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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터닝포인트: Chapter 51 - Chapter 60

100 Chapters

제51화

소지훈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보기엔 네가 결정을 너무 급하게 내린 거야.”하지만 주시우는 대꾸하지 않고 오히려 자리에서 일어났다.“예린이가 너무 오래 안 오네. 내가 가볼게.”그가 막 문 쪽으로 가려던 순간 마침 문이 열리며 신예린이 들어왔다.“무슨 일 있었어?”주시우가 다정하게 물었다.그러자 신예린은 평소처럼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아니요. 화장실에 사람이 좀 많았어요.”“다 먹었으면 이제 가자.”소지훈도 평상시처럼 담담한 목소리로 신예린을 향해 물었다.“제수씨, 이제 배부르죠?”신예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 정말 잘 먹었어요. 감사합니다.”셋은 계산을 마치고 식당을 나섰고 소지훈은 먼저 주차장으로 향하며 인사를 건넸다.“난 차를 바깥 주차장에 세워놔서 여기서 먼저 갈게. 제수씨, 몸조리 잘하고 조만간 건강한 아들 낳길 바랄게요. 그럼 다음에 봐요.”신예린은 수줍게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안녕히 가세요.”소지훈이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주시우가 고개를 숙여 말했다.“우리도 가자.”신예린은 당연히 주차장으로 가는 줄 알고 그를 따라갔다.그런데 주시우는 그녀를 이끌고 2층으로 내려갔다.어리둥절한 채 따라가던 신예린은 그가 자신을 화장품 가게으로 데려가는 걸 보고 잠시 멈칫했다.그때 주시우가 설명했다.“이 나이 때가 가장 예쁨받고 싶은 시기라길래 아까 밥 먹으면서 찾아봤는데 이 매장이 괜찮더라.”신예린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저 임신 중이라 화장품도 못 써요.”“내가 검색해 봤어. 임산부도 쓸 수 있는 제품이 있다고 하더라고. 임신했다고 예뻐질 권리까지 포기할 필요는 없지.”그가 오후에 신예린이 무심코 한 말을 기억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신예린의 마음 한구석이 괜히 따뜻해졌다.그러나 곧 주시우와 소지훈이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책임감 때문에 이러는 거겠지...’신예린이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주시우는 이미 점원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임산부도 쓸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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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화

오늘은 해부학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그러나 주시우는 지난 수업 때 미리 오늘은 강의실에서 수업하는 대신 해부학 실험실에서 직접 시신 기증자들의 신체를 관찰하며 인체의 각 기관과 조직을 보다 명확히 이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은 관찰만 하지만 이후에는 직접 실습으로 인체 구조를 더욱 깊이 파악해야 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학생들은 흰색 가운을 입고 실험동을 향해 걸어갔다.송지유는 신예린 옆에서 긴장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나 어젯밤에 제대로 못 잤어. 오늘 수업 생각만 하면 너무 무서워.”송지유는 평소에도 시체, 미라, 공포영화, 귀신 등을 극도로 무서워하는 성격이었다. 왜 의대를 선택했냐는 질문에 그녀는 첫사랑과 의대 진학을 약속했는데 정작 그 남자는 IT를 선택해 버렸고 홀로 남은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의대에 오게 되었다고 했다. 지금도 기숙사 벽에는 송지유가 분노를 담아 새겨 놓은 첫사랑의 이름이 남아 있었다.“기증자분들은 살아생전에 자신의 몸을 의학 연구를 위해 기증할 정도로 선량한 분들이잖아. 살아서도 착한 분들이었는데 돌아가셨다고 해서 해를 끼칠 리 없지.”신예린은 말하면서 송지유를 안심시키려 했다.“나도 그런 건 잘 알아.”송지유는 여전히 덜덜 떨며 말했다.“당연히 존경하지. 근데 그래도 무서운 걸 어떡해...”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실험실 입구에 도착하자 주시우가 이미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신예린은 흰색 가운을 입은 주시우를 처음 봤다. 그는 반듯한 자세로 서 있었고 흰 가운은 그의 깔끔하고 엄격한 성격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가벼운 바람에 이마를 스치는 머리카락은 그에게 부드러운 느낌까지 더해주었다.주변에서 감탄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네 남편은 진짜 잘생겼네.”송지유가 신예린 귀에 속삭였다.“저렇게 멋진 남자를 보고 어떻게 참아?”신예린도 사실 마음 같아선 달려들고 싶었지만 임신 초기라 조심해야 했다.“너 의대생 맞아? 임신 초기에는 석달 동안 잠자리를 가지면 안 되는 거 몰라?”“그래도 그렇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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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넘어질 거라고 생각했던 신예림은 넘너지지 않았고 어느새 넓고 든든한 가슴에 안겨 있었다.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주시우의 날렵한 턱선과 깊고 검은 눈동자가 보였다.이미 주변 학생들의 시선이 집중돼 있었고 주시우가 신예린을 감싸안은 모습을 보고 다들 흥미롭게 수군대기 시작했다.주변의 웅성거림에 정신이 번쩍 든 신예린은 황급히 주시우의 품에서 벗어나 자세를 바로잡으며 서둘러 말했다.“고맙습니다. 교수님.”주시우는 부드럽고 차분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괜찮아?”신예린은 따가운 시선에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네. 괜찮아요.”주시우는 그제야 시선을 호영준에게 돌렸고 신예린을 바라보던 것과는 다르게 날카롭고 위엄 있는 눈빛을 보냈다.“교, 교수님.”호영준은 그의 눈빛을 마주치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주시우가 단호히 말했다.“사진 삭제해.”호영준은 감히 반항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황급히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지웠다.“지웠어요. 교수님, 정말 지웠어요.”옆에 있던 신예린이 조용히 덧붙였다.“최근 삭제한 항목에서도 지워.”그러자 호영준은 바로 신예린을 노려봤고 주시우가 눈을 가늘게 뜨며 재차 말했다.“두 번 말하게 하지 마.”그 말에 호영준은 급히 최근 삭제 항목까지 모두 지웠다.“이제 정말 다 지웠어요.”주시우는 다시 실내의 모든 학생에게 시선을 돌렸다.“시신 기증자분들은 의료 발전을 위해 자신의 몸을 헌신하신 분들입니다. 이분들이 없었다면 현대의학은 지금과 같은 발전을 이룰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희생정신은 존중받아 마땅하며 결코 장난이나 농담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행동은 모독입니다.”호영준은 얼굴이 붉어지며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여러분은 미래의 의사입니다. 앞으로 많은 환자의 생명이 여러분 손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오늘 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생명을 존중하고 경외심을 갖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의학의 미래는 여러분 손에 달렸습니다.”주시우의 힘 있는 목소리는 마치 기증자들이 학생들에게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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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아까 실험실에서 주 교수님이 말씀하실 때 내가 너를 한 번 봤거든? 내가 네 눈에서 뭘 본 줄 알아?”신예린의 발걸음이 살짝 멈췄다.“눈곱?”“...”‘이럴 때 보면 얘도 한 대 때리고 싶다니까.’“아니거든. 난 네 눈에서 완전 설렘을 봤어. 넌 주 교수님 볼 때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멋진 걸 보는 눈빛이더라?”신예린은 순간 멍해졌고 송지유가 다가와 의미심장하게 속삭였다.“너 혹시 주 교수님 좋아하는 거 아냐?”원래라면 신예린이 부끄러워하면서 장난스럽게 튕길 거라 생각했는데 신예린은 잠시 침묵하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주 교수님을 좋아하는 건 너무 쉬운 일이야.”학생들이 그를 동경하는 건 교수라는 타이틀에 잘생긴 외모까지 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그런 걸 다 빼고 곁에서 주시우를 접해보면 그는 지식도 많고 여자에게 예의를 지키고 감정 기복도 없고 늘 너그럽고 누구보다 자신에게 다정했다.마치 오래된 술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그 사람만의 깊은 향이 느껴졌다.신예린이 그런 생각에 잠기던 순간 문득 시선이 멈췄다.조금 떨어진 곳에서 주시우가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기둥 옆에 서 있었다.그의 따뜻하고 깊은 눈길이 신예린을 향하자 마치 봄바람 같은 미소와 눈빛이 느껴졌다.“주 교수님께서 저기 있잖아. 분명히 널 기다리고 있는 거야.”송지유도 주시우를 발견하고 신예린 팔을 흥분해서 잡아당겼다.송지유는 완전이 주시우와 신예린 두 사람의 커플 팬이 된 기분이었다.주시우가 이쪽으로 걸어왔다.“나 잠깐 혼자 망을 보고 있을게.”송지유는 슬그머니 한쪽으로 빠지며 수상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지켜봤다.신예린은 주시우가 가까이 올수록 아까부터 마음에 품고 있던 감정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그와 소지훈이 나눴던 대화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제는 그냥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교수님...”신예린이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주시우는 온화한 눈빛으로 미리 준비해 온 것을 주머니에서 꺼내 내밀었다.신예린은 그의 손바닥 위에 얹혀 있는 두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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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도서관에서 신예린은 사탕 포장을 조심스럽게 뜯어 한 알을 입에 넣었다.달콤한 석류 맛이 입안 가득 퍼지면서 마치 심장까지 달콤해지는 기분이었다.신예린은 사탕 포장지를 곱게 펴서 책 사이에 조심스럽게 끼워 넣었다.그리고 책상에 엎드려 이미 깊게 잠든 송지유를 바라봤다.결국 공부 열심히 하겠다던 말은 늘 입에만 달고 산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송지유는 무슨 꿈을 꾸는지 중간중간 입맛을 다시더니 이내 고요한 도서관에 코 고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이 느껴져 신예린은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모르는 척하고 싶었지만 송지유의 손 한쪽이 여전히 자신의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코골이는 멈추지 않고 계속됐고 결국 신예린은 포기하고 그녀를 살짝 흔들었다.“지유야.”하지만 송지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지유야, 일어나 봐.”몇 번 흔들고 나서야 송지유가 겨우 눈을 떴다.“밥 먹을 시간이야?”정말 먹고 자는 게 전부인 친구였다.신예린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다들 널 보고 있어.”송지유는 멍한 눈으로 사방을 둘러봤고 정말로 꽤 많은 사람들이 이쪽을 힐끔거리고 있었다.“뭐야, 드디어 내 미모가 알려진 거야?”신예린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너 코골았어.”“...”송지유는 화들짝 놀라서 바로 자세를 고쳐 앉았고 펼쳐진 책에 침 자국이 남아 있는 걸 보고 슬쩍 닦았다.그 모습을 본 신예린은 한숨이 나왔다.“아까은 그렇게 공부 열심히 하겠다더니?”“잠을 충분히 자야 책도 잘 읽을 수 있지.”송지유는 당당하게 대답하며 책을 자기 앞으로 가져다 놓았다.“나 이제 완전히 충전됐어.”신예린은 그런 그녀의 행동을 그냥 지켜봤다.결국 채 삼십 분도 지나지 않아 송지유는 다시 신예린 귀에 대고 속삭였다.“예린아, 우리 언제 밥 먹어?”“...”사실 둘 다 거의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식당에서 고기반찬을 보자마자 오늘 해부학 수업이 떠올라 도저히 입맛이 돌지 않았고 그저 채소에 밥만 조금 비벼 먹었다.식사 후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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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화

여도준의 뒤를 바라보자 신예린은 횡단보도 옆에 서 있는 남학생 몇 명을 발견했다.예전에 자신을 비웃던 바로 그 녀석들이었다.그러자 신예린은 담담하게 말했다.“너희끼리 저녁 먹는데 내가 뭐 하러 가?”“전에 다 같이 밥도 먹고 그랬잖아. 걔네가 너 오라고 해서 내가 부르러 온 거야.”신예린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물었다.“네 여자 친구는?”“친구끼리 모이는 건데 굳이 내 여자 친구를 왜 불러.”신예린은 마음속으로 쓴웃음을 삼켰다.“그럼 나는 더더욱 갈 필요 없겠네.”여도준은 신예린이 이렇게 단호하게 거절할 줄 몰랐던 듯 곁눈질로 친구들을 한 번 보고는 목소리를 낮춰 애원하듯 말했다.“제발 와줘. 다들 보고 있잖아.”그는 늘 신예린이 자신을 좋아하는 걸 알았기에 이런 부탁은 거절당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그러나 신예린은 싸늘하게 대답했다.“참... 넌 얼굴도 정말 두껍네.”그 말을 남기고 신예린은 미련 없이 자리를 떠났다.여도준은 멍하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사람이 없는 틈을 타 신예린은 슬쩍 주시우의 차에 올랐다.안전벨트를 맨 뒤에야 운전대에 손을 얹은 주시우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걸 눈치챘다.신예린은 얼떨결에 얼굴을 만지며 물었다.“왜요?”주시우는 시선을 거두며 부드럽게 대답했다.“아니야. 그냥.”차는 천천히 학교를 빠져나갔다.“배고프지?”주시우가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신예린은 고개를 젓고 싶었지만 또 혹시나 배에서 소리가 날까 봐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주시우는 앞을 보며 말했다.“대부분 학생이 해부 실습하고 나면 며칠 동안 고기 못 먹더라. 익숙해지면 괜찮아질 거야.”신예린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교수님도 그랬어요?”그러자 주시우는 미소를 띠며 답했다.“그럼. 솔직히 한동안 채소만 먹어서 몇 킬로는 빠졌을걸.”살이 빠졌다는 말에 신예린은 자신도 혹시 살이 빠질 수 있을지 슬쩍 배를 만져봤다.주시우는 그런 그녀를 보고 바로 눈치챘다.“쓸데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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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다음 날 아침, 주시우는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신예린이 말했던 같은 과지만 반은 다른 그 남학생을 단번에 알아봤다.여도준은 몇몇 남학생들과 함께 걷고 있었고 그들끼리 나누는 대화가 멀리서도 희미하게 들려왔다.“도준아, 어제 신예린 불렀다며? 왜 같이 안 왔어? 예전에는 꼭 나왔잖아.”“내가 말했잖아. 바쁘다고 했다고.”여도준이 귀찮은 듯 답했다.“바빠서가 아니라 아예 너 피하는 거 아냐? 여자 친구 생기고 나서부터 완전 거리 두는 것 같던데.”“우리 지난번에 걔가 널 좋아하는 거 언제까지 갈지 내기까지 했잖아. 두 달도 못 가네... 너 매력 떨어졌나 보다?”“야, 그래도 그렇지. 도준이 매력 없었으면 2년이나 좋아했겠냐? 일부러 밀당하는 거 아냐? 관심 끌려고.”“맞아. 어제 밥 먹으면서도 도준이가 계속 멍해 있던데... 완전 신예린 때문에 그러는 거잖아.”“헛소리하지 마.”여도준은 단호하게 부정했다.그들의 말소리가 점점 멀어져 가자 뒤에서 그 대화를 듣던 주시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예린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예린이 저 남자를 좋아했던 거였어? 결국 임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랑 결혼하게 된 거고...’...며칠 동안 신예린은 계속 주시우를 피해 다녔다.혹시라도 감정을 주체 못 하고 괜히 더 바라는 마음이 커질까 봐 일부러 거리를 뒀다.여도준을 오래 좋아했던 시간처럼 다시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한 번 배신당한 감정은 다시 꺼내기가 더 어려워진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주시우도 그녀가 달라졌다는 걸 당연히 느끼고 있었다.신예린은 마치 놀란 새처럼 자신이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경계하듯 움츠러들고 금세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저녁 시간이 되자 두 사람은 나란히 식탁에 앉았다.신예린은 밥만 허겁지겁 먹으며 가능한 한 빨리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어 했다.반대로 주시우는 평소처럼 천천히 품위 있게 식사하며 중간중간 신예린을 바라보았다.신예린 역시 그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내가 너무 많이 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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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화

신예린의 얼굴이 저도 모르게 달아올랐다.“됐어. 이제 눈 한번 떠볼래?”주시우의 목소리가 저음의 울림이 느껴질 정도로 부드럽게 바로 옆에서 속삭이는 듯 들렸다.신예린은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바로 코앞에 있는 주시우의 얼굴이었다.조명 아래 그의 얼굴은 한결 부드러워 보였고 깊은 눈빛엔 어딘가 따스한 느낌이 깃들어 있었다.신예린은 자기 심장 소리가 귀에까지 울리는 게 다 들릴 정도로 크게 느껴졌다.“아직도 아파?”주시우의 목소리에 정신이 돌아왔고 신예린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이제 괜찮아요.”두 사람은 너무 가까이 서 있었다.지금 이 모습은 마치 주시우가 그녀를 조리대 한쪽에 몰아넣은 것만 같았다.신예린은 순간 숨이 막히듯 긴장해 그저 얼른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저, 그럼... 먼저 나가서...”겨우 몸을 돌려 주시우 곁을 지나가려는데 그 순간 손목이 붙잡혔다.그러자 몸이 자연스레 조리대 쪽으로 밀렸고 주시우는 한쪽 팔로 그녀가 지나갈 길을 막아섰다.이젠 정말로 조리대 벽치기가 되어 버린 상황이었다.신예린은 주시우의 어둡고 깊은 시선을 피하지 못하고 마주 보았다.“왜 그래?”주시우의 목소리는 낮고 묵직했고 그 한마디에 신예린의 심장이 쿵 하고 울렸다.그녀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누군가의 관심이나 사랑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었다.아무도 한 번도 진심으로 그녀의 감정에 귀 기울여 준 적이 없었다.그런데 주시우의 왜 그러냐는 단순한 한마디 물음이 그녀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고 마음속에 담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줬다.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몽글몽글해졌고 신예린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그녀는 자기가 주시우를 좋아한다는 말을 쉽게 꺼내지 못했고 이 감정이 자신의 일방적인 감정이라는 걸 알았기에 주시우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주시우는 그런 신예린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말 안 할 거면... 내가 맞춰볼까? 혹시... 지난번에 나랑 지훈이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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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화

‘이, 이건... 설마 고백이야?’신예린은 당황해서 한동안 멍해졌다.주시우의 말이 머릿속을 세차게 흔들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잠깐만, 신예린... 진정하라고. 좋아한다는 말은 분명히 안 했잖아. 사실 저 말은 모호하게 들리기도 하고 애초에 둘 사이는 우연에서 시작된 거잖아. 그러니 고백이 아니야. 고백이 아니라고. 괜히 혼자 상상하지 마. 진정해... 제발 진정해.’신예린은 마음속에서 치솟는 기대를 억누르며 헛된 꿈을 꾸지 않으려고 애썼다.그때 주시우가 다시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그날 일로 괜히 이상한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너랑 결혼한 건 책임지려고 그런 맞지만 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 결정을 후회한 적은 없어.”그 한마디에 신예린의 마음속에서 뭔가가 탁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그동안 그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던 이유는 단순히 좋아한다는 감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혹시라도 자신이 주시우에게 짐이 되진 않을지 그 걱정이 늘 마음 한구석에 있었다.원래라면 얼마든지 조건에 맞는 사람과 결혼할 수 있었을 텐데 자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결혼한 게 아닐지, 혹시 후회하는 건 아닐지...자주 스스로에게 물었던 그 질문에 오늘 직접 답을 들은 셈이었다.신예린은 마치 허공에 붕 떠 있던 마음이 차분하게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고 그 순간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혹시라도 들킬까 봐 감히 그를 쳐다보지도 못했다.예전에는 울 일이 있어도 아무도 달래줄 사람 없었기에 괜히 약해지지 말자며 버티던 자신이었는데 이상하게 요즘엔 눈물이 자주 고였다.그러다 갑자기 주시우가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쌌고 신예린은 자연스레 고개를 들 수밖에 없었다.주시우가 살며시 그녀의 빨개진 눈가를 뚫어지게 바라봤다.“왜 울어?”그의 다정한 목소리에 신예린은 억지로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안 울었어요.”“그래? 그럼 이건 뭐지?”주시우가 손끝으로 눈가를 쓸어내자 맑은 눈물이 그 손끝에 묻었다.신예린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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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화

신예린은 바로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아니에요. 이제 안 좋아해요.”그 말을 들은 주시우는 미간이 자연스레 풀렸다.“안 좋아한다면 됐어. 아니었으면...”“아니었으면 뭐요?”신예린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봤다.‘그러게. 아니었으면 어땠을까.’사실 주시우도 스스로 뒷말을 몰랐다.그 감정을 응원해 주기도 싫고 그렇다고 포기하라고 밀어붙이기도 쉽지 않았다.“아니야.”주시우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그녀 머리를 가볍게 두드렸다.“이제 나가. 설거지는 내가 할게.”둘이 너무 진지하게 얘기하다 보니 결국 설거지도 못 한 채 시간이 흘러버렸다.신예린은 뭔가 말을 더 하고 싶었지만 머뭇거렸다.그걸 오해한 주시우가 먼저 말했다.“내가 한다니까... 그냥 들어가.”“아니. 그게 아니라요...”신예린은 잠시 망설이다 조심스레 말했다.“교수님, 저 혹시 한 가지만 더 얘기해도 돼요?”그녀도 이제 막 소통의 중요성을 배운 터였다.주시우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말해봐.”신예린은 조심스레 식탁 위에 남은 닭고기 요리를 가리켰다.“저거... 혹시 제가 더 먹어도 될까요? 사실 아직 좀 배가 고파서요.”혹시라도 주시우가 자기 많이 먹는 걸 싫어할까 봐 더 먹는 게 눈치 보였던 참이었다.“...”주시우는 잠시 어이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봤고 신예린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음식 남기는 건 죄잖아요. 낭비하지 않고 다 먹는 게 원래 음식에 대한 예의잖아요.”그녀의 얼굴에 장난기와 활력이 돌아왔다.주시우는 그녀가 오늘 한 얘기들을 정말로 마음에 담은 듯해 마음이 놓였다.“국수 더 끓여줄까?”“아뇨. 남은 거 먹으면 돼요. 저 원래 많이 안 먹어요. 진짜예요.”부엌에서는 설거지 소리가 들렸고 원래 많이 안 먹는다는 신예린은 식탁에서 닭고기를 한 점도 남기지 않고 말끔히 비웠다.심지어 국물까지 싹싹 긁어먹은 뒤에는 만족스럽게 트림이 나왔다.그때 마침 설거지를 끝내고 나온 주시우와 딱 눈이 마주쳤다.신예린은 얼굴이 빨개져서 얼른 변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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