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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시녀의 생존수칙: Chapter 121 - Chapter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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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화

“연경아, 장씨 어멈이 네 인신 계약서를 받아오시는 걸 내가 봤어.”그날 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청하가 연경에게 소식을 전했다.연경은 벌떡 침상에서 몸을 일으키며 격앙된 목소리로 되물었다.“그게 사실인가요?”“물론이지. 너도 이제 송학당 사람이니 언젠가는 받아올 것이었어.”연경은 울컥하고 눈물이 치솟았다. 온갖 감정들이 휘몰아쳤다.‘후작님은 역시 약속을 지키는 분이었어!’청하가 입을 삐죽이며 물었다.“태복님에게 범인의 정체에 대해선 알아봤어? 대체 날 죽이려고 했던 자가 누구야?”연경은 눈물을 닦고 길게 심호흡하여 격앙된 감정을 추슬렀다.“언니, 나으리께서 왜 폐하께 꾸중을 들었는지 아시나요?”청하는 잠깐 고민하더니 답했다.“너 몰랐어? 수렵대회가 끝나고 귀경하는 길에 유왕이 타고 있던 말이 갑자기 놀라서 미쳐 날뛰다가 유왕께서 낙마 사고를 당하셔서 다리 한쪽이 부러졌어. 귀비마마께선 후작 나으리께서 호위 업무에 소홀했다고 대노하셨고 폐하께서는 이 일로 나으리를 몇마디 꾸짖으셨어. 그게 내가 죽을 뻔한 일과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거지?”유왕의 낙마 사고, 이는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었다.연경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떨렸다.그녀가 하마터면 금위군에게 사살당할 뻔한 직후에 생긴 일이니 어쩌면 배후에 귀비가 있을 수도 있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유왕의 사고는 절대 우연이 아니었다.괜히 김칫국 마시는 건 싫지만 손기욱이 자신을 위해 복수를 해줬다고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가슴이 떨렸다.“얼굴이 왜 그렇게 빨개? 또 열이 나는 건 아니겠지?”청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연경의 이마를 만졌다.연경은 괜히 정곡이 찔려 손길을 피하고는 소리를 낮춰 말했다.“언니, 그동안 생각을 좀 해봤는데요. 어쩌면 그 사건의 배후에 귀비마마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마 귀비께선 후작가에 첩자를 심은 듯해요.”그 말을 들은 청하는 아연실색했다.“대체 내가 뭔 죄를 지었기에!”“성이 함락되면 성안에 있던 무고한 백성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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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화

그 순간 손기욱은 불에 데인 것처럼 화들짝 놀라 뒤로 뒷걸음질치며 큰소리로 태복을 불렀다.“태복!”당황한 향란이 물었다.“나으리, 왜 사람을 부르십니까? 소인은 노부인께서 하사하신 나으리의 통방이고 나으리께서는 소인을 마음대로 하셔도 아무런….”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태복이 헐레벌떡 안으로 들어왔다.“무슨 일이십니까, 나으리!”그는 침상에 앉아 있는 향란을 보고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대체 누가 너한테 나으리의 침소에 들라고 허락하였느냐!”“노부인께서….”“어디 감히 노부인 핑계를 대느냐! 너는 이제 매화당 사람이고 매화당의 규칙을 따라야지! 그렇게 노부인 시중을 드는 게 좋으면 당장 짐 싸서 송학당으로 돌아가거라!”향란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탓에 태복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니, 그는 평소보다도 더 엄하게 그녀를 꾸짖었다.손기욱은 조금 전 그녀와 스쳤던 광경을 떠올리자 짜증스럽게 다시 욕실로 향하며 소리쳤다.“당장 저 계집을 끌어내거라!”“살려주십시오, 나으리! 소인이 잘못했습니다!”향란은 그제야 모든 사내가 자신의 몸매에 넘어가는 건 아니라는 현실을 파악했다. 노부인의 지시까지 있으니 오늘 밤은 무조건 성공할 거라 생각했는데 이런 불상사가 벌어질 줄이야!태복은 한숨을 내쉬며 그녀에게서 등을 돌렸다.“얼른 옷부터 입거라. 침상에 올라가기 전에 생각이라는 걸 했어야지. 우리 나으리가 그렇게 미색을 탐하는 분으로 보이더냐? 매화당에 왔으면 한마음 한뜻으로 나으리를 잘 모실 생각을 했어야지.”향란은 울먹이며 옷을 주워입으며 같은 말만 중얼거렸다.“허나 노부인께서는 제게….”“나으리께서 노부인의 뜻을 받아들였다면 넌 진작에 자유자재로 이 방에 출입할 수 있었겠지. 나으리께서 색욕에 눈이 먼 사람이라면 신변에 통방 한명 두지 않았겠느냐? 대체 그 머리로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기분이 좋지 않은 태복은 그녀가 옷을 다 입자마자 짐짝처럼 그녀를 어깨에 들쳐멨다.향란이 다급한 비명을 질렀다.“태복님,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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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화

이날 밤, 연경은 행복한 꿈을 꾸고 있었다. 꿈속에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보냈던 어린시절로 돌아갔다. 어머니는 그녀를 꼭 안고 자장가를 들려주었고 매일 편하게 잠을 자고 몸이 아프면 탕약과 알사탕을 챙겨주는 사람도 있었다.꿈에서 나온 어머니가 다친 그녀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그녀를 확 밀치더니 귓가에 욕설이 들려왔다.연경은 화들짝 놀라며 꿈에서 깼다.향란이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너 혼자 이 넓은 침상을 쓰고 있으면 난 어디서 자라고?”“향란 언니? 언니는 분명….”이때, 밖에서 돌아온 청하가 향란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연경아, 향란이는 전부터 이 방을 썼어. 앞으로는 우리 셋이 같은 방을 쓰게 되었으니까 잘 지내도록 해. 향란, 넌 수렵대회에 안 따라가서 모르겠지만 얘가 후작가를 위해 곤장을 열 대나 맞고 화살까지 맞아서….”둘은 연경을 앞에 두고 지난 얘기를 나누었고 자초지종을 들은 향란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나보다 더 불쌍한 애가 있었다니.’향란은 매화당에서 받은 서러움과 억울함이 한순간 사라지는 것 같았다.“그런데 향란 언니는….”연경은 그녀가 왜 매화당에 있지 않고 이리로 왔는지 궁금했지만 다급히 눈치를 주는 청하의 모습을 보고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언니는 송학당에 오래 계셨으니 앞으로 제가 모르거나 서툰 게 있다면 잘 가르쳐 주세요.”향란은 연경이 자세를 굽히고 들어오자 오만하게 턱을 치켜들었다.“내가 보니까 너도 멍청한 애는 아닌 것 같으니 앞으로 한방을 쓰는 사람으로서 서로 도우며 지내자꾸나.”“언니 말씀이 맞아요.”대화를 통해 연경은 그녀가 매화당에서 쫓겨난 것임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세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밖에서 한 시종이 웃으며 그들을 불렀다.“이런 게으름뱅이들, 여기서 잡담이나 나누고 있었어? 작은 마님께서 회임하셨다고 하니까 어서 금수원으로 가봐. 노부인도 그쪽으로 가신대.”청하의 표정이 밝아졌다.“집안에 경사가 났으니 우리도 포상을 받을 수 있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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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화

손기욱은 빨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을 힐끗 보고는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고 조용히 앉아 그녀가 먹는 것을 지켜보았다.식사를 마친 연경은 조심스레 그의 안색을 살폈다. 눈밑이 거뭇거뭇하고 안색이 초췌했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어젯밤에 잠을 설치셨나요?”손기욱은 한숨을 내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 얘기를 이미 들은 게냐?”연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예, 축하드립니다, 나으리….”손기욱은 차갑게 그녀의 말을 끊으며 불쾌한 어투로 물었다.“그게 축하받을 일이라고?”만약 그녀가 진심으로 그를 연모한다면 다른 여인과 접촉이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 절대 축하한다는 말을 내뱉지 못할 것이다.연경은 그가 왜 불쾌해하는지 알 수 없어 조심스레 말했다.“작은 마님께서 회임을 하셨으니 집안에 경사가 난 것 아닙니까. 곧 있으면 나으리는 손주를 안게 될 텐데… 축하받아야 할 일 아닌가요?”손기욱은 그제야 자신이 오해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괜히 자신이 늙은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내가 향란을 쫓아낸 걸 몰랐느냐?”연경은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왜 저런 눈빛을 하고 계실까?’“어젯밤에 내 침상에 기어올랐더구나. 그래서 내가 송학당으로 돌려보냈다.”손기욱이 싸늘하게 말했다.연경은 그제야 향란이 왜 돌아왔을 때 그렇게 화가 나 있었는지 이해했다.“그러셨군요.”사실 그녀조차도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사실 그녀는 향란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노부인의 지시에 따랐을 뿐인데 손기욱은 그녀를 매몰차게 내쳤으니 나중 가서 노부인에게 꾸중을 듣게 될 것이다. 그러나 향란이 매화당을 떠났다는 것은 연경의 입장에서는 나쁜 일이 아니었다.손기욱은 덤덤한 그녀의 반응에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고개를 돌리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는 그녀를 보고 모진 말을 도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그는 짐짓 모르는 척 그녀에게 물었다.“왜 웃는 거지?”“소인은 예전에 향란 언니가 매화당에서 나으리의 시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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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화

송지운은 회임 소식이 알려진 당일 날, 명월을 시켜 손유민의 시중을 들게 했다.지시를 들은 명월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그녀는 평범한 외모의 소유자였고 욕심도 없어서 조용히 할 일만 하는 성격이었다. 연경이 있을 때는 자신이 통방이 될 거라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아무리 연경이 떠났다고 한들 지연과 채련의 용모가 자신보다 더 예쁘니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작은 마님, 소인은 우둔하여 도련님의 시중을 들지 못할 것 같습니다.”명월은 울상을 지으며 송지운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송지운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다른 사람은 되지 못해서 안달인데 뭘 사양해? 평소에 목욕 심부름도 자주 했으면서 어디서 순진한 척이야!”송지운은 지연과 채련이 평소 손유민에게 몰래 추파를 던지는 모습을 몇 차례 목격한 적 있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그들은 고려하지 않았다.연경이 있었더라면 통방시녀는 한 명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녀의 미모라면 손유민이 밖에서 첩을 데려올 걱정은 할 필요 없었다.그런데 연경은 송학당에 불려갔으니 다시 데려오려면 과정이 필요했다. 남은 세 시종은 연경에 비하면 평범한 수준이니 처음부터 가장 예쁜 아이를 손유민에게 붙여줄 수는 없었다. 일단 명월을 보내 간을 본 후에 그래도 안 되면 채련과 지연을 고려할 계획이었다.“작은 마님….”명월은 바들바들 떨며 애원하듯 송지운을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통방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고 고향 어머니는 이미 그녀를 위해 괜찮은 혼처를 알아본 상황이었다. 송지운의 허락만 떨어지면 되는 일인데 그녀가 겁이 많아 여태 말을 꺼내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이따가 내 유모가 네게 필요한 것들을 가르칠 게다. 일단 가서 목욕부터 하거라!”송지운의 한마디로 명월의 일생이 결정되었다.명월은 감히 명을 거역할 수 없으니 혼처가 정해졌다는 말은 꺼내보지도 못하고 큰절을 올렸다.다음 날, 송학당.아침 식사를 마친 노부인은 흐느적거리며 정원에 들어서는 손기욱을 보았다.평소였다면 그가 오는 게 반가웠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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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화

노부인은 곱지 않게 그를 흘기며 말했다.“연경, 넌 후작가를 위해 곤장을 맞고 중상을 입었다. 전에는 네 치료가 우선이라고 생각해서 포상을 지금까지 미뤄왔지만 이걸 받거라. 한마음으로 후작가를 위해 충성한다면 우리도 그에 따른 섭섭지 않은 상을 내릴 것이다.”쟁반을 덮은 천을 열자 스무 냥 정도 되는 은화와 보양에 좋은 약재들이 들어 있었다. 하나 굉장히 눈에 띄는 포상이 있었는데 여우털로 된 망토였다.연경은 놀란 얼굴로 감사인사를 했다.“이건 이 아이의 방으로 가져가거라. 연경 너도….”이때 조용히 침묵을 지키던 손기욱이 입을 열었다.“어깨가 시큰거리는구나. 와서 지압 좀 하거라.”노부인의 입가에 경련이 일었다.“지금 아픈 아이한테 지압이라니!”다른 시종들도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며 속으로는 후작이 너무 매정하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손기욱은 연경에게 끝까지 물러가라는 말을 하지 않았고 연경은 그의 등 뒤로 다가가 두 손으로 어깨를 지압하기 시작했다.노부인은 화가 치밀었지만 두 사람에게 단둘이 있을 공간을 나눠주기 싫어 시종에게 간식을 가져오게 했다.방 안에서 시종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지만 손기욱은 그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작은 소리로 연경에게 말했다.“하는 시늉만 하면 돼. 내가 정말 널 지압이나 하라고 남으라고 했겠어?”고개를 들자 몰래 웃고 있는 연경의 모습이 보였다.그는 피식 웃고는 중얼거리듯 말했다.“눈치 없긴.”“감사합니다, 나으리.”연경이 말했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건 손기욱이 언제 자신을 매화당으로 데려갈지, 정확한 기한을 약속받는 거였다. 기한이 정해지지 않으면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열은 다 내렸어? 아직도 아프냐?”연경은 작은 소리로 답했다.“이제 많이 좋아졌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으리.”“거짓말. 네가 무슨 불사의 몸인 줄 아느냐?”손기욱도 화살에 관통상을 당해본 적 있기에 치유되기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연약한 여인의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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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화

송지운은 대놓고 불만을 표할 수 없으니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연경이 아버님의 어깨를 주물러드리고 있는 건 못 봤네요. 죄송합니다, 아버님.”노부인은 당연히 회임 중인 송지운을 서럽게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들에게 쌓인 것도 있었는지라 싸늘한 목소리로 꾸짖었다.“저 아이가 너만 부릴 수 있는 아이더냐? 연경은 원래 지운이가 내게 효도한다고 보내준 시종이다. 옛주인을 위해 간식 좀 만들라는데 그게 그리 힘든 일이더냐?”손기욱은 송지운의 앞에서 대놓고 연경을 감쌀 수 없으니 콧방귀를 뀌며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연경도 그가 괜히 한마디 더 했다가 송지운이 눈치라도 챌까, 다급히 말했다.“축하드립니다, 작은 마님. 소인이 지금 가서 간식을 만들어 오겠습니다.”그녀가 급하게 방을 나가자, 지연은 여전히 송지운의 옆에 남고 명월은 조용히 그녀를 따라 부엌으로 갔다.명월은 팔을 걷어붙이는 연경을 보고 재빨리 그녀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넌 아직 부상이 낫지도 않았으니 내가 할게. 옆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만 줘.”“고마워요, 명월 언니.”명월은 입가에 쓴웃음을 지었다.연경은 자세히 가르쳐주었고 성격은 나약해도 일솜씨 하나는 뒤처지지 않는 명월이기에 배우는 것도 쉬웠다.주변에 사람이 없자, 연경은 조심스레 물었다.“언니, 작은 마님에게 혼사 얘기를 꺼냈나요?”한때 명월과 같은 방을 썼던 연경이기에 그녀가 고향집에 이미 봐둔 혼처가 있고 송지운의 허락을 받아 고향으로 돌아가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전생에도 명월은 꾸중이 두려워 계속 말을 미루다가 결국 술 취한 손유민에게 순결을 빼앗기며 혼사도 물거품이 되었다.비록 연경 자신은 먼저 죽었기에 나중에 명월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송지운 성격에 명월의 회임을 허락할 리도 없고 자식 하나 없는 통방의 삶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래서 회귀하고 돌아온지 얼마 안 됐을 때, 명월에게 어서 송지운에게 가서 얘기를 꺼내라고 조언했으나, 명월은 계속 주저하다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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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화

나약한 성격의 명월은 좋은 동맹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연경에게는 금수원 소식을 가끔 알려줄 사람이 필요했다. 송지운 부부의 앞으로의 동향을 알아야 계획을 짤 수 있었다. 그리고 손유민의 통방이 된 명월은 가장 적합한 사람이었다.명월은 눈물을 훔치며 그녀에게 물었다.“무슨 방법이 있어?”“방법은 알려드릴 수 있지만 제 조언에 따라주셔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앞으로 더 힘들어질 거예요.”금수원 시종은 다들 자기 생존이 우선인 사람들이니 연경은 무턱대고 명월을 신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자신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 정도의 조언만 해주었다.명월은 감사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고 연경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간식은 다 만들었느냐?”이때, 태복이 갑자기 부엌으로 들어왔다. 그는 연경이 옆에서 방법만 가르쳐주는 것을 보고 안도한 얼굴로 말했다.“나으리께서 입맛이 없으시다 하니 나으리 몫도 몇 개 더 만들거라.”말을 마친 그는 연경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넌 옆에서 가르쳐주기만 해. 나으리의 근육통이 요 며칠 사이 또 재발하였는데 넌 하루빨리 건강을 회복하고 나으리께 지압을 해드려야지.”말을 마친 그는 곧바로 주방을 나가버렸다. 연경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사라지는 태복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어쩌면 손기욱이 그녀가 혹여 괴롭힘을 당하진 않을까, 일부러 보낸 것 같았다.두 사람이 간식을 다 만들고 방으로 돌아갔을 때, 손기욱은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손유민도 와 있었다.명월은 송지운과 손유민에게 간식을 올리고 연경은 노부인과 손기욱에게 한 쟁반씩 올렸다.그러고 손기욱의 옆을 지나치는데 그가 발끝을 들어 그녀의 종아리를 툭툭 건드렸다.연경은 화들짝 놀라며 송지운 부부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으나, 다행히 두 사람은 이쪽에는 관심을 주지 않고 있었다. 당황한 눈으로 손기욱을 바라보니 그는 눈짓으로 어서 돌아가서 쉬라고 눈치를 주었다.연경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쟁반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노부인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도 아무 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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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화

사실 연경은 그가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그래서 손유민을 밀어내면서도 일부러 소리를 냈던 것이다.그게 아니라면 손유민의 손길을 피할 방법은 많고도 많았다.일부 시종들이 그 광경을 목격했지만 어차피 노부인이 알아서 입막음을 할 것이다.송지운이 먼저 명월을 통방으로 올린 건 연경이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안심할 수 없으니 손기욱에게서 빨리 약조를 받아내야 했다.손기욱은 똥 씹은 얼굴로 그녀를 지나치며 한마디 했다.“따라와.”태복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큰소리로 말했다.“연경아, 나으리께서 어깨가 불편하시다 하니 수고스럽겠지만 가서 어깨 좀 주물러드리거라.”손기욱은 곧장 화원으로 갔다.화원에는 소나무가 몇 그루 서 있어서 시선을 가리기에 좋았다. 그 옆으로는 호수가 있고 그 주변에는 정교한 조각상들이 있어 운치가 있어 보였다.그러나 손기욱은 풍경을 감상할 기분이 아닌지라 연경을 이끌고 정자로 갔다.연경은 연고를 품에 집어넣으며 그에게 말했다.“어깨를 지압해 드리겠습니다.”손기욱은 말없이 그녀의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연경은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나으리?”“왜 녀석이 준 물건을 받았지?”연경은 연고를 도로 그의 손에 쥐여주며 답했다.“소인은 일개 시종일 뿐입니다. 도련님이 하사하신 물건을 감히 거절할 수야 없지요.”손기욱은 차게 식은 그녀의 손끝을 슬쩍 만지다가 주변을 둘러보고는 그 작은 손을 꽉 잡으며 한층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너는 내 사람이니 그 녀석과 엮여서 좋을 게 없어.”따뜻한 온기가 전해지자 연경은 마음마저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그는 연경에게서 받은 연고를 호수로 던져버렸다.첨벙 하는 소리가 들리자 연경은 괜히 아쉬운 척 한숨을 내쉬었다.그 모습을 본 손기욱은 기가 차다는 듯이 헛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준 약을 벌써 다 쓴 게냐?”“아닙니다. 하지만 시종은 언제 다칠지 모르니 그 비싼 약을 버린 게 좀 아깝긴 하네요. 인제당에서 구한 약이라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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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화

손기욱은 차마 그녀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다.“봄에 있을 과거시험에 낙방하면 내 널 매화당으로 데려가도록 하마.”연경의 입가에 미세한 경련이 일었다.“과거시험… 낙방이요?”‘아버지라는 사람이 아들에게….’손기욱은 비웃음을 흘리며 말했다.“머리속에 색욕으로 가득한데 글공부가 눈에 들어오겠어? 그런 녀석이 급제하면 문제가 심한 거지.”손기욱은 비록 손유민을 마음에 안 들어했지만 이렇게 대놓고 그를 까내린 것은 처음이었다.연경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피어났다. 햇살이 그녀의 말간 얼굴을 비추어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봄 과거시험은 2월에 진행되고 결과가 있기까지 한달이 더 걸렸다. 지금은 12월이니 적어도 4개월은 더 기다려야 했다.그러나 연경이 예상했던 시간보다는 빨랐으니 기분이 안 좋을 수 없었다.한참 지난 후에야 연경은 손기욱의 노골적인 시선을 느끼고 조심스레 그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소인은 도련님을 비웃으면 안 됐는데, 송구합니다. 처벌하시면 달게 받겠습니다.”그러면서 겁에 질린 척, 느릿느릿하게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빛은 전혀 겁먹은 눈빛이 아니었다.손기욱은 피식 웃더니 손을 들었다.연경은 눈을 질끈 감고 손을 움츠렸다.커다란 손이 그녀의 작은 손에 슬쩍 닿았다. 연경은 코를 찡긋하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손기욱은 그 탐스러운 입술을 훔치고 싶었지만 대낮에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있으니 치미는 욕구를 참을 수밖에 없었다.연경의 마음에도 잔잔한 물결이 일었다.그녀는 눈을 뜨고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소인을 아껴주시고 매를 내리지 않으셔서 감사합니다.”“앞으로 널 혼낼 기회는 많으니 이번은 그냥 넘어가도록 하지.”손기욱은 시선을 여전히 그녀의 입술에 고정한 채, 이 악물고 말했다.연경은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에 다리에 힘이 풀렸다.“나으리, 노부인께서 이쪽으로 오고 계십니다.”정자로 다가온 태복이 말했다.손기욱은 이미 화가 풀렸으니 의자에 느긋하니 앉아 연경에게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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