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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포인트의 모든 챕터: 챕터 431 - 챕터 440

454 챕터

제431화

일이 다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주시우의 몸이 다시 뒤에서 밀려와 붙더니 입술이 신예린의 귓바퀴를 살짝 물었다.“여보, 한 번만 더 하자. 괜찮지?”“네?”겨우 숨을 고르던 신예린은 또다시 얼굴을 돌려 잡히더니 젖은 얼굴로 밀착한 주시우의 뜨거운 숨결에 휘말려 입술을 빼앗겼다.다음 날 아침, 신예린은 살결을 간질이는 듯한 촉감에 눈을 떴다. 눈앞에는 귀엽게 웃고 있는 주아윤의 얼굴이 있었다.“아윤아.”소리를 내뱉고 나서야 목이 까슬한 걸 깨달았다. 단순히 막 잠에서 깨어나서가 아니라 어젯밤 주시우에게 휘둘린 탓이었다.“엄마 깼네요!”맑은 목소리의 주아윤이 기뻐하며 외쳤다.“응.”신예린은 주아윤을 끌어안으며 물었다.“근데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일찍 아니에요.”주아윤의 까맣게 빛나는 눈동자가 반짝였다.“아빠가 벌써 열 시 넘었다고 했어요.”그제야 신예린은 시간이 훌쩍 지나 있음을 깨달았고 다행히 오늘은 야간 근무라 늦잠을 자도 상관없었다.어젯밤은 늦도록 정신없이 휘말려 움직일 힘조차 없었던 신예린을 주시우가 씻기고 흐트러진 침구까지 갈아치운 뒤 주아윤을 다시 방으로 옮겼다.그 덕분에 아침이 되자 모든 흔적은 말끔히 지워져 있었다.주아윤 역시 눈치 챈 게 없어 보였다. 그런데 주아윤의 시선이 이불 위에서 멈췄다.“왜 그래?”신예린이 묻자 주아윤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엄마, 제가 어제 잘 때 이불이 회색이었는데... 오늘은 파란색이네요.”“...”신예린은 입술만 달싹일 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마침 방문이 열리자 주시우가 들어왔다. 원래는 소리 없이 움직이려던 듯했지만 신예린과 눈이 마주치자 발걸음이 커졌다.“일어났네.”신예린은 구세주라도 만난 듯 얼른 주아윤에게 말했다.“아윤아, 아빠한테 물어봐. 왜 회색이던 이불이 파란색으로 바뀌었는지.”주아윤은 곧장 주시우를 올려다보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주시우는 잠시 멈칫하더니 의미심장하게 신예린을 스치듯 바라보고는 입꼬리를 올렸다.“아빠가 마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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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2화

믿는 도끼에 발등 찍는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지금 주시우가 딱 그런 꼴이었다.신예린은 입꼬리를 올리며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맞아요. 저도 보고 싶네요. 한번 변해 보세요.”그런데 주시우는 태연하게 다가와 주아윤을 안아 들었다.“아윤아, 아빠가 지금은 못 해.”“왜요?”주아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그건 밤에 아무도 없을 때만 할 수 있거든. 아주 비밀스러운 마술이라 다른 사람한테 보여주면 안 돼.”“근데 왜 엄마는 봤어요?”“그건...”주시우는 신예린을 슬쩍 바라보더니 입꼬리를 올렸다.“그 마술은 아빠랑 엄마가 같이 해야 완성되는 거거든.”“뭐라는 거예요!”신예린은 발길질을 날렸지만 주시우는 미리 알았다는 듯 주아윤을 안은 채 몸을 피했다.“안 믿기면 다음에 네가 잘 때 다시 보여 줄게. 그러면 아침에 일어나면 또 색이 바뀌어 있을 거야.”“주시우!”신예린의 얼굴은 금세 붉게 달아올라 목소리에도 경고가 묻어났다.그제야 주시우가 껄껄 웃으며 손을 들어 보였다.“알았어. 아빠가 장난친 거야. 사실은 아빠가 어제 이불을 더럽혀서 새로 갈아준 거야. 원래 있던 회색 이불은 세탁기에 있으니까 이따가 아빠랑 같이 널자.”“네!”주아윤은 곧장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자, 이제 일어나. 오늘 아침에 아빠가 고기랑 표고버섯 넣은 만두 빚었어.”신예린은 순간 눈을 크게 떴다.‘어젯밤에 그렇게 힘들게 그런 짓을 하고도 새벽에 일어나 만두까지 만든다고?’이런 체력이면 무슨 일이든 다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주아윤을 품에 안은 주시우를 보던 신예린은 두 팔을 벌리며 말했다.“나도 안아 줘요.”주시우는 대답할 틈도 없었고 신예린은 팔과 다리를 뻗어 마치 나무늘보처럼 그의 몸에 매달렸다. 물론 주시우는 주아윤까지 안고 있었다.예상 못 한 무게에 세 사람은 그대로 침대 위로 와르르 쓰러졌다. 주아윤은 아빠 팔에 매달린 채 깔깔 웃음을 터뜨렸고 신예린은 다리를 주시우 허리에 감은 채 함께 엉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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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3화

칭찬을 듣고 주아윤은 눈부신 미소를 지었다. 뽐내듯 입을 삐죽이는 주아윤의 얼굴에는 귀여움이 한껏 묻어났다.신예린은 아침 식사를 하며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창밖에서 스며든 햇살이 아빠와 딸의 어깨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아 두 사람을 빛으로 감싼 듯 보였다. 그 풍경은 따스하고 아늑했으며 빛줄기는 신예린의 마음속까지 스며들어 온기를 퍼뜨렸다.귀국 이후로 신예린은 줄곧 행복이라는 단어가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출근해서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는 순간조차, 두 사람을 떠올리면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이불을 다 널자 주아윤은 폴짝 뛰어와 신예린 품에 안겼다.“엄마, 나 잘했죠? 아빠랑 같이 이불 널었어요.”칭찬을 바라는 주아윤의 눈빛이었다. 신예린은 눈을 가늘게 접으며 말했다.“아윤아, 정말 잘했어.”순간 주아윤의 기분은 하늘로 솟아오른 듯했다. 꼬리를 흔들 것 같은 즐거움이 온몸에서 드러났다.그때 주시우가 다가와 물었다.“만두 맛있어?”신예린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맛있어요.”칭찬이 더 필요했던 주시우가 바로 말을 덧붙였다.“내가 직접 빚은 거야.”주시우는 일부러 강조하듯 말했다.신예린은 눈을 껌뻑이며 주시우를 바라보다가 주아윤처럼 칭찬을 바라는 눈빛임을 곧장 눈치챘다. 점점 딸을 닮아가는 주시우의 모습이 우습기도 했다.결국 신예린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와, 우리 남편 진짜 대단하네요. 만두까지 빚다니... 세상에서 제일 멋있어요.”그 말에 주시우의 입가가 눈에 띄게 올라갔다.그런데 주아윤이 입술을 삐죽 내밀며 불만을 토해냈다.“엄마, 아빠만 제일 잘난 거예요? 저는요?”‘아차, 균형을 맞추지 못했네.’신예린은 눈을 굴리다 재빨리 답했다.“아빠랑 아윤이는 공동 1등이지.”“야호! 나도 아빠랑 똑같이 1등이다.”주아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신예린과 주시우는 눈을 마주치고 웃음을 터뜨렸다.밖의 날씨는 더웠기에 세 사람은 집에서 함께 퍼즐을 맞추며 시간을 보냈다.“이건 여기야. 그리고 이 사과 조각은... 봐, 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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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4화

신예린과 주시우는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순간 굳어졌다.‘아니, 아윤이가 이렇게 쉽게 깨던 애가 아닌데...’신예린은 몰래 주시우의 팔을 살짝 꼬집으며 빨리 무슨 말이라도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다행히 주시우는 금세 평정을 되찾고 태연하게 대답했다.“그래. 그건 꿈이 맞아. 어제는 네가 엄마 아빠랑 같이 자서 그런 꿈을 꾼 거야.”주시우의 말끝은 담담했고 전혀 거짓말처럼 들리지 않았다.그리고 곧바로 시선을 아이패드로 돌리며 주제를 바꿨다.“아윤아, 네가 고른 곳이 정말 여기 맞아?”주아윤은 금세 관심을 돌리며 신나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해 뜨는 걸 보고 싶어요.”신예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주시우에게 몰래 엄지를 치켜세웠다.그러자 주시우의 입가에 옅은 웃음이 번졌다.“그럼 너는?”주시우가 물었다.“저는 어디든 좋아요. 당신이랑 아윤이랑 함께면 어디든지 다 좋아요.”주아윤은 이미 들떠서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와! 아빠 엄마랑 놀러 간다!”그 순간, 발끝이 퍼즐을 건드리며 완성해 둔 조각들이 와르르 흩어졌다.주아윤은 당황한 듯 어쩔 줄 몰라 발치에 흩어진 퍼즐을 내려다봤다.“괜찮아.”주시우가 다정하게 말했다.“다시 맞추면 돼.”신예린도 웃으며 거들었다.“이번에는 아빠도 같이 맞추자.”그 말에 주아윤은 금세 다시 웃음을 되찾고 자리에 털썩 앉았다.세 사람은 천천히 퍼즐을 다시 맞추며 한가로운 시간을 이어갔다.그러던 중 신예린의 휴대폰에 알림이 쏟아졌다.병원 단체방에는 이미 수십 개의 메시지가 쌓여 있었다.궁금해 들어가 보니 동료들이 회식을 어디서 할지 의견을 주고받고 있었다.“엄마, 이제 엄마 차례야.”퍼즐을 가리키는 주아윤의 목소리에 신예린은 얼른 휴대폰을 내려놓고 다시 집중했다.“알았어. 지금 할 게.”그 모습을 본 주시우가 나직이 말했다.“일 있으면 먼저 확인해도 돼.”“아니에요. 그냥 한 동료가 곧 퇴사해서 며칠 안에 환송회를 하기로 했는데 어디서 할지 정하는 중이래요.”주시우는 고개를 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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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5화

그 말은 분명 신예린을 향한 것이었지만 이석훈은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기구를 내려놓고 곧장 등을 돌렸다.수술실 문이 열리자 이석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 나갔다.예전 같았으면 몇 분쯤은 곁에 남아 과정을 지켜보거나 봉합이 끝날 때까지 함께 있었을 것이다.신예린은 표정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고 곧바로 이석훈의 자리를 이어받아 차분하고 능숙하게 봉합을 마쳤다.마지막 매듭을 지은 뒤 신예린은 함께 수술한 동료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수고 많으셨어요.”말을 남기고 수술실을 나서자 안에 있던 모두가 일제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정리하던 손길 사이로 수군거림이 퍼졌다.“오늘 수술 분위기 진짜 숨 막히더라. 이 선생님의 그런 기운 덕분에 환자를 살리는 게 아니라 해부하는 기분이었어.”“원래 이 선생님이 좀 그렇잖아. 다들 같이 수술하기 싫어하는 이유가 그거잖아.”“근데 말이야. 이상하게 신예린 씨랑 같이 수술할 땐 안 그러더라. 험한 말도 잘 안 하고 어려운 상황이 나오면 차근차근 설명도 해주고 말이야. 지난번 부원장 조카 수술할 때는 모두 앞에서 멍청하다고까지 했던 사람이잖아.”“오늘은 신예린 씨도 말투가 좀 차갑던데.”“설마 두 사람이 싸운 거야?”“심장외과에 친구 있는데... 나중에 한 번 물어봐야겠어.”신예린은 자신이 나간 뒤 이런 얘기가 오가고 있다는 걸 알지 못한 채, 조용한 복도를 지나 다시 진료실로 향했다.밤이라 병동은 비교적 한산했다.“신 선생님!”야간 근무 중이던 오혜진이 신예린을 보자마자 눈을 반짝이며 달려왔다.“결혼에 애까지 있다는 게 사실이에요?”그 소식은 기름에 물방울 떨어뜨린 듯 번졌고 하루 종일 온 과가 술렁였다.낮에 신예린이 보이지 않아 오혜진은 애가 타도록 직접 확인하고 싶어 했다.“맞아요.”신예린은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세상에... 진짜 몰랐어요! 근데요... 잘생겼어요?”역시 젊은 후배였던지라 오직 외모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신예린은 겸손하게 답했다.“나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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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6화

“어떻게 알았냐고?”“보통 사람들이라면 겸손하게 대답했을 텐데 신 선생님은 나쁘지 않다고 했잖아. 그럼 실제로는 그 이상이라는 거지.”심리학을 제법 통달한 듯한 말투였다.“그리고 들었어? 신 선생님, 남편이랑 사제지간이었다던데? 세상에, 이건 더 설레잖아.”그 순간, 이석훈의 눈썹이 스치듯 움직였다.‘사제지간이라고?’과 안에서 이미 떠도는 얘기였기에 이석훈도 알고 있었다. 신예린은 해외로 나가기 전에 이미 결혼한 상태였다.‘그렇다면 그때는 아직 대학생이었을 때 아닌가. 학생에게 손을 뻗다니.’이석훈의 눈에 비웃음이 스쳤고 참지 못한 듯 짧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그 소리에 간호사들이 동시에 고개를 들어 이석훈을 바라보았다.누군가를 헐뜯으려던 오혜진은 순간 가슴을 쓸어내렸고 말을 뱉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이석훈은 결국 입을 열었다.“자기 제자한테 손을 대는 사람이 좋은 사람일 리 없겠죠.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게 그렇게 좋아 보이나요?”오혜진은 지지 않고 맞받았다.“서로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뭐가 문제예요? 요즘 세상에 사제지간 연애도 드물지 않잖아요.”“제 지위와 권력을 앞세워 세상 물정 모르는 학생을 속여 끌어들이는 게 혜진 씨가 말하는 진짜 사랑인가요?”이석훈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굳이 신예린이 말하지 않아도 이석훈은 머릿속으로 느끼한 중년 남자가 달콤한 말로 신예린을 속여 결혼까지 억지로 끌고 간 모습 그려냈다. 젊디젊은 나이에 아이까지 낳게 만들고는 옭아매듯 붙들어 두는 장면, 언젠가 눈을 뜨고 후회할 때쯤엔 이미 늦어버릴 것이다.신예린이 결국 해외 유학까지 다녀온 건, 아마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밀어붙인 덕분일 거라 짐작했다. 이석훈은 신예린이 결코 집안에 갇혀 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오혜진은 이석훈의 말에 눈을 흘겼고 이석훈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게다가 신예린 씨는 그냥 남편이 생긴 게 나쁘지 않다고 했을 뿐이죠. 그건 아마도 겸손한 말이 아닐 수도 있어요. 정말 못생겼는데 체면 때문에 일부터 그렇게 말한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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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7화

오혜진의 두 눈은 별빛처럼 반짝였다.‘이게 바로 신 선생님의 남편이라니... 이런 좋은 남편이 어디 있어!’“제 남편과 이 선생님의 가장 큰 차이는요. 제 남편은 상대를 존중할 줄 알아요. 여성에 대한 존중도 그렇고 남을 뒤에서 함부로 깎아내리거나 험담하지 않아요. 제가 만난 사람 중에 제일 좋은 사람이에요.”정반대의 예로 끌려 들어간 이석훈의 얼굴은 순식간에 굳어졌다.사실 신예린은 굳이 이렇게까지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특히 이석훈에게 하는 말은 정말로 소귀에 경 읽기 같았다.하지만 신예린은 절대 주시우를 아무렇게나 욕되게 하는 걸 그냥 넘길 수 없었다. 특히 이석훈 같은 사람의 입에서는 더더욱 그럴 수 없었다.‘무슨 자격이 있다고 저러는 거야.’신예린의 시선은 차갑게 이석훈에게로 향했고 입술을 단단히 열며 한 글자 한 글자 또렷하게 내뱉었다.“그리고 제 남편은 그냥 나쁘지 않은 게 아니라 정말 잘생겼어요.”그 말과 함께 신예린은 돌연 몸을 돌려 사무실로 들어가 버렸다.남겨진 이석훈의 표정은 읽을 수 없었고 오혜진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와... 신 선생님이 직접 잘생겼다고 했어. 아, 진짜 한 번만이라도 뵙고 싶네.’며칠 뒤, 송별회가 있는 그날 밤.신예린은 동료들의 차를 타고 약속된 호텔에 도착했다. 그런데 식당 앞에서 뜻밖에도 소지훈과 마주쳤다.“어, 제수씨!”소지훈은 반갑게 그녀를 불렀다.곁에는 몇 명의 얼굴이 낯설지 않은 이들이 함께 서 있었다. 병원에서 몇 번 스쳐본 적 있는 사람들 같았다.“여기도 회식이에요?”신예린이 물었다.“네. 동료들이랑 그냥 저녁 먹으러 나온 거예요.”소지훈은 대답하면서도 시선은 자꾸만 신예린의 뒤로 향했다.신예린은 그 눈빛만 보고도 짐작했다.“괜히 찾지 마세요. 이정현 선생님은 먼저 안으로 들어가셨어요.”소지훈의 표정에 순간 아쉬움이 스쳤다.지난번 이정현과 대화를 나눈 뒤로는 거의 얼굴을 볼 수 없었으니 일부러 피하는 건지, 바빠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아윤이는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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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8화

“무슨 말이야?”주시우의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내 동료 말로는 예린 씨 과 동료 중에 누가 예린 씨를 좋아한대. 겨우 출근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눈독을 들이다니. 형, 정신 바짝 차려야 해.”잠시 말이 없었지만, 소지훈은 상대방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젊고 예쁘고 능력까지 있는 아내, 게다가 나이 차이도 있는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불안해질 만했다.“나라면 매일 제수씨 옆에서 얼쩡거리면서 남편티를 제대로 내겠어. 이미 결혼했고 사이좋게 지낸다는 걸 주변에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니까. 네가 자꾸 안 보여주니까 다른 사람 눈에 제수씨가 남편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거야.”“난 예린이 일하는 데 방해하고 싶지 않아.”“네가 방해 안 하면 동료들이 대신 와서 너희들을 방해하는 거지!”소지훈은 점점 더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했고 마치 자기 아내라도 건드린 것처럼 씩씩거렸다.“진짜 괘씸하네. 어떻게 감히 제수씨한테 그런 마음을 품을 수가 있어.”잠시 생각하던 주시우가 물었다.“근데 넌 어떻게 그런 얘기를 듣게 된 거야?”“식당 앞에서 마주쳤어. 제수씨가 오늘 동료들이랑 모임 있지?”“응.”“그럼 네가 빨리 와서 데려가. 옷도 멋있게 차려입고 가능하면 아윤이도 같이 데려와. 잘생긴 남편에... 귀여운 딸까지... 그래야 예린 씨의 체면이 확 서지. 네가 솔직히 말해서 남들 앞에 내세울 건 얼굴밖에 없잖아.”칭찬인지 비아냥인지 모를 소지훈의 말이었다.“아무튼 빨리 와. 내가 호텔 주소 보내줄게.”“어디서 먹는지는 알아. 예린이가 미리 말해줬거든.”“그럼 얼른 움직여. 알았지? 빨리!”소지훈은 괜히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였다.동료들이 손짓하며 기다리고 있자 소지훈은 서둘러 덧붙였다.“난 이만 들어가야겠어. 아윤이한테도 꼭 전해 대부가 많이 보고 싶다고.”“알았어.”전화를 끊기 직전, 소지훈은 다시 입을 열었다.“걱정하지 마. 예린 씨를 좋아하는 그 사람은 너보다 많이 못생겼대.”주시우 입가가 살짝 올라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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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9화

주시우는 한껏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그건 아빠의 자존심이 걸린 일이거든.”“네”주아윤은 도통 이해하지 못했다.‘엄마를 데리러 가는 게 어떻게 아빠의 자존심 싸움이 된다는 걸까?’신예린이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이정현이 손을 흔들며 불렀다.“신 선생님, 여기요.”옆자리를 일부러 비워둔 모양이었다.신예린은 서둘러 다가가며 고개를 숙였다.“고마워요.”하루 종일 진료를 봤을 텐데도 이정현의 피부는 여전히 빛이 났고 기운마저 충만해 보였다.“왜 이렇게 늦게 들어왔어요?”“식당 앞에서 소지훈 선생님을 만나 잠깐 얘기했어요.”신예린은 일부러 이정현의 표정을 살폈다. 소지훈 이야기를 꺼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싶어서였다.그런데 이정현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아, 그래요.”그 태연한 반응에 신예린은 속으로 소지훈을 살짝 안쓰럽게 여겼다.“보니까 다음 주에 사흘 연속 쉬던데... 무슨 다른 일이라도 있어요?”“아니에요.”신예린은 고개를 저었다.“그냥 남편이랑 아이랑 여행 좀 다녀오려고요.”“어디로요?”“부탄 해변이요.”그 말을 들은 이정현이 눈을 크게 떴다.“왜요?”“저도 거기에 가는데요.”“네?”“내일부터 연차라서 천천히 돌아다니면서 놀다가 신 선생님 휴가 일정쯤 되면 저도 그 근처에 있을 거예요.”신예린은 반색하며 웃었다.“그럼 같이 놀아요!”“좋죠. 도착하면 꼭 연락해요. 저도 따님이랑 같이 놀아주고 싶었어요. 멀리서 봐도 참 귀엽던데.”순간, 얼마 전 소지훈과 주시우 사이에 오갔던 오해가 떠올라 두 사람은 마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그때, 이석훈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던 이석훈은 곧장 신예린을 발견하고는 곧장 그쪽으로 걸어왔다.눈치 빠른 이정현은 순간 긴장하며 서둘러 말을 꺼냈다.“소정 씨, 이슬 씨! 왜 거기 앉아 있어요? 여기로 와요. 멀리 떨어지지 말고.”그 덕분에 신예린 옆자리는 금세 다른 사람들로 채워졌다.이석훈이 다가오자 이정현은 팔짱을 끼고 일부러 능청스러운 표정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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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0화

“빨리요. 어디 보자고요.”황이슬은 눈을 반짝이며 다급히 말했고 소정은 휴대폰 앨범을 열며 사진을 찾았다.“주시우 교수님은 개인 사진이 거의 없어요. 이건 올해 교수님이 연구실 제자들이랑 같이 신형 항암제를 개발할 때 찍은 사진이에요.”그 얘기를 꺼내자 소정은 절로 감탄이 이어졌다.“주 교수님의 연구팀은 몇 년째 항암제 연구를 하고 있잖아요. 흔히 알려진 파클리탁셀은 의학계의 보물이지만 성장 속도가 느리고 가격도 엄청 비싸죠. 그래서 교수님 팀이 집중한 건 남방홍두수예요. 이 식물은 파클리탁셀의 주요 천연 공급원이거든요. 얼마 전에는 이 나무의 유전체 지도를 완성해서 어떻게 하면 파클리탁셀이 생성되는지 생물학적 원리까지 밝혀냈다더라고요.”황이슬은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듣기만 해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반면, 이석훈은 또렷하게 모든 말을 귀에 담았다.이석훈은 원래 관심사가 많지 않았지만 의학과 관련된 일만큼은 예외였다. 그 소식은 이미 국내에서도 큰 화제를 모았고 주시우는 서른을 갓 넘긴 젊은 나이에 팀을 이끈 천재 연구자로 불렸다. 의학계 원로들조차 앞날이 무궁무진하고 의학계를 이끌 희망이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그건 의사라면 누구나 꿈꿀 만한 명예였다.이석훈 역시 수술 실력 하나로 병원에 특채로 들어왔지만 뛰어난 인재들이 즐비한 이곳에서 최고가 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그래서였던지 뉴스로만 접했던 그 사람에게 은근히 질투와 부러움이 동시에 스며들었다.누구라도 자기 분야의 정상에 서 있는 이를 부러워했을 것이다.“와, 진짜 잘생겼어.”황이슬이 감탄을 터뜨렸다.“그렇죠? 학교 전체가 인정한 미남이라니까요.”소정도 고개를 끄덕였다.“잘생기고 능력도 있고... 이런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네요.”“꿈 깨요. 주 교수님은 이미 결혼했어요.”“교수님의 아내가 정말 부럽네요.”소정의 휴대폰은 마침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고 화면에는 사진이 떠 있었다.이석훈은 무심한 척 눈길을 흘리며 슬쩍 훔쳐봤다.여럿이 함께 찍힌 사진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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