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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1화

주시우의 눈빛이 흔들리며 목소리가 잠긴 듯했다. “예뻐.”신예린의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예쁘니까 오늘 밤은 안 벗어도 되죠?”“안 돼.”주시우의 팔이 신예린의 허리를 꽉 잡았다. 그녀는 몸이 그에게 밀착된 채 얇은 천 너머로 탄탄한 몸과 온기가 선명하게 느껴졌다.주시우의 입술이 귓가에 닿았다.“내가 입혀줬으니까 벗기는 것도 내가 할게.”그 말에 신예린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주시우가 곧장 그녀를 안아 들며 성큼성큼 몇 걸음 만에 침대에 다다랐다.신예린은 침대에 눕혀졌고 보라색 잠옷을 입은 모습은 마치 피어난 수련 같았다.주시우는 눈빛에 드러난 감탄과 뜨거운 열기를 감추지 못한 채 그대로 신예린을 덮쳤다.“여보, 정말 예뻐.”중저음 목소리로 내뱉는 이 말이 더할 나위 없이 유혹적으로 들려 신예린의 심장은 급속히 뛰기 시작하며 몸이 저절로 달아올랐다.주시우가 다가와 키스하며 입술을 머금자 신예린이 화답했다.그들의 키스는 그 어느 때보다도 격렬했다. 얇은 입술이 불타는 듯 뜨겁게 상대를 삼키며 격렬한 숨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에어컨으로도 식힐 수 없는 뜨거운 열기였다.신예린의 어깨끈이 미끄러져 내리자 희고 매끈한 살결이 은근슬쩍 드러났다.주시우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그 끈을 잡아 아래로 당겼다.왠지 모르게 이 행동이 신예린의 흥분을 불러일으켰다.핏줄이 불거진 섹시한 손등으로 이런 동작을 취하니 강렬한 시각적 충격으로 다가왔다.주시우가 고개를 숙여 신예린의 쇄골에 입 맞추자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목덜미를 스쳤다.간지러웠던 신예린이 참지 못하고 신음을 내뱉었다.주시우의 몸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온몸이 달아오른 쇳덩이처럼 뜨거웠고 눈동자에는 욕망의 불꽃이 이글거렸다.하지만 그는 자신의 욕망을 서둘러 채우려 하지 않았다.그에게 있어 신예린을 기쁘게 하는 것이 더 큰 성취감을 안겨 주었으니까.자신의 품에 갇혀 신예린이 흐릿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게 얼마나 매혹적인지 모른다.“주시우 씨...”신예린의 나른한 목소리가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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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2화

“뭐라고요? 카트를 탄다고요?” 그릇에 향했던 신예린의 시선이 놀란 듯 주시우에게 향했다.주시우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요즘 그걸 배우고 있어.”소지훈을 가리키는 말이었다.신예린이 어색하게 말했다. “이 선생님 때문에 자극받은 건 아니겠죠?”“그럴 수도.”지난번 소지훈은 이정현에게 ‘비난’받은 이후로 레이싱을 제대로 배워보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레이싱은 강도가 너무 높아서 우선 카트부터 시작하기로 했다.“최근 실력이 늘었다고 생각하는지 우리를 초대했어.”주시우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신예린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동료도 같이 간다면 더 좋겠지.”“...”‘의도가 따로 있었네.’신예린은 웃으며 말했다. “알겠어요.”근무 중에도 신예린은 자신의 임무를 잊지 않고 이정현이 수술실에서 내려올 때쯤 무심한 척 물었다.“이 선생님, 레이싱에 관심이 있으시잖아요. 우리 아윤이가 요즘 카트를 배우고 싶어 해서 현장에 데려가려는데 같이 갈래요?”이정현은 수술로 뻐근해진 팔을 문지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내가 레이싱에 관심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어요?”허를 찌르는 말에 신예린은 마음이 뜨끔했다. 소지훈이 알려줬다고 할 수는 없었으니까.“동... 동료한테 들었어요.”이정현은 그 말을 듣고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갈래요?” 신예린이 물었다.“언제요? 쉬는 날인지 확인해 봐야 해요.”신예린은 이미 이정현의 근무표를 확인한 뒤 일부러 쉬는 날을 골랐다.“모레요.”말하며 잠시 멈칫했다.“아, 소 선생님도 같이 가요.”이정현은 신예린의 은근한 눈빛을 보며 문득 웃음이 났다.“어쩐지, 속셈이 너무 뻔한데요.”신예린이 팔짱을 끼며 애교를 부렸다.“같이 가요. 아윤이도 이모 보고 싶대요.”이정현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애교 부릴 거면 그쪽 남편한테나 부려요.”신예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싫어요. 이 선생님께 부릴 거예요.”결국 이정현은 당해내지 못하고 타협했다.“알겠어요. 가면 되잖아요.”“앗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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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3화

“아니면 뭐라고 불러요? 참 겸손하다니까요. 그렇게 대단한 배경을 가지고도 아무 말 안 했잖아요. 도지윤은 부원장 삼촌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신예린이 입술을 달싹이며 웃었다.“나는 나고 그분들은 그분들이죠. 진정한 존중을 받으려면 타인에게 의지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키워야 해요.”이정현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어쨌든 도지윤이 떠나면 제일 기뻐할 사람은 진 선생님일 거예요.”신예린은 그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카트 타러 가는 날 신예린 가족과 이정현은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주아윤은 이정현을 보자마자 사랑스럽게 불렀다.“예쁜 이모.”이정현이 차에서 포장도 뜯지 않은 작은 인형을 건네자 주아윤은 기뻐하며 꼭 껴안고 달콤하게 외쳤다.“고마워요. 예쁜 이모.”“딸이 말을 참 예쁘게 해요.”이정현이 주아윤의 볼을 두어 번 쓰다듬으며 말했다.“나보다 예쁘게 하는 건 사실이에요.”말을 마친 신예린은 주시우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 같았다.‘맞는 말 아닌가?’신예린이 머리를 긁적였다.주시우는 신예린이 기분 좋을 때면 말끝마다 남편이라고 부르던 모습에 떠올랐다. 주아윤과 막상막하였다.“소 선생님은 아직 안 왔어요?” 신예린이 주시우를 끌어당겼다.“어디 있는지 물어봐요.”주시우가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방금 문자로 먼저 들어갔다고 했어.”카트라이더 클럽의 장소는 꽤 넓었다. 구불구불한 카트 서킷, 낡은 타이어로 쌓아 올린 견고한 방어벽이 보이고 들어서자마자 굉음을 내는 엔진 소리와 날카로운 브레이크 소리, 관중들의 함성이 들려왔다.레이싱복을 입은 사람들도 꽤 많았다.신예린이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소 선생님은 어디 계시죠?”일부러 이정현을 데려오라고 해놓고 본인은 사라지다니.‘이런 사람이 무슨 결혼을...’그때 주아윤이 어느 한쪽을 가리켰다. “대부님이에요.”모두가 아이의 손가락을 따라 돌아보니 입구에 한 남자가 당당하게 서 있었다.레이싱복은 그의 날렵한 실루엣을 더욱 부각했다. 소지훈은 넓은 어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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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4화

“대부님, 화이팅.”멀리서 주아윤의 함성이 들려왔다.모든 준비를 마치고 시작하려던 순간, 고개를 들자 원래 네 명이 있던 자리에 이제 세 명만 남아 있었다.‘이정현은 어디로 갔지?’소지훈은 조금 당황하며 초조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이렇게 멋진 모습을 그녀가 직접 봐야 하는데 안 그러면 이 모든 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자, 빨리 시작하세요.” 코치가 재촉하자 소지훈은 이를 악물고 어쩔 수 없이 가속 페달을 밟았다.요란한 굉음이 울리며 소지훈의 차는 번개처럼 차도로 돌진했고 시위를 당긴 화살처럼 질주했다.“우와.”바람이 주아윤의 머리를 휘날렸고 아이의 시선은 소지훈의 차를 따라 움직였다.그런데 차 안의 소지훈은 의기소침해 보였다.이정현 앞에서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큰 격차를 벌리며 달리고 싶어서 며칠 동안 고생하며 연습했는데 상대는 전혀 관심도 없고 심지어 보지도 않고 그냥 가버렸다.생각하면 할수록 기분이 가라앉았고 점점 자신을 의심하게 되었다.그때 뒤에서 굉음이 들리더니 한 대의 카트가 점점 가까워지며 그를 추월할 기세를 보였다.‘젠장, 아까부터 거슬렸어. 뒤에서 계속 따라오더니 이젠 추월까지 하려고?’소지훈은 우울함을 분노로 바꿔 핸들을 돌리며 가속 페달을 밟았다.상대방은 그의 의도를 눈치챈 듯 속도를 올렸다.두 카트는 마치 뱀처럼 서로를 쫓고 얽히며 한동안 팽팽한 접전을 벌였다.차 안에 있던 소지훈은 피가 끓어올랐다. 상대가 자신을 추월해 앞으로 달려갈 때 져서 자존심이 상하는 대신 오히려 속이 시원하고 경외감마저 느껴졌다.마침내 결승점에 도착한 소지훈은 차를 세우고 자신과 경주했던 사람이 아직 그곳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 등 뒤에 새겨진 11이라는 숫자를 알아보았다.“이봐요. 운전 잘하던데 인사나 하죠. 소지훈이라고 해요.”소지훈이 다가가 악수를 청하자 상대가 헬멧을 벗고 살짝 돌아섰다.소지훈은 그제야 여자의 우아한 몸매가 눈에 들어왔고 돌아보는 순간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짧은 머리카락이 휘날리며 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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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5화

“나도 이 클럽에서 자주 놀아요. 다음에 올 때 나한테 물어보면 내가 가르쳐 줄게요.”“아, 네.” 소지훈이 멍하니 대답했다.이정현은 덤덤한 그의 태도에 필요 없는 줄 알고 이렇게 덧붙였다.“물론 코치를 불러도 돼요. 그 사람들이 더 전문가니까.”“네?” 소지훈은 뒤늦게 이정현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닫고는 순간 기쁨에 들떴다.“아니요. 코치 안 부를래요. 이 선생님이 가르쳐주세요.”“사실 지금도 꽤 잘해서 내가 가르칠 게 없어요.”“아니요. 나는 완전 초보에요. 세상에서 제일 못하는 초보라 그쪽 가르침이 필요해요.”“...”방금 전만 해도 실력이 부족해 체면이 깎인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자신을 깎아내리고 있었다.소지훈은 갑자기 활기를 되찾으며 카트 레이싱에 관해 묻는 척 이정현과 이야기를 시작했다.주아윤은 천천히 신예린과 주시우 곁으로 물러났다.“아빠, 대부님이 이상해요.”“왜?” 주시우가 고개를 숙여 다정하게 아이를 바라보았다.“사람이 달라진 것 같아요. 귀신에 씐 건 아닐까요?”신예린이 그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렸다.“귀신에 씐 게 아니라 공작새가 깃털을 펼치는 거라고 생각해.”주아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해하지 못한 듯 신예린을 바라보았다.“집에 가서 엄마가 설명해 줄게.”주아윤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그 후 며칠 동안 신예린은 소지훈에 대한 소식을 듣지 못했다. 이정현과는 자주 마주쳤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인사만 하고 각자 할 일을 했다.나중에 주아윤이 소지훈과 통화하고 싶어 하자 주시우가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 소지훈 주위가 시끄러웠다.“대부님, 어디 있어요? 나랑 얘기 안 한 지 너무 오래됐잖아요.”주아윤의 앳된 목소리에는 투정이 묻어났다.“아윤아, 나 카트 타러 왔어.”“대부님은 이제 카트만 좋아하고 나는 안 좋아하네요.” 주아윤이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절대 아니야. 난 우리 아윤이가 제일 좋아.”소지훈이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아윤아, 내가 예쁜 이모랑 만나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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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6화

“똑.”헬멧에 손가락이 가볍게 부딪히는 소리가 나며 소지훈의 상상도 산산이 깨졌다.이정현이 웃으며 소지훈의 헬멧을 톡 건드렸다.“그걸 쓰고 걸어갈 거예요?”그제야 소지훈이 정신을 차렸다. 아까 아윤이 전화받느라 헬멧을 벗는 걸 깜빡한 것이다.‘헬멧 쓰고 키스까지 생각했다니... 정말 최악이야.’머쓱함이 몰려온 소지훈은 허둥지둥 헬멧을 벗고 혹시 헤어스타일이 망가졌을까 봐 손으로 머리를 대충 정돈했다.이정현 앞에서 숱한 망신을 당해도, 깔끔한 남자 이미지는 지키고 싶었다.“아까 입술이 꿈틀거리던데 무슨 생각을 한 거예요?”이정현의 말에 소지훈의 손놀림이 딱 멈췄다.순간 얼어붙은 소지훈은 눈을 피하며 중얼거렸다.“아... 그게... 입술이 좀 굳은 것 같아서요.”“그래요?”이정현의 눈빛에는 장난이 스쳤다.“...”소지훈은 말문이 콱 막혔다.“갈 게요.”이정현이 걸음을 떼자 소지훈도 바짝 따라붙었다.“어디로요?”“집이죠. 어디겠어요.”“저... 차 좀 얻어 타도 될까요?”이정현의 발걸음이 멈췄다. 소지훈은 불과 몇 센티 거리까지 다가가 있었고 이정현에게서 은은한 향기가 스쳤다.‘무슨 바디워시를 쓰지?’소지훈의 머릿속에는 터무니없는 생각이 불쑥 떠올랐다.“차 안 가져왔어요?”이정현은 살짝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소지훈을 쳐다봤다.“제 차가 고장 나서요. 수리 맡겼어요.”이정현은 여전히 아무 말도 없이 소지훈을 바라봤다.‘정말이에요?’그러자 소지훈은 다급히 덧붙였다.“이번에는 진짜예요. 동료들한테 물어보세요. 며칠째 택시 타고 출퇴근했어요.”“그럼 그때 차 고장 났다는 건 거짓말이었네요?”이정현이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아차, 그걸 깜빡했네.’“아, 그... 그때도 진짜였어요.”이정현은 더 캐묻지 않고 미소만 남긴 채 돌아섰다.이정현이 아무 말이 없으니 소지훈은 그녀가 같이 차를 타는 걸 허락했는지 거절했는지 헷갈려 잠깐 멈칫했다.“안 갈 거예요?”가볍게 날아오는 이정현의 목소리에 소지훈의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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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7화

이정현은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지훈 삼촌!”갑자기 아이 목소리가 들리더니 일곱, 여덟 살쯤 된 남자아이 하나가 소지훈에게 쏜살같이 달려왔다.“이훈아!”이훈과 소지훈은 꽤 친한 사이인 듯했고 이훈은 그대로 소지훈의 품에 쏙 안겼다.“오래 안 왔잖아요. 저 보고 싶지도 않았어요?”“그럼. 보고 싶었지. 요즘은 좀 바빴어.”소지훈이 우현의 팔을 쿡 눌러 보며 웃었다.“살 좀 오른 것 같은데? 최근에 운동은 좀 했어? 자, 근육 좀 보자.”그러자 이훈은 금세 허리를 쭉 펴고 팔을 접어 근육을 뽐냈다.“오, 괜찮은데? 삼촌이랑 한 번 붙어도 되겠어.”둘이 장난치는 모습을 보던 이정현의 시선이 자연스레 소지훈에게 머물렀다.소지훈은 이상하게 아이들과 금방 친해졌다. 주아윤도 그렇고 지금 눈앞의 이훈도 마찬가지였다. 가끔 소아과에 협진 나가면 어린애들이 소지훈한테 달라붙어 매달려 있는 모습을 심심찮게 봤다.예전에는 소지훈이 철없다고만 여겼는데 생각해 보니 소아과 의사에게는 철이 없어 보이는 순진한 모습이 필요한 덕목일지도 모를 일이었다.그때 이훈의 시선이 이정현에게 옮겨갔다.“이 예쁜 누나는 누구세요?”역시 가게를 경영하는 부모 밑에서 자라서 그런지 이훈은 낯선 사람 앞에서 수줍어함도 없고 말도 야무지게 잘했다.“어... 그게...”소지훈이 슬쩍 이정현을 보며 말했다.“내... 친구야.”이훈은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더니, 느닷없이 이정현에게 툭 던졌다.“예쁜 누나, 삼촌이 누나를 좋아한대요.”말을 마치자마자 번개같이 도망쳤다.“...”“...”순간, 공기가 어색하게 멎는 것 같았다.소지훈은 무슨 말이라도 하려다 그만 입을 닫았다. 사실 이훈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소지훈이 이정현을 좋아한다는 건, 두 사람 다 모를 리가 없는 일이었다.마침 그때 사장이 김이 폴폴 나는 꼬치를 들고 다가왔다.“주문하신 꼬치가 나왔습니다.”쟁반을 내려놓은 사장의 시선이 이정현에게 머물렀다.소지훈은 아까 건넨 부탁이 떠올라 불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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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8화

소지훈은 이정현의 웃음에 살짝 기가 죽었다.“사장님이... 원래 좀 친절하세요.”“그래요?”이정현이 입꼬리를 올렸다.“사장님이 친절한 건지 누가 뭐라 귀띔을 한 건지 모르겠네요.”그 말에 소지훈의 심장이 덜컥했다.“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하지만 소지훈은 말끝이 자꾸 꼬였다.“아까 꼬치 고르고 나서 사장님이랑 한참 이야기하던데... 뭘 얘기한 거죠?”“아, 아뇨... 별말 안 했는데요...”이정현의 시선이 점점 날카로워지자 소지훈은 고개를 점점 숙였다.“마, 마지막 그 멘트는 제가 시킨 건 아니에요.”“그럼 아까 그 꼬마도 짠 거예요?”소지훈이 급히 손을 저었다.“그건 진짜 아니에요. 맹세합니다. 저는 그냥... 사장님께 여기 처음으로 혼자 여자랑 왔다고만 전해 달라고 했어요.”소지훈의 목소리는 끝으로 갈수록 작아졌다.“그래요.”이정현은 그저 담담하게 한마디 남기고는 꼬치를 집어 들었다.소지훈은 그녀가 아무렇지 않게 먹는 모습을 보며 조마조마했다.“화난 건 아니죠?”이정현이 눈썹만 살짝 올리면서 되물었다.“그게 화날 일이에요?”그제야 소지훈도 마음이 놓였고 꼬치를 내밀었다.“이거 진짜 맛있어요. 한번 드셔 보세요.”이정현이 받아 들자 소지훈도 신나서 한입 베어 물었다. 조금 전의 어색함은 금세 사라졌다.“괜찮죠?”“네.”“아까 사장님께 부탁한 건 사실이에요.”“네?”“정말로 여기에 여자랑 단둘이 오는 건 오늘이 처음이에요.”“그래요.”더 묻지도 캐묻지도 않았지만, 신나게 먹는 소지훈의 얼굴을 보니 이정현의 입가에도 조용히 미소가 걸렸다.꼬치를 다 먹고 소지훈이 계산하러 가서 사장과 두어 마디 나누던 차, 뒤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몇 남자가 빙 둘러 이정현을 막고 있었다.소지훈의 눈이 번쩍했다.“뭐 하는 거야!”소지훈은 곧장 달려와 이정현의 손목을 잡고 그녀 앞에 막아 나섰다. 그들을 바라보는 이정현의 눈빛은 싸늘했고 굳게 선 어깨가 넓게 앞으로 버텼다. 이정현은 잠깐 멍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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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9화

“다음에도 혹시 이런 사람들 만나면 제가 곁에 없더라도 바로 주변에 도움을 청해요. 저런 인간들은 많지 않으니까 겁먹지 말고요.”소지훈이 당부하자 이정현은 대답 대신에 맞잡은 손을 잠시 내려다봤다.그제야 소지훈이 퍼뜩 손을 뺐다.“아, 미안해요. 흥분해서 그만...”손끝에는 아직 이정현의 온기가 남아 있었고 소지훈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아까 화내지만 말고 손을 더 오래 잡아 볼 걸...’순간 소지훈은 후회가 훅 올라왔다.“괜찮아요. 아까 고마웠어요.”이정현이 담담히 말했다.사실 소지훈이 없었어도 이정현은 대처할 방법이 있었지만 오래 혼자 버텨온 자신을 위해 누군가가 앞에서 막아 준다는 설렘이 묘하게 마음을 건드렸다.철없을 땐 철없어도, 겁 없고 든든한 소지훈의 등은 웬만한 일은 다 막아낼 것만 같았다.이정현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아까는... 꽤 남자다웠어요.”소지훈은 머리를 긁적이며 쑥스러워했다.“에이, 별말씀을...”하지만 올라가는 입꼬리는 감출 수 없었고 몸까지 둥둥 떠오르는 기분이 들었다.‘이건 꼭 예린 씨한테 보고해야 해. 오늘 남자다웠다는 소리 들었다고 말이야.’그날 밤, 소지훈은 내내 그 말이 꿈에까지 따라붙었다.이정현이 남자답다고 말하는 장면만 반복 재생했다. 소지훈은 반쯤 자고 반쯤 깬 채, 웃는 입술로 그날 밤을 보냈다.다음 날, 소지훈은 기분 좋게 눈을 떴다가 알람을 보고 벌떡 일어났다.지각할 것만 같았다.그는 양치하다가도 어젯밤이 떠올라 바보 같은 웃음을 흘렸다.‘나도 이제 연애하는 날이 머지않겠지.’소지훈은 단지 앞에서 택시를 잡아 병원으로 향했다. 기사님은 수다쟁이였고 이야기에 열을 올리다 옆 차와 몇 번이나 부딪칠 뻔했다.그러자 소지훈이 식겁해서 말했다.“사장님, 운전에만 집중하시면 좋겠어요.”“에이, 걱정하지 말아요. 제가 운전한 지가 몇 년인데... 눈 감고도 간다니까요.”‘사장님이 눈 감으면 저는 내려야 해요...’쿵!그 생각이 스치자마자 커다란 충격음이 났다.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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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0화

소지훈은 인사를 겨우 마치고는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다. 민망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하... 매번 좀 잘 풀리나 싶으면 꼭 이렇게 한 방 맞네.’‘갈비뼈 골절 환자가 심장외과 병동으로 오다니... 이게 인연인지 악연인지 참...’어젯밤까지만 해도 함께 꼬치를 먹던 소지훈이었는데 오늘 평상에 실려 들어오는 모습으로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죠?”이정현이 물었다.“출근하다가 교통사고 났어요.”소지훈이 축 처진 목소리로 답했다.이정현은 말없이 소지훈을 잠시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고 간호사에게 말했다.“일단 병실로 모실게요.”소지훈이 아무리 병원 직원이라고 해도 병상이 빠듯해 결국 2인실로 배정됐다.자리를 잡고 이정현이 병실에 들어서자, 소지훈은 여전히 쑥스러운지 눈을 피했다.“민망해할 거 없어요. 멧돼지한테 쫓겼던 그 사건에 비하면 이건 귀여운 편이죠.”이정현이 달랬다.위로는 고마웠으니 다음부터는 정말 이런 위로는 사양하고 싶었다. 소지훈은 더 가슴이 답답해졌다.“몸 상태 검사할게요.”말끝이 떨어지자 이정현의 표정은 바로 전문의사의 표정으로 돌아왔다.“윗옷 좀 올려요.”의사인 소지훈도 진찰에 협조해야 한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도 오늘은 괜히 몸이 굳었다. 이정현의 시선이 닿자 그는 더디게 상의를 끌어 올렸다.‘이럴 줄 알았으면 복근 좀 만들걸... 지금이라도 숨 참으면 선이 좀 생기려나?’그 생각이 스치자마자, 서늘한 손끝이 가슴께 닿았다. 그러자 소지훈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아파요?”이정현의 목소리가 내려왔다.얼굴에 열이 훅 오르자 소지훈은 눈을 피하며 더듬거렸다.“아, 아니요...”“아프면 괜히 참지 말고요. 될수록 살살 검사할게요.”이정현은 갈비뼈 부위를 조심스레 눌러 보고 청진기로 호흡도 확인했다. 그동안 소지훈은 한마디도 못 했다.“영상 봤어요. 5, 6번 갈비뼈에 실금이 있어요. 수술은 필요 없고 며칠 안정하시면서 뼈 회복에 도움 되는 약 좀 드릴게요.”설명을 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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