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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시녀의 생존수칙: Chapter 531 - Chapter 540

561 Chapters

제531화

“진씨 가문이 이번 풍파를 무사히 넘길 수 있게 보우하여 주십시오.”연경은 향을 피우며 기도를 올렸다.그녀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합장한 후, 자신의 정체와 위씨 노부인의 고난을 조상님들에게 일일이 말씀드렸다.한 시진 후, 양심재에 있던 큰부인은 연경이 돌아오지 않자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무슨 얘기를 하길래 이렇게 늦는 거지?”이때, 여섯 살 된 진형구가 살금살금 양심재 안으로 들어오더니 호숫가를 향해 다가갔다.큰 부인은 사람을 시켜 몰래 숨어든 아이를 불러왔다.진형구는 큰눈을 깜빡이며 애교를 부렸다.“어머니, 오늘 너무 아름다우시네요.”진형구는 진백안의 첩실 소생이지만 큰 부인은 자기 자식처럼 아이를 귀여워하며 승주에 오자마자 계몽 선생을 붙여주었다.큰 부인은 굳은 표정으로 꾸중하듯 말했다.“스승님과 글공부를 하지 않고 또 양심재에 물고기 잡으러 온 거니?”진형구는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스승님은… 배가 아프시다네요.”“또 배가 아파? 네가 또 스승님의 차에 이상한 걸 탄 건 아니고?”큰 부인은 골머리가 아팠다. 큰댁의 아이들은 진백안을 닮은 것인지 하나같이 글공부를 싫어했다.진형구는 놀라서 눈을 질끈 감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연이 누님은 사당에서 무릎을 꿇고 계십니다! 누님이 너무 불쌍해요!”“무릎을 꿇는다니? 왜!”큰 부인과 셋째 며느리가 놀라서 벌떡 일어섰다.진씨 가문의 아들들은 무릎을 꿇는 벌을 받은 적이 있어도 이미 시집을 간 둘째네 큰딸도 한 번도 그런 벌을 받은 적은 없었다.진형구는 눈을 깜빡이더니 고개를 들고 용기를 내어 말했다.“연이 누님이 숙모님 말씀을 안 듣고 말대답을 해서 숙모님이 화가 많이 나셨어요.”영문을 알 수 없는 큰 부인은 다급히 시종을 시켜 상황을 알아보게 했다.사건의 경과를 알아본 큰 부인은 곧바로 사당을 찾아갔다. 그녀는 사당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연경을 보고 안쓰러운 마음에 다가가서 말했다.“연아, 돌아가서 밥 먹어야지.”연경은 둘째 부인의 시녀를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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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2화

“전에 어머니께서 연이가 나이가 어리다고 시집보내기 아직은 아깝다고 하셔서 연이와 비슷한 얼굴을 가진 년을 첩으로 들였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 첩실이 갑자기 죽으니 이제 와서 혼담을 청하러 온 거예요!”큰 부인도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불편했지만 사내가 첩을 들이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 작은 소리로 말했다.“결국 그 사람이 연모하는 사람은 우리 연이란 말이지 않나. 첩실은 이미 죽고 없으니 그리 신경 쓸 일도 아니야.”“그럼 폐하께서 무안 후작에게 첩을 하사한 건 알고 계신가요?”큰 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소 장군댁 따님 아닌가?”“그 사람은 소 낭자의 시종의 혀를 잘라냈습니다! 나중에 소 낭자가 부주의로 그 첩실을 밀쳤는데 그대로 넘어져 죽었답니다. 그래서 무안 후작은 소 낭자를 폐하께 돌려드린다고 난리를 피웠더랬지요!”큰 부인은 듣고 있자니 가슴이 철렁했다.“세상에나….”둘째 부인은 하얗게 질려버린 형님의 얼굴을 보고 덤덤히 말을 이었다.“제가 보기에 그 무안 후작은 절대 좋은 신랑감이 아니에요! 앞으로 또 무슨 소란을 일으켜서 우리 가문까지 피해를 입힐지 모른다고요!”하지만 큰 부인은 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살을 찌푸렸다.“신씨 가문에서는 뒤에서 남의 흉을 보고 신 도령은 우리 집에서 감히 연이에게 무례를 범하였는데 그런 사람을 좋은 신랑감이라고 볼 수 있겠어?”둘째 부인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큰 부인은 입을 삐죽이며 말을 이었다.“내가 보기엔 신국공네가 일부러 무안 후작을 깎아내리려는 게 틀림없어. 준수한 외모에 겸손하고 예의까지 바른 사람이 신 도령 같은 자보다는 훨씬 낫지!”둘째 부인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혼사는 이미 정해졌는데 이제 와서 그걸 따져서 어쩔 거야? 설마 이미 정해진 혼사를 반복할 셈이야? 그때가 되면 양쪽 모두가 우릴 적으로 돌릴 텐데 그런 상황이 오면 우린 정말 망하는 거라고.”둘째 부인은 가슴이 철렁하여 다급히 반박했다.“형님은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신 도령은 우리한테 집으로 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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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3화

문성원.둘째 진형천과 넷째 진형서는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어머니, 연이는 그날 마장에서 말 한번 타는 것도 겁이 나서 울먹이던 애인데 그런 애를 홀로 사당에 무릎을 꿇리다니요? 얼마나 무섭겠어요.”진형서는 가녀린 여동생을 생각하니 가슴만 아팠다.“연이의 혼사는 이미 정해졌는데 어찌 그 애를 데리고 신선준의 집으로 갈 수 있나요? 신선준은 큰 백부님의 앞에서도 연이에게 무례를 범했던 사람인데 또 그 집에 간다면 호랑이 굴에 연이을 등 떠밀어 보내는 것과 뭐가 다른가요.”진형천이 간곡하게 말했다.둘째 부인은 아들들의 말을 듣고 있자니 더욱 부아가 치밀었다.“대체 걔가 너희한테 무슨 짓을 했길래 하나 같이 그 애 편만 들며 이 어미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야!”진형천과 진형서가 다급히 말했다.“저희가 어찌 감히 그러겠어요!”이때, 여덟 살 된 진형수가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반박했다.“아버지께서는 늘 저희에게 형제끼리 서로 아끼고 보듬으라고 가르치셨죠. 전에 누가 잘못을 하면 저희 형제는 다 같이 사당에서 벌을 받았어요! 연이 누님은 저희의 가족이 아닌가요? 왜 누님이 벌을 받는데 저희한테 가지 말라는 거죠? 너무해요, 어머니!”한창 반항할 나이라 소년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아이도 어머니의 훈계가 두려웠지만 자존심이 있는지라 목을 빳빳이 세웠다.둘째 부인은 화가 나서 가슴을 쾅쾅 치며 한탄했다.“감히 어미에게 그게 무슨 말버릇이니! 불효자식 같으니라고! 당장 사당으로 가서 무릎 꿇고 있거라!”얘기를 들은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둘째 부인에게 말했다.“감사해요, 어머니!”둘째 부인은 신이 나서 밖으로 뛰어가는 아들을 보며 자신이 깜빡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사당 안은 매우 시끌벅적했다.진형오는 품에서 따끈따끈한 전병을 꺼내며 연경에게 말했다.“금방 구운 전병이야. 너에게 맛 보이고 싶어서 가져왔어.”진형찬도 주머니 한가득 떡을 꺼내놓았다.진형구는 꿀사탕 한봉지를 꺼냈다.늦게 온 진형수는 품에서 말린 과일을 꺼내 연경에게 건네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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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4화

그는 조심스럽게 연경을 바라보며 말했다.“많이 놀랐지? 걱정 말거라. 오라비가 네게 손찌검을 할 리 없지 않니.”진형욱은 뒤통수를 매만지며 부루퉁해서 말했다.“누님, 셋째 형님은 정말 너무해요.”이때, 줄곧 딸기에 눈독들이고 있던 진형구가 군침을 꿀꺽 하고 삼켰다.연경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형제들 사이의 우애에 감격한 것인지, 그녀는 무릎의 통증도 잊고 딸기 하나를 집어 진형구에게 건넸다.진형구는 입맛을 다시며 크게 한입 베어물었다.진형욱이 부루퉁하게 입을 내밀며 말했다.“누님, 저도 먹고 싶어요.”연경은 딸기 하나를 더 집어 소년에게 건넸다. 소년은 입을 내밀며 고개를 저었다.“먹여주세요, 누님.”연경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소년의 입에 딸기를 넣어주었다.그러고는 군밤을 까서 다른 형제들에게 건넸다.진형오는 동생에게 그런 일을 시킬 수 없다며 극구 사양했다.몇 개 안 되는 딸기와 군밤을 결국 형제들이 거의 다 먹어버리자, 진형삼은 헛기침을 하며 남은 딸기와 간식들을 연경의 품에 안겨주었다.진형준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연경을 위안했다.“연아, 겁낼 것 없어. 어제 내가 신 도령에게 내일 마구 시합을 하기로 제안했거든. 사내들 사이의 일은 시합으로 해결하면 돼.”진형삼도 고개를 끄덕였다.“한판으로 부족하면 여러 판 해서 그쪽에서 직성이 풀릴 때까지 하면 되지.”둘째 부인 앞에서는 전혀 죄책감이 들지 않았던 연경이지만, 그들의 말을 듣고 있자니 가슴이 먹먹해지며 불안한 마음마저 들었다.한 번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아본 적 없는 그녀이기에 그들이 잘해줄수록 폐를 끼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연경은 죄책감 가득한 어투로 말했다.“오라버니들에게 괜한 걱정을 끼쳤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집에만 있을 걸 그랬어요.”진형욱이 미간을 찌푸리며 반박했다.“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누님은 외출을 자주 하셔야 해요. 학당의 동창들이 자기네 누님이 예쁘다고 자꾸 자랑하는데 저는 우리 누님이 가장 예쁘다고 생각해요!”진형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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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5화

“서두를 것 없습니다. 저는 모레 떠나기로 하였어요.”날짜를 헤아려 보니 오늘 저녁은 연경을 보러 가고 내일은 마구시합을 하고 경성으로 돌아가는 길에 밤을 새워 달려도 얼추 비슷할 것 같았다.황제의 건강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있고 경성에 숨어 있는 유왕의 세력들의 본거지를 찾지 못했으니 경성은 언제든 폭동이 일어날 수 있었다.손기욱은 연경이 경성을 떠나 있는 게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강씨 어멈도 승주에 남아 있다면 이 소란을 피해갈 수 있을 것이다.강씨 어멈은 의아한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왜 또 날짜가 변경되었습니까?”“큰 형님이 마구시합을 같이하자더군요.”강씨 어멈은 자신보다도 한 살 아래인 진형준을 자연스럽게 형님이라 부르는 손기욱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손기욱은 어멈의 손을 떨쳐내려 몸을 비틀었지만 어멈은 물러서지 않았다.“신국공부는 늘 신선준이 원하는 건 다 들어주었으니 신선준이 포기하지 않는 한, 계속 진씨 가문과 나으리를 주시하고 있을 겁니다! 더 이상 담을 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돼요! 상의할 게 있으면 내일 얘기해도 되지 않습니까!”손기욱은 뻔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멈, 난 침상이 바뀌면 잠을 잘 못 자요.”연경의 옆이 아니면 잠이 오지 않는다는 뜻이었다.강씨 어멈은 못 말린다는 듯 눈을 흘겼다.“말이 되는 소리를 하십시오!”손기욱은 땀에 푹 젖은 의복을 보고는 하는 수없이 방으로 돌아갔다.목욕을 마치고 훈향으로 담근 옷으로 갈아입은 그는 강씨 어멈이 안 보는 틈을 타서 처소를 빠져나갔다.진씨 저택 밖에 도착한 손기욱은 치풍에게 이끌려 옆에 있는 작은 골목으로 들어갔다.“나으리, 저택 밖에 감시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신씨 가문 사람들이에요.”손기욱의 눈빛이 음산하게 빛났다.“모조리 잡아들여. 신씨 가문에서 조정의 대신을 몰래 감시하는 건 본디 금기를 어긴 행위이니 사람이 사라져도 떠벌리지 못할 게야.”치풍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하들을 조용히 집결시켰다.손기욱의 부하들은 모두 전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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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6화

그의 애정과 사랑이 듬뿍 느껴지는 말에 연경은 가슴이 먹먹해졌다.“거만해지는 것을 배워두라는 말씀인가요?”손기욱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그녀의 야심을 키워주고 싶었다. 사람을 보는 기준이 높아지면 다른 사내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것이고 오직 그만이 그녀의 마음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이다.“그럴게요. 서방님처럼 하면 되는 것이겠죠.”연경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갑자기 나온 서방님 호칭에 손기욱은 저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려 연경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참으로 듣기 좋구나.”연경은 야릇한 그의 말투에 재빨리 시선을 회피했다.“양심재에 이제 들고양이는 다 쫓아버려서 없습니다. 밤에 이상한 소리가 나면 안 돼요.”“들고양이라니?”똑똑한 손기욱이 그 말을 못 알아들었을 리 없었다. 그는 일부러 낮은 웃음을 터뜨리며 농을 던졌다.연경은 손을 뻗어 그의 입을 틀어막으며 화제를 돌렸다.“신씨 가문에서는 둘째 백부께 꼭 제가 집까지 찾아가서 사죄해야 조용히 넘어가겠다고 했대요. 제가 괜한 걱정을 하는 걸 수도 있지만 아마도 비열한 수작을 쓸 수도 있을 것 같아요.”몇번 만난 것도 아니지만 신선준은 온화한 외모속에 광기를 숨기고 있는 듯했다.손기욱은 연경의 손을 잡고 쓰다듬었다.그러더니 입가에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아. 내 내일이면 신씨 가문과 네 둘째 백부에게 내 사람을 건드리면 안 된다는 이치를 가르쳐주지.”연경은 그런 그의 손을 잡으며 다정하게 말했다.“나으리, 경성의 정세가 걱정된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절대 이 시국에 소란을 만들면 안 돼요. 제가 어떻게든 그 집에 안 갈 방법을 생각해 볼게요.”“신가네가 무례하고 진충안이 부덕해서 생긴 일을 왜 네가 집에만 피해 있어야 하지?”“저는 괜찮습니다. 조용히 혼례날까지 기다리면 괜찮아질 거예요.”손기욱은 간절한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는 연경에게 차마 신선준의 통방에 관한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다.신선준의 심기를 건드린 그 두 시녀 중 한명은 당일 날 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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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7화

멀리서 청색 두루마기를 입은 사내가 다가왔다. 맨 앞에는 신선준이 있었다.그의 뒤로 전 지부의 아들인 양서가 있고 두 사람 뒤에는 체구가 건장한 사내가 두 명 따르고 있었다. 기세등등한 모습을 보니 마구시합을 하러 온 게 아니라 싸우러 온 사람들 같았다.진형준 일행은 바짝 긴장하여 서로 눈치를 보다가 마지못해 앞으로 다가갔다.신선준은 진가의 아들들을 보고도 예전처럼 예의를 차리지 않고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있었다.어제 분명히 그의 둘째 형이 진연을 데리고 집으로 찾아와 사죄하면 이 일을 조용히 덮겠다고 말을 했다. 물론 진연을 데려오라는 것은 신선준의 뜻이었다. 그의 둘째 형과 형수는 그저 진 지부의 자존심을 이 기회에 짓밟아서 화풀이를 하려던 것뿐이었다.하지만 그는 달랐다.태어나서 지금까지 그는 원했던 것을 놓쳐본 적이 없었다.진연이 그의 집으로 찾아간다면 그는 곱게 돌려보낼 생각이 없었다. 순결을 잃은 그녀가 어찌 무안 후작부로 시집을 갈 수 있겠는가.그러나 오늘 아침, 진연은 오지 않고 진백안 부자가 선물을 들고 찾아왔다.신선준은 당연히 그들을 집안으로 모시지 않았고 마구장에서 판가름하자고 엄포를 놓았다.“형님….”진형삼은 아침에 그가 했던 말이 떠올라 걱정스러운 눈길로 진형준을 바라보았다.신선준이 경멸에 찬 모습으로 물었다.“두려운 겁니까?”진형준은 억지미소를 지으며 답했다.“마구시합은 본디 유희이거늘, 뭘 그리 진지하게 굴어?”그들 형제는 변방에 있을 때 마구를 자주 했기에 상당한 실력자라고 할 수 있었다. 오늘은 무안 후작까지 불러서 신선준에게 몇판 져주고 화풀이를 대신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지금 보니 그들이 일부러 져줄 필요가 없었다. 무사히 마구장을 빠져나갈 수 있을지도 문제가 될 것 같았다.“형준 형님은 처음이라 잘 모르시겠지만 난 원래 매사에 진지한 사람입니다. 특히나 연정에 관한 일이면 더욱 그렇죠.”신선준은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진가네 형제들을 바라봤다.진형준은 억지미소를 지으며 애써 그의 말을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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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8화

“시합을 하러 왔으면 제대로 준비했어야지. 저쪽에서 사람을 못 모은 게 우리 탓은 아니지 않은가?”신선준은 비웃음 가득한 눈길로 손기욱을 노려보며 한치 양보도 하지 않았다.마구시합의 규칙은 한쪽 진영에 열 명이 맞지만 사적인 시합에서는 인원수를 자유롭게 정할 수 있었다.그러나 신선준이 양보를 하려 하지 않으니 진형준은 하는 수없이 시종 몇몇을 불러 인원수를 채울 수밖에 없었다.몰래 연경을 비호하던 치풍 일당도 마구를 할 수는 있지만 손기욱은 그들의 외모나 행적을 신선준 앞에서 보여줄 생각이 없었으니, 진형준이 사람을 모을 때 그냥 내버려 두었다.마구시합이 시작되자 신선준이 데려온 사내들은 기세등등하게 마구대를 휘두르며 소리쳤다.“도련님, 필승입니다!”진가의 아들들은 그 모습을 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태세를 보아하니 신선준은 오늘 무슨 수를 써서든 그들을 다치게 할 모양이었다.하지만 자존심 때문에라도 물러설 수는 없었다.진형준은 동생들을 바라보며 말했다.“우린 이길 필요가 없어. 신 도령이 화풀이하게 내버려 두고 다치지 않게 조심하면 돼.”진형천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형님, 뭘 하시려는 겁니까? 형님도 안전에 조심하여야지요.”진형준은 애써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들과는 다르게 손기욱은 싸늘한 눈길로 신선준 일행을 노려보고 있었다.군영에서 훈련을 할 때 종종 마구를 한 적이 있었다. 몸의 유연성과 담력, 기마술을 키우는데 마구만한 것이 없었으니, 손기욱 역시 마구에서는 자신이 있었다.양서는 말을 타고 재판을 맡았다.뜨거운 태양 아래 사면팔방에서 말을 탄 사내들이 기세등등하게 진가네 형제들을 노려보고 있었다.진형준이 급하게 데려온 시종들은 그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시종들은 말에서 굴러떨어졌다.진형준은 시합을 위해 시종들의 목숨을 희생할 수는 없었다.그리하여 진형준의 진영에는 얼마 못가 여섯 명만 남게 되었다.신선준이 눈빛을 보내자 그의 진영은 곧바로 진가의 형제들과 손기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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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9화

“우리가 패배를 인정하면 신 도령은 이 황당한 시합을 끝낼 것인가?”그는 싸늘한 눈길로 신선준을 바라보며 의중을 물었다.그러나 신선준은 절뚝거리며 퇴장하는 진형준을 보고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그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무안 후작은 겁이 나셨나 봅니다? 시합이 이제 시작했는데 벌써 패배를 논하기엔 이르지 않습니까?”예상했던 반응이었다. 손기욱은 재차 물었다.“해서, 계속하자는 말인가?”양서가 가슴이 철렁하여 신선준을 말리려던 찰나, 신선준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물론이죠.”진가의 형제들도 가슴을 조렸다.그들은 무안 후작이 일부러 그런 질문을 던졌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손기욱은 무표정한 얼굴로 마구대를 치켜들었다.“좋아.”신선준은 그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대경의 변방에 있는 승주에서는 매년 마구시합이 열리고 이곳의 귀족들은 나이든 양반들부터 어린 소녀들까지 모두 마구를 즐겼다. 그리하여 귀족들을 위해 길러진 마구 선수들도 존재했다.신선준이 데려온 자들은 승주에서 가장 흉폭한 대오였다.진형천은 날카롭게 빛나는 신선준의 눈빛을 보고 작은 소리로 손기욱을 일깨웠다.“나으리, 조심하십시오. 신 도령은 아마 오늘 피를 보지 않고는 물러서지 않을 것 같습니다.”손기욱은 살기를 거두고 겸손하게 진형천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둘째 형님. 이따가 멀리 피해 있으십시오.”진형천이 그의 미소를 보고 간담이 서늘해져 잠깐 정신을 놓은 사이, 손기욱은 홀로 말을 타고 신선준의 진영에 뛰어들었다.신선준은 자신감 넘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이를 갈며 호령했다.“내 지시를 잊은 건 아니지? 마구는 원래 위험한 시합이다. 만약에 저들의 다리를 부러뜨리거나 눈을 멀게 한다면 국공부가 모든 책임을 질 것이다!”그들은 책임을 질 필요도 없고 오히려 국공부로부터 후한 포상을 받기로 약속되어 있었다.신선준의 뜻을 알아들은 사내들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험상궂은 눈길로 맞은편을 바라봤다.시합이 재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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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0화

진가네 사형제는 신선준의 사나운 눈빛을 보고 깜짝 놀라 한켠으로 말을 몰았다.유독 손기욱만 피하지 않고 오히려 말을 타고 신선진 쪽으로 돌진했다.진가네 형제들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소리를 질렀지만, 말발굽 소리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신선준은 자신을 위해 돌진하는 손기욱을 보고 눈빛에서 광기가 치밀었다. 그는 마구대를 휘둘러 말을 내려치며 속도를 늘렸다.손기욱은 비웃음을 가득 머금고 그를 향해 돌진했다. 뒤에서 진가네 형제가 울부짖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두 사람의 말이 점점 가까워지며 부딪치기 일보 직전이었다.그러나 어느 쪽도 피하려는 기색이 없었다.신선준의 광기는 극에 달했다. 그는 손기욱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하며 들이받아 날려 버리기로 작정했다.‘늙은이 주제에 젊은 나를 상대하려고?’그는 승주에서 수많은 마구시합을 치렀고 그동안 감히 그의 한 수를 받아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반면 손기욱의 눈빛에는 한치의 동요도 없었고 고요하고 살벌한 살기를 담은 눈빛은 오로지 신선준을 향했다.때마침 신선진의 수하가 그들 사이로 공을 몰았고 신선준은 기회를 틈타 마구대를 높이 쳐들었다.그럼에도 손기욱은 방향을 틀지 않았다.두 말이 정면으로 충돌하기 직전, 손기욱은 마구대를 세워 신선준의 눈을 조준했다. 신선준의 말이 불안에 떨며 요동치기 시작했고 신선준은 간신히 고개를 틀어 공격을 피했다.그의 마구대는 손기욱의 옷자락도 스치지 못했지만 손기욱의 마구대는 냉혹하게 그의 몸에 휘둘러졌다.찰나의 순간, 다리에서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고통은 순식간에 전신을 휩쓸었고 신선준은 눈 깜짝할 사이에 오른다리가 마비되었음을 깨달았다. 온몸이 저린 상태라 고삐를 놓친 줄도 몰랐던 그는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했다.사람들이 말을 타고 그를 향해 달려오는 것이 흐릿하게 보였다.그의 말은 미친듯이 날뛰다가 그대로 앞발로 신선준의 왼다리를 짓밟았다.고통에 목소리를 잃었던 신선준은 눈앞이 캄캄해지며 정신을 잃었다.한 시진 후, 진가네 오형제는 차례로 저택으로 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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