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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1화

두 사람은 벼락에 맞은 듯 화들짝 몸을 떼었다. 이정현은 허리를 곧추세웠고 소지훈은 연달아 기침하다가 갈비뼈까지 욱신거려 얼굴이 벌게졌다.문 쪽에 서 있던 간호사는 문을 등지고 선 이정현과 얼굴까지 붉어진 소지훈을 번갈아 보며 어리둥절했다.‘소 선생님은 괜찮아? 기침 소리 때문에 숨넘어가겠네.’‘그런데 정작에 이정현 선생님은... 도와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데?’“이 선생님?”간호사가 조심스레 불렀다.이정현은 이미 표정을 가라앉힌 채 고개를 돌렸다. 다만 소지훈 쪽을 향해 시선은 끝내 주지 않았다.“잠깐 사무실로 다녀올게요. 소 선생님은 좀 쉬세요. 필요하면 호출 벨 누르시고요.”그 말만 남기고 이정현은 후다닥 병실을 빠져나갔다.간호사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별말 하지 않고 갓 입원한 환자에게 이것저것 안내했다.침대에 누운 소지훈은 기침을 멈추고 조금 전 장면을 떠올리다가 저절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정말 민망함이 발끝까지 차올랐다.한편 이정현은 사무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지만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비록 입술이 닿지는 않았는데 그녀는 정작에 피하지도 않았다.‘내가 너무 오래 남자와 거리를 둔 탓일까? 잠깐 정신이 멍해졌던 것 같네.’이정현은 무심코 입술을 만지더니 눈치채기 어려운 미소를 살짝 그렸다....“대부님, 흑흑... 일어나요. 죽으면 안 돼요. 제발요...”소지훈이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은 주시우는 저녁을 싸 들고 주아윤과 함께 병원으로 왔다.문을 열자마자 주아윤은 침대에 반듯이 누워 눈을 감은 소지훈을 보더니 와락 달려가 울음을 터뜨렸다.깊이 잠들어 있던 소지훈은 귀를 찢는 듯한 곡소리에 순간 자신이 진짜 죽은 줄 알았다.눈을 번쩍 뜨니 주시우 가족이 모두 서 있었고 차가워졌던 가슴이 그제야 다시 뛰기 시작했다.“아윤아, 난 아직 안 죽었어. 점쟁이가 말했는데 아무리 못해도 여든까지는 산다 그랬다니까.”눈물 그렁그렁 맺히던 주아윤은 금방 부활한 것만 같은 소지훈을 보더니 울다가 씩 웃어 버렸다.소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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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2화

이정현이 포장한 음식을 들고 병실로 들어왔다.“조금 사 왔어요. 아직 못 먹었으면 같이 먹죠.”“좋아요. 마침 배고팠는데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지훈의 입에서 트림이 새어 나왔다.“으...”이정현이 눈길을 주자 소지훈이 머쓱하게 변명했다.“배가 너무 고픈 나머지 위까지 항의하네요.”이정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상자를 하나씩 열었다.소지훈은 이정현의 길고 고운 손끝에 시선이 붙들리다 아까 낮의 일이 떠올라 볼까지 뜨거워졌다.‘이 선생님이 직접 나한테 밥까지 가져다주다니... 교통사고가 난 것도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네.’“자, 먹어봐요.”이정현이 젓가락을 건넸다.“고마워요.”소지훈이 젓가락을 받는 순간 손끝이 이정현의 손을 살짝 스쳤다. 둘 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손을 거뒀지만 미묘한 감각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소지훈은 컵밥을 들고도 한동안 젓가락을 못 댔다.“왜 안 먹어요?”이정현은 침상 곁 의자에 앉아 자기 몫도 펼치며 물었다.“입맛에 안 맞아요?”“아니에요. 이 선생님이 사 온 거면 뭐든 좋아요.”소지훈은 서둘러 한입 넣었다.‘으...’소지훈이 음식을 넘기는 순간 속이 울렁거렸다. 그래도 이정현이 보고 있으니 꾹 참았고 눈물까지 찔끔 맺혔다.“왜 울어요?”이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감동해서요.”소지훈이 얼버무렸다.“부모님께 걱정 끼치기 싫어서 사고 난 것도 말 못 했고, 친구들은 다 가정이 있으니 폐 끼치기 싫었거든요. 혼자 입원해 있다 보니 저녁도 혼자 시켜 먹으려고 했는데... 이 선생님께서 이렇게 직접 와 주니까, 제 얼어붙은 마음에 봄바람이 분 느낌이랄까... 기분이 좋아요.”너스레 같으면서도 진심이 비치는 말에 이정현의 마음이 살짝 움직였다.“입원 기간에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요. 먹고 싶은 것도 얘기하고요. 가져다줄게요.”“정말요?”소지훈의 눈이 번쩍였다.“그럼요.”“으으... 이 선생님은 제 구세주와도 같은 분이네요.”그 말에 이정현은 웃음을 터뜨렸다.“일단 먹어요. 식으면 맛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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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3화

이정현의 시원한 한마디에 소지훈은 마음이 괜히 싱숭생숭해졌다.심지어 이건 거의 자신이 이정현과 사귀는 거나 다름없다는 착각까지 들었다.소지훈은 히죽히죽 웃으며 두어 숟가락 뜨던 밥을 덮었다.“안 먹어요?”“배불러요.”“벌써 가려고요?”소지훈은 조금이라도 이정현과 더 있고 싶었다.“네. 시간이 늦었어요.”이정현이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하자 소지훈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녀를 붙잡았다.“조금만 더 있다 가면 안 돼요?”이정현이 옆눈으로 흘기면서 물었다.“왜요?”소지훈은 입술을 깨물며 생각을 굴리다가 오래 같이 있고 싶은 마음에 엉뚱한 말을 꺼냈다.“그럼... 화장실이라도 좀 같이 가 줄래요? 부축이 필요해서요.”“...”‘참 알뜰하게 구실을 찾는 사람이네.’“큰 일이에요? 작은 일이에요?”이정현의 말에 소지훈은 귀 끝이 빨개졌다.“작은 일이요.”“좋아요.”이정현은 담담히 대답하곤 문 쪽으로 걸었다.“어, 어디 가요?”약속해 놓고 왜 나가죠?“간호사 불러서 도뇨관 넣어 달라고 할게요. 제가 돌아가서 처방 쓸게요.”“...”그러자 소지훈은 벌떡 고개를 들었다.“안 볼래요. 지금 전혀 안 마려워요. 도뇨관은 정말 싫어요! 잠깐만요. 가지 마세요!”병실 안에서 급한 비명이 뒤따랐고, 복도로 나온 이정현은 꾹 참고 있던 웃음을 훅 터뜨렸다.결국 도뇨관은커녕 남자 간병인이 소지훈을 부축해 화장실을 다녀왔고 소지훈은 곧바로 주시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시우야, 내일부터 도시락 안 가져와도 돼.]하지만 주시우는 한참이나 회답이 없었다. 기다리다가 조급해진 소지훈은 다시 메시지를 더 보냈다.[왜 안 가져와도 되는지 묻지 않는 거야? 궁금하지 않아?][이 선생님이 앞으로 내 밥을 챙겨주기로 했거든.][들었어? 이정현이 나한테 밥을 가져다준다고 했어!][바로 사랑의 도시락이라는 거지.][입원도 나쁘지 않네. 출근도 안 하고, 이 선생님이 준 도시락도 먹을 수 있고.][역시 이 선생님이 사 온 밥이 제일 맛있더라.]열 마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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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4화

“회진 들어갑니다.”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 몇 명이 병실로 들어섰고 소지훈은 그중에 이정현을 보자 황급히 휴대폰을 내려놓고 아무렇지 않은 척 누웠다.“소 선생님, 컨디션은 어떠세요?”심장외과 의사가 물었다.“아주 좋아요. 며칠 입원했더니 살까지 찐 것 같네요.”소지훈이 너스레를 떨자 의사가 다시 말했다.“그건 다 이정현 선생님이 먹을 걸 잘 챙겨 줘서 그렇죠. 보통 환자한테는 이런 특혜 없어요.”직장 동료가 장난을 걸자 소지훈은 속으로 활짝 꽃이 피었다.“닥치고 일이나 하세요.”이정현이 동료의 팔을 툭 치며 못마땅한 척했다.소지훈의 상태를 확인한 뒤 의사들은 옆 병상으로 이동했다. 이정현이 두 침상 사이에 서 있는데 소지훈 쪽에서 그녀의 가운 소매를 살짝 끌어당겼다.이정현이 돌아보니 소지훈이 기대 가득한 눈으로 올려다보고 있었다.“제가 드린 거... 봤어요?”소지훈이 회진하는 의사의 목소리에 섞일 만큼 낮게 물었다.이정현은 책상 위에 있던 하트가 떠올랐지만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되물었다.“무슨 얘기예요?”“분홍색 종이로 접은... 그거요. 못 봤어요?”“아, 그거...”이정현이 태연히 말했다.“누가 놓고 간 휴지인 줄 알고 쓰레기통에 버렸죠.”“버렸다고요?”소지훈의 목소리가 반 톤 커졌다.그러자 의사들이 동시에 소지훈을 힐끗 봤고 그는 급히 손사래를 쳤다.“아, 아닙니다. 회진 계속하세요.”사실 크게 실망하지도 않았다. 이정현이 챙겨 두면 물론 제일 좋았겠지만 유치한 종이쪼가리를 휙 버린다 해도 이해할 만했다. 소지훈이 그렇게 자신을 달래는데 머리맡에서 헛기침 소리가 났다.“에헴!”회진을 마치고 의사팀이 나가려는 순간, 이정현이 무심한 척 가운 주머니에 손을 쏙 넣었다. 소지훈이 이정현의 그 손길을 따라가 보니 흰 주머니 안쪽에 분홍색이 은근히 비쳤다.그러자 소지훈의 심장이 두근거리더니 입가에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버린 게 아니라 사실 주머니에 넣어 두었어!’옆 병상 아저씨는 소지훈이 침대에서 두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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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5화

“이건 좀 달라요. 보여 드릴게요.”소지훈이 보물을 자랑하듯 감사패를 꺼냈다. 흰 가운을 입은 캐릭터 그림 가운데에 이정현 얼굴이 합성되어 있었고, 자세히 보니 지난번 바닷가에서 찍은 사진을 오려 붙인 모양이었다.“여기 봐요. 어때요?”[따뜻한 마음과 뛰어난 의술로 환자를 살리고, 환자를 위한 헌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소지훈이 문구를 짚으며 그럴싸하게 설명하더니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이건 이 선생님께만 주려고 만든 거예요. 슬쩍 간직하세요. 다른 사람에겐 비밀이에요.”이정현은 가끔 소지훈의 머릿속이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열어 보고 싶다가도 문득 생각했다.‘이런 사람이랑 살면 아마 지루할 틈은 없겠지.’그러자 이정현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정성이 대단하네요. 소 선생님, 제 사무실 책상 위에 가져다 놓을게요.”이정현이 기분 좋게 받아 들자 소지훈은 금세 싱글벙글해졌다가, 머뭇머뭇 말을 꺼냈다.“이 선생님, 상의할 게 하나 있습니다.”“말해 보세요.”“내일 퇴원해서 과에 들렀다가 퇴근할 건데요... 집 가는 길에 차 좀 태워 주시면 안 될까요?”이정현의 눈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요즘 제 차를 얻어 타는 게 재미 붙였나 봐요?”“제발 부탁합니다.”소지훈은 잔뜩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이정현이 딱 잘라 거절하지 않았고 그건 곧 허락이라는 뜻이었다.다음 날 저녁, 소지훈은 약속대로 이정현의 차에 올랐다.“차는 아직도 못 찾았어요?”이정현이 운전대를 잡으면서 물었다.“수리는 끝났고요. 입원하는 동안 친구가 우리 단지에 갖다 놨어요. 그... 신예린 씨의 남편이죠. 지난번 바닷가 같이 갔던...”“굳이 그렇게 자세히 설명 안 해도 돼요. 신 선생님의 남편이면 한 명뿐이잖아요.”그 말에 소지훈은 껄껄 웃었다.그때 대시보드 위에 둔 이정현 휴대폰이 진동했다. 화면에는 엄마라는 이름이 반짝였다. 이정현은 운전 중이라 받지 않았지만, 잠시 후 다시 전화가 왔다.“받으세요. 혹시 급한 일일 수도 있잖아요.”소지훈이 조심스레 말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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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6화

“남자 친구가 생겼다고?”놀란 건 이정현의 엄마뿐이 아니라 소지훈도 마찬가지였다.눈이 휘둥그레진 소지훈은 이정현이 통화 중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말했다.“언제... 남자 친구가 생겼어요?”그러자 전화기 너머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이어졌다.“정현아, 옆에 누가 있어?”“네.”이정현의 말투는 여전히 태연했다.“남자 친구랑 지금 차에 같이 타 있어요.”위잉...그 말에 소지훈은 머릿속이 잠깐 하얘졌다.‘나... 나라고?’“남자 친구라고?”어머니는 거의 비명을 질렀다.“맞아요.”이정현이 입꼬리를 올리며 소지훈을 바라봤다.“지훈 씨, 우리 엄마께 인사드려요.”‘부모님께 인사라니... 이건 거의 집안에 정식으로 인사하는 수준이 아니야?’소지훈은 멍해진 얼굴로 한 박자 늦게 입을 뗐다.“어... 어머님, 안녕하세요.”그러자 전화기 쪽이 잠깐 고요해졌다.“푸흣.”이정현이 웃음을 터뜨렸다.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은 소지훈은 얼굴이 활활 달아올랐다.“아, 아니... 그게 아니라... 안녕하세요. 정현 씨의 남자 친구 소지훈입니다.”이정현의 엄마도 정신이 없는지 연달아 같은 말만 반복했다.“아, 네... 그래... 그래요. 지훈 씨, 안녕하세요.”그때 이정현이 통화를 정리했다.“엄마,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할게요. 지금 집에 도착했어요. 소개팅은 앞으로 안 해도 돼요. 그럼 먼저 끊을게요.”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통화를 마치자 차 안에 다시 정적이 내려앉았다.소지훈은 아직도 얼떨떨했다.“왜... 왜 제가 정현 씨의 남자 친구라고 한 거예요?”마침 차가 소지훈 아파트 단지 앞에 섰다. 이정현이 주차하고 고개를 돌리면서 물었다.“왜요? 싫어요?”소지훈은 손사래부터 쳤다.“아니, 아니에요. 너무 좋아요.”꿈에서도 바라던 순간이었나. 그런데 소지훈은 곧 표정이 살짝 수그러들었다.“혹시... 어머니 때문에 급하게 그렇게 말한 건가 해서요.”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정현의 숨결이 가까워졌다. 소지훈이 반응할 틈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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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7화

주시우의 뜨거운 입술이 신예린의 눈꺼풀에 살며시 내려앉았다.그러자 신예린의 속눈썹은 살짝 떨리며 깃털처럼 주시우의 입술을 스쳤다. 주시우의 눈빛에는 뜨거운 욕망이 번졌고 손놀림은 멈추지 않았다.신예린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고 숨이 나직하게 흘렀고 하얀 목선이 활처럼 길게 젖혀졌다.주시우가 신예린의 입술을 막았고, 두 사람의 혀끝이 서로 얽히며 숨결까지 훔쳐 갈 기세였다.그때, 휴대폰 진동이 방 안의 기운을 휘저었다.“휴... 휴대폰.”신예린이 주시우의 품에서 숨을 고르며 말했다.“신경 쓰지 마.”새벽이 다 된 시간에 전화를 걸다니, 정말 눈치도 없다는 생각이 스쳤다.신예린은 볼까지 달아오른 채 주시우의 품에서 힘이 풀려 속삭였다.“혹시 학교에 급한 일이면...”주시우의 동작이 멈췄고 잠시 망설이다가 탁자 위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길고 선명한 손등에 핏줄이 도드라졌고, 손끝까지 열이 번져 있었다.주시우가 화면을 확인하자 얼굴빛이 살짝 굳었다.“누구예요?”신예린이 고개를 내밀어 보니 발신자는 소지훈이었다.“가만히 있어.”주시우가 다른 손으로 신예린의 허리를 감아 붙들고 휴대폰을 다시 내려놓았다. 이어서 귓불을 스치듯 입을 맞추고 입술을 가볍게 깨물었다.순간 신예린의 호흡이 흐트러졌고, 짜릿한 전율이 등줄기를 타고 올랐다. 신예린은 간신히 남은 이성으로 떨리는 목소리를 냈다.“안... 안 받아요?”휴대폰의 진동은 끊길 기색이 없었고, 주시우는 마치 체념한 듯 다시 손을 뻗어 통화를 열었다.“무슨 일이야.”걸걸하게 깔린 주시우의 목소리와 함께, 그는 다시 신예린의 입술을 가볍게 깨물고 뺨을 스치듯 키스했다. 그런 상태로 전화를 붙들자 신예린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혹여 소리가 새어 나갈까 숨조차 죽였다.수화기 너머로 소지훈의 들뜬 목소리가 터졌다.“야, 시우야! 나 연애하기 시작했어. 정현 씨가 내 여자 친구 되어 주겠대!”“...”‘제대로 축하할 일인 건 맞지만, 하필 지금...’주시우는 소지훈이 오늘까지 오기 위해 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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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8화

신예린은 긴장과 흥분이 한꺼번에 가라앉은 채 침대에 누웠다. 온몸이 붉게 달아 있었고 주시우는 가볍게 숨을 몰아쉬며 위로 몸을 기대었다. 맞닿은 살결 사이로 미세한 땀이 배어 서로에게 달라붙었다.잠시 전까지 떠들썩하던 소지훈의 목소리는 어느새 사라지고 대신 가느다란 코 고는 소리만 이어졌다.‘통화를 하다 잠들다니 정말 대단하네...’주시우가 손을 뻗어 전화를 끊으려 하자, 신예린이 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조금만 기다렸다가 끊고... 그다음에 해도 되잖아요?”신예린의 말투는 투정 부리듯 부드러웠다.주시우는 통화를 끊고 다시 신예린을 품에 끌어안았다.“도저히 못 기다릴 것 같아서 그랬어.”주시우의 낮고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지금 몇 시인 줄 알아? 지훈이가 하는 말을 꼬박 듣다가는 꽃이 다 시들겠어.”주시우의 장난 섞인 핀잔에 신예린은 피식 웃었다. 하지만 조금 전에 소지훈이 듣는 줄도 모르고 이런 일을 했다고 생각하니 볼이 다시 뜨겁게 달아올랐다.‘정말 들었다면... 앞으로 얼굴을 어떻게 보고 살겠어.’“다 당신 때문이에요. 정현 씨랑 어떻게 사귀게 됐는지 자세한 얘기는 하나도 못 들었잖아요.”주시우가 귀끝을 살짝 깨물면서 말했다.“이럴 때도 그런 게 궁금해?”“아... 간지러워요.”신예린이 몸을 움찔거리며 피하자, 주시우는 더 가까이 들이대며 장난을 걸었다. 도망갈 데가 없어진 신예린의 입술이 다시 붙잡혔다. 코끝이 스치고 숨이 엉키는 이 애틋한 여운 때문에 신예린은 마음이 따뜻해졌고 마치 커다란 포근함에 안긴 기분이 들었다.“안고 샤워하러 갈까?”주시우의 허스키한 목소리에 신예린은 힘이 풀린 채 얼굴을 붉히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다음 날, 신예린이 이정현을 보자마자 꺼낸 첫마디는 역시 그녀의 연애 소식이었다.“정말로 지훈 씨랑 사귀기로 한 거예요?”신예린의 입가에는 장난스러운 미소가 맴돌았다.이정현은 놀라지도 않고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네.”“어젯밤 한밤중에도 지훈 씨가 우리 집으로 전화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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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9화

신예린은 뭐라고 평가해야 할지 몰라서 이정현을 흘끔 쳐다봤다. 그녀의 표정은 한마디로 말해 난감 그 자체였다.이정현이 민망했는지 슬쩍 몸을 돌려 빠져나가려 하자, 눈치 빠른 소지훈이 커다란 장미 꽃다발을 안고 잽싸게 그녀의 뒤를 쫓았다.“정현 씨!”호칭 바꾸는 속도 하나는 정말 빨랐다.스쳐 지나가며 소지훈은 신예린에게도 깍듯이 인사했다.“예린 씨, 안녕하세요.”그러고는 이정현을 따라 휴게실로 들어갔다.문이 덜 닫힌 틈으로 신예린의 귀가 슬쩍 문가로 붙었다.휴게실 안, 이정현은 꽃다발을 보면서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여기까지 왜 왔어요.”“물론 꽃 배달하러 왔죠.”소지훈이 꽃을 이정현의 품에 쏙 밀어 넣으며 수줍게 웃었다.“그리고 우리 사이가 이제 사귄다고 모두에게 알리러요.”“오늘이 이틀째예요. 뭐가 그렇게 급해요.”“당연히 급하죠.”소지훈은 태연한 말투였다.“그래야 다른 사람들도 빨리 마음 접죠.”그 말에 이정현은 피식 웃었다.“저를 좋아하는 사람은 지훈 씨 말고는 없어요.”“정현 씨는 본인 매력을 너무 몰라요. 제가 아는 사람만 셋이에요. 영상의학과 황 선생님, 병리과 오 선생님, 수리팀의 강 선생님씨... 말 못 하고 속으로만 정현 씨를 좋아하는 사람들까지 치면 더 많고요.”이정현은 정작에 자신보다 더 많은 정보를 꿰차고 있는 소지훈 때문에 살짝 놀랐다.“또 언제 그런 조사를 한 거예요.”“당연하죠.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모든 경쟁자의 정보를 알아내는 건 기본이에요.”소지훈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하자 이정현은 할 말이 없다는 듯 소지훈을 바라봤다. 이정현의 품에 안긴 꽃이 그녀의 얼굴빛을 더 환하게 비췄다.소지훈은 이정현의 웃는 얼굴을 보고 나서야 정말 열애 중이라는 실감이 꽉 차올랐다. 소지훈은 치솟는 기쁨을 가까스로 누그러뜨리며 조심스레 물었다.“마음에 들어요?”그러자 이정현이 시선을 내려 꽃을 살폈다. 묵직한 장미가 물기 어린 붉음을 머금고 은은한 향을 흘렸다.이정현은 참으로 오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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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0화

“교수님은 오늘에 왜 저렇게 급하게 나가시지?”“평소에는 우리가 다 나간 다음에 움직이셨는데...”“전화받는 중인 것 같던데.”학생들 수군거림을 뒤로 하고 주시우는 곧장 계단을 내려가 신예린에게 전화를 걸었다.“왜?”신예린이 금세 받았다.“남의 연애 구경하는 게 그렇게 재밌어?”주시우가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신예린의 낮은 웃음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흘렀다.“그럼... 나랑 연애하는 건 재미없고?”“우리 사이가 벌써 몇 년인데요.”“그래서 마음이 식었다... 그 말이야?”“그런 뜻은 아니고요.”신예린이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달랬다.“지훈 씨랑 이 선생님이 이제 연애를 막 시작해서 아주 달콤해 보이길래, 그냥 당신한테 사진을 공유한 거죠.”“우리는 안 달콤해?”주시우가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달죠, 너무 달아 죽겠어요.”신예린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그렇게 승부욕이 생겼으면 소지훈 씨랑 선물하는 꽃다발 크기도 비겨 보시든가요. 오늘 지훈 씨가 들고 온 꽃은 당신이 전에 나한테 준 것보다도 훨씬 크더라고요.”그 말이 화근이었다.바로 그날 저녁, 병원 앞으로 신예린을 데리러 온 주시우의 품에는 99송이 장미가 안겨 있었다.“와, 신 선생님의 남편분은 로맨틱하시다. 오늘 결혼 기념일이에요?”“저건 봐도 아흔아홉 송이네.”“무거우면 제가 잠깐 들어드릴까요?”신예린은 거대한 꽃다발을 보며 말문이 막혔다.마침 소지훈도 병동에 들어서다 그 장면을 보고 움찔했다.“여기서 뭐 해?”“아내 데리러 왔지.”“그건 다 알지. 나도 여자 친구 데리러 왔거든... 그게 아니라, 왜 꽃다발이 이렇게 커?”“예린이가 나한테서 받았던 꽃다발이 네가 오늘 산 것보다 작다고 해서... 다시 샀어.”‘딱 날 잡으러 온 거네.’소지훈은 급히 휴대폰을 꺼냈다.“넌 또 뭘 하려고?”주시우가 물었다.“너한테 질 수 없어. 다시 주문해야지. 넌 몇 송이 샀는데?”“그걸 왜 내가 알려줘.”“안 알려줘도 괜찮아. 난 천 송이로 살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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