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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돌이킬 수 없는: Chapter 51 - Chapter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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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화

강시연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작은 얼굴에는 이미 옅은 분노가 드리워져 있었다.“이게 당신 식으로 아이 돌보는 거예요?”오늘 강시연이 마침 지나가다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진도현은 길거리에서 어떤 일을 당했을지도 모른다.진수혁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아이를 바라보았다.눈망울 가득 눈물 고인 진도현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자 마음 한구석이 찌르듯 아파왔다.하지만 강시연의 매서운 말투에 억눌러 두었던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럼 당신은? 아무 말도 없이 나랑 도현이 버리고 1년이나 사라진 당신이 무슨 엄마야?”강시연은 그의 뒤에 서 있는 심하은을 흘끗 보더니 입꼬리에 조롱 섞인 미소를 그렸다.“여기 잘 차려입은 새엄마도 있잖아요? 당신이랑 도현이가 이렇게 정성 들여서 하은 씨 챙기는 거 보니까 내가 비켜준 건 오히려 잘된 일인 것 같은데요?”진수혁은 얼굴이 확 하얘졌다.입을 열어 무언가 말하려다 강시연은 버스로 돌아가 버렸고 이내 버스는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진도현은 어리둥절했다.‘겨우겨우 찾아냈는데 그냥 가버린다고?’눈물이 왈칵 터졌다.심하은은 바로 달려와 무릎을 꿇고 진도현의 손을 잡았다.달래보려는 눈치였다.그러나 ‘탁’ 하는 맑은소리와 함께 진도현이 그 손을 매몰차게 쳐냈다.눈가가 벌겋게 충혈된 아이는 울먹이며 진수혁을 향해 소리쳤다.“흐어엉... 아빠, 엄마 데려와 줘요... 나 엄마 보고 싶단 말이에요...”진수혁은 말없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강시연과 이 부자 사이에는 깊은 오해가 가로놓여 있었다.쉽게 풀릴 일은 아니었기에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다가가는 수밖에 없었다.그런 두 사람을 보며 심하은은 겉으로는 근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지만 눈썹 아래로는 교묘한 웃음이 스쳤다.“수혁아... 난 정말 너희 사이를 망치려는 생각은 없었어. 시연 씨가 오해한 거야...”그녀는 붉어진 눈가를 손등으로 닦아내며 가냘픈 어깨를 떨었다.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예전 같았으면 부자 둘 다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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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화

강시연의 눈빛이 반짝였다.예술 작품 앞에서 이리저리 걸음을 멈추며 바라보는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고 몰입되어 있었다.한정훈은 두 손을 등 뒤로 모은 채 그녀 옆에서 함께 걸으며 그 집중한 옆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문득 마음이 동했다.“시연 씨, 이 그림 마음에 들어요?”강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자신이 좋아하는 걸 얘기할 때는 눈까지 반짝이는 사람이었다.흥이 올라 강시연은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이거 해외에서 유명한 거장 작품이에요. 정말 대단한 사람이죠. 수상경력은...”말하다가 문득 정신을 차린 그녀는 순간 민망해졌다.“죄송해요, 제가 너무 흥분했네요.”한정훈은 눈빛을 살짝 누그러뜨리며 미소 지었다.“괜찮아요. 저도 이런 얘기 듣는 거 좋아해요.”그동안 강시연 하면 차분하고 냉정하며 일 처리에 빈틈없는 사람이라는 인상이 강했는데 이렇게 순수하게 눈빛을 빛내며 얘기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소녀 같은 면모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강시연은 긴장이 풀린 듯 다시 미소를 짓고 이야기를 이어갔다.두 사람은 그렇게 나란히 걸으며 전시관을 여유롭게 둘러보았다.하지만 그들 위 2층에서는 누군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이번 전시회의 특별 초청 게스트로 참여한 심하은은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해 고개를 돌렸다.그리고 아래를 내려다보는 순간 강시연이 한정훈과 함께 있는 모습을 포착했다.게다가 두 사람 사이는 꽤 가까워 보였다.눈빛을 번뜩이더니 심하은은 즉시 핸드폰을 꺼내 여러 각도로 사진을 찍었다.그러고는 그 사진들을 전부 맨 위에 고정된 채팅창에 전송했다.띵동!진수혁은 회의실에 앉아 있었는데 강성 본사에서 함께 용성 지사를 꾸릴 간부들과 첫 회의를 진행 중이었다.그때 알림음이 울렸다. 심하은에게서 메시지가 온 것이었다.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회의에 집중했다.하지만 연이어 울리는 ‘띵동’하는 알림은 소리에 진수혁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핸드폰을 집어 들고 ‘방해 금지 모드’로 전환하려다 그만 실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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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무슨 일이에요?”진도현이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진수혁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 아이에게 작게 속삭이기 시작했다.곧 진도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그렇게 하면... 진짜 효과 있어요?”그러자 진수혁은 아이의 머리를 툭 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걱정 마. 내가 말한 대로만 하면 곧 엄마 볼 수 있어.”모든 걸 당부한 뒤 진수혁은 급히 미술 전시관으로 향했다.막 전시관 입구에 도착했을 무렵, 아직 사람을 찾기도 전에 심하은이 먼저 다가왔다.“수혁아, 드디어 왔네. 한참 기다렸어.”그녀는 먼저 다가와 익숙한 듯 진수혁의 팔을 자연스럽게 끼었다.“이런, 진 대표님 아니십니까? 미술 전시에 관심 있으신 줄은 몰랐네요.”진수혁이 얼굴을 살짝 찌푸리며 심하은에게 무언가 말하려는 찰나 한정훈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옆에는 강시연이 서 있었다.강시연은 진수혁을 보자 살짝 놀란 눈빛을 하더니 곧바로 그가 심하은과 팔짱을 낀 걸 보았다.입가에는 어딘가 자조적인 웃음이 흘렀다.결혼생활 7년 내내, 그녀는 수도 없이 진수혁에게 같이 전시회에 가자고 부탁했었다.그러나 진수혁은 매번 시간 낭비라고, 흥미도 없다며 단칼에 잘라 말했었다.‘이제 보니 미술 전시가 싫었던 게 아니었네. 싫은 건 바로 나였어.’강시연은 표정을 굳히고는 갑자기 한정훈의 손을 덥석 잡아끌며 돌아서려 했다.“잠깐만! 너랑 얘기 좀 하자.”그러자 진수혁이 다급히 외치며 두 사람이 손을 맞잡은 걸 뚫어지게 쳐다봤다.강시연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붉게 충혈된 그의 눈동자는 왠지 섬뜩할 정도였다.“대표님이랑 저 사이에는 할 얘기가 없을 텐데요.”그녀는 냉정하게 말하며 걸음을 떼려 했다.그런데 진수혁이 낮고 쉰 목소리로 천천히 말을 이었다.“도현이... 어제 많이 놀랐어. 집에 가자마자 고열이 났고 꿈속에서도 계속 당신을 찾았어.”“자식 생각해서라도... 한번만 보러 가줄 수 있어?”강시연은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열 달 동안 뱃속에 품어 키운 아이고 몇 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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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한정훈은 심하은을 흘깃 쳐다보더니 입가에 차가운 비웃음을 띠며 말했다.“됐습니다. 전 그래도 체면은 지키는 사람이라서요. 심하은 씨처럼 치졸한 짓까지는 하고 싶지 않네요.”말을 마친 그는 곧장 전시관을 빠져나갔다.심하은은 홀로 자리에 서 있었다.얼굴은 금세 새파랗게 질렸고 양손은 꽉 움켜쥔 채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도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한편 진수혁은 강시연을 데리고 그들이 임시로 머무는 호텔로 향했다.문을 열자마자 보인 건 침대에 누워 있는 다섯 살 남짓한 남자아이였는데 붉게 달아오른 작은 얼굴, 거칠어진 숨소리, 열에 시달리는 기색이 역력했다.입으로는 끊임없이 중얼거리고 있었다.“엄마... 엄마 보고 싶어요...”강시연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더 이상 흔들릴 일 없을 거라 생각했건만 막상 눈앞에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자 심장이 저릿하게 아팠다.그녀는 서둘러 다가가 진도현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손바닥 가득 끓어오를 듯한 열기가 전해졌다.“이렇게까지 열이 심한데 병원도 안 데려갔어요?”강시연은 참지 못하고 진수혁에게 소리쳤다.그러자 진수혁은 고개를 숙이며 조심스레 대답했다.“당신도 알잖아. 도현이는 병원 가는 걸 무서워해. 이미 개인 주치의 불러서 해열제 먹였어.”그제야 강시연은 한숨을 내쉬며 조금 안도했다.그러나 여전히 끙끙 앓고 있는 아이를 보자 마음이 무너졌다.“괜찮아, 엄마 왔어.”강시연의 목소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부드럽고 다정했다.진도현은 코끝이 찡해졌는지 눈을 살짝 뜨는 순간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엄마... 나... 엄마가 해준 소고기죽 먹고 싶어요...”예전에는 아플 때마다 강시연이 정성껏 소고기죽을 끓여줬었다.강시연은 주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엄마 금방 끓여줄게. 조금만 기다려.”진수혁이 예약한 곳은 용성에서 가장 고급 호텔로 거실에는 개인 주방까지 갖춰져 있었다.강시연은 급히 아래층 마트에 내려가 식재료를 사고 올라와 앞치마를 두른 채 익숙한 손길로 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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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강시연은 눈을 한 번 깜빡이고는 정신을 가다듬었다.다시 보니 진도현이 침대에 반쯤 기대 누운 채 두 볼에 비정상적인 홍조를 띠고 있었다.입을 살짝 벌린 채 아이는 나직하게 중얼거렸다.“엄마...”그제야 정신을 차린 강시연은 고개를 저으며 속으로 중얼댔다.‘요즘 너무 피곤해서 헛것을 본 거겠지.’그녀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소고기죽을 조심스레 들어 올려 입김을 불었다.그러고는 숟가락을 진도현에게 가져다주었다.오랜만에 다시 느끼는 익숙한 엄마의 맛에 진도현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만족스러운 얼굴로 한 숟갈, 또 한 숟갈 천천히 떠먹기 시작했다.그렇게 어느새 소고기죽 한 그릇은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입가를 닦고 아이는 다시 입을 열었다.“엄마, 나 더 먹고 싶어요.”강시연은 순간 당황한 듯 눈을 깜빡였다.전에는 아플 때면 입도 잘 안 대던 아이였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잘 먹었다.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진도현의 배를 내려다보며 말했다.“너무 많이 먹으면 배 아파.”진도현은 잠시 멈칫하더니 곧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근데... 엄마 밥 먹은 거 너무 오랜만이에요...”하는 수 없이 강시연은 다시 부엌으로 가 두 번째 그릇을 떠 왔다.모르는 사람이 보면 진수혁이 지난 1년 동안 애를 굶긴 줄 알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강시연은 고개를 저었다.‘진한 그룹 정도 되는 집안에서 애를 굶기진 않았을 테지.’그저 아이가 너무 오랜만에 엄마의 정을 느껴서 감정이 폭주한 거겠거니 했다.진도현은 이어서 말했다.“엄마, 나 이야기 해주세요.”예전에는 아플 때마다 강시연이 꼭 품에 안아 동화책을 읽어주며 재워주고는 했었다.강시연은 이마를 찌푸렸다.“여기는 이야기책이 없는데?”“괜찮아요, 내가 챙겨 왔어요!”진도현은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진수혁을 보더니 곧바로 캐리어를 뒤적여 그림책 한 권을 꺼냈다.그 책을 받았을 때 강시연의 눈에 익숙한 흔적들이 들어왔다.그녀가 직접 적어 넣었던 메모들, 하나하나 정성 들여 적었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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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화

강시연은 단번에 진도현이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작은 눈짓, 불안한 표정...아이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도현이, 무슨 해열제 먹였는데요?”강시연은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 그러나 그 눈빛은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진수혁은 진도현이 입을 열기 전에 서둘러 나섰다.“그냥 일반 해열제 알약이야.”“쨍그랑!”강시연이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손에서 놓친 도자기 그릇이 바닥에 부딪히며 산산이 부서졌다.“도현이는 아플 때 알약 절대 안 먹어요. 늘 가루약만 먹었고 그마저도 꼭 산사자 사탕이랑 같이 먹어야 삼켰죠.”결혼 생활 7년 동안 그녀는 수없이 밤을 지새우며 병든 아이를 간호해왔다.진도현의 식성, 약 버릇, 체온 반응까지 모두 몸에 익숙할 정도였다.그런데 진수혁은 그런 것조차 몰랐다.왜?그 시기 그는 늘 일로 바빴고 혹은 심하은 옆에 있었으니 말이다.강시연은 차갑게 한숨을 내쉬고는 진도현의 이불을 확 걷어냈다.예상대로 안쪽에는 뜨끈하게 달궈진 전기담요, 그리고 몇 개의 온수 팩이 들어 있었다.그러니 얼굴이 붉고 몸도 뜨거웠던 거다.순간 방 안의 공기가 뚝 끊긴 듯 정적이 흘렀다.모든 게 들통났다는 걸 알아챈 진수혁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 급히 다가서며 말을 꺼냈다.“시연아, 내 말 좀 들어봐...”강시연은 고개를 들고 그를 정면으로 바라보더니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가볍게 입을 열었다.“진수혁 씨, 나 가지고 노는 게 그렇게 재밌어요?”그녀는 전시회를 포기하고 단숨에 호텔로 달려왔고 열이 펄펄 나는 아이를 걱정하며 밥을 짓고 이야기를 읽어주고 이불을 덮어주었다.그런데 이게 무엇인가?진도현이 이 나이에 그런 머리를 쓸 리 없다.누가 시킨 건지는 말 안 해도 뻔했다.강시연은 발끝부터 서서히 얼어붙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몸 전체가 서늘해지고 가슴에는 싸늘한 허무감만 남았다.진수혁은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을 마주 보며 말문이 막혔다.그녀의 눈에는 이제 아무런 온기도 남아 있지 않았다.그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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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거짓말이야!”진수혁이 반사적으로 외치며 옷장 쪽으로 달려갔다.곧바로 종이 상자 하나를 꺼내더니 안에 든 물건들을 죄다 바닥에 쏟아버렸다.“와르르...”잡다하게 흩어진 것들을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가리키며 그는 외쳤다.“이건 당신이 절까지 가서 힘들게 받아온 평안 부적이고 이건 밤새워서 내게 떠준 목도리야. 그리고 이건...”뒤로 갈수록 그의 목소리는 점점 쉰 소리로 가라앉았고 붉게 충혈된 눈에는 절박한 간절함이 서려 있었다.“강시연... 제발 기억해 줘. 당신이 날... 그렇게 사랑했던 시간들, 그 마음들.”강시연은 바닥에 흩어진 익숙한 작은 물건들을 바라보았다.그중 몇 개는 손끝에 아직 감각이 남아있을 정도였다.그녀는 잠시 그것들을 바라보더니 피식 웃음을 흘렸다.“덕분에 깨달았네요. 내가 예전에 얼마나 멍청했는지.”진수혁은 그대로 얼어붙은 사람처럼 서 있었다.몸이 굳은 채 미동도 없이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강시연은 침대 위의 진도현을 한 번 보고 다시 진수혁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그러고는 차갑게 말했다.“애도 별일 없는 거 같으니까 난 이만 갈게요. 앞으로 다시는 내 인생에 끼어들지 마요. 두 사람 없이 난 더 잘 살 수 있으니까.”진수혁은 입술을 달싹였지만 아무 말도 내뱉지 못했다.그저 그 자리에서 익숙한 강시연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걸 바라볼 뿐이었다.어둠이 천천히 내려앉았다.강시연이 호텔을 나설 때는 이미 해가 완전히 져 있었고 예술 전시회는 진작에 끝나 버렸다.찬 바람이 스치며 인도 위의 낙엽이 바스락 소리를 냈다.강시연은 외투를 여미며 한숨을 쉬고 조용히 택시를 잡아 집으로 돌아왔다.“끼익...”문을 여는 소리와 동시에 방 안에서 한민주가 총총거리며 달려 나왔다.눈빛은 이미 잔뜩 궁금증과 기대감으로 반짝이고 있었다.“시연 언니! 어땠어요? 오늘 전시회 재밌었어요?”하지만 돌아온 건 짧은 침묵뿐이었다.한민주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현관에 강시연 혼자 서 있는 걸 보고는 바로 눈치를 챘다.그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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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화

다음 순간 한민주의 격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우리 오빠가 있잖아요! 오빠랑 연애하는 척하면 되잖아요!”“다른 사람들은 진한 그룹이 무서워서 피할 수도 있겠지만 용성 안에서라면 우리 오빠는 절대 진수혁 안 무서워해요.”한민주는 점점 흥분한 듯 마치 뭔가를 파는 사람처럼 계속 부추겼다.“시연 언니, 진지하게 한번 생각해봐요. 걱정 말고요, 우리 오빠 지금 여자 친구도 없고 그냥 연기만 해주면 되는 거잖아요. 진수혁 그 부자 쫓아낸 다음에는 원래대로 돌아가면 돼요.”입으로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딴 계산이 한창이었다.드라마에서 자주 보이지 않는가? 가짜 연애하다가 진짜 커플 되는 것 말이다.‘이러다 언니가 진짜 내 새언니가 될 수도 있는 거 아니겠어?’강시연의 눈빛이 흔들렸다. 잠시 마음이 동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그건... 정훈 씨한테 실례 아닐까?”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 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마침 한정훈이 집으로 들어오던 참이었다. 두 사람의 대화가 다 들렸는지 표정에 묘한 기색이 떠올랐다.강시연은 그를 보자 당황한 기색으로 얼른 해명했다.“정훈 씨, 저랑 민주는 그냥 장난친 거예요. 진지하게 듣지 마세요.”하지만 그 순간 남자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렸다.“괜찮습니다, 시연 씨. 오히려 제가 그 부탁 기꺼이 들어드리고 싶은걸요.”“...네?”강시연이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한정훈은 웃는 듯 웃지 않는 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그리고 바로 이어서 말했다.“사실 저도 시연 씨한테 하나 부탁드리고 싶었거든요.”금테 안경을 손끝으로 고쳐 올리며 그의 눈빛이 살짝 어두워졌다.“요즘 집에서 부모님이 너무 결혼 얘기를 하셔서요. 올해 안에 여자 친구를 데리고 오지 않으면 아예 고향에 못 갈 판이에요.”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푸흣.”한민주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고 자기 허벅지를 꼬집으며 간신히 웃음을 참았다.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예전에 나쁜 남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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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화

강시연은 기억하고 있었다.육태하에게 남은 가족은 단 한 사람, 누나뿐이었고 마침 그녀도 외국에 나가 있었다.‘설마...’강씨 가문은 약물 바꿔치기 사건에 휘말린 이후, 지금까지 뚜렷한 단서를 찾지 못한 상황이었다.그 사건의 유일한 돌파구는 바로 육태하의 누나였다.강시연은 즉시 눈앞의 소년을 바라보며 물었다.“그분 이름이 뭐예요?”“주이정이요.”전재혁이 대답했다.강시연은 살짝 눈빛을 가라앉히며 속으로 그 이름을 한 번 되뇌었다.곧이어 다시 질문했다.“그분이랑 어떻게 알게 됐어요? 얼마나 만났죠?”전재혁은 고개를 천천히 떨구며 쓴웃음을 지었다.“우리는 사귄 적 없어요. 제가 혼자 짝사랑했죠. 그 사람은 제가 너무 뚱뚱하다고 했고 그래서 살을 빼려고 운동을 시작했어요. 성적이 안 좋다고 하면 밤새 공부했고 가난하다고 하면 돈 벌려고 온갖 일을 했죠...”강시연은 눈을 껌뻑이며 눈가가 살짝 떨렸다.전재혁의 사연은 어쩐지 한민주와 닮아 있었다.가장 사랑했던 사람에게서 가스라이팅을 당했다는 점에서 말이다.물론 한민주는 그래도 육태하와 연애를 했었지만 전재혁은 시작조차 못 한 거였다.강시연은 그를 바라보며 눈빛에 연민을 담아 조심스레 말했다.“재혁 씨는 잘못한 게 없어요. 단지 사람을 잘못 만났을 뿐이에요. 그러니까 자신을 깎아내리거나 너무 자책하지 말아요.”전재혁을 위로하고 나니 어느새 밖은 어둑어둑해져 있었다.“강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돌아가서 다시 잘 생각해볼게요.”전재혁이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강시연은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었다.“급할 거 없어요. 제가 문까지 같이 나가줄게요.”상담 도중, 그녀는 무심한 듯 몇 번 떠봤다.아쉽게도 전재혁은 육태하를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하지만 주이정에게 이복남동생이 있다는 건 사실이었다.강시연은 전재혁을 문까지 데려다준 뒤, 자신도 돌아가려 일어섰다.하지만 문을 돌자마자 마주친 사람이 있었다. 바로 한정훈이었다.그를 보자 강시연의 눈빛에는 놀람이 스쳤다.‘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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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화

곽지훈과 유민재가 도착했을 때, 룸 안에는 진한 술 냄새가 가득 퍼져 있었다.두 사람은 본능적으로 찡그린 얼굴을 한 채 안을 들여다보았고 룸 한가운데 힘없이 앉아 있는 진수혁의 모습을 발견했다.“수혁이 형. 대체 형 뭐 하는 거예요? 왜 이렇게 축 처졌어요?”곽지훈이 눈을 부릅뜨고 다급히 다가갔다.진수혁은 대답하지 않고 말없이 술만 들이켰다.마치 그 술기운으로만 겨우 아픔을 억누를 수 있는 듯했다.유민재는 눈살을 잔뜩 찌푸린 채 낮게 말했다.“형, 지난번에는 형수님 찾았다고 했잖아요. 연락 한번 해볼까요?”이런 진수혁의 꼴을 보면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강시연과 뭔가 일이 있었던 게 분명했다.지난 1년간 진수혁은 일에만 몰두하거나 강시연을 찾아다녔고 틈만 나면 이런 식으로 술에 절어 있었다.친구들은 그 모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진수혁은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다가 낮고 거칠어진 목소리로 말했다.“됐어. 이제 시연이는 날 원하지 않아.”그도 자존심이 있는 남자였다.몇 번이나 거절당했고 마지막에는 정말 가혹한 말까지 들었다.그 말들은 마치 진수혁의 자존심을 짓밟듯 무너뜨렸다.하지만 그는 몰랐다.그런 시간들을 과거의 강시연은 무려 7년이나 견뎌냈었다는 것을.곽지훈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이럴 줄 알았으면 애초에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지...’룸 안은 금세 무거운 침묵에 잠겼다.그러다 유민재가 참지 못하고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도대체 뭐 하는 거예요, 형! 형 진짜로 형수님 좋아한다면서요! 그럼 그냥 다시 쫓아가요! 아직 법적으로 이혼한 것도 아니잖아요. 그리고 설령 이혼했대도 재결합이란 것도 있는 거예요.”“여자는 원래 정에 약하다고요. 말 예쁘게 좀 하고 선물도 좀 하고 딱 붙어서 졸라봐요. 형수님 다시 돌아올 수 있다니까요?”진수혁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포기했던 마음이 조금씩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곽지훈도 거들었다.“맞아요, 형. 형이랑 형수님 사이에 도현이도 있잖아요. 그분이 형 얼마나 좋아했는지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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