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시녀의 생존수칙: Chapter 31 - Chapter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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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화

한편, 연경은 그날 이후로 손유민이 좀 조용히 지낼 걸 기대했지만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요즘은 밖에 나가서 한량들을 만나 술자리도 할 수 없으니 저택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고 연경이 시야에 들어오기만 하면 대놓고 끈적이는 눈빛을 보냈다. 연경은 이대로 가다가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손유민은 매번 그녀가 매화당에서 금수원을 돌아가는 길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송지운이 아무리 성격이 불 같아도 매화당 근처에서는 소란을 피우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오늘도 그는 평소처럼 돌산 뒤에서 연경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는 재빨리 연경을 잡고 돌산 뒤로 끌고 가서 탐욕스럽게 그녀의 손을 어루만졌다.“연경아, 최근에 나를 피하고 있는 것 같던데?”“아닙니다, 도련님. 제발 이거 놓고 얘기하세요. 소인 돌아가서 작은 마님이 시킨 수놓이를 해야 한단 말입니다.”연경은 더 이상 지난번처럼 그를 구슬리지 않고 힘껏 그 손을 뿌리쳤다.“넌 언젠가 내 사람이 될 사람이야. 얌전히 있어.”손유민은 음침한 눈빛으로 빠져나가려는 연경의 손을 다시 잡았다.연경이 미처 뿌리치기도 전에 그는 은팔찌 하나를 거칠게 손목에 끼워주었다. 정교한 팔찌에는 작은 방울이 달려 있어서 움직일 때마다 소리가 났다.연경은 비명을 지르려다가 다급히 입을 틀어막았다.손기욱은 취옥헌에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비명소리가 들려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조태복을 다그쳤다.“뭘 멍하니 서 있어? 어서 가서 차를 내오지 않고. 이따가 주행이 올 거니까 나가서 마중도 하고.”조태복이 자리를 뜬 후, 그는 재빨리 3층으로 올라갔다. 소리가 났던 쪽을 바라보니 손유민과 연경이 서로 얽혀 옥신각신 하는 모습이 보였다.연경은 산을 등지고 서서 손유민의 양팔에 갇힌 채,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었다.손유민은 이미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체향에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였다. 그는 탐욕스럽게 그녀의 얼굴을 매만지려 손을 뻗었다. 연경은 재빨리 얼굴을 피했지만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손유민은 군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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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화

뒤늦게 취옥헌으로 온 서주행은 음침한 얼굴을 하고 서 있는 벗을 보자 농담 던지듯이 그에게 물었다.“자네 뭐 기분 안 좋은 일 있어? 있으면 얘기해 봐. 나도 좀 웃게.”손기욱은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연경을 우습게 바라보며 말했다.“지조도 없는 여인이 뭐 그리 불쌍하다고.”서주행의 입가에서 미소가 싹 사라졌다.“진이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이미 혼인을 했으니 성심성의로 서방만 바라보겠다고 말한 사람이야. 그 아이의 서방이 우리 사이의 일을 알고 오해했다는 걸 들어서 내가 먼저 찾아간 거야. 그런데 그 사내가 그렇게 거칠게 나올 줄을 누가 알았겠어?”손기욱은 애처롭게 이쪽을 바라보는 연경을 보고는 이를 갈며 말했다.“지조도 없고 가식적인 몹쓸 사람이지.”서주행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진이를 그렇게 말하지 마! 자넨 아무것도 몰라! 자네 어머니 생신이 내일이 아니었다면 오늘 여기 오는 일도 없었을 텐데!”손기욱은 여전히 무심한 얼굴로 창밖을 구경했다. 손유민의 품에서 벗어난 연경이 멀리 도망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곧이어 계단에서 퉁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려보니 서주행이 목발을 짚고 힘겹게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내일은 노부인의 마흔다섯 번째 생신날이었다. 일찌감치 저택에서 가족들만의 연회를 열기로 정해졌고 서주행은 손기욱의 벗으로서 유일하게 초대받은 손님이었다. 그러나 추문에 휩싸인 상황이라 괜히 찾아가서 노부인의 심기를 건드릴까 걱정되어 하루 전에 선물만 전달하러 방문한 것이었다.손기욱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으며 재빨리 그를 따라갔다.그가 서주행의 분노를 풀어주고 다시 매화당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한 시진이 지난 후였다.연경은 혼이 나간 채로 정원에 서 있었다. 그는 그런 그녀를 모른 체한 채, 싸늘하게 그 옆을 지나쳤다.“나으리! 소인,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연경은 조금 전 광경을 손기욱이 봤다고 확신했다. 자신이 손유민의 손을 깨문 것에 대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불안했기에 금수원으로 돌아가는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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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화

손기욱은 말없이 그녀의 손을 끌고 방으로 들어갔다.보폭이 작은 연경은 비틀거리며 그에게 끌려갔다.그 모습을 본 조태복은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그들이 안으로 들어간 후, 재빨리 문을 닫고 밖에서 망을 보았다.손기욱은 신변에 조태복을 제외하고 사람을 두지 않았기에 방 안에는 그와 연경 둘만 있게 되었다.그는 장롱에서 상처 치료제를 꺼내 거칠게 그녀의 상처에 대고 뿌렸다.연경은 알싸한 고통에 인상을 찌푸렸다.손기욱은 동작을 멈추고 곧 울 것 같은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약을 발라주기 시작했다.“아까는 그리 담대하게 굴더니 고작 이 정도로 아프다고 울어?”연경은 자신을 잡고 있는 그의 큰 손을 바라보며 손유민과 있을 때와는 다른 안정감을 느꼈다.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녀는 흐느끼듯 말했다.“소인은 일개 시종에 불과합니다. 가끔은 원하지 않아도 따라야 할 때가 많은 법이지요.”최근 들어 유난히 쌀쌀맞아진 손기욱의 태도에 그녀는 불안감이 앞섰다. 오늘 일을 겪으면서 그녀는 그가 왜 매번 손을 씻고 오라고 했는지 연유를 알 것 같았다. 손기욱은 손유민과는 다른 부류의 사람이었다. 비록 시종이기는 하나, 그녀를 멋대로 양자에게 노리개로 던져줄 사람은 아니었다.이는 연경 입장에서는 감사할 일이었다.손유민의 악행을 고자질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입장을 얘기할 수는 있었다. 피를 보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그 팔찌를 뺀 행동이 가장 확고한 입장 표명이었다.손기욱은 그 말을 듣고 약에 취한 그날, 강제로 그녀를 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때도 아마 그녀는 싫었을 것이다.“소인을 불쌍히 여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으리. 모시는 분들 중에 아랫사람의 상처에 약을 발라주는 주인은 나으리가 처음입니다. 이렇게 좋은 분을 모시게 된 것도 소인의 복이겠지요. 앞으로는 성심성의껏 나으리를 모시겠습니다.”연경은 울먹이며 자신의 마음을 전달했다.손기욱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난 오랜 시간 전장에서 병사들과 함께 구르며 전쟁을 치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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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연경은 불안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손기욱은 그 자리에서 태복을 불렀다.“가서 유민이를 불러오거라.”조태복은 연경과 함께 금수원으로 갔다. 최근 들어 그녀가 만든 간식을 적지 않게 얻어먹었기에 태복은 그녀에게 꽤나 호감이 생긴 편이었다. 그래서 그는 오늘 본 상황이 더 탐탁치 않았다.“너는 본분을 지킬 줄 아는 아이인 줄 알았는데 어찌 도련님을 모시는 사람이면서 나으리에게도 꼬리를 친단 말이냐?”연경은 입만 뻐금거릴 뿐,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다.“내 며칠 전 서 의원께서 연모한다던 그 처자의 얘기를 들었지. 난 그 처자가 신분 상승을 꾀하다가 결국엔 머나먼 지방으로 시집을 간 거라고 본다. 귀한 분들을 모시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더욱더 주제를 알아야지. 평범한 사람을 만나 혼인하는 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야.”연경은 그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저도 그러고 싶네요.”태복은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하자, 냉담한 눈빛으로 그녀를 힐끔 쳐다보고는 입을 다물었다.연경은 이제 더 이상 태복이 자신을 살갑게 대하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서로 뜻이 다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손유민은 의아한 얼굴로 매화당에 왔다가 손기욱이 들고 있는 팔찌를 보고는 얼굴색이 확 변했다.손기욱은 변명할 틈도 주지 않고 팔찌를 그에게 던졌다. 은방울이 짤랑짤랑 거슬리게 울렸다. 좀 전에 들었던 방울소리는 미묘한 환상을 일으키게 했다면, 지금은 그만큼이나 두려운 소리였다.손기욱은 그가 글공부에 열중하지 않고 기생집 풍기를 집안에 들여왔다고 호되게 꾸짖었다. 그리고 몇번이나 타일렀음에도 반성할 기미가 전혀 없다고 호통치고는 술과 여색에 빠져 빈둥거린다며 마구 욕을 퍼부었다.금수원으로 돌아온 손유민의 표정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살벌했다.그는 연경을 불러내서 낮은 소리로 물었다.“너, 아버지께 고자질했어?”연경은 그가 감히 손기욱에게 직접 따지지는 않았을 거라 확신하고 말했다.“소인이 어찌 감히 그런 불경한 짓을 했겠습니까? 파… 팔찌가 짤랑거려서 나으리의 귀에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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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화

“어제 네가 깨문 것이겠지.”손유민은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그 뒤로 송지운의 교성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일이 끝난 후, 두 사람은 뜨거운 물을 대령하라 명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송지운의 분노가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목욕을 해야겠으니 뜨거운 물 준비해!”손유민은 평소처럼 송지운을 안고 목욕실로 들어갔다. 평소라면 지연이 옆에서 시중을 들었겠지만 송지운은 연경에게 눈빛으로 다가오지 말라고 경고를 주었다.손유민이 잠에 든 후, 송지운은 연경을 따로 불렀다.“도련님의 팔에 난 상처, 네가 물었어?”이빨 자국이 너무 선명해 송지운은 둘이 낮에 뒹군 게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ㅅㅜ 없었다.“소인은 그런 적 없습니다.”“아버님이 갑자기 도련님을 불러서 꾸중하신 이유가 뭐야? 너희들이 추잡한 짓을 하는 걸 보셨기 때문 아니야?”송지운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가능성이 가장 큰 것 같았다.연경은 평소처럼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작은 마님, 오해세요. 나으리께서 도련님이 요즘 글공부는 얼마나 하느냐고 물으셨는데 소인이 잠시 딴 생각을 하느라 대답하지 못해서 그렇게 된 거예요.”송지운은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분명 이년이 깨문 게 맞는데!’요즘 손유민은 거의 저택에서 두문불출하고 있었다. 저택 안에서 가장 의심이 가는 사람은 연경 말고 없었다.그녀는 둘이 짜고 자신을 속였다는 모멸감에 분노가 치밀어 물 한 바가지를 그대로 연경의 얼굴에 들이부었다.뜨거운 물이 얼굴을 적시고 목을 타고 흘러 옷까지 적셨다.송지운은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또 한 바가지를 부었다.“옷 갈아입을 테니 시중이나 들어!”연경은 재빨리 얼굴과 손에 묻은 물을 닦은 뒤, 조심스레 송지운을 부축해서 일으켰다.젖은 옷이 몸에 착 달라붙으니 기온이 차서 곧바로 살얼음이 꼈다. 연경은 추위에 오들오들 떨려왔다. 침상에서 잠든 숨소리가 들려올 때에야 그녀는 조심스레 편전으로 가서 젖은 옷을 벗고 이불 안으로 몸을 뉘였다.편전은 야간 순번을 서는 시종들을 위해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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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화

연경은 숨 돌릴 틈도 없이 바쁘게 돌아쳤다.사람들이 연회상에 착석한 후에야 그녀는 잠깐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곧이어 송지운의 따가운 눈총이 이어졌고 그녀는 하는 수없이 그쪽으로 가야 했다.가족 연회다 보니 남녀 모두 한상에 착석했고 중간에만 병풍을 두었다.귀하신 분들이 모두 착석하자 시종들은 줄을 지어 다가가서 입가심을 할 양치물을 들고 들어왔다.연경은 송지운의 양치물을 받은 후에 뒤돌아섰다. 그런데 어디서 튀어나온 발에 그만 발목을 접지르며 휘청거리다가 양치물이 장씨에게 쏟아질 위기가 찾아왔다.연경은 얼굴에 양칫물을 붓지 않으려고 손에 꽉 힘을 주다가 그만 장씨와 어깨를 부딪치고 말았다.장씨가 불쾌한 듯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부라렸다.“뭐 하는 짓이야!”가문의 셋째인 노후작은 위로 두 형님을 두고 있었다. 둘 다 별다른 업적 없이 노후작의 등골만 빼먹다가 손기욱이 작위를 물려받은 이후로 친척들에게 더 이상 후작가의 이름을 빌려 방종을 저지르지 말라고 경고한 이후로 그리 편치 않은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장씨는 큰댁의 손자며느리였는데 노후작 부부가 손기욱의 양자를 간택할 시에 그녀의 부군도 후보에 있었다. 그래서 장씨는 송지운 내외가 자신들이 누려야 할 부귀영화를 가로챘다는 생각에 불만이 많았다. 하필이면 송지운의 시종인 연경이 자신의 어깨를 부딪쳤으니 장씨 입장에서는 분풀이할 기회가 생긴 격이었다.앙칼진 목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이쪽으로 쏠렸다.연경은 재빨리 고개를 숙이며 사죄했다.“송구합니다, 마님. 소인이 그만 발을 헛디뎌서 결례를 범했으니 너그러이 용서하여 주십시오.”장씨는 그런 연경을 곱지 않게 흘기고는 비아냥거리듯 말했다.“대체 시종을 어떻게 가르쳤기에 이렇게 예의가 없어? 아이고 팔 아파라.”송지운은 음침한 얼굴로 연경을 노려보고는 말했다.“형님, 오늘은 할머님의 생신을 위하여 모인 자리니 일단 식사하시고 저 아이를 벌하시든 마음대로 하세요.”장씨는 오늘따라 고분고분한 송지운의 태도에 더 이상 언성을 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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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화

곧이어 음식을 내오는 동안 연경은 귀를 쫑긋 세우며 사방을 경계했다. 이따금씩 의도적인 발길질이 그녀를 향했지만 그 덕분에 무사히 피해갈 수 있었다.연회가 절반쯤 진행되었을 때, 그녀는 이미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장씨와 송지운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팔꿈치로 연경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연경은 갑자기 전해진 통증에 그만 상에 젓가락을 떨어뜨리고 말았다.노부인은 굳은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았다.연경은 정신을 가다듬고 젓가락을 쥔 손에 힘을 꽉 주었다.그러나 이어지는 상황은 더 절망적이었다.음식을 내오던 어린 시녀가 갑자기 그녀의 앞에서 발을 삐끗하더니 들고 있던 뜨거운 삼계탕을 그대로 연경의 등 뒤에 부어버렸다.갑작스러운 상황에 연경은 그대로 앞으로 엎어지면서 장씨에게로 쓰러졌다.국물은 그대로 장씨의 의복을 적시고는 바닥으로 떨어졌다.연회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연경은 잔등이 불타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으나, 꾹 참고 무릎을 꿇었다.“소인이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아무리 인자한 주인이라고 해도 일개 시종이 귀빈의 몸에 엎어졌고 이로 인해 귀빈의 의복까지 젖었으니 엄벌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하필 연경이 무릎을 꿇은 바닥에는 깨진 자기 조각들까지 있었다.장씨는 국물에 더럽혀진 치마를 보고는 자신의 심복에게 눈치를 줬다. 뜻을 전달받은 시종이 다가와 연경의 귀뺨을 쳤다.연경은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매를 감내했다.“소인이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죄다 소인의 잘못입니다.”노부인의 얼굴도 분노로 뻘겋게 달아올랐다.“뭘 멍하니 서 있어? 빨리 가서 옷을 갈아입히지 않고?”송지운은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장씨를 부축해서 밖으로 나갔다.사람들의 시선은 다시 연경에게로 쏠렸다.노부인은 불쾌한 표정으로 콧방귀를 뀌었다.노부인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연경의 앞으로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웠다.“오늘 같이 기쁜 날에 왜 화를 내시고 그러세요, 어머니.”“노부인, 소인은….”연경은 이 기회를 틈타 사죄하려 했으나 차가운 목소리가 그녀의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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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화

손기욱은 뒷짐을 지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가서 옷부터 갈아입어.”“아무리 팔은 안쪽으로 굽는다지만 정말 너무하는군. 큰집 손주며느리가 한낱 시종보다 못한 취급을 받아야 한단 말이오? 이만 돌아가겠네!”큰댁 노부인은 이때가 손기욱의 기를 꺾을 기회다 싶어 불쾌한 얼굴로 일어섰다. 연경은 이제부터는 손씨 가문 내부의 싸움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조용히 자리를 떴다.“채련이 네 옷을 가지러 갔으니 넌 나를 따라와!”밖으로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지연이 다가와 연경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잔치는 불쾌한 분위기에서 해산되었다. 송지운은 울며 노부인을 찾아와 사죄드렸다.“다 제가 아랫것을 잘못 가르친 탓입니다, 할머님.”“예,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일년에 한번뿐인 노부인의 생신잔치를 그 아이 때문에 망쳤으니까요. 평소에는 무척 똘똘해 보이더니 오늘은 왜 그렇게 실수가 잦았답니까?”장씨 어멈이 굳은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아… 아마도 얼굴 반반한 것 믿고 자신이 다른 아이들보다 우월하다 생각하나 봅니다. 근래에 할머님과 아버님 곁에서 시중을 들기도 했으니 기가 살았는지 제 말도 잘 듣지를 않아요.”송지운이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노부인은 불쾌한 얼굴로 언성을 높였다.“네가 한낱 아랫것들에게 잡혀 산다는 말이니?”송지운은 난처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렸다.노부인은 잔뜩 억울해하는 그녀를 한참 바라보다가 장씨 어멈에게 눈짓했다. 장씨 어멈은 조용히 방을 나갔다.밖으로 나온 어멈은 굳은 표정을 하고 연경이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연경이 지연에게 이끌려 빈 방으로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채련이 옷을 가지고 들어왔다.연경은 의심의 눈초리로 그들을 경계하며 말했다.“옷은 제가 갈아입을 테니, 수고들 많으셨어요.”그러나 지연과 채련은 나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채련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너 등을 데인 것 같은데 혼자서 약도 못 바르면서 뭘 고집을 피워? 다 같이 금수원에서 일하는 사람들끼리 설마 우리가 너를 해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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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화

지연이 옷에서 들추어낸 것이라고 하며 집어 든 것은 낡은 손수건과 몇 장의 쓰다 만 쪽지였다.연경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물건이라 다급히 고개를 흔들었다.“이건 제 물건이 아니에요.”그러자 지연이 입을 삐죽이며 반박했다.“네 옷에서 나온 물건인데 네 것이 아니라면 다야?”장씨 어멈은 눈살을 찌푸리며 연경을 노려보았다.“내가 저기서 들추어낸 것을 내 눈으로 보았는데 네 것이 아니라니? 저게 뭔데 그리 긴장했느냐?”연경은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어멈, 저건 제 물건이 아니에요. 오늘은 손님이 오신다고 하여 몸에 손수건 한 장만 지니고 나온 게 전부예요.”지금 당장 부인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뻔했다.장씨 어멈은 연회에서 벌어진 일 때문에 이미 연경에게 안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기에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지연은 쪽지를 펼쳐 어멈에게 건넸다.채련과 지연은 글을 아예 모르니 뭐라고 썼는지도 알지 못했다.종이를 건네받은 장씨 어멈은 그저 평범한 애정시인 것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이건 누가 쓴 거니?”그러자 지연이 눈을 깜빡이더니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이거 도련님 글씨 같은데요? 도련님께서 평소에 서재에서 글공부를 하실 때 제가 곁에서 시중을 들어서 잘 알아요.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바로 버리시거든요.”장씨 어멈은 구겨진 종이와 연경을 번갈아보았다.조금 전 울먹이던 송지운의 얼굴이 겹쳐 보이자, 어멈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왜 도련님의 물건을 몰래 간직하고 있지? 너 도련님에게 딴맘을 품고 있는 거니?”“아니, 그런 게 아닙니다!”연경은 억울했지만 지금 이곳에서 그녀를 믿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시종이면 시종 답게 본분을 잊지 말아야지! 작은 마님께선 널 믿고 노부인의 시중까지 들게 하셨는데 넌 은혜를 이딴 식으로 보답해? 똑똑하고 현명한 애인 줄 알았더니 아주 음흉한 마음을 품고 있었구나! 연회를 망친 것도 모자라 이게 무슨 짓이야!”연경은 절망적인 상황에 울고만 싶어졌다.“어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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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화

예를 행한 이후 연경은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장씨 어멈이 노부인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뭐라고 하더니 노부인은 음산한 눈길로 연경을 쏘아보았다.“그걸 가져다가 지운이에게 보여줘.”송지운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할머님, 제게 뭘 보여주시려는 겁니까?”장씨 어멈은 손수건과 쪽지를 건네며 말했다.“이건 연경의 몸에서 수색해 나온 것입니다.”연경은 바닥에 엎드려 조용히 쓴웃음만 지었다.분명 갈아입고 내놓은 옷에서 나온 것인데 지금은 자신의 몸에서 찾아낸 것이 되었으니 의지할 곳 하나 없는 그녀에게 변명의 여지란 없었다.끝없는 절망 앞에 연경은 스스로 결백을 증명하려는 의지조차 포기해 버렸다.송지운이 벌을 준다면 차라리 그냥 받아들이는 게 나았다.송지운은 쪽지를 가져다 자세히 살펴보았다.“서방님의 필적이 맞네요. 그런데 이 손수건은….”그녀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할머니, 이건… 이 색상과 재질 모두 서방님의 옷과 똑 같은 재질입니다. 연경이 바느질 솜씨가 좋아 서방님의 의복을 몇 벌 짓게 하였었는데… 설마 너 남은 천조각으로 네 손수건을 만들었느냐? 천이 필요하면 나한테 말을 하지. 왜 이런 짓을 했느냐?”노부인은 한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넌 눈치가 없느냐? 저 아이가 유민이를 넘보고 있는 거잖니!”그 말을 들은 송지운은 놀란 듯, 비명을 지르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연경을 바라보았다.“도련님이 풍채 좋고 자상하신 분인 건 알지만, 난 어릴 때부터 너를 친자매로 대했거늘. 어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며칠 전에는 일부러 넘어지는 척하며 도련님의 침상에 들어눕더니… 그때 알아봤어야 했어….”그 말은 연경이 손유민을 홀렸다는 완벽한 증거가 되었다.‘앞으로는 내가 널 혼내도 할머님이 뭐라고 하시지 않을 거야.’“뭐라고? 저것이 감히 유민이의 침상에 기어올라갔다는 말이냐? 어찌 이럴 수가!”노부인은 분노한 음성으로 호통쳤다.노후작 부부는 내년 봄에 있을 과거 시험을 무척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금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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