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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돌이킬 수 없는: Chapter 61 - Chapter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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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화

문득 그림자가 드리워졌다.강시연이 고개를 들었을 때 옆에 진수혁이 서 있었고 그의 손에는 시든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진 대표님? 우연이네요. 식사하시러 오신 거예요?”한정훈이 먼저 입을 열며 침묵을 깼다.진수혁의 눈빛이 깊어지며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네. 창가 자리가 없더라고요. 여기 앉아도 괜찮을까요?”한정훈이 눈살을 찌푸리며 빈자리를 둘러보던 찰나 진수혁은 말없이 강시연 옆에 앉았다.유민재는 여자친구를 사귀려면 어느 정도 뻔뻔함은 필요하다고 말했다.진수혁은 메뉴판을 들고는 종업원에게 언성을 높였다.“스테이크 미디엄으로 하나 그리고 토마토 미트 소스 파스타 하나 주세요.”한정훈을 돌아보며 진수혁이 도발적인 말투로 말했다.“시연이는 이곳에 올 때마다 이 두 가지를 시켜요.”한정훈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그래요? 그럼 앞으로 기억해 둬야겠네요.”그 순간 한정훈의 눈빛이 깊어졌고 입가의 미소는 사라졌다. 두 사람은 마치 불꽃이 튀는 듯 서로를 응시했다.강시연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가끔은 다른 메뉴도 먹어봐야죠.”그 말에 한정훈은 웃음을 터뜨렸다.진수혁의 표정은 어두워졌지만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분위기는 점점 무거워졌다. 종업원들은 음식을 서빙하면서도 조용히 움직였고 한참 후에는 가슴을 쓸어내리는 듯했다.“여러분 제가 방금 7번 테이블에서 뭘 봤는지 아세요?”다른 직원들이 수군거리며 물었다.“뭐요?”종업원 중 한 명이 천천히 말했다.“남자 두 명이 여자 한 명을 두고 기싸움을 벌이고 있었어요.”“그 두 남자 모두 정말 잘생겼고 명품으로 치장한 부잣집 자제 같았어요. 여자도 정말 예뻤는데 인터넷에 나오는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보다 훨씬 예뻤어요.”“와.”직원 휴게실이 술렁였다.“그런 일은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줄 알았는데 현실에서도 일어나네요.”“제가 나중에 음식 서빙하러 갈 때 직접 가서 보고 올게요.”“저도 같이 갈래요.”...강시연은 식사 도중 불편함을 느꼈다. 주변의 시선이 느껴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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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화

“도현을 생각해서라도 한 번만 더 기회를 줄 수 있어?”진심 어린 그의 말에 강시연은 잠시 멈춰 섰다. 그의 진지한 눈을 바라보던 마음속에 파문이 일었다.그때 한정훈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럴 수 없을 것 같아요. 저와 시연 씨는 이미 사귀고 있으니까요.”강시연은 정신을 차리고 복잡한 시선을 거두며 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더 이상 진수혁의 말을 믿지 않았다.차 밖에서는 두 남자가 대치하고 있었다. 진수혁은 가로등 아래 서 있었고 얼굴 절반은 어둠에 가려져 표정을 알 수 없었지만 그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차가워졌다.“한정훈 씨, 제 말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신 듯하네요.”한정훈은 눈썹을 치켜올렸다.“다른 사람들은 진한 그룹을 두려워하지만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진수혁은 강시연 앞에서는 공격성을 감추었지만 한정훈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뜨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좋아요. 그럼 지켜보죠.”한정훈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차에 올라탔다. 운전사에게 말했다.“집으로 가세요.”차 안은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강시연이 어색하게 말을 꺼냈다.“죄송해요. 식사 분위기를 망쳤네요.”“괜찮아요. 다이어트한다고 생각하면 되죠.”한정훈은 웃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옆을 바라보며 은밀한 눈빛을 보냈다.“진수혁 씨가 꽤 진지하게 말했는데 만약 정말 변한다면 시연 씨는 돌아갈 생각도 있나요?”강시연은 잠시 놀랐다. 그런 가능성은 생각해 본 적 없었다.‘진수혁 씨가 정말 변할 수 있을까?’잠시 생각에 잠긴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모르겠어요. 저는 지금 심리상담소를 열고 싶을 뿐이에요.”“네.”한정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안도하는 듯했다.집에 돌아왔지만 거실은 어두웠고 한민주는 평소처럼 맞이하러 나오지 않았다.“민주야?”두 번 불러도 대답이 없자 강시연은 한민주의 정신 질환이 떠올라 불안감이 엄습했다.그녀는 한정훈과 함께 급히 위층으로 달려가 방문을 열었다.그곳에서 그들은 한민주를 발견했다.한민주는 구석에 웅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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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화

그 소식을 듣는 순간 한정훈의 동공이 좁아지며 머릿속에 한 인물이 떠올랐다.바로 육태하의 누나 주이정이였다.태하가 사고를 당한 후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해외로 떠났고 그 뒤로는 마치 세상에서 자취를 감춘 듯 단 한 번의 연락도 없었다.‘왜 하필 지금 갑자기 귀국한 거지?’한정훈은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느끼며 잠시 밖으로 나가 차가운 바람을 맞았다가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그가 깊은 생각에 잠긴 채 돌아오자 강시연은 그 표정을 민주의 상태 때문이라고 오해했다.“한정훈 씨, 민주의 상태가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어요. 너무 긴장하지 않으셔도 돼요.”한민주도 창백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오빠와 시연 언니 덕분에 요즘은 매일 즐겁게 지내고 있어.”하지만 한정훈의 미간은 여전히 깊게 찌푸려 있었다.민주의 병세가 이제 막 나아지고 있는 이 시점에 주이정과의 재회가 그녀에게 어떤 충격을 줄지 불안했다.“민주야.”그는 단호하게 말했다.“요즘은 가급적 집에만 있어야 해. 알겠지?”“왜?”한민주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한정훈은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의 단호함에 한민주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잠시 후 두 사람은 민주의 방을 나와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왔다.그들의 대화를 옆에서 들은 강시연은 점점 더 궁금해졌다.“방금 무슨 일 있었어요? 왜 민주한테 집에 있으라고 하신 거죠?”한정훈은 그녀를 바라보며 짧게 한숨을 쉬었다.“주이정 씨가 귀국했어요.”그 이름에 강시연의 눈이 놀람으로 커졌다.“육태하의 누나요?”한정훈은 고개를 끄덕였다.“시연 씨도 알고 있었군요.”강시연의 눈빛에 미묘한 긴장감이 더해졌다.“주이정 씨를 만날 수 있을까요?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한민주는 누군가 약을 바꿔치기해 육태하가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강씨 가문 또한 가짜 약 유통 문제에 연루되어 있었다.모든 진실이 안갯속에 가려진 채 시간이 흘렀지만 강시연은 그날의 진실만큼은 끝까지 밝혀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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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화

그녀는 어느 순간 모든 사람에게 버림받았고 그렇게 진수혁과 우연히 관계를 맺어 아이를 낳았다.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구명줄을 잡듯 강시연은 그를 자신의 구원으로 여겼고 수많은 생각에 잠긴 채 그녀는 겨우 잠이 들었다.다음 날 아침 병원에 도착한 강시연은 사무실 밖에서 전재혁이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어제보다 훨씬 활기찬 표정에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다.“무슨 일이에요?”강시연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전재혁의 눈에는 반짝이는 빛이 흘렀다.“주이정 선배가 귀국했어요. 어제 연락해서 만나자고 했어요.”강시연의 손길이 멈췄다.주이정의 귀국 소식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고 그녀가 다시 이용당할 위험이 있었다.“무슨 일로 만나자고 했어요?”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지만 전재혁는 고개를 저으며 여전히 미소를 지었다.“잘 모르겠어요. 선배가 예전에 남자 친구가 있었는데 귀국 전에 헤어진 것 같아요. 그동안 저는 선배의 기준에 맞추려고 노력했고...”그는 말을 멈추고 강시연을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강 선생님, 저와 선배 사이에 가능성이 있을까요?”강시연은 반짝이는 그의 눈을 바라보다 잠시 침묵했고 냉정한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다만...’그녀의 표정이 심각해졌다.“만약 강 선생님이 거절하거나 새로운 조건을 내놓으면 전재혁 씨는 예전처럼 행동할 건가요?”전재혁의 미소가 사라지고 어깨가 처졌다.“강 선생님, 저도 잘 알아요. 그저 포기하기 아쉬워서 한 번 더 시도하는 거예요. 안 되면 포기하고 당신 치료를 받겠습니다.”강시연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사람들은 때로 벽에 부딪혀야만 포기하는 법을 알게 된다.전재혁이 떠난 뒤 강시연은 계속 일을 이어갔고 몇 명의 환자를 진료한 후 어느덧 퇴근 시간이 다가왔다.밤이 찾아왔고 한정훈의 차가 건물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강시연은 연회에 어울리는 옷을 입고 가벼운 화장을 한 뒤 서둘러 문밖으로 나섰다. “죄송해요. 오래 기다리셨죠.”한정훈은 고개를 들었고 검은색 드레스를 입은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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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화

심하은은 익숙한 듯 진수혁의 팔에 팔짱을 끼고 있었다.용성에 도착한 이후로 진수혁이 심하은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화는 받지 않았고 얼굴 한번 보기도 어려웠다.이번 진한 그룹의 연회가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그녀는 입구에서 진수혁을 기다리다 어렵게 그를 찾아냈다.심하은의 목소리에 진수혁은 무심코 머리를 들어 쳐다보았다.하지만 강시연과 한정훈은 나란히 서 있었고 마치 오래된 연인처럼 자연스럽게 어울렸다.진수혁은 미간을 깊게 찌푸리며 천천히 두 사람을 향해 걸어갔다.“시연아, 왜 연락도 없이 왔어? 내가 데리러 갈 수 있었는데...”강시연이 대답하려는 찰나 한정훈이 먼저 나섰다.“시연 씨는 제 파트너입니다. 당연히 제가 데려왔죠.”그 순간 공기 중의 온도가 뚝 떨어진 듯한 정적이 흘렀다.강시연은 심하은을 향해 눈길을 돌리고 비꼬듯 말했다.“진 대표님, 당신 파트너는 저기 계시잖아요.”한때 자신을 무심하게 대하던 진수혁이 지금은 심하은과 함께 있는 모습을 마주하자 묘한 불편함이 몰려왔다.“나는...”진수혁은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급히 해명하려 했다.“심하은과는 우연히 만난 거야. 약속한 것도 아니고 그냥 마주쳤을 뿐이야.”하지만 강시연은 차가운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진수혁이 말을 이어가려던 순간 중년의 남성 몇 명이 다가왔다.그들은 모두 진한 그룹의 핵심 임원들이었고 예전부터 강시연을 알고 있었다.“진 대표님, 연회가 곧 시작됩니다. 주최자 자리로 오셔야죠.”한 남성이 예를 갖춰 말하며 슬쩍 강시연을 바라보았다.‘한씨 가문 후계자와 저렇게 가까워졌다고? 예전에는 진 대표님이 부인을 꽤 냉대했는데 이거 무슨 분위기지?’진수혁은 짧게 고개를 끄덕인 뒤 시선을 강시연에게 돌리며 말했다.“잠깐만 기다려줘. 설명할 시간을 줄 수 있어?”그는 그 말만 남긴 채 관계자들과 함께 연회장 안으로 사라졌다.강시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한편 진수혁은 자신이 아직 심하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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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화

강시연은 반가운 기색을 띠며 서둘러 다가가 고개를 끄덕였다.“주이정 씨,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요.”주이정은 놀란 기색 하나 없이 입술을 다문 채 잠시 강시연을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밖으로 나가죠. 이곳은 대화하기에 적절한 장소가 아니에요.”두 사람은 연회장을 빠져나와 작은 발코니로 향했다. 밤하늘은 깊어졌고 별빛이 조용히 반짝이고 있었다.잠시 침묵이 흐른 뒤 주이정이 먼저 입을 열었다.“강시연 씨와 훈이 혹시 사귀는 건가요?”‘훈이?’강시연은 순간 멈칫했다.한정훈을 그렇게 친근하게 부르는 주이정의 말투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주이정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그래요. 그럴 만하죠. 제가 갑작스레 떠난 뒤 훈이도 새로운 감정을 시작했을 테니까요.”강시연은 놀란 눈으로 주이정을 바라보았다.‘설마 주이정 씨가 한정훈 씨의 첫사랑이었나?’그러나 지금은 그런 감정에 휩싸일 때가 아니었다. 강시연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주이정 씨, 육태하 씨가 사고를 당한 이후 당신은 곧바로 해외로 떠났죠.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꼭 알고 싶어요.”주이정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그녀의 손가락이 몸 옆에서 미세하게 떨렸지만 표정은 여전히 차분했다.“그 일은 이미 끝난 일이에요. 태하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어요. 더는 말하고 싶지 않아요.”“하지만요.”강시연은 다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제가 알기로는 그가 의도적으로 죽임을 당했을 가능성도 있어요. 그걸 그냥 덮어둘 수는 없잖아요.”말이 끝나자 순간 발코니에 적막이 내려앉았다.주이정은 갑작스레 고개를 들고 강시연을 바라보았고 그 눈빛은 차갑고 날카롭게 바뀌어 있었다.“강시연 씨는 도대체 뭘 알고 있는 거죠?”강시연은 순간 당황해하며 고개를 저었다.주이정은 그녀를 잠시 응시하다가 다시 담담한 표정을 되찾고는 낮고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태하의 죽음은 제게 너무도 큰 상처였어요. 그 충격을 이겨내기 위해 몇 년간 해외에서 치유의 시간을 가졌죠. 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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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화

“시연 씨, 집까지 바래다드릴게요.”낮고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강시연은 주저 없이 한정훈에게 다가가 연회장을 나섰다.진수혁은 그 자리에 남아 얼굴이 굳어졌다.그 모습을 본 심하은은 기쁜 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수혁아, 바람이 많이 부니 택시 잡기 힘들 것 같아...”진수혁은 그녀를 흘끗 본 후 차분하게 말했다.“유태오에게 부탁해서 데려다주라고 할게.”그리고 그는 심하은을 남겨둔 채 서둘러 떠났다.한편 차 안에서는 부드러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한정훈은 강시연을 바라보며 그녀의 근심 어린 표정을 보고 물었다.“어떻게 됐어요? 주이정 씨를 만나지 못했나요?”“만났어요.” 강시연은 말을 망설이다가 천천히 말했다.“한정훈 씨, 예전에 주이정 씨와 사귀셨던 적 있으세요?”한정훈의 손길이 멈칫했고 그의 목소리는 약간 긴장한 듯했다.“네. 주이정 씨는 저의 첫사랑이었지만 이미 지난 일이에요.”강시연은 진실을 밝히고 싶어 입술을 깨물었다.“주이정 씨는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잠시 후 한정훈이 천천히 대답했다.“계산적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에요.”강시연은 입을 벌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왜요? 놀랐어요?”한정훈은 깊은 눈빛으로 진지하게 말했다.“주이정 씨는 위장을 잘했고 나중에야 이상함을 알아챘죠. 그런데 헤어지자는 말도 하기 전에 주이정 씨는 해외로 떠났어요.”강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정훈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주이정 씨가 해외로 떠난 후 우리는 연락이 끊겼어요. 주이정 씨가 며칠 전 문자를 보냈지만 저는 답장을 하지 않았어요. 제 휴대전화를 보여드릴게요.”강시연은 잠시 놀란 후 미소를 지었다."한정훈 씨, 그럴 필요 없어요. 우리는 가짜 커플일 뿐이잖아요. 괜찮아요."그녀의 말이 끝나자 차 안의 공기가 싸늘하게 식어 버렸다.강시연은 코를 만지며 한정훈이 화가 난 건 아닌지 아니면 자신의 착각인지 혼란스러워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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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화

그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주이정이 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강시연의 심장이 쿵 하고 요동치기 시작했고 그녀는 큰 나무 뒤로 몸을 숨기며 조심스럽게 숨을 죽였다.주이정은 이쪽을 힐끗도 보지 않은 채 조용히 골목길로 들어섰다.강시연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조수에게 짧은 메시지를 남기고 조심스레 주이정을 따라나섰다.골목길은 사람 한 명이 간신히 지나갈 만큼 좁았다. 강시연은 일부러 속도를 늦추며 천천히 안으로 발을 들였다.골목길을 빠져나오자 맞은편에는 조용하고 적막한 아파트 단지가 모습을 드러냈다.강시연은 양손을 꽉 쥔 채 이곳에 무언가 숨겨진 비밀이 있다는 강한 직감을 느꼈다.강시연은 근처 편의점에서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구입해 얼굴을 가린 뒤 조용히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섰다.한 바퀴를 돌자 금세 익숙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고 그 사람은 바로 주이정이었다.그녀는 어떤 중년 남성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대화는 곧 언성이 높아지는 언쟁으로 번졌다.강시연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지만 발각될 위험 때문에 멀찍이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잠시 후 주이정은 얼굴을 찌푸린 채 서둘러 자리를 떴다.강시연은 눈빛을 번뜩이며 그녀가 서 있던 자리로 다가갔고 그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딩동.”의외로 문은 곧바로 열렸다.고개를 들자 강시연의 동공이 수축했다. 마치 벼락을 맞은 듯 그녀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누구세요? 무슨 일이신데요?”문 앞에 선 사람은 다소 뚱뚱한 체격의 중년 남성이었고 말투에는 사투리가 섞여 있었다.하지만 무엇보다도 충격적인 건 그가 낯선 인물이 아니라는 점이었다.강시연은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강성 그룹 시절 회의장에서 몇 차례 본 적이 있었던 인물이었다.이름은 분명 도희성. 그룹의 고위 임원이자 아버지와도 접점이 있었던 인물이었다.‘주이정 씨가 왜 도희성과?’강시연의 머릿속은 복잡한 추론들로 소용돌이쳤고 직감이 거센 파도처럼 가슴을 때렸다.그러나 지금은 무리한 행동을 해선 안 될 때. 그녀는 차분하게 숨을 고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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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화

강시연이 핸드폰을 놓자마자 또 다른 전화가 걸려 왔다. 화면에 뜬 번호를 보며 그녀의 눈가에는 복잡한 감정이 스쳤다.“여보세요?”“시연아, 너와 진수혁이 헤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어.”저쪽에서 부드러운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시연은 “응”하고 간략하게 대답하고는 더 이상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여자가 한숨을 쉬었다.“정말 힘들다면 운성으로 와.”“괜찮아요. 지금 괜찮으니까 이만 끊을게요.”강시연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예전에 집안에 일이 생겼을 때 그녀의 어머니인 이만옥은 남은 돈을 가지고 운성으로 도망쳤고 강시연은 혼자서 모든 난장판을 수습해야 했다.이만옥은 나중에 운성의 재벌 가문에 재혼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강시연은 더 이상 관심이 없었다.강시연은 고개를 저으며 심리 상담소로 돌아왔다. 조수가 허둥지둥 달려왔다.“시연 언니, 무슨 일이에요? 문자 보고 깜짝 놀랐어요.”만약을 위해 강시연은 조수에게 문자를 남겨 두 시간 안에 연락이 없으면 바로 경찰에 신고하라고 했다.강시연은 고개를 저으며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얼버무렸다.“좀 뜻밖의 일이 있었는데 괜찮아요.”말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일을 시작하려 했다. 오늘은 진수혁의 재검진 날이었고 그는 아침 일찍 진도명과 함께 진료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부자는 같은 옷을 입고 있었고 크고 작은 두 사람의 눈가에는 닮은 구석이 있어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잠시 후에 엄마한테 사과하자. 알았지?”진수혁이 진지하게 말하자 진도명은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방송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진수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사무실로 들어갔다.그때 강시연은 차트를 보다가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보며 무의식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이어서 진도명이 살짝 허리를 굽혔다.“엄마, 미안해요. 지난번에 아픈 척하고 속였어요.”그는 입술을 삐죽이며 울먹거렸다.“엄마가 해준 밥이 먹고 싶었어요.”진도명의 진심 어린 모습에 평소 같았으면 강시연은 마음이 약해졌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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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화

“일반적으로 도희성의 현재 직책을 생각하면 이렇게 자주 이직하지는 않을 텐데 너무 짧은 기간이어서 아직 이유를 파악하지 못했어.”서아름의 말에 강시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성남 제약은 언제나 강씨 가문의 라이벌이었다. 그런데 강씨 가문이 몰락하자마자 도희성이 사람들을 이끌고 그쪽으로 옮긴 건 분명히 수상했다. 더구나 그가 이후 성남 제약을 떠난 이유는 지금으로선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고마워, 아름아. 앞으로도 계속 도와줄 수 있지?”“네 일이 곧 내 일인데 뭘 그렇게 고맙긴.”서아름은 장난스럽게 가슴을 툭 치며 당차게 말했다.“걱정하지 마. 내가 뿌리까지 다 파줄게.”강시연은 미소를 지으며 몇 마디 더 나누고 전화를 끊었다. 이후 그녀는 서아름이 언급한 두 제약회사를 검색하기 시작했다.성남 제약은 익숙했지만 신흥 제약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강씨 가문이 몰락한 직후부터 급부상하고 있다는 사실이 눈에 띄었다.강시연은 검색을 통해 성남 제약 대표 정황민이 유흥업소를 드나들며 끊임없는 스캔들에 휘말리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최근에는 용성 최대 규모의 바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이 연예 뉴스에까지 보도되기도 했다.눈빛이 날카로워진 강시연은 직접 움직이기로 결심했고 조수에게 외출을 알리고 상담소를 나섰다.매영 바에서.어둡고 흐릿한 조명 아래 록 음악이 진동했고 담배와 술 냄새가 뒤섞여 공기까지 무겁게 짓눌렀다.강시연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안으로 들어섰다. 이런 시끄러운 공간은 체질에 맞지 않았지만 오늘은 진실이 우선이었다.그녀의 등장에 주변이 순간 정적에 휩싸였다.차분하면서도 단정한 분위기를 지닌 그녀는 이곳의 공기와 어울리지 않았다. 몇몇 취객들이 흘긋거리며 시선을 던졌다.“아가씨, 한잔 어때요?”술에 취한 옥기봉이 능청스레 술병을 들고 다가왔다. 이곳 단골이자 사고뭉치로 유명한 인물이었다.강시연은 그를 무시하고 주위를 둘러본 후 2층 룸으로 향했다.운 좋게도 정황민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그는 주변을 신경도 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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