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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포인트의 모든 챕터: 챕터 401 - 챕터 410

454 챕터

제401화

주아윤이 좀 더 많이 먹게 하려고 두 사람은 일부러 먹지 않았다. 그래서 남은 건 전부 다 주아윤이 먹었다.신예린이 그런 사소한 일에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뻐하는 걸 보자 주시우도 덩달아 웃음이 터졌다.오후에는 세 식구가 같이 마트에 갔다. 처음에는 주시우가 주아윤을 안고 다녔는데 나중에는 내려서 걷게 했다. 주아윤은 짧은 다리로 총총 뛰어다니며 익숙한 듯 황도 통조림이 있는 코너로 가서 까치발을 들어 하나 꺼내고는 장바구니에 쏙 넣었다. 활력이 넘치는 아이의 모습은 꼭 마트를 누비는 요정 같았다.신예린은 문득 하늘이 자신에게 축복을 준 것 같다고 느꼈다.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에 누워 있던 아기가 그저 건강하게만 자라 달라고 빌던 그때가 떠올랐다.“아빠!”주아윤이 맑은 목소리로 불렀다.“요구르트를 한 병 더 사도 돼요? 이 요구르트는 제 친구랑 이름이 같아요!”주아윤은 뭐든 함부로 집어 오지 않고 꼭 먼저 주시우에게 물어보는 버릇이 있었다.주시우는 장바구니를 밀면서 웃었다.“오늘은 엄마가 계산해 주신대. 엄마한테 물어봐.”주아윤은 멈칫하더니 자연스럽게 신예린을 바라봤다. 하지만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신예린이 먼저 웃으며 말했다.“그럼, 당연히 되지. 아윤이가 사고 싶은 거 다 담아. 오늘은 엄마가 쏜다!”그녀는 말하면서 가슴을 퍽 치는 제스처까지 해 보였다.허락을 받은 주아윤은 표정에서 기쁜 게 티가 났다. 아이는 재빨리 요구르트 코너로 달려갔다.그때 주시우가 낮은 목소리로 슬쩍 물어봤다.“진짜 다 네가 쏘는 거야?”“왜요? 뭐 사게요?”신예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그러자 주시우는 몸을 조금 숙이고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신예린은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어 귀를 기울였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순식간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그녀는 주아윤이 있는 쪽을 흘끔 보면서 황급히 팔꿈치로 주시우를 쿡 찔렀다.“애 있는데 무슨 소리예요!”“아윤이는 못 들었는데, 뭐.”주시우가 태연하게 말했다.“지난번에 인터넷으로 사라고 했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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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2화

주아윤은 눈을 반짝이며 신예린을 올려다보았고 눈빛에 존경심이 가득했다. 그래서 신예린은 유리 수조마다 물고기의 종류 명칭이 다 적혀 있다는 사실을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그... 그야 엄마가 생선을 많이 먹으니까 잘 알지.”그때 등 뒤에서 ‘푸흣’ 하는 웃음소리가 났다. 신예린은 짜증이 나서 고개를 돌리고 주시우를 매섭게 째려봤다.그 시선을 받은 주시우는 바로 웃음을 거두고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생선엔 단백질이 많거든. 네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엄마가 자주 먹었어.”주아윤은 아빠 주시우와 엄마 신예린을 번갈아 보더니 그 말을 믿어버렸다. 유치원을 졸업했었어도 이런 말에 속지 않았을 텐데.세 사람은 장을 다 보고 계산대 앞에 섰다. 그런데 그때 주시우가 잽싸게 진열대에서 두 팩의 뭔가를 집어 계산대에 올렸다.신예린의 뇌 속에서 마치 경보음이 울리는 듯했고, 아니나 다를까 주아윤이 물었다.“아빠, 그거 뭐예요?”신예린은 혹시 주시우가 정말로 ‘동생 안 생기게 하는 물건’이라고 말할까 봐 급히 끼어들었다.“껌이야. 아빠가 껌 샀어.”주아윤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신예린은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런데 주시우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껌 맞는데? 왜 그렇게 긴장해?”‘이 남자가 대체 무슨 배짱으로 이러는지...’주아윤만 없었으면 그녀는 그의 목덜미를 바로 잡아 눌렀을 거다.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은 후 두 사람은 목욕물을 받고 주아윤을 씻겨줬다.신예린은 주아윤이 제법 독립적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밥을 쫓아다니며 먹일 필요도 없었고 심지어 주아윤은 샤워기 밑에서 혼자 빙글빙글 돌며 몸에 거품을 묻혔다. 깨끗이 씻겼는지는 둘째 치고 어쨌든 아이가 혼자 씻었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는 듯했다.주아윤에게 옷을 입힌 뒤 신예린은 주시우가 아이의 머리를 말려 주는 걸 지켜봤다. 그녀가 해주고 싶었지만 예전에 물어봤을 때 주아윤은 쑥스러운 듯 고개를 저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신예린은 굳이 강요하지 않고 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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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3화

신예린은 주아윤을 보려고 고개를 돌렸고 마침 아이와 눈이 딱 마주쳤다. 주아윤은 순간 당황한 듯 시선을 피하며 자세를 바꿨다.드라이기 소리가 다시 ‘윙’ 하고 울렸고 신예린의 머리 위에서 따뜻한 바람이 느껴졌다. 게다가 주시우의 손끝이 스치는 감촉과 거기에 주아윤이 몰래 자신을 흘끗흘끗 훔쳐보는 시선까지.그 순간 신예린의 마음속에서 따뜻한 감정이 넘칠 듯 차올랐다.밤이 되어 주아윤이 잠든 뒤, 주시우가 방으로 들어왔다.신예린은 주아윤의 사진을 찍는 전용으로 쓰는 휴대폰을 들고 들여다보고 있었고 입가에 미소가 걸려 있었다.주시우는 이불을 들추고 옆에 누워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렇게 둘은 침대 머리맡에 반쯤 기대 앉은 채 사진들을 함께 보았다.“아윤이가 친구랑 사진을 엄청 많이 찍어 놨더라고요.”신예린은 손가락으로 사진을 넘기며 화면을 그의 쪽으로 기울였다.“이 애가 아윤이가 말한 바투르인 거 같아요.”사진 속 바투르는 열 살쯤 되어 보였고 주아윤과 함께 말 옆에서 찍은 사진 속의 표정은 해맑았다.주시우는 눈을 내리깔고 한참 보다가 물었다.“이전에 찍힌 영상들도 다 봤어?”“아직이요. 거기까지 못 갔어요.”김수희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주아윤을 찍었는지, 한번 외출 나가면 사진과 영상이 수천 장 늘어났다.신예린은 그 어느 것도 놓치고 싶지 않아 하나하나 세심하게 다 보고 있었다.그때 주시우가 그녀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았다.“잠깐만요, 아직 채 못 봤...”그러나 그는 휴대폰에서 영상 폴더를 열었다. 거기에 ‘첫 뒤집기’, ‘첫 고개 들기’, ‘첫 걸음마’... 온갖 ‘첫’이 적힌 분류가 정리되어 있었다.주시우는 그중 하나를 눌렀고 영상에서 아주 작은 아기가 보였다. 주아윤은 겨우 세 달 정도 되어 보였고 곧 주시우의 목소리가 들렸다.“방금 아윤이가 고개를 들었어. 갑자기 생각났는데 이렇게 휴대폰으로 아윤이가 자라는 모습을 많이 찍어 두면 네가 돌아왔을 때 보여줄 수 있겠다 싶어서, 아윤이를 데리고 휴대폰을 사러 갔어. 비록 첫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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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4화

“엄마...”아직 발음이 조금 서툰 말랑말랑한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그 순간 신예린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터졌다. 눈앞이 흐려진 그때, 부드러운 손길이 휴지를 건네왔고 흐릿한 시야 속에서 주시우의 얼굴이 보였다.“네가 울 줄 알았다니까. 그래서 미리 준비했어.”그러나 신예린은 휴지를 받지 않고 오히려 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주시우의 가슴팍은 어느새 눈물로 흠뻑 젖고 그녀의 체온까지 함께 스며들었다.“이 영상들이 있으면 마치 네가 옆에서 아윤이가 크는 걸 보고 있는 거 같을 거 같아서 찍어 봤어. 그러면 그동안 아이를 못 지켜봐서 미안했던 게 조금은 덜할 거 같았어.”주시우는 그녀의 등을 조심스럽게 쓸어 내렸다.“시우 씨, 왜 이렇게 나한테 잘해 줘요...”그녀의 목소리는 살짝 울먹임이 섞여 떨렸다.그러나 가슴이 미어지는 건 단순히 주아윤의 성장 영상을 봐서가 아니었다. 그 영상을 남기기 위해 주시우가 얼마나 마음을 썼는지가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다.휴대폰 용량의 절반을 넘게 차지한 사진과 동영상은 단순한 심심풀이가 아니라 그가 진심으로 기록해 온 시간이었다. 신예린이 함께하지 못한 주아윤의 시간을 그가 대신 채워 준 셈이었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또 있을까.그때 머리 위에서 주시우의 낮은 웃음소리가 내려왔다.“넌 내 아내야. 내가 너한테 잘해 주지 않으면 누구한테 잘해 줘?”신예린은 코가 시큰해져서 울먹이며 말했다.“이러면 내가 더 사랑하게 되잖아요.”“그럼 그렇게 해. 어차피 나도 너를 더욱 사랑할 거니까.”그 한마디에 신예린의 눈물이 또다시 왈칵 터졌다.그녀는 고개를 들었고 주시우의 턱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그다음에 곧 볼에 눈물이 가득 흘렀고 입술 사이로 짠 많이 번졌다.신예린은 그게 신경 쓰여서 주시우의 잠옷을 확 잡아당기더니 거기다가 얼굴을 막 닦았다.주시우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야, 내 잠옷인데...”“어차피 다 젖었어요. 이따가 갈아입으면 되죠.”그런데 주시우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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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5화

신예린은 고개를 돌리자마자 주시우의 깊은 눈빛을 마주했다. 그러나 입을 열기도 전에 그녀는 갑자기 번쩍 들렸다.“꺅!”비명을 지르려 했던 신예린은 주아윤이 자고 있다는 생각에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좀 살살 해요!”그녀는 얼굴까지 시뻘개진 채로 주시우의 팔뚝을 툭 쳤다.신예린이 말한 건 조심하라는 뜻이었는데 주시우는 입꼬리를 올리며 애매하게 대답했다.“최대한 조심할게.”그 조심이 무슨 뜻인지는 묘하게 믿음이 안 갔다.결국 신예린은 그의 품에 안긴 채 방으로 다시 돌아왔고 침대 위에 살포시 내려놓인 순간, 심장이 괜히 ‘쿵’ 하고 울렸다.주시우가 다가와 입을 맞추려 하자 신예린은 재빨리 발로 그를 툭 찼다.“문부터 닫아요!”방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혹시 주아윤이 깨어나서 이 장면이라도 보면... 생각만 해도 신예린은 얼굴이 화끈거렸다.주시우는 그녀를 바라보더니 일어나 걸어가서 문을 닫았다. 그리고 ‘딸깍’하고 문을 잠그는 소리가 또렷하게 울렸다.그 소리는 마치 ‘이제 아무도 방해하지 마세요. 곧 대형 사고 날 거니까’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돌아선 주시우는 이불을 몸에 칭칭 감고 머리만 빼꼼 내놓은 채 웃고 있는 신예린을 봤다. 그녀의 표정은 묘하게 장난스럽고 귀여웠다.주시우는 다가가 이불을 당겼지만 신예린이 제대로 깔고 있어 이불이 움직이지 않았다.결국 그는 힘으로 그녀를 눕히고 몸을 눌렀다. 신예린은 깔깔 웃으며 옆으로 굴렀지만 순간 허점을 보였다. 그녀의 등을 보고 주시우는 순식간에 이불을 낚아채더니 침대 모서리로 던져버렸다.그때 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고 숨소리가 가까워졌다.“계속 장난칠 거야?”그의 낮은 목소리가 나른하게 깔렸고 신예린은 오히려 주시우의 목에 팔을 걸었다.“네, 계속 할 거예요.”투정 부리는 아이 같은 말투에 주시우의 눈빛이 짙어졌다.“그럼 우리 다른 거 좀 놀아볼까.”허스키한 음성이 귀에 파고들었고 바로 달콤하고 깊은 입맞춤이 이어졌다.신예린은 숨이 막힐 만큼 심장이 두근거렸고 잔잔했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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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6화

주아윤은 머리만 살짝 내밀고 있었고 전등 불빛 아래, 아이의 커다란 눈망울이 유난히 맑아 보였다.“나중에 다들 꼬마 달팽이가 세상을 여행하고 싶어 하는 이유를 알게 되자 하나둘씩 달팽이를 위로하고 격려해 줬어요. 그러다가 결국 달팽이는 알게 됐답니다. 여행길에서는 속도가 빠르든 느리든 상관없다는 걸.”주아윤은 침대 위에서 어느새 잠들었다.주시우의 말대로 주아윤은 잠드는 속도가 정말 빨라서 이야기를 다 듣기도 전에 곯아떨어졌다. 그러고는 다음 날 또 붙잡고 어젯밤 이야기를 다시 들려 달라고 졸랐다.신예린은 주아윤의 보들보들한 볼에 입을 맞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마침 문가에 기대 서 있는 주시우와 눈이 마주쳤다.그의 눈매는 유난히 깊었고 눈빛에 부드러운 온기가 깃들어 있었다.“통화 끝났어요?”신예린은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그러자 주시우는 휴대폰을 살짝 흔들어 보였다.“아예 전화 온 적이 없는데?”그제야 신예린은 그가 일부러 자신과 주아윤에게 단둘이 시간을 보내도록 배려해 준 거라는 걸 눈치챘다. 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입꼬리를 올리며 그의 품에 안긴 채 장난스럽게 말했다.“나 방금 꽤 잘 읽었죠?”“응, 정말 잘했어.”신예린은 그의 품에서 장난스럽게 웃었다....“신 선생님, 여기 사인 좀 해주세요.”오혜진이 진료 지시서를 건네자 신예린은 대충 확인한 뒤 빠르게 펜으로 서명했다.오혜진은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바라봤는데 마침 신예린이 고개를 들어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왜요?”신예린이 물었다.“아, 아무것도 아니에요.”오혜진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신예린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펜을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저 그럼 사무실에 갈게요. 필요한 게 있으면 불러요.”그녀가 떠나자 오혜진은 옆자리의 동료를 쿡 찔렀다.“야, 신 선생님이 점점 예뻐지는 거 같지 않아?”그러나 동료는 시큰둥하게 말했다.“원래 예쁘시지 않았어요? 물론 이정현 선생님처럼 화려한 외모의 미인은 아니지만 볼수록 매력 있으시잖아요.”“그런 뜻이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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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7화

지금 신예린은 이석훈이 무슨 말을 하든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녀는 컴퓨터를 켜면서 고개조차 들지 않고 대답했다.“아니거든요.”그 말에 이석훈의 눈빛이 살짝 반짝였고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신예린이 자신에게 대꾸할 시간조차 없는 걸 보자 그는 조용히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주아윤은 집 베란다에서 퍼즐을 맞추고 있었다. 하지만 시선은 자꾸 아래쪽으로 향했다.주시우는 그런 딸의 행동을 다 보고 있었고 커다란 판다 얼굴을 완성시키며 태연하게 말했다.“엄마한테 방금 문자 왔어. 오늘은 집에 좀 늦게 온대. 한 삼십 분?”주아윤은 마음이 들키자 얼굴이 달아올랐고 괜히 변명했다.“엄마를 기다리는 거 아니거든요.”하지만 주시우는 모를 리가 없었다. 딸의 마음을 꿰뚫어 본 그는 웃으며 제안했다.“그럼 우리 같이 엄마를 데리러갈까?”주아윤은 눈빛이 살짝 반짝였지만 아빠 앞에서 일부러 시큰둥한 척했다.“그래요.”하지만 곧바로 벌떡 일어나서 폴짝폴짝 뛰며 방으로 들어갔다.“퍼즐은 안 맞출 거야?”“갔다 와서 다시 맞출 거예요.”주아윤은 신이 나 있는 건 숨길 수 없었다.주시우는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자리에서 일어섰다.병원에서 일을 마친 신예린은 주시우와 주아윤이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가방을 챙겨 들고 엘리베이터로 달려갔다. 너무 급해서 마치 그림자만 남기고 사라진 것 같았다.간호사 스테이션 쪽에 갑자기 바람이 훅 불자 황이슬이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지금 뭐가 확 지나간 거 같지 않았어?”“뭐라고?”옆에 있는 동료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야, 그런 소리 하지 마. 오늘 우리 야간 근무야.”주시우의 차는 늘 세우는 자리에 멈춰 있었다. 그는 유리창 너머로 병원 현관에서 급히 뛰쳐나오는 익숙한 실루엣을 보았다. 너무 급했는지 신예린은 발을 헛디뎌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주시우는 차 문을 열고 내려가 그녀를 맞았고 신예린은 코앞까지 달려와 숨을 몰아쉬었다.“천천히 와도 돼. 우리 시간 아주 많거든.”주시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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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8화

신예린의 말에 주시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입을 벌려 사탕을 물고는 입꼬리를 올렸다.“고마워, 우리 큰 보물.”그 말을 듣자 주아윤이 참지 못하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그럼 나는요? 나는 뭐예요?”신예린과 주시우가 동시에 돌아봤다.“넌 작은 보물이지.”주아윤은 귀까지 빨개지더니 금세 활짝 웃었다. 그러고는 기쁜 표정으로 다시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집에 돌아오니 시간이 꽤 늦었지만 저녁을 먹고 나서 신예린은 주아윤을 데리고 놀이터로 내려갔다. 주시우는 갑자기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 함께 내려오지 못했다.아파트 단지가 잘 돼 있어 놀이터 시설도 잘 갖춰져 있었다. 미끄럼틀, 시소, 모래 놀이터까지 다 있었다.신예린은 주아윤과 잠깐 모래놀이를 하다가 아이가 또 어딘가로 기어오르러 달려가자 그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이 시간대에는 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모들이 제법 많았다. 같은 나이 또래 아이들은 금방 어울려 함께 놀았고 부모들은 옆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그런데 그들의 시선이 신예린 쪽으로 향하는 게 느껴졌다. 낯선 얼굴이니 신경이 쓰일 법도 했다. 신예린은 어렴풋이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저 사람 새로 이사 왔나? 본 적이 없는데.”“아까 보니까 아윤이랑 놀고 있던데요.”“주아윤? 그 의대 교수님의 딸을 말하는 거야? 그럼 저 사람은 아윤이의 새엄마인가?”“아니요. 전에 아윤이의 엄마가 외국에 유학 갔다면서요? 혹시 진짜 엄마 아니에요?”“그건 다 아윤이를 달래려고 한 말 아니야? 내 생각엔 벌써 이혼했을 거야. 안 그러면 어느 남편이 아내를 그렇게 오래 외국에 보내겠어? 남자들은 웬만하면 혼자서 애를 데리고 살려고 하지 않지 않나? 다들 남편이 어때?”그 말에 옆에 있던 엄마들이 동시에 인상을 썼다. 집에 오면 소파에 박혀서 꼼짝도 안 하는 자기 남편들을 떠올린 것이다. 정작 아이 낳자고 한 건 남편인데 막상 아이가 태어나니까 다 떠맡기고 자기는 손 놓고 있는 꼴이라 그들은 속이 답답했다.“그런데 그 교수님 꽤 괜찮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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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9화

신예린의 말을 듣고 그 자리에 있는 엄마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눈을 크게 떴다.‘새엄마가 아니라 진짜 친엄마라고? 생각보다 훨씬 젊잖아?’신예린은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저는 이제 막 해외에서 돌아와서 아직 이웃분들이랑 잘 몰라요. 저기, 혹시 누구 엄마세요?”그녀의 말투는 자연스럽고 친근했으며 괜히 아부하거나 어색한 기색은 없었다. 그중 한 여자가 먼저 입을 열며 저쪽에서 축구를 차고 있는 꼬마를 가리켰다.“저 애가 우리 아들인데 건후라고 해요. 하루 종일 뛰어다니는 게 일이라니까요.”다른 엄마들도 자기 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머리 묶은 애가 제 딸이에요, 해원이.”“지금 아윤이랑 미끄럼틀을 같이 타는 애가 우리 예찬이에요.”서로 자기 아이를 소개하면서 얼굴에 조금씩 웃음기가 돌았다.“그럼 평소에는 서로 뭐라고 부르세요?”신예린이 물었다.뜻밖의 질문이었는지 엄마들은 깔깔 웃었고 신예린은 그들이 왜 웃는지 몰라 고개를 갸웃했다.나이 많아 보이는 한 여자가 대답했다.“우린 서로 이름을 안 불러요.”“그럼 뭐라고 불러요?”“저는 해원이 엄마요.”“저는 건후 엄마예요.”“저는 예찬이 엄마예요.”그들은 장난스럽게 말하며 서로 눈을 마주쳤다.그러나 신예린은 순간 자신이 착각했나 싶을 정도로 그들의 웃음 속에 묘하게 서글픈 기운이 비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예찬이 엄마.”이때 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신예린이 뒤돌아보니 또 다른 여자가 주아윤의 또래처럼 보이는 남자아이의 손을 잡고 다가오고 있었다.“아, 빈이 엄마.”그 말에 신예린은 조금 전에 그들이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며 무심코 그 여자를 유심히 살폈다.여자는 아이의 손을 잡고 다가왔다.“예찬이는 어디 있어요? 우리 빈이가 예찬이랑 놀고 싶대요.”“미끄럼틀 쪽에 있어요. 예찬아, 얼른 가 봐.”“빈아, 가서 예찬이랑 놀아. 조심하고.”빈이 엄마는 아이를 보내놓고서야 신예린을 발견하고 위아래로 훑어봤다.“전에는 못 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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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0화

“네가 안 비켜줬잖아!”체구가 비슷한 꼬마 둘이 황소처럼 서로 밀고 당기며 싸우기 시작했다.신예린과 빈이 엄마는 거의 동시에 달려가 아이들을 떼어놓으려 했다.“아윤아, 일단 손 놔.”“주아윤, 우리 빈이 놓으라고 했지!”빈이 엄마의 말에 신예린의 미간이 스르르 좁혀졌다.‘이런 상황이면 자기 아이부터 말리는 게 먼저 아닌가? 그런데 왜 내 딸한테 저래?’그녀가 입을 떼기도 전에 주아윤이 소리쳤다.“안 놓을래요! 빈이가 먼저 나를 밀었는데 왜 내가 놔야 해요!”빈이도 울먹이며 소리를 질렀다.“주아윤, 너 진짜 말 안 듣네! 그래서 네 엄마가 널 버리고 갔지!”그 말에 신예린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고 주아윤은 얼굴이 더 빨개지며 발끈했다.“우리 엄마는 나를 안 버렸어!”“우리 엄마가 다 말해줬어. 네 엄마가 이렇게 오랫동안 안 돌아온 건 널 싫어해서라고. 네가 말 안 듣고 못돼서 네 엄마가 다시는 안 돌아오려고 했던 거야.”그 말에 눈이 새빨개진 주아윤은 주먹을 쥐고 빈이를 퍽 때렸다.“거짓말! 그런 거 아니야!”빈이 엄마가 주아윤을 번쩍 들어올리려 손을 뻗는 순간 신예린이 그녀의 손목을 탁 붙잡았다. 그녀의 눈빛이 어두워졌다.“방금 빈이가 말한 게 무슨 뜻이에요? 아이한테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한 거예요!”빈이 엄마도 지지 않았다.“내가 뭘 어쨌는데요! 이 동네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인데요? 그쪽이 애를 버리고 나간 거는 사실 아니에요? 그런 짓을 하고도 눈치는 보이긴 하나 보네요?”이때 신예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자 빈이 엄마는 다른 손으로 신예린의 머리카락을 확 잡아챘다.머리카락이 뜯기는 통증에 신예린도 분노가 터졌고 그녀 역시 상대의 머리채를 잡으며 맞받아쳤다.“남의 집 일에 함부로 입 놀리지 마세요. 앞으로 우리 애한테 또 이상한 소리했다간 가만 안 둬요.”순식간에 난장판이 됐다.어린 애들은 서로 뒹굴고 엄마들은 서로의 머리채를 잡으며 싸우고 있었다. 주변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 황급히 달려와 둘을 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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