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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시녀의 생존수칙: Chapter 551 - Chapter 560

561 Chapters

제551화

위씨 노부인은 다음 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말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기력을 회복했다. 노인은 입을 열자마자 가장 처음으로 연경의 혼사에 대해 물었다.둘째 부인의 눈빛이 잠깐 흔들리더니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어머니, 안심하십시오. 연이는 이미 무안 후작과 정혼하였습니다.”큰 부인이 입꼬리를 비틀며 눈을 흘겼다.“허, 그야 그렇지만… 신가네….”연경은 전날 밤 밤새 노부인의 곁을 지키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돌아가서 쉬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그녀는 웃으며 사람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올렸다.“할머니, 오늘은 안색이 훨씬 좋아지셨네요. 서 의원님 말씀으로는 할머니께서 말을 많이 하시면 안 된다 하시니, 오늘은 조용히 쉬시는 게 좋겠어요.”말을 마친 그녀는 큰 부인을 바라보았다.큰 부인은 노부인을 자극하면 안 된다는 것을 떠올리고 마지못해 말을 바꾸었다.“무안 후작께 크게 감사를 드려야 해요. 그분이 모셔다 주신 서 의원께서 기적을 일으키셨으니 말이죠. 어머니의 안목은 탁월하세요. 무안 후작은 연이보다 실제로 나이도 그리 많아 보이지 않고 준수한 외모에 침착하고 겸손하며 예의까지 바른 분이더라고요.”위씨 노부인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그 사람이 겸손하고… 예의가 바르다고?”노부인의 기억 속 손기욱은 그런 수식어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갑옷을 입은 모습은 위풍당당했고 장창은 늘 붉은 피가 짙게 물들어 어둡게 반짝였으며 살기가 하늘을 찔려 사람들의 두려움을 자아내는 존재였다.결국 전장에서 빛을 발한 사람인데 겸손하고 예의 바른 인상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큰 부인은 노부인이 눈살을 찌푸리는 것을 보고 자기가 말실수를 한 건 아닌지, 어색하게 입을 다물었다.위씨 노부인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연이만 남고 다들 물러가거라.”가족들이 모두 물러가자 노부인은 서둘러 연경의 손을 잡고 한참이나 그녀의 얼굴을 뜯어보았다.“너무 시간이 오래 지나버려서 난 내 아이가 어찌 생겼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연경은 코가 시큰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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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2화

이때, 탕약을 들고 들어온 한씨 어멈은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연경을 보고 못 말린다는 듯 노부인을 바라보며 말했다.“노부인, 연이 아씨가 놀라지 않습니까.”“아씨, 겁낼 것 없어요. 노부인은 그저 속에 맺힌 원한이 너무 많아 격한 말로 감정을 풀어내시는 겁니다. 노부인께서 진짜 독한 마음을 먹으셨다면 진씨 가문이 어찌 오늘날까지 건재할 수 있었겠어요?”연경은 그 말이 위로가 되기는커녕, 또 한번 놀랐다.집안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큰 사건이 있었단 말인가?위씨 노부인이 멍하니 있는 연경에게 말했다.“자, 이제 이 할미에게 솔직하게 말해 보렴. 너는 정말 무안 후작이 좋아서 혼인을 하려는 것이냐? 만약 네가 진심으로 그와의 혼인을 원치 않는다면, 내가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이 혼인을 파기해 주겠다.”“네 원래 신분이 좋지 못해서 그가 이런 일을 꾸민 것 같구나. 예전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지만, 앞으로는 이 할미가 네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마. 우리 집안의 딸은 굳이 서러움을 감내하며 싫은 사람에게 시집갈 필요가 없어!”위씨 노부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단호한 의지가 느껴졌다.한편, 경성으로 돌아간 손기욱은 먼저 궁으로 입궁하여 황제에게 문안을 올리고 경성을 떠날 수 있게 허락해준 황제에게 감사를 표했다.무안 후작부에 막 들어선 그는 갑자기 연거푸 재채기가 나왔다.손씨 가문의 큰댁과 둘째 숙부네 댁은 송학당에서 뭔가를 의논 중이었는데 손기욱을 보자마자 어색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사람들은 허둥지둥 그의 시선을 피하기에 급급했다.굳은 표정을 짓고 있던 노부인은 아들을 보자 반갑게 맞이하며 그의 손을 잡고 물었다.“혼사는 정해졌느냐?”“예. 강씨 어멈이 승주에 남았는데 앞으로 제가 직접 가기 불편할 때, 어멈이 절차를 도와주실 겁니다.”노부인은 크게 기뻐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잘됐구나. 우리 후작부도 올해는 거하게 잔치 한번 벌여야지.”손기욱이 전에 금수원의 두 무능아들을 두고 협박한 적이 있었기에 노부인은 그의 혼인 문제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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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3화

손기욱은 고개를 들어 노후작을 바라보았다. 노후작은 추궁하는 듯한 아들의 눈빛을 보니 마음이 불편해졌다.그는 고개를 숙이고 작게 중얼거렸다.“그… 그리 큰일도 아니야. 그… 형님들이 유왕부의 은화를 좀 받았어. 난 이미 옳지 않은 일이라고 말하고 은화를 돌려보내라고 했지.”손기욱의 눈빛이 싸늘하게 번뜩였다.“유왕부의 은화를 받아요? 내가 뼈를 내어주고 유왕과의 관계를 끊었는데 당신들은 은밀히 은화를 받았다?”그는 황제가 왜 반복적으로 그를 시험하고 굳이 그에게 소연을 보냈는지 이제야 깨달았다.소씨 가문은 선황후의 친정으로 이미 세력이 많이 약해진 상태였다. 다른 사람들은 소씨 가문을 신경 쓰지 않았지만 손기욱은 황제가 소씨 가문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알고 있었다.조금 전까지 탁자를 쾅쾅 두드리던 큰댁 대부인은 기세가 한풀 꺾여서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유왕비는 후작부의 수양딸이기도 한데 효도의 뜻으로 건넨 은화를 좀 받으면 어때서? 뭐가 문제야?”둘째 부인도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거들었다.“그래. 따지고 보면 동서가 그 아이를 머물게 했으니 난 받아도 아무런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했지. 기욱이 넌 무르겠지만, 집을 수리하는데 돈이 한두 푼 드는 것도 아니고….”그 은화는 유왕비가 그들에게 선물한 도자기 안에 숨겨져 있었다. 노부인과 강씨 어멈은 유왕비에게 받은 물건을 돌려주라고 요구했지만 그들은 은표를 남기고 도자기만 돌려주었던 것이다.요즘 경성에서 손기욱이 몰래 유왕을 지지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노후작이 의아해하는 사이, 둘째 태부인이 부주의로 말을 꺼냈던 것이다.노후작이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우린 형님들을 박대한 적이 없건만, 우리가 유왕비를 어찌 대하는지 다 보셨지 않습니까! 지금 그런 궤변이 다 무슨 소용이에요? 받은 은표는 모두 돌려보내세요!”손기욱은 진작에 그들에게 이해관계를 분석해 주었고 노후작도 지금 유왕과 엮이는 게 아무런 이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노부인은 곱지 않게 노후작을 힐끔 쳐다보았다.조금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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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4화

큰댁과 둘째네는 서로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한편, 성큼성큼 매화당으로 돌아와 세면을 마친 손기욱은 그 길로 매향원으로 향했다.그는 쪽지를 보관한 상자를 꺼내 무심코 한 장을 집어들었다.‘지금도 나으리의 얼굴이 눈앞에 선하네요….’이 쪽지는 연경이 낮잠을 자다 꿈에서 그가 나왔다는 내용이었다. 꿈속에서 그는 새로운 여인을 품에 안고 웃으며 그녀를 쳐다도 보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는 꿈에서 깨어난 후, 속으로 한참 그에게 화가 나 있었다.분명 여러 번 읽은 글인데도 손기욱은 여전히 웃음이 지어졌다.그는 손목에 걸친 팔찌를 어루만지며 연경이 잠들었던 이불을 끌어안고 쪽지를 읽다가 꿈속으로 빠져들었다.그날 밤, 그는 기이한 악몽을 꾸었다.꿈속에서 연경은 다른 사내의 품에 안겨 희롱을 당하고 있었다. 그는 분노가 치밀어 그녀에게 달려가려 했으나, 갑자기 눈앞에 또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이미 옥에 갇혀 있었다.감방 밖에서 내관이 교지를 읽고 있었는데 소리가 흐릿하게 잘 들리지 않았고 또다른 내관은 손에 뭔가를 들고 있었다.자세히 살펴 보니 그 위에는 독주와 단도, 그리고 목을 매달 수 있는 긴 천이 놓여 있었다.한편, 먼 승주에 있는 연경은 위씨 노부인을 부축하여 안뜰에서 산책 중이었다.위씨 노부인은 부드럽게 그녀의 손을 다독였다.“생각은 다 정리했느냐? 사실 내가 매우 마음에 든 젊은 낭군이 한명 있단다. 너와 나이도 비슷하고 품성도 아주 좋아.”어제 노부인은 연경에게 손기욱과의 혼사를 진심으로 원하는지 물으며 원하지 않는다면 솔직히 말하라고 했으나, 연경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히 저도 그분과 혼인하고 싶죠. 이 세상에 그분 말고는 혼인하고 싶은 사람이 없답니다.”노부인은 그녀에게 하룻밤 시간을 줄 테니 곰곰이 생각해 보라 했기에 오늘 다시 물은 것이었다.노부인은 그녀의 진지한 말투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좋다. 네가 억지로 이 혼사에 응한 게 아니라면 우린 당연히 당당하게 시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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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5화

경성과 멀리 떨어진 지방에서 명성을 훼손하는 일은 그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되지 않았다.사실 신씨 가문이 단순히 분풀이를 하려는 거라면 오히려 문제가 간단하겠지만 연경은 그들의 숨긴 속셈이 걱정되어 일단 그들의 의도를 파악한 후에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그녀는 치풍을 시켜 알아본 바, 신씨 가문의 신 의원이 신선준의 다리를 매일 치료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다만 신 의원은 성격이 괴팍하기로 소문난 사람이라, 며칠 전에 우연히 좋은 술을 얻은 이후로는 늘 술을 마셔 항상 얼굴이 화끈거리고 눈이 침침해 신선준의 치료를 제대로 해줄 수가 없었다. 국공부에서 극진히 아끼는 막냇동생인지라 그쪽에서도 치료가 지연되는 상황을 당연히 두고 볼 수 없을 것이고 새로 구하려는 의원은 당연히 최고의 명의를 찾으려 할 것이다.서주행은 현재 명성이 자자하고 신의로 소문이 났으니 당연히 그를 찾으려 할 것이다.연경은 강씨 어멈에게 양해를 구하고 진백안을 대청까지 배웅하며 잠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벌었다.진백안은 듣는 내내 눈살을 찌푸리더니 간곡히 말했다.“혼인도 안 한 처자가 무안 후작의 명성까지 마음을 쓰다니. 우리 집안이 비록 후작 가문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그래도 굽신거리며 아첨할 필요는 없어. 그쪽에서 알면 너를 업신여길지도 모르고.”연경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백부님, 마구시합이 있던 날 만약 후작께서 막아주지 않았다면 오라버님들이 더 크게 다쳤을 거예요. 또 그분이 서 의원을 불러주지 않았다면 할머니는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계셨을 거고요.”그 말을 들은 진백안의 어투가 누그러졌다.“연아, 너무 조바심 낼 필요 없어. 나도 네 마음을 다 알아. 다만 앞으로는 굳이 잘보이려 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거야. 세상 사내는 다 똑같아. 너무 잘해주면 도리어 싫증을 내기 쉽단다.”연경은 온순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감격 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맑은 눈동자에 가득 담긴 간청에 진백안은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알았다. 연이 네 부탁이 내가 거절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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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6화

신민준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진백안이 말을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자, 마침내 참지 못하고 찾아온 의도를 밝혔다.진백안은 그제야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서 의원은 워낙 성격이 괴팍하신 분이라, 우리집 셋째가 다리나 팔을 다쳐 진료를 부탁드렸더니 쳐다보지도 않더군요. 결국 우리 연이가 직접 나서서야 겨우 설득할 수 있었지요.”“흥! 의원이란 자는 본디 다친 자를 치료하는 게 직업이거늘!”신선준은 불쾌한 기색으로 진백안을 노려보았다.진백안이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어쨌거나 서 의원은 저희의 귀빈이시니 제가 신 시랑을 모시고 가서 직접 부탁드려 보는 게 어떠십니까? 만약 신 도령의 다리를 봐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요.”그제서야 신 시랑의 얼굴빛이 누그러졌다.서주행을 만나게 해준다면 진백안이 대충 넘기지 않는다는 뜻이고 그는 의원 하나 설득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 생각했다.한참 후, 신 시랑은 잔뜩 굳은 표정으로 돌아왔다.신선준이 조바심을 태우며 물었다.“그자가 제 치료를 거부했나요?”신민준은 고개를 저으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전부터 서주행이 성격이 이상하다는 얘기는 익히 들었지. 전에 시종 출신의 한 유부녀와 시끄럽게 엮인 일도 있다더구나.”서주행의 뛰어난 의술만 아니었다면 그는 이런 자와 교류할 생각조차 없었을 테고 오늘 이런 굴욕을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방금전 그는 입에 침이 마르게 서주행을 치하했지만 서주행은 시끄럽다는 말 한마디로 그에게 쏘아붙였다. 진백안이 옆에서 중재하지 않았더라면 오늘 거하게 체면 한번 구겼을 것이다.두 형제가 속으로 울화를 삼키던 찰나, 부드러운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큰 백부님? 저를 부르셨나요?”연경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신선준은 급기야 뜨거운 시선을 그쪽으로 향했다.연경은 다가오지 않고 작은 병풍 뒤에 서 있기만 했다.신선준은 마치 장벽을 뚫을 것처럼 뜨겁게 병풍에 비친 그녀의 그림자를 응시했다.그의 두 손이 통제를 잃은 것처럼 떨리고 있었다.‘저렇게 달콤한 목소리는 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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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7화

진백안은 이런 대화를 어린 처자에게 알려봤자 괜한 걱정만 끼칠 뿐이라고 생각했다.그는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뭘 그리 초조해 하느냐? 신 시랑은 딱히 이상한 말은 하지 않았고 무안 후작도 경성에 어느 정도 세력이 있으시니, 그들이 이런 하찮은 일로 악의를 품진 않았을 게야.”연경은 의혹이 싹트기 시작했다.신씨 집안이 정말 단순히 분풀이를 하려고 일을 꾸몄을까?그녀는 의심스러운 얼굴로 진백안의 환한 미소를 바라보며 물었다.“백부님, 신 시랑이 무슨 말을 했는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진백안은 잠깐 고민하고 신중히 답했다.“신 시랑은 요 며칠 안에 경성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더구나. 신 도령의 다리는 치료가 끝날 때까지 승주에 머무르는 게 좋겠다고 했어. 안심하거라. 내가 보기에 신씨 가문은 더 이상 무안 후작과 이 혼사를 다툴 생각은 없는 것 같구나. 그동안 장사하며 익힌 내 안목이 틀리진 않을 게다.”연경은 실소를 터뜨렸다.“큰아버지, 제 말은 그 뜻이 아니에요.”“네가 무안 후작을 연모하는 마음은 잘 알아. 네가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시집을 가면 되지. 이 큰아버지는 절대 신 도령이 네 혼사를 망치게 두지 않을 것이다.”진백안은 자애로운 눈길로 연경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연경은 그의 말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진 않은 것 같았기에 그녀는 다과를 만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연경이 자리를 뜨자, 진백안의 입가에서 미소가 홀연히 사라졌다.그는 일어서서 진충안을 찾아가려다가 다시 의기소침하게 자리에 앉았다.“안 되겠어.”진충안은 원래 국공부를 더 마음에 들어했으니 무안 후작을 도와주려 나서지 않을 테고 그저 멀리서 구경만 하다가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돌아설 것이다.진백안은 한참을 꼼짝없이 앉아 있다가 서재로 가서 무안 후작에세 서신 한통을 썼다.한편, 무안 후작부.손기욱은 밤낮을 가리지 못할 정도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다시 눈을 뜬 그는 멍하니 연경의 침상에 누워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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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8화

손기욱은 더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꿈속의 그는 감정 기복이 매우 격렬했고 분노가 치밀어 그 짐승 같은 자식을 처단하려 할 때마다 감옥에 갇히거나 독주를 마시고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는 했다.참으로 험악한 악몽이었다.‘왜 이런 꿈을….’태복은 그의 안색이 초췌한 것을 보고 식사를 재촉하지는 않고 조심스레 그의 눈치를 살폈다.“승주쪽에서 소식이 왔습니다. 유주에서 보내온 서신입니다.”손기욱은 재빨리 정신을 가다듬고 태복에게서 서신을 받아 펼쳤다.“설마 그 여자가?”배후는 다름아닌 유왕비, 란향이었다.무안 후작부 사람들도 연경의 죽음이 가짜라는 의심을 품은 사람이 없었는데 멀리 유주에 있는 그녀는 대체 어찌 알아챘을까?만약 후작부에 누군가 이 일을 눈치챘다면 노부인은 결코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태복은 서신을 힐끔 보았다. 대부분은 암호로 쓰여 있어서 알아볼 수 없었다.평소 그렇게 냉철하던 손기욱은 오늘따라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는 문득 연경과 처음 접촉했을 때를 떠올렸다.그때 시종들은 그녀가 훗날 손유민의 통방이 될 거라 생각했고 그녀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만약 나중에 그녀가 매향원에 오지 않았더라면, 그녀의 운명은 꿈에서 본 것처럼 처참했을까? 또한 그는 어쩌면 독주를 마시고 저승길에 올랐을지도 모른다.“나으리? 시장하신가 보네요. 어서 식사하러 가시죠.”태복은 손기욱의 손이 파들파들 떨리는 것을 보고 용기를 내어 또 한번 권했다.손기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다가 문득 태복에게 물었다.“사람은 몇 번의 생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그의 머릿속에는 충격적인 가설이 떠올랐다. 만약 그 악몽이 모두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라면? 가령 전생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생생할 수가 있을까?그는 지금까지도 마음이 조여오는 것 같았다.그의 연경이 어찌 그런 비참한 삶을 살 수 있단 말인가! 그가 결코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예?”태복이 어리둥절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만약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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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9화

한편, 유왕부.유왕비는 평소와 같이 친히 보신탕을 들고 서재를 찾았다.“왕야께서 너무 피로하신 것 같아 제가 직접 끓인 잉어탕입니다. 한번 맛보시지요.”유왕비는 형식적인 예를 취하고는 곧장 유왕의 책상 앞에 앉아 책 한권을 뒤적였다.유왕은 더는 버티지 못하고 위장을 한 채, 조용히 경성에 잠입했다. 그는 적절한 시기에 궁을 습격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그리하여 지금 왕부에서는 유왕비가 모든 것을 주관하고 있었다.느긋하니 연기를 펼친 그녀는 서재 이곳 저곳을 뒤지다가 원하는 것이 보이지 않자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았다.서재를 나온 그녀는 자애로운 어머니가 되어 시종을 향해 손짓했다.“군주가 잉어탕을 마셨느냐? 승주 쪽에서는 새로운….”시녀의 안색이 하얗게 질리더니 무릎을 꿇었다.“마마, 군주께서… 사라지셨습니다!”유왕비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그녀는 허둥지둥 치맛자락을 쥐고 딸의 방으로 뛰어갔다.“사라졌다니? 당장 찾아!”그녀는 순간 하늘이 무너진 느낌이 들었다.왕부를 샅샅이 뒤졌지만 딸의 행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유왕비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딸의 방으로 가서 딸이 평소 즐겨 놀던 장난감을 멍하니 바라보았다.눈물범벅이 된 그녀는 우연히 상자 위에 새겨진 글짜를 발견했다.대충 휘갈긴 글씨와 난꽃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유왕비는 흠칫 몸을 떨었다.이는 손기욱의 솜씨였다. 그를 제외하고 난꽃을 이렇게 생동감 있게 그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손기욱이 딸을 데려간 것일까?유왕비는 온몸이 얼어붙었다.손기욱은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의 의도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그녀가 승주에 사람을 보내 그의 혼사를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그가 알아낸 것이다. 이 난꽃은 그의 경고였다.유왕비가 가장 소중히 생각하는 존재는 딸뿐이었다. 그런 딸이 사라졌으니 그녀는 연경에게 원망을 쏟아낼 여유가 없었다.“서신을 써야겠으니 필묵을 준비하거라!”유왕비는 비틀거리며 서재로 향하다가 다시 걸음을 멈추었다.“안 돼. 서신은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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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0화

연경은 앞서 큰댁을 위해 다과를 만들어 준 적이 있는데 큰 형수는 한번 맛보고 그 맛에 흠뻑 빠져버렸다. 그래서 이것저것 만들어 줬더니 역시나 큰 형수는 맛있게 먹었다.그리하여 연경은 최근 매일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큰 형수에게 주었다. 까다로운 송지운 밑에서 연마한 솜씨로 회임한 큰 형수의 입맛을 맞추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진형준의 부인은 원래 속좁은 사람이 아니었는데 장신구가 너무 예뻐서 어쩌다 보니 좀 샘이 났던 모양이었다.큰 부인의 말을 들은 형수는 아랫배를 매만지며 말했다.“할머니가 이 어미를 핀잔하시는구나.”큰 부인은 웃으며 며느리를 힐끗 흘겼고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렸다.곧이어 둘째 부인이 자식들을 데리고 선물을 전달하러 왔다. 대부분 어린 처자들이 좋아할만한 물건들이었다.연경은 일일이 감사인사를 올리고 둘째 형수를 바라보았다. 둘째 형수는 조금 불편한지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노부인, 무대가 다 꾸려졌습니다.”한 시녀가 웃으며 들어와 소식을 전했다.큰 부인은 웃으며 둘째 부인에게 말했다.“동서가 고생한 덕분에 오늘 좋은 구경을 하겠군.”며칠 전, 승주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눈에 띄는 일은 하지 말자는 말을 들었을 때, 큰 부인은 오늘 연극을 볼 수 없을 줄 알았다.그런데 둘째 부인은 의아한 눈빛으로 큰 부인을 바라봤다.‘형님이 부른 게 아니었어?’그녀는 큰 부인이 연극을 좋아해서 부른 줄 알고 극단 사람들을 집으로 들여보냈던 것이다.하지만 사람이 많으니 차마 물어볼 수도 없었다.사람들은 삼삼오오 떼를 지어 위씨 노부인과 연경의 주변으로 모여들어 함께 연극을 보러 앞뜰로 향했다.앞뜰에는 각양각색의 꽃들이 바람에 산들산들 춤을 추며 우아한 향기를 공중에 흩뿌렸다.해당화가 다 졌을 계절이건만 화분에 심은 분홍빛 해당화도 보였다.연경은 기쁨을 금치 못하며 화분으로 다가갔다. 언제 날아온 건지, 나비떼가 그녀의 주변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진가의 아들들은 놀란 눈을 하고 그쪽을 바라보았다. 마침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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