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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포인트의 모든 챕터: 챕터 411 - 챕터 420

454 챕터

제411화

주시우는 눈앞에 서 있는 두 사람을 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리고 그쪽으로 걸어가며 물었다.“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됐어?”“아빠, 우리 빈이랑 빈이 엄마랑 싸웠어요.”주아윤이 먼저 큰 소리로 외쳤다.그 말에 주시우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다친 데는 없어?”그는 신예린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주아윤의 앞에 쭈그려 앉아 아이의 바짓단을 걷어 올리며 멍이나 상처가 있는지 꼼꼼히 살폈다.“없어요.”확인해 보니 정말 멀쩡했다. 안심한 주시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신예린을 바라봤다.“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그의 목소리와 말투에 걱정이 묻어 있었다.그런데 신예린이 막 입을 열려는 순간, 주아윤이 먼저 끼어들었다.“다 빈이 때문이에요! 자기가 새치기하다가 넘어졌으면서 내가 넘어뜨렸다고 하고, 나를 밀기까지 해서 싸웠어요!”신예린이 곧 말을 이어받았다.“나랑 빈이 엄마가 보고 뛰어갔는데 그쪽은 자기 애를 안 말리고 오히려 아윤이 탓을 하더라니까요. 애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건 흔한 일인데 어른이 끼어들면 괜히 일이 커지잖아요. 나도 아윤이가 괴롭힘당하는 걸 보고 너무 화가 나서... 그냥 참전했어요.”“빈이가 나보고 엄마가 날 버렸다고 했어요!”주아윤은 화가 잔뜩 난 표정이었고 신예린은 옆에서 거들었다.“그건 빈이 엄마가 그렇게 가르쳐서 그래요.”“빈이는 나쁜 애예요.”“빈이 엄마도 나쁜 사람이에요.”“먼저 손댄 건 빈이예요.”“빈이 엄마도 먼저 손댔어요.”모녀는 한 마디씩 주고받으며 마치 벌들이 ‘웅웅’대듯 주시우의 귀 옆에서 쉴 새 없이 떠들었다.주시우는 웃음이 터질 것 같았지만 참으며 두 사람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봤다.“그래서 이겼어?”“우리가 이겼어요!”“이겼어요!”두 사람은 동시에 대답했고 표정에 자부심을 잔뜩 띠고 있었다.“그럼 상으로 너희한테 요거트 하나씩 줄까?”“예!”모녀는 동시에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서로 눈이 마주치자 신예린이 손바닥을 내밀었다.주아윤은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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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2화

주시우는 신예린이 슬픈 표정을 짓는 걸 보고는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 쥐고 입술에 입을 맞췄다.“바보야, 이미 끝난 일인데 왜 그렇게 속상해해.”“당연히 속상하죠. 시우 씨랑 아윤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요.”주시우는 그녀의 미간을 손가락으로 천천히 쓰다듬으며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봤다.“그럼 너 후회해?”그 한마디에 신예린은 말문이 막혔다.후회하냐고? 만약 그때 유학을 가지 않았다면 지난 5년의 시간도 없었을 테고 지금처럼 성장한 자신도 없었을 것이다.잠시 생각하던 신예린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주시우가 자신을 해외로 보냈던 일을 여전히 고맙게 생각했고 후회는 없었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세월이 덜 그리웠던 건 아니었다. 사람은 양쪽 다 가질 수 없을 때 결국 스스로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 신예린도 그뿐이었다.주시우는 그녀가 고개를 젓는 걸 보고 미소를 지었다.“그거면 됐어. 네가 후회 안 하면 돼.”한 가지 선택의 옳고 그름은 종종 몇 년, 심지어 몇십 년이 지나야 알 수 있는 법이었다.그는 늘 걱정했다. 만약 신예린이 후회한다면 자신이 내린 결정이 잘못이었다는 뜻일 테니까.“사회에서 살아가면 누군가는 꼭 우리의 뒷말을 해. 네가 유학 안 갔으면 그 사람들의 수다 주제는 ‘대학교도 안 졸업하고 애부터 낳았다더라’, ‘교수가 제자랑 엮였다더라’ 이랬겠지. 그런 사람들은 늘 남의 집 얘기로 재미를 얻잖아.”주시우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마치 세상 어떤 일도 그에게 큰 파도를 일으킬 수 없는 것처럼.“우린 그런 말들을 다 막을 수 없어. 그럴 땐 그냥 귀를 닫고 우리의 삶이나 잘 살면 되는 거야.”진짜 강한 사람은 쓸모없는 말, 상관없는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는 법이다.“아윤이한테도 그렇게 가르쳤는데 아직 애라서 잘 못 알아들었어. 그래서 결국 내가 이렇게 말했어. ‘친구의 말을 듣고 화나면 그냥 때려. 아빠가 뒤를 봐줄 테니까’.”그제야 오늘 저녁에 주아윤이 그토록 당당했던 이유가 이해됐다.주시우의 말에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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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3화

깜깜한 방 안, 빈이 엄마는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어 이리저리 뒤척였다. 그녀의 머릿속에 몇 년 전 주시우에게 정중하게 거절당했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고 오늘 아윤이 엄마와 싸우다가 지고 돌아온 굴욕이 함께 떠올랐다.게다가 그 장면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녀를 두고 ‘표독하고 이기적이다’라고 수군거리는 걸 생각하니 빈이 엄마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빈이 엄마가 이혼한 뒤로 성질이 더 사나워졌대.”“그러니까 애도 그렇게 컸지.”이런 말은 이미 수없이 들었지만 들을 때마다 그녀는 억울하고 화가 났다.빈이 엄마는 남편과 함께 무일푼에서 시작해 가정을 일궜고 돈 좀 모으니 아이를 젖먹이는 동안 남편의 바람이 들통났다. 그는 대놓고 이혼을 요구했고 빈이 엄마는 어떻게든 빈이의 양육권을 쟁취해 혼자서 아이를 키워냈다.만약 그녀가 조금이라도 약했으면 어떻게 혼자 아이를 키우며 버틸 수 있었을까. 그런데 사람들이 뭘 안다고 그저 뒷담화나 하고 앉아 있다니...빈이 엄마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오늘 느낀 굴욕과 지난 세월의 억울함이 마치 눈덩이처럼 점점 불어나 그녀의 가슴을 죄어왔다.그런데 그 순간 빈이 엄마는 신예린의 얼굴이 떠올랐다.‘나는 내 인생과 내 몸을 다 바쳐서 아이를 키웠어. 지금도 이렇게 희생하고 있고. 이 정도는 돼야 엄마가 될 자격이 있는 거 아니야? 그런데 그 여자는 뭐 했어? 오랫동안 아이의 곁에 안 있었으면서 무슨 자격으로 엄마 행세야.’빈이 엄마는 홱 돌아누워 침대 머리맡에서 휴대폰을 집어 들고 연락처를 뒤적였다.“여보세요, 서현아. 너 예전에 화정대 의대 다녔지? 몇 학번이었어? 혹시 주시우라는 교수 알아?”상대방이 뭐라고 대답하자 빈이 엄마는 깜짝 놀라 몸을 벌떡 일으켰다.“네가 학교에 있을 때 주 교수님이 이미 결혼했었어? 그 사람의 아내가 누구인지 알아? 뭐? 자기 학생이랑 연애했었다고?”...신예린은 처음에는 그날 일을 그냥 흔한 동네 싸움 정도로 생각했고 앞으로 안 마주치면 그만일 거라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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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4화

“아윤이가 너무 뛰어다녀서 땀으로 흠뻑 젖었어. 우리 이제 집에 가자.”주시우가 다가오며 말했다.“네.”신예린과 주시우는 다른 아이들의 엄마들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고 주아윤도 손을 흔들며 ‘안녕히 계세요’라고 인사했다. 그리고 나서 세 사람은 나란히 집 쪽으로 걸어갔다.그들이 꽤 멀리 걸어 왔는데도 뒤에서 시선이 따라오는 게 느껴졌다. 신예린이 주시우의 셔츠 자락을 살짝 잡아당기자 주시우는 그녀를 내려다보았다.“요즘 우리 아파트 사람들이 좀 이상하지 않아요?”신예린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나도 오늘 확실히 느꼈어.”주시우도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우리 가족이 요즘 동네의 스타가 됐나 봐요.”신예린은 농담처럼 말했지만 속은 불편했다.그때 주시우의 품에 안겨 있던 주아윤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아빠, ‘사제지간 연애’가 뭐예요?”순간 신예린과 주시우의 시선이 딱 마주쳤다.“아윤아, 갑자기 그게 왜 궁금해?”주시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다른 아저씨, 아줌마들이 그러던데요? 아빠랑 엄마가 사제지간 연애했대요. 그래서 아빠는 나쁜 선생님이고 엄마는 뻔뻔한 거래요. 그걸 듣고 나 진짜 화났는데 혼자서 말로는 그 사람들을 못 이기겠더라고요.”볼이 빵빵하게 부풀어 있는 주아윤은 짧은 팔로 주시우의 목을 꼭 끌어안고 외쳤다.“아빠는 좋은 선생님이에요! 그 사람들의 말이 다 틀렸어요!”아직 앳된 목소리였지만 그 말은 신예린과 주시우의 가슴에 묵직하게 와 닿았다.신예린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달랬다.“아윤아, 아빠는 당연히 좋은 선생님이지. 그분들이 뭔가 오해하신 거야. 엄마랑 아빠가 꼭 잘 이야기해서 풀 거니까 걱정하지 마.”집으로 돌아와 주아윤을 재우고 난 후 신예린은 곧바로 주시우와 함께 침대에 앉아 사건을 하나씩 짚어 보기 시작했다. 곰곰이 생각해 봐도 떠오르는 건 며칠 전 빈이 엄마와 싸운 그 일뿐이었다.“백 퍼센트 빈이 엄마 때문이에요.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먼저 뒤에서 이런 소문을 퍼뜨리다니. 내일 당장 찾아가서 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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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5화

원래 빈이 엄마는 친척을 통해 주시우의 아내에 대해 살짝 알아보려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웬걸, 그 통화 덕분에 엄청난 ‘핵폭탄급 소문’을 들어버린 것이다.“어쩐지 애를 버려두고 혼자 도망갔더라니, 알고 보니 얼굴을 못 들고 살 일을 한 거였네요.”그녀는 모임에서 은근히 불씨를 던졌다.“봐봐요, 아윤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엄마를 못 보고 지냈잖아요. 얼마나 불쌍해요. 한 아이의 엄마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독한지.”다른 엄마들도 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불만을 쏟아냈다.“맞아요. 저는 우리 애를 보려고 직장까지 그만뒀다니까요. 이게 엄마 마음이죠.”“이 나이의 애들한테 제일 필요한 게 부모랑 같이 있는 건데, 어떻게 저렇게 매정할 수가 있어요?”“엄마라고 해서 다 자식을 사랑하는 건 아닌가 보네요.”그런데 그때 왁자지껄하던 목소리들이 갑자기 뚝 그쳤다.빈이 엄마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다른 엄마들이 한쪽을 바라보며 눈치를 보는 걸 보고 따라서 시선을 돌렸다.그러자 바로 조금 전까지 그들의 이야기 소재였던 부부가 주아윤의 손을 잡고 그곳에 서 있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 서 있는 그들의 눈빛은 어두웠고 한없이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할 정도였다.“아윤아, 저기 가서 친구들이랑 놀고 있어.”주시우가 몸을 낮추고 아이에게 다정하게 말했다.주아윤은 잠깐 빈이 엄마 쪽을 흘깃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달려갔다.남은 엄마들은 괜히 죄책감에 눈알만 굴리며 어색하게 웃었다.“어... 집에서 해야 할 게 있었는데 이제야 생각났네. 먼저 가야겠다.”“저도 우리 애를 보러 가야겠어요.”“아, 택배 찾아야 하는데.”다른 엄마들은 한마디씩 핑계를 대고 뿔뿔이 흩어졌다.“아니, 저기...”빈이 엄마는 황당했다. 조금 전까지 그녀와 같이 떠들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녀와 주시우, 신예린 부부만 남겨 놓았다.자신이 숫자에서 밀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빈이 엄마는 슬쩍 자리를 뜨려 했다. 하지만 신예린이 그 앞을 막아섰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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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6화

그 말은 마치 벼락처럼 울려 퍼졌고 땅에 주저앉아 있던 빈이 엄마는 눈을 크게 뜨고 벌떡 튀어 올랐다.“빈아!”그녀는 쉰 목소리로 울부짖고 휘청거리며 아들 쪽으로 달려갔고 신예린과 주시우도 동시에 뛰어갔다.모래놀이장 주변에 사람들이 빙 둘러 서 있었고 키 작은 주아윤은 계속 안쪽을 기웃거렸다. 빈이는 한 어른의 품에 안겨 있었는데 목을 움켜쥔 채 얼굴은 시퍼렇게 질리고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빨리 도와줘요! 그 뭐였지, 하임... 하임 뭐 있잖아요!”“하임리히법이요!”누군가가 다급히 외쳤다.하지만 빈이를 안고 있는 어른은 완전히 패닉 상태였다.“저, 저도 잘 모르는데... 이렇게 하는 거 맞아요?”그러면서 빈이의 배를 대충 눌러대고 있었다.“네이버 좀 검색해 봐요! 온라인에 영상 많잖아요!”“119 안 불렀어요? 얼른 불러요! 의사가 와야 해요!”“아이 얼굴이 다 퍼래졌어요. 그냥 바로 병원에 가는 게 좋겠어요!”“애 부모는요? 부모 어디 있어요!”사람들은 우왕좌왕했고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됐다.그때 ‘의사’라는 단어가 주아윤의 귀에 꽂혔고 주아윤은 곧바로 엄마 신예린을 떠올렸다.그렇다. 주아윤의 엄마는 의사였다.주아윤은 반사적으로 엄마 쪽으로 달려가려 했고 마침 저쪽에서 몇 명이 뛰어오는 게 보였다.“엄마!”주아윤은 평소보다 훨씬 큰 목소리로 외쳤다.“빈이 목에 뭐가 걸렸어요! 빨리 살려줘요!”신예린은 주아윤의 옆을 지날 때 대답 대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빈이 엄마도 인파를 뚫고 앞으로 나왔는데 자기 아들의 얼굴이 시퍼래진 것을 보자 불안하고 긴장해서 눈이 새빨개졌다.“빈아!”이 상황이 두렵고 당황스러운 그녀는 아이를 확 끌어안으며 울부짖었다.“빈아, 괜찮아? 엄마가 좀 보자. 엄마 무서우니까 이러지 마...”하지만 빈이는 목에 뭐가 걸려 아무 말도 못 하고 절망적인 눈빛으로 눈알만 굴렸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빈이 엄마는 아이를 번쩍 안고 뛰어가려 했다.“엄마가 바로 병원에 데려갈게! 조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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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7화

“우리 고향에도 이런 일이 있었어요. 아이 부모가 잠깐 한눈판 사이에 아이가 구슬을 삼키고 목에 걸렸는데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아이는 세네 살밖에 안 됐는데 그렇게 허무하게 가버렸어요... 그때 부모의 심정이 어땠겠어요.”그 얘기에 빈이 엄마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녀는 아들을 더 꽉 안으면서 조금 전의 그 끔찍한 장면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빈이 엄마, 방금 아윤이 엄마랑 싸웠던 거 맞죠? 그래도 아윤이 엄마가 빈이를 살려줬잖아요. 진짜 마음이 넓네요.”“맞아요. 진짜 아윤이 엄마한테 제대로 고마워해야 해요.”그 말에 빈이 엄마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녀는 한참을 말없이 있다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그 사람들은 어디 갔어요?”“벌써 갔죠.”...가로등 불빛이 세 식구의 그림자를 길게 늘였다. 기분이 좋은 주아윤은 중간에서 주시우와 신예린의 손을 붙잡고 뛰었다.그러나 신예린은 여전히 분이 안 풀린 표정이었다.“하, 이런 일이 있으니까 내가 뭐라고 하기도 좀 민망하네요. 그런데 또 우리 가족 뒷담을 까기 시작하면 그땐 진짜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주시우는 옆에 있는 그녀를 힐끔 보았다.말은 이렇게 해도 막상 아이가 위험했을 때 제일 먼저 뛰어든 사람은 신예린이었다. 그 생각에 주시우는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그런데 기분은 좋아 보이네?”“당연하죠.”신예린이 말하자마자 주아윤이 큰 소리로 외쳤다.“나 알아요!”둘은 동시에 고개를 숙이고 아이를 내려다봤다.“우리 아윤이가 뭘 알았을까?”“엄마가 착한 일을 해서 기분이 좋은 거잖아요.”주아윤의 목소리는 맑고 귀여웠다.“선생님이 그랬는데 착한 일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어요!”신예린은 피식 웃으며 주아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우리 아윤이 똑똑하네.”착한 마음으로 좋은 일을 하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는 것이다.“그럼 우리 아윤이는 요즘 착한 일을 했어?”“했죠! 며칠 전에 어떤 할머니가 길 건너는 거 도와줬어요. 그리고 아래집 아줌마가 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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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8화

불붙었던 두 사람은 갑자기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얼어붙었고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정신이 번쩍 든 듯 허둥지둥 옷을 챙겨 입었다.“아, 아윤아, 잠깐만!”신예린은 얼굴이 새빨개진 채 급히 옷을 주워 입었고 주시우도 바닥에 던졌던 셔츠를 주워서 대충 몸에 걸쳤다. 둘 다 허둥지둥대느라 난리였고 옷 다 입고 나서도 신예린은 주시우를 발로 툭 차며 문을 열라고 재촉했다.주시우는 방 문 앞에 서서 심호흡하자 평소처럼 다정하고 점잖은 아빠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는 문을 열며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아윤아.”인형을 품에 안고 있는 주아윤은 고개를 들고 투정 섞인 말투로 말했다.“엄마 아빠 뭐 했어요? 왜 이렇게 늦게 문을 열어줘요.”주시우는 순간 눈빛이 흔들렸고 뒤에서 신예린이 킥킥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가 뭐라고 대답할지 지켜보는 눈치였다.주시우는 괜히 헛기침하고 태연한 척 말했다.“음... 아빠랑 엄마가 중요한 얘기를 좀 하고 있었어.”“무슨 얘기요?”주아윤은 궁금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그건 말이야... 엄마한테 물어봐.”신예린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젠장, 왜 나한테 떠넘기는 거야. 내가 웃은 거 보복하는 거야, 뭐야.’신예린은 이를 악물며 주시우를 째려봤다.주시우는 ‘살기’를 느끼면서도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럼 아윤이도 오늘 밤에 엄마 아빠랑 같이 잘 수 있어요?”주아윤이 해맑게 물었다.“어? 왜 갑자기 엄마랑 자고 싶어? 무슨 일 있었어?”주아윤은 혼자 자기 시작한 지 1년이 넘었는데 갑자기 이런 말을 하니 주시우는 괜히 걱정됐다. 하지만 주아윤은 대답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신예린 쪽을 힐끗 바라봤다.그 순간 주시우는 바로 눈치를 챘다.‘아, 엄마랑 붙어 자고 싶은 거구나.’오랜만에 돌아온 엄마에 대한 서먹서먹함은 이미 다 사라진 모양이었다.주시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히 되지.”그러자 주아윤은 신나서 인형을 들고 폴짝폴짝 뛰며 방으로 들어갔다.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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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9화

주아윤의 순진한 눈빛에 신예린은 말문이 막혔다.그러다가 무언가가 번뜩 떠오른 듯 머리맡에 있던 책을 덥석 집어 들고 더듬더듬 말했다.“채... 책 읽고 있었지. 자기 전에 책을 읽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잠도 잘 오거든.”“그런데 왜 그렇게 문을 늦게 열어줬어요?”‘당연히 옷 입느라 그랬지, 우리 아가야.’신예린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꿋꿋하게 대답했다.“아빠랑 엄마가 마침 재밌는 내용을 읽고 있어서 그거 끝까지 다 읽고 문을 열어준 거야. 너도 애니메이션을 볼 때 중요한 장면이 나오면 방해받기 싫잖아? 그거랑 똑같아.”그러자 주아윤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네.”주아윤을 성공적으로 구슬린 신예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어 주시우를 째려봤다.그가 태연하게 침대에 올라와 앉자 신예린은 주아윤을 사이에 두고 안 보이게 슬쩍 발로 그를 찼다.그런데 주아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엄마, 왜 아빠를 발로 차요? 선생님이 사람을 발로 차면 안 된다고 했어요!”신예린은 순간 얼어붙었다가 황급히 손사래쳤다.“아니야, 아니야. 엄마랑 아빠는 그냥 장난친 거야.”주시우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주아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역시 우리 아윤이, 착해.”아빠의 칭찬에 주아윤은 얼굴이 활짝 폈다. 주아윤은 몸을 엄마 쪽으로 바짝 붙이고 주시우를 보며 말했다.“아빠, 여기 누워요.”그렇게 세 식구는 나란히 침대에 누웠다. 주아윤은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배시시 웃었고 신예린은 마치 예전에 주아윤이 중환자실에서 퇴원하고 처음 집에서 재워주던 날처럼 아이의 어깨를 다독였다.잠시 후, 신예린과 주아윤은 금세 깊은 잠에 빠졌지만 주시우는 여전히 깨어 있었다.옆에서 들려오는 고른 숨소리에 긴장이 풀리면서도 그는 묘한 불안감이 들었다.‘설마 아윤이가 앞으로 매일 우리 방에 오는 건 아니겠지?’...다음 날, 집에 예상 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초인종이 울렸을 때 세 식구는 거실 소파에 앉아 만화를 보고 있었고 주아윤은 벨 소리에 가장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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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0화

빈이 엄마는 그 말을 듣고 멈칫했다.신예린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저와 제 남편은 사제지간에 연애를 시작한 게 맞아요. 하지만 저희는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사회에 해를 끼치는 나쁜 짓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남편은 묵묵히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저는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환자를 치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사제지간에 연애했다는 사실만으로 누군가에게 공격받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요.”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고 시선을 빈이 엄마에게 고정한 채 차분히 말했다.“저는 아이를 낳고 난 뒤 유학을 떠났어요. 사람들은 아이가 생기면 무조건 아이만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우리도 엄마이기 전에 한 사람이잖아요. 제 이름은 ‘아윤이 엄마’가 아니라 ‘신예린’이에요. 저는 아이를 낳기 전에도 제 삶이 있었고 제 능력으로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었어요.”“그리고 저는 정말 다행히 저를 응원해 주는 남편을 만났죠. 그 덕분에 후회 없이 제 길을 갈 수 있었어요. 앞으로 아윤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면 저도 똑같이 말해 줄 거예요. 너도 너 자신을 먼저 생각하라고. 부모도, 자식도 각자의 인생이 있는 거니까요. 누군가의 인생을 대신 살아 줄 수는 없죠.”빈이 엄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신예린의 말이 망치처럼 그녀의 가슴을 세게 내려쳤다.그녀는 빈이를 낳은 후 아이를 자기 삶의 전부로 여겼다. 아이가 자신의 손에서 미끄러질까 봐 조심스럽게 안고 갑자기 사라질까 봐 애지중지하며 평생 놓지 않고 품고 싶어 했다.2년 전에 전 남편이 아이를 보러 왔을 때 빈이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었다.“지금 너 이러는 거 솔직히 좀 무서워.”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어젯밤에 아이를 잃을 뻔했다가 되찾은 그녀가 빈이를 안고 자는데 빈이가 말했다.“엄마, 나 숨 막혀요...”빈이 엄마는 단순히 자신이 너무 세게 안아서 그런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건 자신이 아이를 옥죄듯 붙잡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그녀는 빈이를 너무 사랑했다. 열 달을 품고 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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