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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터닝포인트: Chapter 491 - Chapter 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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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1화

“아...”신음이 짧게 새어 나왔고 그와 동시에 신예린은 몸이 텅 비는 듯한 공허함을 느꼈다.바지가 끌려 내려가고 뜨거운 손끝이 스치자 신예린은 온몸이 파르르 떨렸다.신예린은 등이 순간 움찔했다. 귓가에는 주시우의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그 웃음의 의미를 알아챈 신예린은 두 볼이 활활 달아올랐다.신예린이 말랑한 주먹으로 주시우의 가슴을 톡톡 두드리자 주시우가 입을 열었다.“조급해하지 마. 여보.”침대 위의 주시우는 아까와는 딴사람처럼 열정적이었다. 그의 거친 숨결 때문에 신예린은 귓불이 가려웠다.“우리는 아직 시간이 많으니까.”한참이 지나서야 신예린은 그 말의 진짜 뜻을 알게 됐다.그때의 신예린은 이미 온몸이 땀에 젖은 채, 오롯이 주시우의 리듬에 몸을 맡겼다.거친 숨결이 방 안을 채웠고 커튼 사이로 스민 빛이 두 사람의 몸에 비췄다.신예린은 주시우와 눈을 마주칠 때마다 심장이 더 빨리 뛰었다....거사가 끝나고 나면 항상 덮쳐 오는 건 기진함과 허기였다. 신예린은 축 늘어진 채 이불에 파묻혔다.주시우는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에 굴러간 포장지 몇 개를 주워 휴지통에 버렸다.방 안에는 아직 유혹의 분위기가 가셔지지 않았다.꼬르륵.그때 신예린의 배가 요란하게 소리를 냈다.“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배달은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예요?”신예린이 투덜거렸다.평소에는 아무리 늦어도 40분이면 오는데 막상 끝나고 나니 배달 음식은 소식도 없었다.“아, 문 앞에 두고 가라고 메모를 적었어. 지금쯤은 도착했을걸.”주시우가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하지만 뭔가 수상했다.신예린이 벌떡 일어나 머리맡의 휴대폰을 집으려 했지만 주시우의 손이 더 빠르게 먼저 낚아챘다.“주시우!”이를 꼭 깨문 신예린이 노려보자 주시우가 씩 웃으면서 말했다.“이제 밥 먹자.”신예린은 당연히 물러설 리가 없었다. 신예린이 확 손을 뻗자 주시우는 가볍게 피했다.“휴대폰 안 보여 주는 거 보니까... 뭔가 숨기는 거 있죠?”“없어.”주시우는 두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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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2화

신경무의 몸 상태는 조금씩 회복되었다. 임정희는 너무 놀란 탓인지 며칠 동안은 조용히 지냈다. 그 사이 신예린은 임정희가 여러 번 말을 꺼내려다 마는 걸 눈치챘지만 못 본 척했고 자기 일에만 집중했다.퇴원 당일, 임정희가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신예린이 고개를 들자 문가에 임정희가 서 있었다.“예린아, 엄마가 너랑 얘기 좀 하고 싶어.”사무실에는 다른 동료들도 있었다. 임정희의 무례함은 이미 다들 알고 있었기에 모두가 신예린을 향해 동정 섞인 시선을 보냈다.‘가족이 저러면 참... 골치가 아프겠네.’신예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고 두 사람은 병동 복도 끝 작은 베란다에 나란히 섰다. 하지만 한동안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신예린은 서두르지 않고 임정희가 먼저 말하길 기다렸다.“예린아, 네 아빠가 퇴원했어.”임정희가 더듬더듬 말을 꺼냈다.“알아요.”신예린의 표정은 여전히 담담했다.“당분간 집에서 요양하셔야 해. 너도 한동안 집에 못 왔잖아. 언제 한번 집에 올래? 우리 다 있을 때 말이야.”임정희의 말투에는 살짝 눈치를 보는 기색이 역력했다.“그 집에 아직 제 자리가 있긴 해요?”그러자 임정희가 급히 말했다.“당연하지. 네 방은 그대로 뒀어.”사실 신예린의 방에는 짐으로 가득했지만 신예린이 오겠다고만 하면 당장 비울 생각이었다.신예린은 비꼬듯 미소를 굽혔다.“들어갈 수나 있겠어요? 잡동사니로 꽉 찬 게 아니에요?”순간 임정희는 얼굴에 스친 난처한 표정을 감추며 서둘러 덧붙였다.“엄마가 금방 비울게. 그 방이 싫으면... 민호 방에 자.”“그럼 신민호는요?”“그게... 네 방으로 보내면 되지. 동생이면 누나한테 양보해야지.”신예린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지만 그건 어쩐지 섬뜩해 보이는 웃음이었다. 임정희는 신예린의 말뜻을 가늠하지 못하고 조심스레 물었다.“예린아, 올 거지?”“그만하세요.”신예린은 웃음을 거두고 표정을 차갑게 굳혔다.“다시는 그 집으로 안 돌아갈 거예요.”그 말에 임정희는 얼굴이 굳었다.“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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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3화

“처음이라서 그랬다고요? 그래서 좋은 건 전부 신민호한테 주고 나쁜 건 전부 제 몫이었어요? 신민호의 엄마가 되는 법을 모르는 거예요? 아니면 제 엄마가 되는 법을 몰랐던 거예요?”신예린의 차가운 시선 때문에 임정희는 순간 미간을 찌푸렸고 괜히 주눅이 들어 신예린과 제대로 눈빛조차 마주치지 못했다.“저한테는 사랑을 준 적도 없으면서 제가 엄마와 아빠를 사랑해 주길 바란다고요? 세상에 그런 호의는 없어요.”말을 마친 신예린은 바로 돌아섰다.임정희는 단호하고 차가운 신예린의 뒷모습을 보며 생전 처음으로 후회했다. 딸에게 주지 못한 사랑 때문이 아니라, 처음부터 판을 잘못 짰고 말년에 기댈 곳을 잃었다는 현실이 두렵고 후회스러웠다.“아빠, 엄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주아윤이 양태머리를 흔들며 달려왔다.주시우가 고무줄을 살짝 튕기듯 주아윤의 머리를 만지면서 말했다.“네 머리는 할아버지가 묶어 주셨지?”거칠고 엉성한 매무새였으니 누가 봐도 주혁재의 걸작이었다.주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네.”“네 할아버지를 학원이라도 보내야겠네.”마침 집에서 뛰쳐나오던 주혁재가 그 말을 듣고 눈을 부릅떴다.“내가 묶은 머리가 어때서! 얼마나 예쁜데. 못 믿겠으면 아윤이한테 직접 물어봐. 예쁘지?”“네.”주혁재는 곧바로 주시우를 향해 득의양양하게 웃었다.“들었지?”하지만 주시우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판을 뒤집으려는 듯 다시 물었다.“아윤아, 그럼 할아버지랑 아빠가 묶어 준 머리 중에 누가 더 예뻐?”그러자 주아윤은 아빠와 할아버지를 번갈아 보다가 솔직히 말했다.“아빠요.”“...”그 순간, 주혁재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뒤에 서 있던 김수희가 그 모습을 보고 혀를 찼다.“그만해요. 나이가 몇인데 이런 걸로 겨루고 있어요?”주혁재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안으로 들어가며 중얼거렸다.“지금 당장 허 비서한테 학원 등록하라고 해야지.”주혁재와의 기싸움에서 이긴 주시우는 주아윤의 볼을 살짝 집었다.“역시 우리 딸... 최고야.”신예린은 속으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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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4화

주시우는 신예린의 말을 듣자 빙긋 웃었다.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무슨 뜻인지 다 안다는 표정을 지으며 주시우는 손을 들어 가볍게 신예린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었다.신예린은 주시우의 이런 행동이 좋았다. 주시우가 주아윤의 머리를 만질 때 늘 다정한 표정을 지었으니 자신에게도 같은 마음이리라 믿었기 때문이다.신예린이 웃음을 터뜨리자 주아윤은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주아윤은 주시우의 손길을 보더니 곧장 머리를 앞으로 들이밀며 말했다.“아빠, 아윤이도 만져 줘요. 저도요!”주시우가 웃으며 주아윤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더니 일부러 머리를 살짝 헝클어뜨렸다.주아윤은 머리를 정리하며 깔깔 웃었다.“아빠, 나빠요.”그 말에 주시우는 또 장난스럽게 주아윤의 머리를 헝클었고 지지 않으려던 주아윤이 벌떡 일어나 주시우에게 매달려 이번에는 주시우의 머리를 어지럽히려 들었다.어른 하나, 아이 하나였지만 두 아이 같은 신경전이 시작되자 신예린은 불똥이 튈까 봐 얼른 비켜섰다.그때 휴대폰이 연달아 울렸고 보니 모르는 번호였다.신예린은 베란다 쪽으로 걸어가 전화받았다.“여보세요.”“예린아, 엄마야.”수화기 너머로 임정희의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신예린의 눈빛이 가늘어졌고 임정희의 말투에는 울음이 섞여 있었다.“민호가 남의 집에 들어가서 물건을 훔치다가 집주인을 찔렀대. 지금 경찰서에 끌려갔고 몇 년은 감옥에 가야 한다더라. 세상에... 아직 어린애인데 감옥 가면 인생이 망가지잖아.”이어 임정희의 후회가 가득 담긴 말이 쏟아졌다.“돈 달라고 했을 때 그냥 줄 걸 그랬어. 스스로 벌어 보라고 한 건데 이렇게 큰일을 저지를 줄이야...”곧바로 임정희의 부탁이 따라붙었다.“예린아, 방법 좀 찾아봐. 상대가 돈 달라면 돈 주고 네 남편도 인맥이 많잖아. 좀 알아봐 달라고 해. 제발 우리 민호 좀 살려 줘. 우리 신씨 가문의 대가 여기서 끊어지면 어쩌겠어. 예린아, 듣고 있지? 제발... 네 친동생이야. 엄마가 빌게. 제발...”신예린은 말을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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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5화

그러자 주아윤은 주시우의 어깨에 올라타며 언성을 높였다.“엄마를 향해 돌격! 우리가 왔어요!”두 사람의 기세가 만만치 않자 신예린은 일부러 놀란 척 방 안으로 도망쳤다.“살려 주세요!”불빛이 반짝이고 방 안에는 내내 맑은 웃음소리가 터졌다. 고요하던 밤이 한결 따뜻해진 순간이었다.개학 첫날, 세 사람은 일찍 일어났다. 주시우는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했고 신예린은 주아윤에게 옷을 입혀 주고 머리를 묶어 주었다.어린 나이치고 주아윤은 머리숱이 제법 많아서 묶은 뒤에, 신예린은 촘촘히 땋아 머리를 내려 주고 별 모양 핀을 몇 개 꽂았다.주아윤의 새까만 눈이 반짝였고 앙증맞은 얼굴은 복숭아처럼 통통했다.신예린은 참지 못하고 두 손으로 주아윤의 볼을 감싸 쪽 하고 입을 맞췄다.마침 방으로 들어오던 주시우를 보자 주아윤은 급히 구해 달라는 듯 말했다.“아빠, 오늘 아침에 엄마가 저한테 세 번이나 뽀뽀했어요.”그러고는 손가락을 네 개 세더니 아닌 것 같아 하나를 접었다.신예린은 그 모습이 귀여워 일부러 한 번 더 뽀뽀했다.그러자 바로 주아윤의 손가락이 다시 쑥 올라가 네 개가 됐다.“아윤이가 귀여워서 그런 거겠지.”주시우가 웃으면서 말했다.“준비됐어? 아침 먹고 유치원으로 가자.”“네.”주아윤은 폴짝폴짝 뛰며 밖으로 나갔다.신예린도 일어나 현관으로 가다 말고 거울 앞에 한 번 더 섰다.“이 옷... 괜찮아 보여요? 너무 과하게 입은 건 아니겠죠?”거울 속에는 하얀 원피스를 입은 신예린의 모습이었다. 잘록한 허리, 깨끗하게 퍼지는 스커트, 몸에서 풍기는 단정한 여성의 기운은 선명했다.신예린은 처음으로 담임과 학부모들을 만나는 날이라 인상 좋게 보이고 싶어 미리 골라 둔 옷이었다. 다만 평소에는 출근을 위한 편한 차림이 많다 보니 오늘만큼은 좀 신경을 쓴 티가 나는 듯했다.“아니야. 아주 잘 어울려.”거울에는 주시우의 모습도 겹쳤다. 연한 파란 셔츠에 검은 바지, 살짝 풀린 칼라, 목에 걸어 둔 넥타이는 아직 매여지지 않았다.느긋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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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6화

주시우가 살짝 입술을 깨물자 신예린은 곧바로 입술에 따끔한 통증을 느꼈다.신예린은 아파서 주시우의 가슴을 툭툭 쳤다.“뭐 하는 거예요?”‘입술이라도 터지면 무슨 얼굴로 아윤이를 데려다주겠어?’“모두에게 사랑을 고르게 베푼다니?”주시우의 낮은 목소리가 허리를 감은 손과 함께 신예린을 향해 눌러왔다. 주시우는 사람을 억누르는 기세가 만만치 않았다.신예린은 주시우가 이렇게 대놓고 질투하는 모습이 좋았다. 하지만 일부러 말을 아끼고 웃기만 했다.그러자 주시우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읍...”이번에 신예린을 덮쳐온 키스는 아까처럼 가볍지 않았다. 주시우는 한 손으로 신예린의 목덜미를 잡으면서 그녀에게 물러날 틈조차 주지 않았다.‘식탁 바로 너머에 아윤이가 있겠는데... 이렇게까지 몰아붙인다고?’귀 끝까지 화끈 달아오른 신예린은 힘없이 손바닥으로 주시우의 가슴을 두드리며 떨어지라고 신호를 보냈지만 그는 정작에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아빠, 엄마...”‘이럴 줄 알았어!’식탁 쪽에서 주아윤의 목소리가 들렸다.“뭘 하고 있어요? 왜 아직도 안 나와요?”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신예린은 주시우의 셔츠를 연신 잡아당겼다.하지만 주시우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직 입술만 움직였다.“아빠? 엄마?”주아윤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자 주시우는 비로소 입술을 떼었다. 그리고 긴장한 기색이 가득한 신예린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아직도 공평하게 사랑을 베풀래?”주시우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 사람은 정말...’신예린은 얼굴을 붉히며 주시우의 가슴을 가볍게 쳤다.대답이 없자 주시우가 다시 가까이 다가왔다. 반면 주방으로 다가오는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신예린은 다급히 주시우를 밀어내며 빠르게 말했다.“안 할래요. 안 그럴게요!”신예린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주시우의 눈에는 성공의 희열이 번뜩였다.‘역시 일부러 이러는 거였네. 이 방법이면 늘 내가 먼저 항복했으니...’‘남자들이란... 특히 주시우 같은 남자는 겉으로는 얌전해 보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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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7화

“아윤이 어머님, 안녕하세요?”몇 마디 인사를 주고받고 선생님들은 다른 아이들을 맞이하러 가야 해서 신예린은 더 붙잡아 두지 않았다. 그때 주아윤이 손을 꼭 잡아끌며 조금 떨어진 곳을 가리켰다.“엄마, 저 친구가 우리 유치원에서 제일 잘생겼어요.”신예린은 주아윤의 작은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겨보니 그곳에는 교복을 입은 남자아이 한 명이 서 있었다. 짙은 눈썹과 맑은 눈, 오뚝한 코, 얇게 다문 입술까지 또렷했다. 키는 아직 작아도 허리는 꼿꼿했고 다만 표정이 조금 무뚝뚝했다.“우리 아윤이가 역시 남자 보는 안목이 있네.”신예린이 목소리를 낮췄다.“앞으로 크면 더 멋있어질 듯해.”“그리고 쟤도 잘생겼어요.”주아윤이 또 다른 남자아이를 가리켰다.“근데 저 친구는 마음이 왔다 갔다해서 맨날 다른 여자애들이랑만 놀아요.”신예린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유치원의 잘생긴 친구들은 다 꿰고 있구나?”주아윤은 으쓱했다.“그럼요.”“올해 새로 입학한 꼬마들도 많잖아.”그러자 주아윤의 눈이 반짝였다.“잘생긴 남동생이 있는지 한번 지켜볼게요.”“...”한쪽에서 그 대화를 지켜보던 주시우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둘 중에서 한 명은 이제 겨우 다섯 살이었고 한 명은 유부녀인데 왜 저렇게 신이 난 건지 이해가 안 되었다.나이 가리지 않고 잘생긴 남자는 묘하게 여자들의 마음을 한 곳으로 모아두었다.‘내가 못생겼다는 뜻은 아니겠지?’주시우는 신예린을 병원에 내려주고 학교로 향했다.주시우가 먼저 연구실로 올라가 문을 열자 손호명이 혼자 있었다. 손호명은 주시우와 몇 년 만에 재회한 듯 눈가에 물기를 글썽이며 다가왔다.“교수님, 오래간만이에요. 보고 싶었습니다!”그 말에 주시우는 매끈하게 옆으로 피했다.난감함을 피하려던 손호명은 자연스럽게 문틀을 껴안으며 흐느끼는 시늉으로 상황을 수습했다.“이번 여름 방학에는 뭐 하셨어요?”그러자 주시우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물었다.“별거 없어요. 여기저기 다녀오고 고향도 들렀죠. 주 교수님은요?”대답을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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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8화

신예린은 자신 때문에 주시우가 외모 걱정까지 하게 되었다는 걸 알 리가 없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신예린은 회진에 수술 준비까지 쉼 없이 이어졌고, 멈출 틈이 없었다.신경무가 퇴원한 뒤로 심장외과 전체는 마치 큰 짐을 하나 내려놓은 듯했다.공기마저 맑아진 느낌이랄까.정오 무렵, 신예린이 수술실에서 내려 왔을 때는 이미 병원 식당 마감 시간이 지나 있었다. 막 배달앱을 열려던 찰나, 이정현이 봉지 하나를 들고 다가오면서 말했다.“신 선생님, 밥은 먹었어요?”“아직이요. 배달시키려던 참이에요.”“시키지 말고 저와 함께 먹어요. 제가 너무 많이 시켰어요.”신예린은 사양하지 않고 휴대폰을 접었다.“고마워요.”둘은 직원 식당 휴게실로 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이정현은 방금 받은 케이스를 꺼냈다. 내일 수술인데 심장 판막 치환 두 개, 판막 성형 하나, 거기에 관상동맥 우회술, 게다가 상대는 고령 환자였다.심장외과 사람이라면 다 알다시피 이런 조합이면 난이도가 만렙이었다.신예린이 살짝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말했다.“내일 수술은... 제가 들어가도 될까요?”“그럼요.”이정현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다만 퍼스트 조수랑 세컨드 조수는 이미 정해 놨어요.”“괜찮아요.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배울 게 많으니까요.”“생각해 보니 우리 둘이 같이 수술을 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네요.”이정현은 말을 나누며 도시락을 펼쳤고 자기 밥의 절반을 덜어 신예린 쪽으로 밀었다.“저 이렇게 많이 못 먹어요. 괜찮아요.”신예린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그냥 드세요. 제가 다이어트 중이라...”“...”신예린은 이정현의 잘록한 허리와 매끈한 손목을 한번 훑어보고 기가 막혔다.“이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면... 저 보고 먹지 말라는 거잖아요?”그러자 이정현이 낄낄 웃었다.“아니에요. 신 선생님도 마른 편입니다.”그 말에 신예린은 거의 젓가락을 내려놓을 뻔했고 끝내 고집을 부리면서 다시 절반을 돌려줬다.이정현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그럴 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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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9화

그 말에 이정현은 잠깐 머쓱해졌다.“소 선생님이 그런 말까지 다 했어요?”“이 선생님은 아마도 모를걸요? 소지훈 씨가 얼마나 신나 했는지요.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자꾸 우리한테 와서 이 선생님이 자기를 잘생겼다고 말했다며 자랑했어요. 아윤이는 그 소리가 하도 지겨워서 귀에 굳은살까지 생겼다고 투덜거렸어요.”그 말에 이정현은 피식 웃었다.정말로 소지훈이라면 그럴 만했다.이정현은 예전처럼 소지훈을 밀어내지만은 않았다. 그 모습에 신예린은 소지훈더러 부탄시로 따라오게 한 게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확신했다.“소 선생님에 대한 인상은 조금은 달라졌어요?”그러나 이정현은 생각도 안 하고 딱 잘라 말했다.“아니요. 여전히 철없다고 봐요.”그러자 신예린의 마음이 살짝 가라앉았다. 그러나 그때 이정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그래도... 철없기는 한데 귀엽기는 하더라고요.”‘아, 이걸 녹음해야 했는데.’신예린은 속으로 무릎을 탁 쳤다.‘지금 이 한마디를 들려주면 소지훈 씨는 하늘에서 둥둥 떠다닐 정도로 기뻐할 텐데...’그날 저녁, 이정현이 퇴근해 주차장으로 내려가니 차 옆에는 소지훈이 서 있었다. 소지훈은 꽤 못마땅한 표정으로 통화를 하면서 바퀴를 툭 걷어찼다.“소 선생님?”그러자 고개를 돌린 소지훈의 눈빛이 환해졌다.“차가 고장 났어요?”전화기 너머에서는 여전히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네, 바로 사람 보내 드릴게요.”상대는 대화를 마무리하려는 눈치였는데 소지훈이 갑자기 말을 바꿨다.“네? 며칠 뒤라고요?”소지훈은 목소리를 한 톤 높이더니, 이정현을 힐끗 보고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통화를 이어갔다.“출퇴근해야 하는데 차가 고장 나면 저는 곤란해요.”수화기 속 직원은 어리둥절해졌다.“그런 게 아니라... 지금 바로 수리하러 출동할 수 있습니다.”“요 며칠 일정이 다 꽉 찼다고요?”“네?”수리점 직원은 영문을 전혀 몰랐고 소지훈은 혼자서 쭉 이어갔다.“뭐, 꽉 찼다면 어쩔 수 없죠. 최대한 빨리 부탁드릴게요. 요 며칠은 제가 알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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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0화

“아직은 없어요.”그 말에 소지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런데 곧이어 이정현이 말을 덧붙였다.“요즘 바빠서 제가 몇 번은 거절했는데 또 잡아 주겠대요.”그러자 소지훈의 마음이 다시 푹 꺼졌다.잠시 망설이던 소지훈이 머뭇머뭇 말을 꺼냈다.“굳이 소개를 안 받아도 되잖아요. 주변에 괜찮은 사람이 있으면... 굳이 시간 낭비할 필요 없죠.”그러자 이정현이 옆눈으로 소지훈을 흘끗 봤다.‘차라리 얼굴에 자기를 좀 봐 달라고 대놓고 써 붙이는 게 낫겠어요.’소지훈의 그런 모습에 이정현은 굳이 장난치고 싶어졌다.“없으니까 소개받는 거죠.”소지훈은 반사적으로 허리를 꼿꼿이 세우면서 말했다.“누가 없대요? 바로 옆에 있잖아요.”순간, 차 안에는 정적이 내려앉았다.하지만 이정현은 순순히 소지훈의 말을 받지 않았다.몇 초도 지나지 않아 소지훈의 어깨가 축 처졌다. 구내식당에서 이정현에게 돌직구 던졌다가 보기 좋게 퇴짜 맞던 순간이 또렷이 떠올랐다. 그래서 돌아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는데, 오늘도 끝내 입을 다물지 못했다.‘입 좀 붙들어 매라. 진짜... 난 그놈의 입이 방정이야.’소지훈은 정말로 자기 뺨을 두 대쯤 때리고 싶었다.그때 이정현이 화제를 바꿨다.“음악이라도 틀까요?”“아, 네. 좋아요.”소지훈이 습관처럼 손을 뻗는 순간, 이정현도 동시에 버튼을 누르려 손을 내밀었다.두 사람의 손끝이 스치자, 전기가 통하듯 찌릿했다.소지훈은 반사적으로 손을 거두었다.이정현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소지훈을 보니 그는 이미 부끄러워서 귓불이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손가락 좀 스쳤다고 이렇게 수줍어해? 이래 놓고 직구는 잘도 던지네.’이정현은 시선을 거두고 음악 재생 버튼을 눌렀다.차 안에는 거친 록이 울렸고, 묵직한 비트가 공간을 흔들었다.그때 정신을 가다듬은 소지훈이 말을 붙였다.“이런 스타일 좋아하셨군요. 저는...”“뭘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요?”“잔잔한 음악을 좋아하실 줄 알았죠.”그러자 이정현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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