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장에 도착한 신예린은 눈앞의 산처럼 쌓인 십수 개의 검은 봉투들을 보자 순간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절망이 덮쳐왔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앞으로 나아가려 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그녀의 팔을 잡았다.“신예린 씨, 미쳤어요? 지금 뭐 하는 거예요!”이석훈의 목소리가 뒤에서 울렸다.“뭐 하긴요?”신예린은 그의 손을 홱 뿌리치며 눈을 부릅떴다.“당연히 내 물건을 찾으려고 그러죠!”이석훈은 믿기 힘든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가 아는 신예린은 언제나 냉정하고 이성적인 사람이었다.“저 많은 쓰레기 더미에서 찾는다고 나올 것 같아요? 그리고 예린 씨도 알잖아요, 여기 얼마나 더러운지. 잘못하면 전염병 옮아요.”“상관하지 마요!”신예린은 날카롭게 소리쳤다.그녀의 몸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는데 분노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감정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이석훈도 화가 치밀었지만 눈가가 붉어진 그녀를 보는 순간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말이 다시 삼켜졌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그깟 청진기가 뭐 대수라고. 내가 똑같은 걸 사주면 되잖아요.”늘 그렇듯 그의 말투에는 남을 내려다보는 뉘앙스가 묻어 있었다. 남의 물건을 멋대로 버려 놓고도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태도라니.“누가 이 선생님더러 사달래요?”그 말에 이석훈의 표정이 더 굳어졌다.“나도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예린 씨의 청진기가 고장 났길래 버리고 내 걸 대신 준 건데, 그걸 꼭 그렇게 받아쳐야 돼요?”신예린은 차가운 웃음을 터뜨렸다.“이 선생님의 말씀이 맞아요. 그럼 제가 고마워해야겠네요? 제 물건을 멋대로 버려줘서 감사하고요, 이 선생님의 청진기를 내주셔서 영광이라고 절이라도 해 드릴까요?”“내가 아예 똑같은 걸 사준다니까요! 어차피 다 똑같은 청진기잖아요. 쓸 수 있으면 되는 거지,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해요.”“이 선생님이 뭘 안다고 그래요!”눈이 빨개진 신예린은 이를 악물었다.“세상에 아무 의미 없는 물건이 어딨어요? 의미는 사람이 부여하는 거예요. 그건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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