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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1화

“하아... 우리 부모님도 주시우처럼만 통했으면 얼마나 좋을까.”송지유의 목소리는 울먹거렸다.신예린은 천천히 답했다.“아저씨, 아줌마께서 무정해서가 아니야. 그분들 세대는 결혼이 여자한테 마지막 종착역이라고 배웠던 거지. 생각이 다르면 행동도 달라지는 거고 그걸 탓할 수는 없어.”송지유는 깊은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역시 공부를 많이 해야 해. 난 이런 말로 부모님을 설득해 본 적도 없는데.”신예린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네가 말한다 해도 듣지 않을걸.”그 말에 두 사람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수십 년 쌓여온 부모 세대의 고정관념이 몇 마디 말로 바뀔 리 없었다. 사실 송지유 같은 집안은 흔했고 결국에는 부모 세대와 지금 세대의 생각이 부딪치는 문제일 뿐이었다.“아까까진 괜히 원망도 했는데 네 얘기 듣고 나니까 좀 풀린다. 예린아, 넌 점점 교수님이랑 닮아가는 것 같아.”신예린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장난스럽게 답했다.“가까이 있으면 닮는다잖아.”그때 마침 복도 저편에서 이석훈이 걸어오고 있었다. 입술이 살짝 움직이며 인사를 건네려는 듯 보였지만 신예린은 못 본 척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휴대폰에서는 여전히 송지유의 목소리가 이어졌다.“얘기하니까 목이 다 마르네. 나 밀크티 하나 시켜야겠다.”신예린도 피식 웃었다.“네 말 들으니까 나도 마시고 싶네. 생각해 보니 나도 밀크티 되게 오래 안 마셨어.”“내가 시켜줄게. 주소 보내.”“좋지.”신예린은 거리낌 없이 대답하며 사무실로 들어섰다. 그녀는 스쳐 지나간 이석훈이 뒤돌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건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밀크티라니...’...“똑똑.”간호사 오혜진이 고개를 들자 이석훈이 간호사실 앞에 서 있었다.“이 선생님, 무슨 일이세요?” 오혜진이 묻자 이석훈은 헛기침하고는 어색하게 말을 꺼냈다.“오늘은 제가 밀크티 쏠게요. 이따 환자 약 교체 들어가야 하니까 간호사실 식구들 뭐 마실지 좀 정리해 줘요. 돈은 제가 보낼게요.”오혜진은 눈을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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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2화

“이 선생님, 고맙습니다.”간호사들이 거의 동시에 목소리를 맞추며 말했다.이석훈은 가볍게 고개만 끄덕이고는 자리에 앉으려다 오혜진의 말을 들었다.“이 선생님, 의사 선생님들 밀크티는 제가 책상 위에 올려놨어요. 주문할 때 몇 분은 자리에 안 계셔서 제가 대신 취향 맞춰서 골랐습니다.”“알겠어요.”짧게 답한 이석훈은 곧장 사무실로 들어갔고 안에는 신예린만 남아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음성 메시지를 보내며 다른 과에서 온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책상 위에 놓인 밀크티 하나가 눈에 들어오자 이석훈의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가 스쳤다.‘이거 하나 주려고... 결국 온 과의 사람들한테 다 사주게 된 거네.’이석훈은 자신의 세심함에 은근히 뿌듯함이 밀려왔다.자리에 앉은 뒤에도 이석훈은 내내 신예린 쪽을 힐끔거리며 눈길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신예린은 바쁘게 일만 하느라 밀크티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바로 그때, 또 다른 발걸음 소리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이석훈은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돌렸다.소아과의 소지훈이었다. 얼마 전 간호사들 사이에서 그가 신예린을 좋아한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이런 때 나타날 줄이야.이석훈의 미간이 서서히 좁혀졌다.“신예린 씨.”소지훈은 신예린 자리 앞으로 다가와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내려놓았다.“어제 회진 오셨을 때 두고 간 자료예요. 우리 과에서 발견해서 마침 오는 길이라 들고 왔습니다.”“쳇!”이석훈은 키보드를 치던 손끝에서 작게 흘러나온 소리를 숨기지 못했다.‘마침 가져온 거라고? 일부러 가져온 거겠지.’“아, 그래서 아침 내내 못 찾았네요. 고마워요.”신예린은 잽싸게 자료를 서랍에 넣으며 웃었다.소지훈은 잠시 주위를 살피더니 이정현의 책상 쪽을 힐끔 보고는 목소리를 낮췄다.“아직 안 돌아왔어요?”신예린도 작은 소리로 답했다.“아마도 오늘 오후쯤에 복귀할 거예요.”“제 일은... 잊지 말고 꼭 챙겨줘야 해요.”“그럼요. 걱정하지 마세요.”이석훈은 그들의 모습에 눈빛이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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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3화

신예린은 문득 낮의 밀크티 사건이 떠올라 휴대폰을 켜고 송지유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너 진짜 몇 년을 같이 다녔는데 내 취향을 까먹을 수가 있냐. 배은망덕한 인간아.]그러자 곧장 송지유의 답장이 날아왔다.[???][아직 도착도 안 했는데 네가 어떻게 알아?][아직 안 왔다고?]신예린은 눈이 동그래졌다.[그렇다니까. 너랑 통화 끝내고 화장실 좀 갔다가 확인했는데 배달 기사님이 아직 백 미터 정도 남았더라.]‘그렇다면 방금 책상 위에 있던 밀크티는 누구 거였단 말이지? 설마 다른 사람 거 잘못 놓은 걸 내가 가져갔던 걸까.’신예린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간호사실로 향했다. 마침 탕비대 위에는 이미 반쯤 비워진 밀크티 몇 잔이 놓여 있었고 약을 들고 가던 황이슬이 서둘러 지나가고 있었다.“이슬 씨, 혹시 제 책상에 있던 밀크티는 누구 건지 알아요?”그러자 황이슬은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며 대꾸했다.“아, 이 선생님이 오늘 쏜 거예요. 선생님 없으실 때 다 주문해서 책상에 올려뒀어요.”“이... 선생님이요?”신예린은 순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혹시 이정현 선생님이 돌아오신 거예요?”“아니요. 이석훈 선생님이요.”“...”신예린은 불현듯 낮에 이석훈이 의자를 박차고 나가던 장면이 떠올랐다.‘설마 이석훈이 사준 밀크티를 내가 다른 사람에게 줘 버린 걸 보고 화가 난 건가?’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럴 일은 없었다.‘어차피 날 주려고 산 거라면, 내가 어떻게 하든 내 권한 아니야?’신예린은 이석훈이 그 정도 일로 화를 낼 사람은 아니라고 여겼다.신예린은 애써 그런 생각을 떨쳐내고 다시 일에 집중했다.그날 오후, 이석훈과 신예린은 우연히 같은 수술에 함께 들어가야 했다. 손 씻는 공간에서 마주쳤을 때, 이석훈의 표정은 다시 굳어 있었다.신예린은 이석훈의 냉랭한 얼굴을 보고도 일부러 못 본 체하며 묵묵히 손을 씻었다.물소리와 비누질 소리만 가득한 공간은 유난히 적막했다.수술실 안, 모두가 차분히 자기 몫의 일을 해 나갔다.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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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4화

그 순간 신예린이 부른 이름은 이정현이었다.알고 보니 돌아온 건 신예린이 말을 건넨 건 이정현이지 이석훈이 아니었다.괜히 태양이 서쪽에서 떴다고 착각했던 이석훈의 반응이 이제야 이해되었다.이정현은 고개를 돌려 신예린을 보더니 미소 지었다.“신 선생님, 오랜만이네요.”신예린에게는 정말이지 오래 기다린 만남이었다.“정말 오랜만이에요. 어디 가는 길이에요?”“방금 복귀했으니 일단 과장님께 보고하러 갔다 올게요.”“네. 다녀오세요.”짧은 대화 후, 이정현은 바로 과장실로 향했다.잠시 뒤, 복도 끝에 있는 작은 발코니에서 석양을 찍고 있는 신예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금빛이 번지듯 신예린의 어깨와 얼굴을 감쌌고 그 순간, 미소 짓는 신예린의 곡선은 더욱 눈부시게 빛났다.그때 뜻밖의 장면이 이정현의 시선을 붙잡았다.사무실 안, 유리 너머에서 이석훈이 신예린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러다 이정현이 들어선 걸 눈치채자 이석훈은 황급히 시선을 거두고 다시 업무에 몰두하는 척했다.‘재밌네.’이정현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발코니 문을 열고 나갔다.바깥 공기는 약간 서늘했고 아래쪽 도로에서는 경적이 울려왔다.“사진 찍고 있었어요?”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신예린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아, 네.”신예린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마침 찍은 사진은 곧장 주시우에게 전송했다.‘이런 건 꼭 같이 보고 싶어.’이정현은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난간에 기대어 석양을 바라보았다.“자, 이제 말해봐요. 저를 찾은 이유가 뭐죠?”“어떻게 알았어요?”“감이지 뭐겠어요. 그냥 반가운 정도라면 그렇게까지 들뜰 이유가 없잖아요.”“보고 싶어서 그런 걸 수도 있잖아요.”“어머, 신 선생님이 이렇게 말 잘하는 줄 몰랐는데요?”이정현은 웃으며 장난스럽게 어깨에 손을 얹었다.순간 가까이 다가온 이정현의 미모에 신예린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이래서 소지훈이 좋아했구나. 나라도 순간 흔들리겠는데... 안 돼, 나에게는 주시우가 있잖아.’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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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5화

“제가 직접 들었어요. 그 아이가 두 사람을 아빠라고 부르더라니까요. 요즘은 남자 커플도 입양해서 애를 키우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도 그냥 얘기로만 들었을 뿐이지... 설마 이런 일이 내 눈앞에서 벌어질 줄은 몰랐어요.”신예린은 눈을 깜빡이며 점점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남자 둘? 아이까지 있다고?’이건 마치 구경하던 이야기가 갑자기 자기 일이 된 기분이었다.“잠, 잠깐만요.”신예린은 급히 이정현의 팔을 붙잡았다.“그 아이가 몇 살쯤 돼 보였어요?”“제가 본 건 1년 전인데 그때 아마도 한 서너 살 정도였을걸요?”신예린은 말없이 휴대폰을 들어 화면을 켜고 사진을 보여주었다.“혹시... 그때 소 선생님이랑 영화를 보러 간다는 남자가 이 사람이었어요?”사진 속 얼굴을 본 순간, 이정현은 바로 알아봤다.이미 1년이 지났는데도 잘생긴 외모가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있었다.그때도 잘생긴 남자는 다 남자들이 데려간다며 농담까지 했었다.“맞아요! 바로 이 사람이에요.”그러다 사진 속 또 다른 인물을 보자 이정현의 눈이 동그래졌다.“어라? 이건... 신 선생님 아니에요? 그럼 신 선생님은 이 남자를 아는 거예요?”“알다마다요. 너무 잘 알죠.”신예린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튀어나왔다.“이 사람은... 제 남편이에요.”“...”이정현의 입은 순식간에 동그랗게 벌어졌다.“그리고 방금 말한 그 아이는 제 아이예요.”이번에 이정현은 입이 더 크게 벌어졌다.“...”신예린은 이정현을 똑바로 보며 천천히 말했다.“이제 이해했죠?”이정현은 혼이 반쯤 날아간 듯한 얼굴로 물었다.“지... 진짜 결혼했어요?”신예린은 고개를 끄덕였다.“아이까지 있다고요?”그러자 신예린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설마 저 남자한테 속아서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은 거예요?”“...”‘도대체 무슨 상상력을 발휘하면 이런 결론이 나오는 걸까.’신예린은 허탈하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그런데 신예린의 표정을 본 이정현은 오히려 더 흥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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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6화

신예린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아무도 제게 묻지 않았는데 저도 이유 없이 갑자기 결혼했다고 꺼낼 수는 없잖아요.”이정현이 사무실 안쪽에 있는 이석훈을 힐끗 보더니 아까 그의 시선이 떠올랐는지 의미심장하게 미소를 지었다.“그러게요. 그냥 이렇게 있는 게 제일 좋아요. 일부러 말할 필요도 없고요.”신예린은 이정현의 웃음이 왠지 교활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신경 쓸 틈도 없이 소지훈을 이어주려는 생각으로 얼른 화제를 돌렸다.“오해가 풀렸으니 그러면 소 선생님에 대해서는...”그 순간 이정현이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말했다.“어머나, 환자 한 명 보러 가는 걸 깜빡했네요. 얼른 갔다 올게요. 신 선생님도 할 일 하세요.”이정현은 말끝을 내리고는 신예린의 손을 뿌리치고 과장실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신예린은 이정현이 핑계를 댄다는 걸 알면서도 그저 발코니에 남아 웃음을 참지 못했다....“하하.”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주시우는 신예린이 소파에 앉아 몸을 웅크리고 웃는 모습을 보고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신예린은 이정현의 오해 이야기를 하며 계속 웃음을 터뜨렸다.“하하, 이정현 선생님이 당신들이 동성애자라고 들었대요.”신예린은 웃음을 그치지 못한 채 주시우를 가리켰다.주시우는 휴대전화를 들고 상대편에게 말했다.“들었어?”휴대전화 너머로 소지훈의 목소리가 들렸다.“들었어.”소지훈은 화가 나서 다소 이를 갈 듯한 어조였다.“왜 날 피하려고 했는지 이제 알겠네. 주시우, 내 청춘이랑 명예를 어떻게 보상할래?”소지훈이 투덜댔다.“오해를 만든 건 내가 아니야.”주시우는 태연하게 답했다.“상관없다 해도 넌 책임져야 해. 아니, 너희 가족 세 식구가 다 책임지는 걸로 하자.”소지훈은 목소리를 높였다.신예린은 웃음을 멈추고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어떻게 책임지라는 거예요?”“앞으로 제가 외롭게 줄곧 솔로를 탈출 못 하면 제수씨네 집으로 가서 같이 살 거예요.”소지훈은 과장스러운 말투로 말하자 주시우와 신예린은 서로 눈빛을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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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7화

주시우의 낮은 목소리가 마치 깃털처럼 심장을 스치자 신예린의 얼굴이 순간 붉게 달아올랐다. 이미 몸을 기울인 주시우의 입술이 다가오려는 찰나, 신예린이 갑자기 외쳤다.“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그러고는 황급히 덧붙였다.“목이 터지겠어요!”순간 주시우의 동작이 멈췄다.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신예린을 바라보자 신예린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변명했다.“제가... 목이 터지라 소리치면 정말 누가 저를 구해주러 오는지 시험해 보려 했어요.”“...”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주시우는 잠시 말을 잃었다.신예린의 이런 엉뚱한 발상은 그조차도 종종 감당하기 어려웠다. 마치 어제, 그의 복근이 모델만큼 탄탄하지 않다고 놀리던 순간처럼 말이다. 그 말은 은근히 주시우의 마음을 찌른 바람에 아직도 상처가 남아 있었다.그 생각이 다시 떠오르자 주시우의 시선은 점점 신예린의 입술에 고정되었고 이내 억눌린 충동처럼 몸을 숙이며 그녀의 입술을 깨물려 했다.“잠, 잠깐만요.”신예린은 두 손을 주시우의 가슴에 대며 버텼고 까만 눈동자에는 이미 촉촉한 빛이 번져 있었다.주시우의 눈빛이 좁아지며 낮게 흘러내렸다.“계속 소리칠 거야? 목이 터지라 외쳐도 아무도 안 와.”“푸흣.”신예린은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주시우의 진지한 얼굴과 그 말이 묘하게 어울려 더더욱 우스웠다.하지만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고 주시우는 신예린의 손목을 가볍게 머리 위로 끌어올려 단단히 제압했다. 큰 손가락 사이로 갇힌 가느다란 손목은 빠져나올 틈이 없었다.“읍...”신예린은 곧장 주시우의 입술에 붙잡혔고 하려던 말도 뜨겁게 들이닥친 입맞춤에 삼켜졌다.뜨거운 숨결이 이어지고 차례차례 이어지는 키스는 귀 끝까지 퍼져갔다. 신예린의 귀가 벌겋게 물든 순간, 주시우는 흥미롭다는 듯 가볍게 혀끝을 스쳤다.“아!”신예린의 몸이 반사적으로 떨렸고 주시우는 바로 신예린의 귀끝을 입술에 물고 천천히 비볐다. 그러자 신예린의 붉어진 귀는 눈앞에서 점점 더 짙어졌다.“주... 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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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8화

주시우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난 내 아내가 매일 술에 취했으면 좋겠어.”술에 취한 신예린은 지금보다 훨씬 대담했기 때문이었다.“그럼 저보고 주정뱅이가 되라는 거잖아요.”신예린이 장난스럽게 눈을 흘겼다.“내 앞에서만 마시면 되지.”대놓고 심보가 드러난 주시우의 말에 신예린은 웃음을 터뜨렸다.“그런 욕심은 혼자만 꾸세요.”주시우의 눈빛이 한층 깊어졌다.“정말 여기서는 안 되겠어?”신예린이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주시우는 그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 맨발로 차가운 바닥을 밟으며 방 안으로 향하는 주시우의 품 안에서 신예린의 심장은 쿵쿵 뛰었다. 순간 일부러 그의 목덜미에 살짝 이를 박았다.“예린아.”주시우의 몸이 잠시 긴장하다가 곧 낮게 내뱉었다.“지금 학생들은 방학이지만 실험실에 남아 있는 애들도 있어. 정말 다른 사람에게 다 알리게 하고 싶어? 주 교수의 부인님이 폭력적이라고?”신예린은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저야 뭐가 무섭겠어요. 체면 구기는 건 당신이죠. 학생들이야 주 교수님이 아내 하나도 못 이긴다고 생각하겠죠.”그 말에 주시우의 목덜미에 남은 이빨 자국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신예린은 흡족하다는 듯 다가가 살짝 그 자리를 핥았다.부드러운 촉감에 주시우의 목울대가 요동쳤고 주시우의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다.침대 위에 신예린을 내려놓는 순간, 주시우는 바로 그녀를 덮쳤다.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자 방 안은 순식간에 뜨겁게 달아올랐다.“내가 널 이길 수 있는지 없는지... 직접 해보면 되겠네.”신예린은 지지 않겠다는 듯 그의 입술을 물어뜯었다.“그럼... 해보죠.”방 안은 고요한 불빛에 잠겼지만 타오르는 열기는 숨길 길이 없었다....다음 날 아침 식탁.신예린은 조심스럽게 죽을 떠먹다 주시우의 입가를 흘끗 보고는 키득거렸다. 주시우의 입술 끝이 살짝 터져 있었기 때문이다.당연히 주시우도 신예린의 시선을 알아챘다. 무심한 듯 죽을 들이켰지만 상처에 닿자 작은 신음이 흘러나왔다.그 순간 또다시 신예린의 웃음소리가 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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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9화

다행히도 신예린은 원래 근무할 때 마스크를 써야 했기에 하루 종일 착용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다만 물을 마실 때조차 사람들 눈치를 살피며 몰래 해야 했는데 혹시라도 누군가 입술을 보고 무슨 일이냐고 물으면 차마 이렇게 말할 수도 없었다.‘아, 남편이랑 입씨름하다가 물린 거예요. 별일 아니에요.’신예린은 생각만 해도 얼굴이 달아올라 숨고 싶었고 게다가 가만히 돌이켜 보면 애초에 장난을 친 건 자신이었으니 괜히 더 부끄럽기도 했다.점심 식사 시간이 되자 이정현이 같이 가자고 해서 신예린은 흔쾌히 동의했고 둘은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남편분은 무슨 일을 하셔요?”이정현이 가볍게 물었다.“선생님이에요.”“어느 학교?”“주경시 화정대학교 의대에서요.”“어머.”이정현이 눈썹을 치켜올렸다.“우리 병원에도 거기 출신이 꽤 있거든요. 다들 우수하다던데요.”“네, 뭐... 괜찮죠.”사실 주시우가 뛰어난 건 부정할 수 없었지만 밖에서는 괜히 나서 자랑할 수 없으니 신예린은 겸손하게만 대답했다.“잠깐만요.”이정현이 뭔가 눈치를 챈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신 선생님도 예전에 그 학교 다니지 않았어요?”신예린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두 분은 사제지간인가요?”신예린이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자 이정현은 조심스레 물었다.“예린 씨가 진짜 속은 건 아니죠?”처음엔 결혼을 걱정하더니 이번에는 사랑을 걱정하는 눈치였다. 어쩔 수 없는 게 사람들 머릿속에 박힌 사제 연애라는 선입견 때문이었다. 한쪽은 선생, 다른 한쪽은 학생이니 애초에 위치가 불균형한 관계라 학생이 쉽게 끌려 들어간다고들 생각했다.그러자 신예린이 부드럽게 웃었다.“제 남편분은 좋은 사람이에요. 제가 본 사람 중에 가장 좋은 사람이에요.”그 말에 이정현은 가만히 신예린을 바라봤다. 신예린의 입술에 번진 미소가 거짓이 아님을 말해 주고 있었다. 물은 차갑고 따뜻함은 오직 스스로 아는 법이었으니 누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는 가장 가까이 있는 이만이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외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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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0화

“주 교수님, 밥 먹는 자리인데 아직도 마스크 안 벗으세요?”맞은편에 앉아 있던 손호명은 도시락을 펼치며 툭 던졌다.아침 내내 마스크를 붙이고 있던 주시우는 물조차 거의 마시지 않았다.손호명의 말을 들은 주시우의 눈빛이 잠시 흔들리더니 마지못해 천천히 마스크 끈을 벗어 내렸다.그러자 드러난 건 잘생긴 얼굴 한쪽에 선명하게 남은 상처가 나타났고 마치 흠잡을 데 없는 옥에 금이 간 듯 입가에 뚜렷이 보였다.함께 밥을 먹던 실험실 학생들이 일제히 눈을 크게 뜨며 가까이 다가왔다.수많은 시선이 꽂히자 주시우는 어색하게 대답을 내뱉었다.“입안에 열이 올라서 그래.”“오.”“오...”“오!”학생들이 거의 동시에 맞장구를 쳤고 손호명은 입꼬리를 올리며 은근히 말했다.“보아하니 아주 뜨겁게 열이 오르신 것 같은데요?”그때 눈치 없는 학생 하나가 한참 상처를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근데 이거... 열이 오른 거 같진 않고 누가 깨문 것 같은데요.”말이 끝나기도 전에 옆자리에 있던 학생이 팔꿈치로 꾹 찔렀다.“주 교수님이 열 때문에 그렇다고 하셨잖아. 설마 교수님이 거짓말이라도 하실 분이겠어?”“맞아. 이건 딱 봐도 열이 오른 거야. 절대 누구한테 물린 거 아니야.”“그러게. 대체 누가 감히 우리 주 교수님을 물었지? 그게 더 말이 안 되지!”“넌 열도 나지 않아 봤으면서 뭘 아는 척이야.”손호명이 눈치 없는 학생들을 향해 욕하자 그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손호명은 그 와중에 반찬을 주시우의 앞으로 슬쩍 밀어주며 말했다.“주 교수님, 열 올랐을 때는 맵고 기름진 건 피하시고 이런 담백한 걸 드세요.”“….”주시우는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그 시각, 신예린은 남편이 이런 곤란한 상황에 부닥쳐 있다는 건 꿈에도 모른 채 다른 일에 몰두해 있었다.식당에서 이정현과 마주 앉아 있던 사람이 다름 아닌 소지훈이었기 때문이다.이정현은 그 순간 며칠 전 자신이 했던 동성애자 오해 사건이 떠올라 괜히 숨이 막히듯 불편해졌다.“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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