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맨스 / 터닝포인트 / Chapter 341 - Chapter 350

All Chapters of 터닝포인트: Chapter 341 - Chapter 350

461 Chapters

제341화

강의실은 단숨에 얼어붙었다. 모두가 신예린을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이 그렇게 궁금해하던 사모님이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었을 줄은 상상도 못 한 것이다.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교실은 마치 기름에 물방울이 튀듯 폭발했다.“꺄아아아!”“으아아아아!”“사모님이다!”학생들의 비명이 교차하며 이어졌다.“교수님이 직접 인정하신 사모님이셔!”“사기꾼도 아니고 변태도 아니고 진짜 사모님이셨네!”그 놀라움에 찬 목소리들이 쏟아지는 순간, 신예린은 마치 외계에서 온 외계인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억지로 태연한 척하며 학생들을 향해 억지 미소를 지었다.“안녕하세요...”“네. 안녕하세요!”머쓱하게 인사를 건네면서도 신예린의 시선은 강단 위 주시우를 향했다. 제발 자신을 구해달라는 눈빛이었다.그런데도 주시우는 오히려 여유로운 미소만 지어 보였다.‘웃어? 지금 이런 상황인데?’신예린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학생들에게 포위당한 아내를 놔두고 웃음이 나오다니.’그 순간, 마침내 울리는 종소리가 신예린을 구원했다. 천상의 종소리처럼 들린 순간, 본능적으로 도망가고 싶었지만 이미 사방이 학생들로 막혀 있었다.그러자 웅성거리던 학생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신예린은 고개를 들었고 사람들 사이가 서서히 갈라지며 길 하나가 생겨나는 걸 보았다.그 길의 끝에는 주시우가 서 있었다. 차가운 빛이 감도는 피부, 깊고 단정한 이목구비, 고요하면서도 강렬한 눈빛의 주시우는 잠자코 신예린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학생들 사이를 가르며 다가오는 발걸음에 모두가 숨을 삼키듯 조용해졌다.주시우가 가까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길고 고운 손가락, 은빛 반지가 은은한 빛을 흘렸다.“가자.”차갑고도 맑은 목소리였지만 묘하게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신예린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주위의 수많은 시선 속에서 신예린은 결국 주시우의 손을 잡았다. 힘 있는 주시우의 손바닥이 자신을 감싸안고 두 사람의 손가락은 단단히 맞
Read more

제342화

학생들이 하나둘 그들 곁을 지나며 놀라움이 가신 얼굴로 조심스레 인사를 건넸다.“주 교수님.”주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었다. 그 미소는 마치 봄바람에 몸을 맡긴 듯 따스했다.곧 소문이 퍼졌다. 주시우의 아내가 강의에 들어와 함께 앉아 있었고 모두 앞에서 그녀의 정체가 드러났다는 이야기였다.이제 누구나 주시우와 손을 맞잡고 걷는 여자가 바로 전설처럼 말이 오가던 사모님이라는 것을 알았다.그때 용감한 학생 한 명이 목소리를 높였다.“사모님, 안녕하세요!”갑작스러운 인사에 신예린은 화들짝 놀랐고 그 순간 주시우가 웃으며 손을 당겼다.“너한테 인사까지 하네.”그러자 신예린은 얼굴이 달아오른 채 얼떨결에 대답했다.“네. 안녕하세요.”한 번이 시작되자 멈추지 않았다. 학생들은 주시우에게 인사한 뒤 일부러 목소리를 더 높여 인사를 덧붙였다.“사모님, 안녕하세요!” 신예린은 마치 장난감이 된 듯 계속 대답해야 했고 어쩔 수 없이 얼굴을 붉히며 인사를 이어갔다.그런데 이상하게도 반복되는 인사에 신예린은 점점 마음이 들뜨고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그 한편으로는 알 수 없는 뭉클함이 가슴속에 차올랐다.마치 주시우 역시 같은 감정을 느끼는 듯, 신예린의 손을 더 꼭 잡으며 낮게 말했다.“이 순간을 이렇게 오래 기다리다니 말이야.”두 사람은 늘 당당하게 함께 캠퍼스에서 걷기를 원했다. 하지만 교수와 제자라는 굴레는 늘 이상한 시선을 불러왔고 서로를 지키려는 마음 때문에 늘 거리를 두었다.이제 5년이 지난 지금, 드디어 밝은 햇살 아래 손을 잡고 나란히 걸을 수 있었다.지나가는 학생들의 웃음과 사모님이라는 부름은 축복처럼 들려왔다.그들은 이제 더 이상 교수와 학생이 아니라 부부였다.노을이 캠퍼스를 금빛으로 물들이며 두 사람마저 황금빛에 감싸안았다.“이제야 제대로 된 거네.”주시우가 나직이 말했다.“예린아, 모든 게 가장 좋은 때에 이뤄진 거야.”비록 5년의 공백이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그 시간은 서로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고 결국 이
Read more

제343화

주시우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멀찍이 서 있던 신예린은 웃음을 머금고 있었고 입술에는 아직 밀크티의 흔적인 듯 은은한 갈색이 남아 있었다.주시우는 온통 신예린의 부드러운 입술에만 마음이 쏠려 있었기 때문에 사실 맛은 기억나지 않았다.“이리 와봐. 말해 줄게.”주시우가 낮게 불렀다.신예린은 진짜인 줄 알고 성큼 두 발짝 내디뎠다가 곧 주시우의 손에 손목을 붙잡혔다.“아, 밀크티 쏟아지잖아요!”신예린이 외쳤지만 이미 주시우의 품에 가득 안겨 있었다. 단단한 팔이 신예린의 허리를 붙잡고 두 사람의 몸은 바짝 맞닿았다.주시우의 시선은 곧장 신예린의 입술에 떨어졌다. 그의 눈빛은 짙고 깊었다.“아까는 시간이 너무 짧았어. 아직 맛도 못 느꼈는데.”얼굴이 달아오른 신예린은 더는 피하지 않고 주시우의 목을 감아올리며 고개를 들어 입술을 맞췄다.이번 입맞춤은 아까와는 달리 훨씬 진득했다. 숨결이 뒤섞이고 처음에는 가볍게 맞닿던 입술이 점점 더 깊어지더니 서로의 호흡마저 나누는 듯했다.몇 번을 나눈 입맞춤인데도 매번 심장이 요동쳤고 가까이 다가가면 더는 멈출 수 없었다.훗날이 되어서야 주시우는 이것이 바로 본능적인 끌림이라는 걸 깨달았다. 가까워지면 품에 가두고 싶고, 입을 맞추고 싶고, 더 가까운 관계로 이어지고 싶었다. 주시우는 신예린을 자신과 하나로 녹여내고 싶은 마음이었다.고요한 연구실 안에 두 사람의 숨소리가 얇게 흘렀다. 입술을 떼자 주시우는 신예린의 관자놀이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얼굴을 맞대면서 속삭였다.“달아... 정말 달콤해.”숨결이 귀 끝을 스쳐 지나가자 신예린의 피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무엇이 달다는 건지 알 수 없어도 입가가 저절로 말려 올라갔다. 신예린은 얼굴을 주시우의 가슴팍에 묻어버렸다.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연구실 안 공기를 갈랐다.“똑똑!”신예린은 화들짝 놀라며 급히 주시우를 밀어냈다. 누가 갑자기 들어와 방금 장면을 보게 될까 봐 겁이 났다.순간 밀려난 주시우는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분명 먼
Read more

제344화

“아내가 돌아오니까 달라졌네. 뭘 먹고 왔길래 입이 이렇게 달콤해졌어?”누군가는 가볍게 던진 농담이었지만 신예린은 조금 전에 주시우와 입맞춤을 나눈 일이 떠올라 얼굴이 활활 달아올랐다.여기저기서 이어지는 말들에 대답하긴 했지만 신예린은 얼굴은 빨갛게 물든 채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시선이 문가에 서 있던 한 여인에게 닿았다.그 여인은 처음부터 한마디도 하지 않고 서 있었는데 신예린이 바라보자 두 사람의 눈길이 정면으로 마주쳤다.그 순간, 신예린은 직감했다.‘저 사람이... 지훈 씨가 말한 그 여교수구나.’조용하던 연구실은 여러 교수의 방문으로 한바탕 소란스러워졌다. 신예린은 동물원 원숭이처럼 구경거리가 되었고 모두의 호기심을 만족시킨 뒤에야 교수들이 하나둘 자리를 떴다.돌아가기 전, 손호명이 문득 뭐가 생각난 듯 신예린에게 말했다.“신예린 씨, 다음 주에 우리 학교 교수들 단합 모임이 있는데요. 가족도 함께 와도 됩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같이 가시죠.”신예린은 무심코 주시우를 올려다보았다.주시우는 부드럽게 대답했다.“네가 좋을 대로 해.”신예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직 제 근무표가 안 나왔어요. 쉬는 날이면 가겠습니다.”“좋습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기다린다니요. 시답잖은 소리 그만하고 얼른 돌아갑시다.”옆에 있던 교수가 손호명을 떠밀며 장난스럽게 마무리했다.신예린과 주시우는 문 앞까지 나와 그들을 배웅했다. 교수들이 계단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기 전, 그 여교수가 다시금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았다.모두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신예린은 크게 숨을 내쉬었다.‘안 떨렸다 하면 거짓말이지... 교수님들이라니 게다가 예전에 내게 수업까지 해줬던 분들도 있었는데...’그렇게 많은 눈길이 한꺼번에 쏠리니 신예린은 등골이 오싹할 정도였다.신예린이 옆을 보니 주시우는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감추지 않고 있었다.뭔가 떠올린 신예린은 곧바로 주시우의 허리에 손을 얹고 따져 묻듯 말했다.“방금 문 옆에 서 있던
Read more

제345화

신예린은 그대로 주시우의 품에 안겨 몸을 비비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제가 잘못했어요. 서방님, 서방님, 제가 잘못했어요.”연거푸 부르는 서방님이라는 호칭에 소리가 달콤하게 주시우의 귓가에 번졌다.주시우의 목젖이 움찔였지만 그는 일부러 목소리를 낮게 눌렀다.“뭘 잘못했는데?”신예린은 더욱 애교를 부렸다.“제가 괜히 그 여교수 때문에 질투했잖아요. 근데 어쩌겠어요. 제가 서방님을 너무 사랑하니까요. 누가 한 번만 봐도 제 마음속에서 질투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거든요. 제가 또 잘못한 건 루카스랑 얘기한 거예요. 아니, 잘못 말했네요. 서방님 말고는 어떤 남자하고도 얘기하면 안 되는 거죠. 제 마음은 서방님한테만 있어야 하고 제 몸도 서방님한테만 속해야 하니까요.”주시우는 신예린이 일부러 하는 말인 걸 알면서도 기분이 절로 풀렸다.주시우는 고개를 숙여 신예린의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이번에는 힘이 조금 세서 신예린이 숨을 삼켰다.“넌 참...”주시우의 말투는 애정과 무력감이 동시에 묻어났다.“외국에서 뭘 배우고 온 거야? 예전의 그 수줍고 조용하던 아내는 다 어디로 간 거지?”그러자 신예린은 장난스럽게 고개를 숙이며 눈을 내리깔았다.“당신이 그때의 저를 좋아한다면 다시 예전처럼 해드릴 수도 있어요.”그러면서도 두 손으로 주시우의 가슴을 밀며 능청스럽게 흉내를 냈다.“주 교수님, 이러시면 너무 부끄러워요.”“...”주시우는 그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고 다시 고개를 숙여 신예린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 가볍게 문지르듯 스쳤다.신예린은 고개를 들어 천천히 대응했고 연구실 안은 다시 오랜 입맞춤으로 달아올랐다.조용한 공간 속에 퍼지는 공기는 달콤하고 은밀했다.한참 후 주시우는 신예린의 이마에 이마를 맞대며 나지막이 속삭였다.“난 지금 네 모습이 좋아. 최소한 예전보다 훨씬 행복해 보이니까.”신예린의 입술이 살짝 휘어졌다.“당연하죠. 당신이 있어서 그렇죠.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데요.”주시우는 미소 지으
Read more

제346화

소지훈이 헛기침을 하며 웃었다.“역시 아내가 곁에 있으니 다르긴 다르네요.”그러더니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말을 보탰다.“아윤이가 곧 돌아올 거잖아요. 두 분이 지금처럼 오붓하게 지낼 수 있는 시간은 얼마 안 남았을 겁니다. 아윤이가 돌아오면 신혼 분위기 내기도 쉽지 않을 테니까요.”신예린은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를 숙였다.두 사람은 한동안 별것 아닌 얘기로 웃고 떠들었고 신예린은 소지훈이 뭔가 망설이는 듯한 기색을 눈치챘다.역시나 소지훈은 곧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저, 신 선생님... 혹시 같은 과에 있는 이 선생님이랑은 친하세요?”신예린은 고개를 저었다.“저도 이제 막 와서 딱히 누구랑 친하다고 하긴 어려워요. 그래도 이 선생님은 괜찮은 분 같아요.”소지훈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고개를 끄덕이던 소지훈은 신예린의 웃는 눈길과 마주치자 결국 결심한 듯 털어놓았다.“사실... 신 선생님이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이 선생님 좋아한 지 꽤 됐거든요. 그런데 아무리 다가가도 매번 거절만 당해요. 일 말고는 늘 차갑게 선을 긋더라고요. 전에는 남자 친구랑 막 헤어진 참이라 그럴 수 있겠다 싶었는데 요즘 듣자 하니 자꾸 맞선을 본다잖아요.”신예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사실을 확인했다.“네. 맞아요. 요즘 맞선 자주 본다고 하던데요.”그 말을 듣자 소지훈은 금세 다급해졌다.“그럼 혹시 신 선생님이 같은 과니까 은근히 좀 물어봐 줄 수 없어요? 왜 저를 안 좋아하는 건지...”신예린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래요. 지훈 씨는 아윤이의 대부님이시잖아요. 그 정도는 해드려야죠.”뜻밖의 대답에 소지훈은 눈이 촉촉해지며 장난스럽게 손을 모아 인사했다.“고맙습니다. 제수씨, 그러면 어떻게 고맙다고 말해야 할 지 모르겠네요.”“...”그 말에 신예린은 민망해서 어쩔 줄 몰랐다.그날 이후 신예린은 은근히 이정현을 주의 깊게 지켜봤다. 하지만 서로 각자 맡은 일에 바빠 단둘이 있을 기회가 좀처럼 없었다.
Read more

제347화

“뭐라고요?”신예린은 눈이 휘둥그레졌다.“놀랐죠?”이정현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아니, 어떻게 소지훈 씨가 남자를 좋아한단 말이에요. 뭔가 오해하신 거 아니에요?”겨우 목소리를 찾은 신예린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절대 틀릴 리 없어요.”이정현은 신비로운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그리고... 더 충격적인 사실도 있는데...”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이 선생님, 6번 병실 환자 혈압이 갑자기 떨어졌습니다.”간호사가 급히 문 앞에 서 있었다.이정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다가 문턱에서 멈춰 섰다.그리고 고개를 돌려 신예린을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제가 아까 말한 건 꼭 비밀로 해주세요.”그 말만 남기고 뛰어나가는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신예린은 얼떨떨해졌다.‘소지훈이 남자를 좋아한다고?’신예린은 아무리 생각해도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그런데 이정현 씨가 왜 그런 얘기를 했을까. 게다가 막 던지고 간 더 충격적인 소식은 대체 뭘까?’한창 이야기를 듣다가 중간에 끊겨버린 기분은 너무 답답했다.신예린은 이정현이 돌아오길 기다려서 꼭 확인하려 했지만 이내 자신도 환자 일로 바빠져 결국 묻지 못한 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그날 밤.주시우는 오늘따라 신예린이 이상하다고 느꼈다.신예린은 계속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 듯했다.샤워를 마치고 방에 들어오자 신예린은 침대에 앉아 눈살을 살짝 찌푸린 채 멍하니 있었다.“무슨 일이라도 있어?”주시우는 이불을 젖히고 옆에 누우며 물었다.신예린은 잠시 주시우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별일 없어요. 그냥 자요.”너무도 티 나는 둘러대는 말투였다.주시우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몸을 기울여 신예린을 자기 아래로 감쌌다.한 손으로 침대를 짚은 채 내려다보며 물었다.“우리 사이에 이제 비밀까지 생긴 거야?”“아니에요. 그런 건 절대 아니에요!”신예린은 고개를 연신 저었다.그러자 주시우는 갑자기 신예린의 허리를 간질였다.
Read more

제348화

이제는 주시우가 눈살을 찌푸릴 차례였다.“손을 댔다고?”주시우는 곰곰이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있긴 있었지.”고등학교 때만 해도 소지훈은 인사 대신 팔꿈치로 툭 치거나 발로 슬쩍 걷어차고는 했었다. 몇 번 경고한 뒤로는 달라졌지만 그래도 그런 식으로 장난치던 기억이 있었다.말이 끝나자 신예린은 입을 쩍 벌린 채 굳어버렸다.그 모습에 주시우가 손을 들어 턱을 살짝 밀어 입을 다물게 했다.“도대체 뭘 말하려는 거야?”신예린은 울상이 되어 중얼거렸다.‘그냥 구경만 하던 나였는데 내 남편의 일이었네.’“그럼 저는 도대체 뭐였던 건 가요?”신예린은 억울하다는 듯 바라보자 주시우는 관자놀이가 욱신거렸다.주시우는 대화가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주시우는 명색이 고학력인 교수인데도 지금은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주시우가 다그치자 신예린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오늘 제가 소지훈 씨 대신 이정현 씨한테 물어봤거든요. 소지훈 씨가 좋아하는 사람이 이정현 씨잖아요.”신예린은 긴장된 듯 침을 꿀꺽 삼켰다.“그런데 이 선생님 말씀이... 소지훈 씨는 남자를 좋아한대요.”신예린은 조심스럽게 시선을 올렸다.“그래서 혹시 당신이... 그 피해자가 된 건 아닌가 해서요.”그 순간 주시우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짙은 눈동자가 신예린을 똑바로 응시했고 어둡고 깊은 시선이 묘하게 섬뜩했다.신예린은 움찔하며 조금씩 몸을 뒤로 뺐지만 이내 허리가 단단히 붙잡혔다.“예린아, 넌 상상력이 점점 대단해지는구나.”주시우의 낮게 깔린 목소리가 파고들었다.“저, 저 그냥 궁금해서 그런 거예요...”신예린은 일부러 억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그런데도 끝내 억울하다는 기색을 드러낸 신예린에게 주시우가 차갑게 말했다.“그럼 내가 진실을 알려줄까.”“정말요?”신예린은 눈을 반짝였고 주시우가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네 말이 맞아.”“세상에...”신예린의 얼굴이
Read more

제349화

깨끗이 씻고 나온 신예린은 기력이 다 빠진 듯 침대에 널브러져 전혀 움직일 힘이 없었다.이불을 들추고 옆에 눕는 주시우를 보자 신예린은 억울한 듯 발로 툭 찼다.“내일 산에 간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일부러 못 걷게 만들려고 한 거죠?”다음 날은 주시우 동료들이 준비한 단체로 등산하는 날이었다. 마침 신예린도 휴무라 함께 가기로 했는데 오늘처럼 힘이 빠져 버렸으니 그야말로 큰일이었다.발끝이 주시우의 다리를 간질이듯 스치자 주시우는 자연스럽게 신예린의 종아리를 잡고 부드럽게 주물렀다. 임신했을 때 해주던 그 손길처럼 능숙했다.“내가 업어주면 되지.”주시우가 웃으며 말했다.“일부러 망신 주려고요? 동료들한테 제가 뭐라 그래요. 어젯밤에 너무... 열심히 해서 다리 힘이 풀렸다고 할 수도 없고.”그 말에 주시우는 웃음을 삼키며 되물었다.“그럼 어떻게 해 줘야 할까?”힘 조절을 하며 종아리를 주무르는 주시우의 손길에 신예린은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은은한 불빛 속에서 보이는 주시우의 얼굴은 더없이 선명했고 무심히 올라간 입꼬리에서 주시우는 이 순간조차 즐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마치 신예린과 함께하는 모든 시간이 달고 기쁘다는 듯이 말이다.문득 이정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누구랑 살아도 다 똑같은 거죠.”‘하지만 어떻게 똑같을 수 있을까. 만약 주시우가 아니었다면 이런 날들은 상상조차 못 했을 거야.’신예린은 미소를 지으며 주시우의 손을 살짝 밀었다.“그만해요. 자요. 피곤해요.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하잖아요.”신예린이 나른한 목소리로 말하자 주시우는 그녀를 끌어안고 옆에 누웠다. 신예린은 주시우의 품 안에서 가장 편한 자세를 찾고 눈을 반쯤 감은 채 말했다.“알람 꼭 맞춰요. 내일은 처음으로 당신 동료분들이랑 같이 가는 건데 늦으면 안 돼요.”“알았어.”주시우의 다정한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울렸다.신예린은 정말 지쳐 있었고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잠결에 신예린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소지훈의 일이었다.‘아직 그 일은 확인
Read more

제350화

“걱정하지 마. 우리가 꼴찌로 올라가는 일은 없을 거야.”주시우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하지만 신예린은 도저히 그만큼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없었다.두 사람은 서로만 바라보며 속닥속닥 얘기하느라 누군가의 시선이 줄곧 자신들에게 머물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처음부터 줄곧 주시우와 신예린을 지켜보고 있던 이는 임혜린이었다.임혜린은 그들이 장난치듯 티격태격하는 모습, 또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눈에 담았다.임혜린은 이런 주시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늘 세상 사람들 눈에 비친 주시우는 신중하고 예의 바르며 매사에 분명한 선을 지키는 성숙한 남자였다.그런데 지금 신예린 앞에 서 있는 주시우는 웃음이 훨씬 많았고 눈빛도 포근히 물들어 있었다. 어쩐지 아이 같은 면모까지 드러내는 듯 보였다.그건 오직 신예린에게만 허락된 주시우의 표정이었다.임혜린은 조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자신도 뒤처지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단지 신예린이 먼저 다가갔다는 것과 기회를 선점했을 뿐이라고 스스로 위안했다.‘만약 내가 먼저였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몰라.’그리고 주시우가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기에 이미 결혼한 자신에게 선을 그은 것뿐이라고 애써 마음을 달랬다.“자, 이제 출발합시다!”손호명의 외침과 함께 사람들의 기운이 확 달아올랐다.“간다!”순간 신예린이 번개처럼 앞으로 달려 나갔다.방금까지만 해도 차에서 내릴 때는 다리가 후들거려 꼭 여든 살 노인처럼 보였는데 막상 벌칙 이야기가 나오자 신예린이 초인간적인 속도로 뛰어가는 것이 꼭 마트에서 세일하는 달걀이라도 사러 가는 아줌마 같았다.주시우는 황당하면서도 웃음이 나와 발걸음을 재촉해 신예린을 따라붙었다.산은 멀리서 보면 높아 보였지만 막상 오르기 시작하니 콘크리트로 난 길은 그리 가파르지 않았고 생각보다 수월했다.하지만 앞만 보고 달려가던 신예린은 반쯤 올랐을 때 이미 기운이 빠져 허리를 짚으며 헉헉거렸다.“잠깐 쉬어요. 물 좀 마셔야겠어요.”주시우는 메고
Read more
PREV
1
...
3334353637
...
47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