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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화

집에 도착하자마자 주시우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고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네, 제가 예전에 그런 문제들에 대해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내용은 교재에 실리면 안 되죠. 개정 작업에 저를 참여시키신 이상, 저도 책임을 져야죠... 네, 자료를 보내주시면 확인해 보겠습니다.”전화를 끊고 나니 신예린이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무슨 일이에요? 교수님도 교재 개정에 참여한 거예요?”신예린은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응, 얼마 전에 맡게 됐어.”주시우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모습에 신예린은 저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 그녀가 만약 교재 개정에 참여하게 되면 자랑하려고 SNS에 피드를 여러 개나 올렸을 것이다. 그런데 주시우는 이런 일에 익숙한 듯 별 침착한 모습이었다.신예린은 문득 궁금해졌다.“그럼 나중에 시험 문제도 내게 되는 거예요?”“아마도 그럴걸?”주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그 말에 신예린은 바로 아부하는 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고 주시우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바로 눈치챘다. 그래서 그는 자세를 고쳐 잡고 정색하며 말했다.“가르치는 일에서 난 항상 공과 사를 철저하게 구분해.”그러자 신예린의 얼굴이 굳어졌고 주시우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덧붙였다.“오히려 네가 내 아내니까 더 엄격하게 대할 수도 있어. 그동안 내가 너한테 과외해 준 것도 한두 번이 아니잖아.”신예린은 더는 웃을 수가 없었다.“아니, 공과 사를 구분한다면서요!”그러자 주시우는 웃으며 말했다.“그래서 더 열심히 가르쳐주는 거잖아. 그건 너만 받을 수 있는 특혜야.”‘이게 무슨 특혜야...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애초에 결혼 안 했어.’신예린의 찡그린 표정을 보며 주시우는 피식 웃었다.“넌 얼른 들어가 쉬어. 난 일 좀 더 하고 갈게.”그 말에 신예린은 표정을 살짝 풀며 머뭇거리다가 물었다.“교수님, 안 피곤하세요?”그는 어젯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잤다.“난 괜찮아.”“그럼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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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내가 방금 그렇게 길게 얘기했는데 대답이 고작 그거야? 내가 뭐랬어? 무슨 일 있으면 우리한테 말하라고 했잖아.”그 순간 신예린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엄마, 저를 신경 쓰긴 하세요?”뜬금없는 말에 임정희는 미간을 찌푸렸다.“뭐라고?”신예린의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아니에요.”“너 공부 잘하면 뭐 하니. 말도 똑바로 못 하는데.”신예린은 더 이상 말싸움을 할 기력도 없었다.“공부해야 하니까 전화 끊을게요.”“알았어.”임정희는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 다시 입을 열었다.“요즘 독감이 유행한대. 그러니까 이번 주말은 그냥 학교에 있어. 괜히 집에 와서 네 동생한테 옮기지 말고.”그 말에 순간 신예린은 귀가 멍해졌고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나서야 간신히 정신을 붙잡았다.“알겠어요.”전화를 끊은 후 그녀는 휴대폰을 바닥에 집어 던지고 싶은 충동이 치밀었고 아무리 감정을 누르려고 애써도 짜증이 속에서 꾸역꾸역 올라왔다. 결국 신예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서재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해는 이미 저물어 있었고 거실은 어스레한 어둠에 잠겨 있었는데 창밖에서 들어오는 미약한 빛만이 실내를 은은하게 밝혀주고 있었다.불이 꺼져 있는 걸 보고 그녀는 주시우가 집에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거실 카펫 위에 앉아 있는 사람의 실루엣이 보이는 순간, 신예린의 걸음이 절로 조심스러워졌다.주시우는 자고 있는 듯했고 창밖의 희미한 빛에 기대어 그는 머리를 한쪽 손으로 괸 채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어두운 실내 속 그의 이목구비는 희미한 빛에 따라 명암을 달리하며 드러났고 콧대 위엔 지난번에 봤던 얇은 안경이 걸려 있었다. 그가 조용히 앉아 있는 모습은 왠지 지적인 분위기를 더했고 짙은 어스름과 어우러진 그의 실루엣은 마치 그리스 조각상처럼 완벽하게 아름다웠다.그 모습을 보는 순간, 신예린의 감정은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그녀는 조심스레 다가가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고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이렇게 마음 놓고 가까이서 그를 바라볼 수 있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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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화

심장이 빠르게 뛰는 건 주시우도 마찬가지였다.신예린의 몸이 바짝 밀착돼 그녀의 부드러운 피부가 고스란히 느껴졌고 흩어진 머리카락이 그의 턱을 간질이자 마음까지 덩달아 요동치기 시작했다.둘 사이에 어색하면서도 아슬아슬한 기류가 흐르는 가운데 잠시 정적이 흘렀고 주시우는 천천히 침을 삼키며 안에서 치솟는 열기를 꾹 눌러 참은 뒤, 조심스럽게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괜찮아?”그의 목소리는 여느 때처럼 담담했고 방금까지 허둥대던 신예린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이었다.“괘, 괜찮아요.”신예린은 최대한 태연한 척하며 자세를 바로잡았고 마음은 아직 진정되지 않았지만 수상하게 보일까 봐 어설픈 변명까지 덧붙였다.“전 그냥 궁금해서...”“혹시 내가 과로로 쓰러진 줄 알았어?”“...”신예린은 차마 그런 말을 입에 올릴 수도 없었는데 주시우가 너무나도 직설적으로 말하는 바람에 정곡을 제대로 찔린 기분이었다. 볼이 발그레해진 그녀는 난감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그 순간, 주시우가 천천히 안경을 벗어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밖은 이미 어둑어둑해졌고 그의 얼굴도 희미하게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 덕에 목소리는 오히려 더 또렷하게 들렸다.“내가 너보단 나이가 많긴 해도 밤샘 한 번 했다고 그렇게 쉽게 쓰러지진 않아.”그러자 신예린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요즘엔 젊은 사람들도 자주 아프잖아요...”그 말에 주시우가 피식 웃었다.“맞아, 틀린 말은 아니야. 그래도 나는 몸 관리를 꽤 잘하는 편이야. 앞으로 천천히 알게 될 거야.”‘뭐야, 저 말은 무슨 뜻이지?’신예린은 자기도 모르게 딴 생각을 해버렸다. 그나마 지금이 밤이라 정말 다행이지, 대낮이었다면 분명 얼굴이 새빨개진 걸 들켰을 것이다.그때 누군가가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고 주시우는 그녀 곁을 스치듯 지나갔다. 곧 불이 켜지면서 거실이 환해졌고 신예린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홱 돌렸다.혹시 얼굴이 빨개진 걸 들킬까 봐 그녀는 조마조마했지만 다행히 주시우는 아무렇지 않은 듯했고 시계를 힐끗 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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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좌담회를 며칠 동안 하나요?”“한 3, 4일쯤 할걸요.”주시우가 잠시 고민하는 듯해 보이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오인화가 말했다.“뭔가 걸리는 게 있으면 지금 말해도 돼요.”“그런 건 아닙니다.”주시우는 짧게 고민한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학교에서 정한 일정이니까 따를게요.”그는 교무처에서 나온 뒤 잠시 생각하더니 휴대폰을 꺼내 소지훈에게 전화를 걸어서 간단히 상황을 전달하고 다시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갔다.신예린은 주시우가 출장 간다는 사실을 저녁을 먹던 중에 들었다.“교수님, 출장 가세요?”닭고기를 베어 물던 신예린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녀의 손에 양념이 잔뜩 묻어 있는 것을 보고 주시우는 자연스럽게 휴지를 건네주었다.“응. 오늘 교무처장님한테서 들었는데 한 3, 4일 정도 다녀올 거 같아.”“아...”신예린은 닭고기를 오물거리며 씹었다.‘3, 4일이나 교수님을 못 본다니...’그녀는 아쉬워서 괜히 입안에 있던 고기가 더 뻑뻑하게 느껴졌다.“너 혼자 있으면 불편할 거 같아서 오늘 내가 지훈이한테 연락해서 부탁했어. 내가 없는 동안에 지훈이가 너한테 사람을 붙여서 등하교하는 걸 도와줄 거고 식사는 아파트 아래 식당에 미리 말해서 며칠 동안 네 끼니도 거기서 챙길 수 있게 해놨어.”주시우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자 신예린은 눈이 휘둥그레져 있었다.“왜 그래?”주시우는 미간을 살짝 좁히며 물었다.신예린이 손을 내밀었다.“교수님, 이게 뭔지 아세요?”“손이잖아.”주시우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대답했다.“맞아요, 저 손도 있고 발도 있어요. 집에서 학교까지 멀지도 않고 버스 타면 금방 가요. 버스를 놓치면 택시도 탈 수 있고요. 그리고 밥은요, 저 요리할 줄 아는 거 교수님도 아시잖아요?”“내가 제일 걱정했던 건 요리하면서 나는 기름 냄새야. 내가 없으면 네가 끼니를 대충 때울 수도 있으니까 그런 것도 좀 걱정됐고.”신예린은 솔직히 주시우가 조금 오버스럽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정성을 알기에 더 이상 말하지 않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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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신예린은 말을 꺼내 놓고 나서 혹시 주시우가 자신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처럼 느끼면 어쩌지 싶어서 괜히 불안해졌다.그런데 주시우가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네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어. 미안해. 앞으로는 고칠게.”그 말을 듣고 신예린은 순간 얼이 빠져 그를 멍하니 바라봤다.주시우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부드럽게 웃었다.“봐, 서로 터놓고 말하니까 좋잖아. 난 네가 어떻게 느끼는지 알게 됐고 너도 더 이상 억울해하지 않아도 되고.”그 말에 신예린의 마음이 살짝 뭉클해졌다.그녀는 자신의 변화에 놀랐다. 예전 같았으면 절대 이런 말을 못 꺼냈을 것이고 남이 정해준 대로 말없이 따라갔을 것이다. 그동안 아무도 그녀의 생각엔 관심을 주지 않았고 그래서 그녀는 말할 기회조차 없었다.하지만 주시우는 달랐는데 그는 오히려 그녀에게 말하라고 등 떠밀어주고 심지어 사과까지 해준다. 신예린은 이런 상황을 상상도 못 해봤다.그 사이 주시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 위 그릇들을 정리했다. 신예린이 여전히 멍하니 앉아 있자 그가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아가씨, 혹시 저와 함께 설거지해 주시겠습니까?”‘그냥 같이 설거지하자는 말인데 무슨 무도회에 함께 가자고 초대하는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건 또 뭐람.’신예린은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좋아요!”잠시 후, 주방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고 두 사람은 나란히 싱크대 앞에 서 있었다. 주시우는 세제를 묻혀 닦은 접시를 옆 칸에 옮기고 신예린은 그걸 받아서 깨끗이 헹궜는데 물방울이 많이 튀었지만 그 와중에도 호흡은 척척 잘 맞았다.말끔하게 닦인 접시들이 옆에 쌓여 갔고 싱크대는 깨끗하게 반짝였으며 그냥 일상적인 풍경인데 이상하리만치 따뜻하고 정겨웠다....출장 일정은 금방 다가왔고 주시우가 출발하는 시간에 신예린은 수업이 있어 공항에 같이 갈 수 없었다.저녁에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텅 빈 집에 혼자 남게 되었고 그러다 냉장고 위에 붙은 메모판을 발견했다. 처음 보는 물건인데 아마 주시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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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그렇게 잘생긴 남편을 왜 자꾸 숨기고 그래? 나였으면 하루에도 열두 번은 데리고 나가서 한 바퀴 돌고 오겠다!”‘교수님이 무슨 애완동물도 아니고 왜 데리고 나가서 한 바퀴 돌아!”신예린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네가 그랬잖아. 학교 사람들이 우리 결혼한 거 알면 나 맞아 죽는다고.”그러자 송지유는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그 얘긴 됐고, 내가 방금 들은 따끈따끈한 소문 하나 알려줄게.”“뭔데?”신예린은 귀를 쫑긋 세웠다.“여도준이랑 강효은이 요즘 맨날 싸운대. 얼마 전엔 친구들이 있는 자리에서 강효은이 여도준한테 헤어지자고 했는데 여도준이 급하게 달래서 겨우 붙잡았대.”사실 신예린도 여도준을 꽤 오래 못 봤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그녀와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이었다.“참 웃긴 게 강효은이 저번에 우리를 50일 기념 파티 초대했었잖아? 그런데 지금 두 사람 꼴 보면 100일도 못 갈 것 같아. 역시 연애할 때 일부러 티 내면 안 돼. 걔네를 보니까 연애는 조용하게 해야 한다는 걸 배웠어.”송지유는 말할 때 깨고소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그녀가 보기에 신예린은 완벽한 여자인데 그런 신예린을 두고 여도준이 다른 여자 만난 것도 어이없었고 맨날 잘난 척하는 강효은은 더더욱 마음에 안 들었다. 그래서 송지유는 그 둘이 잘되는 꼴을 절대 못 봤다.“그래서 나랑 교수님도 좀 더 조심해야 해.”신예린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휴대폰이 진동했고 화면을 보자 웬일로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신예린은 아버지와 마주 앉아 대화 나눈 기억도 별로 없는데 갑자기 전화가 걸려오니 의아했다.“네 아빠가 웬일로 너한테 전화했대?”송지유도 휴대폰 화면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몰라...”신예린은 멍해 있었고 송지유는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딱 봐도 좋은 일은 아니네.”휴대폰이 계속 진동하자 신예린은 전화를 받았다.“아빠, 무슨 일이세요?”수화기 너머로 신경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예린아,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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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저희 아들 일은 저희한테 말하면 되지, 쟤가 뭘 안다고 그래요.”임정희가 곁에서 불쾌한 듯 말했다.그러자 의사는 더 이상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몇 마디만 툭툭 던지고 병실을 나가버렸다.임정희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저 사람 태도가 왜 저래? 도대체 언제 우리 민호한테 수술해 주겠다는 거야?”그녀가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기세를 보이자 신예린이 미간을 찌푸리며 막아섰다.“엄마, 아까 의사 선생님이 뭐랬는지 못 들었어요? 부기 빠져야 수술 가능하다고 했잖아요. 수술 날짜는 부기가 빠지는 상태를 보고 정할 거예요. 이 병원이 미덥지 않으면 그냥 다른 병원으로 옮기면 되죠.”그 말을 들은 임정희는 신예린을 노려보며 쏘아붙였다.“병원을 옮기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인 줄 알아? 네 동생이 다리를 다쳤는데 자꾸 옮겨 다니면 더 아플 거 아니야.”“그럼 그냥 병원에서 말한 대로 기다려요. 괜히 의사 선생님의 심기를 건드렸다가는 민호한테 성의 없게 대할 수도 있어요.”그 말에 임정희는 금세 입을 닫았다.그때 침대에 누워 있던 신민호가 신음하며 몸을 뒤척였다.“아, 아파...”그러자 임정희는 기겁하듯 신민호 쪽으로 달려갔다.“민호야, 많이 아파? 아까 진통제 맞았는데 왜 아직도 효과가 없어? 저 약이 소용이 없는 거 아냐?”그러곤 고개를 홱 돌려 신경무를 향해 소리쳤다.“민호 아빠, 뭐 해요? 얼른 의사 불러오지 않고!”신경무가 급히 밖으로 나가려 하자 신예린은 답답해서 관자놀이가 욱신거렸다. 그녀는 속으로 나중에 자신이 의사가 돼서 이런 보호자들을 만나면 답답해 미칠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진통제도 만능은 아니에요. 약효 나올 때까지 시간이 좀 걸려요. 의사 선생님을 불러도 기다리는 건 매한가지라고요.”하지만 신경무는 냉랭한 얼굴로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말이 쉽지, 네 동생이 저렇게 심각하게 다쳤는데 넌 왜 그렇게 태평하냐? 내가 전화한 지 얼마나 됐는데 이제야 병원에 나타나?”그러자 신예린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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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괜찮아. 나 경시대회에 나갈 거야.”신예린이 단호하게 말했다.“그런데 너 이번 일을 주 교수님한테는 말했어?”송지유가 조심스레 물었다.“이건 우리 집 일이니까 굳이 교수님께 말하고 싶지 않아. 교수님께서 돌아오실 땐 마침 휴가도 끝날 테니까 괜찮아.”신예린은 고개를 살짝 돌려 베란다 유리 너머로 병실 안을 바라보았는데 임정희가 신민호에게 밥을 먹이려 애쓰고 있었고 신민호는 다리가 부러진 뒤로 고집이 더 늘어선 밥을 먹기 싫다며 손을 휘젓고 소리치며 버티고 있었다.신예린은 주시우와 함께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에게 자신의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게 더 무서워졌다. 주시우와 비교하면 그녀는 진짜 가진 것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는데 집안 꼴까지 이렇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가 실망할까 봐 두려웠다.“어쨌든 너 몸 잘 챙겨. 너무 힘들게 하지 말고. 지금 넌 임산부잖아.”송지유가 걱정해 주자 신예린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알겠어.”그런데 신예린이 전화를 끊고 막 병실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주시우에게서 메시지가 왔다.[저녁은 뭐 먹었어?]짧은 한마디였지만 신예린은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적어도 한 사람은 그녀가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궁금해하니까 마음이 놓였다.[아직 안 먹었어요.][왜 아직도 안 먹었어?]신예린은 그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어 살짝 거짓말을 보탰다.[학교 일이 좀 늦게 끝났거든요.][그래도 밥은 제시간에 꼭 챙겨 먹어.]주시우가 바로 옆에서 다정하게 말해주는 것 같은 기분에 신예린은 고분고분 대답했다.[네.]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물었다.[언제 돌아와요?][7일에 돌아가.][알겠어요.][뭐 갖고 싶은 거 있어?][일하러 간 건데 선물을 살 시간이 있어요?][마침 같이 출장 온 분이 데리고 나와줘서 선물을 고를 시간이 돼.]신예린은 장난스럽게 메시지를 보냈다.[설마 관광객처럼 쇼핑센터 끌려다니는 건 아니죠?]잠시 후, 주시우는 진지하게 답장을 보냈다.[아니야.]그 답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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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화

임정희와 신민호는 신예린이 그런 말을 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지 순간 멍해졌다. 특히 임정희는 잠깐 얼어 있다가 이내 버럭 화를 냈다.“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민호는 네 동생이야!”“네. 제 동생이지, 조상님은 아니잖아요. 쟤가 삐지면 온 집안이 다 눈치 보면서 달래야 해요? 집에서 그러는 것도 문제지만 여긴 병원이잖아요. 이 병실에 민호만 있는 것도 아닌데 남 생각 좀 하면서 살면 안 돼요?”“입원하자마자 매일 소리 지르고 짜증 내고,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이에요? 다른 환자들의 보호자들이 아무 말도 안 한다고 괜찮은 게 아니에요. 민폐 좀 작작 끼치고 제발 사람 구실 좀 해요.”“너... 너 진짜!”임정희는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채 옆쪽을 흘끔 봤는데 진짜로 다들 싸늘한 눈빛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망신을 당한 기분에 곧바로 화살을 신예린에게 돌렸다.“신예린,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알기나 해?”“알고 있어요. 엄마의 아들을 얘기하고 있잖아요.”신예린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려는 신민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내려오고 싶으면 내려와. 진짜 깡 있으면 그렇게 하라고. 그럼 내가 휠체어라도 밀어줄게. 하지만 못 할 거면 얌전히 누워 있어. 다른 사람한테 영향 주지 말고.”신민호는 자신이 휠체어 타는 모습이 떠올랐는지, 입술이 살짝 떨렸고 임정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엄마, 누나 좀 봐봐요.”신민호는 어릴 때부터 그랬다. 자신이 사고 쳐도 무조건 누나 탓을 했고 그러면 부모님은 사정 안 보고 무작정 신예린만 혼냈다.임정희도 분에 찬 표정으로 소리쳤다.“너는 입 좀 다물고 있어! 동생이 다리가 저 지경이 됐는데 어떻게 그딴 말이 나와? 민호가 속 안 상하겠어?”“알겠어요. 제가 나가면 되잖아요.”신예린은 말하자마자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어딜 가! 너 지금 네 동생 간호하러 온 거잖아!”입만 열면 ‘네 동생’이라고 하는 부모님 때문에 신예린은 못 참겠다는 듯이 말했다.“밥 먹으러 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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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솔직히 최종국은 다른 꿍꿍이가 있었다. 곧 여자 친구의 생일이 다가오는데 뭘 선물해야 할지 전혀 감이 안 잡혀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출장하러 와 있던 주시우가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그는 주시우가 잘생겼고 말투도 다정하고 학벌이니 능력이니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사람이라 분명히 연애 경험도 많을 테고 여자 친구에게 어떤 선물이 먹히는지 잘 알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래, 이런 건 경험자한테 조언받는 게 낫지.’최종국은 은근히 기대를 품고 주시우에게 다가갔다.“저... 주 교수님, 혹시 오늘 시간 괜찮으세요?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요.”“네, 말씀하세요.”주시우는 평소처럼 부드럽게 대답했다.“다름이 아니라 곧 제 여자 친구 생일이거든요. 혹시 뭘 선물하면 좋을지 조언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그 말에 주시우가 약간 놀란 눈치였는데 표정만 보면 딱 이런 느낌이었다.‘아니, 왜 그걸 나한테 물어보지?’“왜, 왜 그러세요?”최종국이 눈치를 보며 물었다.“왜 저한테 그런 걸 물으시는지...”“아, 그게... 주 교수님은 저보다 경험도 더 많아 보이시고 여자들이 뭘 좋아하는지도 잘 아실 것 같아서요.”그러자 주시우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글쎄요, 저는 여자한테 뭘 선물해 본 적이 없어서요.”“네? 진짜요?”이번엔 최종국이 놀랐다.‘아니, 이 비주얼에 이 스펙이면 여자가 줄을 서야 정상 아닌가? 아... 혹시 반대인가? 주 교수님은 선물하는 것보다 선물 받는 경우가 많겠네.’괜히 자격지심이 생긴 최종국은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그럼 괜찮습니다. 저 혼자 골라보죠, 뭐. 하하.”그렇게 둘이 걷다가 액세서리 가판대를 지나게 됐고 최종국이 말했다.“여자들은 이런 액세서리 좋아하잖아요. 한번 구경해 보죠.”조명 아래 반짝이는 팔찌와 목걸이들이 예쁘게 진열돼 있었고 최종국은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한숨을 쉬었다.“이 중에서 뭐가 좋을까...”그때 옆에 있던 점원이 말을 걸었다.“여자 친구한테 선물하시려고요? 요즘은 다들 팔찌를 좋아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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