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Bab 1131 - Bab 1140

1160 Bab

제1131화

“주민혁 하나 때문에 이 난리야? 그 사람 없다고 우리 임씨 가문이 더 괜찮은 혼처 하나 못 구하겠어?”“더 괜찮은...?”임하은이 고개를 들었다. 눈은 퉁퉁 부어 있었고 목소리에는 절망이 가득했다.“아빠는 몰라요. 전... 제 희망을 전부 그 사람한테 걸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제 그 사람이 절 버렸어요. 저 이제 어떡해요?”그녀는 주씨 가문에 시집만 가면 최고로 높은 자리와 부를 손에 넣고 지금의 궁지에서도 벗어날 수 있으리라 믿어왔다.하지만 주민혁의 말은 찬물처럼 들이쳐 그녀가 붙들고 있던 희망을 모조리 꺼뜨려 버렸다.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심종연에게서 온 전화였다.임하은은 몇 초간 망설이다가 결국 통화 버튼을 눌렀다.“임하은 씨, 목소리가 별로 안 좋아 보이네요.”휴대폰 너머로 들려온 심종연의 목소리는 온화했지만 미묘하게 떠보는듯한 기색이 섞여 있었다.임하은은 코끝을 훌쩍이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심 대표님, 대표님 말이 맞았어요. 민혁 씨는 정말 저한테 마음이 없어요. 아까 우리 집에 와서... 자기는 저랑 결혼할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다고, 분명히 말했어요.”심종연은 잠시 침묵하더니 동정하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처음부터 얘기했잖아요. 주 대표님 마음에는 임하은 씨가 없다고. 임하은 씨는 똑똑한 사람이에요.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 하나에게 모든 희망을 걸 필요는 없죠.”“그럼 전... 어떡하죠?”임하은이 힘없이 물었다.“저, 이제 아무것도 없어요.”“임하은 씨 자신은 남아 있잖아요.”심종연의 목소리가 의미심장하게 가라앉았다.“한 사람한테만 매달리기보단 스스로에게 퇴로를 만들어두는 게 낫죠. 임씨 가문도 재계에 인맥이나 자원이 없진 않을 텐데, 원한다면 우리 플라잉 테크로 와요. 협업 건으로 따로 얘기해봅시다. 임하은 씨 능력이라면 플라잉 테크에서 원하는 걸 충분히 얻을 수 있을 거예요.”임하은의 눈빛이 순간 환해졌다.심종연의 플라잉 테크는 탄탄한 자본과 영향력을 갖춘 곳이었고 업계에서도 이름이 높았다.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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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2화

다음 날 아침, 임하은은 깔끔한 정장 차림으로 제노 테크 로비에 나타났다.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불안하면서도 분한 마음을 억누르고 곧장 주민혁의 사무실로 향했다.어젯밤 심종연과 통화한 뒤, 그녀는 한숨도 못 잔 채로 결국 ‘마지막 시험’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사직서를 내밀고 완전히 등을 돌리는 것 말이다.그녀는 주민혁이 단 한 번이라도 붙잡아 주길 바랐다. 거창한 말이 아니어도 ‘왜?’라는 물음 하나만이라도 던져주길 바랐다.그 한마디면 적어도 자신이 그의 마음에서 완전히 아무것도 아닌 존재는 아니라는 걸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았다.사무실 문은 열려 있었다. 주민혁은 한 손에 따뜻한 커피 한잔과 함께 고개를 숙이고 서류를 보고 있었다.발소리가 들리자 그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담담하게 물었다.“무슨 일이야?”치맛자락을 꼭 쥐고 책상 앞에 선 임하은은 의식적으로 침착한 상태를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주 대표님, 저 사직하겠습니다. 오늘부로 제노 테크와의 근로관계를 정리하고... 주 대표님과도 완전히 끝내겠습니다.”그제야 주민혁이 고개를 들었다.시선이 그녀의 얼굴에 닿았지만 마치 자기와 상관없는 일을 듣는 듯, 눈빛에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마음대로 해.”얼음처럼 차가운 한 마디, 그 말이 임하은의 가슴속 마지막 희망까지 단숨에 꺼뜨렸다.멍하니 주민혁을 바라보던 임하은은 순식간에 눈가가 붉어지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민혁 씨... 민혁 씨는 나한테 정말 일말의 감정도 없어요? 이렇게 오래 알고 지냈는데 사랑이 아니라도 정은 조금쯤 남아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주민혁은 서류를 내려놓고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였다. 그리고 되물었다.“그래야 할 이유가 있나?”이 한마디가 망치처럼 심장을 내려쳤다.임하은은 눈앞의 차가운 남자를 보며 갑자기 모든 게 우스워졌고 동시에 처참해졌다.“나 갖고 노는 게 그렇게 재밌었어요?”목소리가 높아지며 억눌렀던 분노와 서러움이 터져 나왔다.“처음부터 날 이용한 거잖아요. 맞죠?”주민혁의 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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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3화

최수빈은 유난히 은은한 단맛이 도는 한 가게의 쿠키를 좋아했고 허니자몽차의 부드러운 목 넘김도 즐겼다. 이건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습관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이제는 그걸 기억하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주민혁을 바라봤다. 그는 창가에 서서 천공의 기술본부장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얼굴이 옆선이 딱딱하게 굳어 있고 표정에 감정이라곤 없는 것이 마치 이 ‘특별한’ 디저트도 그저 우연찮게 준비한 것으로 보였다.하지만 이게 우연일 리 없다는 것을 최수빈은 알았다. 예상치 못한 특별 대우가 불편할 만큼 낯설었다.최수빈은 고개를 숙이며 주민혁 쪽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냥... 우연이겠지.”“우연?”송미연이 코웃음을 쳤다. 그러고는 목소리를 낮춰 최수빈 귀에 바싹 붙었다.“난 절대 안 믿어. 이 테이블에 있는 것들 봐. 완전 네 맞춤이잖아. 일부러 너한테 맞춰 준비한 거지, 그게 아니면 뭐야? 큰일 났네, 최수빈. 내가 보기에는 주민혁 저 사람, 너 다시 잡으려는 거야.”“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최수빈이 딱 잘랐다.송미연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못 믿겠다는 표정이었지만 더는 놀리지 않았다.이내 최수빈은 쿠키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었다. 익숙한 단맛이 혀끝에 퍼졌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복잡했다.먼지 속에 묻어 두었던 기억들이 그 순간 되살아난 듯했다. 달콤함이 섞여 있으면서도, 어딘가 시큰한 여운까지 함께 올라왔다.회의가 끝나고 모두 짐을 챙겨 나갈 준비를 했다.최수빈도 문 쪽으로 걸어가는데 주민혁이 뒤따라 나와 그녀의 옆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디저트 입에 맞았어? 전에 몸이 많이 약했었잖아. 허니자몽차는 속을 부드럽게 해줘서 너한테 잘 맞아. 좀 더 챙겨 마셔.”몸이 약했다는 말에 최수빈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뜻밖의 유산으로 잃었던 그 아이는 지금도 그녀의 마음에 깊게 남은 상처였다.최수빈은 손에 있는 서류를 꽉 쥐며 딱딱한 말투로 말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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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4화

주민혁은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술병을 들어 육민성의 잔을 가득 채우며 담담하게 말했다.“사랑은 사라지지 않죠.”짧지만 묵직한 한마디였다.육민성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생각보다 잘 숨기시네요. 몇 년 동안 계속 뒤에서 지켜주면서도, 정작 본인은 모르게 했잖아요.”주민혁은 복잡한 감정이 섞여 있는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수빈이의 삶을 건드리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도 지금은 육 대표님이 곁에서 돌봐주니까 잘 지내고 있죠. 전 그걸로 충분해요.”“충분해요?”육민성이 눈썹을 치켜올렸다.“충분했으면 오늘 그 쿠키랑 허니자몽차를 따로 준비할 리가 없죠. 회의 끝나고 몸은 괜찮냐고 굳이 묻지도 않았을 거고 식사 자리 내내 그렇게 쳐다보지도 않았을 거예요. 주 대표님, 속으로는 미칠 만큼 신경 쓰면서 겉으로는 차갑게 구는 거... 안 피곤하세요?”주민혁은 대답하는 대신 잔을 들어 단숨에 비웠다.독한 술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며 따갑게 자극했지만 덕분에 정신은 오히려 또렷해졌다.육민성의 말이 맞다. 주민혁은 늘 흔들렸다. 최수빈에게 다가가고 싶었으나 또 상처를 줄까 두려워 한 걸음을 못 디뎠다.이내 주민혁이 육민성을 바라보며 진심으로 말했다.“고마워요.”예상치 못한 말에 당황한 듯 육민성이 잠시 멈칫했다.“뭐가... 고마워요?”“그동안 수빈이 챙겨줘서요. 그 애가 제일 힘들 때 곁에서 도와주고 버텨주게 해줘서요.”주민혁의 목소리는 낮고 거칠었다. 아주 미세하게, 목이 잠긴 듯한 기색도 섞여 있었다.“육 대표님이 없었으면... 지금의 수빈이는 없었을지도 몰라요. 알아요, 육 대표님도 수빈이한테 진심이라는 거. 그래서 더 고마워요.”이 말에 육민성은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했다.그는 늘 주민혁이 자신을 적대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어쨌든 두 사람은 늘 라이벌이었으니 말이다.‘내가 주민혁한테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이야...’육민성은 진심과 피로가 섞인 주민혁의 눈을 보며 마음속에 있던 날이 조금씩 무뎌지는 걸 느꼈다.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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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5화

주민혁은 늘 최수빈은 자신을 사랑한 적이 없다고 믿었었다.그래서 박하린과도 그런 것이었다.제멋대로 굴고 선을 넘을 수 있었던 것도, 어차피 최수빈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단정했기 때문이었다.주민혁의 가슴이 무겁게 가라앉았다.그는 눈을 내리깔았다. 복잡한 마음이 요동치더니 고통과 후회, 억울함이 한꺼번에 밀려들어 그대로 자신을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보이지 않는 손이 심장을 꽉 틀어쥐는 것처럼 아파 주민혁은 가슴을 움켜쥐었다. 눈앞이 까맣게 번졌다.곧 주민혁은 천천히 몸을 낮춰 웅크리듯 주저앉았다. 온몸이 덜덜 떨렸다.그때 갑작스레 기침을 할 것 같아 주민혁은 반사적으로 입을 막고 숨이 끊길 듯 거칠게 기침을 쏟아냈다.“주 대표님!”멀찍이 따라오던 려운이 그 모습을 보고 급히 달려왔다.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괜찮으세요?”주민혁은 손을 저어 부축하지 말라는 뜻을 보였다.기침이 조금씩 잦아들자 그는 천천히 손을 내렸다. 그리고 펼친 손바닥 위에는 눈을 찌를 듯 선명한 붉은색이 번져 있었다. 피였다.순식간에 표정이 굳더니 려운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주 대표님... 피가 나요. 지금 당장 병원 가셔야 합니다.”주민혁은 손바닥의 핏자국을 바라봤다.하지만 마치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듯 눈빛이 오히려 기이할 만큼 차분했다.그는 티슈로 손을 닦으며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예전부터 있던 일이야. 큰일 아니니까 집에 가자.”“하지만...”려운이 더 말하려는 순간, 주민혁의 차가운 시선이 그 말을 끊어냈다.“집에 가자고.”주민혁은 한층 더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못을 박았다. 결국 려운은 마지 못해 그를 부축해 차로 향했다.검은 세단이 천천히 자리를 떠났다. 주민혁은 등받이에 기대 눈을 감았다.몸이 점점 망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심각한 우울증에 오래 이어진 극도의 긴장으로 인해 이미 몸이 버티지 못하고 있었다.그럼에도 아직 끝내야 할 일이 남아 있었기에 그는 쓰러질 수 없었다....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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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6화

“나가.”주민혁이 내쫓자 려운은 더 버티지 못하고 결국 나갈 수밖에 없었다.려운이 억울함과 걱정을 가득 안은 채 떠나고 나니 거실에는 주민혁 혼자만 남았다.그는 애초에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스스로를 눌러 참는 데 익숙했고 늘 남들의 안위부터 자기 위에 올려놓는 데도 익숙했다. 우울감이 달라붙고 피를 토할 만큼 기침이 멈추지 않아도 그 정도는 별일 아니라고 여겼다.손끝이 휴대폰 화면을 쓸어내리다 최수빈의 연락처에서 멈췄다. 눈빛이 잠깐 부드러워졌다가 이내 차갑고 단호한 기색이 그걸 덮어버렸다.밤새 한숨도 못 잔 채, 하늘이 밝아질 무렵 주민혁은 말끔히 준비를 끝냈다. 검은 정장이 그를 더 반듯하게 보이도록 했지만 창백한 안색은 여전했고 눈 밑의 다크서클도 숨겨지지 않았다.얼마 후, 려운이 직접 운전해 그를 입찰 현장으로 데려갔다. 가는 내내 두 사람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차 안의 침묵은 마치 짙은 안개처럼 좀처럼 걷히지 않았다.07 전투기 프로젝트의 첫 공개 입찰은 업계의 시선을 모조리 끌어당겼다.행사장 안팎은 사람들로 들끓었고 각 기업의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이 전략적 가치가 큰 사업에서 한몫 챙기려는 눈빛을 숨기지 못했다.최수빈과 육민성이 천공 팀을 이끌고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자리가 꽤 찬 뒤였다.최수빈은 깔끔한 흰색 정장 투피스 차림에 머리를 단정히 틀어 올려 가느다란 목선이 드러났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진지한 표정은 프로다운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육민성은 그녀의 곁에 서서 입찰 세부 사항을 낮은 목소리로 맞춰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동작은 자연스럽고도 호흡이 맞아 주변에서 힐끔거리는 시선이 적지 않았다.최수빈은 무심코 행사장을 훑다가 곧 플라잉 테크 자리에서 시선을 멈췄다. 심종연이 옆 사람들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날카로운 눈빛에 여유로운 분위기가 함께 섞여 있어 이미 이겼다는 듯한 자신감이 묻어났다.조금 떨어진 곳에는 임명규가 임하은을 데리고 와 있었다. 임하은은 붉은 드레스를 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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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7화

“네 엄마도 아직 주씨 가문에 있는데 그 정도 가족의 정은 생각도 안 해? 네 엄마 마음은?”“가족의 정이요?”주민혁이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 허무해 보이는 눈빛에는 비웃음도 함께 섞여 있었다.“이제 와서 저한테 가족의 정을 말하시는 거예요? 형이 그때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질렀을 땐, 왜 가족의 정을 생각하지 않으셨죠? 주씨 가문의 명성을 땅에 떨어뜨려서 어머니가 날마다 눈물로 버텨야 했을 때는요? 그때는 왜 가족의 정을 떠올리지 못하셨습니까?”주기훈의 얼굴이 순간 파랗게 질렸다가 창백해졌다. 입을 열어 보려 했지만 반박할 말이 나오지 않았다.주민혁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다만 아무리 그래도 친자식인지라 장남이 감옥에서 세월을 허비하는 걸, 그는 도저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주민혁은 아버지의 난처해하는 기색을 바라보며 더 차갑게 말했다.“가족의 정이 그렇게 중요하시면 저도 하나 묻겠습니다.”그는 잠깐 말을 끊더니 칼날처럼 날카로운 눈으로 주기훈을 정면으로 바라봤다.“심종연이랑 형, 둘 중 하나만 살릴 수 있는 상황이면... 아버지는 누구를 택하실 겁니까?”주기훈은 그대로 얼굴의 모든 근육이 굳어버렸다. 주민혁이 이런 질문을 던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한 것이었다.심종연과 주선웅 사이에는 실타래처럼 얽힌 연결고리가 있었다.예전 주선웅 사건의 뒤에는 심종연이 은근히 판을 흔들어놓은 흔적이 있었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없었다.그런데도 주기훈은 그동안 물밑에서 심종연과의 관계를 이어왔다.주민혁은 아버지와 심종연이 얽혀 있다는 걸 진작부터 알고 있었으나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을 뿐이었다.지금 이런 중요한 순간에 그 질문을 던진 것은, 주기훈의 가장 약한 곳을 정확히 찌른 셈이었다.“너... 너 무슨 뜻이야?”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주기훈은 시선도 흔들려 주민혁과 제대로 눈을 맞추지 못했다.“별 뜻 없습니다.”주민혁은 시선을 거두며 담담하게 말했다.“그냥 아버지도 아셨으면 해서요. 어떤 선택은 애초에 단순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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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8화

그때 려운이 찾아와 최수빈을 불렀다. 할 말이 있다는 것이었다.소란스러운 입찰장 쪽의 소리는 문 너머에서 희미하게 새어 들어왔다. 최수빈은 려운을 따라 복도를 지나며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 소리를 죽였다.려운은 별다른 설명 없이 눈에 띄지 않는 휴게실 문 앞에서 멈춰 섰다. 그러고는 가볍게 문을 두드리더니 그대로 돌아서 떠났다.최수빈은 숨을 한 번 고르고 문을 열었다.방 안은 다소 어두웠다. 벽등 하나만 켜져 있었고 주민혁은 창가 쪽 소파에 앉아 있었다. 이상하게 등만 보이는데도 유독 쓸쓸해 보였다.어제 저녁 식사 자리에서 봤던 모습과는 비교도 안 됐다. 하룻밤 사이 기운이 몽땅 빠져나간 사람처럼, 얼굴은 거의 투명할 만큼 창백했고 눈 밑 다크서클은 더 짙어져 있었다.최수빈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입까지 올라온 말을 그대로 삼켰다.그렇게 주민혁을 바라보다가 입술만 달싹이고는 끝내 망설이는 목소리로 말했다.“민혁 씨...”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강지안이 예전에 했던 말이 불쑥 떠올랐다. 그의 우울증이 상당히 심각하다던 말 말이다.‘아, 환자였지.’과거의 원망과 오해가 ‘환자’라는 두 글자 앞에서는 갑자기 힘을 잃는 것 같았다.아픈 걸 혼자 견디는 사람에게 굳이 끝까지 따지고 들 필요가 있을까.주민혁은 언제든 떠나버릴 것 같았다. 정말 아무렇지 않게 사라질 것 같았다.미어지는 마음을 뒤로 한 채 최수빈은 저도 모르게 살짝 걱정하는 말투로 말했다.“민혁 씨... 괜찮아요?”주민혁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 내려앉았지만 검은 눈동자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그는 담담하게 한마디만 했다.“응, 괜찮아.”하지만 최수빈의 눈에는 그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목소리는 거칠고 마른 데다 호흡조차 어딘가 급하게 이어지는 느낌이 있었으니 말이다.그렇다고 해서 그 말을 바로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조용히 서서 주민혁이 이어서 무슨 말을 할지 기다렸다.주민혁이 옆에서 서류 한 뭉치를 집어 최수빈에게 내밀었다.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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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9화

최수빈은 조용히 살아가면 평온을 얻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구교진이 세상을 떠난 그 순간부터 위험은 이미 소리 없이 그녀 곁에 내려앉아 있었다.이 능력이 얼마나 무거운지 그녀만 아는 게 아니었다. 주민혁도 알고 있었고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세력들 역시 알고 있었다.기술력으로 강해지는 나라에서 핵심 기술은 곧 국가의 무기다.그리고 국가급 안보 기밀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단 하나, 유출이었다.국가와 국가가 맞붙는 싸움은 결국 최첨단 기술로 겨루는 것이고 그 기술을 손에 쥔 엔지니어들로 승부가 난다.최수빈은 자신에게 닥친 위험이 임씨 가문의 보복, 심종연의 모략 정도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 뒤에는 훨씬 깊고 큰 판이 얽혀 있었다.목구멍에 두꺼운 솜을 한 겹 밀어 넣은 것처럼 숨이 막혔다. 하고 싶은 말이 가득 차올랐는데도 입을 열면 한 글자도 나오지 않았다.주민혁이 지난 세월 해온 일들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그는 최수빈이 알지 못하는 압박을 짊어졌고 그녀를 향해 날아오는 수많은 공격을 대신 맞아준 것이다.혼자 어둡고 질척한 진흙탕에서 버티면서도 주민혁은 단 한마디도 내색하지 않았다.최수빈은 지친 채로 소파에 앉아 있는 안색이 창백한 남자를 바라봤다. 보이지 않는 손이 심장을 꽉 움켜쥔 듯 저릿저릿한 통증이 안쪽에서 퍼져나갔다.감정을 가라앉히려 애쓰며 최수빈은 조금 쉰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오늘 이 입찰은...”“응.”주민혁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옅은 피로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가짜야. 07 전투기 공개 입찰 전부가 미끼지. 줄을 길게 서게 만들어서 큰놈을 잡으려는 거야. 핵심 기술을 노리는 놈들은 언젠간 참지 못하고 결국 꼬리를 드러낼 테니까.”최수빈은 손에 들린 서류가 갑자기 납덩이처럼 무거워져 팔이 욱신거릴 정도였다.손글씨를 바라보는 순간, 머릿속에는 저절로 한 장면이 떠올랐다.깊은 밤, 불을 켜놓고 혼자 이걸 정리하는 주민혁의 모습 말이다.우울증에 시달려 잠 한숨 못 이루는 새벽마다 지친 몸을 억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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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0화

휴게실을 나오자 복도 조명이 유난히 밝아 눈이 따가울 정도였다. 최수빈은 손글씨로 가득한 그 서류를 꼭 쥔 채 손끝에 힘을 잔뜩 줬다.서류는 조심조심 서류 가방 안에 넣었다. 마치 뜨겁게 달아오른 심장을 품에 안은 것 같았다.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가슴속에서 여러 감정들이 뒤엉켜 솟구쳤다. 생각이 무거워지자 발걸음까지 저절로 느려졌다.그동안의 거리를 두던 태도와 인내가 실은 주민혁이 촘촘히 짜놓은 ‘보호막’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 수 있었다.최수빈이 평온하다고 믿었던 시간들 뒤에서 그는 어둠 속에서 홀로 위험과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그 사실들이 파도처럼 마구 밀려와 최수빈은 한동안 납득하기 어려워했다.입찰장으로 돌아왔을 때는 입찰식이 중간 휴식 타임에 들어간 뒤였다. 사람들은 술잔을 들고 여기저기 인사를 나누며 떠들썩했지만 그 활기는 어딘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것처럼 느껴졌다.최수빈이 빈자리를 찾아 앉자마자 심종연이 샴페인 두 잔을 들고 다가왔다. 얼굴에는 온화하고 단정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수빈 씨, 아까 왜 갑자기 자리를 비우신 거예요?”그는 샴페인 잔 하나를 자연스럽게 내밀며 물었다.“안색이 좀 안 좋아 보이던데 어디 불편하신 거예요? 아니면 프로젝트에 궁금한 점이라도 있으신가요?”최수빈은 잔을 받았다. 차가운 잔이 손끝에 닿자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는 느낌이었다.그녀는 시선을 들어 심종연을 바라봤다. 그는 늘 부드럽고 단정하게 웃었다.흠 하나 없는 태도, 그런데 흠이 없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가장 큰 흠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최수빈은 심종연의 질문에 바로 답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심 대표님, 시후를 본 지 오래됐네요. 요즘은 어때요?”심종연은 잠깐 의외라는 눈빛으로 보였다가 곧 더 환하게 웃었다.“시후는 말도 잘 듣고 참 착해요. 요즘은 저랑 지내면서 예전보다 훨씬 밝아졌고요. 율이 얘기도 자주 해요. 같이 공부하고 싶다면서요.”최수빈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옅게 웃었다.“그런데 갑자기 왜 시후를 입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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