인데. 그런데 저는 처음부터 될 줄 알았어요.”“다 유민수 교수님이 초반에 도와주신 덕분입니다.”“아이고.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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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4화

[알아요. 약리학 유민수 교수님 말씀하시죠.][예린아, 네가 돌아온 걸 알고 언제 학교에 한 번 오냐고 물으시더라.][저도 생각은 했는데 요즘 너무 바빠요. 오늘도 야간 당직이라... 시간 나면 갈게요.”[알았어. 밥은 먹었어?][방금 다 먹었어요.]주시우의 시선은 어느새 위로 미끄러져 조금 전 신예린이 보낸 메시지 한 줄에 멈췄다.[제가 한 말 아니에요. 다들 그렇게 불러요.][학생들이 선생님을 그렇게 뒤에서 자주 얘기해?]신예린은 화면을 보는 순간 얼굴이 굳었고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둘러댔다.[저 아니에요. 아시잖아요. 저는 제일 좋아하는 게 공부잖아요.]‘그냥 아주 가끔은 송지유랑 같이 수군거리긴 했지만... 말이야.’[유민수 교수님이 그러시던데 요즘 나를 학생들이 어떤 요즘 유행어로 표현한다더구나.][무슨 유행어요?][늙은 나무에 새싹이 돋았대.]화면에 뜬 글자를 본 순간 신예린은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자리에서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입을 막아 간신히 소리를 참았다. 자칫하면 동료들이 이상하게 볼까 봐서였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느껴진 건, 주시우의 짧은 메시지 안에서 은근한 억울함이 묻어났다는 점이었다.잠시 후 답이 없자 주시우가 다시 보냈다.[지금 웃고 있지?][아니에요. 전혀요.][거짓말쟁이.]신예린은 배를 움켜쥐고 웃음을 참으며 서둘러 문자를 보냈다.[정말 아니라니까요.][내가 그렇게 늙어 보여?]주시우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자기 인생을 의심하기 시작했다.[절대 아니에요.][그런데 나도 곧 서른다섯이야. 너보다 여덟 살은 많지.][그래도 아직 서른다섯도 안 됐고요. 게다가... 그쪽은 여전히 예전처럼 기운 넘치잖아요. 체력은 오히려 제가 못 따라가겠는걸요.]신예린은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부끄러움에 급히 메시지를 삭제했지만 곧바로 휴대폰이 울렸다.[이미 봤어.][아내가 내 정력을 인정해 주니 기분이 좋네. 덕분에 위로받았어.]신예린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책상 위에 파묻혔고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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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5화

오후가 되어서야 신예린은 이석훈이 맡긴 일을 대충 마무리할 수 있었다. 신예린은 이어서 조금 전 수술을 받은 25번 병동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러 갔다가 우연히 복도 끝에서 낯익은 모습을 보았다. 바로 소아과의 소지훈이 병실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고 안에서는 소지훈과 이정현 의사가 어린 환자의 상태를 두고 진지하게 상의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신예린은 소지훈이 바쁘게 환자 일을 보고 있음을 알고는 굳이 안으로 들어가 방해하지 않았다. 환자를 살펴보고 나와 복도를 걸어가던 중, 마침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이정현과 마주쳤다.“소 선생님은요?”신예린이 무심히 물었다.“벌써 돌아갔어요. 새로 입원한 환자가 있어서 회진 마치고 바로 돌아갔죠.”이정현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더니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되물었다.“근데... 신 선생님은 소 선생님이랑 아는 사이였어요?”신예린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아요.”이정현은 단순히 병원에서 일하면서 알게 된 정도려니 하고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신예린의 목에 걸려 있던 청진기를 보더니 눈이 동그래졌다.“와, 이거 신기하네요. 청진기에 반창고를 붙여놨네?”그는 손을 뻗어 청진기를 들어 올려 좌우로 살펴보았다. 분홍색 헬로키티 그림이 붙어 있어 제법 아기자기했다.신예린은 쑥스러운 듯 살짝 웃었다.“이거 꽤 오래 쓴 것 같은데요?”“네. 산 지 5년쯤 됐어요.”“그걸 그렇게 또렷하게 기억하는 걸 보니... 중요한 사람이 선물해 준 건가 보죠?”신예린은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역시 그렇군요.”이정현은 청진기를 내려놓으며 차분히 말했다.“혹시라도 고장 나면 망설이지 말고 간호사한테 새것 받으세요. 우리 심장외과에서는 청진기는 곧 눈이나 다름없거든요.”“네. 알겠습니다.”신예린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그때 이정현은 시계를 한번 흘깃 보더니 미소를 지었다.“얘기 그만해야겠네요. 퇴근 시간이네요. 오늘 저녁에 소개팅이 있거든요.”“소개팅이요?”신예린이 놀란 눈빛을 보였다.“그럼요.”이정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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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6화

원래 수다는 여자들의 본능이라 누군가 새로운 사람을 끌어들이면 금세 불붙듯 이야기가 이어졌다. 세 사람이 모이니 판이 벌어지는 건 순식간이었고 신예린도 금세 소지훈이 이정현을 좋아한 지가 벌써 몇 년이고 한동안은 대놓고 적극적으로 다가간 적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 이정현은 7년 사귄 남자와 막 헤어진 직후라 마음의 상처가 깊었고 결국 번번이 소지훈을 거절했다고 했다.지금은 그냥 동료처럼 지내지만 소아과 의사들 얘기로는 소지훈이 아직도 마음을 접지 못한 듯 보인다고 했다. 다만 괜히 이정현을 불편하게 할까 봐 선을 넘지 못한 채 맴돌고만 있다는 것이다.신예린은 그제야 주아윤에게 대모가 없는 이유를 알게 된 것 같아 어이가 없었다.사무실로 돌아온 신예린은 휴대폰을 열어 주시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소지훈 씨가 좋아하는 사람 있다는 거 알아요?]잠시 후 답장이 왔다.[3년 전쯤이었나. 자주 술 마시자고 나를 불러내고는 했어. 나는 술을 잘 못하는데도 옆에서 지켜봐 달라면서 억지로 불렀지. 사랑이 안 돼서 괴로웠던 모양이야. 그때는 애까지 내가 보면서 같이 달래줬다니까. 그래서 한동안 아윤이를 지훈한테 맡기기도 했어. 그때 둘 사이가 조금 가까워졌지.]신예린은 아윤이가 태어나기 전, 주시우가 농담처럼 소지훈한테 애를 맡길까 하던 말을 떠올렸다. 그런데 그게 농담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했다는 사실에 헛웃음이 나왔다.[그 뒤로는 거의 얘기도 안 하더라.]주시우의 또 다른 답이 이어졌다.[저 오늘 엄청난 소문을 들었는데요.][뭔데?][소지훈 씨가 좋아하는 사람이 우리 과의 이정현 선생님이래요. 이 선생님 정말 예쁘더라고요. 저도 은근히 좋아해요.][그럼 나는?]문자를 보는 순간 신예린은 피식 웃음이 터질 뻔했다.[저는 진지하게 얘기하는 중이에요.][그럼 넌 뭘 하려고?][아윤이의 대모로 이 선생님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의사 그만두고 소개팅 업체라도 하겠다는 거야?][네?][의사 버리고 선을 볼 자리를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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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7화

신예린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네가 없으니까... 그래서 집에 일찍 가고 싶지가 않아.”주시우의 목소리는 모래를 굴려낸 듯 낮게 갈렸지만 그 안에 은근한 온기가 배어 있었다.그 한마디에 신예린의 가슴이 따뜻하게 부풀었고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그럼 교수님... 오늘은 독수공방하셔야겠네요?”신예린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어쩔 수 없지. 아내가 워낙 뛰어난 의사라는데 내가 뭘 하겠어.”주시우가 체념한 듯이 받아치자 신예린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이어서 주시우의 다정한 질문이 이어졌다.“밥은 먹었어?”“아직이요.”“그럼 지금이라도 얼른 먹어. 안 그러면...”갑자기 유리문이 두드려졌고 신예린이 돌아보니 이석훈이 서 있었다.문이 열리자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흘렀다.“응급 환자 들어왔습니다.”말을 남긴 이석훈은 바로 발길을 돌렸고 신예린은 얼른 휴대폰을 귀에 대고 말했다.“보세요, 제가 한가할 수가 없다니까요. 나중에 얘기해요.”그러면서 안으로 걸어 들어가며 장난스럽게 속삭였다.“오늘 밤은 얌전히 있어요. 뽀뽀 쪽!”주시우는 원래 밥 꼭 챙겨 먹으라고 말하려던 참이었는데 전화는 이미 끊겨 버렸다.남겨진 메시지를 한동안 바라보던 그는 미소를 지으며 뽀뽀하는 이모티콘을 골라 보냈다.‘독수공방이 이렇게 허전한 일일까.’의자에 몸을 기댄 주시우는 창밖의 어둑해지는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수년 동안 혼자 지내온 게 당연했는데 이제는 단 하루도 버티기가 힘들어졌다.손끝으로 미간을 문지르며 억지로 눈을 서류 위에 두었다.일에 몰두해야만 시간이 조금 빨리 흘러가는 듯했다.신예린은 스스로 에너지가 많은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밤새 쉴 새 없이 응급실을 뛰고 나니 온몸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탈의실 거울 앞에 서서 축 처진 얼굴을 보다가 찬물로 세수했다.가방을 둘러메고 나오자 동료 간호사들이 다가왔다.“신 선생님, 같이 아침 먹으러 가실래요?”두 명의 간호사가 함께였고 뒤에는 이석훈도 따라 나오고 있었다.이석훈은 잠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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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8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신예린은 벌떡 일어나 양치하고 세수한 뒤 옷을 갈아입고 들뜬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다.5년 만에 다시 밟는 이 캠퍼스는 신예린에게 단순한 학교 그 이상의 의미였다. 3년 동안 대학 시절이 깃든 곳이자 주시우와 함께한 수많은 추억이 담긴 곳이었기 때문이다.예전에는 나이 차이가 그렇게도 눈에 띈다며 사람들이 말하는 걸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 후배들의 앳된 얼굴을 바라보니 새삼스레 느껴졌다.‘역시 젊음이란 게 참 좋구나.’어떻게 주시우가 강의하는 교실을 찾아가야 하나 고민하던 순간, 앞에서 여학생 몇 명이 서둘러 걸음을 옮기는 게 눈에 들어왔다.“빨리 가자. 주 교수님의 수업이 곧 시작이야.”“다 너 때문이잖아. 맨날 꾸물대니까. 알잖아. 주 교수님 강의 들으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늦으면 좋은 자리를 못 잡아.”그 말만 들어도 목적지가 분명했고 신예린은 망설임 없이 그 뒤를 따랐다.“근데 주 교수님은 벌써 결혼하셨잖아. 학교에서는 다들 교수님 아내가 돌아왔다고 떠들던데... 너희는 왜 이렇게 열심히 듣는 거야?”엉겁결에 자기 이름이 불린 것만 같은 기분에 신예린은 귀가 쫑긋 섰고 발걸음도 모르게 빨라졌다.“그분이 돌아왔다고 우리가 수업 듣는 데 무슨 상관이야? 우리는 그냥 주 교수님이 잘생기고 실력이 뛰어나니까 좋아하는 거지. 교수님 아내 자리를 탐내는 것도 아니고.”‘오, 요즘 학생들은 우리 때보다 훨씬 이성적이네.’신예린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그래도 안 궁금해? 주 교수님 아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듣자 하니 우리 선배라던데.”“주 교수님이랑 어울리려면 틀림없이 엄청 예쁘실 거야. 고운 얼굴에다 기품도 넘치고.”‘어머, 나를 그렇게 칭찬하다니...’신예린은 괜히 볼이 달아오르며 마음이 들떴다.하지만 신예린이 은근히 기분에 취해 있던 찰나, 앞서가던 여학생들이 갑자기 일제히 뒤를 돌아보았다.짧은 시선이 마주친 순간 신예린은 당황해 얼른 인사라도 건넬까 했는데 뜻밖에도 그 아이들은 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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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9화

강단 위에 선 주시우는 그야말로 화보 같았다.차갑게 빛나는 하얀 피부, 매끈한 턱선, 또렷하고 세련된 이목구비는 흡사 신이 공들여 그려낸 완벽한 초상 같아서 조금만 덜하거나 더해도 균형이 깨질 듯했다.주시우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모두 자발적으로 숨을 죽였고 시선은 일제히 그에게 고정됐다. 신예린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신예린은 주시우의 다양한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온화한 모습, 진지하게 연구에 몰두한 모습, 절제된 태도, 그리고 침대 위에서 뜨겁게 달아오르던 순간까지 말이다.하지만 그 모든 것 가운데서도 지금처럼 강단에서 학문을 전하는 모습이 가장 심장을 울렸다.마치 주시우의 손에는 눈부신 민들레가 들려 있는 듯했고 가벼운 바람이 불면 그 씨앗들이 흩날려 학생들의 머릿속에 떨어져 뿌리내리고 싹을 틔우는 것 같았다.그게 바로 지식이 퍼져나가는 힘이었다.차분하면서도 울림이 있는 주시우의 목소리가 교실 안에 고르게 퍼져갔다.낮고 단단한 울림은 학생들에게 그 자체로 선물이자 축복이었다.책상에 고개를 기대고 있던 신예린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어느새 넋을 놓았다.‘이렇게 잘생기고 또 배움까지 깊은 사람이... 내 남편이라니.’꿈이라면 깨기 싫을 만큼 행복한 현실이었다.아마도 표정에 모든 게 다 드러났던 모양이다.옆자리에 앉은 학생이 의아하다는 듯 신예린을 흘끗 쳐다보았고 신예린은 부랴부랴 입가를 정리하며 괜히 손가락으로 입술을 문질렀다.‘하마터면 침이라도 흘린 줄 알겠네...’그러던 중 강의실이 잠시 고요해졌다.주시우가 강의하던 걸 멈추고 시선을 어느 구석으로 던졌기 때문이다.순간 학생들의 시선이 줄줄이 따라가더니 결국 신예린 쪽에 꽂혔다.“...”그제야 신예린은 자신이 주시우와 눈이 마주쳤다는 걸 깨달았다.그 순간, 웅성거림이 잦아들지 않았다.“교수님이 뭘 보고 계신 거지?”“수업 중에 갑자기 멈춘 건 처음이야.”“저 여자 보는 거 아니야?”“근데 저 여자는... 우리 학교 학생 같지 않은데... 교수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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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0화

강의실 아래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신예린이 앉은 자리에서 보니 몇몇 학생이 서로를 툭툭 치며 재촉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교수님, 뭐든 물어봐도 되나요?”“곧 여름방학인데요. 이거 답을 모르고 시험 보러 가면 우리 성적 다 망해요.”말투에는 은근한 협박이 묻어 있었다. 옆자리 학생들까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치자 분위기는 금세 달아올랐다.신예린은 주시우가 살짝 눈썹을 들어 올리며 강단에 한 손을 짚는 모습을 바라봤다. 매끈한 손가락 마디에 낀 반지가 눈에 띄게 빛났다. 주시우에게는 당연한 습관이었을 터였다. 지난 5년간 단 한 번도 손가락에서 뺀 적이 없는 반지였고 이제는 몸의 일부처럼 붙어 있는 존재였다.신예린은 무심코 목에 걸린 목걸이를 만지며 웃음을 지었다. 환자를 다루다 보면 피나 체액이 묻을까 염려되어 실습 시절부터 반지를 빼서 목걸이에 걸고 다녔다. 어느새 그것 역시 신예린과 떨어질 수 없는 신체 일부분이 되어 있었다.주시우의 차분한 목소리가 그녀의 생각을 끊었다.“말해 보세요.”신예린은 무슨 질문이 나올지 궁금해 몸을 살짝 일으켰다.용기를 낸 학생 하나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주 교수님, 들은 말로는 이미 결혼하셨다던데요. 저희는 이렇게 오랫동안 교수님께 배웠는데 사모님은 한 번도 뵌 적이 없잖아요. 언제 저희에게 소개해 주실 건가요?”순간, 단순히 분위기에 휩쓸리던 학생들까지 와 하고 소리를 지르며 호응했다.“맞아요. 저희도 보고 싶어요!”“사모님이 해외에서 돌아오셨다던데 왜 안 오시는 거예요?”“정말 궁금해요. 어떤 분인지 알려주세요.”“한 번만 데려와 주세요!”순식간에 수많은 목소리가 더해지며 강의실은 소란스러워졌다.‘아니, 이런 소문 구경하다가 왜 불똥이 나한테까지 튀어?’신예린은 당황스레 어깨를 움츠리며 존재감을 줄이려 애썼다. 하지만 학생들의 호기심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강단 위에서 주시우는 여전히 흔들림 없는 표정이었고 그런 태도가 오히려 학생들의 애를 태우게 했다.“교수님, 저희 평균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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