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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Chapters

제61화

그의 말은 자기 카드이니 신예린보고 마음대로 쓰라는 말과 비슷한 느낌이었다.‘주 교수님은... 진짜 멋있네.’신예린은 속으로 소리쳤다.오늘이 주말이라 그런지 마트엔 사람이 엄청 많았다. 계산대 앞에 줄을 서 있는데 뒤에서 다섯 살쯤 돼 보이는 꼬마가 장바구니를 밀고 와서 신예린 배를 그대로 들이받았다.그 순간 한 손이 번개같이 장바구니 옆을 받쳐주었고 핏줄이 선명한 손등이 눈에 들어왔다.“괜찮아?”주시우가 인상을 찌푸리며 신예린을 바라봤다.신예린은 방금 부딪힌 배를 살짝 문질렀다. 다행히 주시우가 막아준 덕분에 세게 닿진 않아 금세 괜찮아졌다.“괜찮아요. 그냥 스쳤어요.”주 교수는 고개를 들어 꼬마를 노려봤다.그리고 그는 얼른 달려온 아이 엄마한테 그리 상냥하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아이 좀 잘 보세요.”원래부터 무뚝뚝하고 카리스마 있는 분위기가 있던 터라 아이의 엄마는 얼른 사과하더니 그 줄을 벗어나 옆줄로 이동했다.주시우는 다시 신예린을 바라보며 말했다.“혹시라도 어디 이상 있으면 바로 말해.”신예린은 고개를 끄덕였다.계산을 마치고 나와 주시우가 장바구니를 들고 먼저 걸어갔다.잠시 멍하니 있다가 신예린도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아까 그 상황이 자꾸 떠오르던 찰나 주시우가 들고 있던 장바구니를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옮기더니 반대 손으로 신예린의 손을 잡았다.그 순간 신예린의 온몸이 굳어버렸다.‘손... 잡았어. 주 교수님이 내 손을 잡았어!’주시우는 그녀의 경직된 손끝을 느끼고 옆을 보며 물었다.“싫어?”‘세상에... 이런 걸 왜 물어봐.’신예린의 얼굴이 한순간에 빨개졌고 심장은 미친 듯 뛰었다.신예린이 아무 말도 못 하자 혹시 불편하게 한 건가 싶어 주시우가 손을 놓으려 했다.“아... 아니요!”신예린은 순식간에 그의 손을 더 꼭 잡았다.주시우의 반짝이는 눈과 마주치자 또 괜히 부끄러워져서 급히 덧붙였다.“저, 저도 조금 걱정됐어요...”주시우는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그럼 가자.”신예린은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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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화

“이분은... 네... 삼촌이야?”수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그 순간 짧은 정적이 흘렀다.신예린은 감히 주시우의 표정을 쳐다볼 수도 없었다.결혼한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아 얼버무리듯 대답했다.“아니야. 우리... 가족이야.”남편은 가족이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그 순간 주시우의 검은 눈동자가 살짝 움직이더니 불쑥 신예린의 어깨를 자연스럽게 감싸안았다.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신예린 귀에 그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안녕하세요. 저는 예린이의...”‘제발... 남편이라는 말만은 하지 마!’숨을 멈추고 긴장하는 사이 주시우가 말했다.“가족입니다.”그 말이 떨어지자 신예린의 온몸에 힘이 풀렸고 주시우는 장난스러운 듯 미묘하게 입꼬리를 올렸다.수연은 두 사람을 한 번 훑어봤다.분명 가족이라는데 둘 사이에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기류가 느껴졌다.특히 저 남자의 시선에는 분명한 온기와 함께 어딘가 소유욕이 느껴졌다.그때 수연의 남자 친구 폰에 연락이 왔고 그는 전화를 받고 나서 말했다.“수연아, 친구들 다 왔대.”수연은 신예린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예린아, 약속 있어서 먼저 갈게. 다음에 또 보자!”“응. 잘 가.”신예린이 고개를 끄덕였다.사람들이 떠나고 나서도 주시우의 손은 여전히 그녀의 어깨 위에 있었다.그 묵직한 무게가 괜히 신예린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다.신예린이 조심스레 옆을 보자 주시우가 그윽하고 선명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그는 슬쩍 미소 지으며 말했다.“가자. 내 가족.”신예린은 얼굴이 붉어진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주시우는 자연스럽게 그녀를 이끌어 차로 향했다.오늘은 손도 잡고 어깨도 안아주니 신예린은 이상하게 붕 떠 있는 기분이 들었다.어젯밤 그 대화 이후로 둘 사이가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다.차에 올라서도 속으로 괜히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는데 그때 주시우가 말했다.“다음 주말 시간 비워놔.”“네? 왜요?”신예린이 의아해했다.“산부인과 검사 예약된 날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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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화

주시우는 차를 지정된 자리에 세워두고 차 밖에 서서 주변을 살폈다.이곳은 그리 새롭지 않은 아파트 단지였다. 건물과 건물 사이 거리는 가깝고 건물마다 모양과 높이가 제각각이었다. 복도 한편에는 개인이 세운 비닐 천막도 보이고 집 외벽은 수십 년 묵은 때가 남아 있어서 전체적으로 회색빛이 감돌았다.주시우는 신예린이 이 길을 십수 년을 오가며 사계절을 어떻게 지났을지 상상해 보았다.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가 그의 시선을 끌었다.“민호야, 천천히 좀 가. 다치면 어떡해!”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시야에 들어왔다. 스케이트보드를 발로 밀고 있었지만 아직 능숙하지 않아 금세 넘어지고 말았다.그 뒤에는 부모로 보이는 남녀가 따라오고 있었다. 남자는 양손 가득 물건을 들고 있었고 여자는 혹여 아들이 넘어질까 봐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 뒤를 쫓고 있었다.“괜찮아요. 안 다쳐요. 엄마는 왜 이렇게 걱정이 많으세요.”남자아이가 투덜거렸다.그 아이의 어딘가 익숙한 얼굴을 보며 주시우는 단번에 그의 정체를 짐작했다.신예린은 집안 이야기를 잘 꺼내지 않았지만 그녀가 일상을 대하는 태도와 말 한마디에서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대충 알 수 있었다.‘예린이가 나한테 그렇게까지 매달려 결혼을 결심했던 것도 결국은 그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마음이 컸을 거야.’그런데 지금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너무도 평화롭고 다정해 보였다.주시우는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발밑에 있는 조약돌을 슬쩍 굴렸다.굴러간 돌은 딱 맞게 스케이트보드 밑으로 들어갔고 남자아이는 그대로 땅에 넘어졌다.“민호야!”임정희가 놀라서 급히 아들에게 달려갔다.“왜 또 넘어졌어? 멀쩡하던 네가 왜 넘어진 거지?”신경무도 손에 든 봉투를 내려놓고 아이를 살폈다.신민호의 손에는 살짝 피가 맺혀 있었다.“내가 조심하랬지? 아직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으면서 폼만 잡으려고 하니까 그렇지.”“아이고. 오른손을 다쳤네. 민호는 숙제도 해야 하는데.”임정희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신경무를 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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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화

그때 진숙희가 신민호의 손을 보고 말했다.“어머, 민호 손이 왜 그래?”임정희는 급하게 대답했다.“아까 길에서 넘어져서 다쳤어요. 지금 얼른 올라가서 소독해야 해서 이만 갈게요.”세 사람은 바쁘게 걸음을 옮겼고 진숙희가 신예린의 얘기를 꺼냈음에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신예린은 한참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사실 이제는 다 익숙해질 정도로 익숙했다.그녀는 가족들에게 있어 점점 더 좁아지는 자신의 방처럼 이 집에서 점점 설 자리가 없어져 가는 존재였다.사람이란 반복되는 실망 끝에야 비로소 모든 걸 체념하고 마음을 접게 된다.신예린은 자신이 그렇게 상처받고 있다고 느끼지 않았다.하지만 길가에서 주시우를 보는 순간 마음이 훨씬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주시우는 차 옆에 서서 온화한 눈빛으로 그녀만 바라보고 있었다.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그 시선 하나만으로도 세상에 환하게 빛나는 존재가 된 기분이었다.‘그래. 괜찮아. 주 교수님한테서는 내가 가장 큰 방을 가질 수 있으니까.’신예린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주시우에게 다가갔다.“교수님, 저... 스케이트보드 갖고 싶어요.”주시우는 이유도 묻지 않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사러 가자.”신예린은 활짝 웃었다.‘봐봐. 여기도 내 부탁이라면 다 들어주는 사람이 있잖아.’...사실 예린은 그냥 심통 삼아 말한 거였는데 막상 차에 타고 나니 주시우가 정말로 보드샵에 데려가 줬다.가게 앞에 도착하자 괜히 머쓱해진 신예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사실 그냥 한 말이었어요. 지금 임신 중이라 타지도 못하는데...”그러자 주시우가 부드럽게 그녀의 손가락을 잡았다.“지금 못 타면 나중에 타면 되지. 혹시 나중에 네가 흥미가 없으면 그때는 애기 주면 되고... 그것도 아니면 내가 한번 타볼게.”신예린은 그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났다.아직도 삼촌으로 오해받았던 걸 마음에 두고 있구나 싶었다.주시우가 손을 잡아끌 때마다 신예린은 자기도 모르게 자꾸 웃음이 나왔다.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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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화

주시우의 눈빛이 순간 날카로워지더니 곧장 신예린에게 다가왔다.이불을 걷어보니 역시나 바지가 붉게 젖어 있었다.주시우는 망설임도 없이 옷장 문을 열어 겉옷을 꺼내 신예린에게 입혀주고 몇 벌의 옷을 급하게 가방에 챙겼다.그러고는 주저 없이 그녀를 안아 들었다.신예린은 저도 모르게 온몸이 떨리고 있자 주시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괜찮을 거야. 바로 병원으로 가자.”단지 위로해 주는 것뿐이었지만 주시우의 넓은 품 안에 안기자 신예린은 마음이 조금은 진정됐다.주시우는 신분증과 휴대폰을 챙긴 뒤 그녀를 안고 차로 내려갔고 조심스럽게 조수석에 앉혀 안전벨트까지 매어줬다.“지금도 계속 피가 나?”그의 질문에 신예린은 고개를 저었다.창백해진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 주시우가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너무 걱정하지 마.”어떻게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냐만 신예린도 의대생이라 두 달이나 된 임신에 갑자기 출혈이 있다는 건 결코 좋은 신호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그래도 주시우 앞에서는 괜히 고개를 끄덕였다.주시우는 차를 출발시키며 바로 전화를 걸었다.신예린은 휴대폰 거치대에 뜬 소지훈의 이름을 보고 조용히 말했다.“이 시간에 전화하면 혹시 폐를 끼치는 거 아니에요?”차는 빠르게 도로 위를 달렸고 그때 주시우의 목소리가 엔진 소리와 함께 들려왔다.“괜찮아. 이 시간에 내가 바로 전화한다는 건 그만큼 믿는 사이라는 뜻이야. 예전에도 지훈이가 한밤중에 내 도움을 얼마나 많이 받았는데. 원래 친구란 게 서로 그러면서 사는 거지.”말이 끝나기 무섭게 전화가 연결됐고 소지훈의 졸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왜... 무슨 일이야?”“우리 예린이가 피가 나서 지금 너희 병원으로 가는 중이야. 15분쯤이면 도착할 것 같아.”전화기 너머로 옷을 챙기는 듯한 소리가 들렸고 소지훈의 목소리는 금세 진지하게 변했다.“알겠어. 운전 조심해서 와.”대화는 짧고 간단했고 별다른 말 없이 통화가 끝났다.병원에 도착하자 예상대로 소지훈이 먼저 나와 있었고 주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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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화

그러자 의사가 부드럽게 말했다.“방금 말씀드리려던 참이었어요. 일단 오늘 하루는 입원해야 합니다. 산모 상태가 좀 나아지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어요.”신예린은 도저히 참지 못하고 물었다.“저... 근데 갑자기 왜 피가 난 거예요?”“보통은 태아 자체의 문제이거나 부모 쪽 요인이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외부에서 충격을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순간 신예린은 마트에서 부딪힌 일을 떠올렸다.주시우 역시 같은 생각을 했는지 둘이 눈이 마주쳤다.“어쨌든 산모는 항상 마음을 편하게 가지는 게 중요해요. 너무 심한 심리적 스트레스는 피하세요.”“네. 감사합니다.”신예린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고 주시우는 신예린을 안고 진료실을 나왔다.소지훈이 곧장 달려와 물었다.“어때?”“유산 전조래. 먹는 약 처방받았고 오늘은 입원해서 관찰해야 한대.”소지훈도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럼 얼른 관찰실로 가자.”병원에 익숙한 그는 곧장 두 사람을 안내했다.미리 연락을 해둔 덕분에 신예린은 단독 병실을 쓸 수 있었다.“오늘 밤 정말 고마워요. 번거롭게 해서 죄송해요.”신예린이 침대에 누운 채로 소지훈에게 말했다.이 한밤중에 불러내 번거롭게 한 데다 이렇게 빠르게 처리해 줬으니 고마운 마음이 컸다.“에이, 그런 말 마세요. 시우 일은 곧 제 일입니다.”소지훈이 웃으며 답했다.“여기 병원의 절차나 동선은 제가 잘 아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대신 서류도 챙기고 약도 받아올게요.”소지훈이 방을 나가고 병실에는 신예린과 주시우만 남았다.“바지에 피가 묻었으니까 갈아입어.”주시우가 아까 챙겨온 옷을 꺼내 건넸다.“급하게 나오느라 미처 못 갈아입었잖아.”“네...”신예린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고 주시우가 살짝 다가오며 물었다.“도와줄까?”너무 진지한 그 한마디에 신예린은 얼굴이 활활 달아올랐다.‘주 교수님이 바지 갈아입혀 주는 장면이라니... 말도 안 돼!’“아, 아뇨! 괜찮아요. 제가 할게요.”신예린은 말하는 것조차 너무 부끄러워서 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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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화

‘저 옷은... 설마...’어젯밤에 분명히 신예림이 갈아입고 벗어둔 그 옷이었고 지금은 덩그러니 병실 베란다에 널려 있었다.분명히 어젯밤에 갈아입고 나서 옆에 있는 작은 서랍에 조심히 밀어 넣어 두고 집에 가서 몰래 씻으려고 했는데 벌써 깨끗하게 빨려서 저렇게 널려 있는 거였다.주시우의 예쁜 손으로 자기의 피 묻은 옷을 직접 빨았다는 생각에 신예린은 얼굴까지 뜨거워졌다.그때 병실 문이 열렸고 신예린은 반사적으로 이불 속으로 숨어서 눈을 감았다.익숙한 발소리가 가까워지고 익숙한 향이 코끝을 스쳤다.굳이 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주시우였다.신예린은 괜히 잠든 척한 게 후회됐다.아마 어젯밤 그가 무표정으로 자기 팬티까지 빨아주는 장면이 너무 충격이라 도저히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얼버무리고 싶은 심정이었다.눈을 뜰까 말까 고민하던 찰나 곁에서 주시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미 깬 거 다 알아. 일어나서 밥 먹자.”...완벽한 연기라고 생각했는데 들켜도 너무 쉽게 들켰다.신예린은 민망한 표정으로 천천히 눈을 뜨고 어색하게 인사했다.“좋은... 아... 아침... 잘 잤어요?”하루 종일 밤을 새운 것 같은데도 주시우는 단정하고 여유로워 보였고 느긋하게 테이블에 아침 식사 포장 봉투를 올려놓았다.길고 깨끗한 손가락에 깨끗하고 맑은 손등이 보였고 저런 손으로 자기 옷을 빨았다는 생각에 또 얼굴이 뜨거워졌다.‘그만 생각해! 신예린, 너 진짜 바보 같아.’주시우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더니 물었다.“왜 그래? 어디 아파?”신예린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아, 아니요...”그가 건네주는 숟가락을 받아 들고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숙여 죽을 떠먹었다.슬쩍 물었다.“저기... 지훈 씨는 집에 가셨어요?”“아니. 오늘 당직이라 바로 당직실로 들어갔어.”그 말에 신예린은 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신예린은 자기 일 때문에 남한테 폐를 끼쳤다는 생각에 고개를 숙였다.그때 주시우가 만두 하나를 집어 내밀었다.“이거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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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화

“저는 교수님의 아이도 아니잖아요.”신예린이 조그맣게 중얼거렸다.주시우는 그 말을 듣고 웃으며 대답했다.“아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네가 행복하면 그걸로 됐어.”그 한마디에 신예린 마음이 또 살짝 파문을 그렸다.그녀는 캔디 포장을 벗기고는 캔디를 입에 넣었다.‘진짜 달아.’입안에 남아 있던 쓴맛도 사라지고 기분까지 나아지는 것 같아서 신예린은 절로 고개를 몇 번 흔들며 기분을 만끽했다.그 모습을 본 주시우도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오후가 되자 의사 허락을 받고 신예린과 주시우는 병실을 나섰다.“지훈 씨한테 인사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신예린이 물었다.“아마 바쁠 테니까 문자만 보낼게.”주시우가 대답했다.전날 밤 급하게 오느라 병원 근처에 주차를 못 해서 차를 멀리 세워뒀었다.주시우는 신예린의 몸 상태를 걱정해서 말했다.“너는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어. 내가 차 가지고 올게.”그러자 신예린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네.”키가 큰 주시우의 뒷모습이 금세 시야에서 사라졌다.어제부터 오늘 아침까지 자기 일로 밤을 새우면서 고생한 주시우는 한 번도 짜증을 내지 않았고 끝까지 침착하고 세심하게 챙겨주었다.심지어 자기 기분까지 살펴주고 다독여주던 모습이 자꾸 생각났다.‘정말 바다 같은 사람이야... 뭐든 다 품어주는 그런 사람이네...’“예린아!”익숙한 목소리에 신예린이 돌아보니 진숙희가 병원 입구에 서 있었다.어제 만났는데 오늘에 또 만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아줌마께서 병원에는 무슨 일로 오셨어요?”신예린이 물었다.“우리 시어머니 약 타러 왔지. 나이 드니까 약 먹는 게 밥 먹는 것보다 더 자주라니까.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오네.”진숙희가 신예린을 살피며 물었다.“근데 예린이는 어디 아파서 온 거야? 얼굴이 안 좋아 보이네...”임신 얘기를 할 수는 없으니 신예린은 얼른 핑계를 둘러댔다.“아, 감기 때문에요. 그냥 진료 좀 받고 왔어요.”“근데 목소리는 멀쩡하구먼.”“이제 다 나아서 재진 온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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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화

주시우는 잠시 눈썹을 치켜올리며 자신이 어느새 택시 기사가 되어버린 상황에 조금 놀란 듯했다.“그러면... 택시 기사님이 아니세요?”진숙희가 차창 옆에서 의아하게 물었다.신예린은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었고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주시우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주시우는 상황을 금세 파악했다.‘이제 내 정체가 남편에서 기사로 바뀐 거군.’그는 장난기 어린 눈길로 신예린을 바라보며 운전대 위에 손을 올리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이 손님 말씀대로 해요. 뭐든 손님이 시키는 대로죠.”그 말투가 어딘가 묘하게 느껴져서 만약 진숙희가 두 사람을 기사와 승객이 아니라는 걸 몰랐다면 괜히 오해할 뻔했다.진숙희는 신예린 쪽으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예린아, 괜찮겠니? 걱정하지 마. 요금은 내가 다 낼게. 요즘 병원 앞에선 택시 잡기도 힘들더라. 지난번엔 십몇 분 넘게 기다렸어.”신예린은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주시우를 바라봤다.그러자 주시우는 아주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손님께서 결정하세요.”오랜 이웃이기도 해서 결국 신예린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진숙희는 신이 난 듯 뒷좌석에 올라탔다.벤츠라는 차를 직접 타본 게 처음이라 차 안에 앉자마자 진숙희는 시트 가죽을 이리저리 만져보면서 연신 감탄했다.얼마 전 아들이 차를 사려고 여러 모델을 알아봤던 기억이 떠오른 듯했다.‘이 차는 정말 멋지네. 이참에 아들한테도 이 차를 추천해 봐야지.’하지만 아들은 벤츠는 수입차라 엄두도 못 낸다며 웃었던 게 떠올랐다. 진숙희는 이렇게라도 벤츠를 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예린아, 네 덕에 이런 좋은 차도 타보고 정말 복 받았어!”진숙희는 휴대폰을 꺼내 인증샷까지 찍으며 신이 났다.“이따 아들한테 자랑해야지.”신예린은 민망해서 낮은 목소리로 웃으며 대답했다.“아, 아닙니다...”“이렇게 비싼 차 부르면 요금도 평소보다 훨씬 더 나오겠지?”“뭐... 거의 다 비슷해요.”신예린은 어쩔 수 없이 얼버무렸다.“아유, 정말 좋네.”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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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화

진숙희는 별다른 말도 없이 바로 5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신예린 손에 쥐여주더니 단숨에 차에서 내려버렸다.신예린은 허둥지둥 돈을 몇 번이나 접어서 창문을 열고 길가에 내던졌다.“아주머니, 돈 여기 떨어뜨렸어요!”말을 끝내자마자 재빨리 창문을 닫고 옆자리의 주시우 팔을 붙잡으며 다급하게 말했다.“빨리 출발해요. 얼른요!”주시우는 그런 예린의 모습을 재밌다는 듯 바라보다가 시동을 걸었다.차가 먼지를 일으키며 떠나가는 모습을 보며 진숙희는 바닥에 떨어진 돈을 주워 들고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참... 이 계집애는...”그녀는 돈을 주머니에 넣고 몇 걸음 걷다 말고 갑자기 이마를 쳤다.‘그러고 보니 내가 집 주소를 알려준 적이 없는데 기사님은 어떻게 한 번에 데려다준 거지? 혹시 저 젊은이는 얼굴도 잘생긴 데다 뭔가 특별한 능력이라도 있는 건가?’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아파트 입구로 들어서는데 마침 위층에서 내려오는 임정희의 모습이 보였다.“어머, 정희 씨 어디 가세요?”진숙희가 묻자 임정희는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우리 민호가 갑자기 생선을 먹고 싶대서요. 고등학생이니 영양 보충 좀 시켜주려고 시장에 가는 길이에요.”진숙희는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신예린이 떠올랐다.동네 사람들이라 서로 집안 사정도 대충 아는 사이였지만 임정희 부부는 딸보단 아들에게 훨씬 더 신경을 쓰기로 소문나 있었다.아들은 뭐든 다 해주고 딸은 늘 뒷전이었다.신예린이 고등학생 때도 집에서 기숙사 생활하라고 했던 게 생각났다. 공부에 집중하라는 핑계였지만 아들에게는 늘 먹을 것도 신경 써주고 등하교도 챙겨주지만 딸에게는 아무런 배려도 없었다.신예린은 그 시절 영양도 못 챙기고 스트레스까지 겹쳐서 뼈만 앙상하게 남았던 기억이 스쳤다.진숙희는 살짝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일부러 말을 꺼냈다.“제가 오늘 병원에 약 타러 갔는데... 누굴 만났는지 알아요?”“누구를요?”임정희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예린이 봤어요. 감기 걸려서 병원 왔더라고요.”그러자 임정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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