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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터닝포인트: Chapter 391 - Chapter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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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1화

아마도 흥분한 탓인지 소지훈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주변 사람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이정현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서둘러 목소리를 낮췄다.“소 선생님, 제발 좀 작게 말해요.”그러나 소지훈은 전혀 개의치 않은 듯 당당하게 받아쳤다.“뭘 그렇게 걱정해요. 병원 사람 중에 제가 이 선생님을 좋아하는 거 모르는 사람이 있나요?”“...”이정현은 평소 침착하다고 자부했지만 이렇게 노골적인 고백 앞에서는 버티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자신은 소지훈에게 그럴 마음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었다.“소 선생님 마음은 알겠어요. 그런데 죄송하지만 저는 그런 감정이 없어요. 괜히 마음 쏟지 말고 그냥 그만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그러면 체념할 줄 알았는데 소지훈은 오히려 눈을 반짝였다.“이 선생님은 늘 제가 남자를 좋아한다고만 생각했잖아요. 나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쉽게 단정 지을 수 있죠?”이정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저는 처음부터 이 선생님 좋아했어요. 그때는 방금 이별해서 연애할 생각 없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요즘 맞선 본다면서요? 그럼 이제 괜찮다는 거잖아요. 난 몇 년 전부터 줄 서 있었으니 그 사람들보다는 제가 우선권이 있지 않나요?”“하아...”이정현은 머리가 지끈거렸다.“이미 여러 번 말했잖아요. 저는 소 선생님한테 마음이 없어요. 제가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에요.”“그럼 이 선생님은 어떤 사람이 좋아요?”“저는 성숙하고 안정적인 사람이 좋아요.”그러자 소지훈은 전혀 부끄럽지도 않은 얼굴로 답했다.“그게 바로 저잖아요.”“...”‘성숙하고 안정적이라고? 애니메이션 영화 보다가 눈물 펑펑 흘리던 사람은 누구였더라.’소지훈은 진지하게 말을 이어갔다.“저는 일할 때는 누구보다 철저하고 집안일도 다 해낼 수 있어요. 게다가 5년간 애 키운 경험도 있잖아요. 이렇게 밖에서도 인정받고 집에서도 든든한 남자를 어디서 또 찾겠어요?”그게 성숙함의 기준이 맞긴 한 건지 의문이 밀려왔지만 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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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2화

주시우는 메시지를 보자마자 무슨 뜻인지 알아챘다. 좋은 소식은 아니라는 걸 직감한 것이다.신예린이 과실로 돌아왔을 때 마침 이정현을 마주쳤다.신예린이 먼저 설명했다.“아까 소 선생님이랑 얘기하고 계시길래 방해하지 않았어요.”이정현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우리 얘기 다 들은 거예요?”신예린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제가 너무 단도직입적으로 거절했나요? 그래도 신 선생님의 체면을 생각해서 조금은 돌려서 말할 걸 그랬나 싶네요.”신예린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그건 이 선생님의 일이잖아요. 굳이 저를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이정현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신예린을 바라보았다.신예린은 망설이다가 입술을 달싹였다.“솔직히 말하면 이 선생님이 소 선생님한테 한 번쯤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감정은 억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이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맞아요.”신예린은 조심스레 다시 물었다.“그래도 정말 단 1%도 가능성이 없으세요?”이정현이 대답하려는 순간, 마침 이석훈이 사무실에서 나왔다.스치는 듯한 이석훈의 시선이 이정현을 지나 신예린에게 잠시 머물렀다.이정현은 그 눈빛을 놓치지 않고 곧장 말했다.“신 선생님의 일이나 잘 챙겨요. 제 걱정은 하지 말고요.”그 말을 남기고 이정현은 자리를 떠났고 신예린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뒤를 바라보았다.‘뭘 챙기라는 거지?’그때 이석훈이 다가와서 태연한 듯 입을 열었다.“방금 응급실에서 회진 요청이 있었는데 신 선생님이 자리에 없길래 제가 대신 갔다 왔어요.”신예린은 놀라서 이석훈을 보며 말했다.“고마워요.”가볍게 내뱉은 말이었지만 이석훈의 귀에는 다르게 울렸다. 이석훈은 미묘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이어 물었다.“오늘 야근이 길어질 것 같은데... 같이 음식 주문할래요?”신예린은 순간 의아하게 이석훈을 바라보자 그는 혹시라도 눈치챌까 싶어 급히 덧붙였다.“다른 당직 간호사랑 의사 선생님들도 다 같이요.”“아니에요. 저는 저녁에 약속이 있어서요.”신예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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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3화

“내가 실연당했는데 왜들 다 나만 괴롭히는 거야. 우리 아윤이가 곁에만 있어도 좋을 텐데... 아윤이는 절대 날 싫어하지 않았을 거야.”소지훈이 울먹이며 말하자 신예린과 주시우가 동시에 서로를 바라봤다.“그러면 제 손이라도 잡으실래요?”신예린이 조심스레 팔을 내밀자 주시우는 그녀를 옆으로 끌어당기고는 얼굴을 굳힌 채 자기 팔을 뻗었다.소지훈은 얼른 주시우의 팔을 끌어안았다.“...”그 장면은 꽤 충격적이었다. 만약 안고 있는 쪽이 자기 남편이 아니었다면 신예린도 그들이 커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주시우는 소매가 눈물에 젖는 걸 보고 얼굴빛이 완전히 굳어졌다. 곧장 소지훈을 의자에 눌러 앉히며 단호하게 말했다.“얌전히 앉아 있어.”소지훈은 울먹이는 눈으로 노려보며 조용히 반항했다. 그 모습에 신예린은 문득 주시우가 철부지 아들을 데리고 나온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잠시 후, 주시우는 태도까지 바꾸며 신예린을 향해 부드럽게 말했다.“배고프지? 뭐 좀 먹어.”신예린은 주시우의 옆에 앉아 그가 덜어주는 반찬을 몇 입 받아먹었다. 그 사이 소지훈은 어깨를 늘어뜨린 채 술잔만 기울이고 있었고 신예린은 못 참고 물었다.“소 선생님은 왜 그렇게 이 선생님을 좋아하게 된 거예요?”그 한마디에 소지훈은 바로 입을 열었다.“몇 년 전에 동료들이랑 영화 보러 갔는데... 제가 펑펑 울었거든요. 그때 이 선생님이 휴지도 내밀어 주고 어깨도 빌려주겠다고 했어요. 제가 본 여자 중에 제일 착했어요. 흐흐흑...”“...”신예린은 어쩐지 익숙한 래퍼토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혹시 그 영화가... 애니메이션 아니었어요?”소지훈은 눈물범벅인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어떻게 알았어요?”“...”신예린은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이정현이 애니메이션 때문에 소지훈을 유치하다고 여겨 마음을 접었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정작 소지훈은 같은 이유로 이정현을 마음에 새겨버린 것이니 이보다 더 기막힌 인연이 어디 있을까.소지훈은 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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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4화

“걱정하지 마. 가끔 나와서 확인해 볼게.”주시우가 신예린의 어깨를 감싸며 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집에 방은 두 개뿐이잖아. 아윤이는 이제 제법 커서 자기 방은 사적인 공간으로 생각해. 친아빠라도 함부로 눕는 건 안 돼. 우리 침실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그러면 결국 소파 말고는 다른 데 잘 곳이 없지.”그 말을 들은 신예린은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 주시우는 아이가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사생활을 무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이가 커 갈수록 더 지켜야 할 선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고 그만큼 존중해 주었다. 하지만 많은 부모들은 자식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여기며 모든 걸 통제하려 들었다.신예린은 미소를 머금으며 중얼거렸다.“괜히... 멋있어 보여요.”주시우는 눈빛을 좁히며 소파에 곯아떨어진 소지훈을 흘끗 보고는 그녀 귀에 바짝 다가와 낮게 속삭였다.“같이 씻을래? 물도 아낄 겸.”그 순간 신예린은 두 사람이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전기세를 아낀다며 같은 방을 쓰자던 주시우의 핑계가 떠올랐다. 세월이 꽤 흘렀는데도 여전히 구수한 수법이었다.신예린은 얼굴이 달아올라 얼른 밀쳐냈다.“이러지 마요. 소지훈 씨도 있는데.”주시우는 눈가에 웃음을 띠며 태연하게 답했다.“자는 중이잖아.”결국 둘은 함께 욕실에 들어가진 않았다. 신예린은 부끄러움이 더 앞섰다. 아무리 소지훈이 술에 취해 곯아떨어졌어도 옆방에 있는 채로 그런 일은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밤이 깊어 잠든 뒤에도 주시우는 몇 차례 일어나 소지훈을 살펴보았다. 혹시 토하지는 않는지 곤히 자고 있는지 확인한 뒤에야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다음 날 아침, 일어나 보니 소파는 텅 비어 있었다.주시우가 휴대폰을 열어 보니 소지훈이 남긴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짐승처럼 일하러 가야 해. 너희가 쉬고 있는 것 같아 깨우지 않았어. 재워 줘서 고마워.]방으로 돌아오자 신예린이 이불 속에서 기지개를 켜고 있었고 졸린 목소리로 물었다.“소지훈 씨는 깼어요?”“벌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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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5화

아이 특유의 앳된 목소리가 불쑥 들려왔고 주시우의 바짓가랑이가 꾹 잡히더니 작은 주먹이 빗방울처럼 쏟아졌다.주시우와 신예린이 동시에 고개를 숙이자 솜인형 같은 주아윤이 바로 옆에 있었다. 동그란 얼굴은 잔뜩 부풀어 있고 커다란 눈망울은 화난 듯 또렷하게 빛났다.“아윤아.”신예린은 아이를 보자마자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며 얼른 주시우 품에서 뛰어내렸다.하지만 주아윤은 신예린의 얼굴을 똑바로 확인한 순간 잠시 멍해졌다. 그리고 신예린이 반가움에 두 팔을 뻗어 다가서자 아윤은 본능적으로 한 발 뒤로 물러섰다.그 작은 눈 속에는 낯섦과 혼란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아윤아...”주아윤의 뒷걸음질에 신예린의 가슴은 순간 무너져 내렸다. 신예린은 그대로 주저앉아 여전히 손을 내밀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엄마야.”엄마라는 단어가 울리자 주아윤은 놀란 듯 고개를 들어 주시우를 바라봤다. 주시우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다정한 미소를 보이자 주아윤은 잠시 입술을 깨물다가 그대로 몸을 돌려 방 안으로 달려 들어가 버렸다.“쿵!”닫히는 문소리에 신예린의 숨이 턱 막혔다.“아윤아.”신예린은 곧장 방 앞으로 가서 문을 열려 했지만 이미 잠겨 있었다. 문고리를 쥔 손이 하얗게 질리고 눈가가 금세 붉어졌다.“엄마가 돌아왔어. 아윤아, 미안해. 이렇게 오래 널 두고 떠나 있어서...”문 너머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신예린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고 억눌렀던 슬픔이 밀물처럼 번졌다.그때, 뒤에서 차분한 목소리가 울렸다.“오랜만이라 낯설게 느끼는 게 당연하지.”신예린이 눈물 젖은 얼굴로 돌아보니 친엄마처럼 다정했던 시어머니 김수희가 서 있었다. 세월이 흘러 머리에는 희끗한 흰빛이 더해졌지만 예전보다 오히려 온화한 기운이 감돌았다.“어머니...”신예린은 목이 메어 단 한 마디만 겨우 내뱉었다.“돌아와 줘서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김수희는 두 번이나 같은 말을 되뇌며 눈시울을 붉혔다.“아윤이가 지난달에도 물었어. 엄마가 이제 곧 오는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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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6화

주아윤은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서러워 보였다.주시우는 마음이 무너져 내려 주아윤과 눈높이를 맞추려 조심스레 쭈그리고 앉았다.주아윤은 여전히 못마땅한 기색이었지만 낮게 한마디를 꺼냈다.“아빠.”주시우는 입가에 부드러운 웃음을 머금고 주아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엄마가 돌아오니까 마음이 불편해?”주아윤은 입술만 꾹 다물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엄마가 너무 오래 떠나 있어서 서운한 거니?”문밖에서 듣고 있던 신예린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하지만 주아윤은 끝내 말을 잇지 않았고 주시우는 서두르지 않고 화제를 바꿨다.“이번에 놀러 간 건 즐거웠어?”그러자 아이의 눈동자가 반짝였다.“네. 재미있었어요.”“새로운 친구들도 사귀었어?”“네. 조랑말이랑도 친구 했어요. 이름이 요구르트예요.”“사진은 찍었어?”“할머니 휴대폰에 있어요.”“그럼 이따 할머니한테 보여 달라고 하자.”“네!”주시우는 눈길을 부드럽게 하며 다시 물었다.“그럼 아빠가 보고 싶을 때는 없었어?”주아윤은 잠시 고심하더니 솔직하게 말했다.“없었어요.”“...”문밖에 서 있던 김수희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작게 중얼거렸다.“거기서 너무 신나게 지낸 거야. 아윤이가 현지 사람들하고도 금방 친해지고 말까지 붙잡고 친구 맺겠다고 우겨댔으니까.”신예린은 그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해 눈물이 맺히면서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잠시 뒤, 주시우가 다시 조용히 물었다.“그래도 아윤이는 아빠를 아직 사랑하지?”그러자 주아윤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사랑해요.”주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갔다.“전에 네가 여름 캠프 가고 싶다고 했을 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위험할까 봐 반대했지만 결국 네 뜻을 존중했잖아. 가족이라고 해서 네 인생을 대신 정해 줄 수는 없는 거야.”주아윤은 눈을 크게 뜨고 아빠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 눈빛 속에는 단순한 아이의 호기심 이상이 담겨 있었다.주시우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엄마도 마찬가지야. 엄마는 아빠의 아내이고, 네 엄마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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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7화

주아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빠가 늘 해 주던 말 기억하지?”“기억해요.”주아윤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아빠랑 엄마는 아윤이를 사랑해요.”문밖에서 그 말을 들은 신예린의 눈가가 단숨에 젖어 들었고 눈물이 차올라 시야가 흐려졌지만 꾹 참아냈다. 곁에 서 있던 김수희는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살며시 손을 뻗어 신예린의 등을 토닥였다.“아윤아, 아침도 안 먹었지? 아빠가 토마토 계란 국수 끓여 줄 건데 먹고 싶어?”아침을 먹는다면 분명 신예린과 함께 앉아야 할 터였다.주아윤은 잠시 생각하다가 조심스레 대답했다.“먹고 싶어요.”“좋아. 아빠가 음식을 만드는 거 구경할래?”그 소리에 신예린은 서둘러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주시우가 주아윤의 손을 잡고 나오자 환하게 웃으며 불렀다.“아윤아.”하지만 주아윤은 여전히 낯설고 서먹한 기분이 드는지 주시우의 다리 뒤로 몸을 숨기며 나오려 하지 않았다.주시우는 신예린에게 안심하라는 듯 눈빛을 건네고는 발이 맨바닥에 닿은 걸 보고 부드럽게 말했다.“슬리퍼 신어야지.”신예린은 곧장 고개를 끄덕이며 방으로 들어가 슬리퍼를 꺼내 신었다.거실로 나오자 김수희가 여행 가방을 풀고 짐을 정리를 하고 있었다. 신예린은 얼른 다가가 손을 보탰다.“어머니, 저도 같이할게요.”한 달 가까이 머물렀던 터라 챙겨 온 짐이 제법 많았다. 가방을 열자 대부분이 주아윤의 옷과 생활용품이었다. 김수희는 손녀 치장에 정성을 아끼지 않았고 주시우의 촌스러운 취향을 못마땅해하며 옷장은 온통 자신이 고른 예쁜 옷들로 채워 두었다.“이건 다 입었던 거니까 세탁기에 넣고 이건 깨끗한 바지니까 옷장 오른쪽 서랍에 넣어. 이 치마들은 걸어 두고.”김수희가 하나하나 알려 주자 신예린은 귀 기울이며 꼼꼼히 받아 적듯 움직였다.이제부터는 신예린은 주아윤의 삶에 함께해야 했고 생활 습관 하나하나까지 알아야 했고 김수희는 마치 인수인계라도 하듯 자세히 알려 주었다.짐을 다 정리하고 나자 김수희는 따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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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8화

주아윤은 다시 얼굴을 국그릇 속으로 파묻듯 숙였다.“태성 병원이라면 참 괜찮은 데지. 우리 가문의 회사랑도 같이 일한 적 있잖아.”김수희가 웃으며 주아윤에게 말을 건넸다.“아윤아, 네 엄마가 의사인 거 알아? 지난번에 네 친구 지후가 자기 엄마가 경찰이라고 자랑했잖아? 이제 너도 말할 수 있어. 네 엄마는 많은 환자들을 고쳐 주는 의사라고... 멋있지 않니?”하지만 주아윤은 말없이 면발만 후루룩 삼켰고 주시우가 가볍게 딸의 뒷머리를 쓰다듬었다.“할머니 말씀에 대답해야지.”“네.”주아윤의 작은 입술이 겨우 소리를 냈다.“알았어요. 할머니.”김수희는 생각난 듯 일어나 가방을 열었다.“이번에 아윤이 데리고 놀러 가서 사진이랑 동영상 많이 찍어 왔어. 너희도 좀 봐.”그러고는 휴대폰을 꺼내 신예린에게 건넸다.“비밀번호는 아윤이 생일로 해 뒀어. 아윤이가 어릴 때부터 쭉 찍어 온 거야. 누가 아윤이를 데리고 있든 이 휴대폰으로만 찍어서 다 저장했지. 네가 돌아오면 보라고 시우가 챙겨 둔 거야.”신예린은 휴대폰을 두 손으로 꼭 쥐었다. 작은 핸드폰이 묘하게 묵직했다. 고개를 들어 주시우를 바라보니 그 눈길에 담긴 세심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아침 식사가 끝난 뒤, 김수희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정을 찾아가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시우와 신예린의 만류에도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집을 나섰다.남은 집 안은 한순간 고요해졌다. 신예린은 시선을 손에 든 휴대폰으로 내리고 주아윤의 생일을 눌러 화면을 열었다.첫 화면 가득 이번 여행에서 찍은 사진들이 눈에 들어왔다. 파란 하늘과 넓은 초원,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가득했다.사진 속 주아윤은 해맑게 웃고 있었다. 뽀얀 볼은 햇볕에 달아올라 발그레했고 눈은 초승달처럼 휘어지며 별빛 같은 반짝임을 품고 있었다.신예린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손가락을 움직이며 사진을 넘기던 중, 주아윤이 가운데 앉아 있는 가족사진이 보였다. 그런데 그 작은 몸은 자신에게서 조금 떨어져 있었다.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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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9화

주아윤은 주시우의 품에 얼굴을 파묻고는 애교를 부렸다.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느라 전날 밤에도 제대로 잠을 못 잔 듯했다.“그래. 자자.”주시우는 부드럽게 주아윤을 안아 일으켜 세워 방으로 데리고 갔고 신예린도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작은 몸이 이불 위로 올라가자 주시우는 직접 이불을 덮어 주었다.신예린은 문가에 기댄 채 그 모습을 바라봤다.손을 잡아 침대로 이끌고 곁에 앉아 이불을 곱게 덮어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아직 주아윤이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걸 알기에 쉽게 나서지 못했다.주아윤이 눈을 감자 방안이 조용해졌다.하지만 금세 아이는 다시 눈을 떴다.그리고 여전히 문가에 서 있는 신예린을 발견하고는 침대 곁에 앉아 있던 주시우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아빠, 나가요.”사실 주시우를 내쫓고 싶은 게 아니라 신예린이 나가길 바라는 마음이었다.“알았어. 우리가 나갈 테니 얼른 자.”주시우는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슬며시 눈짓을 보내자 신예린도 따라 나왔다.문이 닫히기 직전, 신예린은 살짝 고개를 들이밀며 속삭였다.“아윤아, 좋은 꿈 꿔.”하지만 주아윤은 삐죽 입술을 내밀고 눈길만 돌렸다.문이 닫히고 나자 두 사람은 마치 도둑처럼 조용히 문 앞에 서 있었다.“5분이면 돼.”주시우가 신예린의 귀에 낮게 말했다.그건 주아윤이 잠들기까지 가장 오래 걸리는 시간이라는 뜻이었고 신예린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안에서는 주아윤이 몇 번이고 눈을 떴다 감았다 하다가 문이 닫힌 걸 확인하고서야 안심한 듯 하품을 하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시간이 흐르고 정확히 5분이 지나자 닫혀 있던 문이 살짝 열렸고 두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안으로 기울었다.침대 위의 주아윤은 고른 숨을 내쉬며 이미 곤히 잠들어 있었다.서로 눈길을 마주친 두 사람은 살금살금 방 안으로 들어갔다.한때 미숙아로 인큐베이터에 누워 있던 주아윤이 이렇게 자라나 새하얀 피부에 복숭앗빛 볼을 가진 모습으로 누워 있는 걸 보니 누구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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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0화

주시우는 눈가가 붉어진 채 웃고 있는 신예린을 바라보며 그녀의 마음속 복잡한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주시우는 신예린의 머리칼을 살짝 헝클이며 다독였고 그 손길은 위로이자 애틋한 마음의 표현이었다.신예린은 침대 옆에 쪼그려 앉아 한참 동안 주아윤을 바라보다가 주시우가 살짝 눈짓을 주자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순간 두 다리가 저리는 듯 얼얼했고 표정이 찡그려졌다.“왜 그래?”주시우가 놀란 듯 묻자 신예린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다리에 피가 안 통했나 봐요. 저려서 못 걷겠어요.”그러자 주시우는 신예린의 팔을 잡아주며 마치 할머니를 부축하듯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방문이 조심스레 닫히는 순간, 두 사람은 서로 눈길이 마주쳤고 결국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주아윤이 눈을 뜬 건 이미 정오 무렵이었다.비비적거리며 눈을 비비고 침대에서 내려오자 부엌 쪽에서 나는 소리와 음식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작은 다리를 바삐 움직여 소리 나는 쪽으로 다가가니 부엌 안에는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었다.“아윤이는 짠 걸 좋아해요? 싱거운 걸 좋아해요? 한번 맛 좀 봐 봐요. 아윤이가 좋아할까요? 간이 조금 부족한 거 아닌가요?”주시우의 목소리는 다정했다.“짠 것도 싱거운 것도 괜찮아. 아윤이는 다 잘 먹어.”“그럴 수 없죠. 제가 처음으로 아윤이한테 해 주는 음식인데 만점 받아야 해요. 어서 맛 좀 봐 줘요.”신예린은 국자를 떠서 주시우 입에 넣었다.주아윤은 문가에 서서 그 장면을 똑똑히 바라보고 있었다.웃음을 머금은 채 아빠 곁에 서 있는 엄마는... 정말 꿈이 아니었다.게다가 사진에서 보던 모습보다 훨씬 더 아름답게 다가왔다.사실 주아윤에게 있어서 아빠가 늘 이야기해 주던 엄마라는 존재는 늘 막연했고 상상 속에서만 그려왔던 인물이 이제 눈앞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어때요?”신예린이 묻자 주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응. 맛있어.”“그렇죠? 근데 제가 당신한테 물어본 게 실수네요. 무슨 맛이어도 무조건 맛있다 할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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