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시녀의 생존수칙: Bab 71 - Bab 80

100 Bab

제71화

금수원.손유민이 들것에 실려 돌아왔을 때, 그는 이미 기절한 상태였다.송지운은 피가 흥건한 그의 잔등을 보고 눈이 뒤집히더니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손유민은 무공을 연마한 적도 없는 몸으로 채찍 스무 대나 맞았으니 오장육부마저 어느 정도 손상을 입었다.극심한 두려움과 상처 때문인지, 그날 밤 손유민은 고열에 시달렸다. 그는 밤새 신음을 흘리며 끙끙 앓았다.송지운도 그의 곁을 지키며 밤새 울었다. 열이 내리고 손유민이 정신을 차린 후에야 그녀는 진실을 들을 수 있었다.“서책을 사러 거리에 나갔다가 배육진을 만났어. 엄청 나를 비꼬면서 얘기하더라고. 결국 사과한답시고 주루로 데려갔지. 녀석들이 술에 취해 상스러운 말을 좀 하긴 했었어. 집으로 돌아오니 아버지께선 다짜고짜 나에게 잘못을 아느냐고 물으시더군. 해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바로 채찍부터 휘두르셨어.” “배 시랑의 차남이 연경이를 마음에 들어해. 나 같은 신분에 무슨 수로 그들에게 밉보이겠어? 그래서 언제 그 애를 데리고 가서 재밌게 해주겠다고 말했지. 어차피 허풍이고 정말 데리고 나갈 생각도 없었어. 아버지께선 이 일로 내가 후작가를 풍기 문란한 곳으로 만들었다며 욕하셨지.”“지운아, 내가 널 이 집에 데려와서 고생만 시키는구나. 난 일개 양자일 뿐이고 앞으로 이 후작가에서 살아가려면 매사에 조심해야 할 거야. 차라리 할머니께 여쭙고 너를 집으로 돌려보내는 게 좋겠어. 너까지 나를 따라 이 억울함을 겪어야 할 필요는 없지 않니!”송지운은 힘없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서방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우린 혼인식을 올린 엄연한 부부입니다. 아버님께 꾸지람 한번 들었다고 제가 어찌 서방님을 버리고 떠날 수 있겠어요?”송지운은 자신도 손기욱이 돌아온 이후로 후작가가 손유민을 하찮게 여긴다고 생각했으니 손유민도 같은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그녀는 사무치는 분노를 참으며 서신을 써서 경양 후작가로 보냈다.경양 후작가는 비록 쇠락했지만 그래도 한때 공훈을 세운 가문이었다.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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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노후작은 버럭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이런 불효자식!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선 여기에 도망왔어? 유민이를 그렇게 만든 게 외부에 알려지면 무슨 소리를 들을지 생각은 안 해봤어? 내가 너 때문에 제명에 못 살아!”“아비가 아들을 가르치는데 왜 눈치를 봐야 합니까?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눈감아 주기만 하면 나중에 큰 사고를 치면 어쩌려고요?”손기욱은 노후작보다 키가 컸기에 노후작이 그를 올려다보는 구도였다.“그래! 아비가 아들을 가르치는 게 당연한 법이지!”말을 마친 노후작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멀지 않은 곳에 놓인 빗자루를 움켜쥐었다.손기욱은 피하지도 않으며 태연하게 말했다.“자식 못된 건 아비 탓이지요. 아버지께 매를 맞고 돌아가서 그 불효자식을 죽도록 패겠습니다.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이간질까지 하다니. 참으로 구제불능이군요!”노후작은 빗자루를 높게 치켜들었지만 결국 도로 내리고 말았다.그는 손기욱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이 미친 자식은 정말로 손유민을 때려 죽일 수도 있었다.손유민은 지금 혹독한 매를 버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8년 전 사소한 다툼 때문에 집에서 나가라고 했더니 정말로 집을 떠나 변방으로 떠나버린 손기욱이었다.“계집종 하나 때문에 양자에게 이렇게까지 매몰차게 굴어야겠느냐? 사내가 술을 마시다 보면 흥에 겨워 허풍도 좀 떨 수 있지! 그게 그렇게 큰 죄야? 사람들이 알면 네가 유민이를 내치려는 줄 알아! 너 편히 살고 싶지 않은 거야?”노후작은 분노를 억누르며 빗자루를 던지고 말했다.손기욱은 실망한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며 말했다.“아버지도 나이가 들어 총기가 흐려졌군요. 유민이는 무안 후작가에 오기 전까지 모두가 인정하는 수재였습니다. 그런데 후작가에 온지 불과 2년만에 게으르고 먹고 노는 것만 좋아하는 아이가 되었죠. 배육진과 같은 한량들과 어울리며 주색에 빠져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큰 사고를 칠 게 뻔해요. 돌아가신 조상님들께 부끄럽지도 않습니까?”손기욱은 손유민이 죽림에서 추태를 부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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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화

노후작이 백초당 앞에서 기다리고 있기에 손기욱은 이만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연경의 얼굴은 빨간 사과처럼 새빨갛게 붉어져 있었다.손기욱은 그녀를 다시 이불 안에 눕히고 서주행에게 치료 똑바로 하라는 당부를 남긴 채,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났다.집으로 돌아온 손기욱은 노후작에게 끌려 송학당으로 바로 갔다.등불이 밝게 밝혀진 송학당에서 노부인은 한숨만 풀풀 쉬고 있었다. 돌아온 손기욱을 보자 그녀는 다가가서 그의 어깨를 쳤다.“이 불효자식! 드디어 돌아왔구나!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기나 하니?”손기욱은 미간을 찌푸리며 노부인에게 말했다.“말씀드릴 수 있는 건 다 드렸고 아버지, 어머니께서 그래도 제가 잘못했다고 생각되신다면 참 실망스러울 것 같습니다만.”노후작은 고집스러운 그 모습을 보고 뒷목이 뻐근해졌다. 결국 그는 같이 갔던 호위를 시켜 백초당에서 들은 내용을 노부인에게 전달하게 했다.얘기를 다 들은 노부인의 안색이 변했다.노후작은 시종을 물린 후에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지금의 넌 무안 후작이고 네 모든 행동은 가문의 영광과 직결되어 있어! 폐하께서 너를 중용하시어 수렵 대회 중비까지 맡기셨는데 이런 일로 괜한 불란을 만들어서는 되겠어? 나중에 누가 네 추문을 수집하여 조정에서 널 탄핵하려 들면 어쩌려고?”“저는 떳떳합니다.”노후작은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그를 삿대질했다.노부인은 이런 대의나 명분보다 가문의 체면이 더 걱정이었다.“유민이가 마음에 안 들면 멀리하면 될 것을. 다시는 매를 들지 말거라! 이번 일이 경양 후작가에까지 알려져서 안 좋은 소문이 나돌 수도 있으니!”“무식하면 책을 읽으면 되고 용모가 추해도 치장으로 가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추악한 마음은 어떻게든 해결책이 없는 것이지요. 전에 그 아이가 틀린 길에 들어설 조짐이 보여 그 일당들을 다 세워놓고 혼을 낸 적이 있습니다. 배육진 일당과 유민이의 왕래를 끊기 위함이었지요.”“그날 이후로 어머니께 그 아이를 엄격히 단속하고 외출을 삼가시키라 한 것도 그 이유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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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노후작은 착잡한 시선으로 노부인을 힐끗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런 것 같기도 하네.”노부인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그 일이 있은 후로 노인은 더 이상 손기욱에게 혼사를 재촉할 수 없게 되었다.다음 날, 백초당.서주행은 짐정리를 하러 온 조태복에게 자초지종을 따져물었다. 태복이 떠난 후, 그는 정원에 앉아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기욱이 녀석 요즘 이상해.’“서 의원님, 점심은 뭐로 드실 건가요?”연경의 목소리가 그의 사색을 중단시켰다.서주행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햇살 아래 그녀의 하안 피부와 아름다운 용모는 봄꽃처럼 싱그럽게 빛났다.손기욱이 앞으로 그녀를 어떻게 대할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서주행 자신은 이 시녀에게 잘해주고 싶었다.그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아무리 찾아도 옥조는 못 찾겠더라고. 오라비가 오늘 나가서 새로 사줄게. 점심은 나가서 먹자.”“저는 치료를 받으러 온 사람인데 어찌 서 의원께 그 많은 돈을 쓰게 하겠어요?”연경은 서주행의 친절을 마냥 받기만 할 수는 없었다. 그와 시녀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는 더욱 그랬다. 어쩌면 서주행은 그녀가 시종이라서 연민을 느꼈을 수도 있었다.감정이라는 것은 서로 주고받아야 하는 법이다.그녀는 서주행을 위해 뭔가를 해준 것도 없고 이유 없는 친절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러나 그녀가 그런 생각을 하건 말건, 서주행은 초욱을 시켜 마차를 끌고 오게 했다. 그렇게 세 사람은 함께 금옥당으로 갔다.금옥당은 경성에서 가장 유명한 금은방으로 각종 장신구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수많은 귀족 여인들은 이곳에 와서 장신구를 구매하기 좋아했다.마차가 금옥당 앞에 도착했으나, 연경은 감히 마차에서 내리지 못했다.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너무 잘 알았다. 서주행은 워낙 평판이 바닥인 사람인데 두 사람이 같이 안으로 들어갔다가 누가 그녀를 알아보면 또 한바탕 소란이 일 것이 분명했다.안 그래도 살얼음판 같은 삶인데 이번에 사고가 나면 아마 전생보다 일찍 목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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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그렇게 조심했는데 하필 여기서 장씨를 마주칠 줄이야!장씨의 앙칼진 목소리에 주변 시선이 모두 이쪽으로 쏠렸다.연경은 하는 수 없이 앞으로 다가가 공손히 예를 행했다.“셋째 마님께 문안드립니다.”화려한 비단옷에 두터운 분으로 단장한 장씨의 모습은 부유해 보이긴 하나, 귀티와는 거리가 멀었다.가족 연회에 갔을 때도 이런 모습이었는데 큰댁과 둘째 당숙네 집안 여인들이 다 비슷한 단장을 하고 있어서 위화감이 그나마 적었던 거였다. 그러나 귀한 분들 틈에 서 있으니 너무 속되어 보였다.손씨 가문의 큰댁과 둘째 당숙네 집안은 무안 후작가의 세를 빌려야 겨우 귀하신 관원들과 접촉할 수 있었다. 하필 그들은 허영심이 강해서 평소에도 최대한 부유한 티를 내고 싶어 외출할 때도 최대한 화려한 차림으로 꾸미고 다녔다.장씨는 턱을 치켜들고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물었다.“너희 마님은 어디 계시니?”“작은 마님은 저택에 계십니다. 오늘은 저 혼자 왔어요.”연경은 솔직히 답했다.장씨는 크게 실망했다. 조금 전 마음에 든 옥팔찌가 있었는데 가격이 조금 비싸서 송지운에게 도움을 받을 생각이었다.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니 주변에서 비웃는 시선이 느껴졌다. 지난번 가족 연회에서 자신을 넘어뜨린 연경이 눈앞에 있으니 장씨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눈치 빠른 장씨의 시종은 연경의 손에 들린 은표를 보더니 장씨의 귓가에 대고 귓속말했다.장씨는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더니 다가와서 연경의 팔목을 잡았다.“지난번 연회에서 네가 뜨거운 국물을 나 대신 맞아주지 않았으면 내 얼굴은 망가졌을 거야. 너무 혼란스러워서 고맙다고 말할 기회도 없었는데, 정말 고마웠어.”까탈스러운 사람은 멀리하는 게 답이었다.연경은 놀란 표정을 하며 뒤로 두 걸음 물러서서 공손히 말했다.“소인이 응당 해야 할 일이니 너무 개의치 마십시오.”장씨는 그녀를 곤란하게 하지는 않고 몇 마디 인사를 나눈 후에 장신구를 보러 갔다.연경은 그저 빨리 옥조를 사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그러나 곧이어 장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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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그녀는 더 이상 싸늘한 주검이 되어 쓰레기장에 버려지고 싶지 않았다.사무치는 공포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은표가 얼마짜리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장씨는 괜히 찔려서 시종을 바라보았다.시종은 표정 하나 안 바꾸고 당당히 말했다.“네가 손에 든 은표를 마님께 보여드리면 되는 일이야! 우리 마님 께 아니라면 절대 널 곤란하게 하지 않을 거라고 약속하지!”연경은 숨이 막혔다.이런 황당한 일에 치이게 될 줄이야! 전생에 큰댁 사람들이 탐욕스럽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탐욕을 넘어 기생충에 가까웠다!연경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전 은표가 없는데요….”분노한 장씨가 고함쳤다.“감히 거짓말을 해?”말을 마친 그녀는 시종에게 눈짓했다.그러자 시종들이 우르르 몰려와 연경을 포위하더니 그녀의 팔목을 붙잡고 여기저기 더듬기 시작했다.놀란 연경이 비명을 질렀다.“이게 뭐하는 겁니까!”비명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장씨는 수치심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저 시선들이 모두 자신을 비웃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그녀는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송지운의 시종 따위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니 분노가 치밀었다.‘은표만 내놓으면 될 일을!’장씨의 시종이 변명하듯 소리쳤다.“네가 우리 마님의 은표를 훔쳤잖아! 빨리 이리 내!”도둑이 들었다는 얘기에 각 저택의 시종들은 주인을 둘러싸며 주변을 경계했다. 연경은 홀로 고립된 처지가 되었다. 사람들은 구경만 할 뿐, 아무도 그녀를 위해 나서주지 않았다.연경은 목소리를 낮추어 장씨에게 말했다.“마님, 꼭 이렇게 일을 크게 만드셔야겠습니까? 무안 후작가의 체면이 추락하면 마님께도 큰댁에도 이득 될 게 없을 텐데요?”장씨는 잠깐 주저했다.안 그래도 장씨의 평판은 별로 좋지 못했기에 그녀를 못마땅해하던 누군가가 웃음을 터뜨렸다.“이상하네. 저 사람은 금옥당에 와서 한참이나 구경하더니 고작 비녀 하나 샀어. 딱 봐도 주머니 사정이 궁한데 은표를 도둑 맞히다니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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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관아를 향해 달려가던 초욱은 중도에 손기욱을 만났다.손기욱이 금옥당에 도착했을 때, 안쪽은 아수라장이었다. 점포의 일꾼들은 금은 장신구를 다른 곳으로 옮기기에 바빴다. 그 바람에 일부는 바닥에 떨어져 깨지기까지 했다.손기욱은 연경의 성격에 잘못이 없어도 고분고분 인정하고 괴롭힘을 당해줄 줄 알았다.그런데 그가 상상했던 모습과는 다르게, 연경은 시뻘겋게 충혈된 눈을 하고 손에는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그녀의 뺨에는 시뻘건 손자국이 찍혔지만 장씨도 상황은 좋지 못했다. 머리는 산발에 장신구들이 주렁주렁 머리에 매달린 꼴이고 겁에 질려 얼굴은 창백하게 질린 상태였다. 그녀의 시종들은 더욱 처참했는데 얼굴에 크고 작은 상처들이 보였다.손기욱은 기가 차서 웃음이 나왔다.“이 정도로 소란이 커질 줄은 몰랐는데.”장씨는 손기욱을 본 순간 재빨리 시선을 피했다.그래도 어쨌거나 큰댁 손주며느리이니 일개 시종인 연경을 두둔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장씨는 울음을 터뜨리며 손기욱에게 다가갔다.“나으리, 저 시종이 글쎄 윗사람에게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저런 건 끌고 가서 죽을 때까지 곤장을 쳐야 해요! 그래야 다른 시종들도 웃어른 무서운 줄 알죠!”하지만 손기욱의 싸늘한 시선에 장씨는 이내 입을 다물고 말았다.그는 연경의 얼굴에 난 손자국을 보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니까 내가 혼자 돌아다니지 말라니까. 혼자 돌아다니니까 저런 미친개들한테 물리는 거 아니냐.”장씨는 손기욱과 거의 접점이 없었다. 그녀가 이렇게 가까이서 손기욱을 바라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모두를 압도하는 강압적인 분위기에 한풀 꺾인 장씨는 말까지 더듬었다.“나으리… 어찌… 이유도 묻지 않고….”그러나 손기욱의 따가운 눈총이 날아오자 곧바로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손기욱은 연경을 바라보며 물었다.“어떻게 된 일이야?”연경은 잠시 감정을 추스르고는 공손히 답했다.“소인은 서 의원의 심부름으로 물건을 사러 왔는데 셋째 마님께서 갑자기 제가 은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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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손기욱은 당연히 그 말을 따라주지 않았다.“큰댁에서 너한테 밥을 안 주느냐? 어디서 모기 소리를 내고 있어?”장씨는 수치심에 얼굴이 화끈거리고 눈물이 났다.“은… 은표는 취아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서 나으리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뭐 해?”장씨를 부추겼던 시종이 바로 취아였다.“나… 나으리, 소… 소인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손기욱이 차갑게 코웃음치자 그녀는 겁에 질려 아무렇게나 대답해 버렸다.“이… 이백 냥짜리 은표였습니다.”손기욱은 냉소를 짓고는 은표를 펼쳐 장씨에게 보여주었다.“이게 네 거야?”장씨는 더 이상 자신이 옳다고 우길 수 없었다.“제 것이 아닙니다.”“그렇다면 네가 내 시종을 모함했다는 거겠구나.”장씨는 연경은 송지운의 시종이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금수원 시종이면 후작가 시종이니 손기욱의 말에 틀린 게 없었다.겁에 질린 장씨는 취아의 등을 떠밀었다.“저는 그저 의심을 했을 뿐이고 저 아이가 꼭 훔쳤다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취아가 저 아이가 도둑이라고 우겨서 이 소란이 벌어진 겁니다.”“본분도 모르고 예의도 없는 시종을 남겨둬서 뭐해!”그 말을 들은 취아는 자신의 운명을 직감하고 울며 장씨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셋째 마님, 소인은 마님이 시킨 대로 했을 뿐입니다! 마님께서 은화가 부족하니 저 아이의….”장씨는 더 이상 떠들게 두었다가는 큰일이 날 것 같아 다급히 소리쳤다.“닥쳐!”손기욱은 그들의 더러운 진흙탕 싸움을 지켜볼 생각이 없었다.“후작가의 시종은 함부로 괴롭혀도 되는 존재가 아니다. 소문이 나면 후작인 내가 무능하다 할 것 아니냐.”장씨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녀는 하는 수 없이 취아를 가리키며 말했다.“이년이 사사로이 소란을 피운 겁니다.”절망한 취아는 엉금엉금 기어서 연경에게 가서 사정했다.“내가 잠깐 정신이 나갔었어. 고의로 널 해하려던 것은 아니야. 다 같은 시종끼리 제발 나 좀 살려줘. 이러다가 나 죽어!”지금의 큰댁은 무안 후작가의 세를 등에 업고 영광을 누리고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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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화

연경이 어느 정도는 힘을 뺄 거라 예상했던 취아는 중심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귀에서 이명이 들리고 얼굴이 얼얼했다.취아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연경은 고고하게 손기욱의 뒤를 따라 금옥당을 떠났다.금옥당 점주는 일꾼에게 눈치를 주었다. 지시를 받은 일꾼은 다급히 달려나가 손기욱의 등 뒤에 대고 소리쳤다.“잠시만요, 나으리! 금옥당에서 훼손한 장신구들은….”일꾼은 말끝을 흐리며 연경을 힐끗 보았다.손기욱이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누가 먼저 시비를 걸고 폭력을 휘둘렀지?”일꾼은 멍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점주는 그의 말뜻을 알아듣고 일꾼에게 돌아오라 손짓했다.연경의 등 뒤로 장씨의 절망한 비명이 들려왔다.“이게 어찌 다 내 책임이라는 건가! 이 팔찌는 연경이 부순 거야! 그리고 저기 병풍도 그 애가 취아를 밀쳐서 망가뜨린 거고….”연경은 그 소리를 들으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손기욱은 때마침 그 미소를 목격하고 못 말린다는 듯이 물었다.“전에는 늘 겁쟁이처럼 물러서기만 하더니?”걸음을 멈춘 연경은 정중하게 그에게 예를 행했다.“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으리. 소인이 어리석어 나으리의 공무를 지체하게 만들었네요.”사실상 그녀는 조금 전에 은표를 구석에 버릴 생각도 했다. 그러면 은표를 도둑맞았다는 사실이 성립되지 않으니 장씨가 아무리 고집을 피워도 증거가 없으니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 대가는 그녀가 백 냥이나 되는 빚을 져야 하는 거였다. 그래도 버리기 전에 손기욱이 와줘서 천만다행이었다.손기욱은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를 흘겨보았다.“칭찬 괜히 했네.”연경은 허리를 펴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소인은 무안 후작가의 시종에 불과하지만 밖에서 이유 없이 괴롭힘을 당할 수는 없어요. 후작가의 체면도 생각해야죠. 소인은 도둑질을 하지 않았는데 그저 조용히 넘어가려고 시인한다면 나중에 사실이 알려지고 필히 후작가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거라 생각했어요. 그때가 되면 작은 마님도 소인을 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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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연경은 더 이상 그의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나으리, 어서 가보십시오.”손기욱의 눈가에서 온기가 사라지더니 말없이 말에 올랐다.연경은 떠나는 그의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뒤돌아서 서주행의 마차에 올랐다.“서 의원님, 제가 호의를 거절하는 게 아니라 사고가 좀 생겨서 결국 옥조는 사지 못했네요.”서주행은 그녀의 얼굴에 남은 자국을 보고는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다 내가 고집을 피워 여기 오자고 해서 생긴 일이야. 오라비가 미안하구나. 나중에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얘기해. 내가 최선을 다해 네 소원을 이뤄줄 테니.”연경은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소주행은 초욱을 시켜 옥조 두 개를 사오게 했다. 마차에 둘만 남게 되자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방금 내가 안 들어가서 날 원망하진 않았어?”연경은 눈을 깜빡이다가 담담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어쨌거나 서 의원께서 제가 일을 해결할 수 있게 기회를 만들어 주셨잖아요.”서주행은 그녀에게 속마음을 읽혔다는 생각에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그녀는 왜 그가 사고가 났을 때 바로 들어가지 못했는지 알고 있었고 평소에 방탕아라는 꼬리표를 달고 산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왜 그가 타인인 그녀에게 호의를 보이는지도 아는 것 같았다.서주행은 참으로 똑똑한 아이라며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장씨에게는 손해를 배상할만한 돈이 없었다. 금옥당 점주도 자선가는 아니라, 장씨에게 차용증을 쓰게 한 후에 돌려보냈다.큰댁 할아버님은 그날 밤에 그 일을 알게 되었다.장씨는 일이 탄로나자 궤변을 늘어놓았다. 자신은 정말 은표를 잃어버렸으며 마침 연경이 수상해서 수색하려 했을 뿐인데 연경이 자신을 무시해서 홧김에 다투다가 그렇게 된 거라고 했다.할아버님은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안 그래도 평소에 손기욱이 자신을 무시하는데 이렇게 대놓고 무시한 적은 또 처음이었다.다음날 아침, 큰댁은 장씨 부부를 데리고 무안 후작가를 방문했다. 그는 일부러 손기욱이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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