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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돌이킬 수 없는: Chapter 71 - Chapter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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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화

옥기봉은 악에 받친 얼굴로 강시연을 노려보며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쳤다.“이년아, 두고 보자.”강시연은 그의 위협을 무시한 채 조용히 숨을 내쉬고 경호원들에게 고개를 숙였다.“정말 감사합니다. 두 분 덕분에 살았어요. 제가 나중에 꼭 한잔 대접하고 싶어요.”그러나 경호원들은 무표정하게 고개를 저었고 그들은 여전히 문 앞을 지킨 채 움직이지 않았다.강시연은 머리를 굴리며 대책을 고민하고 있었지만 경호원들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떠나야 했다.상대방의 경계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그녀는 떠나는 척했지만 실제로는 아래층에 머물며 위층의 상황을 지켜보았다.시간이 한참 흐른 뒤 룸 문이 열렸다.정황민은 젊은 여성과 함께 나왔고 두 사람은 매우 다정한 분위기를 풍겼다.강시연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재빨리 일어나 조심스럽게 그들의 뒤를 따르려 했다.그들은 바를 나섰고 택시나 차를 타지 않고 어두운 골목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강시연은 골목길 입구에 서서 눈빛에 망설임을 띠고 있었다. 그녀가 따라갈지 고민하던 그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흥. 이제 어디로 도망칠 수 있나 보자.”강시연이 고개를 돌리자 술에 취한 옥기봉이 그녀 앞에 서서 음흉하게 웃고 있었다.그가 성큼성큼 다가오자 강시연은 온몸이 긴장했고 눈빛은 차갑게 날이 섰다.“한 발짝만 더 다가오면 경찰 부를 거야.”그녀는 침착하게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지만 옥기봉은 으쓱 웃으며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네가 먼저 전화를 거는지 내 손이 빠른지 한 번 내기해 볼래?”강시연은 한 발짝씩 뒤로 물러났다. 어느새 그녀는 어둡고 좁은 골목 안으로 들어서 있었다.정황민과 여인의 모습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옥기봉은 취기가 오른 채 계속 다가오며 말했다.“이쁘장하게 생겼네. 순순히 따르기만 하면 나쁘지 않을걸?”그는 강시연을 위아래로 훑더니 비열하게 턱을 쳐들었다.“신흥 제약 알아? 내 아버지가 그 회사 고위 임원이야. 나를 따르면 앞으로 잘 해줄게.”강시연은 여전히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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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옥기봉이 중얼거리다 쓰러지자 강시연은 재빨리 구급차를 불렀다. 동시에 진수혁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괜찮아요? 어디 다친 데는 없어요?”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든 오늘 그는 자신을 위해 나섰고 그녀는 더 이상 그를 차갑게 대할 수 없었다.진수혁은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굳은 표정을 보고 진지하게 말했다.“오늘 무슨 일이야? 왜 혼자 이렇게 위험한 곳에 왔어?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그래? 도연이는 어쩌고?”평소보다 훨씬 많은 말을 쏟아내는 그의 분노는 극에 달해 있었다.“나는...”강시연은 입을 열었지만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고 골목길은 갑자기 고요해졌다.진수혁은 그녀의 당황한 모습을 보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낮췄다.“도움이 필요하면 나한테 말해.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지 마. 나한테 보상할 기회를 준다고 생각해.”강시연은 고개를 들어 그의 깊고 꿰뚫어 보는 눈을 마주했다. 그의 눈에는 진심과 기대가 가득했다.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강씨 가문이 과거 누명을 썼을 가능성부터 최근 벌어진 일들까지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진수혁은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강성 그룹의 몰락이 너무 빨랐고 돌이켜보면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알았어. 내가 믿을 만한 사람을 시켜서 도희성을 조사해볼게.”강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 한켠에 묵직하던 짐이 내려가는 듯했다.서아름이 혼자 힘쓰고 있고 여기에 진수혁의 도움이 더해진다면 과거 사건의 진실도 곧 밝혀질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고마워요.”그녀가 진수혁에게 감사를 전하자 1년 만에 두 사람은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진수혁은 눈빛을 깊게 하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우리 사이에 감사할 필요 없어.”이어 하늘을 올려다보며 진지한 목소리로 덧붙였다.“혼자 있으면 위험하니까 내가 데려다줄게.”강시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거절하지 않았다....밤은 깊어졌다.강시연은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오늘 있었던 일들을 곱씹으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주이정 씨는 이 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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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화

진수혁의 표정이 즉시 엄숙해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차 안에서 이야기하자.”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차 안에는 묵직한 긴장감이 흘렀다.강시연은 초조한 눈빛으로 진수혁을 바라보았고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내 사람들이 조사한 결과 도희성에게 확실히 문제가 있어.”그는 잠시 말을 멈춘 뒤 무거운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강성 제약이 그렇게 빨리 무너진 건 단순한 실수나 외부 공격 때문이 아니었어. 누군가 내부 정보를 조작해서 언론에 넘겼고 그것 때문에 여론과 주가가 동시에 무너졌어.”그가 고개를 돌려 강시연을 바라보며 덧붙였다.“그 정보 제공자 바로 도희성이야. 게다가 그는 이후 강성 제약의 핵심 기술 일부를 빼내 성남 제약으로 옮겼어.”강시연의 동공이 살짝 흔들렸고 무릎 위에 올려놓았던 두 손은 어느새 주먹을 꼭 쥐고 있었다.마음속 깊은 곳에서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지만 직접 들은 순간의 충격은 쉽게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도희성이 왜 그렇게 했을까요? 강성이 그 사람에게 얼마나 잘해줬는데...”강시연은 몸을 떨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 진수혁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다 가슴이 저리게 아팠고 깊은 자책감이 밀려왔다.결혼 생활이 오래 지속되었음에도 진수혁은 그동안 강시연의 일에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였더라면 진실을 훨씬 일찍 밝혀낼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제는 많은 단서들이 이미 사라진 뒤였다.강시연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천천히 내쉬며 감정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진수혁을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고마워요. 이 정보는 저에게 정말 중요해요.”도희성이 교환된 약품에 직접 관여했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강씨 가문을 무너뜨린 사건에 그가 깊이 연루되어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진수혁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강시연의 얼굴에는 피로가 역력했고 가문 문제로 고군분투하느라 지쳐 있는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그는 순간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그녀를 꼭 안아주고 싶었다. 그러나 혹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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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강시연은 적절한 타이밍을 포착해 도희성이 열쇠를 꺼내 문을 열기 직전 그 앞을 막아섰다.“도 부장님, 오랜만입니다.”도희성은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강시연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그의 표정에 명백한 당황스러움이 스쳤다.“당신...누구시죠?”그는 침착한 척했지만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강시연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기억 못 하시겠어요? 예전에 회사에서 자주 뵀잖아요. 강원천 회장님이 제 아버지세요.”그제야 도희성의 얼굴에 불안한 인식이 떠올랐고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네. 강시연 씨. 오랜만입니다. 여기까지 무슨 일로?”“그냥 우연히 지나가다가 뵌 것뿐이에요. 얼굴이 익숙해서요.”도희성은 안도의 숨을 내쉬는 듯했지만 곧 이어진 강시연의 질문에 다시 긴장감이 스며들었다.“요즘 어떻게 지내세요?”그녀는 시선을 살짝 돌려 눈앞의 고급 별장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았다.“강성을 떠난 후 꽤 성공하신 것 같네요?”도희성은 입가에 억지웃음을 띤 채 말했다.“그저 운이 좀 좋았을 뿐입니다.”“그렇군요.”강시연은 한 박자 쉬고 다시 물었다.“지금은 어디서 근무하세요?”“신흥 제약이라는 작은 회사에서요. 이름도 별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예전의 강성과는 비교할 수도 없죠.”그는 말을 마치며 이마를 스치듯 닦았다.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강시연의 차분한 말투와 단정한 표정은 그에게 묘한 압박감을 주었다. 마치 숨겨둔 진실이 모두 드러날 것만 같았다.도희성은 한 걸음 물러나며 말을 이었다.“죄송하지만 지금 집안에 일이 좀 있어서요. 다음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그는 말을 마치고 급히 문을 열고 안으로 사라졌다.“쿵.”문이 닫히는 소리만이 조용한 저녁 공기를 가르고 울렸다.강시연은 그대로 한참을 서 있었다. 고개를 숙인 그녀의 눈빛은 복잡하게 흔들리고 있었고 입가에는 어떤 감정도 담기지 않은 침묵만이 맴돌았다.차가운 바람이 그녀의 볼을 스쳤다.강시연은 귀 옆으로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조용히 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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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강시연은 방 안을 서성이며 점점 조급해졌다.애초에는 도희성에게 접근해 약점을 파악하려 했지만 주이정의 말이 그녀의 속도를 재촉했다.강시연은 다음 날 다시 도희성을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더는 머뭇댈 수 없었다. 방법을 찾아 그의 입에서 반드시 무언가를 끌어내야 했다.‘예를 들면... 최면을 걸어서라도.’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며 차가운 얼굴에 날카로운 기운을 더했다. 심리 의사라는 자신의 직업을 잊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다음 날 강시연은 진료소로 돌아와 최면에 필요한 도구들을 챙기기 시작했다.물건을 정리하고 돌아서려던 순간 문 앞에서 발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든 그녀의 눈앞에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강 선생님, 또 진료받으러 왔습니다.”전재혁이 손을 비비며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강시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오늘은 좀 바빠서요. 다음에 오시죠.”하지만 전재혁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머리를 감싸 쥐더니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그런데... 강 선생님, 전 내일까지 기다릴 수 없을 것 같아요.”강시연은 눈을 가늘게 뜬 채 그를 바라보다 결국 한숨을 삼키며 책상에 다시 앉았다.속으로 중얼거렸다.‘의사는 곧 어버이 마음이라 했지. 잠깐이면 괜찮을 거야. 시간 괜찮을 거야.’그녀가 예상치 못한 건 이 치료가 거의 오후 내내 이어질 거라는 점이었다.전재혁은 한참 두통을 호소하더니 갑자기 미친 듯이 몸부림치며 책상 위에 있던 날카로운 가위를 움켜쥐었다.자신을 해치려는 그의 움직임에 강시연은 순간 숨을 삼켰다.그녀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가위는 내려놓을까요? 네?”전재혁은 고개를 격하게 저었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유독 그녀 앞에서 강한 방어심리를 드러냈다.강시연은 다른 방법이 없었다. 결국 주이정의 이름을 꺼냈다.“전재혁 씨, 주이정 씨... 좋아하지 않으셨어요? 지난번에 주이정 씨와 만났을 때 뭐라고 하셨는지 기억나세요?”그 말에 전재혁의 눈동자가 순간 움츠러들더니 그는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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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강시연은 잠시 멈칫하다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짙은 피비린내가 공기를 타고 밀려왔다.눈꺼풀이 파르르 떨렸고 가슴 한편에 스멀스멀 올라오던 불길한 예감은 점점 더 선명해졌다.그 순간, 거실 바닥에 엎드려 있던 도희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아랫배엔 과도가 깊게 꽂혀 있었고 시뻘건 피가 쉼 없이 울컥울컥 흘러나오고 있었다.두 눈은 크게 뜬 채 미동도 없었다. 숨이 끊어진 지 오래인 듯했다.‘죽은 건가?’강시연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머릿속은 새하얗게 비워졌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겨우겨우 찾아낸 단서를 바탕으로 이제 막 그에게서 무언가를 캐낼 참이었는데 이렇게 먼저 죽어버리다니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온몸이 서늘해졌다. 발끝에서부터 기어오른 한기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꺼내 경찰에 신고하려던 찰나, 문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경찰이다! 꼼짝 마!”강시연은 두 손을 번쩍 들었다. 현장에 있던 사람이 그녀뿐이었기에 당연히 경찰서로 연행되어 조사를 받게 되었다.소식을 들은 진수혁은 곧장 경찰서로 달려왔다.“시연아...”의자에 앉아 있던 그녀는 앙상해 보일 만큼 여위어 있었고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진수혁의 가슴은 찢어질 듯 아팠다.“괜찮아, 내가 있잖아.”그는 조심스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 살짝 떨리는 그녀의 몸에서 두려움이 느껴졌다. 진수혁은 조용히 그녀의 등을 다독이며 짙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곧이어 한정훈 역시 소식을 듣고 경찰서로 달려왔다.하지만 이미 한발 늦은 상태였다. 그가 도착했을 땐 진수혁이 이미 강시연을 품에 안고 다독이고 있었다. 한정훈은 말없이 잠자코 옆에 서서 그 장면을 지켜볼 뿐이었다.강시연은 조금씩 평정을 되찾았지만 두 다리는 여전히 후들거리는 걸 느꼈다. 그녀는 진수혁의 팔을 꼭 붙잡고서야 겨우 버틸 수 있었다.“주이정이 한 짓이에요.”그녀의 목소리는 갈라질 듯 잠겨 있었고 이를 악문 채 힘겹게 말을 이었다.전제혁이 시간을 끌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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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이제 가셔도 됩니다.”제복을 입은 경찰이 안으로 들어와 설명했다.“부검 결과, 도희성 씨는 두 시간 전에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당시 강시연 씨는 심리상담소에 계셨고 다수의 목격자가 있었기 때문에 범행 시각에 부재하셨다는 게 입증됐습니다.”그 시각, 그녀는 분명 진료 중이었다. 여러 사람과 함께 있었고 그녀가 그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는 건 명확했다. 그러니 살인은 불가능했다.아쉬운 점이 있다면 사건이 벌어진 아파트 단지의 CCTV가 하필 그때 고장이 났었고 범인은 현장에 어떠한 지문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수사는 계속 이어져야 했다.강시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한동안 긴장으로 굳어 있던 몸이 느슨해지자 다리에 힘이 풀리며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그 모습을 본 진수혁은 재빠르게 손을 뻗어 그녀를 부축했다.“괜찮아?”“네, 괜찮아요.”강시연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것은 처음이었다. 마음속을 짓누르던 긴장이 풀리자 남은 건 온몸을 덮치는 두려움뿐이었다.진수혁은 묘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더니 말없이 무릎을 굽혔다. 그러고는 그녀를 번쩍 들어 공주님 안기로 안아 올렸다. 그는 망설임 없이 밖으로 걸어 나갔다.짧게 비명을 지른 강시연은 숨을 삼키며 본능적으로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밖은 이미 어둠이 내렸고 매서운 바람이 거칠게 몰아쳤다. 차가운 밤공기가 옷 속까지 파고들었지만 그의 가슴은 묘하게 따뜻하고 든든했다.강시연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각진 턱선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죽은 듯 고요하던 마음속 호수에 잔잔한 물결이 일렁이기 시작했다.그녀를 집 앞까지 데려다준 진수혁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고 푹 자.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강성 그룹 일은 유태오한테 맡겨둘 테니까.”“고마워요.”강시연은 옷깃을 여미며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러고는 천천히 대문을 열고 별장 안으로 들어섰다.그녀의 가냘픈 뒷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진수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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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전재혁은 주이정만 언급되지 않으면 비교적 멀쩡한 사람이었다.강시연은 그런 그를 바라보다가 속으로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사실, 전재혁이 시간을 끌지 않았다 해도 그녀가 현장에 도착했을 즈음이면 도희성은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주이정 씨 지금 어딨는지 알아요? 만나서 할 얘기가 있어요.”강시연이 갑자기 물었다.전재혁은 잠시 망설이다 이를 악물고 말했다.“블루스카이 카페에 있을 거예요. 항상 그쪽에서 보자고 하더라고요.”강시연은 원하는 정보를 얻자 곧장 돌아섰다. 떠나기 전 그녀는 마지막으로 전재혁에게 조용히 충고를 남겼다.“그 사람한테 꼭두각시처럼 이용당하지 말아요. 본인 인생은 본인이 지켜야죠.”...강시연은 운이 좋았다. 카페에 도착하자마자 한쪽 구석에 앉아 있는 익숙한 뒷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강시연 씨, 오셨네요.”주이정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잔잔하게 웃었다. 마치 그녀가 올 것을 진작 알고 있었다는 듯한 여유였다.강시연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가 주위를 싸늘하게 만들었다.“왜 내가 그때 일을 조사하는 걸 막았죠? 죽은 사람은 당신 동생이에요. 진실이 궁금하지도 않으세요?”그건 강시연이 오래도록 이해하지 못했던 의문이었다.주이정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티스푼으로 커피를 천천히 저었다.“강시연 씨, 저는 막 해외에서 돌아온 참이라 그런 영향력을 행사할 여유가 없어요.”“그럼 도희성은...”강시연이 예고 없이 말을 꺼냈고 그 말은 곧 주이정에 의해 끊겼다.“도 부장님이요? 업무상 몇 번 연락한 적은 있어요. 그 외에는 아는 게 없네요.”“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아요?”강시연이 차갑게 웃었다.“그럼 전재혁 씨는 어떻게 된 거죠? 그분이 직접 말했어요, 당신 지시였다고.”주이정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진한 얼굴로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무슨 지시요? 전 그저 그 아이가 안쓰러워서 강시현 씨한테 진료 좀 제대로 받아보라고 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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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화

강시연은 가볍게 대답한 뒤 고개를 숙여 진도현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었다.진도현은 턱을 살짝 치켜들고는 새로 사귄 친구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말했다.“얘들아, 우리 엄마야.”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목소리가 운동장 가득 터져 나왔다.“너희 엄마 완전 예쁘다! 누나인 줄 알았어!”“나도 선녀 같은 엄마 있었으면 좋겠다!”아이들의 칭찬이 이어지자 진도현은 마치 자신이 칭찬을 받은 것처럼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어깨를 쫙 폈다. 강시연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그때였다. 멀리서 익숙한 작은 실루엣이 뛰어왔다.“강 선생님!”강시연이 고개를 숙이자 눈에 띈 건 양승재 일가였다. 여러 차례 진료를 받으며 이제는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된 양진우가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고 있었다.치료 과정에서 유독 강시연에게 의지하던 그였기에 그녀를 향한 신뢰와 애착이 남달랐다.박지연이 웃으며 말했다.“아까도 진우가 선생님 찾고 싶다고 하더라고요.”양진우는 고개를 마구 끄덕이며 외쳤다.“맞아요, 맞아요! 강 선생님을 위해 그림을 그렸어요!”“그랬구나. 나중에 꼭 보러 갈게.”강시연은 몸을 낮춰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미소를 눈가에 띠웠다.하지만 바로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진도현은 입을 삐죽였다.자기도 엄마한테 그림을 많이 그려줬는데 엄마는 한 번도 칭찬해 준 적이 없었다.그 순간부터 진도현은 양진우의 모습이 괜스레 미워 보이기 시작했다. 질투가 슬며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바로 그때, 담임선생님이 다가와 안내했다.“학부모 회의가 곧 시작됩니다. 아버님들은 안으로 들어가 착석해 주시고 아이들과 어머님들은 운동장에서 활동에 참여해 주세요.”진수혁은 강시연을 향해 미묘한 눈빛을 던지며 말했다. “그럼 먼저 들어갈게.”강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운동장엔 아이들과 엄마들만 남았다.그런데 갑자기 박지연이 배를 부여잡으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녀는 양진우를 강시연에게 부탁하며 말했다.“아침에 뭘 잘못 먹었나 봐요... 강 선생님, 진우 잠깐만 좀 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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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진도현은 축 처진 어깨로 말없이 걸었다. 어린 얼굴엔 복잡한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엄마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과, 심하은 이모가 서운해할까 봐 걱정되는 마음이 엉켜 속을 뒤흔들었다.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왜 다 함께 있어 줄 순 없는 걸까...’그때, 휘슬 소리가 울렸고 경기는 정식으로 시작되었다.강시연과 양진우는 놀랍도록 호흡이 잘 맞아 금세 사람들 틈을 뚫고 맨 앞줄까지 나아갔다.그 모습을 본 심하은은 문득 승부욕이 치밀어 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정작 옆에서 정신을 놓고 멍하니 걷고 있던 진도현을 완전히 잊고 말았다.“이모! 이모, 나 기다려줘요...”진도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파래졌다. 심하은을 향해 소리치려는 순간, 몸이 중심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작은 몸이 그대로 땅바닥에 철퍼덕 넘어졌다. 순간적으로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진도현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억울한 감정이 북받쳐 올랐고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현장은 금세 아수라장이 되었다.그제야 정신이 든 심하은이 황급히 달려와 진도현을 일으켜 세웠다. 무릎은 심하게 까져 살이 드러나 피가 맺혔고 보기에도 끔찍했다.“도현아, 미안해. 이모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말을 잇는 그녀의 눈가에도 눈물이 흘렀다.선생님은 곧장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을 불러 응급 처치를 받게 했다.하지만 진도현은 그 뒤로 경기에 참여할 수 없었고 옆에 앉아 다른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심하은은 조용히 흐느끼며 진도현에게 거듭 사과했다.진도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처음으로 심하은에 대한 불쾌한 감정이 올라왔다.만약 엄마가 옆에 있었다면 지금쯤 따뜻하게 안아주며 위로해 줬을 것이다.‘아니지, 애초에 엄마였다면 나를 다치게 두지 않았을 거야!’그 무렵, 강시연과 양진우는 골인 지점에 도착했고 단연 조 1위를 차지했다.진도현은 시상대 위에 선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중에서도 양진우의 해맑은 웃음은 유독 눈에 거슬렸다.진도현은 입술을 꾹 깨물고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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