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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포인트의 모든 챕터: 챕터 371 - 챕터 380

454 챕터

제371화

신예린은 이미 새 청진기를 장만했다.그런데 이석훈은 어쩐지 그 청진기의 디자인이 낯설지 않았다.“새로 샀군요.”그가 자신의 새 청진기를 바라보는 것을 발견하고 신예린은 마치 또 그에게 빼앗길까 봐 걱정되는 것처럼 황급히 청진기를 집어 흰 가운의 주머니에 쏙 넣어버렸다.그 행동이 괜히 이석훈의 가슴을 쿡 찌르는 것 같았고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내가 혼자 착각한 거였네요.”그 말만 남기고 이석훈은 봉투를 더 꽉 쥐며 돌아서서 신예린의 자리를 떠났다.신예린은 입술을 살짝 삐죽이며 중얼거렸다.“처음부터 이 선생님이 착각하신 거잖아요.”솔직히 말해 주시우가 새 청진기를 안 사줬어도 그녀는 이석훈이 사 준 걸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루 종일 목에 걸고 다녀야 하는 물건인데 그가 사줬다는 걸 생각하면 짜증이 날 거니까.갑자기 사무실 분위기가 싸늘해졌고 문 앞에 있던 두 명의 간호사는 숨도 크게 못 쉬고 살금살금 빠져나와 간호사 스테이션으로 돌아왔다.사실 그들은 물 마시러 당직실에 가던 길이었는데 하필 심장외과 사무실을 지나가다가 그 장면을 목격한 것이었다.서로 눈을 마주친 두 간호사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속삭였다.“신 선생님이랑 이석훈 선생님, 방금 싸운 거야?”“이석훈 선생님이 신 선생님의 청진기를 버렸다면서요. 새로 하나 사서 갖다준 거 같던데요.”“그런데 신 선생님이 말씀하신 게 맞는 거 같아. 사과했다고 무조건 용서해야 되는 건 아니잖아.”“이석훈 선생님 완전 망신당했네요.”“다른 사람이었으면 청진기 사 주고도 저렇게 거절당했으면 벌써 욱해서 난리 쳤을걸?”그 간호사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진짜 신 선생님만 이석훈 선생님께 맞설 수 있는 거 같아.”“저 이제 확신했어요. 이석훈 선생님은 신 선생님을 좋아해요.”“좋아하는데 저렇게 싹수없게 군다고?”“본인이 신 선생님을 좋아하는 것도 모를 수 있어요. 그런 남자들은 꼭 자존심만 세서 하늘이 무너져도 자기 말이 맞다고 우긴다니까요.”“그런데 신 선생님은 그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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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2화

빵과 과자가 동시에 신예린의 앞으로 내밀어졌다.이석훈의 검은 눈동자가 흔들렸고 그는 마치 신예린이 무엇을 고를지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듯 기다리고 있었다.김 선생님은 그 분위기를 눈치채고 황급히 거들었다.“이석훈 선생님의 빵이 훨씬 크네요. 그거 먹으면 배 든든할 테니까 그거 드세요.”그러면서 그가 과자를 거둬들이려는 순간, 과자가 쏙 하고 빠져나갔다.“괜찮아요.”신예린이 담담하게 말했다.“배달 시킨 게 금방 올 거라서 너무 배부르면 안 돼요. 과자 하나면 딱 좋아요.”말을 마친 그녀는 예의 바르게 고개까지 끄덕였다.“감사합니다, 이석훈 선생님. 빵은 선생님이 드세요.”김 선생님은 이석훈을 흘끗 보았는데 그는 턱을 꽉 물고 있었다.다른 사람이었으면 신예린은 두 개 다 받고 웃으며 인사했을 텐데, 이상하게 이석훈 앞에서는 그런 척도 안 했다.아까 복도에서 간호사들이 한 말이 떠오르자 김 선생님은 둘 사이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이석훈 선생님, 완전히 찍혔네.’이석훈은 빵을 다시 자기 쪽으로 가져왔다. 곧 들려오는 과자 포장을 뜯는 소리가 괜히 그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고 마치 돌덩이가 하나 올려진 것처럼 이유 모를 불쾌함이 치밀었다.퇴근 시간이 거의 될 때 신예린의 휴대폰이 울렸고 그녀가 전화를 받자 송지유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예린아, 내가 지금 어딨는지 맞혀 봐!”그 말만 들어도 신예린은 감이 왔다.“벌써 돌아왔어?”“응! 원래는 며칠 뒤에 들어오려고 했는데 일정이 당겨져서 오늘 귀국했지 뭐야.”전화기 너머로 공항 방송 소리 같은 게 희미하게 들렸다.“오늘 저녁 시간 돼? 우리 만나자!”정말 너무 오랜만이었다. 신예린은 바로 대답했다.“좋아! 나 먼저 시우 씨한테 말 좀 하고.”“어머, 역시 주 교수님한테 먼저 보고해야 하는구나.”송지유는 늘 하던 대로 장난을 쳤고 신예린은 웃으며 맞받았다.“당연하지. 요즘 거의 매일 데리러 오는데 미리 말 안 하면 헛걸음하잖아.”“아이고, 나 이제 막 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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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3화

주시우는 손호명을 흘깃 바라봤다. 그 깊은 눈빛에 손호명은 더더욱 확신이 섰다.“괜찮아요. 부부가 같이 살다 보면 다투는 날도 있죠. 그럴 땐 그냥 달래 주면 됩니다. 혹시 예린 씨가 두리안을 좋아하나요? 오늘 퇴근길에 하나 사서 들어가세요. 과육은 예린 씨한테 먹이고 껍질은 무릎 꿇을 때 쓰면 돼요.”주시우는 여전히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손 교수님은 경험이 많으신 것 같네요.”손호명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쓴웃음을 지었다.“제 전 여자 친구가 그랬어요. 저 그때 무릎 꿇다가 관절염까지 왔습니다.”“...”주시우는 속으로 생각했다.‘내 아내는 그런 취향이 없어서 다행이야. 역시 예린이는 세상에서 제일 다정한 아내야.’...“예린아!”“지유야!”약속 장소에서 마주친 두 사람은 오랜만에 고향 친구를 만난 것처럼 두 눈이 촉촉해져서 덥석 껴안았다. 식당 안의 손님들이 다 쳐다볼 정도로 ‘눈물겨운’ 재회였다.활발한 진짜 인싸와 가짜 인싸는 한참을 껴안고 나서야 떨어졌고 송지유는 신예린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야, 변했다. 예뻐졌네, 머리 스타일도 바꿨고?”신예린은 머뭇거리다가 송지유의 피부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너... 피부가 왜 이렇게 탔어?”송지유는 구릿빛 피부가 되었고 마치 외국 모델 같은 분위기를 풍겼는데 신예린은 하마터면 그녀를 몰라볼 뻔했다.“네가 뭘 몰라서 그래. 요즘은 다들 태닝한다니까? 유학까지 갔다 온 애가 이걸 몰라?”송지유는 짐짓 눈을 흘겼다.물론 신예린도 알고는 있었지만 마지막으로 송지유의 영상을 봤을 때 그녀의 피부색이 이렇게까지 진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 좀 놀랐을 뿐이었다.“사실은...”송지유가 어깨를 으쓱했다.“계속 밖에서 돌아다니다 보니까 피부가 얼룩덜룩해지더라고. 그래서 그냥 제대로 태닝해 버렸지.”그러고는 모델 포즈를 취하고 머리카락을 털며 윙크까지 날렸다.“어때, 나 예뻐?”신예린은 피식 웃다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예뻐. 지금 스타일이 너한테 더 잘 어울려.”송지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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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4화

신예린이 웃으며 말했다.“그럴 시간이 별로 없었어.”송지유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워낙 공붓벌레 같은 성격인 걸 잘 아는지라, 외국에 있는 내내 공부에 시간을 다 쏟아부었겠지 싶었다.“괜찮아, 마실 만큼만 마셔. 남은 건 내가 다 비울 테니까. 나 지금 술을 천 잔 마셔도 안 취해.”두 사람은 밥을 먹으면서 술도 조금씩 마셨고 별것도 아닌 이야기로 웃고 떠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송지유가 계속 신예린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왜 그래?”신예린은 괜히 뜨끔해서 물었다.송지유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가까이 왔다.“요즘 잠자리 꽤 행복하지?”남이 물었으면 그냥 웃어넘겼을 텐데 하필 송지유라서 신예린은 더 민망했다. 지금도 송지유가 예전에 일주일에 야한 영상을 열몇 개씩 보던 전적이 떠올랐다.얼굴이 벌게진 신예린은 그녀를 째려봤다.“야, 뭘 그렇게 째려봐!”송지유는 신예린의 팔을 잡고 장난쳤다.“아기까지 낳았으면서 뭘 부끄러워해? 말해봐. 디테일까지 다 얘기해 줘도 좋아. 나 그런 거 좋아하잖아.”신예린은 그녀의 손을 뿌리치며 툭 내뱉었다.“너 진짜 변태야? 왜 그런 것만 캐물어.”“그럼 나 말고 누구한테 말하려고? 너 다른 사람한테 말 못 하잖아. 솔직히 말해 봐, 주 교수님 얼마나 강해? 끝까지 다 갔어? 혹시 너무 해서 체력 고갈된 거 아니야? 보약이라도 사다 먹여야 되는 거 아니냐고.”송지유가 점점 더 이상한 소리를 하자 신예린은 얼굴이 화끈거려 그녀의 입을 막았다.“쉿, 네 팬이 보고 있어!”그 말에 송지유는 순식간에 얌전하고 우아한 인플루언서로 변신했고 그녀의 팬이라고 했던 종업원을 향해 기품 있는 미소를 날렸다.‘얘도 자기 이미지는 챙길 줄 아네.’신예린은 바로 그녀의 약점을 잡았다.“계속 이상한 소리 하면 너 대학교 때 일주일에 야한 영상 열몇 개씩 본 거 네 팬들한테 말해 버린다?”송지유는 눈을 크게 뜨더니 이를 갈았다.“네가 이겼어.”그제야 신예린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실험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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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5화

신예린이 웃으며 말했다.“헤헤, 나 지금...”그때 갑자기 전화기 너머로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예린아, 저 남자 모델 진짜 잘생겼어! 게다가 복근 만져도 된대! 우리 가서 한 번 만져보자!”그 말에 주시우의 관자놀이 핏줄이 심하게 뛰었다.그제야 송지유는 신예린이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는지, 신예린의 옆에 바싹 붙더니 휴대폰에 대고 소리쳤다.“주 교수님 맞으시죠? 오늘 밤에 예린이는 저랑 같이 잘 거니까 기다리지 마세요!”주시우는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다 들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전화기 너머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예린아, 예린아!”그는 스피커에 대고 몇 번이나 불러 보며 발걸음을 더 크게 내디뎠다.“어?”신예린은 겨우 대답했는데 목소리에 술기운이 한껏 실려 있었다.“지금 어디야?”주시우가 낮고 깊은 목소리로 물었다.“남, 남자 모델 복근... 만지러 가고 있어요...”전화기 너머로 시끄러운 음악과 여자들의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내 차례야, 내 차례!”“나도 만질래!”주시우는 심호흡했지만 눈빛이 어두워졌다.“얼른 어느 술집인지 말해.”그는 잠깐 뜸을 들였다가 한 마디 덧붙였다.“내 복근을 만지게 해줄게.”...주시우는 술집에 거의 가본 적이 없다. 그는 원래 시끄러운 곳을 싫어했고 알록달록한 네온사인과 코를 찌르는 술 냄새에 판단력이 흐려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은 그럴 겨를도 없이 주시우는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사람들 사이를 훑었고 곧바로 신예린을 발견했다. 그녀가 테이블에 조용히 엎드려 있는 것을 보고 그제야 주시우는 숨이 좀 트였다.그런데 그때, 한 남자가 신예린 쪽으로 다가갔다. 주시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쪽으로 걸어갔다.신예린은 머리를 테이블에 기댄 채 무대 위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송지유가 춤추며 즐겁게 웃고 있는 걸 보니 괜히 부럽기도 했다. 사실 그녀도 같이 뛰어놀고 싶었지만 조금 전에 여기 앉아서 얌전히 기다리기로 주시우와 약속했다. 그리고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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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6화

“드디어 왔네요.”신예린이 힘없이 매달리며 부드럽게 속삭였다.주시우의 깊고 차가운 눈빛이 신예린에게로 옮겨지는 순간, 한결 따스한 느낌이 들었다.술기운에 붉게 물든 얼굴을 보며 주시우는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이렇게까지 마실 필요가 있었어?”신예린은 턱을 주시우의 가슴에 괴고 고개를 들어 올려다봤다.“그냥... 마시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눈동자에 아른거리는 물빛이 꼭 별빛처럼 반짝였다.“저 아까 진짜 말 잘 들었거든요. 술도 안 마셨고 지유가 남자 모델 만졌을 때도 저는 안 만졌어요. 아무 데도 안 가고 여기서 계속 기다리기만 했단 말이에요.”완전히 취해버린 신예린의 말투는 아이처럼 순진했고 마치 칭찬을 바라는 듯 간절했다.주시우는 마음이 스르르 무너져 내렸고 입꼬리를 멈추지 못하고 올려버렸다.손바닥으로 신예린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으며 다정히 말했다.“우리 예린이는 어쩌면 이렇게 착할까.”만약 신예린에게 꼬리가 있었다면 아마 지금 스스로 흔들렸을 것이다.신예린은 해맑게 웃으며 물었다.“그럼 언제 약속 지켜줄 거예요?”주시우는 잠시 멍해졌다가 간신히 반문했다.“지금?”그러나 신예린은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주시우의 옷자락을 들어 올리더니 손을 집어넣었다.차갑게 스친 손끝이 닿자 주시우의 몸이 순간적으로 움찔했다.귀를 울리는 음악은 점점 크게 들렸고 괜히 모든 시선이 자신들을 향하는 것만 같았다.주시우는 대중 앞에서 가슴을 드러내는 게 도무지 익숙하지 않았다.급히 신예린의 손을 잡아 멈추게 한 주시우가 낮게 속삭였다.“예린아, 우리 집에 가서 하자. 응?”신예린은 천천히 눈을 깜박이며 주시우를 올려다보았다.주시우의 귓가까지 붉게 달아올랐지만 다행히 어두운 조명 탓에 티 나지 않았다.“집에 가면... 원하는 만큼 다 해줄게.”‘너무 큰 큰 유혹인데...’신예린의 눈이 금세 반짝이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주시우는 술에 취해 다리에 힘이 풀린 신예린을 단단히 끌어안았다.“네 친구는 어디 있어?”신예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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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7화

“교수님, 예린이를 잘 부탁드려요. 조심해서 들어가세요.”주시우는 송지유를 그녀의 아파트 입구까지 바래다주었다. 주량이 좋았던 송지유는 신예린보다 훨씬 멀쩡해 보였고 춤을 다 추고 나서는 정신도 꽤 또렷해졌다. 아니, 어쩌면 무대 위에서 주시우를 본 순간 온몸이 번쩍 깨어난 것 같았다.마치 대학 시절 수업 빼먹고 몰래 클럽에 왔다가 담임한테 들킨 듯한 기분이 스쳤다.‘괜찮아. 괜찮아. 지금 나는 이미 졸업한 지 한참이지.’송지유는 곧바로 자신을 달래면서 마음을 다잡고 허리를 꼿꼿이 세웠지만 신예린을 집에 데려다주지 말라고 하던 말을 다시 꺼낼 용기는 끝내 나지 않았다. 주시우가 돌아가자고 했을 때 비록 아쉬움이 남았지만 감히 거절할 수도 없었다.송지유는 얌전히 차에 올랐다가 얌전히 내렸다. 그리고 주시우의 차가 멀어지는 걸 보며 속으로 자신을 탓했다.‘이게 몇 년이 지난 건데 아직도 이렇게 기죽다니. 예린아, 넌 아침에 눈뜨자마자 선생님의 얼굴 보면 놀라지 않니? 흑흑...’차가 지하 주차장에 멈추자 주시우는 조수석 문을 열고 내내 중얼거리던 신예린을 안아 내렸다.신예린은 주시우의 목에 매달리며 술기운이 섞인 숨결을 내뿜었다.차 문을 잠그고 주시우는 신예린을 안은 채 성큼성큼 엘리베이터로 향했다.“저 그렇게 많이 안 마셨어요.”신예린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지유가 그러는데 그 남자 모델들 진짜 잘생겼대요. 상의를 벗으면 근육도 있고요. 다들 너무 좋아해서 다들 한 번씩 만져봤다던데...”이렇게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신예린은 아직 그 얘기에 마음을 빼앗겨 있었다.“띵!”그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주시우가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너는 안 만져봤어?”주시우의 눈빛이 가늘어졌다.“저는 안 만졌어요. 절대 안 만졌어요.”신예린은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며 주시우의 목덜미에 얼굴을 비볐고 그녀의 숨결이 닿는 자리마다 열기가 번졌다.“저는 분명히 지유한테 말했죠. 우리 서방님이 더 멋지다고... 우리 서방님도 복근 있다고요.”그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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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8화

‘아내한테 몸매가 별로라는 핀잔을 들은 기분이란 바로 이런 걸까.’주시우는 그걸 똑똑히 느끼고 있었다.가슴께가 막힌 듯 답답해진 주시우는 신예린의 손을 뿌리치려 했다.“그럼 만지지 마.”그러자 신예린이 킥킥 웃더니 불쑥 고개를 숙여 주시우의 복부를 살짝 깨물었다.아린 듯한 통증보다 온몸을 타고 번지는 짜릿한 감각이 먼저 찾아왔다.주시우의 몸이 순간적으로 움찔했고 올려다본 눈길에는 신예린의 장난기 어린 시선이 담겨 있었다.“그래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건 우리 서방님이에요.”신예린의 입술이 주시우의 피부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가슴, 쇄골, 턱선을 차례로 훑고 마지막엔 주시우의 입술에 닿았다.늘 침대 위에서는 주시우가 주도했는데 이렇게 신예린이 먼저 다가오는 건 드문 일이었다.아마 술기운 때문인지 감춰져 있던 신예린의 대담함이 한순간에 터져 나온 듯했다.주시우도 신예린의 입술을 거칠게 받아주며 손바닥으로 그녀의 목덜미를 단단히 감쌌다.입술과 이빨이 부딪히고 혀끝이 얽히며 정신이 아득해졌다.둘은 어느새 거실 바닥에 깔린 채 서로에게 매달렸고 머릿속의 이성이 사라진 자리에는 뜨거운 욕망이 가득 채웠다.보드라운 카펫은 두 사람의 피부를 자극하며 온몸을 불태웠다.술 냄새 섞인 숨결은 오히려 주시우의 머리를 더욱 흐릿하게 만들었다.아니, 어쩌면 주시우를 혼란스럽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신예린이었다.타오르는 열기에 몸이 녹아내릴 듯했고 신예린은 주시우의 가슴을 짚은 채 젖은 눈으로 흐느끼며 신음을 흘렸다.흔들리는 머리칼 사이로 신예린의 젖은 속눈썹이 반짝였고 주시우의 관자놀이에는 핏줄이 도드라졌다.불그스름하게 물든 눈가와 굵은 숨소리가 방 안 공기를 더욱 뜨겁게 달궜다....결국 둘은 함께 샤워를 마쳤다.아니, 정확히는 주시우가 신예린을 씻겨 주었다.알몸 그대로 신예린을 안아 욕실에서 나오며 주시우는 흘깃 거실 바닥을 보았다.엉망이 된 카펫을 보고 주시우는 속으로 중얼거렸다.‘조만간에 카펫도 바꿔야겠군.’옷을 갈아입히고 침대에 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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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9화

“하하, 우리 교수님께서 자존심 많이 상했네요?”신예린은 웃음을 터뜨릴 뻔하며 주시우에게 다가가 안아주려 했다. 그러나 주시우는 몸을 살짝 비키면서 허락하지 않았다.예상치 못한 반응에 신예린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곧바로 볼을 불룩하게 부풀렸다.“좋네요. 이제 제가 복근이 여덟 개 없다고 했다고 아예 안아주지도 않는 거네요?”주시우는 난감한 듯 눈을 들어 그녀를 보며 낮게 말했다.“나 지금 땀범벅이야. 더러워.”“그래도 난 안을 거예요. 꼭 안을 거라고요.”신예린은 고집스럽게 달려들어 주시우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주시우는 결국 팔을 뻗어 그녀를 안아주었고 입가에는 어쩔 수 없이 미소가 번졌다.그런데 신예린이 갑자기 주시우의 복부를 손가락으로 꾹 집어 올렸다. 불시에 긴장이 몰려온 주시우는 짧은 신음을 흘렸고 신예린은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했다.“어머, 서방님! 하루 만에 벌써 여덟 개 복근이 생긴 것 같아요?”“...”주시우는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이러다간 정말 예린이한테 말려서 꼼짝도 못 하겠네.’두 사람은 현관 앞에서 한참을 그렇게 붙들고 장난을 치다가도 정작 어젯밤 난장판이 된 카펫은 모른 척 지나쳤다. 그러나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주시우가 보낸 메시지 알림이 떴다.새로운 카펫 사진이었다.‘이런 거 좋아해?’피할 수 없다는 걸 직감한 신예린은 억지로 답장을 보냈다.[괜찮은데... 색이 마음에 안 들어요.]그러자 곧바로 주시우가 다시 다른 카펫 사진을 보냈다.[다른 색도 있어.]이어 여러 장의 색상 사진이 날아왔다.[이 소재는 누워도 편하고 세탁도 쉬워. 다음에 또 더러워지면 바로 빨 수 있지.]‘다음에라고...’다음이라는 말이 신예린의 뇌리를 치고 지나가자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알았어요.][어떤 색 좋아해?][베이지랑 그레이 다 괜찮아요. 당신이 골라요.]하지만 잠시 후 도착한 답은 신예린의 뜻밖이었다.[둘 다 주문했어. 번갈아 쓰면 되잖아.]신예린은 황급히 주시우를 단속했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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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0화

“혹시 주시우가 너 나 술집 데려간 거 뭐라 안 했어? 그렇게 술도 많이 마셨는데.”송지유의 목소리에는 괜한 불안이 묻어 있었다‘천만에... 어제 교수님 표정 보면 오히려 즐겁기만 하던데.’신예린은 기침을 한 번 하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아니거든. 넌 왜 그렇게 주눅이 들어 있어? 너 어제 술집 가기 전에 했던 말을 벌써 잊었어?”저녁을 먹고 살짝 취기가 오르자 송지유가 술집에 가자고 제안했을 때, 신예린은 사실 처음에 망설였다. 그러자 송지유는 대뜸 큰소리쳤었다.“주시우 걱정할 필요 없어. 문제 생기면 내가 알아서 감당할게.”그런데 이제 와서 눈치 보듯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송지유는 당연히 자기 잘못을 인정할 리 없었고 목을 뻣뻣하게 세우며 말했다.“난 전혀 무섭지 않아. 난 네가 걱정돼서 그러지. 혹시 돌아가서 교수님한테 혼날까 봐.”신예린은 괜히 가슴이 간질간질해져서 모호하게 대답했다.“글쎄... 뭐, 괜찮았어.”잠시 후 송지유가 다시 입을 열었다.“근데 말이야. 교수님은 세월이 흘러도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 아니, 오히려 성숙한 남자의 매력이 점점 더 깊어졌다고 할까... 훨씬 멋져지셨더라.”자기 남편을 칭찬하자 신예린은 뿌듯해져서 스스로 입꼬리가 올라갔다.“그럼 그렇지. 너도 빨리 좋은 사람 만나봐.”송지유는 씁쓸하게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난 글렀어. 주시우 같은 사람 어딨다고. 너는 그냥 운이 좋은 거고 난 그냥 혼자가 편해. 결혼 안 하고 살 거야.”“부모님은 안 재촉하셔?”신예린이 물었다.“당연히 들들 볶지. 그래서 이번에 돌어와서도 아예 얼굴도 안 보러 갈 생각이야. 맨날 경 읽듯이 결혼하라는 잔소리에... 맞선 자리까지 줄줄이 잡아놨다니까. 부모님의 눈에는 남자면 다 괜찮은 줄 아나 봐.”송지유의 말에는 서운함과 답답함이 뒤섞여 있었다.“난 이해가 안 가. 나는 나름대로 얼굴도 되고 성격도 괜찮고 친구도 많고, 돈도 있는데, 왜 결혼 안 했다는 이유 하나로 죄인 취급을 받아야 하냐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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