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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1화

신예린이 세수하고 옷까지 갈아입었을 때, 주시우가 준비한 아침도 딱 맞춰 차려져 있었다. 두 사람은 식탁 앞에 마주 앉아 밥을 먹다가 주시우가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말을 꺼냈다.“운전면허는 내가 알아봤는데 병원 근처에 연습장이 있더라. 저녁반도 있어서 네가 퇴근하고 가면 딱 좋을 거 같아. 괜찮으면 내가 바로 등록해 줄까?”신예린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그건 조금 미루는 게 좋을 거 같아요.”“왜? 무슨 일 있어?”“아윤이가 곧 돌아오잖아요. 병원 일도 바쁘고요. 내가 또 따로 시간을 내서 운전 연습까지 하면 아윤이랑 같이 있는 시간이 줄어들 거예요.”주시우는 원래 그녀의 선택에 관여하지 않는 편이었고 그녀가 무얼 제일 우선으로 두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당연히 지금은 주아윤이 신예린에게 가장 중요했다.“그래.”그는 고개를 끄덕였다.신예린은 밥을 먹으면서도 못 참고 중얼거렸다.“아윤이가 곧 온다니, 진짜 꿈만 같아요.”그녀가 설레는 표정을 짓자 주시우는 웃음을 터뜨렸다.병원에 출근해 교대를 마친 후 신예린은 곧장 병실을 돌면서 환자들을 살폈다. 그녀는 한 병실에서 청진기를 아이의 가슴에 대고 잠시 귀 기울인 뒤, 곧 청진기를 벗어 목에 걸고 아이의 보호자에게 말했다.“상태가 많이 좋아졌어요. 오늘은 튜브를 제거해도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준비하고 올 테니 이따가 진행해 드릴게요.”“정말요? 감사합니다, 선생님.”아이의 보호자가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신예린은 환히 웃어 보이고 병실을 나섰다. 그녀는 겉으로는 평소처럼 차분하고 담담해 보이지만 그녀 본인만 어제 자신이 정말 무너졌었음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오래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더 멀기 때문에.그건 신예린이 주시우와 그의 가족에게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이었다. 인생에서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 그걸 넘겨버리는 능력이 필요했다. 수년 동안 이를 악물고 공부했는데 여기서 멈출 수는 없지 않은가.신예린이 그렇게 생각하며 병실 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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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2화

신예린은 아파서 눈물을 흘린 게 아니었다.“지금 뭐 하는 거예요?”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곧 누군가가 그녀의 팔을 붙잡고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이석훈이었다. 그는 신예린의 눈가가 빨개진 걸 보자 동공이 움찔하며 조여들었다.이석훈은 본능적으로 앞에 나서서 그녀를 가려주었고 유가족들을 향해 단호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주치의는 이분이 아니라 접니다. 수술을 집도한 것도 저고요. 문제가 있으면 저한테 말씀하시죠.”“마침 잘 왔어요. 그쪽이 우리 아버지를 죽였잖아요! 그쪽 같은 파렴치한 의사들 때문에 사람이 죽어 나가는 거예요. 이 병원은 사람을 살리는 데가 아니라 죽이는 데입니까!”사망한 환자의 가족 중 한 명이 울분을 터뜨렸다.“치료 방식에 불만이 있으시면 차트를 봉인 요청해서 법원에 제소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병원에서 이런 식으로 소란을 피우신다면 저희도 경찰을 부를 수밖에 없어요.”“불러요! 누가 무서워할 줄 알아요?”“여기서 뭐 하는 겁니까!”그때 심장외과의 과장 진해성이 급히 달려왔고 그 뒤에 몇 명의 병원 보안요원들도 따라붙었다. 그는 먼저 이석훈에게 매섭게 눈을 흘기며 경고했다.“괜히 일 크게 만들지 말고 입 다물어.”그리고 나서 유가족들에게 다가가며 말했다.“저는 심장외과의 과장 진해성입니다. 유가족분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병원에서 소란을 피우시면 다른 환자들의 치료까지 방해됩니다. 하실 말씀이 있으면 제 사무실에 가서 하시죠.”위압적인 체구의 보안요원들을 보자 유가족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러다 결국 투덜거리며 콧방귀를 뀌고는 진해성을 따라 사무실 쪽으로 이동했다.간호사 스테이션은 금세 조용해졌고 간호사 몇 명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숨을 고르다가 신예린에게 다가왔다.“신 선생님, 괜찮으세요?”한 간호사가 허리를 숙여 바닥에 떨어진 청진기를 줍는 그녀를 살폈다.신예린은 금 간 청진기를 손에 들고 고개를 살짝 저었다.“괜찮아요.”“이거 완전히 깨져서 이제 못 쓰겠네요.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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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3화

“여기 뚫었던 자리는 며칠 동안 무리한 운동은 피하시고요. 이틀 정도 더 지켜보셨다가 이상 없으면 퇴원하셔도 됩니다.”신예린은 장갑을 벗으며 환자의 보호자에게 차분히 설명했다.“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보호자는 거듭 고개를 숙였다가 머뭇거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그걸 눈치챈 신예린이 물었다.“왜요? 하고 싶은 말씀 있으세요?”“신 선생님...”보호자는 한참 망설이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아까 간호사 스테이션에서 있었던 일을 저희도 다 들었습니다.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그분들도 부모를 잃은 충격에 순간 이성을 잃은 거겠죠. 하지만 의사가 신이 아닌 이상, 어떻게 환자를 백 퍼센트 살려낼 수 있겠어요. 저희는 선생님이 얼마나 책임감 있게 진료해 주시는지 직접 봤습니다. 우리 아이가 입원해 있는 동안 선생님이 해주신 것들을 다 기억하고 있어요.”보호자가 해주는 말은 위로에 가까웠다.“우리 가족 모두가 선생님께 정말 감사드려요. 선생님이 우리 아이의 목숨을 살려주신 거니까요. 우리 가족을 구해주신 거예요.”그 말이 신예린의 가슴에 잔잔한 물결처럼 번져갔다.의사가 되는 과정은 결국 상처를 받고 또 회복하는 과정을 끝없이 반복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진심 어린 눈빛으로 보호자를 바라보면서 말했다.“고맙습니다. 방금 그 말씀은 저한테 정말 큰 힘이 돼요.”적어도 앞으로 한발 더 나아갈 용기는 생겼다.신예린은 치료 카트를 밀고 병실을 나서다가 마침 마주 오던 청소 아주머니와 마주쳤다.“신 선생님, 카트에 있던 쓰레기는 제가 수거할게요.”아주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네.”신예린은 아주머니가 새 봉투로 갈아 끼우기를 기다렸다가 묶어둔 의료 폐기물 봉투를 큰 자루 안으로 집어넣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그 순간 그 안에 헬로키티 스티커가 붙은 청진기가 있는 것이 스치듯 보였다.“정리 끝났습니다, 신 선생님.”아주머니가 다시 인사했다.“수고하셨어요.”신예린은 치료 카트를 치료실로 밀어 넣고 돌아오던 중, 간호사에게 호출을 받아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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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4화

“예린 씨 자리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렸어요.”머릿속이 새하얘진 신예린은 곧장 쓰레기통 앞으로 가서 발로 받침대를 눌러 뚜껑을 열어봤지만 안은 텅 비어 있었다.그러다가 갑자기 조금 전에 청소 아주머니가 막 쓰레기를 치워갔던 게 떠오르자 그녀는 간호사 스테이션으로 다급히 달려가서 물었다.“혹시 여기 청소하시는 아주머니의 연락처 있어요? 제발 좀 알려주세요.”간호사들은 그녀가 얼마나 초조한지 알아차리고 서둘러 달래줬다.“신 선생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금방 찾아드릴게요.”잠깐 기다리는 동안 신예린은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아줌마가 아직 쓰레기를 처리하지 않았기를, 단 한 줄기의 희망이라도 남아 있기를.“찾았어요!”간호사에게서 번호를 받은 신예린은 곧장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수화기 너머에서 청소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아주머니, 저 신예린이에요.”신예린은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혹시 아까 쓰레기를 치우셨나요? 그 안에 저한테 정말 중요한 게 들어 있어요.”“아이고, 신 선생님. 방금 쓰레기를 다 치워서 쓰레기장에 갖다 놨어요. 보통 이 시간에 각 병동의 쓰레기를 다 치우거든요.”순간 신예린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전화를 끊자마자 그녀는 곧장 아래층으로 달려가려 했다.“신예린 씨.”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이석훈이 얼굴을 찌푸리며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신예린은 여전히 그의 이름이 붙어 있는 낯선 청진기를 꽉 쥐고 있었다. 이석훈이 자신을 붙잡자 그녀는 홱 돌아서더니 그 청진기를 그의 가슴팍에 내던졌다.신예린의 눈가가 빨갛게 물든 걸 본 이석훈은 순간 멍해졌고 무의식적으로 손에 힘이 풀렸다.그녀가 던진 청진기는 바닥에 떨어지면서 소리를 냈고 그의 시야에는 신예린이 달려가는 뒷모습만 남았다.“신 선생님이 저러시는 모습을 처음 봐.”옆에 있는 간호사가 혀를 찼다.“그 청진기가 신 선생님한테 엄청 중요한 거라던데. 몇 년을 썼다잖아.”“혹시 중요한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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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5화

쓰레기장에 도착한 신예린은 눈앞의 산처럼 쌓인 십수 개의 검은 봉투들을 보자 순간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절망이 덮쳐왔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앞으로 나아가려 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그녀의 팔을 잡았다.“신예린 씨, 미쳤어요? 지금 뭐 하는 거예요!”이석훈의 목소리가 뒤에서 울렸다.“뭐 하긴요?”신예린은 그의 손을 홱 뿌리치며 눈을 부릅떴다.“당연히 내 물건을 찾으려고 그러죠!”이석훈은 믿기 힘든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가 아는 신예린은 언제나 냉정하고 이성적인 사람이었다.“저 많은 쓰레기 더미에서 찾는다고 나올 것 같아요? 그리고 예린 씨도 알잖아요, 여기 얼마나 더러운지. 잘못하면 전염병 옮아요.”“상관하지 마요!”신예린은 날카롭게 소리쳤다.그녀의 몸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는데 분노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감정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이석훈도 화가 치밀었지만 눈가가 붉어진 그녀를 보는 순간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말이 다시 삼켜졌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그깟 청진기가 뭐 대수라고. 내가 똑같은 걸 사주면 되잖아요.”늘 그렇듯 그의 말투에는 남을 내려다보는 뉘앙스가 묻어 있었다. 남의 물건을 멋대로 버려 놓고도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태도라니.“누가 이 선생님더러 사달래요?”그 말에 이석훈의 표정이 더 굳어졌다.“나도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예린 씨의 청진기가 고장 났길래 버리고 내 걸 대신 준 건데, 그걸 꼭 그렇게 받아쳐야 돼요?”신예린은 차가운 웃음을 터뜨렸다.“이 선생님의 말씀이 맞아요. 그럼 제가 고마워해야겠네요? 제 물건을 멋대로 버려줘서 감사하고요, 이 선생님의 청진기를 내주셔서 영광이라고 절이라도 해 드릴까요?”“내가 아예 똑같은 걸 사준다니까요! 어차피 다 똑같은 청진기잖아요. 쓸 수 있으면 되는 거지,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해요.”“이 선생님이 뭘 안다고 그래요!”눈이 빨개진 신예린은 이를 악물었다.“세상에 아무 의미 없는 물건이 어딨어요? 의미는 사람이 부여하는 거예요. 그건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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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6화

손호명은 이 주제에 관해서는 말문이 트인 사람처럼 신이 나서 떠들었다.“며칠 전에 내가 너희 주 교수님이랑 사모님이랑 같이 산에 올랐거든? 그런데 진짜 내가 질투 나서 미칠 뻔했어. 주 교수님이랑 사모님이 붙어 다니는데 거의 한 발짝도 안 떨어지는 거야.”“물병 뚜껑까지 직접 따서 입에 대주고 혹시라도 사모님께서 배고프실까 봐 배낭에 먹을 거 꽉꽉 채워놨지, 심지어 부채까지 들고 다니면서 직접 부쳐드리는 거 있지! 완전 프리미엄 케어 서비스더라니까.”“와아!”학생들은 입이 떡 벌어진 채로 감탄을 터뜨렸다.주시우는 그들의 놀림 섞인 반응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조용히 실험실 문을 열고 나섰다.밤이 되자 하늘은 이미 어두워졌고 저 멀리 하늘가에 옅은 빛이 남아 있었다.그때 주시우의 휴대폰이 진동해서 화면을 보니 신예린의 전화였다.입꼬리를 살짝 올린 주시우는 부드럽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예린아, 나 지금 학교에서 출발했어. 조금만 기다려.”“시우 씨...”수화기 너머로 거센 바람 소리와 함께 신예린의 기운 빠진 목소리가 뚜렷하게 들려왔다.주시우의 눈빛이 곧장 날카로워졌다.“왜 그래?”“만약에 내가 잘못한 일이 있더라도 화내지 마요.”그녀의 목소리는 살짝 떨리고 있었다.신예린은 아파트 베란다 난간에 기대서 아래로 지나가는 차들의 불빛을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었고 밤바람은 쉴 새 없이 불어와 그녀의 머리칼을 흔들었다.“내가 언제 너한테 화낸 적이 있어.”주시우의 목소리는 맑고 차분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런 적은 없었던 것 같았다.신예린이 아무 말도 안 하자 그는 곧바로 덧붙였다.“혹시 내가 화낼까 봐 걱정하는 거면 그러지 않아도 돼. 알잖아, 내가 어떻게 너한테 화를 내겠어. 절대 못 하지.”그 한마디에 신예린의 눈물이 그만 터져 나왔다. 그녀는 서러워서 목이 멘 채로 겨우 말을 꺼냈다.“나... 시우 씨가 선물해 준 청진기를 잃어버렸어요. 아무리 찾아도 안 보여요...”그녀의 목소리가 울음에 잠겨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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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7화

주시우는 차분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풍겼고 이석훈은 주시우가 자신을 바라보는 걸 알면서도 태연하게 몇 초 마주보다가 담담히 눈을 돌렸다.“청진기는 저쪽에 있어요. 직접 골라 보세요.”가게 주인이 손가락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감사합니다.”주시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가게 주인이 가리킨 쪽으로 걸어갔다.하지만 이석훈은 휴대폰을 꺼내더니 사진 한 장을 찾아내 가게 주인에게 내밀었다.“사장님, 혹시 여기 이런 모델 있나요?”사진 속에 신예린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 사진은 그가 단톡방에서 찾아낸 것이었는데 예전에 한 환자가 감사의 뜻으로 신예린에게 현수막을 달아줬을 때, 홍보용으로 찍은 사진이었다.사진 속의 신예린은 막 진료를 마친 듯 지친 얼굴로 서 있었고 목에 바로 그 청진기가 걸려 있었다.가게 주인은 사진을 확대해서 유심히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있습니다. 잠시만요. 제가 가져다드릴게요.”그 말에 이석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때 이미 한쪽에서 청진기를 고른 주시우는 그걸 손에 들고 계산대로 걸어왔다. 가게 주인은 청진기를 포장하며 방금 사진을 보여줬던 이석훈에게 말했다.“아까 그 사진의 여자분은 여자 친구예요? 선물해 주려는 거죠?”이석훈은 눈빛이 흔들리더니 한참 후에야 대답했다.“아닙니다.”“여자 친구가 아니면 좋아하는 사람이겠네요? 그럼 노력해야겠네요.”가게 주인의 농담 같은 말에 이석훈은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주시우의 시선은 가게 주인이 포장 중인 청진기에 꽂혔고 그는 그것이 그가 신예린에게 선물했던 모델과 같은 것이란 걸 단번에 알아봤다.“행운을 빕니다.”가게 주인은 봉투를 내밀며 웃었다.“감사합니다.”이석훈은 청진기를 받으며 짧게 인사했다. 그 말이 가게 주인의 축복에 대한 답인지, 아니면 그저 예의상 말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돌아서기 전에 이석훈은 무심결에 옆에 서 있는 남자와 그의 손에 들린 청진기를 흘끗 바라보았다.그는 곧바로 문 쪽으로 걸어갔고 그때 가게 주인이 옆에 있는 남자에게 물었다.“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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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8화

신예린은 멈칫하더니 주시우를 돌아봤다.그는 여유로운 미소를 띠고 있었고 그 눈빛은 마치 ‘네가 생각한 거 맞아’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청진기예요?”신예린의 눈이 살짝 반짝였다.“나 주려고 샀어요?”주시우가 웃었다.“너 말고 누굴 주겠어.”신예린은 기다렸다는 듯 손을 뻗었다.이미 잃어버린 청진기는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똑같은 걸 새로 산다고 해서 그걸 완전히 대신할 순 없었다.그래도 신예린을 진짜로 기쁘게 하는 건 주시우가 늘 그녀의 감정을 제일 먼저 생각해 준다는 사실이었다.그녀가 청진기를 잃어버렸다는 얘기를 들은 순간, 그는 다정한 말로 그녀를 먼저 달래주었고 이렇게 새 청진기까지 사다 준 거다.늘 그렇듯 행동은 말보다 더 마음을 울렸고 신예린은 마음속 깊은 허전함이 차츰 메워지는 걸 느꼈다.그녀가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어 보자 안에 반짝거리는 새 청진기가 들어 있었다.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쓰다듬어 보니 차가운 감촉이 전해졌다.“예전 거랑 똑같은 걸 샀을 줄 알았어요.”“쭈쭈 1호는 그동안 너랑 오래 있었으니 이제 임무를 완수한 거지. 앞으로는 쭈쭈 2호가 너랑 함께할 거고 나중에 3호, 4호도 생길지 모르지.”잠시 멍하니 있던 신예린은 그제야 그의 말뜻을 알아듣고 피식 웃었다.웃다 보니 어느새 눈이 촉촉해진 그녀는 주시우를 와락 끌어안고 얼굴을 그의 가슴팍에 묻었다.“왜 이렇게 잘해줘요?”주시우는 신예린의 눈가를 살며시 닦아주며 부드럽게 말했다.“오늘 밤 네가 나한테 전화했을 때, 나 진짜 이렇게 안아서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어.”“그런데 이건 슬퍼서 우는 거 아니라 행복해서 우는 거예요.”그 말에 주시우는 미소를 지었다.“시우 씨, 진짜 사랑해요.”품 안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새근새근 울렸다.“나도.”“내가 진짜 진짜 진짜 사랑해요.”“나도 나도 나도.”둘은 마치 초등학생처럼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장난쳤고 결국 신예린은 웃음을 터뜨렸다.“시우 씨 진짜 유치해요.”이 모습을 학생들이 봤으면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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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9화

주시우는 뭔가 떠오른 듯 물었다.“아까 청진기가 고장 났다고 했지? 왜 고장 난 거야?”그 말에 신예린은 눈길을 피하며 말끝을 흐렸지만 주시우가 어떤 사람인데, 그녀가 뭔가 숨기고 있는 걸 바로 눈치챘다.“솔직하게 말해.”그 한마디에 신예린은 괜히 취조받는 것처럼 긴장됐다.“어제 돌아가신 환자의 보호자가 병동에 와서 소란을 피우셨는데 조금 실랑이가 있었어요. 그때 청진기가 밟혀서...”그 말을 듣고 주시우는 턱을 꽉 물었다.“다치진 않았어?”“손가락만 살짝 멍들었어요.”신예린은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청진기를 주우려고 손을 뻗었는데 같이 밟혔거든요.”그녀의 손가락에 퍼진 멍을 본 주시우는 순간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신예린의 손을 잡고 자기 입술 가까이 가져가 살며시 숨을 불었다.그 행동에 신예린은 멍해졌고 그가 주아윤을 달래줄 때도 이렇게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이 손은 사람을 살리는 손인데 이렇게 막 쓰면 어떡해.”주시우는 그녀를 나무라듯 말했다.“청진기가 떨어지는 걸 보고 그냥 반사적으로 잡으려고 했어요.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청진기는 다시 사면 되지만 네 손은 다시 못 사. 다치면 어쩔 뻔했어?”신예린은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잘못했어요. 화내지 마요.”그 모습에 주시우는 잠시 말없이 그녀를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화내는 거 아니야. 그냥... 네가 의사 되려고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데, 네 손이 그렇게 된 거 보면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그래.”그의 말에 신예린은 코가 찡해졌다. 주시우는 늘 자기보다 그녀를 먼저 생각했다.“네...”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서 그 일은 어떻게 처리됐어?”“과장님이랑 행정팀에서 나서서 보호자랑 얘기했어요. 다시 찾아올 일은 없을 거예요.”주시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병원에서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날 수 있으니까 항상 조심해. 환자를 살리는 건 좋은 일이지만 사람 마음은 원래 복잡해. 네가 아무리 진심을 다해도 항상 보답받을 수 있는 건 아니야. 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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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0화

신예린은 얼굴까지 빨개져서 손으로 그를 밀어내려 했다.“움직이지 마.”주시우는 숨을 들이쉬며 그녀를 바라봤고 그의 이글이글한 눈동자가 당장이라도 신예린을 삼켜버릴 듯했다.눈물이 맺힌 신예린은 입술을 떨며 말했다.“움직이지 말아야 할 건 시우 씨잖아요.”사실 그녀도 이런 시간이 좋지만 문제는 주시우의 체력이 너무 좋았다. 매번 신예린은 힘들어서 항복하지만 그는 여유만만했다. 도대체 누가 이기고 있는 건지...주시우는 그녀의 아랫입술을 손가락으로 눌렀다.“또 나를 아빠라고 부를 거야?”신예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빨리 끝냈으면 좋겠어?”그녀는 마치 도리깨질하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나를 뭐라고 불러야겠어?”망설일 틈도 없이 대답이 튀어나왔다.“여보.”“여보.”“여보.”신예린의 떨리는 목소리는 마치 고양이의 울음소리 같았다.주시우는 침을 꿀꺽 삼키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곧 끝나.”그날 밤, 신예린은 ‘곧’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사람을 속이는 말인지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남자들이 침대에서 하는 말은 믿으면 안 된다는 것도.다음 날, 그녀는 허벅지가 뻐근해 다리를 절룩이며 병동에 들어섰고 동료들은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신 선생님, 다리 왜 그래요?”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신예린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아, 별거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그녀는 억지로 다리를 펴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걸으며 사무실로 들어갔다.사무실 안에 이석훈밖에 없었고 신예린은 그와 잠깐 눈이 마주쳤지만 바로 시선을 돌렸다. 예전 같으면 그래도 체면상 인사 정도는 했겠지만 지금은 속에 맺힌 게 있어서 그런 여유조차 나오지 않았다.그녀의 차가운 태도에 이석훈은 무언가 말하려다가 결국 입을 다물었다.사무실에서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 ‘타닥타닥’ 울렸고 이석훈은 괜히 자신이 그 키보드처럼 신예린에게 두들겨 맞는 기분이 들었다.책상 서랍에 넣어둔 봉투가 떠오른 그는 그것을 꺼내 들고 일어나려다가 마침 다른 동료 두 명이 들어오자 다시 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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