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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시녀의 생존수칙: Chapter 471 - Chapter 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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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1화

소연은 손기욱이 진심이라는 것을 깨닫고 당황한 얼굴로 안으로 달려들어갔다.밖에서 지키고 있던 시종이 그녀의 앞길을 막자, 그녀는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나으리처럼 정직하고 의리를 중요시하는 분이 한 여인의 명성을 이렇게 하찮게 여기실 리 없습니다! 지금 저를 이대로 돌려보내면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겠나이까!”굳게 닫혔던 문이 열리고 음침한 얼굴을 한 손기욱이 밖으로 나왔다.소연은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눈물범벅이 되어 그를 바라보았다.평소에 사내보다 당차고 자신감 넘치던 그녀가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으니 몇몇 시종들은 안쓰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허나 손기욱의 눈빛에는 한치의 동요도 없었다. 그는 혐오스럽다는 듯이 냉랭한 어투로 말했다.“시끄럽다!”짤막한 한마디에 정원에 있던 시종들은 어깨를 움찔 떨었다.연 이랑이 없는 지금, 무안 후작은 또 예전의 싸늘하고 위압감 넘치는 모습으로 돌아갔다. 매화당에서 오래 일한 시종들은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그들은 소연이 더 말을 꺼내기 전에 서로 시선을 주고받고는 그녀를 멀리 끌고 갔다.지금은 예의범절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무안 후작이 이미 내쫓으라고 한 사람인데 이대로 질질 끌다가는 그들마저 쫓겨날 판이었다. 하물며 소연은 늘 자신을 사내들에 비교했으니 이런 세세한 문제는 신경 쓰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한 시진 후, 소연과 그녀의 시종들은 매화당에서 추방되었다.거의 짐 싸서 쫓겨난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소연의 짐들은 제대로 정리도 못한 채, 상자에 담겨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가지 않고 버틸 수도 없었다.소연은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이 저택에 온 이후로 매일이 꿈만 같고 모든 것이 당혹스럽기만 했다.저택을 나오니 주변에 구경을 나온 백성들이 가득했다. 그녀는 갑자기 이곳에 오기 전 아버지가 했던 말씀이 떠올랐다.“손 후작은 누구에게나 각박하게 굴지. 사람이 너무 강직하고 고집이 세. 폐하마저 그 사람을 경계하고 계시지 않니. 하지만 네가 선택한 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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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2화

유왕비의 얼굴은 급속도로 잿빛으로 변해갔고 목안에서는 애달픈 신음만 새어 나오고 있었다.“무안 후작은 이미 네게 넘어왔다고 하지 않았더냐? 해서 내가 먼저 서신을 보내 호의를 표했는데 그쪽에서는 답장 한 번이 없었다!”유왕은 첩자로부터 황제의 병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손기욱에게 서신을 보냈지만 그에게서는 아무런 응답도 받지 못했다. 손기욱의 금위군이 그의 편에 서주지 않는다면 그는 함부로 경성에 돌아갈 수도 없는 몸이었다.그는 한참을 기다려도 유왕비가 답이 없자, 그제야 숨이 넘어가기 직전인 그녀를 보고 짜증스럽게 손을 놓았다.바닥에 추락한 유왕비는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두려운 눈길로 유왕을 바라보았다. 그는 최근 들어 점점 화가 많아지고 광폭하게 변해갔다.“손기욱은 위기가 닥쳤을 때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닙니다. 너무 몰아세우면 뒤탈이 날 것 같아서 주저한 것인데… 차라리 그 첩실을 이곳으로 데려왔어야 했습니다.”유왕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데려오긴 뭘 데려와. 그 첩실은 이미 죽었어.”그는 용의백 세자가 유왕비에게 보낸 서신을 그녀의 얼굴에 던졌다.“예?”유왕비가 경악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다급히 바닥에 떨어진 서신을 주워 펼쳤다. 기종은 똑똑한 사람이었고 그녀가 지시한 일도 완벽히 해냈다. 그는 연경의 사망 원인까지 자세히 알아내서 서신에 적고 그녀가 죽은 후, 무안 후작부의 반응이 어땠는지도 상세히 서신에 적었다.유왕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서신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 모습을 본 유왕은 다시 분노가 치밀었다.“그 첩실이 죽은 게 넌 아주 기분 좋겠구나? 이렇게 되면 손기욱이 또 너에게 빠져서 허우적댈 것 같지?”그는 순간의 충동으로 그녀를 무안 후작부에 보낸 걸 후회하고 있었다. 거리를 나가면 곳곳에 유왕비와 손기욱의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그를 비웃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무력으로 진압해서야 귀에 거슬리는 소리들을 비로소 잠재울 수 있었다.유왕비는 살벌한 그의 눈빛을 보고 겁에 질려 마른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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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3화

그녀는 토론에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관병들이 와서 그녀의 통관문을 수색했다.일전에 거리에서도 유왕비에 대한 소문들이 무성했는데 수많은 백성들의 입을 무력으로는 모조리 제압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위에서는 유왕에게 아부하는 자들이 이미 소문을 덮었다고 말했지만 소문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고 수고스러운 것은 밑에서 일하는 관병들이었다. 그들은 유왕의 귀에 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 약간의 소문만 돌아도 수색에 출동해야 했다.소녀 단장을 한 수려한 그녀의 얼굴을 보고 통관문을 확인하러 온 관병들은 저도 모르게 그녀를 몇번이고 힐끔거렸다.치풍은 그 모습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그들이 떠난 후, 그는 조심스레 연경에게 제안했다.“아씨, 오늘은 여기서 묵고 내일 아침 수로를 통해 유주를 떠날 생각입니다. 뱃멀미를 하시거나 하진 않습니까? 괜찮으시겠어요?”“그렇게 하거라. 배를 타본 적이 없어서 멀미를 하는지는 잘 모르겠네.”치풍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향했다.“오늘은 푹 쉬십시오. 필요한 게 있으시다면 바로 소인을 부르시고요.”연경은 모시기 까다로운 상전이 아니었다. 오는 내내 여정이 힘들었을 텐데도 그녀는 힘들다는 말 한번 한 적 없고 별다른 요구를 한 적도 없었다. 편하긴 해도 치풍은 혹 그녀가 자신들이 불편해서 말을 못 꺼내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너희들도 푹 쉬거라. 어디 나가진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외출하더라도 꼭 너희에게 말하고 나가마.”처음 경성을 벗어난 연경에게는 세상이 신기하기만 했지만 호기심 때문에 일을 그르칠 성격은 아니었다.한편, 몸놀림이 재빠른 한 사내가 유왕비가 그린 초상화를 들고 왕부에서 나왔다.그는 짐을 챙기러 집으로 가다가 관아에 있는 지인에게 들러 안부를 나누었다.하필 그 지인은 방금 전에 객잔에서 돌아온 관병이었다. 그는 사내의 손에 들린 초상화를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더니 말했다.“이 미인을 내 어디서 본 것 같은데?”사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게 무슨 헛소리야? 자네가 언제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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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4화

‘역시 살아 있었던 건가?’“소인이 눈으로 직접 확인한 건 아니지만 객잔주와 관병인 지인에게 확인한 결과, 초상화의 여인이 맞다고 합니다. 혹여 일을 그르칠까 일단 먼저 보고하러 돌아왔습니다.”유왕비의 눈빛이 순간 떨렸다.“정말 내 예상이 맞았던 걸까?”그녀는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만약에 가짜 죽음이라면 목적이 뭘까?하지만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그녀는 시종을 보내 오측비의 처소에 있는 유왕에게 소식을 전했다.유왕은 한창 오측비와 뜨거운 시간을 보내던 와중에 유왕비가 급한 일로 찾는다는 소식을 접했다.오측비는 유왕의 품에 안겨 그의 손을 잡고 놓아주질 않았다.“왕야, 가슴이 갑갑합니다.”말을 마친 그녀는 자신의 시녀에게 눈빛을 보냈다.잠시 후, 유왕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 전에 시녀가 귀여운 남자아이를 안고 안으로 들어왔다. 울고 있던 아이는 유왕을 보자마자 안아달라고 손을 내밀었다.유왕에게는 딸만 셋이고 유일한 아들이 바로 눈앞의 아이였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이 자신을 향해 손을 뻗으니 유왕비의 청은 진작에 잊어버린지 오래였다.유왕비는 한참을 기다려도 유왕이 오지 않으니 점점 조바심이 났다.하지만 밤은 이미 깊었고 왕비인 그녀는 함부로 왕부를 나설 수가 없으니 사내를 시켜 객잔을 잘 감시하라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하는 수없이 내일 아침 일찍 움직이기로 했다.유왕비의 마음 속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증오심이 솟구쳤다.손기욱이 이렇게까지 대단한 사람이 될 줄 알았다면 그때 아무리 힘들어도 그를 기다렸을 것이다.‘조금만 기다렸었더라면….’한편, 월하 객잔.치풍은 부하를 시켜 객잔을 감시 중인 관병과 충돌하게 했다.두 사람은 잠시 말싸움을 벌이다가 시현이 먼저 허리를 숙여 사과하고 점주를 시켜 술까지 대령했다. 관병은 술을 마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볼일을 보러 간다며 자리를 떴다. 치풍은 그가 잠깐 자리를 뜬 사이에 연경을 호송하여 객잔을 떠났다.일행은 그날 밤에 한 표국(鏢局: 고대시기 사람이나 물건을 호송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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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5화

아현과 아민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는 말했다.“걱정 마세요, 아씨. 소 이랑은 이제 저택에 없어요.”소녀들은 손기욱이 소연을 데리고 입궁한 그날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다.당시 손기욱은 소연의 애원을 듣고 잠시 주저했지만 잠깐의 측은지심은 곧바로 접어두었다.소연은 단호한 그의 모습을 보고 당황하여 구경하는 백성들이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에게 무릎을 꿇었다.“나으리, 제게 차 한잔 마실 시간만 주십시오.”손기욱은 싸늘한 눈길로 그녀를 노려보다가 결국 말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갔다.두 사람이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한참 후, 소연은 절망한 얼굴로 시녀들의 부축을 받으며 저택을 나섰다. 손기욱은 친히 그녀를 데리고 궁문 앞까지 갔다.금위군 지휘사 신분을 내려놓은 지금, 그는 더 이상 마음대로 황궁에 드나들 수 없었다.황제와 황후 모두 알현을 거부하니 결국 그는 소연을 무안 후작부의 한 별원으로 보내고 첩실의 신분을 페한다는 상소문을 그날로 황제에게 올려보냈다.이야기를 마친 아현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연경을 달랬다.“아씨, 걱정 마세요. 지금의 매화당은 아주 조용하답니다. 나으리는 침전에서 쉬지 않고 매일 매향원으로 가서 아씨를 그리워하고 계십니다.”연경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내가 걱정할 것은 없지.”소연은 황제가 대신에게 하사한 첩실이고 관례를 통틀어도 그런 사람을 집안에서 내보낼 수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 없었다. 황제가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 이상, 관아에서는 손기욱의 상소문을 받아주지 않을 것이니 소연이 저택에 머무르지 않아도 그녀의 신분은 여전히 무안 후작의 귀첩이었다.그녀는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하물며 언젠가는 그를 위해 첩실을 들여야 하니 소연을 돌려보내지 못한다고 해서 그리 아쉬울 것도 없었다. 다만 앞으로 첩실을 들인다고 하면 소연처럼 거만하고 까다로운 사람 말고 온순한 사람으로 들여야겠다고 작심했다.연경은 두 소녀와 한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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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6화

손기욱은 온몸이 땀범벅이 되어서야 욕탕으로 가서 목욕을 하고 곧장 매향원으로 향했다.그의 뒤를 태복이 뒤따랐다.연경이 없으니 고생은 모두 태복의 몫이었다. 손기욱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검과 창을 휘두르며 한시도 쉬려하지 않았다.방 안으로 들어간 손기욱은 평소 연경이 자주 앉아 있던 탁자 앞에 앉아 그녀가 쓰던 찻잔을 매만졌다.그녀가 떠난 이후로 그는 하루도 깊은 잠에 들어본 적 없었다.마음이 텅 빈 것 같고 어떤 일을 해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태복은 시종들을 물리고 조용히 그에게 다가갔다.“시간도 늦었는데 이제 그만 쉬시지요, 나으리.”“떠난지 반달이 되어가는데 어찌 서신 한통 없을 수가 있지? 양심도 없는 것!”손기욱은 이를 갈며 서운함을 토로했다. 보고 싶은 이를 볼 수가 없으니 가슴이 꽉 막힌 것처럼 괴로웠다.그는 매일 서신을 써서 위씨 노부인의 저택으로 보냈다.얘기를 들은 태복이 입가를 씰룩거리며 말했다.“아씨는 아직 가고 있는 중이지 않습니까. 가는 길에 언제 서신을 쓸 여유가 있겠어요.”손기욱은 그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서 표정을 풀었다.“가는 길에 위험에 부딪치진 않았는지 모르겠구나. 일을 망친다면 치풍에게 돌아올 필요 없다고 전하거라.”“유주에서 잠깐 위험했던 적이 있었지만 무사히 해결하였습니다. 유주를 떠나서 곧 위씨 노부인이 보낸 사람들과 만났다고 합니다. 진 대인은 승주 지부로 승진하였으니 아씨는 굳이 변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바로 승주로 가서 가족들과 상봉하면 됩니다.”태복은 최근에 전해 들은 소식들을 자세히 그에게 설명해 주었다.지금 손기욱은 영혼이 반쯤 나간 상태라 했던 말도 반복해서 들려주어야 했다.손기욱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연경의 서재로 향했다.갑자기 그녀에게 서신을 쓰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또 쓰시려고요? 오늘 이미 두 통이나 쓰시지 않았습니까?”태복이 피곤한 얼굴로 말했다.하지만 손기욱의 싸늘한 시선에 곧바로 꼬리를 내렸다.“소인이 괜한 질문을 했군요. 필묵을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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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7화

무거운 흑단목 대문이 열리며 문지기의 외침소리가 정원에 쩌렁쩌렁 울렸다.청색의 돌담과 조각상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미리 대청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진씨 가문 식솔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시종들은 줄을 지어 따라나와 경건하게 인사를 올리고 어떤 이는 구경하러 온 백성들을 막고 떡을 나눠주었다.“둘째 아씨는 본디 몸이 허약하여 어린 시절부터 노부인과 별원에서 요양하시다가 마침내 돌아오셨네.”소문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빠르게 승주 전체에 퍼져나갔다.연경은 금일 흰색의 치마저고리를 입고 얼굴에는 면사포를 두르고 있었다. 비록 용모를 똑똑히 볼 수는 없지만 타고난 아름다운 자태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위씨 노부인과 진 대인을 비롯한 식솔들은 저택 밖으로 나와서 그녀를 마중했고 혼인을 안 한 아씨들은 대청에서 대기했다.모두가 화려한 의복을 입고 얼굴에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연경을 맞이했다.이제부터 연경은 진씨 가문의 둘째 아씨이자 진씨 가문 삼남의 외동딸 진연이 되었다.그녀는 재빨리 사람들을 둘러보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위씨 노부인에게 다가가 예를 행했다.“할머니,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수많은 눈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위씨 노부인은 부드럽게 그녀의 손을 다독여주었다.“내가 심부름 좀 보냈더니 그새를 못 참고 그리웠어? 이제 집에 왔으니 나랑 같은 처소를 쓰자꾸나. 매일 이 늙은 얼굴을 마주하고도 그런 말이 나오는지 두고 보겠다.”노부인은 면사포에 가려진 수려한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참으로 아름다운 미인이었다. 노인은 손기욱이 왜 그녀에게 명분을 주고자 이 수고스러운 일을 하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두 사람은 한참 다정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위씨 노부인이 먼저 연경의 손을 잡으며 식솔들을 소개했다.“이분은 네 큰 백부님이시다. 현재는 상업을 종사하시니 집안에서 편하게 먹고 입고 쓰는 것 모두 큰 백부님의 공로라고 할 수 있지.”연경은 단정히 예를 올렸다.위씨 노부인은 또 그녀의 손을 잡고 다른 쪽으로 이끌었다.“이분은 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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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8화

연경은 조심스레 면사포를 벗고 사람들 앞에 얼굴을 드러냈다.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하얀 얼굴은 면사포를 쓰고 있어 더워서 그런지 발그레한 홍조를 띄고 있었다. 보고만 있어도 지켜주고 싶은 생각이 드는 굉장한 미모였다.조금 전에 연경에게 말을 걸었던 소년이 감탄하듯 말했다.“둘째 누님은 정말 선녀 같으시군요.”식솔들은 다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위씨 노부인은 이미 마음의 준비를 다 한 상태였지만 이처럼 어여쁜 연경을 보고 사랑스러워 눈길을 뗄 수 없었다.노인은 소년의 머리를 가볍게 다독이며 말했다.“네가 제일 말이 많아. 연아, 이쪽은 둘째 백부의 아들인 형욱이다.”“둘째 누님, 이렇게 인사드리네요!”진형욱은 활짝 웃으며 연경에게 예를 행했다.소년의 해맑음은 새로운 환경에 와서 바짝 긴장하고 있던 연경의 불안감을 많이 덜어주었다.식솔들을 다 소개받은 후, 연경은 진씨 가문에 여자아이가 적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들들만 아홉 명이 있었는데 딸은 둘뿐이었다. 연경보다 두 살 많은 가문의 장녀는 변방으로 시집을 가서 집에 없고 현재는 연경뿐이었다.가족 연회라 남자 상과 여자 상 사이에는 따로 병풍을 두지 않았다.진충안은 가주로서 가장 먼저 일어나 술잔을 들고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연경에게 말했다.“어머니와 연이는 장원에서 오랜 기간 요양하며 있다가 오늘 마침내 대 가족이 상봉하게 되었으니 가문이 흥할 징조로다. 진씨 가문은 대대로 청렴함을 고수해 온 가문으로, 비록 승진하여 승주로 올라왔지만 여전히 고향의 백성들을 돌보고 그들을 잘 이끌어야 할 것이며, 절대 거만을 떨거나 게으름을 부려서는 안 될 것이니라….”오래 길어지는 훈시에 여인들은 벌써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연경은 조용히 남자 상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진형욱은 몰래 팔을 내리다가 연경과 시선이 마주치고는 헤벌쭉 웃었다.연경은 시선을 거두며 자신의 동생을 떠올렸다.‘육진이가 저 아이처럼 해맑고 명랑했으면 좋았을 텐데.’위씨 노부인이 불편한 기색으로 헛기침을 하자, 진충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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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9화

정신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여인은 미친듯이 대청 안을 돌아다니더니 앞길을 막는 시녀와 어멈들을 밀치고 여인들 상으로 달려왔다.그녀에게 어깨를 부딪친 한 여인이 다급히 몸을 일으키며 옆으로 피했다.상이 흔들려 그릇들이 서로 부딪쳐 바닥에 떨어지며 와장창 소리가 났다.광기에 서린 여인은 곧장 위씨 노부인이 계신 상석으로 달려왔다.연경은 위씨 노부인의 떨리는 손을 꼭 잡고 큰소리로 말했다.“다들 멍하니 서서들 뭐 하는 것이냐! 당장 저 사람을 막지 않고!”말을 마친 그녀는 일어서서 노부인의 앞을 막아섰다.“서있지들 말고 당장 끌어내거라!”정신을 차린 진충안이 상을 쾅쾅 두드리며 호통쳤다.그 여인은 연경의 자리에 앉아 허겁지겁 음식을 입안으로 욱여넣고 있었다.그러던 여인의 시선이 노부인에게 닿자, 혼탁하던 눈빛이 잠깐 생기가 돌더니 분노에 찬 고함을 질렀다.“이 독한 할망구 같으니라고! 넌 죽어서도 평안하지 못할 것이다!”셋째인 진형석이 친히 시종들을 데리고 와서 여인의 입을 틀어막고 끌어냈다.노부인은 엉망이 된 연회상을 둘러보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연경에게 물었다.“배불리 먹었느냐?”연경은 아직 배가 고팠지만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오느라 피곤했을 텐데 나와 같이 처소로 가서 좀 쉬자꾸나.”말을 마친 노부인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고 연경과 함께 처소로 향했다.연경은 어색한 표정으로 식솔들과 작별인사를 한 뒤, 노부인을 부축해서 대청을 나섰다.진가네 저택은 꽤나 큰 편이나 식솔들이 많으니 무안 후작부처럼 매화나무를 심을 넓은 땅은 없었다. 대신 오솔길 곳곳마다 돌장식을 두어 꽤나 운치가 있었다.한참을 걷던 위씨 노부인이 한숨을 쉬며 먼저 입을 열었다.“많이 놀랐지? 가지가 많은 나무가 바람 잘 날이 없다고 집안이 크니 이런저런 사람도 있는 법이지. 넌 신경 쓸 것 없다. 차후에 혼처를 알아본다는 명목으로 널 위한 연회를 베풀 생각이다. 소식이 전해지면 그분께서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와서 혼사를 청할 것이다.”연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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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0화

연경은 잠시 고민하다가 주저하며 물었다.“할머니, 아까 그 부인은….”위씨 노부인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었다.“미친 사람일 뿐이다. 앞으로 또 뛰쳐나오면 피해서 가면 된다.”연경은 노인이 더 이상 이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경춘과 추연은 내가 친히 가르친 시녀들이다. 앞으로 네 신변에서 시중을 들게 될 것이야. 손 장군도 따로 두 시녀를 붙여준다고 했으니 충분할 거다. 내일은 나와 함께 향을 피우러 가면서 그 두 시녀도 같이 데려오자꾸나.”연경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고 위씨 노부인은 아끼는 시녀 두 사람을 연경의 방으로 보냈다.한씨 어멈이 탕약을 들고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둘째 아씨는 참으로 온순하고 사려 깊으신 분 같군요. 이제 안심하셔도 되겠어요, 노부인.”“어차피 보은을 위해 시작한 일이야. 사려 깊은 아이가 아니라 하더라도 이미 제안을 수락했으니 물릴 수 없지. 손 장군이 이렇게 공을 들일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어야 할 텐데.”탕약을 마신 위씨 노부인은 끄덕끄덕 졸기 시작했다. 한씨 어멈은 얼른 노인을 부축해서 침전으로 들었다.연경의 방은 양심재의 남쪽에 있었다. 해가 잘들고 깨끗이 정돈된 방이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청동로에서 청량한 향이 피어오르고 있었다.연경은 은화를 꺼내 경춘과 추연에게 나누어주었다.“난 이 저택은 처음이고 식솔들과도 안 본지 오래되어 사이가 소원하니 앞으로 너희가 해야 할 일이 많을 거야. 잘 부탁한다.”두 시녀는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다 소인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요.”세 사람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밖에서 갑자기 어지러운 발소리가 들리더니 한 어멈의 긴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노부인은 쉬고 계십니다. 도련님, 이만 돌아가시지요!”소리를 들은 연경은 경춘을 시켜 문을 열게 했다.문을 두드리려던 진형욱이 연경을 보자마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역시 둘째 누님과 저는 뭔가 통하는 게 있나 보군요!”아이는 손에 든 간식통을 흔들어 보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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