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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시녀의 생존수칙: Chapter 141 - Chapter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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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1화

이불에는 온통 연경의 체향이 남아 있었다. 손기욱은 저도 모르게 욕실에서의 상황을 떠올렸다.그는 전혀 만족감이 느껴지지 않았다.태복이 그를 부르러 왔을 때는 시작한지 얼마되지도 않았을 때였다.연경은 손유민 때문에 겁을 먹은 것인지 욕실에 들어갔을 때부터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손기욱은 저도 모르게 처음 그녀를 품었던 날을 떠올렸다.그때도 그녀는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만약 그게 연기였다면 탄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그래서 그는 어떻게든 그녀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무진장 노력했다. 이런 일은 그녀가 전혀 쾌락을 느끼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손기욱은 뒤척이다가 밤중에 벌떡 일어났다. 소매를 걷어올리자 그녀가 깨문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조금 전 그녀가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기에 그가 자신을 깨물라고 허락한 것인데 이렇게 심한 자국이 남을 정도로 힘껏 깨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손기욱은 손을 뻗어 쇄골 쪽을 만졌다. 그곳에도 깨문 흔적이 있었다.이날 밤, 손기욱은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에 반해 머리까지 잘 말리고 방으로 돌아온 연경은 단잠을 잤다.잠들기 전 방금 전 있었던 일을 회상했지만 아무런 실수가 없었다는 것을 확인하니 시름이 놓였다.물론 손기욱의 거칠었던 손길을 떠올리면 저도 모르게 가슴이 뛰기도 했다.금욕적이고 냉철하게만 보였던 무안 후작이 하룻밤을 함께 보낸 이후로 이렇게까지 그 여인을 총애할 줄이야. 앞으로 그가 이런 식으로 그의 정실 부인을 총애할 것을 생각하니 조금 질투가 나기도 했다.그러나 그의 첩실만 되어도 반평생은 편하게 흘러갈 것이니 다른 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물론 그가 앞으로 맞을 부인이 선한 사람이어서 그녀를 괴롭히지 않아야 가능한 일이었다.연경은 저도 모르게 용의백가의 기요를 떠올렸다. 전생에는 그녀와 거의 접점이 없어서 그저 고상하고 오만한 사람이지만 재능이 넘치는 사람이란 것만 알고 있었다. 연경은 손유민의 통방이 된 이후 늘 송지운의 괴롭힘을 당했는데 그 소문이 기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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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2화

손기욱은 괜히 태복을 한번 흘겨보고는 발로 정강이를 걷어찼다.태복은 재빨리 옆으로 피하며 그에게 말했다.“어제 장씨 어멈이 제게 그러더군요. 연경이한테 시간 맞춰 금수원에 가서 음식을 만들어드리는 걸 잊지 말라고 전하라고요. 그러지 않으면 작은 마님께서 또 송학당으로 달려가실 테니까요.”그 애기를 들은 손기욱은 더 화가 치밀었다.계산을 해보니 겨우 하룻밤 자고 반나절은 금수원을 위해 써야 한다니.연경이 금수원으로 떠나자 손기욱은 저택을 나갔고 저녁에 그가 돌아왔을 때 연경은 이미 송학당으로 돌아간 후였다.앞으로 목욕할 때면 어젯밤 보았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릴 것을 생각하니 이날도 손기욱은 제대로 잠들 수 없었다.다음 날 아침, 그는 일찍부터 송학당을 찾아갔다.장씨 어멈이 한창 연경에게 오늘은 금수원에 일찍 가라고 당부하고 있었다. 손기욱을 본 노부인은 곱지 않게 그를 흘겼다.어제 연경이 매화당에 갔을 때는 문안 인사를 오지 않더니 연경이 돌아오니 곧바로 달려오는 그의 모습에 기가 찼다. 아들과 소원해진 사이를 회복하고 싶지만 그가 한낱 시종만 싸고 도니 화가 치밀었다.당부를 들은 연경은 손기욱에겐 시선도 못 주고 금수원으로 갔다.노부인은 연경을 따라 자리를 뜨려는 손기욱을 불러세웠다.“오늘 사돈댁에서 오신다는데 네가 직접 맞이하거라.”손기욱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어머니, 저는 오늘 일이 있어 외출해야 합니다. 하물며 저는 그 사람들과 동년배도 아닌데 할 얘기가 많을 것 같지도 않군요.”노부인은 그가 자신을 원망한다고 생각해서 불쾌한 어투로 말했다.“유민이를 네 양자로 삼기로 한 것은 우리만 좋자고 한 결정이 아니었다. 무안 후작가에 유능한 후계가 없어서는 안 되고 유민이는 일족의 아이들 중에 가장 글공부에 뛰어난 아이였다. 외모도 준수하고 성격도 사근사근해서 그 아이를 데려온 거였어.”노후작도 눈을 부릅뜨고 손기욱에게 호통쳤다.“그때 네가 우리 말 듣고 경성에서 조용히 지냈으면 그럴 일도 없었을 것을. 온 경성 사람들이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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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3화

연경은 지금까지 살면서 나한테 기대라고 말해준 사람이 없었다.그런데 오늘 손기욱이 그렇게 말해준 것이다.난생 처음으로 그녀는 큰 사고만 치지 않는다면 괴롭힘을 당하지 않고 공정한 대우를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평소처럼 송지운에게 인사를 올린 후, 주방으로 가서 음식을 만들었다.그녀에게 요리를 배우러 온 사람은 여전히 명월이었다. 채련은 그날 이후 손유민의 품에 안겼다고 한다. 채련과 재미를 본 손유민은 목석 같은 명월에게 싫증을 느끼고 요즘은 채련만 총애하고 있다고 했다. 명월은 연경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기에 금수원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상세히 그녀에게 알려주었다.“내가 조금 전 간식을 들고 안방으로 갔는데 경양 후작과 후작 부인이 오셨더라. 그리고 풍 이랑도 거기 계셨어.”연경은 긴장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출산 경험이 있는 이랑은 다 온다고 하지 않았어요? 왜 풍 이랑만 온 거죠?”명월은 고개를 저었다.“후작 부인께서 네게 물으실 것이 있다고 안방으로 오라고 하셨어. 안색이 좋지 않으니 조심해.”연경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쟁반에 간식을 담아 안방으로 가서 예를 행했다.방 안에는 경양 후작 부부와 송지운, 그리고 지연이 있었다.올해 나이 사십인 경양 후작은 마른 체형에 진한 눈썹, 살짝 찢어진 눈매의 소유자로 젊었을 때는 한 외모 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기침이 심해지고 건강 상태가 별로 좋지 못했는데 부인은 그가 젊었을 때 너무 방탕한 생활을 하여 몸의 근간이 무너졌다고 뒤에서 늘 말하고는 했다.경양 후작 부인은 각박한 인상에 평소에도 아랫사람들을 박대하기 좋아하는 인물이었다.부인의 뒤에는 풍 이랑이 서 있었는데 여전히 젊고 탱탱한 피부에 부드러운 인상의 여인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초조하게 손수건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후작 부인은 경멸에 찬 눈으로 연경을 힐끗 보더니 말했다.“재주도 좋아. 노부인의 눈에 들다니.”“다 작은 마님 덕분이죠. 작은 마님께서 효성이 지극하시어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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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4화

하얀 손가락이 순식간에 시뻘겋게 부어올랐지만, 풍 이랑은 아랑곳하지 않고 부인에게 찻잔을 건넸다.“부인, 차가 좀 뜨겁습니다. 악!”후작 부인은 찻잔을 받는 척하면서 슬쩍 밀어 뜨거운 찻물을 풍 이랑의 손에 쏟았다.몰려오는 극심한 통증에 풍 이랑은 더는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경양 후작은 긴장한 얼굴로 벌떡 일어섰지만 부인의 눈치를 살피고는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난 사위를 좀 만나러 가겠네. 글공부는 잘 되고 있는지 물어보고 오리다.”결국 나약한 후작은 풍 이랑을 도와주지 않고 황급히 도망쳐 버렸다.송지운은 통쾌한 얼굴로 이 모든 걸 감상하다가 뒤늦게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왜 그렇게 비명을 지르고 그러세요? 놀랐잖아요.”후작 부인은 고개를 돌리고 부드러운 어투로 그녀에게 말했다.“이제 넌 홀몸이 아니니 매사에 조심해야지.”말을 마친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풍 이랑에게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어멈, 이년을 끌고 가서 예법부터 다시 가르치거라!”연경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침묵만 지키고 있었지만 이미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피가 스며나오고 있었다.어찌 모를 수 잇겠는가? 풍 이랑은 연경이 조금이라도 안 좋은 소리를 안 듣게 하려고 일부러 나선 거였다. 기억을 잃었다는 건 거짓말이고 그것 역시 자식을 지키고자 생각해낸 풍 이랑의 수였다.그녀가 기억을 잃은 이후로 후작 부인은 일부러 그녀의 앞에서 풍 이랑을 면박 주고 까내렸지만 그녀는 일부러 기억이 안 나는 척했다.그날 이후로 그들 모녀는 송지운 모녀로부터 갖은 학대와 폭언을 감당해야 했지만 풍 이랑에 비하면 연경은 훨씬 나은 편이었다.옆 방에서 소리가 들려왔지만 풍 이랑의 비명은 들려오지 않았다.후작 부인은 연경을 빤히 노려보며 다시 물었다.“기억이 전혀 안 나느냐?”연경은 힘겹게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부인께서 제게 하신 말씀은 제게는 그저 옛날 이야기 같게 느껴질 뿐입니다. 소인은 고아라 하지 않았습니까? 풍 이랑이 거짓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잖아요.”송지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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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5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경양 후작 부인은 눈빛으로 연경을 재촉했다.그러나 연경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후작 부인이 비웃듯 말했다.“왜? 이제 내 지시도 따르지 않겠다는 것이냐?”“부인, 노여움을 거두어주십시오. 소인은 이제 무안 후작가의 시종이니 절대로 경양 후작가의 이랑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연경은 이럴수록 후작 부인과 송지운의 의심을 살 걸 알면서도 생모를 때리는 일은 절대 할 수 없었다.부인과 송지운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고는 콧방귀를 뀌었다.“이래도 기억이 안 나?”후작 부인이 어멈에게 눈짓하자 곧이어 풍 이랑이 안방으로 끌려왔다.그녀의 얼굴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는데 두 손만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그녀는 연경에게 힐끗 시선을 주고는 후작 부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죄를 사하여 주십시오, 부인. 소첩이 잘못했습니다. 허나 지금은 무안 후작부에 있으니 다른 시종들이 혹시 보고 경양 후작가의 명성이 더럽혀질까 두렵습니다. 모든 건 저택으로 돌아간 후에 소첩을 벌하여 주십시오.”그녀는 옆방으로 끌려간 이후에 계속 잘못을 빌었지만 어멈은 작정한 듯이 그녀의 손바닥을 때렸다. 어떻게든 비명을 지르게 하려는 수작이었으나 풍 이랑은 그럴 수 없었다.처음에는 부인이 외손주도 생길 테니 송지운 뱃속의 아이를 위해 덕을 쌓고 싶어서 자신을 데리고 와 연경에게 보여주려나 생각했는데 그건 착각이었다.그러나 독이 든 사과인 줄 알면서도 풍 이랑은 거절할 수 없었다. 그녀는 연경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와서 직접 보고 싶었다.“이제야 고집을 내려놓겠어? 연경이한테 널 훈계하라고 했더니 저년이 감히 거절을 하더라고.”후작 부인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짝!송지운의 눈짓을 받은 지연이 다가와 연경의 귀뺨을 때렸다.명월과 채련은 모두 통방 시녀가 되고 연경마저 송학당으로 간 마당에 혼자만 아무런 진전이 없으니 화풀이 상대가 필요했던 지연은 온 힘을 실어서 연경을 때렸다.연경의 얼굴에는 선명한 손자국이 났다.지연이 기고만장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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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화

한참이 지난 후에야 지연은 얼굴을 붙잡고 울기 시작했다.“부인, 작은 마님, 저년이 저를 때렸어요!”풍 이랑도 놀라서 멍하니 연경을 바라보았다.분노한 송지운이 소리쳤다.“연경, 네가 감히!”후작 부인도 한참 후에야 상황을 파악하고 호통쳤다.“고얀 년! 누가 내 명을 함부로 거스르라고 했지?”연경은 속으로 무안 후작이 그래도 된다 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작은 마님, 저희는 이제 무안 후작가 사람입니다. 지연은 무안 후작가 시종인 저를 종용하여 경양 후작가의 이랑을 손찌검하라 강요했습니다. 누가 들어도 무례하고 예법에 어긋나는 행위이지요. 소문이 노부인 귀에 들린다면 노부인께선 지연이 딴마음을 품었다고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지연이 소리쳤다.“아닙니다! 작은 마님, 이년이 이간질하는 거예요!”“입만 살았구나!”바람기 많은 경양 후작 때문에 온갖 여인을 상대해 본 후작 부인은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고개를 돌린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긴 송지운을 보고 눈을 흘기며 고함쳤다.“무능한 것! 뭘 멍하니 서 있어? 당장 저 년을 잡지 않고?”후작 부인이 진심으로 화났음을 인지한 풍 이랑은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부인, 노여움을 거두십시오. 둘째 아씨는 회임한 몸이니 자극을 받으면 몸에 좋지 않습니다. 소첩이 잘못한 일은 저택에 돌아가 달게 벌을 받겠습니다. 무안 후작가에서 일을 크게 만들지 마십시오. 두 가문 사이에 간극이 생기면 곤란해지는 건 둘째 아씨뿐입니다.”송지운은 그저 연경을 다시 금수원으로 불러오고 싶었을 뿐, 일을 크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그녀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어머니를 바라보며 말했다.“어머니, 연경은 지금 노부인의 시종이니 함부로 때리거나 욕해서는 안 됩니다.”후작 부인은 한심하다는 듯이 딸을 흘겼다.“저년이 네 앞에서 시건방을 떨고 네 사람을 쳤는데 왜 훈계하면 안 된다는 거지? 노부인이 한낱 시종 때문에 널 꾸중할 것 같으냐!”말귀를 알아들은 송지운은 배를 감싸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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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7화

노부인은 처소에서 차를 마시는 중이고 노후작은 서재에서 경양 후작과 손유민과 담화를 나누고 있었다.송지운이 배가 아프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그들은 급하게 금수원으로 달려갔다.안방에 도착하니 연경은 어멈을 깔고 앉아 매질을 하고 있었다. 평소에 후작 부인의 지시를 듣고 어머니에게 행패를 부리던 노파이니 이 기회에 톡톡히 복수하고 싶었다.어멈의 얼굴은 뻘겋게 부어 있었고 입가에서는 피가 스며 나왔다.송지운은 자신의 허락 없이는 아무도 안방에 들지 말라고 미리 지시를 해두었기에 시종들은 소리를 듣고도 감히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무례하다! 어서 그만두지 못할까!”노부인은 분노한 목소리로 호통치며 경양 후작의 눈치를 살폈다.경양 후작은 연경을 힐끗 보고는 담담한 어투로 물었다.“어떻게 된 일이냐? 지운이는 어떻게 되었어?”맞아서 처참한 몰골이 된 어멈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나으리….”그런데 어멈의 위에 있던 연경이 와 하고 울음을 터뜨리더니 노부인의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노부인, 작은 마님의 억울함을 풀어주십시오!”갑작스러운 상황에 어멈은 물론이고 풍 이랑마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손유민은 그러거나 말거나 안쓰러운 눈길로 연경의 무릎을 바라보고 있었다.연경은 울며 고자질했다.“후작 부인께서는 작은 마님께서 이미 소인을 노부인께 보낸 걸 모르고 소인에게 이것저것 당부하시길래 소인은 하는 수없이 후작 부인에게 사실을 고했습니다. 그런데 지연이 다짜고짜 소인의 귀뺨을 때리며 제가 후작 부인께 무례를 저질렀다고 몰아가는 거예요. 그 바람에 작은 마님께서 화들짝 놀라시고 갑자기 배가 아프다 하셨습니다.”“소인은 지연이 무례하다 생각해서 귀뺨을 한대 쳤고요.”노부인과 함께 안으로 들어온 지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박했다.“허튼소리! 분명 네가 후작 부인의 지시를 거부해서 내가 널 혼낸 건데!”장씨 어멈은 그런 그녀를 흘겨보며 주의를 주었다.“뭘 그렇게 소리를 질러? 옳고 그름은 어련히 노부인께서 판단하실 것이다!”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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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화

한줄기 눈물이 연경의 볼을 타고 흘렀다. 꽉 쥐고 있던 손에서도 힘이 풀렸다.후작 부인은 안방에서 송지운과 얘기를 나누느라 바깥의 소리를 들었지만 어멈이 연경을 패고 있는 줄만 알고 있었다. 의원이 송지운의 진백을 하러 들어왔을 때에야 후작 부인은 처참한 몰골이 된 어멈을 발견했다.그녀는 충격에 빠진 목소리로 물었다.“대체 누가 자넬 이렇게 만들었어?”어멈은 울먹이며 연경을 가리켰다.장씨 어멈은 웃으며 상황을 이야기했다.“경과를 지켜본 풍 이랑께서는 사실이라고 하였습니다.”후작 부인은 음산한 눈길로 풍 이랑을 노려보았다. 풍 이랑은 자신을 잡고 있는 경양 후작의 손길을 밀치고 뒤로 한걸음 물러서서 고개를 숙였다.경양 후작부 이랑이 어멈의 잘못이라고 하니 현장에 없던 후작 부인도 고집을 부릴 수는 없었다.집안의 추문을 사돈 앞에서 얘기할 수도 없으니, 입을 다물 수박에 없었다. 연경은 음침하게 굳은 후작 부인의 얼굴을 보자 걱정스러운 눈길로 풍 이랑을 바라봤다.“그래도 오랜 시간 내 곁을 지킨 어멈인데 아무리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내가 돌아가서 훈계할 일이지 네가 뭐라고 손찌검을 했단 말이냐?”그 말을 들은 노부인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며 연경에게 물었다.“그건 부인의 말이 맞네. 연경, 네 잘못을 알겠느냐?”연경이 뭐라 답하려는데 누군가가 질풍처럼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섰다.손기욱은 멀리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연경을 보자마자 괴롭힘을 당한 줄 알고 성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집안이 참 시끌벅적하군요!”노후작은 안방 여인들의 일에 끼기 싫어 침묵을 지키던 차에 손기욱을 보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양 지휘사와 의논할 게 있다 하지 않았느냐? 왜 이리 빨리 돌아왔어?”“사돈댁에서 방문하셨는데 당연히 돌아와서 맞이해야지요.”말을 마친 손기욱은 연경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 옆에 얼굴이 엉망이 된 어멈을 보자 그제야 표정을 조금 풀었다.그는 조용히 연경의 상태를 살폈다.뻘겋게 부은 그녀의 두 손을 보자 그는 이유도 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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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화

후작 부인은 딸과 얼마 나이 차이도 나지 않는 사돈이 자신의 어멈을 나무라는 모습을 보자 피가 거꾸로 솟았다.일전에 송지운이 친정에 와서 하소연할 때는 그녀가 조심성이 없어 시아버지의 눈밖에 났다고 생각하고 꾸지람만 하고 돌려보냈는데 직접 겪어 보니 송지운이 얼마나 억울했을지 짐작이 갔다.그러나 같은 후작가라고 해도 경양 후작가와 무안 후작가는 격이 달랐다.경양 후작가는 삼대째 이렇다할 공적을 세우지 못했고 경양 후작의 추문이 온 경성에 퍼지다 보니 황제는 작위를 강등시킬 생각도 있었다. 그동안 후작 부인은 친정에서 가져온 혼수로 겨우겨우 품위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수입은 없고 지출만 많으니 점점 가세가 기울고 있었다.장원급제한 큰 사위는 진사가 되기 전에는 한림원에 들어가기 싫고, 내각에 입성할 수 없다면 한림원 입성도 거부하고 있으니 후작 부인은 골치가 아팠다.조금 더 기다려서 큰사위가 공적을 세우면 나아질 거라 기대했지만 큰 사위는 공적이나 부귀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허구헌날 선비들과 어울리며 공상만 펼치고 있으니 갑갑할 따름이었다.그래서 후작 부인은 기대를 송지운에게 걸었다.손기욱의 전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손유민이 곧 작위를 물려받기를 기대했는데 갑자기 손지욱이 살아서 돌아오며 기대는 또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억울한 것 투성이인데 젊지만 폐하께 무한한 신뢰를 받고 있는 사돈에게 대놓고 불만을 표할 수도 없었다.결국 후작 부인은 화를 꾹꾹 눌러참고 말했다.“사돈이 제 사람은 무진장 아낀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제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서 생긴 일이니 누구를 탓할 수야 없지요. 어멈은 그 몰골로 자리를 지키기엔 부적절하니 이만 나가 있거라. 사돈은 아직 미혼이라 안방 여인들의 일에 대하여 잘 모르시는 것 같으니 이해합니다.”비꼬는 듯한 그 말투에 손기욱은 피식 비웃음을 머금었다.노부인은 그가 입을 열면 좋은 말이 안 나올 것을 알기에 다급히 끼어들었다.“지운이는 좀 어떤가?”사람들은 그제야 송지운을 떠올렸다. 의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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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화

자존심이 강한 손유민은 장씨 어멈과 연경이 있는 앞에서 꾸중을 들으니 화가 치밀었다.“아버지도 연경을 도와주셨잖습니까? 저는 그저 이 아이가 억울하게 괴롭힘 당하는 게 안쓰러웠을 뿐입니다.”손기욱은 대놓고 연경의 손에서 연지를 빼앗아 손유민의 품에 던졌다.손유민은 구차하게 그것을 받았다.“내 너보다 오래 살았지만 시종들에게 잘해주는 법을 잘 몰랐구나. 경력으로 치면 장씨 어멈이 가장 오래 우리 저택에서 고생했으니 챙길 거면 장씨 어멈부터 챙겼어야지.”손기욱은 경멸에 찬 눈으로 연지병을 힐끗 보았다.그게 정확히 뭔지는 모르지만 여인의 환심을 사려고 가져온 것이라면 연지나 분 같은 게 틀림없었다.손유민은 주름이 자글자글한 장씨 어멈을 힐끗 보고는 마지못해 연지를 어멈에게 내밀었다.“어멈….”장씨 어멈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작은 마님께서는 휴양 중이니 도련님은 어서 가서 귀빈들을 접대하세요. 나으리와 저는 조금 전 있었던 일에 대해 이 아이에게 상세히 물어볼 게 있습니다.”장씨 어멈이 그렇게까지 말하니 손유민도 왜 손기욱이 굳이 연경에게 다가왔는지 의심하지 않았다.그는 연지를 챙기고 신속히 자리를 떴다.연지는 원래 지연의 입술에 발라주려던 것인데 장씨 어멈의 얼굴을 떠올리자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손기욱은 도망치듯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비꼬듯 말했다.“아버지 어머니께서 고르고 골라 데려온 양자가 미색에 미친 녀석이라니.”장씨 어멈도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도련님은 예전에는 이러지 않으셨습니다. 안 좋은 친구들을 사귀다 보니 물든 것 같네요.”“끼리끼리 모인다고 원래 그런 놈이었던 게지.”손유민은 족보에 이름을 올린 사람이니 장씨 어멈은 연경이 듣는 곳에서 이렇게 그를 까내리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물며 따져보면 명성이 안 좋기로 유명한 사람 중에는 서주행도 있었다.“때리다 손을 다치진 않았느냐?”손기욱은 빨갛게 부은 연경의 손을 보고 이를 갈았다.“그 낯가죽 두꺼운 노친네를 때릴 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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